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황제와 권신의 대결, 조모 vs 사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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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모, 삼국지 시리즈 -

 

조모(曹髦) 자 언사(彦士)는 조방의 뒤를 이어 즉위한 위나라의 4대 황제이다.

 

조방이 폐위된 이후, 조예의 조카인 조모와 조조(曹操, 맹덕)의 아들인 조거(曹據) 중 사마사는 조거를 황제에 올리려 했는데, 조예의 황후였던 곽태후(明元皇后 郭氏, 명원황후 곽씨)가 항렬의 문제를 지적하여 조모를 강력하게 추천하여 사마사도 결국 조모를 황위에 올릴 수 밖에 없었다.

 

아래는 정사 삼국지 고귀향공기의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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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는 어릴때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영특하여 조조(맹덕)의 화신이라 할 정도였다.

 

조모가 황제가 된 이후, 화려한 예식을 줄이고 사치품을 금지하였다. 251년 10월, 조모는 지방관을 파견하여 지방의 백성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주도록 하고, 무고한 죄인이 있는지 철저히 살펴 보고하게 시켰다.

 

이후, 사마사가 사망한 이후 동생 사마소(司馬昭)에게 진나라 공작을 수여하고, 구석(九錫)을 수여하여 그 공을 치하했으나 사마소는 둘 모두 받지 않았다.

 

256년, 청룡이 나타났다고 한다. 256년 여름, 사마소에게 곤룡포(황제의 옷)과 면류관을 하사하였다. 이후 여러 유생들과 공자와 주역(周易)과 64괘에 대해 논하였다.

 

256년 8월, 사마소에게 대도독 직위를 하사하였고, 입궐할 때 황제에게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특권을 하사하였다. 이후, 사마소가 제갈탄의 난을 평정하고 돌아올 때 다시 한 번 진공(晉公)으로 봉했으며, 식읍으로 여덟 군(대한민국 기준으론 8개의 도 크기에 해당)을 주고 구석(九錫)을 다시금 수여하였다. 사마소는 아홉번 거절하였고 결국 받지 않았다.

 

이후 258년, 전국의 노인을 봉양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과거 주나라의 예를 따라 전직 관료를 모시는 삼로(三老)ㆍ오경(五更)을 두었다. 조모는 직접 관련 대신들을 인솔하여 이를 지시하였다.

 

이후 260년 4월, 다시 한 번 사마소를 치하하였다.

 

260년 5월, 조모는 크게 북을 치고 궁궐에서 군사를 일으켜 곽태후(조예의 황후)를 죽이려 하였고, 세상을 떠났다. 이후, 조모를 막으려다 조모를 살해한 성제(成濟)를 참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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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의 내용대로라면, 똑똑하고 영민한 황제가 갑자기 황태후를 죽이려 들다가 부하 장교에게 죽었으며, 조모를 죽인 그 부하 장교 또한 참살당했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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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는 다음과 같다.

 

위 4대 황제 조모는 사마소의 전횡을 최대한 막아보려 하였고, 본인의 권력을 최대한 올려 위 황실의 권위를 다시 한 번 살려보려 하였다. 그러나 매번 사마소에게 방해를 받고, 울분에 가득 차 직접 사마소를 토벌하려고 병력을 이끌고 나가다가 성제(成濟)에게 사망하였다.

 

반 사마씨 세력의 난 마지막 편, 폐제 조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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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소,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

 

사마사는 관구검의 난을 진압하던 도중 눈병이 악화되어 병사하였고, 사마사의 동생 사마소(司馬昭)가 군대를 이끌고 낙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 떄, 새로운 황제 조모의 명령이 내려온다.

 

"사마소는 군대를 낙양 밖에 두고, 혼자 입궐하라."

