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스티븐킹 명작 단편 '사다리의 마지막 단'

사다리의 마지막 단 The Last Rung on the Ladder

(스티븐 킹의 단편집 -나이트 쉬프트 중에서 발췌)


어제 카트리나의 편지를 받았다. 아버지와 함께 로스앤젤레스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안되었을 때였다. 델라웨어의 월밍턴으로 보낸 편지였는데, 벌써 두 번이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 후였다. 요즘은 사람들이 참 자주 옮겨 다닌다. 이전 주소 위의 가위표나 ‘주소변경’ 스티커가 무슨 추궁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조금은 우습기도 하다. 편지는 구겨지고 지저분했는데, 한쪽 모서리는 아예 완전히 접혀 있었다. 편지를 읽고 나서야 내가 전화기를 든 채 거실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려던 참이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나이가 드신 데다가, 이미 두 번씩이나 심장발작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지금 전화를 해서 카트리나의 편지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아버지는 충격으로 돌아가실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이런 편지 이야기, 아내나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가 아닌 사람에게 하기에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였다. 최근 몇 년간은 친구를 깊이 사귀지 못했고, 아내 헬렌과는 1971년에 이혼한 상태였다. 지금은 크리스마스 카드 정도만 주고받는 사이다.

‘어떻게 지내? 일은?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카트리나의 편지 때문에 한 잠도 자지 못했다. 엽서에 적어 보냈어도 되는 내용이었다. “사랑하는 오빠에게” 라는 인사말 다음에는 단 한 문장밖에 적히지 않은 편지였다. 하지만 그 한 문장은 충분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비행기에서의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뉴욕에서 서쪽으로 날아가는 동안 5500미터 상공에서 아버지의 얼굴은 늙고 지쳐 보였다. 오마하 상공을 지날 때, 그러니까 기장이 그렇게 안내방송을 했을 때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보기보다 훨씬 멀구나, 래리.”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슬픔이 불편했던 것은, 내가 그 슬픔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카트리나의 편지를 받고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것 같다.

우리는 오마하 서쪽 130킬로미터쯤에 위치한 헤밍퍼드홈이라는 곳에서 자랐다.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 카트리나, 그리고 나. 카트리나는 나보다 두 살 아래였는데, 키티라고들 불렀다. 어릴 때는 예쁜 아이였고, 커서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심지어 여덟살 때, 그러니까 헛간에서 사고가 난 그 해에도 옥수수수염 같은 그 애의 머릿결은 환하게 빛났고 눈은 언제나 짙은 스칸디나비안 블루였다. 그 눈을 한 번이라고 보기만 하면 어떤 남자든 정신을 못차릴 것이다.

둘 다 시골아이로 자랐다고 짐작이 될 것이다. 아버지는 37,000평의 비옥한 땅에 사료용 옥수를 재배하며 가축도 길렀다. 모두들 그곳을 ‘고향’이라고 불렀다. 그 시절에는 모든 길이 먼지투성이의 비포장 도로였고, 제대로 된 도로라고는 80번 주 횡단 도로와 96번 도로가 고작이었다. 마을로 나가려면 사흘 정도 준비를 해야 하는 그런 시절이었다.

지금의 나는 미국 최고의 회사법 변호사 중 한 명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 말이 맞다. 한 번은 대기업의 회장이 중역들 앞에서 나를 살인청부업자로 소개한 적도 있다. 나는 고급양복을 입고 최고급 가죽으로 만든 구두를 신는다. 세 명의 상근직 보조 변호사를 두고 일하는데, 필요할 때면 열 명이라도 불러 쓸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책을 어깨 너머로 메고 교실이 하나 밖에 없는 학교를 향해 먼짓길을 걸어다녀야 했고, 옆에는 항상 카트리나가 있었다. 언젠가, 봄이었는데, 맨발로 학교에 간 적도 있었다. 아직은 신발을 신지 않았다고 해서 식당이나 가게에서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었다.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후 아버지마저 직장을 잃고 트랙터를 파는 외판원으로 나섰다. 카트리나와 나는 컬럼비아 시티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 가족의 마지막이었다. 당시에는 그렇게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름대로 잘 해내셨고, 판매상 자격증을 따더니 9년 전에는 관리직으로 옮기셨다. 나는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네브래스카 대학에 들어갔고, 비록 힘들기는 했지만 작전에 따라 공을 차는 것 이외에 다른 것도 배울 수 있었다.

