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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냉병기 최후, 최강의 용병들 - 라이슬로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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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시절의 라이슬로이퍼들을 그린 그림. 장창 등의 장대무기가 주 무기였다.)

 

라이슬로이퍼(Reislaufer)는 근세 ~ 중세의 스위스의 용병집단을 말하며, 어원은 "전쟁에 나서는 자"라는 뜻이다.

 

가깝게는 근세(Early Modern period)부터 멀게는 계몽 시대(European Enlightenment)가 포함된 중세 후기(Later Middle Ages)까지

 

외국, 특히 프랑스에 고용되어 전력으로 활용된 병사들로 유명하다.

 

그들의 용병으로써의 전력은 르네상스 시기에 최고조에 달했으며,

 

전장에서 증명된 전투력은 냉병기 시절 화약병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 최고의 용병으로 자리매김 하였었다.

 

그리고 그들이 현대에 가장 유명한 용병집단인 이유는 스위스 근위대로써 고용되어 근무를 하기 때문인데,

 

이들이 스위스 근위대로 근무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1527년 5월 6일에 일어난 사코 디 로마(Sacco di Roma, 로마 약탈) 전투이다.

 

1520년대의 유럽은 종교개혁의 횃불이 타오른 이래 가톨릭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동쪽으로는 이슬람 세력인 오스만 제국이 1526년 동유럽 최후의 보루 헝가리를 멸망시키고 유럽 내륙까지 진출해 있었으며,

 

교황령이 위치한 이탈리아 반도를 둘러싸고 유럽 최대의 두 세력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카를 5세와 프랑스 왕국을 지배하고 있던 발루아가의 프랑수아 1세가 치열하게 격돌 중에 있었다.

 

이를 이탈리아 전쟁이라 하는데, 카를 5세가 스페인의 왕이기도 했으므로 '프랑스 대 신성 로마 제국+스페인'의 구도였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재임하고 있던 40대의 젊은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요동치는 국제 정세에 프랑스와 신성 로마 제국 사이를 교대로 오가며 줄타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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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교황, 클레멘스 7세)
 


그는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합스부르크에 맞서 프랑스 왕국, 잉글랜드 왕국, 베네치아 공화국, 밀라노 공국, 피렌체를 끌어모아 코냑 동맹을 창설했다. 즉 '합스부르크 가문' vs. '反 제국 연합' 의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이미 1525년의 파비아 전투에서 제국군에게 왕이 사로잡히는 참패를 겪은 프랑스는 이미 자력만으로 제국과 맞설 수 없음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흔쾌히 동맹 제의에 응했으며,

 

과거 제국과 혼인을 통해 친분 관계를 맺었던 잉글랜드의 왕 헨리 8세조차 이를 놓칠 수 없는 대륙 진출의 호기라 여겼기에 몇 차례 퇴짜를 맞아가면서까지 기어이 동맹에 가담했다.

 

다만 의회의 반대를 끝내 꺾지 못해 군대 파견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십자군 전쟁 이래 교황 중심의 동맹 세력으로서는 가히 최대 규모라 할 만했다. 이로써 결성된 코냑 동맹과 합스부르크 제국 간의 전쟁을 코냑 동맹전쟁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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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냑 동맹 전쟁중 하나, 피렌체 공성전을 그린 모습.)

 

이렇듯 교황이 몸소 프랑스와 손잡고 연합 진영을 구성해 로디를 함락하는 등 북이탈리아를 장악해나가자 신성 로마 제국과 스페인 및 그 식민지 일대를 통치하던 20대의 젊은 황제 카를 5세는 격노하였고, 이탈리아로 군대를 투입하여 실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이 때 카를 5세는 라이슬로이퍼의 라이벌인 독일 출신 용병집단인 란츠크네흐트(Landsknecht)의 창시자인 장군 게오르그 폰 프룬츠베르크와 함께 물경 3만 5천명의 군세를 이끌고 로마를 공격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라이슬로이퍼들의 한계가 드러나게 되는데,

 

대부분이 냉병기를 사용하고 소량의 아쿼버스만을 장비하고 싸우던 라이슬로이퍼에 비해, 란츠크네흐트는 대부분이 아쿼버스로 무장을 하고 지원화기로 대포를 끌고 있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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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쿼버스(화승총)로 무장한 란츠크네흐트)

 

그리고 이 이면에는 새로운 화기에 늦게 적응해 잘못된 전술을 사용한 라이슬로이퍼의 탓도 있었다.

