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식문화 이야기 3탄 - 그리스 로마 문명 (1부)

그리스&로마 라고 쓰긴 했지만 대부분은 로마입니다. 아무래도 로마가 유럽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니까요. 로마는 워낙 긴 기간동안 유지되었기 때문에, 초기 로마와 후기 로마만 비교해도 그 문화나 습관이 상당히 달라집니다. 사실 동로마제국까지 포함한다면 15세기까지 존재하지요. 이번 글에서 묘사하는 <로마인>은 주로 공화제에서 제정기의 로마, 즉 기원전 509년부터 기원후 395년까지로서 동/서로 분열되기 전까지의 로마인입니다. 로마쪽은 쓸게 많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져서 1,2부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식문화 1탄 - 중세시대

https://www.dogdrip.net/281451912

 

식문화 2탄 -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https://www.dogdrip.net/281531917

 

 

1. 다른 나라와의 교역이 없었으면 그리스 문명도 없었다!

  로마가 번영하기 전에 빛나는 문화를 이룩했던 그리스. 신들의 땅 올림푸스로 유명한 그리스지만, 사실 그리스의 초기 식문화는 매우 소박했습니다. 그리스는 도시국가들의 동맹으로 만들어진 나라였는데, 땅덩이도 좁은 데다가 매우 척박하여 당시에 번영하고 있던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 비해 식재료를 풍부하게 얻기 힘들었거든요. 그나마 쉽게 얻을 수 있었던게 지중해기후에서 잘 자라는 포도와 올리브였습니다. 넉넉한 식물을 재배하는 이집트에서도 소박하게 먹고 있는 판국에, 그리스라고 다를 건 없었던거죠.

  땅에 평지가 적고 척박하다보니 주식인 밀류는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밀류를 수입하기 전에는 포도나 무화과를 말린 것, 견과류 등으로 연명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과일류를 주식으로 삼아버리면 수분이 너무 많기 때문에 충분한 칼로리를 얻기전에 물배가 차버린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일을 건조해서 먹은거지요. 하지만 보통 곡류의 섭취는 문명 성장의 분기점이 됩니다. 곡류가 있어야 탄수화물을 통해 충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거든요. 또한 식재료의 저장과 보관이 쉬워지고, 식문화가 발달하여 인구수도 쉽게 증가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그리스에게 있어서 다른 나라와의 교역은 이후 그리스의 성장이 달린 필수적인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는 다른 문명들보다 일찍부터 교역에 힘썼고, 기원전 1000년 경부터는 올리브와 와인을 팔게 되면서 꽤 풍요로워지게 됩니다. 그리스의 시작은 상업국가인 셈이지요. 와인이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 고급주류로 취급받으며 비싼가격에 거래되었다는 것은 저번 글에서 보셨었지요? 와인의 시작은 메소포타미아였지만 지중해의 기후는 고품질의 포도를 생산해주기 때문에 그리스의 와인은 매우 인기리에 거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가 얼마나 교역에 힘썼는지는, 당시에 사용했던 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때 주로 사용했던 교환재는 은인데, 오늘날처럼 100원 500원 하는식으로 금액이 정해졌던게 아니라 무게를 달아 그 무게만큼의 가치를 지녔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은덩어리 만으로는 이게 어느정도의 무게인지 알기가 힘들었고, 그래서 만들어진게 일정 무게만큼 떼어낸 은조각에 인장을 찍어서 이 무게만큼의 가치임을 증명하는 은화 였던거죠. 무게가 중요했기 때문에 모양은 일정하지 않았고 납작하고 울퉁불퉁한 은덩어리 전면에 자기 국가 나름대로의 문양이 찍혀있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당시의 그리스에서는 <아테네의 올빼미> 로 유명한 올빼미 도안을 은화에 찍어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워낙 그리스의 교역이 활발하다보니, 이 은화가 지중해 유럽 온 구석구석 퍼지게 되었던 거죠. 딱히 화폐 인쇄권한 같은게 없던 시대였기에 다른나라들도 자기 은화로 그리스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 자기네 은화에 올빼미 도안을 사용하게 됩니다.(다른나라가 올빼미 도안을 써서 은화를 사용했다 해도, 결국 무게만 같으면 되는거니까요) 그래서 당시 지중해 국가들의 은화들을 보면, 죄다 올빼미 도안으로 통일되다시피 한 것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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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에서 사용된 올빼미 은화 )

