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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의 극장사업 흥망성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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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삼성영상사업단에서 한 때 극장운영을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요즈음 멀티플렉스가 일반화된 시대를 맞아,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만일 IMF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이 멀티플렉스 시대는 조금 더 빨리 도래했을 것이고, 그 주인들은 지금과는 좀 달랐을 겁니다.

당시 그 흐름의 가운데 있었던 탓에 지켜봤던 대기업의 극장사업의 흥망성쇠를 회고해 볼까 합니다.

(아래 소개된 극장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을 약간 고칩니다)

아시다시피 IMF맞기 전 96-97년은 한국경제의 거품이 극에 달했던 시기죠.

이 때 대기업들이 남아도는 돈을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 말에 혹해 너도나도 문화사업에 투자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국내 4대기업이던 삼성, 현대, 대우, LG가 모두 영화와 대중음악에 돈을 쏟아부었는데,

 

모두 영화제작과 더불어 안정적인 방구미(배급)를 위해 극장사업을 병행합니다.

 

당시만해도 전국체인망이 없고 각 지역 배급업자가 마음대로 영화를 주고 빼며 장난을 치던 시기라, 자사 영화의 안정적 흥행을 위해서는 직영극장이 꼭 필요했거든요.(결국 대규모 극장체인이 자리잡으면서 지방 토호격인 이 배급업자들은 몰락했죠.)

그래서 삼성은 서울극장 3,7관과 대전의 아카데미 극장을 임대하고 자체 브랜드 멀티플렉스를 만들기 위해 ''씨넥스''라는 브랜드명을 만듭니다.

첫번째 극장으로 당시 이건희회장의 지시하에 진행된 삼성본관-생명빌딩 지하 리노베이션에 극장을 집어넣습니다. 이게 씨넥스 1호였죠.

지금도 전설의 극장으로 회자되는 이 씨넥스 1호는, 당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던 기사분을 해외연수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미국에서 극장설계 전문가를 데려와서 만들어낸 당대 최고의 시설과 사운드를 자랑하던 극장이었습니다.

타 극장의 세 배가 들어간 프리앰프, 국내 최초의 7.1채널 (97년 당시!)SDDS 사운드 프로세서, 최고급 스크린, 국산보다 세 배 비싼 스페인제 피가레스 의자, 최초로도입된 전자식 매표 시스템...개관전 3개월의 직원 서비스교육까지 당시로는 혁신적이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씨넥스 2호(5개관)는 분당에 부지를 확보하고 건설에 들어갑니다.

한편, 대우는 씨네하우스를 인수하고, 역시 멀티플렉스를 만들기 위해 새로 건설되는 코엑스 지하에 큰 공간을 확보합니다.

 

15개 이상의 극장을 넣어 동양 최대의 멀티플렉스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어었죠.

하지만 당시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은 지하철에서 10분이 넘게 걸리는 위치의 불리함 때문에 절대 장사가 안될거다, 대우가 바보짓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현대는 씨네플러스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압구정동에 2개관을 우선 개관합니다.

 

여기는 씨넥스에 자극받아 국내에서 두번째로 SDDS를 넣는 등 씨넥스를 철저히 벤치마킹해 만들어집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씨넥스 이경섭 실장님(한국 AV매니아의 1세대쯤 되시는 선구자이시죠.)이 이 씨네플러스에 대해 한 말씀 :

"씨넥스 따라가려고 현대애들이 돈은 많이 쳐 발랐는데, 소리를 몰라. 한 번 가서 봐. 돈만 많이 들인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거 알게될테니까"

그래서 일반관객인양 찾아갔습니다.

 

"개미"(ANTZ)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씨넥스에서 본 예고편에서 리복 운등화가 개미 위로 지나갈 때 거대한 굉음이 들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개미 눈으로 본 거니까요)

근데 씨네플러스에서 그 장면은, 너무나 맥빠진 소리를 들려주더군요.

그 순간 씨넥스의 사운드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또한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극장은 스크린비가 맞지않아 2:35대 1 화면비 영화를 상영하면 좌우가 잘려나갑니다. 서울, 대한등도 마찬가지이죠)

마지막으로 LG는 스카라를 임대했는데, 가장 먼저 발을 빼면서 더 이상 문화사업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멀티플렉스 계획이 없었죠.

