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그림 보고 떠오른 잡념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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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반니 도미니코 티에폴로, 트로이로 향하는 목마 행렬. 이것이 무시무시한 계략의 산물임을 상상이나 했을까>


트로이 전쟁은 지중해 양 진영 간에 있었던 충돌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통해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전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해져서, 내부의 우환을 "트로이의 목마" 라 할 만큼 우리에게 익숙하다. 뭐, 목마 자체는 「일리아스」에 나오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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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울프, 아테나와 디오메데스. 결전을 앞두고 여신이 전술을 교수하는 것 같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의 가장 치열했던 마지막 해를 묘사한 서사시환의 한 작품이다. 이에 따르면, 트로이 전쟁에서 아카이아 연합군은 미케네, 스파르타, 아르골리스 등의 미케네 3국은 물론, 이타케, 테베, 필로스, 쉬메, 프티아, 테살리아 등등 그리스 전역을 아우르는 다국적군이었고, 그에 맞서는 트로이 역시 동맹시들을 죄다 끌어모아 대략 15개국이 합류했다. 당시 아카이아 연합군은 1,100 여 척의 함선에 120명씩 도합 12만 명이 넘는 대군을 파견했는데, 트로이군의 규모를 언급하진 않지만 장수 28명이 적과 비슷한 규모를 운용했다면 약 8만 명에서 10만 명 가량 동원했을 것이다. 영웅들도 숱하게 많아서 아가멤논 & 메넬라오스 형제, 디오메데스, 필록테테스, 아이아스, 오디세우스, 파트로클로스, 사르페돈, 아이네이아스 등 쟁쟁한 용사들의 향연이 이어졌다. 이들이 10년 간이나 격렬히 대항하며 일진일퇴를 거듭했고, 신들 조차 양측으로 나뉘어 서로에게 권능을 휘두른 전쟁이 바로 트로이 전쟁이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지난했던 전쟁의 참상을 유려한 문장으로 장엄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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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로 파올리니, 리코메데스의 딸들 사이의 아킬레우스. 징집을 피하고자 특유의 미모를 활용하여 여장까지 한 아킬레우스였지만, 오디세우스의 꾀에 넘어가고 말았다>

 

아킬레우스는 「일리아스」의 주인공으로, 반신이자 프티아의 왕자다. 투창과 검술에 능해 적의 목을 벼 베듯이 손쉽게 취했고, 강줄기를 추월할만큼 준족으로 이름나 있었다. 신들의 총애를 받아 인간의 것을 초월한 무구로 무장했으며, 불사의 말들이 모는 전차까지 타고서 전장을 마음껏 누볐다. 게다가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아킬레우스가 반드시 필요하며, 나서기만 하면 천하를 뒤흔드는 영광이 기다린다는, 당첨 확률 100%의 복권 같은 신탁까지 있었다. 체력, 민첩, 행운 스탯 만렙인데 장비까지 종결급이었다니, 이쯤되면 트로이 온라인 사기캐 중의 사기캐라 할 수 있지. 때문에 아킬레우스는 수많은 영웅들을 제치고 당대 최강의 용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주인공이라는 아킬레우스를 「일리아스」가 어떻게 묘사하는지 보자 : 아킬레우스는 전리품으로 트로이 여인 히포다메이아를 취하여 아내처럼 아껴주었지만 아카이아 연합군의 맹주 아가멤논이 멋대로 그녀를 빼앗았다. 격분한 아킬레우스는 앞으로 모든 전투에 일절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바람에 아카이아 연합군은 헥토르의 반격을 받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익살스러울 정도로 문제가 많아 대표적인 것만 몇 개 짚어본다면, 우선 트로이 전쟁은 틴다레오스의 계약에 따라 헬레네에게 구혼한 사나이들의 전쟁이다. 즉, 이 전쟁은 여자 때문에 발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왕이라는 작자가, 남의 여자를 건드려 이 사단이 나게 만들었으니 참으로 가소롭다. 뿐만 아니라 아킬레우스가 데려왔다는 히포다메이아 역시 본래는 유부녀였는데, 그녀의 남편은 전쟁 도중 아킬레우스가 손수 멱을 따버렸다. 그러더니 마치 자기 부인인 양 사랑했다니, 정신이 아찔해진다. 게다가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함께 피땀 흘리며 싸워 온 동료들이 창자를 쏟으며 죽어갈 동안 놈팡이짓을 하는 아킬레우스의 꼴은 어떤가. 아킬레우스는 자신을 찾아온 장군들의 설득과 간곡한 부탁에 수긍은 하면서도 고집을 부리며 굴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내가 각광 받아야 하니, 나 없을 때는 트로이군이 이기게 해주세요." 하고 올림포스의 개입을 구하기까지 하는데,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과연 영웅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렇듯 호메로스는 그리스 영웅들의 대표 격이자 극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두 인물을 옹졸하게 그림으로써, 아카이아 연합군이 어떤 군상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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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프리드리히 데클러, 헥토르 일가. 모두를 절망에 빠뜨린 전쟁 속에서도, 헥토르는 희망을 낳았고 그 자신도 위대한 희망이 되어주었다>

