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북한군 6사단의 기동, 한 끗 차이가 낳은 실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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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호산.

 

 한국전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보통은 그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했는지 잘 모르고, 딱히 관심도 없습니다.

 

 더욱이 그가 북한 정권 편에 서서 한국을 침략하는 데 앞장선 사람임을 안다면 굳이 그에 대한 혐오감을 거둘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방호산의 이름 한 자까지 기록에서 말살되었을 북한과 달리 그의 적수들이 방호산을 '위험한 상대'로 주목했던 점은 제법 흥미롭습니다. 미 8군을 지휘한 월튼 H. 워커 중장은 "북한군 제6사단의 기동은 이제까지의 한국전쟁을 통해 가장 훌륭한 기동이었다”고 극찬하였고, 많은 연구가들도 작전술적으로 북한군 제 6사단의 기동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혹 기동이라는 말에 의아해 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흔히 한국전쟁의 이미지라면 낙동강 방어전과 뺏고 뺏기는 고지전인지라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위협한 한니발 같은 모습이 쉬이 그려지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부대를 적이 대처하기 어려운 곳으로 옮겨놓는다는 의미에서 북한군 6사단이 이목을 끌 기동전을 수행하였단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물론 위 얘기는 방호산이 지휘한 부대가 대한민국을 패망으로 몰아넣을 뻔 했음과 동어입니다만, 그만큼 그의 지휘가 국군과 유엔군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왔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두 차례나요.

 

 잡설은 이쯤에서 그만하고 제목에서 알린 대로 방호산이 이끄는 북한군 6사단이 한국전쟁 초반 어떻게 전쟁을 수행해 가공할 위협을 만들어냈는지 그러나 왜 그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어설프게나마 소개하고자 합니다.

 

 주 내용은 「6․25전쟁시 북한군 제6사단 기동의 효과 분석 - ‘라주바예프의 6.25전쟁 보고서’ 내용을 중심으로」,  최용성, 군사연구 125호를 비롯해 여러 연구 내용과 서적들을 참고하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1. 방호산과 북한군 6사단에 대한 간략한 소개

 

 방호산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혹은 1916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났습니다. 1915년에 그는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자랐으며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흑룡강 밀산에 있는 공산주의 계열 항일유격대에 가담하였습니다. 1937년부터는 중국공산당의 주선으로 소련 모스크바에 있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유학하였고, 1940년에는 중국 연안으로 가 동북 간부훈련반, 중국공산당 중앙 해외사업위원회에서 교육받았습니다. 이후 연안 조선혁명군정학교 지도원으로 있던 중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중국 동북 지역으로 돌아와 동북조선의용군 제1지대, 동북만주연군 독립 4사단, 166사단의 정치위원으로 있으면서 퉁화 사건 진압과 제 2차 국공내전기 중국 동북 지역을 장악하는 전역에 참여합니다.

 

 유격대 생활, 소련과 중국에서의 전문적인 교육, 군 경험까지 모두 방호산에게는 공산주의자이자 그리고 군사 지휘관으로서 활동하는 데 귀중한 자산이 되었을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 일개 소련군 대위에서 북한 지도자로 가공된 김일성의 빨치산 경험은 방호산과 비교하면 일천한 수준이었습니다.

 

 국부천대를 앞둔 1949년 7월, 중국과 북한은 합의 하에 중국 동북의용군 164, 166사단의 조선인 병력을 북한으로 보내게 됩니다. 이는 방호산에게는 인생에서 새로운 변환점이었습니다. 그는 중국인 사단장을 대신해 166사단의 조선인 장병 12,000명을 이끌고 입북합니다. 166사단은 조선인민군(이하 북한군) 제 13, 14, 15연대와 1개 포병연대를 보유한 6사단으로 편성되었고 사단장에는 북한군 소장 계급을 단 방호산이 임명되었습니다. 

 

 북한군 제 6사단은 상술하였듯 중국 동북의용군 166사단이 근간이었습니다. 이들은 일찍이 중국에서 일본군과 장제스의 국부군과 싸워 풍부한 전투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입북 후에는 소련 군사고문단으로부터 훈련을 받았고 소련제 군수물자까지 지원받았습니다. 비록 중국에서 활약하였다지만 이제껏 중포병 하나 없는 일개 경보병 부대였던 그들에게 날개가 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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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mm 평사포와 곡사포, SU-76 자주포, 심지어 배속된 T-34 전차까지 6사단은 이전보다 강화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초기 6사단을 비롯해 서부전선에 배치된 북한군의 전투서열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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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판 「6.25전쟁사 2권 북한의 전면남침과 초기 방어전투」

* 북한군 6사단은 창설 초기부터 있던 14연대가 북한군 1사단으로 예속되고, 대신 1연대가 6사단에 예속되었습니다.

