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아우토반 : 히틀러의 전쟁기계?

 

 

 

 

독일이라고 하면 우리에게는 자동차의 천국이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포르셰, 아우디,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과 같은 유명한 자동차 기업의 탄생지일 뿐 아니라 「아우토반(Autobahn)」, 즉 자동차(Auto) 고속도로(Bahn)가 깔려있는 나라이기 때문일 겁니다.

 

 

이 「아우토반」은 운전자들의 높은 시민의식과 도로경찰의 철저한 주의 단속 덕분에 속도 제한을 따로 두지 않아도 안전하게 마음껏 달릴 수 있기로 유명하며, 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이 한 번쯤 달려보고 싶은 고속도로로 꼽히는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현대적인 고속도로로써 널리 알려져 있으며, 우리 대한민국을 포함한 수많은 나라가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벤치마킹한 곳이기도 하죠. 무엇보다, 히틀러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 만든 고속도로라는 이야기로도 우리의 흥미를 끕니다. 오늘은 「아우토반」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과연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주요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 즉 「아우토반」을 건설하고자 하는 계획 자체는 1920년대에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인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죠. 그러나 모두 알고 계시듯이 이 당시의 독일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나라였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엄청난 배상금을 물어내면서, 그리고 내부의 정치적인 혼란이 가중되면서 「아우토반」 건설 계획 역시 흐지부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을 기아와 절망으로 몰고 간 세계 대공황을 극복하고 다시금 강대국으로 일구어 내겠다는 야심찬 포부 속에 1933년 나치당의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게 됩니다. 나치 정부는 정부 재정을 아낌없이 투하하여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임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했습니다. 일단 600만 명에 달하는 실업자가 이런 식으로 일자리를 되찾고 임금을 벌어 생계가 안정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정부 재정의 투하 없이도 알아서 경제가 호전될 것이라는 생각이었죠. 그리고 나치 정부의 계획은 완벽하게 들어맞았습니다. 이때가 1930년대 초중반이니 아직 경제학자 케인즈가 '정부 개입을 통한 대공황의 극복'을 주장하기도 전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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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토반」 건설 계획 역시 이러한 공공사업의 일환으로써 히틀러에 의해 전면에 재등장하게 됩니다. 과거에 포기했던 계획을 되살리고 이를 화려하게 성공시킨다면,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속도로를 건설하여 경제를 부흥시킨다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뿐 아니라 히틀러의 업적을 전세계에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건설된 현대적인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이 도로를 건설해낸 사람이 누구인지 계속 마음에 새길 것입니다. 또한 나치당이 줄기차게 선전했던 '독일인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딱 알맞은 것이기도 했죠.

 

 

물론 이런 식의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여 세계 대공황을 극복했던 것이 히틀러만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세계 최대 수준을 자랑했던 후버 댐을 축조하고,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던 테네시 강 유역을 개발하여 발전소를 건설하는 등의 공공사업을 벌였습니다. 이것은 「뉴 딜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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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버 댐. 지금 기준으로도 굉장한 크기이다.>

 

 

그렇다면 이제 「아우토반」이 정말 '히틀러의 전쟁기계'였는지와 함께 「아우토반」 건설의 실제적인 효과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봅시다.

 

 

히틀러는 「아우토반」의 건설을 독일의 명문 「뮌헨 공과대학교」에서 건축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프리츠 토트에게 맡겼습니다. 히틀러가 독일의 독재자였다면, 토트는 「아우토반」의 독재자나 다름없었습니다. 히틀러는 토트에게 내각 장관에 준하는 권리를 일임했고, 「아우토반」의 건설에 있어서 그가 토트에게 보내는 신뢰는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토트는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아우토반」에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신기술이었던 고가도로나 새로운 교각, 무엇보다 수학적인 곡선을 그리며 완만하게 꺾이는 커브 구간 등의 기술이 적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단순한 도로가 아니라, 세계 최초의 현대적인 고속도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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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에게 모형을 보여주며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는 프리츠 토트. 토트는 히틀러의 신뢰를 등에 업고 자신이 생각한 수많은 신기술을 그대로 적용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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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신기술의 금자탑, 「아우토반」>

 

 

 

