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개혁(改革) - 가죽을 다듬는 철학

 

 

 

 

개혁 - 가죽을 다듬는 철학

 

 

이어령

 

 

 

 

개혁이니 혁명이니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스러운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죽 혁(革)자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읽으면 개혁은 가죽을 고친다는 뜻이고, 혁명은 가죽의 목숨이라는 뜻이 된다. 모두가 지금 쓰고 있는 말뜻과는 딴판이다.

가죽 혁 자는 짐승의 생가죽[皮]을 벗겨 통째로 널어놓은 모양을 본뜬 글자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 글자의 맨 위쪽에 있는 것이 짐승의 머리이고 그 가운데 중(中) 자 모양이 몸뚱이다. 그리고 좌우로 뻗친 일(一) 자는 꼬리 부분이 되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같은 가죽을 뜻하는 것이면서도 피와 혁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자연 그대로의 가죽이 피라면 그것을 문명으로 바뀐 가죽이 혁이다. 한마디로 혁은 생가죽인 피를 옷이나 구두를 만들 수 있게 고쳐 놓은 가죽을 뜻한다. 그러니까 사람의 머리 가죽을 벗겨 가는 아파치 족이 아닌 이상 사람의 가죽은 피부라고 할 때처럼 피이지 혁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풀이하고 보면 어째서 개혁이니 혁명이니 하는 말에 가죽 혁 자가 붙어 있는지 짐작이 간다. 뿐만 아니라 인간 최초의 혁명은 바로 사냥해 온 짐승의 가죽을 벗겨 그것으로 옷을 만들어 입은 일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다. 원시 시대의 사람들이 짐승 가죽을 벗기며 맡았을 그 비릿한 피 냄새 속에는 이미 불란서 혁명 때 “귀족 놈들의 목을 따러 가자!”는 사․이라의 노래 소리가 숨어 있었을 것이다. 털을 뽑아내고 가죽을 벗기는 작업만큼 개혁이나 혁명의 분위기를 암시해 주는 것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개혁의 혁이나 혁명의 그 혁은 가죽을 벗기는 피의 작업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죽[皮]을 쓸 수 있게 고치[革]려면 기름을 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가죽은 돌덩이처럼 뻣뻣하게 굳는다. 옷은커녕 북을 만들어 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무두질이라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수렵 채집의 선사 시대 때 이미 인간들은 수액에다 가죽을 담가 기름을 빼는 기술을 사용해 왔다고 한다. 기원전 3천 년 전의 이집트 벽화에는 바로 혁[革] 자 모양으로 가죽을 펴서 무두질을 하고 있는 광경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성서를 보면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을 쫓겨 나올 때 하나님은 가죽옷을 한 벌씩 만들어 입히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앞을 가린 자연 그대로의 나뭇잎이 가죽옷으로 바뀐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이 경험한 첫 개혁의 세계요, 그 최초의 기술 문명이 바로 가죽의 기름을 빼는 무두질이었다. 무두질 단계에 오면 이미 개혁과 혁명은 피 냄새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어쩌면 피를 흘리며 생가죽을 벗기는 일보다 오히려 그 가죽이 굳지 않도록 부드럽게 하는 작업이 훨씬 더 중요하고 힘드는 기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가죽을 벗기는 작업은 칼로 할 수 있지만 가죽을 부드럽게 하는 무두질은 그런 물리적 힘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름을 칼로 긁어내고 잘라 내도 어디엔가 엉겨 붙은 기름기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양잿물이나 백반 같은 것으로 기름과 불순물을 녹여 버리는 화학적 방법을 써야 한다. 그래야지만 또 가죽의 조직도(개혁론자들은 이 말을 명심해서 들을 필요가 있다.) 부패하지 않고 또 세균도 막을 수가 있다. 물론 뻣뻣했던 날가죽은 유연해지고 탄력이 생기고 광택이 난다. 뿐만이 아니라 날가죽[皮]은 60도의 물속에서도 금세 녹아 없어지지만 무두질이 잘 된 가죽(革)은 끓는 물에 넣어도 끄떡없다.