 

조모는 사마사가 가지고 있던 군권을 사마소의 손에 다시 넘겨주지 않고 회수하려는 생각이었던 것. 하지만 사마소는 이 명령을 받들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그대로 낙양에 들어온다. 조모는 어쩔 수 없이 대장군직을 사마소에게 그대로 인계하고, 군권을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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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박사 유준(庾峻)과 논쟁하며 그를 논변으로 제압하였다. 이 당시의 조모는 겨우 16세였다. 조모는 사마망(司馬望, 사마의의 동생 사마부의 아들), 왕침(王沈), 종회(鍾會) 등과 더불어 시 쓰는 것을 즐겼고 그들에게 이명을 지어주었다. 왕침에게는 문적선생(文籍先生) 이라는 칭호를 지어 주었는데, 아무리 황제라지만 어린 아이의 귀여운 장난과 중2병이 느껴지는 장면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259년 우물 안에 용이 나타났는데, 다른 사람들은 전부 좋은 길조라고 생각했으나 조모는 이를 두고 용이 승천하지 않고 우물 안에 있다는 것은 좋지 않은 징조라고 밝혔다. 이는 사마소를 은근히 비판하는 것이었으며 이 또한 당연히 사마소의 귀에 들어갔다.

 

--

 

조모가 사마소에게 진공, 구석 등 황제에 버금가는 작위를 준 것은 모두 사실이다.

 

이는 조모의 치밀한 전략으로, 사마소에게 과거 동탁(董卓)과 같은 찬탈자의 이미지를 씌우려 한 것이다. 사실상 아버지와 형이 한 것을 물려받은 것 뿐인 사마소가 저런 높은 작위를 그냥 받았더라면, 그것을 명분으로 반 동탁 연합처럼 반 사마소 연합이 생겨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조모의 생각은 분명 훌륭했으나 사마소는 그러한 생각을 간파하고 그러한 작위를 전부 수령하지 않았다. 아홉 번이나 거절하였다는 사서의 기록을 볼 때, 사서에 적히지 않은 두 사람의 갈등은 훨씬 더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미 모든 권한은 사마씨에게 넘어갔다. 사마사와 사마소가 원한 것은 이런 대세에 순응하고 자신들에게 조용히 정권을 넘겨 줄 꼭두각시 역할을 수행해야 할 인물이었고, 아마 그들은 조거(曹據)를 꼭두각시 역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황실의 가장 큰 어른인 곽태후에 의해 조모가 황제로 임명되었고, 조모는 그저 꼭두각시로 남기에는 너무나 영민한 인물이었고, 야심 또한 있었다.

 

이는 조모와 사마소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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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mo vs samaso.jpg

 

- 조모 vs 사마소 -

 

260년 5월, 조모는 왕경(王經), 왕침(王沈), 왕업(王業)을 은밀히 불러 말했다.

 

"사마소의 마음과 행동은 지나가던 행인들도 알고 있소. 나는 이대로 폐위당하고 싶지 않소. 오늘이야말로 경들과 함께 사마소를 치겠소."

 

조모의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조모와 함께 시와 의견을 나누던 인물들이었고, 사마씨 천하 아래에서 그나마 조모가 신뢰하던 인물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왕침과 왕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왕경이 조용히 간하였다.

 

"오늘은 어렵습니다. 다른 날을 기약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조모가 가슴에서 판령(板令 : 황제의 명령이 담긴 서류, 정황상 사마소를 토벌하려는 조서라 생각함)을 꺼내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일은 결정되었소! 정작 죽는다 하더라도 무엇이 한스럽겠소. 내가 이미 죽은 것도 아니잖소! 하물며 꼭 죽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조모는 행동을 개시했고, 곽태후에게 의견을 전하였다. 그러나 이미 모든 병사들은 사마씨의 휘하에 있었고 조모가 모을 수 있는 병력이라곤 관노와 환관들 수백명 뿐이었다.

 

왕침과 왕업은 사마소에게 알리러 가자고 의견을 모았고, 왕경도 데리고 가려 했으나 왕경은 조모와 함께 하기를 선택했다. 이들은 사마소에게 조모의 거병 사실을 알렸고, 사마소는 병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조모는 더 이상 병력을 모을 수 없자 이미 모인 수백의 병력을 이끌고 친히 출병했다. 가던 도중 사마의의 4남 사마주(司馬伷)와 그의 병사들을 마주쳤지만, 그들을 고함쳐 전부 물리쳤다. 이후 계속 병력을 이끌고 운룡문과 지거문을 나섰지만, 동화문 앞에서 사마소의 심복 가충(賈充)이 이끄는 정예병력과 마주친다.