** 공간사에선 생략되었지만 6사단의 고급 장교들 역시 조선의용군, 즉 중국 출신입니다. (참모장 노철룡(盧喆龍), 13연대장 한일해(韓日海), 15연대장 조관, 문화부사단장 홍림(洪林))

*** 전투서열에 관해서는 공간사, 연구서적, 증언마다 차이가 심합니다. 이 점은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북한군 6사단은 다른 조선인 부대 출신 북한군과 마찬가지로 신생 북한군에서 정예 부대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그리고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된다는 말이 있듯 남침과 한국 공산화 야욕에 불타는 김일성은 자신의 병정들을 결코 집에만 고이 모셔둘 생각이 없었습니다. 속속 전쟁 준비가 되어가는 가운데 방호산과 6사단에게는 어쩌면 개전 초반의 향방을 좌우할 중요한 임무가 주어집니다.

 

 

 

 

2. 북한군 6사단의 한강 도하와 김포반도 전투

 

(1) 서부전선의 상황 악화

 

 한국전쟁이 일어난 6월 25일부터 서울이 함락된 6월 28일까지의 상황은 대한민국 국군에겐 그야말로 파국이었습니다. 특히 중서부전선의 국군 7사단은 북한군의 주공격방향으로 정해져 북한군 2개 사단과 1개 전차여단에 맞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동두천과 포천 양 방면에서의 역습이 실패하고 의정부 방면에선 증원 부대를 무질서하게 축차투입시킨 결과 국군 2, 5, 7사단과 수도경비사령부를 비롯해 국군 주력이 무너지는 대참사를 빚고 맙니다. 더욱이 설상가상으로 한강 인도교를 비롯해 한강을 잇는 교량들이 패닉 속에 폭파되면서 한강 이북의 국군은 고립 상태가 되고 맙니다. 이들 중 일부 부대는 운좋게 한강을 건넜으나 장비는 거의 버려야 했고, 그도 아니면 개별로 피신하거나 잡히거나,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편 서부전선 개성 문산 방면의 국군 1사단은 개성을 잃고 임진강 사수마저 실패하였으나 봉일천에서 북한군 1사단을 저지하는 데 성공합니다. 기세가 오른 국군 1사단은 28일을 기해 역습을 시도하나 이 무렵 서울에는 북한군이 진입하고 있었습니다. 총참모장 채병덕의 현지 사수 명령을 따른 결과 그들 역시 한강 이북에 고립되고 만 것입니다. 1사단장 백선엽 대령은 사단을 행주와 이산포로 이동한 뒤 도하하도록 하였으나 중장비 망실과 다수의 병력이 흩어지는 것만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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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함락되자 서부전선의 국군은 시흥지구전투사령부(이하 시흥사)로 재규합됩니다. 이때 시흥지구전투사령관으로서 한강 방어선 전투를 지휘한 김홍일 소장은 부대 재편과 지연전으로 대한민국을 구원했다는 찬사를 받습니다.

 

 

 북한군은 초기 전투에서 분명한 승자였습니다. 국군이 보유한 8개 사단 중 6개 사단에 큰 타격을 입히고 수도 서울을 함락시켰습니다. 시흥사에서 혼성 3개 사단을 재편성하고 한강을 연해 적을 저지하려고 하였으나 이들에겐 병력도 중화기도 모두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반면 북한군은 여전히 T-34 전차를 앞세워 공세를 지속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멸망의 기로에 서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북한군은 승전의 기회를 상실했습니다. 국군이 미숙했듯 북한군 역시 미숙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국군을 격파했음에도 정작 공세 기세를 유지하지 못함으로써 섬멸에 실패하고 밀어내는 데 그쳤고, 서울 점령 과정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사흘을 낭비하는 실책을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 후퇴한 국군은 시흥사에서 재편될 시간을, 미 육군은 한반도로 파병될 시간을 얻게 되었습니다.

 

 물론 북한군의 남침 작전 계획을 작성한 소련 군사고문단은 독소전쟁의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인만큼 나름의 복안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포위섬멸을 위한 우회기동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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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초기전투에 관한 작전도입니다. 보기 어려울 수도 있겠으나 화살표만 봐도 이해하기 편하실 겁니다.