 

  다시 식문화로 넘어가서, 교역을 통해 그리스가 먼저 입수했던 곡류는 보리(대맥)였습니다. 다른 고대 문명에 비해 곡류의 입수가 늦었기 때문에, 빵도 아직 만들 줄 몰랐습니다. 그리스에서 빵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무려 기원전 5세기부터라고 하지요. 그 전까지는 보리와 깨, 콩 등을 빻아서 죽을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보리죽은 현재의 그리스에서도 간단한 식사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서민들은 대두를 빻아 만든 가루에 민트를 섞은 <큐케온> 이라는 음료를 주로 마셨고, 보리를 끓인 <프티네사>(아마 우리나라의 보리차와 가깝지 않을까요?), 오늘날의 꿀물과 같은 <메리드라톤> 이라는 음료도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땅이 좁았기 때문에 방목을 할 여유가 없어 고기는 귀했습니다. 가축이 있긴 했지만 소는 노동력, 양은 털을 얻는데 사용되었죠. 그리스에 고기가 넉넉히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000년 경에 올리브와 와인을 팔면서 부터지만, 당연히 그러한 이익은 서민이 아니라 귀족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에 빈부의 격차가 심했습니다. 그래서 귀족들은 쉽게 고기를 먹을 수 있었지만 서민들은 고기를 접하기가 힘들었지요. 그리스에서 주로 먹은 야채는 콩, 깨 마늘, 양파, 크레송, 순무, 양상추 등이었고, 지중해 바로 옆이었기에 어패류는 매우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그리스 동맹 중 하나였던 스파르타는 일부러 음식에 담즙을 넣어 쓰게 만들어 맛없게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쟁이 날 경우에만 정상적인 음식이 배급되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스파르타 시민들은 오히려 전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2. 변화하기 시작한 그리스 요리

  나라가 풍요로워지고 기원전 5세기 경에는 그리스에 빵집이 탄생하면서, 그리스 요리는 매우 다양해지게 됩니다. 요리의 폭이 넓어져서 올리브유를 사용한 튀김, 고기류도 자주 먹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리스의 고기요리로는 소 등의 가축을 이용한 꼬치구이, 피가 들어간 소시지, 내장구이 등이었다고 합니다. 식사도구로 국물요리에는 숟가락을 사용했고, 그 외의 음식은 손으로 집어먹었습니다. 고기요리는 먹기좋은 크기로 잘라져 나오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나이프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식사로 더러워진 손은 <아미론> 이라는 밀가루 반죽으로 닦았고, 사용한 아미론은 바닥에 버려 개나 고양이가 먹도록 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기록이 남아있는 <식탁의 현자들>이라는 자료에는 <참치 소금구이>, <장어찜 구이>, <비늘돔의 치즈와 올리브유 구이> 등 지금봐도 세련되어보이는 생선요리 레시피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바다국가라 생선은 오래전부터 먹었다보니 요리방법이 꽤나 발전했던 거지요. 심지어 식민지 시라쿠사에는 <라프뒤고>라는 미식가가 세계 최초의 요리학교를 세웠다고도 합니다. 

 

 

3. 로마가 유럽 문화의 조상이라고? 나는 로마의 스승이다!