 

 

 

이 모든 대기업들의 꿈을 산산히 날려 버린 것은 1997년 가을의 IMF 였습니다.

앞의 글에서도 썼듯이 가장 먼저 문화사업쪽을 접은 것은 LG였습니다.

사실 이는 좀 아쉽습니다. 왜냐하면 LG가 가장 비타협적이고, 예술중심의 투자를 했거든요.

음반도 꽤 예술성 높은 음반들이 나왔었고, 제작투자를 결정했던 영화들도 마이너 감성의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이로 인해 가장 크게 적자를 본 LG는 이미 96년부터 슬슬 사업을 접었습니다.

 

도저히 밑빠진 독에 투자를 더 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스카라극장은 이후 몰락의 길을 걸어갑니다. 지금은 시사회나 이벤트 상영으로 겨우 명목을 유지하고 있죠.

다음으로 폭격을 맞은 곳은...IMF의 주 원인이기도 했던 대우였습니다.

 

동양 최고의 극장을 만들겠다며 야심차게 시작했던 코엑스의 극장은 인수자를 찾지 못해 거의 완성 단계에서 공사가 스톱되고, 영화쪽에 뛰어들었던 직원들은 뿔뿔히 흩어집니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괜찮았던 현대와 삼성의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앞에 서 하나 잊은 것이 있는데 현대는 명보극장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명보를 넘기고, 씨네플 러스를 멀티플렉스 체인으로 만들려던 계획은 정지됩니다.

 

제작중이던 영화들도 모두 엎어지고, 수입했던 영화들의 판권도 팔아넘겼죠. (이 과정에서 스크림 같은 작품의 판권이 모호해져 개봉이 연기되는 상황이 생깁니다. )


마지막으로 남은 삼성, 역시 멀티플렉스를 접습니다.

 

씨넥스는 단관으로 남고 서울극장과 아카데미 극장은 임대를 해지하려 하지만 쉽게 매각이 안되었지요.

외국에서 멀티플렉스 관련 연수까지 했던 제 상관인 과장은 말 그대로 ''대기발령''상태가 되었고, 보험회사로 옮기려고 자리를 알아보기까지 합니다.

 

씨넥스의 직원들 역시 사기가 떨어져 버립니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두 다크호스가 이들 대기업의 바톤을 이어받습니다.

 

혹은 무주공산을 쉽게 점령했다고 할까요?

 

이들은 절묘하게 시점을 잡고 들어와서 이후 한국의 극장사업은 물론 기존 충무로 집단과 영화계를 삼분합니다. 바로 CJ와 동양그룹이죠.

 

1998년 봄, 한국 극장사를 바꾸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한국 최초의 멀티플렉스 CGV 강변이 탄생한 거죠.

잠깐, 그러면 이전부터 있던 복합상영관인 서울극장, 씨네하우스, 명보 등은 멀티플렉스가 아닌가?

예, 답은 아니다 입니다. 복합상영관과 멀티플렉스는 다릅니다.

멀티플렉스는 우선 기본적으로 단층구조에 단일입구를 기본으로 합니다.

다층구조에 각층마다 입구가 다른 복합상영관과 다릅니다.

덧붙여, 멀티플렉스는 미국 몰(mall)문화의 산물입니다.

 

즉 대형 쇼핑센터와 연결되어 그냥 영화보러 오는 사람이 아닌 쇼핑객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하죠.

인테리어에 있어서도 극장이 기본적으로 공연장의 컨셉에서 시작한다면, 멀티플렉스는 놀이동산의 개념을 차용한 것입니다. 화려한 인테리어를 위주로 하죠.

CGV는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첫번째 멀티플렉스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극장업계의 반응은 대단히 부정적이었습니다.

"서울 중심가도 아니고, 교통이 딱히 좋은 곳도 아닌 광진쪽에 무슨 극장이 되나?"

"배급문제가 있어서 11개 관을 다 채우기도 힘들걸?"

"임대료가 비싸서 손님좀 들어도 흑자내기 힘들거야."