 

반면, 트로이의 필두 영웅 헥토르에 대한 「일리아스」의 묘사는 대단히 경건하다 : 그는 열 달도 버텨내기 어려운 수성전을 홀로 10년 동안이나 훌륭히 치렀고, 역습까지 가해 아카이아 연합군의 함선을 불사른 전공을 세운 명장이다. 트로이 장군 중에는 헥토르, 사르페돈, 아이네이아스가 그나마 걸물이었는데, 아이네이아스는 애매해서 괜히 나섰다가 두 번이나 죽을 뻔 했고, 사르페돈은 병사들을 호령하며 사기를 드높이지만 얼마 못 가 파트로클로스에게 목이 달아난다. 이는 곧 헥토르 혼자서 그리스 전체에 맞섰다는 뜻이다.

 

헥토르는 가정에 충실하여 전쟁통에도 아내와 부모에게 극진했고, 파리스가 보쌈해 온 헬레네를 유일하게 친절히 대한 인격자였으며, 동시에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을 걱정해 헬레네를 돌려주고 사죄하자는 상식적인 모습도 보였다. 또한 동생을 끔찍히 아끼지만, 휴전을 논하는 자리에서 "헬레네의 진짜 신랑감이 누구인지 결투로 가리자." 라는 메넬라오스의 제안에 응하여 파리스를 내보내는 등, 균형감 있는 시각도 가졌다. 왕자로서 이러한 자질은 성군이 될 단초였으니 아테나, 제우스 같은 신들의 농간이 아니었다면 헥토르 덕분에 트로이가 승리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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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 파울 루벤스, 헥토르를 죽이는 아킬레우스. 단신으로 전황을 뒤집는 용사는 당대 지중해를 통틀어 오직 둘 뿐이었으니, 그들이 숙적으로 묶여 서로에게 창칼을 들이대야만 했던 운명이 야속하다>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대비는 「일리아스」의 최후반부에서 극에 달한다. 두 인물의 싸움은 필연적이었지만 각자 대결에 임하는 동기는 전혀 달랐다 :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영전에 바칠 제물로 트로이 병사 12명을 사로잡은 다음, 나머지는 닥치는대로 도륙하며 거침 없이 전진했다. 헥토르는 그의 참모 폴리다마스가 후퇴를 건의했을 때 듣지 않았다가, 군대를 모조리 아킬레우스 밥으로 바친 것에 큰 책임감을 느끼고 후방에 남기로 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을 살려줄 것을 애원하는 병사들에게 "너희가 파트로클로스를 죽일 때도 자비를 보였느냐?"며 일갈했지만, 헥토르는 패주하는 트로이군을 수습하다 성문 앞에 서서 "나의 경솔함으로 전우들이 무수히 죽었는데, 무슨 면목으로 트로이아 형제 자매와 만난단 말인가." 하고 자책한다. 즉, 아킬레우스는 불타는 증오로, 헥토르는 의무감으로 싸움에 뛰어든 것이다.