  그리스가 위세를 떨치고 있을때, 로마는 아직 변방의 작은 도시국가였습니다. 딱히 화려한 문명이랄게 없었죠. 사실 로마제국의 화려한 번영은 로마 자체의 기술이 아닌, 전부 다른 나라로부터 흡수한 기술들입니다. 그리고 그 로마 문화의 시초가 되었던 것은 바로 에트루리아 였습니다. 로마의 문화가유럽 문화들의 기둥이 되었다면, 에트루리아는 그 기둥의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에트루리아는 당시 지중해에서 가장 발달한 문명지 중 하나였으며 그들의 빵가마는 현대에도 사용되고 있는 피자용 화덕의 선조였다고 합니다. 또한 고기를 굽기 위한 회전꼬치를 발명한 것도 에트루리아이죠. <로마의 귀족> 이라고 한다면, 어깨에 둘러진 긴 토가를 입은 채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접시에 놓여진 과일을 나른한 포즈로 하나하나 집어먹는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사실 토가도, 비스듬히 눕기 위한 긴 의자도 전부 에트루리아의 문화였습니다. 로마인들은 의자에 누워 음식을 먹는게 연약하다고 비판하면서도 그 습관을 받아들였다죠. 해보니까 편했나봐요.

  에트루리아는 고기를 즐겨먹었으며, 허브로 향을 내어 구워먹었다고 합니다. 요즘엔 흔히 키우는 닭은 중국에서 유래되었는데, 기원전 7세기 경에 지중해에 전해졌지만 18세기 전까지는 매우 귀했다고합니다. 그 점은 저번 중세때에도 설명했었지요. 에트루리아인들은 연회를 자주 열었는데, 음악에는 마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리를 하는 주방에 악사가 들어가 음악을 연주했다고 해요. 또한 연회를 열 때에도 악사를 불러 먹으면서 음악을 즐겼다고 합니다. 요즘엔 레스토랑에서도 잔잔한 음악이 깔리는게 기본이지만, 그 최초의 시도는 에트루리아였던 셈이지요.

 

  한편 당시의 로마인들은 작은 도시국가였던데다가 주식은 누에콩이들어간 밀죽, 올리브유를 뿌린 생야채 정도였습니다. 에트루리아에 비하면 미개인에 지나지않았죠. 하지만 그 식사는 밸런스가 있었고(누에콩=단백질, 밀죽=탄수화물, 야채샐러드=비타민+식물섬유), 로마민족인 라틴족은 몸이 작고 야무지기때문에 싸움에 능했죠. 그래서 로마인들은 점차 주변에 전쟁을 걸어 땅을 넓혀가게 됩니다. 그리스와 에트루리아도 결국 로마에 먹혀버리게 되고, 그들의 선진 문화를 흡수한 로마는 급격한 성장을 이룩하게 되죠. 그리고 부유해진 로마는 점점 미식을 추구하게 됩니다.

 

 

4. 로마에서 공짜로 아침을 먹는 방법은?

  로마인들은 아침을 매우 간단하게 먹었습니다. 지금도 이탈리아의 아침식사는 매우 간소한 편이지요. 오히려 로마인들은 아침을 푸짐하게 먹는 사람들을 교양이 없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처음으로 먹는 식사를 <이엔타쿰>이라고 불렀는데, 메뉴는 보통 빵과 치즈, 과일 약간 이었습니다. 우유나 와인에 빵을 적셔 먹기도 했다고 해요. 집에서 먹지않는 사람들은 식당에서 먹거나 노점에서 사먹었는데, 당시 로마의 학생들은 새벽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 가는길에 노점에 들러서 간단한 아침을 사먹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벌꿀이나 나무열매, 치즈가 들어간 롤빵과 파이 같은 것들을 주로 사먹었다고 합니다.

  서민들이라면 <파트로누스>의 집에 가면 <스포트루라>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스포트루라>는 빵과 치즈, 과일 등 간단한 아침식사가 들어있는 바구니였는데, 바로 먹어도 되고 팔거나 교환해도 괜찮았습니다. <파트로누스>란 평민을 보호하는 귀족을 뜻하는데, 로마에서는 귀족이 시민들을 부양하는게 당연한 일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즘말로 하자면 노블리스 오블리제 인 셈이지요.(물론 그것은 소수가 다수를 부양해도 별 부담이 없다고 여겨질 정도로 큰 빈부의 차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점심도 마찬가지로 가볍게 먹거나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저녁 외에는 가볍게 먹는 게 상식이었거든요. 

 

 

5. 공중목욕탕은 씻는 곳이 아니라 노는 곳!

