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03년에 중부와서 부전전의 접경지대 쯤에 위치한 최전방부대 GOP를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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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알겠지만 GOP는 길게는1km~짧게는 수백m를 일개소대 약30명+@가 지키는 곳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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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야 3교대로 근무를 나가니 초소를 다 채울 수 없어서 곳곳에 플라스틱 사격 표적이나 마네킹에 전투복을 입히고 마치 사람이 있는 초소인 것 처럼 위장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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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저희는 "허병장"이라고 하는데 그것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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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르신들의 말씀이나 책을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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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물건에게 정이나 증오 혹은 계속 이야기를 걸면 그것에 일종의 '생령' 이라는 것이 깃들어서 자신이 사람인 줄 안다."​
라는 이야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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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치는 여름과 눈이 푹푹 쌓이고 영하 20~30도를 넘나드는 혹한에서도 다 낡아서 빛바랜 전투복 하나 걸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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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같은 장소에 배치되는 허병장이 왠지 안쓰러워서 근무 투입 시 허병장을 걸어 놓을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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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오늘도 졸지 말고 근무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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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근무 철수하면서 허병을 내릴 때는(주간에는 마네킹이라는 것이 들키니까 허병을 안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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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사히 근무 마쳤네~수고했고 푹 쉬어 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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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항상 말을 걸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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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비일상적인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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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GOP 짬밥도 얼추 반년 쯤, 여름이 다 저물어가는 어느 밤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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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주기로 부대가 돌아가며 순환근무를 서는데 저희는 3월에 들어가서 다음해 3월에 철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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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야간 근무여서 오밤중에 기상하여 졸린 눈 비비며 근무투입 준비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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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실에서 상황을 보던 포반장이 스파이더(통신수단)로 온갖 욕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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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 잡히면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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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역정을 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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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또 어느 말년이 밀조 돌면서 장난치나 보다라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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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는 일반 가정집 전화처럼 번호만 알면 외부에서 휴대폰으로도 장난전화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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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어느 휴가자가 후임에게 스파이더로 전화를 걸었다가 영창을 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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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며 합동 후 전근무와 교대를 하는데 저와 교대하던 초소의 선임분대장이 뜬금없이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나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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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병사수이던 전 그냥 이 인간이 장난치는구나 생각하고 투입 후 후임과 노가리를 까고 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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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근무의 지루함.

아는분은 아실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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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길고 이야깃 거리는 두어 시간도 안되서 동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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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졸음과 싸우는 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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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가벼운 일이 하나 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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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실에서 각 초소로 스파이더를 돌렸는데 그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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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을 걸어놓은 초소에서 자꾸 상황보고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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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이나 누가 거기지나면서 장난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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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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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야 당연히 그럴 일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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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 상병 이** 입니다. 저희 이제 밀조 한바퀴인데 밀조간 특이사항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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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보고를 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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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근무를 서는데 북측에서 산불을 보게되어 보고하려는 순간 스파이더가 오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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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역시 포반장이 매우 화난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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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꾸 빈초소에서 장난치냐. 너희들 지금 장난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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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막 그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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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대장한테 연락넣었으니까 지금 밀조돌면서 다시 체크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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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는 준엄한 계시(?) 가 떨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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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보다 빠른 밀조를 돌면서 제가 그 문제의 빈초소를 확인 차 순찰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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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곳에 배치되어 있는 스파이더의 수화기가 내려가 있고 선도 조금 헤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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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선이 왔나 보다 싶어 다시 원위치 시키고 상황 보고하며 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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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허병장에게 부사수인 제 후임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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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허병~그런 장난은 치지 말고 우리 근무 잘 서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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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이게 실수였다는 걸 이때 알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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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 후 근무를 이상 없이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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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철수하여 아침부터 점심나절까지의 단잠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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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되는 후반야간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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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제가 첫 대기를 들어가고 밀조 출발하면서 허병장이 있는 그 빈초소를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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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간다~ 수고해 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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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한 번 날려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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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로 들어간 후 근무를 서는데 이번엔 99k로 무전이 들어왔습니다.

"현망에 수신대기중인 33, 본국 44인데 송신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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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 제가들어간 초소번호, 44 = 허병초소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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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전이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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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무선망은 당연히 현재 근무 투입 중인 분대원들의 채널과 동일해서 분대원들의 웅성거리는 무전과 지금 수화자 누구냐는 무전이 들어오고 저 역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찰나 동일한 무전이 한 번 더 들어옵니다.