 

「일리아스」 제 22장에서 마침내 두 영웅이 맞붙게 된다. 헥토르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만류하는 부왕 프리아모스도 뒤로 한 채, 홀로 아킬레우스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대결에 앞서 "승자는 패자의 무구만 가져가고, 시신은 온전히 돌려 주도록 하자."는 제안을 내걸었다. 이는 도의적 차원에서의 존중이고, 명예를 아는 사나이라면 응당 들어주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이리와 양은 친할 수 없고, 사자와 인간은 맹약하지 않는다. 네 죽음으로 나를 슬프게 했던 모든 원한을 갚고야 말겠다 !" 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내 아킬레우스가 창을 던지면서 불멸의 전투가 시작 되었고, 창칼이 오고간 끝에 헥토르가 치명상을 허용하면서 쓰러졌다. 트로이의 기둥은 그렇게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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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폰 마치, 아킬레우스의 승리. 온 트로이의 사람들이 성벽에 붙어서 마차만 바라보고 있다>

 

아킬레우스는 비록 전투에서 이겼지만, 가시지 않은 분을 풀기 위해 헥토르의 시체를 능욕하기로 한다. 그는 헥토르의 발 뒤꿈치를 끊어 갈고리를 건 다음, 마차에 매단 채 트로이 성과 파트로클로스의 무덤을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돌았다. 아카이아 병사들은 쓰러진 헥토르를 창으로 찌르며 조롱했다. 이러한 행태에 헥토르의 가족들은 오열하며 실신했고, 트로이 성내에 침통한 비탄만이 가득했다.

 

과연 아킬레우스는 어디까지 추해질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사적인 이유로 전쟁을 불참하더니, 불현듯 복귀해서 전투에 참가하는 등 종잡을 수 없이 굴었다. 걸핏 하면 신들께 탄원하고, 수시로 나타나 마음을 되돌리려는 어머니께 되려 무기나 내놓아라느니 해댔으며, 자기 신도가 다 죽게 생긴 아폴론이 술수를 쓰자 "명궁의 신이여, 당신이 나를 속이고 내 승리를 빼앗았군요 ! 힘만 있다면 복수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라는 불경까지 저지른다. 그리고 당대는 물론 오늘날에도 금기 중의 금기인 시체 훼손까지 범했다. 이쯤 되면 정의롭고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 그리스 시민조차 주인공이 누군지 헷갈릴 지경이다.

 

「일리아스」는 호메로스가 그리스 사람들 보라고 쓴 그리스 서사시인데, 어째서 그리스와 일절 연고도 없는 헥토르는 이토록 고결한 인물로 표현하고, 으뜸 가는 영웅인 아킬레우스는 보잘 것 없게 그렸을까? 알다시피, 호메로스가 활동하기 직전의 고대 그리스는 "암흑기"로, 사료 기록은 고사하고 문자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리스 영웅들에 대한 기억을 전해야 할 시기에 외국인인 헥토르를 이렇게나 공을 들여 찬양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 호메로스는 어째서 아킬레우스를 양아치로 그리고, 헥토르를 성인으로 묘사해 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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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앙투안 쿠아펠, 아킬레우스의 분노. 영웅은 분노를 휘두르고, 하신(河神)들은 당해내지 못해 물러난다>


나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로부터 답을 찾으려 한다. 「일리아스」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 이는 그의 분노야말로 극을 이끌어가는 핵심 소재라는 뜻이다. 아킬레우스는 작 중 두 번에 걸쳐 분노를 표출하는데, 모두 아킬레우스의 성장을 돕는 계기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첫번째 분노는 히포다메이아를 잃고 나서 아가멤논을 향해 쏟아 부었던 분노이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정당한(?) 전리품을 빼앗기자, 전사의 지상과제인 싸움을 방기한 채 소인배처럼 굴었다. 이 당시까지의 아킬레우스는 매우 충동적이고 치기 어린 인물로, 아직 성품이 온전하지 못 한 상태이다. 히포다메이아는 전쟁의 향방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런 아킬레우스 개인의 욕망을 상징하는 장치이다. 속 좁은 아킬레우스로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했겠지. 그러나 영웅의 이기적인 처사에 아카이아 연합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결국 아킬레우스 자신도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전우를 잃게 되었다.