 

 

 중동부전선의 북한군 2군단은 춘천 등지의 국군 6사단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개전 2일차부터 북한군 2사단과 603모터사이클연대를 기동시켜 한강 이남과 수원 사이를 차단하기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이 작전이 성공하면 국군은 서울을 잃든 지키든 상관없이 포위섬멸의 올가미에 걸릴 운명이었겠으나… 중동부전선의 국군 6사단이 북한군 2군단에게 큰 피해를 주고 3일간 방어하면서 북한군의 의도를 봉쇄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결정적인 국면이 진행되는 와중에 방호산의 북한군 6사단은 1군단 소속으로 서부전선에서 국군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과거의 공간사는 6사단이 6월 25일 개성을 기습 점령한 뒤 1사단을 따라 임진강을 넘어 문산-봉일천의 국군 1사단을 공격하고, 일부가 국군 12연대 2대대를 쫓아 김포반도에 상륙하였다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갈 거리가 하나 있는데 바로 개성 점령 과정에서 방호산이 대병력이 탄 열차를 개성역으로 돌입시켰다는 주장에 관하여 입니다. 미국의 공간사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에 소개된 이 일화는 당시 국군 12연대의 미 군사고문관이던 조셉 R. 다리고 대위가 개성역에 있던 북한군을 목격한 것을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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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구 개성역

 

 두 사람은 함께 찝차를 타고 개성 시내로 남향하였는데 이른 새벽 개성 시내에는 우군부대라고는 보이질 않고 적의 공격만이 임박해지고 있었다. 그들이 개성시 복판의 로타리에 이르렀을때 적의 사격을 받았으며 개성역에서는 약 15개의 차량으로부터 괴뢰군이 하차하고 일부는 이미 시내에 들어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약 2~3개 대대 병력으로 판단되었으며 1개 연대였을지도 모른다. 송악산의 정면공격을 지원하기 위하여 지난밤에 이곳에 수송된 것 같아 보였다.

- 「유엔군 전사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 (번역본) / 원제 「South to the Nakdong, North to the Yalu」

 * 원문과 번역본의 내용이 약간 차이가 있으나 핵심 내용은 일치하여 소개합니다.

** 다리고 대위는 개성역에서 북한군을 본 직후 임진강을 건너 1사단 본대와 합류, 서울에서 급히 원대 복귀한 1사단장 백선엽 대령에게 자신이 목격한 것을 전합니다.

 

 

 경의선 편승공격설이라 불리는 이 작전은 국군 12연대가 개성 북쪽 송악산의 고지에서 북한군 6사단 1개 연대와 교전하는 동안 북한군 6사단 15연대가 개성 서북쪽에 분단 후 단선된 경의선 철도를 한밤중에 복구한 뒤 열차에 탑승해 곧장 개성역으로 돌입한 것이라 알려졌습니다. 당시 개성시에는 국군 부대가 거의 없고 철도경찰대만이 있었으므로 개성은 25일 오전에 점령되고 말았습니다. 이날 오전 10시에 국군 12연대 3대대가 개성 남대문에 돌입하기도 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후퇴하면서 고려의 도읍은 우리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정규전과는 거리가 먼 팔로군 스타일의 이 기상천외한 작전은 페렌바크 저  「이런 전쟁」등 국내외 서적에서 심심치않게 인용되었습니다. 또한 국내의 인터넷에서도 방호산을 소개할 때도 언급되며 방호산의 군사적 재능이 우수했다는 사례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 작전은 실재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공간사와 연구에 따르면 토산역 근방 고지에 있던 국군 12연대 1개 소대가 북한군 열차를 목격하지 못했고, 북한군 6사단 장병들의 증언에도 이 작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으며, 이날 시계가 불량한 관계로 다리고 대위와 800m 떨어진 개성역 상황을 구체적으로 목격하기 어려웠다는 점, 그리고 그밖의 여러 목격 등을 취합했을 때 경의선 편승공격은 허구라고 결론내리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날 1시간 반 동안 개성역에서 개성철도경찰대가 필사적으로 항전한 사실이 기록과 증언을 통해 규명되면서 북한군이 송악산에서부터 남하해 개성으로 진격했다는 것이 개성 점령의 실체로 유력해진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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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경찰대는 1949년 창설되어 전후방에서 벌어지는 사보타주에 맞서 싸웠습니다. 또한 개성전투경찰대는 개전 당일 전차를 앞세워 공격한 북한군에 맞서 대부분이 전사할 때까지 항전하였습니다. 이에 개성 점령 직후 북한군 연대장은 자기네들이 개성시에 들어와 개죽음을 당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전해집니다.