​
"현망에 수신대기중인 33, 본국 44인데 송신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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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할 지 누구 장난일까 그 생각만 하는데 대기초소에서 소대장이 스파이더로 저에게 연락, 그 무전에 한 번 응답해 보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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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응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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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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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 본국 44, 44인데 근무 중 특이사항 없고 55번 철주 근처로 고라니 한 마리가 지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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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입감. 남은 근무 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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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입감, 수고 대기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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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 수고대기 바람."
​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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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 초소의 이름 없는 괴인과 태연히 무전을 주고받는 그 심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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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랄이 땅콩마냥 쪼그라들고 여름인데도 소름이 찌르르하고 돋아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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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소대장이 직접 통신병과 밀어주기 없는 순찰식 밀조 돌면서 각 초소를 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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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찰 후 제 초소에 놀러와서 이야기 하나를 하는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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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무식 깐돌아~(제별명이었습니다.) 니 아까 허병 초소에서 날라 온 무전에 응답했다 아이가?"
​
"예, 그렇습니다."
​
"어떤 기분이데?"

"사실...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도 소름 좀 돋습니다, 소대장님..."
​
"근데 진짜 이상한 게 뭔 줄 아나?"
​
"뭐 이상한 거 있었음까?"
​
"아까 무전에서 55번 철주 근처에 고라니 돌아댕긴다고 했다아이가? 내가 오면서 확인해봤는데 진짜로 그 앞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풀 뜯어 고있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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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데 더 이상한 게 뭔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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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보고 나도 소름 돋았어도 내는 간부아이가. 눈 딱 감고 허병 초소 문을 '왈칵!' 하고 힘껏 열어 제낏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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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있었음까? 소대장님?"
​
"이거 줏어왔다 니가 함 봐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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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해 보라며 소대장님이 저에게 보여준 것은 구형 무전기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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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을 모르겠습니다. 옛날 알포인트보면 길다랗고 네모난 휴대용 무전기있는데 그것과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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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초소에 갑자기 그런 게 나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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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무전은.... 왜 하필 저에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짜피 당사자들인 우리 분대만 알고있는 일이고
또 위에서는 믿어주지도 않을 테니 그냥 넘겨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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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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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후반 야간 근무 3일째부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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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후 우리가 겪은 일을 주간조인 2분대에게 이야기하니 서희수 병장이 구라까지 말라며 자기가 한 번 보겠다고 근무를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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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취침에 들어간 저는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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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내무실에서 TV를 보고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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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문이 열리며 웬 일병이 한 명 들어왔는데 저희 소대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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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같이 TV를 보던 분대원들에게는 눈길 한 번 안 주고 저에게 와서 '털썩' 쓰러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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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환 상병님... 서희수 병장님이 제가 맘에 안든다며 제 가슴을 발로 찼습니다... 진짜 억울합니다... 이재환 상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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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울먹울먹 거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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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전 꿈속에서조차 상병 짬밥을 과시하며 그 울고 있는 이름 모를 일병을 토닥거려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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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담배 한 대 피면서 군생활이 원래 그런거다라며~달래다가 꿈에서 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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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후 점심을 먹고 여러가지 작업을 하다가 합동시간이 되어서 합동근무를 설 때 꾼 꿈도 있고해서 서희수 병장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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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병장이 우리를 반겼고 같이 얼마 안 남은 합동근무 대차게 노가리로 보내는데 문득 서병장이 그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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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에 근무 투입하면서 허병장 초소 들러봤는데 니말 듣고 그놈을 보니 왠지 기분이 드러워서 발로 가슴팍을 냅다 걷어찼는데 이 허병 새끼가 사람 자빠지듯이 꼬꾸라지더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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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서병장이 한 말이 제가 꾼 꿈과 오버랩되면서 오싹해졌고 서병장에게 제가 꾼 꿈을 이야기하면서 당분간 좀 조심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하니까 기분이 나빠졌는지 저에게 가벼운 손찌검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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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누가 무식 깐돌이 아니랄까봐 병장한테 이래라 저래라하네~"