대개 혁명이나 개혁이 실패로 끝나게 되는 경우는 바로 이 무두질이 서툴러 유연성과 탄력성을 상실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런 개혁은 시간이 조금만 흘러 상황이 변하면 맹물에도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게 된다. 무두질에 성공을 하면 마지막으로 가죽을 말려 팽팽하게 펴는 최종의 단계에 들어간다. 가죽의 주름을 펴고 힘없이 척 늘어진 것을 잡아 다려 탄력을 준다. 그래야만 가죽은 오래 유지될 수가 있는 것이다.

개혁이나 혁명의 그 가죽도 이 말리기를 잘해야 한다. 척 늘어져 있는 타성이나 사회의 이완을 팽팽하게 펴고 고치는 것, 그래서 살아 있는 탄력을 주는 것이 바로 그 개혁과 혁명 속에 들어 있는 바로 그 혁 자의 의미인 것이다. 갑오경장이라고 할 때의 그 경장이 바로 개혁과 같은 뜻이라는 사실을 두고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다. 경장(更張)의 경(更)은 개혁의 改(개) 자와 같이 무엇을 바꾸거나 고친다는 뜻이고 그 장(張)은 활 궁 변에 쓴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활시위를 잡아당겨 팽팽하게 해 놓은 상태를 의미한다.

개혁의 철학과 노하우는 그렇게 먼 데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역사가 시작하기 이전부터 인간이 익혀 온 가죽 만들기의 오랜 기술을 실천하면 되는 일이다. 벗기기, 기름 빼기, 그리고 펴서 말리기의 3단계를 잘 거쳐야만 생가죽을 고쳐 옷으로 만들 수 있듯이, 그리고 오랫동안 그 수명을 유지할 수가 있듯이 개혁도 혁명도 그렇게 해야만 성공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가죽 구두가 아니라 짚신을 신고 수천 년을 살아온 농경족의 후예들이다. 이슬람 문명을 만든 유목민들이나 서구 문명을 이룩한 서양의 목축민들과는 달리 우리는 가죽 문화에 대해 낯이 설다. 그냥 낯선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거부 반응이 있다. 조선조 사회에서 사농공상의 그 맨 밑바닥에 있었던 천민 중의 천민이 바로 가죽을 생업으로 하고 있는 갖바치였다. 멀리 갈 것 없이 지금도 왠지 가죽 잠바를 입은 사람만 보아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이 바로 토종 한국인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폭주족의 이미지처럼 가죽은 곧 공격적이며 폭력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원래 동양에는 혁명이라는 것이 없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혁명의 뜻은 천명(天命)을 받아 왕을 바꾼다[革]는 것으로 제도가 아니라 사람만 바꿔치는 역성혁명이었다. 개혁과 혁명은 역시 가죽 문화권 속에서 살고 있는 서구 사람들의 것이라 할 수 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말이 바로 그 개혁이라는 단어였다. 그동안 우리의 개혁 문화는 대개 1단계에서 끝난 것이 많았던 것 같다. 주로 피 흘리며 벗기는 무시무시한 공포 분위기에서 머물다가 개혁 세력과 그 조직 자체가 돌덩이처럼 경직되어 끝내는 끓는 물에 녹아 없어지고 만 기억들이 많다.

개혁은 무섭기만 한 것이 아니다. 2단계인 기름 빼기의 무두질처럼 유연한 사회를 만드는 기술 그리고 3단계의 말리기처럼 해이해진 것을 팽팽하게 잡아 다려 활력과 탄력 있는 사회를 지속해 가는 힘 - 이런 개혁의 노하우가 지금 필요하다.

 

-『말 속의 말』, 이어령.

 

4개의 댓글

9 일 전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0
5 일 전

글빨 죽이는 사람들 글은 서늘해지는 뭔가가 있따

0
4 일 전

내가아는개혁어원하고 이글하고는 내용이다르네...

0
1 일 전

글을 비유 중심으로 쓰다보니 억지로 끼워맞추고 일반화하는 경향이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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