카트리나는 어떻게 됐느냐고? 지금 그 아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11월 초의 어느 토요일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머니는 컬럼비아 시티의 시장에, 아버지는 이웃집에(가장 가까운 이웃이 10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었다) 농기구 수리를 도와주러 가고 없었다. 일하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 날 따라 도무지 볼 수가 없었고, 결국 아버지는 한 달도 못되어 그 아저씨를 내보냈다.

아버지는 가시기 전에 나에게 할 일을 주고 가시며(키티가 해야 할 일도 조금 있었다.) 일을 마치기 전에는 놀면 안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때는 11월이었고, 한 해 농사는 이미 다 끝난 상태였다. 그 해에도 대풍이었다. 다시는 그런 일은 없었지만.

그 날 일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었고, 춥지는 않았지만, 곧 추워지려는 낌새는 있는 날씨, 이제 곧 서리나 얼음, 눈과 진눈깨비를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날씨였다. 들판은 황량했다. 짐승들도 동작이 굼뜨고 활기가 없었다. 그 날 따라 이전에는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던 어떤 기운이 집 안을 맴도는 것 같았다.


그런 날씨에 있기에는 헛간만한 곳이 없었다. 우선 따뜻해서 좋았고, 건초와 짐승의 털, 그리고 말똥 냄새가 뒤섞인 기분 좋은 냄새가 가득하고, 지붕 밑에서는 헛간에 둥지를 튼 새들이 내는 신비로운 소리도 들렸다. 고개를 들면 지붕의 갈라진 틈으로 들어오는 11월의 빛이 마치 내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흐린 가을 날엔, 그보다 더 근사한 놀이는 없었다.

헛간 3층의 들보에 사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바닥까지 이어지는 사다리였다. 오래되고 낡아서 부모님은 우리가 오르지 못하게 했다. 뜯어내 버리고 튼튼한 새 사다리를 달겠다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수 천 번도 더 약속했지만, 시간이 날 때 마다 항상 다른 일이 생기곤 했다…. 이웃집에서 농기구를 수리하는 것도 그런 일 중의 하나였다. 아니면 일꾼이 나오지 않는다든지.

사다리는 모두 마흔 세단이었다. 키티와 나는 너무 자주 세어봤기 때문에 이제 외우고 있었다. 그 쓰러질 듯한 사다리를 오르면 건초가 가득한 헛간 바닥에서 21미터 정도 높이에 있는 들보에 이른다. 들보를 따라 옆으로 열두걸음 정도 가면, 무릎이 떨리고 발목이 아프면서 입안이 바짝바짝 타는데, 거기가 건초더미 바로 위가 된다. 그곳에서 점프를 하면, 죽음과 같은 순간적인 짜릿함과 함께 21미터 아래 푹신한 건초더미 위로 떨어진다. 달콤한 건초냄새, 그렇게 다시 태어나는 여름냄새와 함께 쉬면서 어느새 기분은 한여름 속으로 되돌아가는데, 그 느낌이란…. 나사로(예수에 의해 죽음에서 소생한 인물)의 기분이 그랬을까? 그 기분을 한 번 느끼고 나면 다가오는 가을도 그런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금지된 일이었다. 만일 부모님께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어머니는 찢어지는 소리를 지르고, 아버지는 회초리를 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자랄만큼 자랐다는 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다리, 부드러운 건초 더미 위의 사다리까지 가기 전에 들보에서 균형을 잃고 떨어지면 딱딱한 헛간에 완전히 박살이 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 유혹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지키는 사람만 없으면… 더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 날도 시작은 다른 날과 같았다.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달콤한 느낌. 우리는 사다리 아래에 서서 서로를 마주보았다. 키티는 높은 깃이 달린 옷을 입었고, 그 짙은 눈은 평소보다 더 반짝거렸다.

“먼저 해.” 내가 말했다.

키티가 즉각 맞받아쳤다. “자신있으면 먼저 해 봐.”

내가 금방 말했다. “여자가 남자보다 먼저 하는거야.”

“위험한 상황에서는 안 그래.” 동생이 새침하게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 헤밍퍼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말괄량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하기는 하지만, 먼저하지는 않으려 들었다.

“좋아.” 내가 말했다. “간다.”