 

신기술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었던 란츠크네흐트와 달리, 라이슬로이퍼들은 그들의 아이덴티티인 장창을 쉽게 버리지 못했고,

 

따라서 "장창으로 사방을 방어하면서 소량의 화승총으로 공격, 이후 냉병기진이 돌격"이라는 냉병기 위주의 전략을 사용했고,

 

이는 대량의 대포와 화승총으로 무장한 용병군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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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슬로이퍼가 사용한 전술의 예시)

 

 

용병 본대가 교황령에 이르는 동안 현지의 방어군은 아쿼버스와 대포가 무서워 말 그대로 손놓고 보고만 있었고,

 

밀려드는 용병군에 맞서야 할 코냑 동맹의 결속력은 그야말로 모래알보다 못했다.

 

가까운 프랑스는 약간의 병력만을 파견했다. 그나마도 미적거리다가 교황령이 함락당했다는 보고를 듣고서야 군대를 움직였는데,

 

파비아에서의 패배를 어떻게든 복원하여 군대를 재정비하던 참이라 신속할 대응이 어려웠던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베네치아는 자신들의 안전만 확보하면 그만이라 용병군의 목표가 베네치아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 그들도 사실상 손을 놓아버렸다.

 

이 따위 상태에 놓인 코냑 동맹이 저지선을 편다고 한들 용병군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교황군, 프랑스군, 베네치아군을 어떻게든 긁어모아 용병군의 뒤를 추격하기 시작했지만,

 

모래알 결속력답게 베네치아군은 자국의 안전을 확인한 시점에서 그냥 돌아가버렸고 교황군과 약간의 프랑스군만이 남아 추격을 계속했다.

 

그러나 용병군을 추적하던 연합군도 적의 대포가 무서워 무려 40km의 거리를 두고 추격했고,

 

설상가상으로 피렌체 출신 지휘관의 이기심으로 피렌체가 약탈당할까 두려워 피렌체에서 이틀을 머물며 방어를 한 탓에,

 

로마는 말 그대로 무주공산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로마에는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약간의 잡졸 용병들과 시민군, 그리고 단 500명의 라이슬로이퍼만이 남게된 상황에서 용병군과 대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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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스케르크가 그린 로마 약탈)

 

역사상 로마가 몇 번 침공당하기는 했어도 기독교 군세에 침공당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로마 시민들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황령 접경에서 용병군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자 로마 시민들은 그때서야 상황의 심각함을 깨달았고, 로마는 라이슬로이퍼 5백명과 시민군 5천을 모아 필사적으로 방어에 나섰다.

 

1527년 5월 6일, 부르봉 공작 샤를 3세가 인솔하는 2만 명의 용병군 본대가 바티칸 언덕을 넘어 들어오면서. 약 5천의 로마 수비군과의 전투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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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전투 중 수비군으로써는 기적이라 하지만 사실은 비극이라고 부를 일이 일어났으니 용병군 지휘관 샤를 3세를 저격하여 전사시킨 것이다. 

 

지휘관이라 전용 흰색 망토를 착용했는데, 이것이 교황군의 이목을 끌어모으는 요인이 되었다.

 

이 사건은 화약무기로 지휘관을 저격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며 무기로는 화승총이 쓰였다.

 

이제 지휘관을 잃은 용병군이 스스로 붕괴되기를 기다릴 차례였고, 실제로 용병군의 지휘체계는 이것으로 완전히 붕괴되었다.

 

단지 지휘체계의 붕괴가 무질서한 후퇴가 아니라 절제되지 않은 폭력으로 이어졌을 뿐이었다.

 

카를 5세의 군대는 용병들이었으나, 프룬츠베르크가 사망한 이후 그들은 부족한 용병료 때문에 불만이 단단히 쌓여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그나마 샤를 3세가 용병들에게 끌려다니면서도 그나마 군대 비슷한 모양 정도는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런 샤를 3세가 전투 중 죽어버린 것이다.

 

샤를의 뒤를 이어 필리페르트가 사령관의 자리를 이어받았으나, 이미 지휘체계가 무너지고 규율 있는 강도 떼가 되어버린 용병들에게는 손도 대지 못했다.