  로마인은 보통 하루 3회 식사를 했는데, 그 중 하루에 한번은 <케나(정찬)> 라고 하여 제대로 된 풀코스 식사를 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이 케나가 점심식사였지만, 아무래도 낮엔 더워서 식욕이 없어지다보니 곧 저녁식사로 바뀌었습니다. 점심식사는 <브란디움>이라고 불렸지요. 점심 메뉴는 빵이나 죽, 차가운 고기나 생선, 전날 남은 음식, 계란, 과일 등이었으며, 집에서 요리하지않고 식당에서 사먹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로마 시민들은 오후에 <시에스타> 라고 하여 낮잠을 자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낮잠을 자고 난 이후에는 공중목욕탕에 갔습니다. 공중목욕탕은 단순한 목욕탕이라기보단 현대의 찜질방에 가까웠으며 마사지실, 게임판, 운동설비 등이 갖추어져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시민들의 공원같은 장소였던 셈이지요. 음식도 사먹을 수 있었는데, 주로 비스켓, 기름에 튀긴 스낵, 야채 마리네, 말린과일, 고기완자, 소시지 등을 팔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공중목욕탕은 사실 즐기기만 위해 가는 게 아니었습니다. 온갖 계급의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다보니, 시민들은 공중목욕탕에서 부자와 친해져 케나에 초대받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케나에 초대받을때까지 계속 목욕탕에 드나드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 시민은 투표권이 있었기 때문에 귀족이나 의원들은 나름대로 시민들을 초대하여 자신의 지명도나 인기를 높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6. 세련된 로마 귀족이라면 누워서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당시 로마 귀족들에게는 누워서 먹는 것이 귀족의 특권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이른바 <트리클리니움>이라고 불리는 긴 의자를 사용하였는데, 이 의자는 가로로 길쭉하면서 폭도 널찍하고 등받이가 없는 평상 모양의 의자였습니다. 누울때 불편하지 않도록 푹신한 쿠션이나 깔개가 깔려있었구요. 이 의자 3개를 의자와 비슷한 높이의 테이블을 중심으로 ㄷ자 형태로 배치한다음, 비스듬히 누워서 가운데에 놓여진 음식을 집어먹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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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에 나온 트리클리니움. 가운데 테이블을 중심으로 ㄷ자로 배치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로마 귀족처럼 식사를 하고 싶으시다구요? 먼저 왼쪽 어깨를 아래로 하여 누운 다음 왼쪽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고, 오른손으로 음식을 가져다 먹으면 됩니다. 이제 당신도 훌륭한 로마 귀족이 될 수 있어요. 오래 그 자세를 하고있으니 팔이 저리다구요? 누워서 먹으니 소화가 안될 것 같다구요? 참으세요. 원래 귀족은 그런거에요.

  위 사진은 영화라 그런지 좀 작은 트리클리니움을 사용한 듯 하지만, 보통 한개의 트리클리니움은 3인용이었습니다. 즉 한 테이블에 최대 9명 정도가 둘러앉을 수 있었던 거지요. 따라서 케나에 참가가능한 사람은 많아야 9~10명 정도였습니다. 좌석에는 상석과 하석이 있어서 그 위치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었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 참석자가 화를 내고 돌아가버릴 정도였습니다. ㄷ자 위치 중 가운데 부분이 가장 상석으로 <집정관의 자리> 라고 불렸으며 사진상의 금발녀가 앉아있는 자리입니다. 보통 집주인이 아니라 초대한 손님 중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이 앉았다고 합니다. 만약 여자가 손님일 경우엔 여자는 눕지 않고 앉아야했습니다. 즉 저 영화는 조금 고증이 잘못된거죠.

  게다가 복장도 엄격하게 지켜야 했습니다. 토가라고 하는 옷인데, 보통 로마 귀족 하면 떠오르는 천을 둘둘 감은 것 같은 의상이 바로 토가입니다. 이른바 현대의 정장과 같은 옷인 셈인데, 길이가 키의 3배나 되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무거웠다고 합니다. 