그때 나는 열살이었고, 어찌나 말랐던지 몸무게가 40킬로그램 남짓이었다. 여덟 살이었던 키티는 나보다 9킬로그램 정도 더 가벼웠다. 사다리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우리는 그 사다리가 항상 우리를 지켜줄 거라고 믿었다. 뭐, 그런 생각 때문에 개인이든 국가든 문제를 겪게 마련이지만.

그 날 느낄 수 있었다. 높이 오를수록 먼지 낀 헛간의 공기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반쯤 올라갔을 때쯤, 만약 떨어지면 어덯게 될 지를 머릿 속에 그려봤다. 나는 멈추지 않고 올랐고 마침내 대들보를 잡고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키티의 얼굴,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는 그 얼굴은 그저 하얀 타원형으로만 보였다. 색 바랜 체크무늬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동생은 인형같았다. 내 머리 위, 처마 밑에서는 제비가 밝게 지저귀고 있었다.

다시, 말이 저절로 나왔다.

“어이, 거기 아래!” 내가 불렀다. 날리는 왕겨와 먼지를 지나 목소리가 동생에게 전해졌다.

“어이, 거기 위!”

나는 일어섰다. 잠시 몸이 앞 뒤로 흔들렸다. 언제나 그렇듯이 밑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어떤 공기의 흐름이 갑자기 생기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중심을 잡으려고 팔을 벌리고 몸을 조금 움직일 때 내 가슴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한번은, 제비가 얼굴 가까이 날아오는 바람에 거의 중심을 잃을 뻔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의 공포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마침내 무사히 건초더미 위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이제 아래를 내려다봐도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가장 기대되는 순간. 발을 떼고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일부러 코를 막고, 언제나 그렇듯이, 갑자기 다시 찾아 온 중력에 몸이 빨려 드는 것처럼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아냐, 실수야, 다시 돌려줘.’라고 소리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총알처럼 건초 더미 위에 떨어지면, 그 달콤하고 먼지 낀 냄새가 피어올랐다가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천천히 다시 내려앉았다. 언제나처럼, 코에선 콧물이 흘렀고 놀란 쥐 한 두 마리가 더 깊이 몸을 숨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키티도 건초 더미 위에서 다이빙을 하고 나면 몸이 새로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해서 그 때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지만, 편지를 받고 난 지금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마치 수영이라도 하듯이 건초 더미를 헤치며 다시 헛간 바닥으로 나왔다. 바지 안과 셔츠에 건초가 가득했다. 신발 속이나 팔꿈치도 마찬가지였고, 머리카락이 건초 부스러기투성이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때쯤 동생은 사다리의 중간 쯤을 오르고 있었다. 금발의 꽁지 머리가 먼지 사이로 비치는 빛을 받으며 어깨 언저리에서 찰랑거리며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다른 날에는 햇빛이 비쳤겠지만, 그날은 동생의 머리가 제일 밝게 빛났다. 그 위에서 반짝거리는 것이라고는 동생의 그 꽁지머리밖에 없었다.

사다리가 앞 뒤로 흔들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까지 느슨했던 적은 없었다.

동생이 들보에 도착했다. 나보다 훨씬 높은 곳에. 이제 내가 작아졌고, 휘날리는 왕겨 사이로 동생의 목소리가 들릴 때면 올려 든 나의 얼굴이 타원형으로 보일 것이다.

“어이, 거기 아래!”

“어이, 거기 위!”

동생이 들보 끝을 따라 걸었다. 건초 더미 위에 도착하는 것을 보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언제나 그랬다. 동생이 더 차분하고…어린 여동생에게 쓰기에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운동신경도 더 좋았다.

동생이 일어섰다. 낡은 신발 끝으로 선 채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렇게 동생은 뛰어내렸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일, 어떻게도 묘사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어떻게든, 전할 수는 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하지만 그 어떤 묘사로도 그 아름다운 광경을 완벽하게 전할 수는 없다. 얼마나 완벽한지, 내 인생에서 몇 안되는 진실의 순간, 말 그대로 진실의 순간. 아니, 나는 전할 수가 없다. 글이 됐든, 말이 됐든 나는 그 광경을 제대로 전할 재주가 없다.