또 나치 정부와 토트는 「아우토반」의 건설 과정에서 자연 보호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의 자랑인 울창한 숲과 산을 개발하여 직선으로 도로를 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우토반」은 자연물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완만한 커브 구간도 사실은 자연물을 우회하면서도 최대한의 효율을 내기 위한 노력의 일부였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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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보호는 물론 주변 경치와의 조화를 이루는 일 역시 「아우토반」 건설의 주요 고려사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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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토반」의 특징인 완만한 커브 구간. 이는 사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도로 주변의 숲을 보호하려는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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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 그루조차!>

 

 

히틀러가 「아우토반」의 군사적인 가치를 아예 고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아우토반」의 일부 직선 구간은 포장이 더 두껍게 되어있어 전시에는 루프트바페를 위한 비상 활주로로 사용하려는 용도였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아우토반」은 군사적인 목적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 근거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우선 군사적인 목적에서 「아우토반」을 건설했다면 수송 효율이 최우선 가치로 고려되었을 테지만 「아우토반」은 그 건설에 있어 수송 효율보다도 안전과 자연 보호, 심지어는 아름다운 주변 경치와의 조화에 더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죠. 그 덕분에 「아우토반」은 속도와 경치 모두를 즐기려는 오늘날의 자동차 마니아들에게는 최고의 도로지만, 군사적인 목적의 도로로서는 최악의 도로나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째로 제 2차 세계대전까지만 하더라도 고속도로가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을 근거로 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독일군은 강력한 기갑부대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고 그래서 오늘날 독일 축구팀을 전차부대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와는 달리 제 2차 세계대전기 독일군의 기계화율은 전혀 높지 않았습니다. 독일군은 수송용 트럭조차도 충분치 못해 말의 힘을 이용해 물자를 운반하는 것이 더 흔할 정도였죠. 독일군의 전쟁 수행은 고속도로가 아니라 철도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졌습니다. 전통적으로나, 그리고 현실 사정을 고려해서나 독일군에게는 고속도로를 이용한 트럭 수송보다는 철도를 이용한 물자와 인력 수송이 훨씬 중요한 문제였던 겁니다.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근거는, 설령 상술한 모든 것을 무시하고 「아우토반」이 전쟁 수행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된 것이라 가정해도 애초부터 독일은 「아우토반」을 군사적으로 이용할 능력이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사실 트럭이나 자동차를 이용하는 수송, 다시말해 피스톤 수송은 굉장히 연료를 많이 사용합니다. 철도를 이용한 수송과는 대조적인 부분이죠. 이러한 문제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독일은 물론이거니와 당대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불거진 문제입니다. 다만 단 한 나라, 미국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피스톤 수송을 대량으로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미국밖에 없었습니다. 피스톤 수송에는 그만큼 엄청난 연료와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미국 뿐이었으니까요. 심지어 그 미국조차도 피스톤 수송만으로 전쟁을 수행하기에는 힘에 부쳤습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연합군은 프랑스를 거쳐 독일 방면으로 진격했습니다. 그러나 거센 독일군의 저항만큼 연합군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물자의 부족이었습니다. 분명 노르망디 항구에 도착하는 물자는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지만, 그 물자를 최전선의 연합군 장병들에게 수송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1941년에 독일군이 소련에서 겪었던 문제를 1944년의 연합군도 프랑스에서 겪어야 했던 겁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단순히 엄청난 수의 화물 트럭을 투입해 수송대를 편성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 트럭 수송대는 「레드 볼 익스프레스(Red Ball Express)」라고 불렸으며, 연합군이 마침내 벨기에의 주요 항구도시 중 하나이자 「플랜더스의 개」 이야기로도 유명한 안트베르펜을 점령하기 전까지 연합군의 물자 수송을 도맡았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연합군 내에 만연했던 인종차별 문제로 인하여 고심하던 미군 수뇌부가 「레드 볼 익스프레스」의 주역인 화물 트럭 기사 역할을 흑인 장병들에게 맡겼다는 것입니다. 루프트바페의 맹폭에도 불구, 목숨을 걸고 연합군의 생명줄과도 같은 물자 수송 임무를 끝까지 성공적으로 완수한 흑인들의 위상은 그만큼 높아졌고, 전쟁이 끝난 후 흑인들의 지위가 차차 개선되는데 큰 기여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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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차 세계대전 중의「레드 볼 익스프레스」.>

 

 