 

황제의 병력들은 정예병력과 마주치자 당황했고, 이에 조모는 직접 칼을 빼 들고 가충과 맞섰다. 조모는 이때 "역적을 토벌하러 가는 길이다! 가로막는 자들은 삼족을 주살할 것이다!"고 선언했고, 가충의 병력들은 황제를 공격할 수 없어 도망치기 바빴다.

 

이에 가충의 부하인 태자사인(太子舎人) 성제(成濟)가 가충에게 말했다.

 

"상황이 시급합니다! 어떻게든 대책을 내려 주십시오!"

 

가충이 답했다.

 

"대장군께서 너희를 챙겨준 것은 바로 이런 때를 위해서였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니, 생각대로 하라."

 

가충의 이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병력들은 조모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모가 이들을 보고 고함을 지르자, 성제가 조모를 창으로 찔러 죽였다. 조모의 가마는 피바다가 되었다. 연의에 따르면, 이 때 조모를 따르던 초백(焦伯)이라는 하급 장교가 격분하여 성제에게 달려들었지만 성제의 형 성쉬(成倅)에게 초백 또한 죽임당하고 말았다.

 

황제가 죽을 때,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내렸으며, 사마소는 이 사실을 알고 "천하 사람들이 나를 뭐라 하겠는가!" 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때가 260년, 조모가 20살 때의 일이다.

 

--

 

대낮에 황제가 참살당한 사건은 중국 역사상 이 떄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 어떤 반역자조차 황제를 대낮에 죽이진 않았으며, 몰래 독살하거나 폐위시킨 후 자객을 보내어 죽이는 방법을 사용하였지, 대놓고 황제를 죽인 적은 없었다. 조모 또한 그러한 사실을 믿고 출병하였을 것이나, 결과는 본인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끝났다. 조모를 추모한 사람은 사마부(사마의의 동생), 진태(陳泰, 진군의 아들)이 전부였다고 전해진다.

 

사마소가 마지막에 한 말처럼, 이 일의 처리는 대단히 난감했다. 황제를 죽인 사마소는 역적이지만, 사마소 자신이 스스로 자살하는 선택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사마소는 조정 대신들을 부르지만, 진태(陳泰, 진군의 아들)는 오지 않았다. 진태의 가족들이 진태를 억지로 끌고 회의 자리에 참석시켰고, 사마소는 진태에게 이 사건 해결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진태는 아래와 같이 답했다.

 

"가충을 처형하셔야 합니다."

 

당연하지만 사마소의 심복 가충을 직접 처형하는 것은 사마소에게도 부담이었을 것이다. 사마소는 다시 물었다.

 

"진태, 다른 방법은 없겠소?"

 

"그 이상이라면 있겠지만, 그 이하는 없습니다."

 

사마소는 더 이상 묻지 않았으며, 진태는 얼마 후 사망하였는데 그 사인은 홧병이라고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

 

결국 이 일의 처리는 아래와 같이 끝났다.

 

사마소와 사마소의 직속 부하인 가충은 처벌받지 않았다.

 

직접 황제를 죽인 성제(成濟)는 사형에 처하고, 그 삼족을 멸족했다. 당연하지만 성제는 이에 아주 크게 반발했고, 기와집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던지며 소리지르며 자신의 억울함을 알렸다고 한다. 이후 그는 병사들이 쏜 화살에 맞아 죽는다.

 

이후 성제의 형인 성쉬(成倅) 또한 가혹한 고문을 받고 참수형으로 사망했다.

 

조모를 따르던 충신 왕경(王經) 또한 조모를 부추긴 죄로 처형당했다.

 

연의에 따르면, 왕경의 이야기는 아래와 같이 전해진다.