 

그 때, 아킬레우스의 성찰과 두번째 분노가 함께  찾아온다. 자신의 옹졸한 마음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통감한 아킬레우스는 마침내 자신의 의무를 다 하기 위해, 사적인 갈등을 깨끗이 접고 전장에 우뚝 선다. 그는 파트로클로스가 죽는 대신 차라리 히포다메이아가 죽었더라면 좋았겠다며 부르짖을 정도로, 제 성미와 욕망을 극복하고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진력하게 되었다. 아킬레우스는 시체로 강이 막힌다는 강의 신들의 항의까지 들을 만큼 거침 없었고, 헥토르를 처단함으로써 복수를 완수하게 된다. 이후 친구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전을 주최하며 한 층 성숙한 시민으로서의 면모까지 보여주었다.

 

이윽고 그 날 밤, 아킬레우스를 기다리는 것은 마지막 깨달음, 바로 프리아모스 왕과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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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발트 차트란, 헥토르의 시체를 간청하는 프리아모스. 이 노인은 자기 아들을 죽인 그 오른손에 입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프리아모스가 누구인가? 그는 트로이의 왕이자 헥토르의 아버지로, 나라와 도시는 짓밟히고 백성들은 유린 당했으며 눈앞에서 아들이 참살 당한 것도 모자라 명예롭지 못하게 질질 끌려다니는 신세를 맞았다. 한밤 중에 신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미르미돈 군영에 도착한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의 무릎을 부여잡고 이렇게 간청했다.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춘부장은 나처럼 슬픈 노령의 문턱에 서 있소. 그 분은 그대가 살아있음을 알면 뛸듯이 기뻐하며, 나날이 그대가 돌아오기만을 고대할 것이오. 허나 나는 불행하기 이를 데 없다오. 이 땅에서 제일 가는 아들을 여럿 두었소만,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소. 오늘 그대를 찾은 것은, 나의 맏아들, 사랑하는 내 아들, 헥토르가 받아 마땅한 값을 지불하고 그를 데려가기 위함이오."

 

헥토르로부터 무쇠 심장을 가졌다는 평을 들었을만큼 냉정했던 아킬레우스도, 이 말 한 마디는 폐부를 찌를 수 밖에 없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프리아모스의 손을 보니, 고향에 계신 아버지 생각이 난 것이다. 트로이의 자랑인 헥토르를 넘어서는 영광을 차지했으니, 이는 신탁이 약속한 그것이었다. 그러나 당초 아킬레우스에게 주어진 신탁의 전문은 "평온하게 살면 장수하지만, 전장에 나서면 천하를 뒤덮는 영광과 함께 단명한다"였다. 이제 신탁의 요건이 충족되었고, 자신은 곧 죽게 되리라. 그리되면 우리 아버지는, 프리아모스처럼 참담하게 우시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와 함께 통곡했다. 한참을 울고 나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프리아모스에게 넘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트로이 예법에 따라 장례 절차에 소요되는 12일 간 일절 트로이를 공격하는 일이 없게끔 약조한다. 그는 마침내 분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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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호메로스의 예찬. 월계관을 받는 인물은 물론 호메로스이고, 그 발치에 검을 지고 앉은 여인은 「일리아스」, 노를 지고 앉은 여인은 「오디세이아」를 상징한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 두번째 문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 "아카이아인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영혼들을 하데스에게 인도했고, 그들의 몸은 새와 개들의 먹이가 되도록 한 그 분노를 !" 분노를 노래하라는 주문 바로 다음에, 분노에 대한 적개심이 느껴지는 말을 덧붙인 까닭은 물론 분노에 대한 경계를 후세에 전하기 위함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용기를 인간의 덕목 중에서 최고로 쳤다. 수렵과 전쟁이 사회의 유지와 확장에 필수였던 그 시절에는, 용감한 인간(= 전사)을 이상적인 인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의 영웅들은 하나 같이 다혈질이었으니, 페르세우스와 헤라클레스가 그러했으며, 테세우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킬레우스가 마구 분노를 드러내는 것도 고대 그리스 영웅의 자질이 용기였던 탓이다.

