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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서에서 공익 생활한 이야기 2

생각보다 댓글이 많이 달려서 계속 써보겠음. 댓글 중에 소방서 직원도 있는 것같던데 뭔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은 느낌이라 민망하지만.. 그래도 직원과 공익의 입장 차이가 있을테니 그 분들도 공익이 어떤 생각하면서 생활했는지 보는 맛이 있을 수도?

 

1.

사실 구급대 공익이 하는 일의 90%는 출동을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실근무시간은 그 날의 출동이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달라진다. 어느 날은 2~3건 정도만 나갈 수도 있고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사무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기도 한다.

 

내가 있던 곳은 출동이 매우 잦은 편이었다. 전국 소방서에서 항상 한 손 안에 꼽힐 정도였으니, 말 다 한 셈이다. 많이 나가는 날은 약 10건, 보통 6건 정도를 나가곤 했다. 1건 당 소요시간이 적어도 30분 정도는 걸리니, 하루에 3시간 정도는 밖에서 도는 셈이다. 물론 30분이 넘는 출동이 훨씬 많긴 하지만. 애초에 구급대가 다른 출동부서에 비해 출동을 자주 나가는 편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런 이유 때문에 사무실에 있는 시간만큼은 공익에게 주어지는 업무가 별로 없다. 출동만 안까먹고 제 때 나가면 뭘 하든 그다지 신경을 안 쓴다. 심지어 주방에서 뭘 해먹거나 잠깐 휴게실에서 쪽잠을 자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언제 어떤 출동을 나갈지 모르니 쉬는 시간은 가능한 보장해주려는 것이다. 이런 점만 보면 꿀무지로 보이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2.

사실 제대로 쉬는 경우는 잘 없다. 항상 출동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집중해서 뭔가를 한다는게 어렵다. 물론 몇 달 지나고나면 익숙해지긴 하지만.. 이런 고통이 극대화되는 시간이 바로 잘 때와 먹을 때다.

 

다들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에서 식사를 하다말고 출동을 나가는 소방관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아니, 딱 먹을 때 출동 나가는게 말이 되나? 혹시 방송 각본 아니야?"

 

아니다. 실제로 밥 먹을 때 출동 나가는 경우는 많다. 많은 것을 넘어서 거의 매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먹기 직전이든, 먹는 도중이든, 먹고 좀 쉬려는 타이밍이든 점심 때인 11시~2시 사이에 출동이 없는 날은 거의 없다.

 

나도 언제는 왜 맨날 밥 먹을 때만 출동이 걸리는지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한 반장님이 납득할만한 가설을 말해주신 적이 있다.

 

개인 생활을 하는 시간이 많은 현대 사회에서 그나마 사람들끼리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식사시간이기 때문이라는 것. 각자 따로 할 일 하다가 밥 먹으러 모이는 시간이 되면 그제서야 다른 사람한테 이상이 생긴걸 알아차린다는 뜻이다.

 

꽤 흥미로운 가설이었고, 실제로 어느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다. 점심시간 부근에 걸리는 출동의 대부분은 '밥 먹다가 체해서', '목에 걸려서', '식사시간에 계속 안보여서 찾아보니 쓰러져있음', '밥 먹으라고 부르러 갔는데 상태가 이상함', '식당 찾으러 걷는 길에 아픈 사람 목격' 등이기 때문이다.

 

3.

출동 간 사이에 식은 밥을 보는 것은 솔직히 말해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소방서에서는 먹을 기회가 자주 있어서다.

 

제 때 뭘 챙겨먹기도 힘들고, 밖에서 돌아다니는 일이 많기 때문에 소방서에서 간식과 야식은 일상과 같다. 솔직히 뭘 먹을 때 공익한테 코 묻은 돈을 걷어가진 않아서 공익은 거의 얻어먹는 입장이라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다.

 

우리나라에서 소방관에 대한 인식이 참 좋다고 느낀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때다. 이곳 저곳에서 간식을 가져다줘서 정말 간식이 마를 날이 없을 정도이며, 야식을 시킬 때 서비스로 사이드 메뉴가 오는 경우도 심심찮다. 집에서 먹을 때는 평범했던 음식점이 소방서에서 배달시키니까 풍족하게 오는걸 보고 느낀 점이다. 최근에 방역 때문에 급수지원을 나간 적이 있는데, 하다못해 거기서도 빵을 선물로 받았으니.. 항상 이런 호의에 감사하면서 세상은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거창하게 배달음식이 아니라 라면을 끓여 먹을 때도 많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다른 야식은 몰라도 라면을 끓일 때마다 출동이 걸리곤 한다. 개인적으로 이걸 '라면 징크스'라고 이름 붙였는데, 다른 징크스와 보다도 라면 징크스의 적중률이 굉장히 높기에 라면을 먹을 때는 항상 불안한 마음을 갖고 물을 붓는다. 물론 불안함을 가져도 징크스가 발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음의 준비를 할 뿐.