 

"

 

왕경은 평소 어머니에게 깍듯했는데, 강하군 태수 시절 조정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가 어머니에게 회초리 50대를 맞았다. 이후, 왕경의 어머니는 왕경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농민의 아들로써 이미 높은 자리에 올랐으니,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왕경은 어머니의 말과 다르게 계속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

 

이후, 왕경은 조모를 따르다 일족이 멸족당하게 되었는데, 사형장에 끌려온 어머니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지난 날 어머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가 오늘과 같은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죽이게 되었습니다!!"

 

왕경의 어머니는 크게 웃으며 답했다.

 

"죽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하지만 역적을 막으려다 죽었으니 가치 있는 죽음이다!"

 

"

 

조모의 장례는 초라하게 진행되었으나, 사람들이 조모의 유해가 담긴 수레를 보고 "이는 이전에 살해당하신 황제의 유해다" 하였으며, 통곡하고 슬퍼하였다고 전해진다.

 

조모의 친위 쿠데타를 마지막으로 이후 사마씨를 막을 세력은 위에서 소멸한다.

 

그러나 조모의 친위 쿠데타는 사마소의 권위를 땅에 떨어트렸고, 그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사마소의 모습이 당시 천하에 어떻게 비쳐졌을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그 여파로, 이후 서진이 멸망할 때까지 조모의 일은 사마씨 황조를 괴롭히게 된다.

 

사마소는 이후 바닥으로 떨어진 자신의 권위를 되살리기 위해 촉 정벌을 준비하게 된다.

 

..

 

반 사마씨 세력 편 끝!

 

오류가 있으면 언제든지 지적해 주십쇼!

20개의 댓글

21 일 전

256년 8월에는 진공 작위를 9번 제의했고 사마소가 그걸 받은게 아니라 끝까지 거부했음. 받은건 260년이 된 후인데 잘못 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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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

여름 5월, 대장군 사마문왕을 상국으로 임명하고, 진공(晉公)으로 봉했으며, 식읍 여덟 군을 주고 구석(九錫)의 예를 더했는데, 사마문왕은 아홉 차례에 걸쳐 사양하고서야 허락하였다.

 

라고 적혀있어 오해했네. 진서 보니 안 받은게 맞다. 수정함!

0
21 일 전

가충을 사형기키라는 진태의 말을 무시한 사마소는 훗날 중국이 여러개로 쪼개지는걸 예상하지 못했다 ㅋㅋ

0
@북두신켄

저런 폭력적인 선양 때문에 이후 송태조 조광윤까지 피의 선양이 이어지지.. 다 사마소 때문이야

0
21 일 전

이래서 사마씨 가문이 천벌을 받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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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않은남자

이후 가충의 딸 때문에 서진이 반토막나는걸 보면 차라리 저 때 가충을 죽였어야

0
20 일 전

과연 사마의는 무슨생각이였을까? 사마씨가 조위의 최고명문으로 남았길 원했을까 아니면 이루어진 것 처럼 사마진을 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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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사슴

이미 고평릉 사변을 일으킨 점에서 새 나라를 건국할 생각이 있었던 것

0
20 일 전

이렇게까지 근본없이 만들어진 나라도 드물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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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케이

사마씨 일대기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음? ㅋㅋ..

0
19 일 전
@김케이

뭐 조씨가 한 짓 사마씨가 그대로 보고 배운거지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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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일 전

저번처럼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한테 뚝배기 깨진 썰들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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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깟이

ㅇㅇ? 몽골의 고려 침략이나 왜구의 준동같은거?

0
19 일 전
@급공무원준비생

국뽕보다 얻어맞는게 재미있더라

0
18 일 전

늘 잘 읽고 있엉

근데 잘 이해가 안가는게

(글문제가 아니고 내가 지식이 없음)

이미 위나라가 있는데 진나라 공작을

수여한다는게 무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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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뉴

잘 봐줘서 고마움 ㅎㅎ

 

춘추전국시대라고 알지? 주나라 왕 아래에 오나라 초나라 등등 다양한 제후국들이 싸워서 결국 진나라가 통일한 시대. 흔히 하는 공후백자남이 이 제후들의 등급을 나눈거야.

 

가장 강한 나라들의 주인한텐 공작을 수여하고 그 다음으로 강한 나라들에겐 후작, 이런 식이지. 이 시기에 우리가 잘 아는 고조선도 왕국이 아닌 후국을 자칭했어.