  요즘 이런식으로 연회 한번 했다간 한번만으로도 진이 다 빠져버렸을 것 같네요.

 

 

7. 로마식 풀코스는 어땠을까?

  이렇게 먹을 준비가 다 되면, 이제 식사가 시작됩니다. ㄷ자형 배치에 누워서 먹다보니 가운데에 많은 음식을 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서양 코스요리처럼 음식이 담긴 접시가 먹는 순서에 따라 차례차례 놓여졌습니다. 물론 손으로 집어먹는 거니 개인접시 같은 건 필요 없었겠지요. 

  일단 시작은 식전주로서, 와인이나 허브가 들어간 벌꿀주 등이었습니다. 다음 단계는 삶은계란(당시엔 닭과 계란이 귀했습니다)인데 여기에 가룸(생선젓갈의 일종)을 뿌려 먹었습니다. 계란은 전채와는 별개의 코스로서 만찬을 시작할 때 반드시 가장 먼저 먹었다고 합니다. 그다음 두 차례에 걸쳐 전채(애피타이저)가 나오는데, 첫번째의 전채는 보통 굴, 문어, 야채 등을 사용한 마리네(생선, 고기, 식초, 기름, 향미료 등을 섞어서 담은 요리)였습니다. 또는 양파, 컬리플라워, 버섯, 아스파라거스, 식용달팽이 등을 조리하여 내오기도 하였지요. 두번째의 전채는 그리스인들이 좋아했던 요리인 산쥐의 벌꿀요리가 나오거나, 후추가 뿌려진 게나 새우, 가재로 만든 경단이 나왔습니다.

  참고로 요리에 사용된 산쥐는 흔히 말하는 시궁쥐 같은 쥐랑은 좀 다르고, 굳이 비교하자면 기니피그 같은 뚱뚱한 쥐로 당시 유럽에서는 꽤 인기있는 식재료였습니다. 산쥐를 키우는 양식장도 많이 있었고, 내부가 소용돌이 모양으로 되어있는 산쥐 키우기용 항아리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로마때 한창 인기있던 산쥐는 유럽에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병의 매개체였던 쥐와 비슷한 외관 때문에 기피의 대상이 되었고, 사람들이 먹지 않으니 양식장에서 방생되어 야생화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후추는 인도에서 수입하였는데, 당연하게도 엄청나게 비쌌습니다.

 

  전채가 끝났으니 이제 메인요리를 먹어야지요. 보통 로마요리의 기본은 구이, 올리브유를 사용한 튀김, 찜 등이었습니다. 첫번째 메인요리는 생선이었는데, 광어, 숭어, 철갑상어, 굴, 문어 등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얘기를 할 때에는 고기는 귀족이 먹고 생선은 서민이 먹는다고 말했었지만, 로마시대에서는 고기와 생선은 동급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물론 절인 생선이 아닌 신선한 생선이지만요.

  두번째 메인요리는 드디어 고기요리입니다. 멧돼지 통구이가 많았고, 어린 양이나 어린 염소 고기가 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기원전 3세기까지는 소를 죽이는 게 금지되어있었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소고기를 먹지 않았었지만, 나라가 커지고 부유해지면서 소고기 요리도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두번째 메인요리까지 먹으면 이제 손을 씻으러 갑니다. 다 끝났냐구요? 아니요, 이제 디저트를 먹어야지요.

  기름기가 묻은 손을 씻고나서 다시 자리에 모였으면 이제 디저트가 나옵니다. 보통은 사과가 나오는데, 사과가 없으면 다른 과일이 나오거나 밀가루와 우유를 반죽해 구워 꿀을 바른 <포카치아> 라는 과자가 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로마인들은 식사의 마무리는 사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과 끝을 의미하는 <계란에서 사과까지> 라는 속담도 있었다고 합니다. 

  전채에 이어서 생선요리, 고기요리, 후식에 이르기까지, 요즘의 프랑스 정식 풀코스와 많이 비슷하지요? 사실 로마의 케나는 프랑스 풀 코스 요리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중세보다도 현대식 코스요리와 닮았죠. 중세에 게르만식이 되면서 다르게 바뀌었다가, 음식개혁이 일어나면서 프랑스 요리사들이 로마의 방식으로 다시 회귀하였던 거죠.