 

4.

라면 하니까 생각난 일화를 하나 이야기하며 이번 편을 마칠까 한다. 금요일 밤에 나간 출동이었다. '불금' 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금요일 밤에는 출동이 많다. 그리고 그 출동은 술 먹은 사람(주취자) 뒤치닥꺼리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때 나간 출동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랑 술을 마시던 남자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환자는 술에 떡이 되서 필름이 끊긴 상태였다. 보통 이런 경우 가까운 병원 응급실에 던져버리고 가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하나, 아니 둘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환자가 키 190, 몸무게 130이 넘을 것으로 추측되는 거구의 사나이였다는 점이고.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그 환자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그를 옮기려는 우리의 손길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나도 체구가 보통 이상인 편이지만 이 사람이 앙탈부리듯 휘두르는 팔 다리를 보면 공포심이 들 지경이었고 설상 가상으로 한동안 사지를 휘적거리던 그의 입에서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원치 않게 그의 안주거리가 무엇인지 확인한 우리는 잠시 심호흡과 함께 명상의 시간을 가진 뒤, 같이 출동한 경찰과 그를 옮겼다. 최대한 '안주' 가 손에 닿지 않게 신경쓰려 했지만, 그런식으로는 환자를 제대로 들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위생 장갑만을 믿고 과감히 손을 썼고.. 경찰까지 총합 5명의 건장한 남성이 힘을 합쳤기에 가까스로 들 수는 있었다. 그 와중에 계속 사과만 되풀이하던 환자의 친구는 우리를 도와줄 내색도 하지 않았다. 분명 친구니까 그 무게를 알고 있어서 딴청을 피운 거겠지.

 

그렇게 우리는 5m 옮기고 10초 쉬는 식으로 간신히 환자를 구급차에 태울 수 있었다. 그 때까지도 그의 입에서 1시간 전의 안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는 점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그리고 도착한 병원에서, 환자를 받은 응급실의 간호사가 짓던 경악의 표정을 나는 외면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구급차에 남은 그의 흔적과 냄새를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20개의 댓글

2019.11.17

글이 술술 읽히네 재밌다 공갤 공익들만 보다가 이런 글 보니까 확실히 다르긴 다르네 ㄷㄷ

0
2019.11.17

방역나가면 별의 별것 다 주긴해

하루에 우유를 몇개룰 받는지 ㅋㅋ

0
2019.11.18

주취자 그켬이야... 근데 점심시간 가설은 재밌네 ㅋㅋㅋㅋ

0
2019.11.18

?공익인데 금요일밤에 근무를왜하누? 6시퇴근인데

0
2019.11.18
@현자의시간

나도 야간근무나 주말근무 해봤는데 저러면 휴가로줌 일 많은경우나 저런 특수업무 경우엔 추가근무 흔함

0
2019.11.18
@현자의시간

일반 행정 보직이랑 다르게 현장직이나 특수 근무는 정규 업무 시간 외 다른 시간으로 출~퇴근 시간을 정할 수 있고

시간을 오버한 근무시간에 대해서는 휴가 지급이 가능하다고 규정이 되어있음

지하철 공익이거나 행정직이어도 시골같은데 산불나서 화재진압 지원 나가면 비슷한 규정이 적용됨

0
2019.11.18
@현자의시간

너가알고겪어본것만이 세상의전부가 아니란다

0
2019.11.18
@현자의시간

하다못해 지하철공익도 주말 법정공휴일 다 근무나가는데

0
2019.11.18
@현자의시간

특정보직들은 근무시간이 다 다름 요양원도 주말에 출근하는거도 봄

0
2019.11.18

현역들 고생하는거보단 훨씬 편하네

0
@무라타히메코

또또 사슬 비교한다

5
2019.11.18
@무라타히메코

현역이 고생하면 공익도 고생해야하는거양?

0
2019.11.18
@무라타히메코

나는 개인적으로 훈련소에서 내가 4급 받았음에 안도한 입장이라 현역이 더 고생스럽다는 말에 동의는 하지만..

글쎄, 소방은 사실 몸이 힘든 것도 있지만 멘탈 문제도 있어서 누군가에겐 더 버거울 수 있다는 생각은 함.

3
2019.11.18
@무라타히메코
0
2019.11.18
@무라타히메코
0
2019.11.18

소방서 공무원은 정공은 절대 못하겠다

0
2019.11.18

주취자는 좀 버렸으면 좋겠다. 사설 앰뷸 부르던가 택시타고 가던가

내가 낸 세금을 왜 저런놈들한테 써야할까

0
2019.11.19

개드립에 공익이 많은건가 읽판에 한 두 공익글 올리니까 또 우르르 공익글 올리고있네

공익 간게 자랑도 아니고

1
2019.11.19

시체봄?

0
2019.11.23

응급의학과 의사인데...응급실에 던져버린단 표현 참...

주취자 응급실에 ‘던지는’ 일 비일비재한데 참 그렇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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