 

용병들은 지휘관의 죽음에 사기가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분노하여 격렬한 기세로 로마를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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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 당해 사망한 샤를 3세)
 

그렇게 로마 수비군은 단 하루만에 약 1천 명을 잃고 패주하는 것으로 방어선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용병군은 적의 시체를 짓밟으며 성난 물결처럼 로마 시내로 밀려들었다.

 

오직 라이슬로이퍼들만이 교황을 지키기 위해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막고 필사적으로 싸웠으나, 이전 파비아 전투 때 그랬듯이 거의 몰살당했다.

 

모두 전사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189명의 라이슬로이퍼 중 147명이 성 베드로 대성당 계단에서 사투를 벌여 전원이 용병군에 학살당해 주검이 된 것이다.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이자 라이슬로이퍼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교황은 지래 겁을 먹고 147명의 라이슬로이퍼가 사투를 벌여 시간을 버는 동안 남은 42명의 호위 아래 바티칸을 버리고 산탄젤로 성으로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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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츠크네흐트가 로마를 털어버리면서, 도망간 클레멘스 7세를 조롱하기 위해 가짜 교황을 가마에 태워 행진시키는 장면을 담은 판화)


수비군도 없고, 교황도 도망간 로마 시내는 용병들이 들이닥쳤을 때 이미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카톨릭의 본거지다운 엄숙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무질서함만이 팽배하게 들어차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막을 적도, 자신들을 통제할 지휘관도 갖지 못한 용병들은 로마를 현실에 나타난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마지막 147명의 라이슬로이퍼들은 분노한 용병군을 상대로 마지막 한명이 죽을때까지 결사적으로 싸웠고,

 

이에 감복한 클레멘스 7세는 이후 교황청은 오직 라이슬로이퍼만 고용하도록 서약을 하여

 

이후 라이슬로이퍼들은 다음 교황인 바오로 3세가 서약을 지켜 스위스 근위대가 되어 지금까지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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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스위스 근위대가 된 라이슬로이퍼)

 

그리고 라이슬로이퍼가 끝까지 싸운 이면에는 속 사정이 있다.

 

스위스하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떠올리나, 사실 스위스는 농사를 짓기에는 매우 척박한 땅이다.

 

땅이 척박하니 그들로서는 인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던 탓에, 용병업이 국가적인 산업이자 생계수단이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비겁한 모습을 보이거나 신뢰도를 깎아 먹는다면 자기 하나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지역 용병대 전체의 신뢰도에 해가 가고, 이는 곧 국가의 주 수입의 파멸로 연결된다.

 

이 때문에 그들의 계약을 자신들의 목숨보다 중하게 여겼으며, 이 때문에 그들은 고용주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절대규칙이 세워진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주인 클레멘스 7세가 "모든 상황이 끝났다. 위험하니 너희들도 돌아가라"고 말렸음에도 끝까지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며 신의를 지킨 용기에는 충분히 존경하며 박수를 쳐줄 만 하다.

11개의 댓글

2020.02.22

얘넨 참 멋있는데 나중에 복제판인 란츠크네히트는 왜 멋있다는 생각이 안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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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2
@닉네임변경72

1. 라이슬로이퍼의 복제판

2. 돈을 너무 밝힘. 정예인 도펠죌트너조차 돈으로 사서 독일 황제의 적으로 싸운적이 있음.

3. 냉병기 싸움에서는 라이슬로이퍼에게 지다가 아쿼버스 도입하면서 물량빨로 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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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2
@번째현탐

근데 왜 란츠크네히트는 게임에 많이 나오는데

라이슬로이퍼는 게임에 안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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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2
@닉네임변경72

츠바이핸더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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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2

르네상스 토탈워 마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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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3
@부들

문명5 빠른 상업테크+빵빵한 골드로 무한 란츠크네히트 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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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3
@부들

미디블토탈워2에 다 나오는데 검방보병한테 걍 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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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3

https://youtu.be/gFlwDeeMMVg

스웨덴 메탈 벤드 sabaton의 last stand에서 저 147명이 주인공으로 나옴

0
2020.02.23
@초록달

사실 이거 듣다가 삘받아서 이거 만듬 테르모필레스는 먼저 누가 해버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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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3

ㅊㅊㅊ 퍼가두 되나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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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4
@공수기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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