이러한 피스톤 수송의 난점을 고려할 때, 분명히 독일에게는 「아우토반」을 전쟁 수행을 위해서 활용할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아우토반」이 히틀러의 전쟁기계였다는 이야기는 근거없는 낭설에 불과한 것이죠. 그렇다면 「아우토반」은 경제부흥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잘 달성한 고속도로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아닙니다. 「아우토반」이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한 1935년 즈음에 이르면, 이미 나치 정부의 경제 재건 정책이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여 실업 문제가 해결되고 세계 대공황이 극복하여 경제가 살아나던 시점이었습니다. 나치 정부의 경제 재건이 히틀러 스스로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빠르고 훌륭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아우토반」 건설은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1933년 이전 같았으면 굶주리고 일자리를 찾고자 혈안이 된 600만 실업자들이 「아우토반」 건설 사업에 너도나도 자원하여 순식간에 「아우토반」을 완성시킬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35년에는 이미 많은 실업자가 「아우토반」 건설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임금도 높고 안전하고 편안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막상 「아우토반」 건설 사업을 시작하고 보니 지원자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벌써 야심차게 벌여놓은 사업인지라 나치 정부는 울며 겨자먹기로 일해줄 사람을 찾아야 했고, 급기야는 청소년들의 봉사활동을 「아우토반」 건설 사업의 참여로 대신시키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우토반」은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1939년까지도 계획대로 전부 완성되지는 못하였고 일부분만 개통된 상태였습니다.

 

 

「아우토반」이 본격적으로 경제부흥의 젖줄이 된 것은 독일이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서독이 이른바 「라인 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제 재건을 시작한 이후입니다. 서독은 히틀러의 「아우토반」 계획을 이어받아 이를 완벽하게 완수했고, 이 「아우토반」을 따라 수많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면서 서독은 유럽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의 하나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독일에 여행을 가신다면 분명히 아름답게 뻗어있는 「아우토반」 도로 위를 달릴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이 이야기를 되새겨 보세요. 모르고 달릴 때보다 알고 달릴 때가 훨씬 더 즐거운 여행이 되실 겁니다.

25개의 댓글

사람들은 히틀러가 저질럿던 만행만 생각하는데, 사실 현대에서 근현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도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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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6

이 글을 읽으면서 교통의 발달이 국가의 발전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다시금 되새기게 됨..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도 보부상이 겨우 걸어갈 정도의 열악한 도로사정을 갖고 있었는데 과연 사농공상의 천대와 맞물려 주변국의 성장에도 주저앉아있는 모습이 비교됨.. 도로를 정비하여 길을 내면 외적의 침입이 쉽다던 주장도 생각해보면 다 뚫려서 청나라가 남한산성까지 밀고오고 왜란 당시 불과 20여일만에 한양까지 주파함.. 이런걸 보면 우리나라의 도로 발전사도 글로 읽어보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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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ADSL1990

정보 상업억제는 역사상 모든 나라가 오랫동안 한거다

 

귀족들이 현대 재벌에 해당하는 평민보면 무슨생각을 하겠냐

유럽에서 금융업을 언제든지 추방 가능한 유대인에게 시키고

전염병 유행하면 빌미삼아 쫓아낸건 상업억제가 아닌거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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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특슬람교도

로마는 그럼 왜 길부터 깔았을까?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어떻게 유럽 전체를 장악했고?

정보 상업억제는 당연히 기득권의 정책이지만 예시로 든 유대인의 금융업 전담은 좋은 예시가 아닌거 같다..

오죽하면 중세를 암흑시대, 다크에이지라고 할까?

심지어 조선은 중국의 해금령 때문에 조운선을 겨우 운반하면서 육상의 이동이 주여야 했을텐데도 정비를 안한건 왜일까?

난 그게 궁금한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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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ADSL1990

중세드립치고 있네 메디치가 이런사람들이 왜 문예 부흥운동했는줄 아냐

로마가 상업때문에 도로 만들었다고 씨부리는거냐 세상에나 엌ㅋㅋ

물자운송에서 육상이동이 주였던건

선사시절이면 모를까 역사상 그런적이 없는데 뭔소리?

그냥 지식자체가 없다고 인정해라

얼치기가 편향된 지식가지고 편견섞인 소리좀 지껄이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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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특슬람교도

나는 도로에 관해서 얘기하는데 상업을 얘기하면서 유럽도 도로사정은 개차반이다라고 얘기하는걸 어떻게 말해줘야하냐..

도로발전사를 궁금해하는데 난데없이 지식의 폭이 좁다느니 편향적이라느니 왜 이렇게 극단적이지?