그러나, 개장 다음 해인 1999년, 지난 10여년간 단 한 번도 단일극장 관객동원수 1위를 놓쳐본 적이 없던 영원한 1등극장 서울극장은 2등으로 내려앉습니다. 강변 CGV가 1등을 차지한 겁니다.

왜 전문가들이 틀렸는가? 그들은 멀티플렉스가 가진 ''신규고객 창출''의 힘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지 새 극장은 정해진 관객을 나누어 가질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멀티플렉스는 그 자체로 새로운 관객을 만들어 냅니다. 쇼핑하러 왔던 사람들이 극장을 찾게 되지요.

1998년까지 5년정도 거의 변동이 없던 년간 총 관객 수 (4000만명 정도) 가 그후 5년간 2배가 넘게 확장된 것은 한국영화의 힘과 더불어 멀티플렉스의 위력 덕분입니다.

호주의 영화체인과 합작해서 팝콘 튀기는 것까지 전부 외국인이 연수했던 CJ의 공이 빛을 보는 순간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영화제작 및 수입을 겸하고 있던 CJ는 충무로에 이미 상당한 지분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안정적인 영화수급이 가능했고, 충무로의 견제를 피해갈 수 있었죠.

그러나, 여전히 멀티플렉스의 미래는 밝지 않았습니다. 그건 미국에 비해 살인적으로 비싼 한국의 땅값 때문이었죠.

 

미국의 경우 멀티플렉스가 설치된 몰들은 보통 시골마을 서너 곳의 가운데 위치한 도로변 공터에 있습니다.

 

모두 차를 몰고 오기 때문에 적당히 거리가 떨어져도 물건만 많으면 장사가 됩니다. 당연히 땅값은 거의 거저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 반면에, 우리나라 대도시에서 대형 몰을 만들고 극장을 넣으려면 무지막지한 돈이 들어가죠.

그렇다고 시골에 지으면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사람들이 영화보러 차몰고 찾아올 만큼 영화를 즐기는 것도 아니라서 금방 망합니다.

결국, 진정한 멀티플렉스가 가능한 곳은 아주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미 큰 부지가 확보되었고 어느정도 주변 수요가 있는 곳.

 

삼성과 대우가 정리한 케이블 영화채널들을 인수하며 문화사업 에 뛰어든 동양은 대우가 포기한 코엑스가 바로 몇 안되는 이런 요지임을 알아봅니다.

 



자, 동양그룹을 소개할 차례입니다. IMF 이전까지 시멘트와 과자로 주로 알려진 이 소규모 그룹이 대기업들이 나가떨어진 자리를 점령하고 한국 문화사업의 양강중 하나로 올라서기 까지의 과정입니다.

많은 회사들이 부도나고 투자여력이 없던 IMF 이후 2년간 동양의 투자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처음에 대우의 케이블채널 DCN을 살 때만 해도 그냥 한 번 질러 보는 것이려니 했는데,

삼성의 유료채널인 캐치원을 인수해서 케이블 영화채널을 싹쓸이하더니, 대우의 극장사업을 인수해서 씨네하우스와 코엑스의 극장을 인계받습니다.

사실 동양은 매우 건실한 알짜기업입니다. 과자나 소비재 중심 기업인 농심과 동양은 IMF때 오히려 성장한 몇 안 되는 기업이죠.

 

동양 오너가 한국에서 가장 비싼 차 (이건희 회장이 차고에 묵혀놓은 옛날 명차들은 제외하고) 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은 아시나요?

시멘트나 과자, 모두 현금장사죠. 막강한 현금동원력으로 이들은 공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갑니다.

 

CGV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해 미국의 로위 씨네마와 계약을 맺고 메가박스라는 상표로 멀티플렉스를 전개해 나갑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죠. 생전 처음 해보는 사업이라 기업 내에 극장사업쪽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기존 대우 인력을 흡수하긴 했지만 이들도 멀티플렉스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이들은 아니었죠.

자, 2회에서 언급한 저희 과장, 기억나시죠? 거의 한국에서 유일한 멀티플렉스 운영에 대해 연수까지 받은 전문가, 동양은 이 분을 스카웃 합니다.

 

나중에 들으니 개장때까지 죽을 고생을 했다고 하지만, 어쨌거나 문을 열자마자 그야말로 관객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과장, 입 찢어졌죠. 누구도 이렇게까지 되리라곤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개장 첫해에 강변CGV를 가볍게 제치고 부동의 한국 극장관객 동원 1위로 올라섭니다.