 

하지만 아킬레우스, 당신의 분노가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었나? 그는 여자를 잃었을 때도 화를 냈고, 친구를 잃었을 때도 화를 냈지만, 둘 다 돌아오지 못 했다. 오히려 아킬레우스가 분노하면 적군이건 아군이건, 무수한 사람들의 목숨만 희생되었을 뿐이다. 호메로스는 그 영혼들의 생전 이름이나 직위, 고향, 가족관계를 기록하여 어떤 사람이 죽었는지 담담하게 읊는다. 마치 아킬레우스더러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이. 그렇다, 이는 용기에 대한 비판이자 분노는 해답이 될 수 없다는, 호메로스의 따끔한 일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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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조셉 솔로몬, 아이아스와 카산드라. 거한이었던 大 아이아스가 아닌, 투창의 명수 小 아이아스다. 아테나 신전에서 카산드라를 겁탈하고 있다>

 

호메로스의 활동 시기에 이르러 그와 같은 시각은 많은 이들이 공유했던 것 같다. 서사시환 전반에 걸쳐서 영웅들에 대한 냉소적인 관점이 많이 보이거든. 특히 영웅들의 퇴장 방식으로 미뤄보건대, 분노의 화신들인 고대 영웅들에게 징벌처럼 보잘 것 없는 죽음만 허용한 것으로 입장을 분명히 했다. 

 

목마 작전으로 트로이를 함락함으로써, 승리는 아카이아 연합군의 차지가 되었다. 이제 정복을 마쳤으니, 영광을 누리기만 하면 되겠지.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으니, 다국적군이라는 연합 본연의 한계로 영웅들 간의 관계가 삐걱댄다. 먼저 「일리오스 낙성」에서 大 아이아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大 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가 죽자, 신들이 벼려준 그의 무구를 자신이 갖고자 했다. 그런데 여기에 오디세우스가 끼어들어선, 트로이 함락의 일등공신인 자신이야말로 신물(神物)의 주인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둘 간에 입씨름이 벌어졌지만, 무용이 빼어날 뿐인 大 아이아스가 지략가인 오디세우스에게 언변으로 이길 리 없었다. 결국 大 아이아스는 수치심을 느껴 칼을 거꾸로 세우고 그 위에 몸을 던졌다.

 

「귀향(Nostoi)」 편에 따르면, 디오메데스와 네스토르는 연합군이 철수하기 전에 한 발 앞서 출발했다. 이들은 지리멸렬한 연합군에 질려 대열에서 먼저 이탈한 것이었다. 두 사람 모두 고국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네스토르는 100살이 넘은 노인이었고, 디오메데스는 추방 당해 시칠리아까지 망명해야 했다. 메넬라오스는 아가멤논과 철군하는 방법을 논하면서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다가 형보다 일찍 길을 잡았다. 고향이 전부 제각각이니 알아서들 가면 되겠다고 한 메넬라오스와 달리, 자신이 제왕이자 대표이므로 자신의 허락 없이 함부로 함대를 해산해선 안 된다는 아가멤논의 고집 때문이었다. 문제는 디오메데스의 탈출 직후 포세이돈이 바다를 들끓게 하면서 아카이아 연합군의 귀성길이 힘들어졌는데, 메넬라오스는 하필 이 때 출발하는 바람에 함대는 난파 당하고 본인도 이집트까지 흘러들어가게 됐다. 그는 타지에서 7년이나 머문 끝에 스파르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연합군의 수장 아가멤논은 대부분의 영웅 함대를 이끌고 본국으로 귀환했지만, 가는 길에 포세이돈의 폭풍을 만나 미케네 본대만 겨우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본인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배신을 당해야만 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남편이 원정 떠난 사이 아이기스토스라는 청년과 사통했는데, 전쟁이 끝나고 노털이 돌아오자 둘이 짜고서 아가멤논을 살해했다.