편향된 지식은 너처럼 확신에 차서 남에게 인정해라 지껄이지마라 하는 사람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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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ADSL1990

맛이갔군 아주 맛이갔네 ㅋㅋㅋ

모든 물건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건데

필요에대한건 거세시켜버리고 입맛대로 하는거냐 ㅋㅋㅋ

그러면서 조선은 까고싶었고?

사농공상 이게 조선특인줄 아는 우물안개구리 까고싶어서 미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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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특슬람교도

설마 조선에 대해 저렇게 말했다고 발끈해서 비아냥대는 거였냐? 그러면 진작에 그렇게 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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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ADSL1990

ㅋㅋ 아니 인류 보편적특성가지고 한국만이 특별한줄 착각하는수준이니까 까고싶잖아

내가 위에도 써놨지만 너가 특별한줄 착각하는건 싹다 인류보편적특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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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특슬람교도

인류 보편적 특성? 그거야말로 편향적인게 아니냐? 왜 인류는 이럴거다라고 딱 특정지으면서

내가 조선의 도로에 대해 적은 댓글에는 풀발기해서 달려들지? 아주 맛이 간 놈이구만ㅋㅋ

더 이상 실갱이하고 싶지도 않고 싸우려고만 하니 이만 갈란다 대화를 하려면 자신의 논리를

얘기하고 상대를 설득시키는게 중요하지 너처럼 싸우려고만 하면 같은 수준의 개싸움밖에 더 되겠냐

주말이고 날도 좋은데 햇볕쐬면서 분이나 좀 삯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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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ADSL1990

조악한반박밖에 못하는게 편향드립치네

야 교수가보기엔 내가 편향됐겠지만

역사쪽으론 고등학생수준을 못벗어나는 수준이 까불고 앉아있네

 

너 같은게 갖고 있는 병이 악화되면

세계유일의 분단국가 휴전국가 이렇게 빠져 새꺄 ㅋㅋ

말기는 좆본이세계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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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ADSL1990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5594

여기 자세하게 나와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국사전공자가 아닐 뿐더러 지식이 일천하여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겠으나, 사견을 말씀드리자면 상기 링크의 내용과 성호 선생 등이 "옛길을 닦아서 고친다면" 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미루어볼때, 우리나라 역시 삼국시대로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대로 및 교각 건설 등의 토목기술이 세계사 수준으로 발전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역시 건국초 전국의 국도를 확보해 놓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경국대전 역도 편제를 참고해 보십시오.

 

한편 고려 말기 화폐경제의 붕괴와 조선초 해상 안전의 확보 등에 기하여 주로 수로를 통한 물자수송이 주류가 되었고, 조선 경제가 중농주의적 기본원칙을 채택함에 따라 육로 확보 및 유지보수의 필요성을 그리 절박하게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점차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중농주의라 함은 '농자천하지대본'이라 하여 오직 농업만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기실 생산적인 산업이자 사회 경제를 견인하는 원동력이라고 파악한 사상을 말하며, 농업 발전을 위하여 농민을 우대하고 세금을 경감시키는 것을 주 골자로 합니다. 조선 역시 여기에 유교적 윤리관이 더해져 국가가 농민들에게 징수하는 조세가 결코 높지 않았기 때문에(후일 농민들이 겪은 고통을 유발하는 높은 세금이라 함은 주로 지방 아전들이 사사로운 이익을 편취하기 위해 억지로 징수한 것일뿐 정상적으로 운영된 조선 국가제도 자체로 본다면 이웃 일본과 비교해도 농민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굉장히 낮습니다.) 중농주의가 잘 작동했을 뿐더러 도로의 확보 및 유지보수와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는 것에 애로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중농주의는 서양에서도 근대 산업혁명 이전까지 널리 신봉되었을 정도의 이론이며, 단순히 조선이 주변국에 비해 주저앉아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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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Volksgemeinschaft

이런 정보를 원했어요 감사합니다

그저 남 깎아내리면서 자기를 추켜세우는 위에 견자 같은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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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ADSL1990

사실 독일사에 대비하여 이야기를 논해보아도, 독일 역시 심지어 19세기 초중반 비더마이어 시대까지 도로 교통이 불편하고 그 수준이 조악한데다 치안도 좋지 못했습니다. 독일은 우리보다 평지가 훨씬 많은 지형인데도 불구하고요!