라고 욕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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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합동 시간이 끝나고 해도 다 떨어져서 전반 야간조를 남겨두고 후반 야간인 저희들과 주간조인 서병장네 분대가 같이 철수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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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분대가 앞장서고 서병장네 분대가 뒤에서 따라오는 형식으로 철수하는 도중에 허병장 초소를 지날때 쯤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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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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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짧은 비명이 들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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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원이 소리난 곳으로 가보니 허병장 초소가 열려 있고, 그 문 앞에 서병장이 다리를 잡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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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오싹하게도 열린 문 틈 사이로 허병장의 팔이 살짝 나와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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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를 밀치고 달려온 소대장이 그 광경을 보고 잠시 얼었다가 서병장네 분대원들한테 무슨일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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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장이 앞장 서서 분대원들이랑 가고 있는데 허병장 초소에 걸어놓은 허병이 한쪽 끈이 풀림과 동시에 떨어지면서 문을 치는 바람에 앞서가던 서병장이 그 문에 얼굴을 부딪히면서 뒤로 고꾸라졌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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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그런 연유로 서병장이 자빠지면서 소리를 질렀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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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초지종을 듣고 소대장이 서병장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데 골절이 되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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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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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초저녁 에피소드는 2분대장인 서병장의 발목 골절 해프닝으로 끝나면서 서병장은 후방CP의 부대로 긴급후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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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소대원들이야 초소도 워낙 낡았고 허병장 고정끈이 낡아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저와 소대장은 유독 찝찝함을 감추지 못하였고 특히 저는 그 꿈과 서병장이 했던 행동들 때문에 더욱 의문이 쌓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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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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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후반 야간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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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날은 월례 행사처럼 연대장이 순찰을 오는 날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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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군기가 잔뜩 들어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어깨에 힘도 주고 눈알도 부라리면서 근무를 서는데 당시 제가 있던 초소의 위치가 허병장 초소 다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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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순찰자가 저에게 올려면 허병장 초소를 지나서 와야 하는 위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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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연대장을 기다리며 눈알을 부라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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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순찰로를 따라 두명의 사람 형체가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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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POWER FM 방식으로 수하를 하고 연대장에게 초소의 경계지역과 전방의 지형지물등을 이야기했습니다.
​
그리고 연대장의 흡족한 미소를 보며 속으로 "아싸~"를 외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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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연대장의 이야기 하나에 저와 뒤늦게 순찰하는 척 하면서 온 소대장은 얼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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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통아(연대통신병)"
​
"예. 연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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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상황실에 무전 날려서 내일 이 애들 소초에 황금마차 올리 보내라고 해라."
​
(근무 상태가 좋은 소초애는 주1회인 황마[이동식PX]를 한 번 더 오게하는 특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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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알겠습니다."
​
"그리고 소대장."
​
"예 **소초 소대장 중위 김민성! "
​
"너희들 소초는 애들 근무상태가 다 좋구나.
방금 44초소에 있던 애들도 수하방식이나 근무브리핑이 좋아서 내가 특별히 황마서비스했다."
​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공포스럽던지...
​
잠시 말없이 있던 저희 분위기를 알았는지 연대장이 다시 이야기하더군요.

잠시 말없이 있던 저희 분위기를 알았는지 연대장이 다시 이야기하더군요.
​
"44초소 애들 말이야, 근무상태가 좋더라고."
​
"연대장님 죄송합니다. 한 번 더 말씀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
"어허~ 젊은친구가 귀가 안 좋은건가~ 44초소 애들말이야!"
​
"연대장님... 그 초소는 마네킹만 세워 놓는 가초소입니다..."
​
"무슨소리야 이 친구야 나랑 통신병이 아까까지만 해도 수하 받고 그 안에서 애들 브리핑하는 걸 들었는데"
​
연대장 슬슬 기분이 나빠지나 봅니다...
​
"연통!"
​
"예. 연대장님."
​
"너 방금 나랑 같이 그 초소에서 브리핑 받았어 안 받았어?"
​
"분명이 일병사수가 수하하고 브리핑도 했습니다."
​
"야! 소초장(소대장입니다) 이래도 내가 잘못 본거야? 나랑 연통이 같이 봤어 이사람아!"
​
"어이 거기 상병 사수야 "
​
"33초소 근무자 상병 이재환!"