잠시 동안 동생은 그렇게 공중에 매달린 것처럼 보였다. 마치 3층 높이에만 불어대는 그 신기한 공기의 흐름에 떠받들린 것처럼, 네브래스카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황금빛 깃털을 가진 제비같았다. 그게 바로 내 동생 키티였다. 팔을 뒤로 젖히고 등을 구부린 그 모습이란, 그 순간만은 동생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잠시 후 동생은 건초 더미 위에 떨어져 보이지 않았다. 동생이 떨어진 자리에서 왕겨와 함께 웃음소리가 피어 올랐다. 동생이 사다리를 오를 때 얼마나 위험해 보였는지에 대해서는 그새 잊어버렸고, 어느새 나 자신이 반쯤 다시 오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날고 싶었지만, 언제나처럼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나는 우아하게 나는 대신 탄환처럼 떨어졌다. 키티처럼 아래에 있는 건초 더미를 믿고 우아하게 뛰어내리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얼마나 오래 그렇게 놀았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열 번 남짓 다이빙을 하고 나서 바깥의 날씨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부모님이 예정대로 돌아오시면 온통 왕겨투성이인 우리들을 발견할 것이고…. 그건 우리가 한 짓을 고스란히 실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동생과 나는 각각 한 번씩만 더하기로 했다.

먼저 사다리를 오르면서, 발 밑의 사다리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고 오래된 못이 삐걱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처음으로 정말,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서움이 덮쳤다. 아직 절반도 오르지 않은 상태였다면 다시 내려갔을 것이고, 그와 함께 그날의 놀이도 끝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들보가 더 가까웠고, 거기가 더 안전할 것 같았다. 위에서 세 번째 단을 밟자 못소리가 더 커졌고 나는 두려운 나머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너무 많이 와버린 것이 분명했다.

그 때 들보가 손에 닿았고, 체중을 그 쪽으로 옮겼다. 차갑고 불쾌한 땀이 흐르는 이마에 마른 나뭇가지가 닿았다. 이제 게임은 더 이상 재미가 없었다.

나는 얼른 건초 더미 위로 뛰어내렸다. 낙하할 때의 그 즐거움도 느낄 수 없었다. 아래로 떨어지면서, 나는 밑에 있는 것이 부드러운 건초더미가 아니라 딱딱한 바닥이라면 어떨가 상상했다.

다시 헛간 바닥으로 나왔을 때 키티는 사다리 중간 쯤을 서둘러 오르는 중이었다. 나는 소리쳤다. “어이, 내려와! 안전하지 않단 말이야!”

“괜찮을 거야!” 동생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오빠보다 가볍잖아.”

“키티……”

나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그때 사다리가 부서졌으니까.

썩은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나는 소리쳤고, 키티는 비명을 질렸다. 내가 너무 많이 와버렸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지점에 동생이 매달려 있었다.

동생이 디디고 있던 사다리의 단이 부서지면서 사다리가 양쪽으로 벌어졌다. 완전히 부서져 버린 사다리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제 움직일 때가 되었다고 결심한 무슨 벌레, 사마귀나 ‘사다리 벌레’처럼 보였다.

그렇게 사다리는 부서졌다. 떨어진 파편들이 바닥에 부딪히면서 바닥에서 먼지가 일었고, 놀란 소들이 걱정스럽게 울어댔다. 그 중에 한 마리는 뒷발로 우리 문을 차기까지 했다.

키티는 아주 높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오빠, 오빠, 도와 줘!”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고 있었다. 즉시 그 쪽을 쳐다봤다. 끔찍하게 무서웠지만,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20미터 정도 위에 있는 동생은 청바지를 입은 다리로 버둥댔고 그 위로 헛간에 사는 제비가 종알댔다. 나는 무서웠다. 그렇지. 그리고, 나는 아직도 서커스의 공중곡예를 못 본다, 텔레비전 중계라고 해도 말이다. 볼 때마다 울렁거린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키티!” 나는 소리쳤다. “꼭 붙잡고 있어! 꼭 잡아!”

동생은 시키는 대로 했다. 더 이상 다리를 허우적대지도 않고 얌전하게 매달렸다. 동생은 멈춰버린 공중그네에 매달린 곡예사처럼 그 작은 손으로 썩은 사다리의 마지막 단을 꼭 붙잡고 있었다.

나는 건초더미 위로 달려가 건초를 양손 가득 집어 와서 바닥에 뿌렸다. 다시 건초 더미로 가고, 다시 가고, 다시 가고….

