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독일 근현대 산책] 2. 프로이센의 개혁

 

 

 

 

비록 나폴레옹과 혁명 프랑스가 꺾어야 할 적이긴 했어도, 독일의 군주들은 혁명 프랑스가 보여준 근대성에 경탄하고 프랑스처럼 자기 나라를 개혁하고자 했습니다. 라인 연방의 군주들은 물론 프로이센의 호엔쫄레른 가문 역시 개혁 의지가 대단하였습니다. 특히 호엔쫄레른 가문은 프랑스 모델에 따라 프로이센을 개혁하고 힘을 길러 프랑스에게 복수하기를 원했지요.

 

 

그런데 시민 계급의 혁명에 의해 성립된 프랑스와는 달리 프로이센 개혁을 이끈 것은 왕을 중심으로 하는 지배층이었습니다. 즉 프랑스가 아래로부터의 개혁」이었다면 프로이센은 위로부터의 개혁을 시도한 것이었습니다. 프로이센의 개혁을 이끌었던 중심인물은 슈타인 남작 하인리히 프리드리히 카알(1757~1831), 카알 아우구스트 폰 하르덴베르크 후작(1750~1822)」으로, 이들의 지휘 아래 발슈타인 공작 게프하르트 폰 블뤼허(1742~1819), 빌헬름 나이트하르트 폰 그나이제나우 백작(1760~1831),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1755~1813)등이 프로이센 개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프로이센을 개혁하고자 하는 호엔쫄레른 가문의 강력한 의지 하에, 고위 관료·군인·법률가·학자들이 모여들면서 프로이센의 개혁은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착실하고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VomStein_(Gemälde_Rincklake).jpg

<슈타인 남작 하인리히 프리드리히 카알(1757~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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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 아우구스트 폰 하르덴베르크 후작(1750~1822).>

 

 

Blücher_(nach_Gebauer).jpg

<발슈타인 공작 게프하르트 폰 블뤼허(1742~1819).>

 

 

George_Dawe,_Field_Marshal_August_Neidhardt,_Count_of_Gneisenau_(1760–1831),_1818.jpg

<빌헬름 나이트하르트 폰 그나이제나우 백작(1760~1831).>

 

 

Friedrich_Bury_-_Bildnis_des_Generals_von_Scharnhorst.jpg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1755~1813).>

 

 

이들 개혁가가 공통적으로 동의했던 것은 봉건 정신이나 절대왕정 정신을 혁파하고 근대적인 국민국가 정신을 일궈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전까지 독일에서 국가란 군주와 가문의 사유재산과 같은 것이었기에, 독일 국민들에게 프랑스인들이 보여준 불굴의 투지와 자긍심, 자연스레 솟구치는 애국심을 바라는 일은 무리였습니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죽을 각오로 전 유럽을 상대했던 것에 비하면 독일 군인들은 아주 형편 없었습니다. 그들이 군주와 가문의 명령에 의해 자신과 별 상관도 없는 지배층의 사유재산을 지키려고 전쟁터로 끌려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때문에 프로이센의 개혁가들은 이것에서 지난 전쟁의 패인을 찾았고, 국가와 개인간의 결합을 꾀하게 됩니다. 즉 프로이센 국민들이 더 이상 프로이센을 남의 나라가 아니라 자신의 나라로 여기고 애국심을 다할 때에야 프로이센이 프랑스에 버금가는 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프로이센이 근대적 국민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낡은 지배구조를 완전히 바꿀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프로이센의 개혁은 정치·농업·교육·군사 분야에서 두드러지는데, 각 분야를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정치

 

우선 정치 분야에서, 개혁가들은 프로이센이 더 이상 호엔쫄레른 가문에 귀속된 가산국가(家産國家)가 아니라 호엔쫄레른 가문을 포함한 모든 프로이센 국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근대적 국가임을 공고히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가산국가적 전통에서 기인한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 관료제 역시 폐기하고, 그 대신 신하들이 법 앞에서 국가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근대적인 관료제를 도입했습니다. 또 애국심은 정치참여의 경험으로부터 생긴다고 보고, 지방 행정에 국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되었습니다.

 

 

농업

 

농업 분야에서는 그때까지도 지속되고 있던 농노제를 완전히 없앴습니다. 농민들의 인신을 자유롭게 만들어주면 이들이 자연스레 애국 시민으로 성장하리라 기대한 것이죠. 이는 그동안 토지귀족인 융커(Junker)들에게 구속되어 있던 농민들이 자유롭게 도시로 이주하는 원인이 되어 후일의 공업발전을 가능케 한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교육

 

교육 분야에서는 대학을 근대적인 규모와 학제로 개편하여 프로이센의 학문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저력을 갖추게 했습니다. 교육 분야의 개혁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지만, 훗날 프로이센의 산업 혁명과 독일의 기술력을 일구어낼 토대가 됐다는 점에서 짚어볼 만 합니다.