​
"니가 한 번 말해봐 거기 일병사수 너희 분대 아냐?"
​
"초소근무자 상병 이재환 연대장님 말씀에 답변 드리겠습니다.
​
현재 44초소는 전시 투입이 아닌 이상 마네킹을 세워 적을 기만하는 가초소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현재 저희 분대 인원은 총11명이고 근무투입자 8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비번입니다.
​
비번 인원 중 일병 1명은 현재 상황실에서 근무 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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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장... 제 말을 듣고 안색이 변했습니다...
​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
사실은 사실인 것을...
​
"이것들이 지금 연대장하고 장난하자는거야? 중대 해체 되고 싶어? 상황실 연결해!"
​
"예?"
​
이 소초 상황실 연결하라고 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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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랴부랴 상황실에 연락하여 소초 총원과 현재 근무자 등등을 물어보던 연대장...

안색이 이상해집니다...
​
그러더니 결국 소대장과 함께 그 초소를 다시 갔고 그 후 완전 굳은 표정으로 레토나를 타고 연대로 돌아가버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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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음날 약속했던 황금마차는 왔었기에 그냥 그걸로 행복해져서 전날 일은 그냥 묻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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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오지 근무인 군인은 PX면 동기도 팔수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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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솔직히 이때까지 '괴담 없는 군대가 어디있고 사연 없는 근무지가 어디있냐~ 뭐 나오면 나오는거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
그 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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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마저도 목격하게 되니 세상이 달라져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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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새벽 3번 째 밀조를 도는 중 문제의 허병초소를 지날 때 저는 보았습니다.
​
언제나 말없이 꿋꿋하게 정면을 바라보면 허병의 몸이 순찰로 쪽으로 돌아가 있는 것을...
​
문제는 거기서 그냥 지나쳐야 했는데 한 순간의 판단미스로 오줌까지 지리게 될 줄이야...
​
그 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순간 '허병을 바로 놓아야한다.'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허병 초소문을 열고 허병의 몸통을 잡는 그 순간 초소문이 닫혀버립니다...
​
그것도 누가 화내면서 강하게 발로 차는 듯이 쾅!! 하고...
​
부사수는 졸지에 초소에 갇혀 버린 저와 스스로 닫힌 문을 번갈아보더니 이내
​
"으아아아악!!"
​
하고는 소대장이 자고 있는 초소로 도망가버립니다...

저 혼자 경계등 불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가초소에서 허병을 어정쩡하게 잡은 상태로 굳어서 입만 어버버~하고있는데...
스파이더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
전 소대장이겠거니 하면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
"통신보안 33초소 상병 이재환 입니다."
​
"............................."
​
"통신보안?"
​
".............................."
​
"통신보안 33초소 상병 이재환입니다."
​
".............................."
​
이성이 날아갈 것 같고 무서워 죽겠는 마당에 한 가지 드는 생각은
​
"고참들이 나를 놀리려고 하나...?" 였습니다.
​
그런데 이윽고 들리는 소리...
​
"..........왜........."
​
"분대장님? 나병장님? 신진우 너냐? 아~진짜 장난지치마십쇼~무서워죽겠슴다~"
​
"..........왜........."
​
"뭘 왜긴 왭니까...무서워죽겠으니까 진짜 장난 그만하십쇼~"
​
"...왜..........왜.........왜......"
​
"아~진짜 자꾸 그러시면 저 진짜 상황실 연락때림다~근무태도불량으로~"
​
"....이....제.....왜.....니까...."
​
"야 씨바 너누구야? 근무철수하면 ?"
​
".....왜......이...제....안...걸...어...줍...니...까..." ​
​
이 때 목소리가 진짜...
​
지금도 소름 돋는 게 영화 주온에서 귀신이 기어나올 때 뭔가 떨리는 톤으로 어어어어어...하는 거랑 비슷했습니다.
​
그 톤으로 아주 천천히... 뭔가를 말하는데....
​
"....왜....이...제...말...안...걸...어...줍...니...까..."
​
아마.. 이 때 부터 이성의 끈을 놓았다고 생각됩니다...
​
"어버버...."
​
"...왜...몇...일...전...처...럼... 늘...그...렇...듯...이... 말...안...걸...어...줍...니...까..."

...