 

그러다 전국시대가 되면 주나라가 더 약해져서 다른 모든 나라들도 왕을 자칭하게 돼. 명목상 공, 후였던 사람들도 전부 왕으로 칭호가 올라가.

 

그러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나서 군현제란 행정제도를 설치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아는 군이란 행정구역이 처음 나오고, 진나라의 지도자도 왕에서 황제로 한 단계 올라가지. 보통 중국 황제라고 하지 중국 왕이라곤 안 하지? 잘 아는 진시황이 자기들은 다른 왕들을 다 제압했으니 난 왕보다 높은 황제다! 고 선언한 거.

 

진나라 이후 한나라가 들어서고 나서 군국제란 행정제도가 생기는데 황제가 직접 다스리는 군을 두고, 멀리 있어서 직접 통치하기 힘든 지방은 황제보다 아래인 왕을 임명해서 간접적으로 통치하게 한 거지.

 

고려, 조선 등은 전부 왕 칭호지? 우리나라에서 왕이 바뀔 때 명목상으론 중국 황제의 허가를 받아야만 바꿀 수 있었어. 실제론 우리나라 맘대로 세자 임명하고 그랬고 중국도 보통 간섭 안 하긴 했고.

 

여기까지 중국의 서열은 황제 - 왕 - 공 - 후 - .. 식으로 내려가는 걸 이해했으면 아래 댓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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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뉴

독자적인 세력들이 각자의 세력을 지배한 삼국시대도 크게 보면 "한나라가 내려준 관직" 의 틀 아래에서 싸운거야. 기주 자사(현대의 도지사) 원소, 연주자사 조조, 파로장군 손견 등등..

 

그러다 점차 조조에 의해 천하가 잠식되고 조조의 관직은 점점 올라가다 못해 승상까지 올라가. 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국방장관을 겸직해서 군대를 이끌 통솔권과 다른 인사들을 임명할 수 있는 인사권까지 갖게 되지.

 

조조가 잠시 관우를 휘하에 둔 적이 있는데 이 때 조조가 관우에게 내린 관직이 한수정후(漢壽亭侯)라는 관직인데 지금으로 치면 읍이나 동 하나정도를 관우에게 하사한 셈. 낮지만 후작에 속하는 아주 높은 자리를 준 거야. 보통 이런 자리는 황제가 직접 임명해야 하는데 조조가 사실상 임명시켰단 점에서 조조가 엄청난 힘을 가진 신하란 점을 알 수 있지.

 

점차 삼국이 정립되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조조, 유비, 손권은 황제를 자칭하진 않고 각자 위나라 왕, 한중왕, 오왕을 자칭하지. 아직까진 한나라 황제(헌제)가 있는데 그 황제의 권위를 뛰어넘진 않겠단 이야기야.

 

그러다 조조의 아들 조비가 위나라 왕이 되면서 헌제를 폐위하고 직접 위나라 황제가 돼. 그 때부터 유비도 황제를 자칭하고, 좀 지나면 손권도 오나라 황제를 자칭하게 돼.

 

사마소한테 진나라 공작(진공)을 수여하겠다는 의미는 관직을 가진 사마소에게 실질적인 영토를 수여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돼. 비교하면 대통령이 강원도 도지사한테 강원도를 독립국으로 주고 영구적인 권리 자체를 수여하는 상황. 대신 다스리는 도지사하고 직접 영토를 가진것과는 천지차이지?

 

아마 대한민국에서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미칠듯한 반발이 일어나겠지? 조모가 노린 건 그런 상황이야. 사마소는 이걸 눈치채고 거절한 것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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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일 전
@급공무원준비생

아 이해했다 ㄱㅅㄱㅅ

생각해보니 조조도 한나라에서

위공 직위를 받았(가져갔)구나

0
15 일 전

어렸을 땐 몰랐던 위촉오 후반기 이야기도 나이 들고보니 재밌음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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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푸로스트

성숙해지셨다는 증거입니다 재밌게 봐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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