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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 첫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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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삶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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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이런 내용이 나와.

 

파우스트가 성경책을 읽으려고 했어.
그는 성경책의 처음에 이렇게 쓰여 있는 것을 봤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파우스트는 이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말씀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그 내용을 이렇게 바꿨어.
"태초에 권력이 있었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이것도 좋지 않다고 봤어.
세상이 바뀌어지는 것은 권력 말고도 많다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그 내용을 이렇게 바꿨어.
"태초에 행위가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것을 인용했어. 왜 그랬을까?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에서 "태초에 행위가 있었다"로 바꾼 것에서 그의 철학이 요약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기존의 철학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를 믿었어.
말씀이 주어졌고,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로부터, 그로부터 나온 것이 이성, 논리였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태초에 이성이 있었다"인 거야.
비트겐슈타인은 이것이 문제라고 봤어. 왜 그랬냐고?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나무와 그것을 보고 있는 두 사람이 있어.
한 사람은 나무를 가리키고는 이렇게 말했어. "저것은 나무이다."
다른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어. "나는 저것이 나무라는 것을 안다."
이 둘 중에 누구가 철학자일까?

 

당연히 두 번째 사람이겠지.
또한, 두 번째 사람이 훨씬 더 부자연스러운 것이겠지.

 

하지만 철학에 너무 심취해서 "태초에 이성이 있었다"라는 입장을 취한다면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본 거야.
여기서 "태초에 행위가 있었다"라고 보는 사람은, 여기서 "나무를 가리키고는 저것은 나무이다라고 말하는" 행위가 먼저 있고, 그 뒤에서야 다른 일이 일어난다고 보겠지.

 

비트겐슈타인을 언어철학자로 보는 사람이 있지만, 그 전에 "행위"를 중요하게 여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둬.
비트겐슈타인의 대표 저작인 "철학적 탐구"에서는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

 

"23. 그러나 얼마나 많은 종류의 문장이 존재하는가? 가령 주장, 물음, 그리고 명령? - 이런 종류는 무수히 많다: 우리가 “기호”, “말”, “문장”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의 무수히 많은 서로 다른 종류의 사용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다양성은 고정된 것, 딱 잘라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언어놀이”란 낱말은 여기서, 언어를 말하는 것이 어떤 활동의 일부, 또는 삶의 형태의 일부임을 부각하고자 의도된 것이다.
다음의 예들 및 다른 예들에서, 언어놀이의 다양성을 똑똑히 보라:
명령하기, 그리고 명령에 따라 행하기-
대상을 그 외관에 따라서, 또는 측정한 바에 따라서 기술하기-
기술(소묘)에 따라 대상을 제작하기-
사건을 보고하기-
사건에 관해 추측들을 하기-
가설을 세우고 검사하기-
실험 결과들을 일람표와 도표로 묘사하기-
이야기를 짓기; 그리고 읽기-
연극을 하기-
윤무곡을 부르기-
수수께끼 알아맞히기-
농담하기; 재담하기-
응용 계산 문제를 풀기-
한 언어로부터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
부탁하기, 감사하기, 저주하기, 인사하기, 기도하기..."

 

언어놀이의 무수히 많은 다양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여기서 "언어를 말하는 것이 어떤 활동의 일부"라고 말한 부분을 참고해둬.
"활동"이라는 것이, 언어보다 앞서서 이뤄진다는 점을 알아둬.
그리고 그 활동의 일부분만이 언어라는 거야.

 

이렇게 행위를 언어보다 앞세우는 것이 그의 철학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바로, 비트겐슈타인이 가지고 있는 "실용주의"적 면이 잘 드러난다는 거야.
"실용주의"가 무엇이냐고?
이것을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은 내 힘으론 정말 어렵지만, 그냥 이 글에서는 "반회의주의"라고만 알아둬.

 

"반회의주의"도 뭔지 모르겠다면, "회의주의"의 예시를 들어보고 생각해봐.