결국 메가박스는 여기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전국체인망으로 올라섰고, 동양은 최초에 계획 했던 대로 전국 극장배급망을 바탕으로 영화제작 및 수입, 배급업으로 진출합니다.

 

쇼박스라는 지주회사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투자, 배급한 ‘태극기 휘날리며’ 의 대성공으로 쇼박스는신생 제작, 배급사에서 단숨에 메이저로 올라선 상태이죠.

부장으로 스카웃되었던 저희 과장은 지금은 쇼박스 총괄팀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멀티플렉스 전문가란 이유로 거의 대기발령 상태이던 상황에서 정말 대단한 인생역전, 새옹지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제가 삼성 있을 당시 일입니다.

전화를 받자, 잔뜩 화난 노인네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야, 이자식들아, 동판을 이따위로 내? 딴데도 아니고 니네가 이럴수 있어?"

대뜸 반말...황당하지만 일단 숨을 고르고 답했습니다.

"저, 누구신지요?"

"나, 곽사장이야, 자네 누구야? 최부장 대!"

곽사장은 당시 한국영화계 파워링킹 1위를 달리던 서울극장 곽정환 사장입니다.

최부장은 지금 강제규 필림 사장으로 있는 저희회사 최진화 부장이었죠.

세 가지가 궁금해 지시죠?

1, 동판은 뭔가?

2. 왜, 동판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는가?

3. 왜 곽사장은 삼성에게 이렇게 당당, 혹은 거만한가?

차례로 답해 드리지요.

1. 동판은 신문 영화광고 아래 붙는 극장소개를 말합니다.

 

영화광고 아래 보시면 그 영화를 하는 극장들이 쭉 나열되어 있죠?

 

근데, 이 동판은 단순한 극장소개가 아닙니다. 일종의 극장 서열표입니다.

 

보통 4-5단으로 배치되는데, 윗줄일수록 관객이 많이 드는 극장이란 이야기죠.

그리고 특별히 줄에 속하지 않고 줄 위의 좌, 우 한칸씩을 차지하고 있는 극장들이 있습니다.

이 극장들이 흔히 말하는 메인 개봉관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른쪽 위가 서열 1위이죠.

(지금은 좌측에 별도의 큰 칸을 CGV와 메가박스가 차지하며, 롯데가 보통 오른쪽 두번째 큰 칸을 차지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서울극장이 오른쪽 위입니다.

 

요즘은 아예 동판이 안나오는영화광고도 많습니다. 극장이 너무 많아져서 모두 싣기 힘든데다,

 

멀티플렉스가 많아져 왠만한 영화는 다 하니까요. 소규모 개봉영화만 동판을 싣지요)

2. 곽사장은 왜 화를 냈는가? 짐작 가시죠?

당시 삼성에서 개봉했던 영화가 오른쪽 위로 명보를 올렸거든요.

 

당시 서울극장은 자기네 극장서 개봉하는 영화는 무조건 오른쪽 위를 고집했습니다.

그럴만 했던 것이, 서울극장은 당시 10년넘게 극장 흥행랭킹 넘버1이었데다, 대구와 부산등에극장 체인을 소유한 유일한 업체였습니다.

 

개봉 당일 서울극장 앞에 가면 영화관계자의 절반은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이곳의 매진속도로 흥행을 알 수 있었죠.

 

(지금도 뉴스에가끔 ''무슨 영화 매진행렬''하면서 나오는 곳은 거의 서울극장 앞입니다. 가끔 메가박스도 나오더군요)  #2004년에 쓴 글임#

당시 비디오업계에서 ''서울극장 개봉작''이라는 스티커가 붙으면 ''극장개봉작''보다 1만장이 더팔린다는 것이 정설일 만큼 서울극장의 위세는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서울극장의 위력, 그리고 제작자도, 감독도 아닌 곽사장이 수년간 한국영화 파워 랭킹 1위(씨네21)를 차지했던 이유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배급''의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3. 곽사장은 왜 이렇게 당시 거의 유일한 메이저 제작사였던 삼성에게 고자세였을까?