​
부끄럽지만 이 때 군복에 오줌 지렸습니다...
​
더 이상 스파이더의 수화기를 들 자신도 없었고 제 바로 뒤에 있는 허병을 볼 자신도 없더군요...
​
상병달 때 까지 키워 온...
​
아니, 가득했던 악과 깡은 이미 지려버린 소변에 섞어 나왔구요...
​
머릿속으로 셋을 세자마자 군홧발로 초소문을 발로 차서 부숴트리고 단박에 튀어 나가려는데...
​
무언가 제 전투조끼를 잡은 것 처럼 뒤로 다시 당겨졌고
​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지 않자 바로 99k를 꺼내어 음어고 나발이고 제끼고 99k에 대고 외마디 비명...
​
"살려주십쇼 소대장님!!!" ​
​
그 외마디 비명과 함께 전 이성의 끈을 놓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
그 후 다시 깨어났을 땐 소대장과 부사수.
​
그리고 소대통신병이 절 흔들고 있었습니다.
​
부사수놈...
​
절 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질질 짜면서 한다는 소리가.
​
"이재환 상병님 일어나십쇼 제발....제가잘못했슴다...."
​
제가 눈을 뜨자 소대장 무슨 굶주린(?) 사람 마냥 저를 냅다 끌어안고는 살아서 고맙다고 하더군요...
​
그리고 수통의 물을 마시며 좀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
소대장은 통신으로 분대장에게 말해서 이틀은 근무열외 시키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저 보고 오늘 철수할 때 까지만 대기초소에서 자기랑 버티자고.
​
할 이야기도 있으니까 같이 있으면서 버티자고 하더군요.
​
그리고 대기초소...
​
서로 자기가 목격한 걸 이야기했습니다....
​
우선 제 부사수입니다.
​
문이 닫히고 놀라서 얼떨결에 초소안에 갇혀버린 절 보고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문을 열어야겠다고 판단하고 행동 하려는데
제가 잡고 있던 허병장의 목만 돌아서 자기를 보고는 입모양을 벙긋..벙긋 거리는데..
​
느리게(자기 시선에서는) 한글자 또박또박 입모양을 만든 그 내용이 이거랍니다.
​
"열.지.말.고.가!"
​
부사수..
​
이거 보자마자 끼 마냥 소대장에게 보고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답니다.
​
그리고 대기초소문을 발로차고 들어가 단잠에 빠져있던 소대장을 잡아 흔들었고,
​
이야기를 들은 소대장은 저와 겪은 일련의 일들 때문에 일말의 의심도 없이 부사수와 함께 길을 따라 달려 올라오고
​
그 모습을 본 가초소와 가까운곳의 선임과 소대장, 제부사수, 소대통신병은 보았답니다.
​
문을 발로 차서 부수고 뛰쳐나가려는 저와 마치 저와 떨어지기 싫다는 듯 제 전투조끼를 잡고있는 허병의 손을....
​
그리고 그 때 맞춰서 분대 무선망에 퍼진 제 비명
​
"살려주십쇼 소대장님!!!"
​
...가초소와 근접한 곳의 초소인원들은 04k로 그 광경을 보면서 덜덜 떨었고,
​
멀리 떨어진 곳의 딴 근무자들은 제가 간첩한테 목 따이고 있는 줄 알았다더군요...
​
그리고 마지막에 보았답니다.
​
소대장과 인원들이 도착하자 소대장과 저를 번갈아보며,
​
아쉬운 듯 놓는 그 하얀 팔을...
​
팔이 사라지자마자 저는 땅바닥에 고꾸라졌고
​
소대장과 부사수가 절 흔든 것이었죠...
​
거기까지 들은 전 몸을 쉼 없이 떨어야 했고 날이 밝는대로 허병장을 떼어서 복귀,
​
그대로 공터에서 따로 소각하고 소금주머니와 함께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
그리고 그 가초소는 마네킹 대신 플라스틱으로 된 북한군 표적으로 바꾸고 스파이더 또한 떼어버렸습니다.
​
그 후 한 동안 저와 부사수는 주간근무만 돌면서 지냈구요...
​
여러분...여러분들도 물건에다가 함부로 말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
전 이 사건 이후 밤길을 걷다가 쇼 윈도우에 진열된 마네킹만 봐도 소름이 돋고 겁이 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