 

 

군사

 

마지막으로 프로이센이 혼신을 기울인 군사 분야의 개혁은 국민개병제의 정비와 참모본부 제도의 마련으로 그 꽃을 피웠습니다. 일찍이 국민개병제를 실시한 혁명 프랑스를 깊이 연구한 프로이센은, 국민들이 군대라는 공동체 속에서 함께 훈련하고 적과 싸우는 경험을 통해 연대의식과 애국심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따라 방위법, 향토방위칙령등을 연이어 공포, 20세 이상의 남성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고 40세까지 향토방위의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근대적 국민개병제를 도입했습니다. 이에 더불어 강한 군인을 만든다는 미명 하에 공공연히 자행되어 온 병영 부조리와 구타 등의 악습을 근절하고, 합리적이고 선진적인 군대를 육성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이센군을 이끄는 것이 바로 참모본부였습니다. 나폴레옹이 전장에서 보여줬던 뛰어난 지휘는 그동안 귀족 출신의 지휘관들이 주먹구구식으로 해왔던 프로이센식 지휘와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이를 통해 프로이센은 미래의 전쟁은 치밀하고 효율적인 계산능력과 전술을 갖춰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고, 전쟁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참모본부를 두게 된 것입니다. 국민개병제를 통해 징집된 애국적인 병사들과 전쟁의 달인이 된 참모들이 만들어내는 상승효과는 이후 프로이센군이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는 요인이 됐습니다.

 

 

한계

 

물론 한계도 있었는데, 호엔쫄레른 왕가의 개혁은 어디까지나 프로이센의 힘을 길러 프랑스에게 복수하기 위함이었지 결코 프랑스 대혁명 정신에 공감하거나 민주주의 이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선에서 귀족들과 타협하고 물러서는 부분도 생기면서 프랑스나 영국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라가 발전해갔습니다. 이러한 면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군사 분야로, 개혁을 거치면서 특권을 잃어버린 귀족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대신 그들에게 군 상층부에 진입할 기회를 주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점차 군대를 자기들의 사조직처럼 만들었고, 제 1차 세계대전과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까지도 독일 군부는 자기들이 민간 정부보다 우월하다는 특권의식 속에 「나라 안의 나라」가 되어 갔습니다. 재미있게도 이러한 전통이 깨어진 것은 일개 사병 출신이었던 「아돌프 히틀러」가 군부를 포함한 전 독일을 휘어잡은 제 2차 세계대전 때였습니다.

12개의 댓글

2019.12.09

이제야 슬슬재미있어 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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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이런 개혁 덕분에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국가통합이 시작 될 수 있었던 것이군요. 상당히 흥미롭고 재밌습니다.

궁금한 점은 일반 국민들이 이제 행정에 참여하게 되는 데 행정에 참여하는 방법은 흔히 지금의 공시가 생겨났다는 것인가요?

 

 

0
2019.12.10
@키시구루

시의회의 결성과 시장 선거와 시의회 선거 도입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지주나 부르주아 계급만이 피선거권을 가졌기 때문에 완전한 의미의 민주주의 시민사회는 아니었습니다.

0
2019.12.10

1848 이후 비스마르크 시대도 써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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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Sead

그럼요! 한 4~5편에서 다룰 듯 합니다.

0
2019.12.10
@Volksgemeinschaft

ㅗㅜㅑ 기대하겠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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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Sead

아랫글에서 프리드리히 리스트까지 언급하시는거 보니까 그쪽관련 전공자같은데 더 기대대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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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우리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보면볼수록 독일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똑같이 외세에 억압당했는데, 왜 우리는 식민지가 되었고

 

한쪽은 오히려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할수 있었을까요 ?

 

참 아이러니 합니다.

0
2019.12.10
@힐과행복을드려요

중부 유럽에서 프로이센과 가장 비슷한 입장이었던 나라는 폴란드입니다. 두 나라 모두 중부 유럽에 신흥 강대국이 등장하는 사태를 두려워한 외세의 개입에 의해 오랜 암흑기를 겪었죠.

 

그러나 폴란드가 스스로의 주권을 외세의 영향 하에 맡기고 잠깐의 평화를 누리려다 종국에는 유럽 지도에서 사라진데 비하여 프로이센은 철저히 부국강병책을 실시하여 결국에는 전 독일을 휘어잡은 패권국가가 됐습니다.

 

결국 프로이센의 성공 요인은 기민하고 노련하게 국제정세를 관찰하는 끈기ㆍ거기서 포착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나아가는 행동력ㆍ이 모든 걸 뒷받침할 지도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구한말 쇄국정책에 의하여 국제정세에 어두웠을 뿐 아니라 지배층은 사분오열되어 사리사욕만 탐하고 있었으니 성공하지 못한 게 아니겠습니까?

0

그리고 이 다음이 이제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넘어가는 건가요?

 

혹시 괜찮으시고 번거롭지 않으시다면 바이마르 헌법에 대해 서술해주실수 있을지요...?

 

항상 좋은 글 잘 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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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힐과행복을드려요

1차대전은 커녕 독일 통일도 안 된 시점이라 바이마르가 나오기까진 좀 걸리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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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뭐지 엄청 재밌는데 무엇을 위한 빌드업인지 보일랑 말랑 한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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