그 다음은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건초가 코에 걸려서 재채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는 것 밖에. 나는 계속 달렸고, 사다리가 놓여 있던 자리에 건초를 쌓았다. 아주 작은 건초 더미였다. 건초 더미를 한 번 보고, 위에 매달린 동생을 한 번 보고, 무슨 만화에나 나오는 우스꽝스런 광격으로 보일 장면이었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오빠, 더는 못하겠어!” 동생이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키티, 해야만 해! 꼭 붙잡고 있어야 돼!”

계속 갖다 날랐다. 건초가 허리 아래까지 쌓였다. 계속 날랐다. 이제 건초 더미는 얼굴 높이까지 쌓였다. 하지만 우리가 뛰어내리던 건초 더미는 7미터 반 정도 깊이의 건초 더미였다. 다리 정도만 부러진다고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빗나가면 죽을 지도 몰랐다. 계속 갖다 날랐다.

“오빠, 사다리! 사다리가 부서져!”

사다리가 동생의 몸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천천히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은 다시 미친듯이 다리를 허우적댔고, 그런 식으로 몸을 흔들어대면 건초더미 위에 떨어질 수가 없었다.

“안 돼!” 나는 소리쳤다. “안 돼, 그러지 마! 그냥 손만 놓으면 돼! 손 놔, 키티!”

더 이상 건초를 나르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그냥 운에 맡기는 것 말고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동생은 손을 놓고 아래로 떨어졌다. 칼이 떨어지는 것처럼 곧장 떨어져 내렸다. 나는 동생이 그렇게 영원히 떨어지는 줄만 알았다. 금발의 꽁지머리가 머리 위로 치솟았다. 동생은 눈을 감았고, 얼굴은 사기그릇처럼 창백했다. 하지만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동생은 마치 기도할 때처럼 두 손으로 입을 꼭 감싸쥐고 있었다.

건초 한 가운데로 떨어졌다.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사방으로 건초가 날려 건초 더미에 가려 동생은 보이지 않았고 동생의 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 ‘쿵’하는 그 소리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주 큰 소리, 감당할 수 없을만큼 큰 소리였다. 하지만 봐야만 했다.

그제야 울음을 터뜨린 나는 달려가 건초더미를 파헤쳤다. 내 뒤로 건초더미가 쌓여갔다. 먼저 청바지가 보이고, 색바랜 셔츠와…… 키티의 얼굴이 나타났다.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고 눈은 꼭 감은 얼굴이었다. 동생이 죽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동생이 죽었다는 걸 알았다. 눈 앞이 아득해졌다. 11월의 어둠, 그 어두운 회색 세계에서 눈에 띄는 색깔이라고는 동생의 금빛 꽁지머리 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생이 눈을 뜨자 파란 눈동자가 보였다.

“키티?”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꺽꺽거리는 목소리로 동생을 불렀다. 목에 건초 부스러기가 걸린 것도 같았다. “키티?”

“오빠?” 동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살아있는거야?”

동생을 건초 더미에서 꺼내 오락 껴안았다. 동생도 내 목에 팔을 둘렀다.

“살았구나.” 내가 말했다. “살았어, 살았어.”

동생은 왼쪽 발목이 부러진 것에 그쳤다. 컬럼비아 시티에서 온 피더슨 선생님은 아버지와 나와 함께 헛간에서 나오면서 지붕쪽을 한참이나 쳐다봤다. 사다리의 마지막 단은 아직도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못에 걸려 있었다.

선생님선생님은 꽤 오랫동안 그곳을 쳐다봤다. “기적입니다.” 내가 모아 놓은 건초 더미를 발로 차며 그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낡은 자동차를 타고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목재 창고로 가자, 래리.” 차분한 목소리였다. “가서 뭘 할 지는 알고 있겠지?”

“예, 아버지.”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한 대씩 때릴 때마다, 동생을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느님께 말해야 한다.”

“예, 아버지.”

그렇게 우리는 목재창고로 갔다. 나는 많이 맞았다. 얼마나 맞았는지, 일주일 동안 밥도 서서 먹고, 2주 동안 쿠션을 놓고 의자에 앉아야만 했다. 아버지가 그 붉고 거친 손으로 내려 칠 때마다 나는 하느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큰 목소리로, 아주 큰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 두 댄가 세 대를 맞을 때만 빼고, 아버지도 내가 말하는 것을 들으셨을 것이다.

부모님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동생을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동생 방의 창문 밖에 작은 새가 한 마리 앉아있던 것이 기억난다. 붕대가 친친 감긴 동생의 발이 선반 위에 올려져 있었다.