 

小 아이아스는 바로 그 폭풍우에 직격 당해 함선째로 가라앉고, 본인은 겨우 암초에 붙어 있었다. 당초 小 아이아스는 왕족이자 신관인 카산드라를 아테나 신전에서 범하려 했는데, 이러한 행태에 분노한 아테나가 저주를 내렸다. 그는 귀환하면서 "아킬레우스와 달리 나는 신의 도움 없이도 전쟁을 훌륭하게 수행한 진짜 영웅이다." 라고 망발을 부렸고, 배를 잃고 표류할 때도 "신조차 나를 어쩌지 못한다 !"라고 외치는 불경을 저질러 제우스로부터 벼락을 맞고 죽는다.

 

오디세우스의 경우는 「오디세이아」에서 10년에 걸친 방랑을 겪었다고 묘사된다. 온갖 이적과 신화 시대의 괴물들, 우연에 필연이 겹친 사건을 연달아 겪는 바람에 심하게 고생해야만 했다. 끝끝내 오디세우스는 이타케로 귀환할 수 있었지만, 10년 동안 전쟁하고 10년 동안 헤매느라 나라는 풍비박산 났고 집안 단속도 전혀 안 되어 아내까지 잃을 뻔 했다.  

 

이와 같이 서사시환의 여러 작품에서 그리스 영웅들이 명예롭지 못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표현한다. 즉, 이 당시 그리스 사회에는 전통적으로 기리던 영웅상에 대한 의구심이 식자들 사이에 만연했던 것이다. "용맹함"은 더 이상 인간의 표상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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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돌하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그려진 도자기. 용기의 시대에 살았던 두 영웅이 엇갈린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용기의 빈 자리에 다른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 했다 : 호메로스는 그것을 사랑으로 정했음이 틀림 없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모두 사랑의 상실에서부터 비롯한다. 사랑은 영웅을 주저앉히기도 하고, 일으켜 세우기도 하는 위대한 동인이란 사실을 「일리아스」에서 충분히 살펴 볼 수 있다. 아킬레우스의 각성은 곧 사랑에 대한 자기 반성이며, 사랑의 확장이기도 하다.

 

아킬레우스는 자기애에 사로잡혀 일리아스 최초의 분노를 터뜨린다. 비록 부당하게 빼앗기고 모욕까지 당하긴 했지만, 히포다메이아로 대표되는 아킬레우스의 욕망은 지극히 사적인 것인지라, 군인이 전장을 떠날 이유는 아니다. 즉, 히포다메이아를 사랑한 그의 마음은 이기심이 사랑으로 가장했을 뿐이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 파트로클로스를 잃은 후의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의 수행을 위해 사감을 극복해냈다. 그 자신도 알고 있었듯이, 헥토르를 처치하는 일은 곧 아킬레우스 본인의 명줄을 재촉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친우의 복수와 아카이아 연합군의 승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결의는 대단한 헌신이다. 아킬레우스는 크나큰 시련 끝에 이타심을 발현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를 만나고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막사를 찾아온 노인의 슬픔에서 제 아비의 슬픔을 떠올리는 것은, 신분과 사회의 범주를 초월해 작용하는 연민 없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이는 화살을 주고 받으며 싸운 적군들도 모두 사람이며, 자신을 한없이 슬프게 한 원수조차 품에 안길 가족이 있다는 보편적 진리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는 뜻이다. 아킬레우스가 프리아모스에게 헥토르의 시체를 내어주는 것은 곧 인류애의 체득이었으니, 진정 불세출의 영웅에게 어울리는 경지가 아닐 수 없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가르침도 8백년은 지나야 마태복음에서 언급되는 것을 보면, 호메로스는 대단히 앞서 간 선구자였다. 실제로 호메로스는 암흑기와 고전기 그리스의 간극을 잇는 대들보로서 이후 서양의 수많은 문장가, 예술가, 철학자 등에게 인용되며 길이 길이 위대한 사상가로 대접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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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 면적과 트로이 복원도의 크기 비교. 서울시립대는 대학원까지 포함해도 정원이 1만 2천 여 명에 불과하다>