 

  흔히 말하는 것처럼 <배가 부르면 토하고 다시 먹는다> 라는 행위도 있긴 했다고 합니다. 다만 자주 있진 않았고 월 1~2회 정도였는데(요즘 기준으로는 충분히 자주이지만), 이는 먹을 게 썩어넘쳐서 더 먹고싶은 귀족들의 몸부림이 아니라 일종의 건강비결이었다고 합니다. 한달에 한두번씩 토해주는게 몸에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상류층 사이에서 예의범절로 취급되었다고 하네요. 토하기 위해서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거나 했던 것은 아니고 구토 효과가 있는 약초를 사용하였습니다.

 

 

8. 우리는 젓갈뿌려 먹는다!

  중세인들에게 향신료가 있었다면, 로마인들에겐 만능조미료 <가룸>이 있었습니다. 그리스에서 만들어져 전해진 조미료인데, 그리스에선 <가론>이라고 불렀습니다. 요즘 서양인들은 한국의 생선젓갈이나 홍어회만 봐도 질색하지만, 사실 자기네 문화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로마에서는 생선젓갈을 더 자주 먹었었습니다. 그게 바로 가룸이죠. 이 가룸은 과연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먼저, 생선을 햇볕에 썩힙니다. 초고급에서 가정용에 이르기까지 워낙 질이 다양했기 때문에 재료에도 온갖 생선들이 사용되었지만, 보통 청어, 고등어, 연어 등의 기름기 많은 생선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외에 참치, 가다랑어, 도미, 굴 등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생선이 적당히 썩었으면, 30리터 용량의 항아리에 허브, 썩은 생선, 소금을 2cm 정도 씩 깝니다. 그리고 그 3가지를 번갈아가면서 꾹꾹 눌러 쌓아줍니다. 그래서 항아리가 꽉 차면 뚜껑을 덮습니다. 허브에는 보통 회향, 샐러리, 민트, 코리앤더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항아리를 이제 7개월 동안 냅둡니다. 그 후 20일동안 내용물을 섞어주면서 숙성시키면 완성! 항아리 위에 떠있는 액체만 걸러내면 바로 가룸이 됩니다. 가룸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는 <아렛크>라고 하여 가난한 가정에게 식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만드는 중에 지독한 악취가 나기 때문에, 시내에 가룸 공장을 세우는 것은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가룸은 로마인들에게 매우매우 사랑받았고, 부자들은 소금보다도 더 자주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빵이 제대로 발달하기 전의 로마의 주식은 앞서 말했다시피 밍밍한 밀죽이었기때문에, 밀죽에 어울리는 생선젓갈이 유행하였던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죽에 젓갈을 넣어 먹듯이 말이지요. 로마 병사에게는 가룸에 물을 탄 <히드로가룸> 이라는 음료(간단히 말하자면 젓갈에 물탄거... )가 배급되었고, 와인에 가룸을 넣은 <오에노가룸>은 로마 멸망 후 동로마에서 귀하게 여겨졌다고 합니다. 다만 가룸 사랑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모든 음식에 가룸을 뿌리다시피했고, 중세 귀족들의 요리가 향신료 범벅이라면 로마 귀족들의 요리는 젓갈 범벅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타국에서 온 주교가 모든 음식에 죄다 뿌려진 가룸의 냄새를 견디지 못해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괴로웠다던가, 누군가는 또 가룸을 너무 처묵처묵 했다가 지나친 염분때문에 속을 버렸다는 기록들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잘 만든 가룸은 상당히 비쌌는데, 로마인들은 각지에 가룸공장을 세워 가룸을 수출함으로써 부를 쌓았다고 합니다. 고급 가룸은 향수와 비슷한 가격이었는데 현재 시세로 따지자면 3리터에 700만원 정도나 됩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최고급 가룸 중 하나로 알려진 <하이마티온>은 다랑어의 내장, 아가미, 피와 체액을 재료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호수의 잉어를 사용한 가룸도 고급으로 취급되었습니다.