동생은 나를 오랫동안 쳐다봤다. 어찌나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지 내가 불편할 지경이었다. 이윽고 동생이 입을 열었다. “오빠, 오빠가 건초를 갖다 놓은 거지.”

“어, 내가 그랬어.”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다른 방법이 없잖아? 사다리는 한 번 부서지면 다시 오를 수가 없으니까.”

“오빠가 뭘하고 있는 건지 몰랐어.” 동생이 말했다.

“당연하지! 너 바로 밑에 있었으니까, 빌어먹을!”

“밑을 볼 수가 없었어.” 동생이 말했다. “너무 무서워서 계속 눈을 감고 있었으니까.”

나는 놀란 눈으로 동생을 쳐다봤다.

“몰랐다고? 내가 뭘 하는 지 몰랐단 말이야?”

동생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럼 내가 뛰어내리라고 해서….. 그냥 시키는 대로 한거야?”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티, 어떻게 그럴 수가?”

동생은 그 깊고 푸른 눈으로 지그시 나를 쳐다봤다. “오빠가 뭔가 해놨을거라고 믿었으니까” 동생이 말했다. “우리 오빠니까, 오빠가 지켜 줄 거라고 알았어.”

“키티, 얼마나 위험했는데.”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동생은 일어나서 손을 내리고 볼에 뽀뽀를 했다. “그런 거 몰랐어.” 동생이 말했다. “오빠가 밑에 있다는 것만 알았어. 아함, 졸리다. 내일 봐, 오빠. 깁스를 해야된대. 피더슨 선생님이 그랬어.”

동생은 한 달 조금 못 되게 깁스를 하고 다녔고, 같은 반 아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거기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심지어 나한테도 서명하라고 했다. 깁스를 떼어나자, 그것으로 헛간 사고도 끝이었다. 아버지는 아주 튼튼한 사다리를 새로 달았지만, 나는 다시는 들보 위에 올라가 뛰어내리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는 키티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끝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흐레 전, 키티가 로스앤젤레스의 보험회사 건물 꼭대기 층에서 뛰어내리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LA타임즈의 기사가 지금 내 지갑에 들어있다. 아마도 평생 지니고 다닐 것 같다. 하지만 기억하고 싶은 사람의 사진이나 정말 인상깊었던 공연의 티켓, 또는 월드 시리즈 입장권을 지니고 다니는 것과는 다른 이유에서다. 나에게 그 신문기사는 내가 지고 다녀야만 하는 무거운 짐 같은 것이다. “콜걸 투신 자살”이 그 기사의 제목이다.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의미없는 일들을 제외하고 나면 내가 아는 것은 그게 전부다. 동생은 오마하의 상경 계열 대학으로 진학할 예정이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그 해 여름에 미인대회에서 수상한 다음 법률가와 결혼을 해버렸다. 좀 짓궂은 농담처럼 들린다. 그렇지? 나의 키티.

내가 법과 대학원에 다닐 때 동생은 이혼했고, 나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보냈다. 열 장 정도 되는 그 편지에서 동생은 결혼 생활이 어땠는지, 얼마나 엉망이었는 지, 그리고 아이라도 있으면 조금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적었다. 동생은 자기한테 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법과 대학원에서 일주일 수업을 빼먹는 것은 인문학부에서 한 학기를 통째로 빼먹는 것만큼이나 치명적인 일이었다. 법대생들은 무슨 경주용 개처럼 쉬지 않고 달려 나갔으니까. 잠깐 흐름에서 낙오하면 그걸로 영원히 끝이었다.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한 동생은 재혼했다. 그 결혼마저 깨졌을 때 나는 법과 대학원을 마친 상태였다. 다시 편지가 날아왔다. 좀 더 짧아졌지만, 훨씬 더 비참한 편지였다. 다시는 그 (결혼이라는) 회전목마에 오르지 않을 거라고 했다. 결혼은 족쇄라고, 뭘 잡으려면 말에서 뛰어내려 이마가 깨지는 수 밖에 없는데, 공짜로 타는 대가가 그런 거라면 누가 그걸 타려고 하겠냐고 했다. ‘추신. 와 줄 수 있어, 오빠? 오랫동안 못 본 것 같은데.’

나는 답장에서 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업무 강도가 상당한 직장에 자리를 잡았는데, 아직 말단이라서 일만 죽어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을 접어 두었다가 나중에 만회하려면 일 년은 족히 걸릴 거라고 했다. 그게 내가 쓴 긴 답장의 내용이었다. 온통 나의 일에 관해서만 적었던 그 편지.