 

터키 차나칼레에서 트로이로 추정되는 유적지가 발견되면서, 이전까지 신화에서나 존재한 가상의 사건이라고 여겨지던 트로이 전쟁에 대한 학자들의 입장도 바뀌었다. 뭐, 그리스제 화살촉이나 화재 흔적, 성벽 터 등이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싸움이 있긴 했던 모양. 하지만 「일리아스」의 표현을 문자 그대로 재현한 전쟁은 무리였다고 볼 수 있다. 트로이 유적지는 손바닥만 하거든 : 만프레드 코프만은 기존에 알려진 트로이 성지 외에도 서쪽의 도시 면적까지 포함하면 유적지가 약 8만 평(= 27 헥타르)에 달한다고 했는데, 이는 서울시립대 정도 되는 크기다.

 

호메로스의 묘사를 충실히 따른다면, 트로이 땅 한 평을 얻기 위해 아카이아 연합군 1 ~ 2명의 병사가 소모됐고, 그 땅을 취하고자 10년씩이나 원정했다는 뜻이 되는데, 이는 확실히 과장되었다. 그렇게 덧없는 전쟁을 고대 그리스 왕국들이 연합씩이나 해서 수행했을 리가 없잖아? 당대 그리스 세계는 그만한 병력을 동원할 인구도, 그걸 10년 동안 유지할 경제력도 없었다. 신들의 개입을 언급하면서 우주적 법칙에 입각한 전쟁인 것 마냥 그리는 「일리아스」를 곧이 곧대로 믿어서도 안 되겠지만, 호메로스 선생이 다소 지나치게 풍을 섞은 감도 있다는 말씀이다.

 

별 볼 일 없었던 전쟁은 대단히 힘겹고 장쾌하게 표현했으면서, 그 전쟁에서 승리한 아군은 졸렬하고, 패배한 적군은 명예롭게 썼다? 이는 명백히 호메로스가 의도한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패배하고 역사 속으로 묻혀버린 이들도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었으며, 명예와 긍지를 중시했던 문명인으로 기억하기를 당부하는 호메로스의 의도였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리스가 암흑기를 거치며 문화의 토대를 말살 당하는 슬픔을 목도한 호메로스는, 폭력의 되물림을 끊고 신화 시대의 영웅들에게 종언을 고하여 인류애를 새 시대의 씨앗으로 선택한 게 아닐까, 한다.

 

아킬레우스는 신화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혜택을 누린 영웅이다. 애초에 신탁은 단정적이고 피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는데, 아킬레우스에게는 선택지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가 안락한 삶과 군인의 삶 가운데 무엇을 택하느냐에 따라, 그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었다. 즉, 아킬레우스는 최초로 신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난 인간이자,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는 뜻이다. 호메로스가 신으로부터 졸업한 인류, 대오각성하여 스스로 나아가는 인류의 대표로 삼을만 한 인물이었던 셈.