그것은 그가 영화들의 배급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당시에 전국 배급을 위탁받은 회사만 해도 폭스, 워너, 디즈니의 모든 영화들, 그리고 당시 휘하에 두었던 시네마서비스의 영화 전부였습니다.

 

그외 소규모 제작사들도 그에게 배급을 많이 위탁했습니다.

이 위력은 절대적입니다.

 

좋은 영화를 수급할 수 있느냐에 목숨이 달린 극장들에게 그는 거의 신에 가까운 존재였고,

 

영화를 수입하거나 제작하는 많은 업체들도 그의 처분에 따라 영화의 운명이 바뀌는 처지였으니까요.

예를 들어 봅시다. 신촌에 극장 세 개가 있는데, 디즈니의 여름 만화영화가 나왔습니다.

 

곽사장이 이걸 어디 주느냐에 따라 다른 두 극장은 일년중 절반이라는 여름장사를 날릴 수 있습니다.

또, 한국 제작사가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같은 날 폭스의 블럭버스터가 개봉한다면?  군소배급업체로서는 극장도 잡지 못합니다.

불가피하게 비시즌으로 개봉을 미룬다고 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왜? 극장들은 이때는 워너의 3류 영화들을 어쩔 수 없이 개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겨울에 개봉하는 워너의 대작영화로 겨울을 나야 하는 극장들의 선택 여지는 없습니다.

삼성이 아무리 영화를 많이 만들고 수입해도 일년에 서너 편, 직배영화사처럼 꾸준하게 대작을 제공할 수 없다면, 극장들에게는 매력이 없습니다.

자, 이런 상황(1,2,3) 들이 얽혀 위에서 본 헤프닝이 일어난 겁니다.

당시, 이런 폐혜가 극단까지 갔던 것이 동대문 MMC 파행개관 사건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CGV 개관당시 서울극장은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왜? 장사가 별로 되지 않을곳이라고 예상한 데다가, 설사 성공해도 자신들과는 별로 관객이 겹치지 않는다고 봤거든요.

여기에 대기업과 날을 세워서 별로 좋을게 없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CGV가 개관 1년만에 관객동원 1위를 차지하며 서울극장의 자존심을 무너트린 데다가,

 

이 업체의 성공으로 멀티플렉스가 확장될 기미가 보이자 곽사장은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이즈음에 바로 지하철 두 정거장 떨어진 동대문에 충무로 토착업자가 MMC라는 멀티플렉스를 개관합니다.

 

여긴 대기업도 아니니 만만하겠다, 서울극장은 바로 견제에 나섭니다.

자신들이 배급하던 영화는 전부 여기에 안줍니다. 앞에서 봤듯이 개봉작의 절반 이상이죠.

 

그 외의 소규모 제작사들에게도 충분히 압력을 가할 수 있습니다.

 

결국 MMC는 개관당시 10개관 중 불과 3개관(확실치는 않지만)에서만 영화를 개봉하는 상황을 맞습니다.

이 사건에 앞서 98년 개관했던 씨네코아(서울극장과 1블럭 사이이죠) 역시 디즈니 영화를 받지 못하는 견제를 당했던 바 있지만, MMC는 그 압력의 수준이 달랐습니다.

 

씨네코아는 위치나, 구조(복합상영관)상 큰 위협이 안되지만 MMC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사람이 들끓는 동대문에 있는데다 분명히 멀티플렉스 구조였으니까요.

 

여기를 ''확실히''조짐으로써 다른 멀티플렉스 진출을 고려하는 업체들에게 분명히 경고를 하려던 ''시범케이스''차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CGV에 이어 메가박스가 대성공을 거두고, 롯데가 가세하면서 이들은 파죽지세로 전국 체인망을 만들어 나갑니다.

결국 이들의 파워는 기존의 배급망을 무력화시킵니다. 어

 

느 지역이건 멀티플렉스가 장사가 가장 잘 되는데 제작사나 해외직배사들이 배급업자를 통할 이유가 없죠.

 

이 전국체인망들은 독자적으로 영화를 수급하게 됩니다.

배급망의 붕괴는 두 가지로 인해 더 가속화 됩니다.