나는 항상 동생의 편지에 답장을 했다. 하지만 정말 동생이 쓴 편지라는 것은 믿을 수가 없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건초 더미가 저 아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던 것과 비슷했다……그 건초 더미 때문에 내가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믿지 못했다. 나는 편지지 맨 아래에 ‘키티’라고 서명한 상심한 여인이 내 동생과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 동생은 금발의 꽁지머리를 한, 아직 가슴도 나오지 않은 소녀였다.

먼저 편지를 끊은 것은 동생이었다. 크리스마스 카드와 생일 카드만 보내왔는데, 답장은 아내가 대신 해주었다. 그러다 아내와 이혼한 후에는 완전히 잊고 지냈던 것이다.

다음 해의 크리스마스와 생일에는 옮긴 주소로 카드가 날아왔다. 처음 카드를 받았을 때는 ‘아하, 키티한테 이사했다고 말해야겠군.’하고 생각했지만,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어른이 되었고, 동생이 보험회사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 뿐이다. 키티는 거기에 항상 건초 더미가 있을 거라고, ‘오빠가 뭔가 해 놨을 거라고’ 믿는 아이였다. 중요한 건 바로 그것 뿐이다. 그리고 동생의 편지.

요즘은 사람들이 참 자주 옮겨 다닌다. 이전 주소 위의 가위표나 ‘주소변경’ 스티커가 무슨 추궁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조금 우습기도 하다. 동생은 편지 겉봉의 왼쪽 위에 투신하기 직전까지 살았던 주소를 적어 놓았다. 반뉘스에 있는 근사한 아파트였다. 아버지와 나는 함께 그곳에서 동생의 물건을 챙겼다. 주인 아주머니는 좋은 분이었다. 아주머니는 키티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편지에는 동생이 죽기 2주 전의 소인이 찍혀 있었다. 이사만 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빨리 나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동생은 기다리다 지쳤던 모양이다.

오빠.

요즘 들어 자주 생각하는 건데…… 오빠가 건초 더미를 쌓기 전에 사다리의 마지막 단이 부러져 버렸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사랑하는 키티.

그래. 동생은 기다리다 지쳐 버린 것이 틀림 없었다. 동생은 내가 다 잊어버린 줄 알았을 거라고 짐작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믿는 것이 덜 아팠다. 동생이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죄책감을 벗을 수가 없을 테니까.

그렇게 정리를 하고 나서도 요즘 들어 쉽게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설명할 수가 없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할때마다 동생이 헛간 3층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짙은 푸른 색 눈을 커다랗게 뜨고, 몸을 구부린 채 팔을 뒤로 한껏 젖힌 자세로 떨어지는 동생의 모습이.

동생은 거기에 항상 건초더미가 있을 거라고 믿는 아이였다.


fin.

12개의 댓글

2020.02.13

씁쓸한 글이네

0
2020.02.13

이걸 이렇게 통채로 올려도 되나? 나름 정식출판돼있는 건데 전문을 올렸네

0
@Earlgrey

야 그냥 읽어 나머지는 내가 감수할게

4
2020.02.14
@코코넛맥그리거

나야 읽은지 오래된 글이긴 한데..

0
2020.02.14
@코코넛맥그리거

패기롭다 잘 읽고간다

0
2020.02.17
@코코넛맥그리거

존멋 ♡.♡

 

재판에서 뵙겠습니다~ ^^

1
2020.02.14

거장답네

 

요즘은 스티븐킹급 네임벨류 아닌 이상

이런글을 써도 길다고 안 읽힐 거라는 게 슬프다

0
2020.02.14

아흐레 전, 키티가 로스앤젤레스의 보험회사 건물 꼭대기 층에서 뛰어내리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의 기사가 지금 내 지갑에 들어있다.

 

ㅡㅡㅡㅡㅡㅡ

 

여기 뭐 신문 이름 괄호에 들어있어서 폰트취급받아 깨진 듯

0
@취생몽사

수정완료

0
2020.02.14

와 시발 '어릴 때 놀다 사다리 부러졌음'을 이렇게 쩌는 소재로 써먹는 걸 보면 역시 거장이아

0
2020.02.15

분명 들어올땐 스타킹이었는데;;

0
2020.02.1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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