 

하지만 인류는 망각의 생물이고, 호메로스의 외침이 무색하게도 오늘날까지 불화와 갈등, 분쟁은 끊이질 않고 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이 글에도 문제가 많지만, 대략 여섯 가지 문제가 있다 :

 

1. 어디까지나 신화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 신화를 취사 선택한 것과 취사 해석한 문제로 진실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

2. 서사시환은 여러 작품의 모음집이다 - 「일리아스」는 호메로스가 쓴 것으로 인정 받는 작품이지만, 서사시환의 첫번째 작품은 아니다. 「퀴프리아」라 하여 트로이 전쟁의 서막과 9년 간의 과정을 그린 스타시노스의 작품이 따로 있다. 안타깝게도 「퀴프리아」는 현재 소실되어 내용을 알 길은 없다. 만약 헥토르에 대한 해석이 여기서 먼저 나왔다면, 호메로스는 지금까지 받아온 찬사의 절반 정도는 스타시노스에게 양보해야 할 것이다.

3. 꿈보다 해몽이다 - 호메로스가 명문장가인 것은 사실이지만, 실존 여부를 의심 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서사시 특성 상 많은 내용을 한꺼번에 은유하고 있다. 그가 의도한 게 사랑의 재발견일 수도 있고, 운명을 대하는 인간의 주도적 태도일 수도 있고, 그냥 남자들끼리의 땀내 나는 브로맨스와 전쟁 블록버스터일 수도 있다.

4. 뉘우치긴 했는가 -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잃고 나서 시민 사회의 공적 의무가 지는 무게를 깨달았다고 서술했지만, 정작 「일리아스」 내에서는 그런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인 다음 증오를 채 풀지 못해 시체를 범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대단히 충격적이고 야만적이어서, 과연 아킬레우스가 내 말대로 그것을 깨닫기는 했는지 의문이다.

5. 트로이는 실제로 선진적이었다 - 최근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트로이가 히타이트 제국의 영역권에 속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히타이트는 함무라비 법전에 준하는 체계적 법률이 자리잡혀 있었고 상당히 많은 문서 유물이 출토 되는 등, 대단히 선진적인 문명이었다. 또한 특이 사항으로 정복한 민족의 종교를 받아들이는 풍습이 있었는데, 트로이에서 아폴론과 아테나 신전을 지어 제를 지내는 모습을 「일리아스」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만약 호메로스가 트로이를 과장하여 표현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묘사했다면, 작품 전체를 아킬레우스가 인류애를 깨우치는 플롯으로 설계했다는 내 가설은 틀리게 된다.

6. 증거가 부족하다 - 신화에 기반한 뇌피셜이다보니 이렇다 할 증빙 자료는 없다. 위의 네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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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영화 "트로이(2004)"의 하이라이트 장면인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대결 영상을 게시한다.

 

<History of Cinema, 2018.5.23. 동영상에서 발췌>

 

 

 

시간낭비하게 해서 미안

10개의 댓글

2020.07.26

재밋넹 ㅋ근데 꼬추 가린거 뜬금없이 웃김

2
@크파페퍼

1화부터 이어져온 유구한 전통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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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6

나도 애들한테 수업할때 저 영상 보여줬음 ㅋㅋ

좋은 글 써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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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칸

다른 글들도 잘 부탁합니다 :)

0
2020.07.27

글쓴 개붕이의 자의적 해석이라도 좋은 해석이네. 어차피 2천 수백년전에 쓰여진 작품을 현대인이 자유롭게 해석한들 무슨 문제가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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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ote

어쩌면 호메로스는 그냥 있는대로 썼을 뿐인데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친 건 아닐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3번에 쥐구멍 미리 파 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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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음. 난 이걸 두고 서양인의 영웅관은 동양인의 그것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듣고보니 호메로스가 일부러 영웅관 비틀기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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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ksgemeinschaft

이 시리즈가 제 망상을 위주로 쓰는 것이니만큼, 깊이는 얕기 그지 없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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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데는 15분정도 걸린거 같은데

쓰는데는 얼마나 걸리냐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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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말만해야지

"써야지 !" 하고 마음 먹은 날 기준이면 일주일 정도..? 11편을 기준이면 열 달은 걸렸네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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