 

 

 여기까지는 방호산과 북한군 6사단이 기대와 달리 그다지 시시한 움직임을 보였다 생각될 것입니다. 정예 부대라 소개했지만 그들은 한동안 초기전투에서 주목할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반면 같은 중국 출신의 북한군 4사단은 주공격방향에서 맹활약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북한군 6사단이 국군 1사단의 방어에 막혀 조기에 서울로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알려져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한러 수교,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의 연구자들은 여백처럼 남은 역사의 의문을 규명코자 공산권 자료에 접근하였습니다. 구 소련 자료의 해금은 반세기 넘게 배회하던 북침설, 남침유도설을 완전히 논파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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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 군사고문단장 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라주바예프(Владимир Николаевич Разуваев)는 적백내전, 소련-핀란드 전쟁, 독소전쟁에 참전한 군인으로 북한의 군사력 건설과 관리, 군사 작전을 계획하고 지도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했습니다. 그가 남긴 보고서는 후대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 한국전쟁에 관한 인식을 바꿀 책이 하나 발간됩니다. 「소련 군사고문단장 라주바예프의 6.25전쟁 보고서」(이하 라주바예프의 보고서)라 이름 지은 이 책은 소련 군사고문단장으로서 한국전쟁에 깊숙이 개입한 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라주바예프가 작성한 보고서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국내에선 북한군 내부 사정에 관해 들여다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였습니다. 「라주바예프의 보고서」는 전쟁 초기전투에 대해서도 작전 계획, 경과, 전훈 분석을 할애하고 있어 패배와 후퇴로 인한 혼란으로 아 기록이 부실했던 초기전투에 대해 실측을 바로잡고 보충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연구자들에게 놀라움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동안 추측으로만 있던 중동부전선 북한군의 우회기동이 드디어 그 실체가 밝혀짐으로써 국군 6사단의 지연전을 더욱 드높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도 북한군이 포위섬멸을 노린 우회기동을 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서부전선에서 있었던 일련의 전투들, 나아가 서울 방어전과 북한군의 전략에 대한 기존 인식이 뿌리째 흔들리게 됩니다.

 

 반세기 동안 진상은커녕 의도조차 인식되지 못했던 북한군의 공격 방향은 어디였을까요.  「라주바예프의 보고서」는 그곳을 김포-영등포로 지적합니다. 앞서 적었지만, 이 방면에서는 북한군 6사단이 후퇴하는 국군 12연대 2대대 일부를 쫓아 1개 연대 규모의 병력만 상륙하였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이 방면에 투입된 북한군은 옹진반도를 점령하느라 차출된 1연대를 제외한 6사단 전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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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나니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빠르게 2편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9개의 댓글

28 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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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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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일 전

6.25에 대한 소련측 자료들은 소련이 망했으니까 볼 수 있는거겠지???

만약 안망했으면 지금처럼 해금했을까 아니면, 자유진영쪽에서 스파이로 빼돌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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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나무

중국쪽도 공개하는데 소련도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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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일 전
@추적나무

실제로 1992년 러시아 연구원이자 한국전쟁시 참전한 소련군 장교인 코로트코프 박사는 한국 기자에게 남침작전지도 줬다가 FSB에게 좀 데였던 적이 있고, 한국 안기부 직원이 북한 정보 캐다가 잡혀서 추방된 적도 있음. 물론 이것도 한러수교하고 소련 무너져서 가능한 거지 아니었으면 어떤지 상상은 잘 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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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일 전
@핑그르르

푸틴형님의 kgv가 찾아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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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따콩

K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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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일 전

아주 예전에 사학과 교수님으로 부터 러시아 문서보관소가 공개되어 러일전쟁, 한국전쟁 관련 자료가 넘치게 되었음에도 정작 역사+러시아어를 함께 전공한 사람이 부족해서 번역이 안되 관련 연구 진행이 너무 더디다는 이야길 들었던 적이 있음. 나름 유망한 연구 분야가 아닌가 하네요. 재밌게 잘 읽었음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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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일 전
@오향왕족발

사실 러시아 문서보관소는 러시아인만 접근 가능하다는 요상한 제한이 있음. 그나마 국가 이데올로기에 그다지 연관이 없는 한국전쟁이야 러시아 학자들의 도움으로 여러 자료들이 풀려나오고 있지만 독소전쟁은 독일의 자료까지 싹 챙겨갔는 데도 지금껏 필요할 때만 슬쩍 풀어서 연구자들의 심금을 울린다는 얘기를 얼핏 본 적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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