 

플라톤의 대화편 중에 "에우튀프론"이란 게 있어.
여기에는 소크라테스와 에우튀프론이 나와.
소크라테스는 에우튀프론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해.
"경건함이란 무엇이야?"라고.
에우튀프론은 이렇게 답해. "아마... 모든 신이 사랑하는 것이 경건한 것 아닐까?"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해. "그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
지금 이 상황에서 두 가지 경우가 있어. 첫번째는, 그 신 자체가 경건함의 원인일 경우야. 이 경우에는, 진짜로는 별 이유 없이 신이 사랑한다는 것밖에는 경건한 것이 경건한 이유가 없어. 신은 아주 쉽게 살인이 경건하게 만들 수도 있어.
두번째는, 신이 경건한 것을 사랑하는 데 어떤 다른 원인이 있을 경우야. 이것은 첫 번째보다는 일리가 있지만, 이 경우에는 경건함에 대한 이유를 다시 찾아야 할 거야. 모든 신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정의는 별로 쓸모가 없다는 거야."
에우튀프론은 이렇게 말해. "으악 이래서 너랑 대화하기 싫어 나 어디 가야 해 빠이"

 

여기서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말들을 현대에서는 "회의주의"라고 불러.
어떠한 말 앞에서 "왜 그래야 하지?", 혹은 예를 들어 "왜 그것이 가능하지?" 같이 대답하는 경우라는 것이야.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는 중요할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제 갈 길 모르고 고장난 바퀴처럼 언어가 헛도는 것일지도 모르지.
위의 예시를 보더라도 에우튀프론이 다른 일이 있다고 하면서 나갔어. 너라면 소크라테스가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한 정의를 가져올 수 있어?
2000년이 지났지만 이것에 대한 해답은 없어.

 

비트겐슈타인의 실용주의적인 면은 여기에서 나와.
소크라테스는 가장 전형적인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케이스야.
"태초에 이성이 있었다"고 하면서, 철학에 심취해서는 "나는 저것이 나무라는 것을 안다."라고 하는 사람이겠지.
그러다가 "저것이 정말 나무인가?" "저것이 나무라는 것을 왜 아는가?" "저것이 나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라고 하는 사람이 소크라테스같은 사람일 거고.
하지만, 태초에 행위가 있었고, "나무를 가리키고는 저것은 나무이다라고 말하는" 행위가 먼저 있다고 한다면 언어가 헛도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거야.

 

 

 

비트겐슈타인은 살면서 단 한 번 실용주의라는 용어를 언급했어. 확실성에 관하여 422에 있는데, 다음과 같아.

 

"422. 그러므로 나는 실용주의처럼 들리는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한다.
여기서 일종의 세계관이 나의 길을 가로막는다."

 

약간 부정적인 어감이 강하다면, 니 말이 맞아.
지금까지 말해왔던 문맥이랑 어긋나다면, 그것도 맞아.
비트겐슈타인은 엄밀히 말하면 실용주의자라고 해서는 안돼.
"세계관"이 가로막기 때문이야. 하지만 "세계관"이 뭐지?

 

비트겐슈타인을 실용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철학자는 리처드 로티를 포함해서 꽤 많아. 또 인기 있는 해석이기도 해.
비트겐슈타인이 실용주의적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면에서 (특히 비트겐슈타인이 반회의주의적이라는 면에서) 옳지만,
"it actually goes a little bit deeper than that",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 면이 있어.

 

내가 이 글에서 "철학적 탐구"의 글을 인용한 곳을 잘 봐.
"언어를 말하는 것이 어떤 활동의 일부, 또는 삶의 형태의 일부임을 부각하고자 의도된 것이다." 라고 말했어.
언어는 어떤 활동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삶의 형태"의 일부라는 것이야.
비트겐슈타인은 행위의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지만, 더 정확히 말해서 삶의 철학자라고 말해야 해.
"세계관"이 무엇인지, 삶의 철학자로서의 비트겐슈타인이 무엇인지는 다음 글에서 말해줄게.
 

3개의 댓글

2020.10.08

닉값 못하네

0
2020.10.08

알이먼저냐 닭이먼저냐

당연히 알이먼저지

0
2020.10.08

재밌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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