첫번째, 아시다시피 쉬리 이후 한국영화의 파워가 막강해지면서 일년에 4-5편을 만드는 대형제작사가 생겨나고, 외국 메이저 직배사들의 파워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더 이상 여름, 겨울대작을 미끼로 일년내내 외국영화를 상영케 하는 수법이 안통한다는 말이죠.

두번째, CJ와 동양이 한국영화 제작 및 배급을 맡으면서 극장과 배급을 겸하는 큰손으로 올라섭니다. 예전의 서울극장이 가졌던 위치를 차지한 거죠.

결국 곽사장은 지금 한국영화 파워랭킹에서 한참 뒤로 밀려난 상태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보려 했던 당대 최고의 거물은 이렇게 몰락한 거죠.

자, 그럼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냐? 그런건 아닙니다. 새로운 강자간의 파워게임이 여전히 진행중이거든요.

작년 말 반지의 제왕이 메가박스에서 개봉되지 못할 뻔한 사건이 있었죠.

 

바로 이 영화의 배급을 대행했던 CJ와 동양간의 알력때문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즉, CJ가 반지의 제왕 개봉시 CGV에편향된 프로모션에다 메가박스에는 영화프린트 수를 제한했다면서 동양측에서 메가박스에서 이후모든 CJ 배급영화들을 거부하겠다고 했었죠.

 

파워게임입니다. CJ가 영화수급력에서는 우위에 있지만 (드림웍스+시네마서비스) 메가박스 관객을 모두 잃는다면 CJ도 큰 타격이긴 하죠.

다행히 화해했지만 불씨는 잠복중입니다.

 

만일 이것이 계속되었다면 보복조치로 전국의 CGV에서 동양이 배급한 ''태극기 휘날리며''를 볼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배급체계는 여전히 개선이 요구됩니다.

 

극장의 일부체인 독점이 없어져야 배급이 극장의 횡포에 휘둘리지 않고 정상적으로 될 겁니다.

 

극장은 제작자와 관객 입장에서는 서로 만나고 소통하는 장소이지만, 배급업자와 극장 운영업자에게는 전쟁터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은 90년대까지의 터무니없는 영화배급보다는 훨씬 나아진 상황이라고

자평해 봅니다. 앞으로 더욱 나아지겠지요.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15개의 댓글

2020.02.14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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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재밌게 읽고 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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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서울극장 아직도 있네;; 90년대생이라 멀티플렉스 아니면 영화를 본기억이 잘 없음 천호에 한일시네마 몇번이 전부인데 이런일이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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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쨰빽수

나 91년생인데 강서구쪽에 극장에서 해리포터 볼때 직접 손으로 그린 옥외 광고판? 그런거 내거는 극장에서 초딩때 영화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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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참고로 지금은 서울 극장앞에가면 중국인들 버스 집합장소인지 중국인들 천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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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나이 때문에 쉬리 나오고 몇년 뒤에 tv에서 봤는데 개쩔었음을 뒤 늦게 느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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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녹번이었나 역촌이었나 암튼 그 근처에 도원극장이라고 있었는데 기억나네

영화 포스터 직접 그리는 곳이었음 여기서 영화 좀 봤는데 우주전쟁이랑 괴물 보러간거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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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7
@내인생

녹번역에서 은평구청 가는길쪽에 있는 도원극장.. 중고등학생때 거기서 영화 많이봄 반지의제왕 123 거기서 다봤는데 아련하구먼 없어진게 언제쯤인지는 잘모르겠음. 실미도까진 상영해서 관람한 기억이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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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8
@내인생

어릴 때 그 앞 교회 다녔는데 일요일마다 포스터 바뀌는거 보는 재미가 쏠쏠했지 ㅜㅜ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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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고향에 있던 피카디리극장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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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재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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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스크롤하다가 댓글보고 다시 읽었는데 읽길 잘했네 2004년에 쓴글이라니..신기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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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극장에서 영화 딱한개 봐봤다. 미녀는 괴로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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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캬 재밌네 그후 15년간 한국 영화계도 엄청난 확장을 이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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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이건희 회장이 오디오 매니아답게 소리의 중요성을 아는구만

 

CGV 갈 때 마다 느끼는거지만 고음 세팅이 최악이라 치찰음이 늘 거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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