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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국가 경제'의 시대 - 노자박

요즘 뉴스를 들어보면 재미있는 특징 하나가 바로 눈에 들어갑니다. '대기업' 관련 언급보다 각종 '국가 기관' 내지 국가 지도자들에 대한 언급들이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뉴스의 태반은 '코로나' 관련인데, 삼성이 찍어내는 휴대폰이나 현대가 찍어내는 자동차들이 '코로나' 퇴치에 아무리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해도, 그 퇴치의 주체는 삼성도 현대도 아닙니다. 질본을 위시한 각종 국가 기관들입니다. '퇴치'만이 문제인가요? 더이상 생계 유지 능력을 보유하지 않는 상당수 주민들에게의 긴급 재난 지원을 하는 것, 출입국 통제하는 것,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금년에 무너질는지 어쩔는지 알 수 없는 대기업들의 채무를 보장해주고 그 채권을 매입해주는 것, 중소 업체들의 임대료를 대납해주는 것....'국가'만이 챙길 수 있는 일들은 한 두 가지는 아닙니다. 지금 노르웨이의 실업률은 15% 정도, 노르웨이 사상 최악입니다. 무금 휴직을 강요 당하거나 직장을 잃은 사람들에게 2주간 본래 소득을 보장해주고 그 다음에 그 소득의 80%를 보장해주는 것도 '기업'이 아니고 '국가'가 하는 일입니다. 본래 노르웨이의 국가 및 지자체 공무원들의 전체 고용에 있어서의 비율이 약 33%인데, 인제 실업자들까지 포함하면....국민들의 절반 정도를 국가가 생계 책임지는 셈입니다.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레이건과 대처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열어놓은 '대기업 시대'이었다면, 2020년 이후 세계 체제의 현실은 아마도 차라리 1930-70년대의 '국가 경제' 시대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어쩌면 대공황과 맞물릴 정도의 금년의 위기를 국가적 채무 보장, 채권 매입, 긴급 자금 지원 없이 넘어갈 대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고, 그 만큼 앞으로 경제의 주된 행위자로서 '국가'가 다시 필연적으로 전면에 부상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으로서는....새로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대공황 이후의 총독부 통제 하의 조선의 신생 공업 경제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까지의 발전 국가 경제도 다 관치 경제이었으니까요. 국가의 특혜금융, 외환 채무 보장, 연구 개발 비용 지원 그리고 세금 감면 등이 없었다면 현대 자동차도 삼성의 반도체 생산도 애당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만이 과연 그런가요? 1969년에 아폴로 11호가 달나라로 착륙했을 때에도, 1973년에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인터넷의 전신인 ARPAnet이 탄생됐을 때도 그 주인공은 과연 '기업'이었나요? '국가'를 빼면 냉전 시절 미국 첨단기술의 발전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야 당연히 있지만, 약 1929-30년부터 세계 무대에서 이렇다 할만한 역할을 했던 '모든' 국가들이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심히 국가화된 경제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한반도 같으면 '국가 경제', 즉 관치 경제는 아예 1990년대말까지 존속됐죠. 그후로는 남에서는 신자유주의로, 북에서는 '장마당' 본위의 새 소비 경제로 (일부분) 대체됐지만요.

그런데 문제는...'국가'라는 게 심히 광범위한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그 주도 세력의 기원, 성격과 정치적 의도, 구상에 따라서 '국가' 행동의 성격도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봅시다. 1940년대 초반의 경성. 일제가 선포한 '신질서' 속의 관치 경제, 국가 통제 등 비자본주의적 요소에 끌려 인정식이나 김명식 등 일부 맑시스트들이 전향을 선언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공장들을 통제하고 생산을 계획, 지휘하는 일제는, 더이상 '자본주의 국가'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나 박헌영이나 이관술, 이주하, 이현상, 김삼룡 같은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이 끝까지 전향을 거부하고 투쟁을 지속하는 이유는, 과연 '친일'에 대한 체질적 거부반응때문만이었나요?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들이 한 가지를 똑똑히 알고 있었습니다. 일제를 관리하는 엘리트들이 '혁명'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던 '정통' 상류층이었다면, 소련은 혁명을 거친 사회이었습니다. 스탈린은 비록 많은 혁명자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보수적 성향의 정치 행위자일 수도 있었지만, 그에게 기층민들의 지지가 필요한 만큼 그는 1937년부터 모든 소련 주민들에게 무상 의료를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대숙청으로 혁명은 '퇴조'를 맞이했지만, 소련 아이들이 여전히 무상 교육을 받았으며 노동자들이 여전히 2주 휴가를 받을 권리를 지녔습니다. 같은 '관치 경제'들이라 해도,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에게는 혁명을 거부한 사회와 혁명을 거친 사회 사이의 차이는 선명했습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계속 투쟁을 해야 할 만큼 그 차이는 그들에게 아주 컸다는 것이죠.

지금도 비록 다시 '큰 정부'의 시대를 향해 가고 있지만, 이게 구체적으로 '어떤' 정부일 것인가 라는 게 여전히 미지수, 즉 각국에서의 정치적 '투쟁'의 결과에 달려 있습니다. 설령 한국에서 극우들이 다시 권력을 잡는다 해도 위기 대처의 기본 정책들은 아마도 현재와 그렇게까지 큰 차이는 없어도, 어쩌면 주민들에게의 긴급 재난 지원보다는 기업들에 대한 지원책은 훨씬 우선적으로 집행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컨대 진보 정당들의 힘이 더 커지면, 이 번의 사태가 계기가 되어서 우리가 건보 보장성 70% 달성 정도만 그 목표로 하는 현 정권과 달리 아예 '무상 의료 실시'를 목표로 설정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번 사태야말로 '공공 의료'가 바로 생명임을 우리에게 너무나 잘 보여주었으니까요. 직장 갑질 방지법 통과 등으로 봐서는 현 정권과 같은 온건 자유주의 세력들도 과도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직장 문화'를 바꾸는 데에 나름 힘을 쓸 수 있지만, 진보 정당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직장 갑질의 가장 큰 기원인 '비정규직' 양산의 원천적 차단입니다. 즉, '큰 정부'는 2020년 이후 역사의 필연성이라면 집권 세력의 성격에 따라 이 '큰 정부' 정책의 성격도 아주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 경제' 속에서 '정부'의 위상이 올라가는 만큼 다시 한 번 '정치'의 중요성이 엄청나게 커지는 것은 2020년 이후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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