  로마인들은 가룸이 조미료 외에도 영양제나 약품으로서의 효능도 있다고 생각했으며 미용수로도 인기가 있었는데, 실제로 가룸에는 위장조정작용, 강장작용이 있고 비타민B와 미네랄이 풍부했습니다. 중세때 사치의 대상이던 향신료가 향 빼고는 크게 이로운 게 없었던 데 비해, 가룸은 원래 발효식품이다보니 몸에는 좋았겠지요. 단 발효식품 특유의 퀘퀘한 냄새가 났을 거라는 사실만 빼면 말이지요. 귀족들은 소금대신 가룸을 먹었을 정도였으니, 현재 우리 몸에서 마늘과 김치냄새가 나듯이(우리는 잘 모르지만 서양인들이 한국인을 만나면 그렇게 느낀다고 하죠) 로마인들의 몸에서는 젓갈냄새가 났었을 듯 하네요.

 

 

[ 2부에 계속 ]

14개의 댓글

27 일 전

밥먹는 글 아래에 똥글이 있으니 참으로 조화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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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일 전
@sooh009

위에서 먹었으니 아래에서는 나와야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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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일 전

가룸은 재료도 그렇고 도시에서 못만드는 거 보면 그냥 수르스트뢰밍이랑 별반 차이 없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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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일 전

그리스 사람들 본죽 오징어젓갈 먹으면 뿅가겠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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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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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일 전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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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일 전

로마인을 욕할때는 생선 비린내 나는 놈들이라고 하면 되고 페르시아인을 욕할때는 근친하는 돼지라고 하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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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일 전

근데 고대도 아니고 거의 원시시대에 왜 저렇게 밀도 자라지 않는 동네에 굳이 정착했을까. 밀려난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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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일 전
@charlote

그리스 지역 보면 동남아시아마냥 짜잘한 섬이 많이 있는 반도인데, 땅은 척박해도 사방이 바다라 수산물이 풍부하니 정착했던게 아닐까싶음.

그리고 사방이 바다면 외적의 침입에 대응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어서 고대에는 내륙보다는 바다 근처가 선호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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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일 전
@아스테라

펠로폰네소스 반도도 산악지대라 방어가 쉽다는 장점이 있어서 그런가. 그러면 진짜 밀려난 사람들인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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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일 전
@charlote

그건 아닐 수 있는게, 유럽 최초의 문명이 기원전 17세기에 생겨난 미노스 문명(미노타우러스로 유명한)인데 얘가 그리스 남부 크레타섬에서 시작했음. 이후 기원전 12세기에 멸망한 미케네 문명에 이르기까지 주변 섬지역에서 활발하게 번성했고, 이후 바다 민족에게 멸망당하고 나서 폴리스로 대표되는 그리스 연합이 생겨났음. 한마디로 유럽의 문명은 섬에서 시작했다고 할수있는거지.

아무래도 농업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는 주 활동이 채집과 수렵, 어업이었을테니까, 정착의 우선순위는 농사짓기 좋냐가 아니라 과일과 동물이 많은 숲이 풍부하냐, 그리고 외적이 침공하기 힘든 지형이냐를 보고 정착했음.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의 섬지역들은 날씨도 온화하고 나무도 많고 방어하기 좋으니 딱 좋은 지형이었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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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일 전
@아스테라

그러고 보니 그리스 육지보다 섬에서 문명이 먼저 태어난걸 잊었네. 밀 없어도 생존은 가능하니 다른거 팔아서 밀을 사오면 됐던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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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일 전
@charlote

그리고 뭐 말이 척박하다지 도시국가 기준으로 농사짓기에는 충분히 비옥한 농지였음. 후에 나라가 점점 커지고 밀 위주로 농업이 발달하면서(밀이 퍼지기 전에는 보리나 귀리 등을 먹었음) 다른 나라에 비해 밀농사지을만한 땅이 부족하니 척박했다는 소리가 나왔던거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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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일 전
@아스테라

잠시 가보니 척박해 보이더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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