 

그래서 독일 역시 대규모 물자수송 등은 라인 강 등의 수로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들 강목에 설치된 각 영방의 세관이 해당 영방 군주들의 주 수입원이었던지라 굉장히 복잡하고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라인 강을 따라 고작 몇 km 이동하는데 세관에 바쳐야 하는 돈이 엄청나게 많았던 것이죠. 이러한 문제를 극복해야 독일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바로 프리드리히 리스트(1789~1846)입니다. 리스트가 주장한 내용은 두 가지 기본적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는 독일 내부에서는 영방간의 관세를 철폐하고 자유무역을 실시하여 산업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독일 외부에 대해서는 독일로 수출입하는 물자에 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을 실시하여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하면 유아적인 단계에 있었던 독일 산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러한 사상적 배경을 바탕으로 관세 개혁을 실시한 것은 프로이센의 재무장관이었던 프리드리히 폰 모츠(1775~1830)입니다. 이후 프로이센의 세력이 막강해지며 관세동맹이 결성되었고, 이는 북독일연방으로 이어지며 보오전쟁과 보불전쟁 승리 후 독일을 통일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 즈음에 이르면 이미 육로를 개편한다는 생각보다도 철도의 발전이 우선시되어 있었고, 어떻게 보면 독일은 도로 교통의 발전이라는 단계를 뛰어넘고 바로 철도 시대로 들어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철도의 발전은 군사적 목적에 따라 독일(프로이센) 군부의 강한 요구에 의한 것이었고, 헬무트 폰 몰트케에 대하여 참고해보시면 이 부분은 더 자세히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요컨대 드리고자 하는 말은, 조선의 도로교통이 열악했던 것은 단순히 조선이 뒤쳐진 나라였다는 것의 방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보다보면 가끔 이런 낭설을 퍼뜨리며 조선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자주 보입니다만 남의 역사는 물론 자기 자신의 역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폄훼하고 보는 것은 대관절 무엇을 위함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할 따름입니다. 님이 그렇다는 말은 절대 아니고, 제가 아는 것이 별로 없어 더 자세히 알려드리지 못하는 것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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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가 이론을 정립하기 전에 정부재정을 통해 경제를 부흥시킬 생각을 하다니 참 대단합니다.

 

물론 히틀러나 나찌 간부들에게서 나온건 아니고 독일 경제학자들에게서 나온 아이디어 겠지만 아직 이론이 정립되지도 않은 경제정책을 적용한다는게 정치인이나 지도자에게 얼마나 큰 결단인지 짐작해보건데 참, 히틀러의 결단력은 대단한 수준입니다.

 

그리고 그 시절 독일의 학문수준에는 대단함을 느낍니다. 케인즈 선생도 분명 나찌의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만드는 과정의 재정정책을 참고했겠지요.

 

덕분에 오늘도 또 한가지 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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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9
@힐과행복을드려요

뭔소리야 케인즈가 미국에서 활약하기 전에 케인즈주의 이론을 사용한거지 그때도 케인즈 열심히 자기 생각 말하고있었어

그당시 독일만이 케인즈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했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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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9
@vxcfdhgsadsfz

그 부분은 좀 확실히 말하기가 힘들다고 볼 수 있음. 케인즈가 자기 이론을 책으로 정리해서 출판한 것은 1936년인 것에 비해 히틀러의 경제재건은 1934~1935년, 루스벨트의 뉴딜은 1933~1935년으로 케인즈가 책을 내기 이전에 시작된 상태였음. 물론 출판이 1936년이고 그런 엄청난 이론을 고작 1~2년 만에 뚝딱 만들어 냈을리도 없으니 케인즈가 그 이전부터 그런 생각을 가졌다고 할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케인즈는 히틀러와 루스벨트가 성공하는 걸 보고 거기에 영합해서 이론을 정리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제기되어 왔고 아주 설득력 없는 비판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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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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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시한쥬지사의쥬지와쥬지스님쥬지는맛있쥬

사실 히틀러는 미래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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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6

대단하네 저러니 온 유럽을 다 쳐먹은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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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6
@그러지마요

차라리 히틀러가 진짜 무능하고 무식한 독재자였으면 전쟁도 학살도 없었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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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6
@Volksgemeinschaft

맞아 ㅋㅋㅋ 너무 유능하니 자기 이상을 실현시킬 힘이있어 독일이 인도하고 중국사이에 있었어야했는데 ㄲ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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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다른 글에서 댓글로 언급한 적이 있기는 한데, 군사적으로는 고속도로보다는 철도 쪽이 더 가치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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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8

바로 저기서 우리 현대의 자랑스러운 엘란트라가 (1단 기어 넣은) 포르쉐 911 똥꼬를 땄단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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