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히틀러의 결단] ② 경칩 작전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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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 작전, 1945년 3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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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36일 경칩 작전이 개시되었고, 역시 조공은 소련군의 반격에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곧바로 돈좌되었습니다. 믿었던 SS 기갑사단들까지 열악한 도로사정에 기세가 꺾인 틈을 타 쿠르스크 전투를 거치면서 대전차 방어전에 완전히 도가 튼 소련군이 순식간에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함으로써 진격이 어렵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정예 중의 정예인 SS 기갑사단은 소련군 방어선을 돌파, 30km 가까이 나아가는 성과를 보였지만 그것이 한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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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진격상황, 1945년 3월 15일>

 

소련군은 전 방어선에 걸쳐 평균적으로 1 km당 화포 160, 대전차지뢰 2700, 대인지뢰 2400개 이상을 배치하면서 엄청난 방어진지를 구축했고, 단 열흘간 5,227차례나 전폭기를 출격시키며 SS 기갑사단을 공격했습니다. 게다가 소련군의 막강한 방어에도 묵묵히 버텨가며 공격을 멈추지 않던 SS 기갑사단의 마지막 희망마저 짓밟는 일이 일어났으니, 이들을 역으로 포위하기 위해 부다페스트로부터 소련군 제6 근위 전차군이 남서진을 개시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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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련군은 남부 독일 지역에서 독일군의 공세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선이 잠시 소강상태였을 때 미리 제6 근위전차군을 부다페스트 방면에 배치하고 독일군의 공세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다만 공세 개시일과 정확한 주공의 방향을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SS 기갑사단이 발라톤 호수와 부다페스트 사이로 집중되자 이 지역이 주공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소련군은 독일군의 조공이 가해지는 페치 지역에서 방어병력을 과감히 차출해 북쪽을 틀어막도록 지시했습니다. 덕분에 주공인 SS 기갑사단의 진격을 늦출 수 있었습니다. 이제 범은 아가리 속에 상대의 머리통이 완전히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닫아버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1945년의 소련군은 이런 정교한 작전을 구사할 정도로 성장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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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근위 전차군 만으로도 SS 기갑사단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넘어서는데, 여기에 소련군 제4 근위군과 제9 근위군이 가세하면서 SS 기갑사단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 닥쳐왔습니다. 자칫하다 헝가리 한복판에서 소련군에게 완전히 포위당하면 오직 죽음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SS 기갑사단은 이제 승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움직였습니다.

 

SS 기갑사단으로서는 북쪽의 부다페스트로부터 남서진한 소련군이 포위망을 전부 닫기 전에 서쪽으로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제6 근위전차군의 남하에 호응하여 여지껏 방어전을 펼치던 제3 우크라이나 전선군이 일제히 반격을 시작했으므로, 무질서하게 후퇴할 경우 추격해오는 제3 우크라이나 전선군에게 큰 피해를 볼 것이 확실했습니다. 이에 제3 SS기갑사단 토텐코프’, 5 SS기갑사단 비킹이 후미를 맡아 추격하는 제3 우크라이나 전선군과 지연전을 벌였고, 여기에 제9 SS기갑사단 호엔슈타우펜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대가로 희생하면서 열어낸 탈출로를 통해 잔존 SS 병력이 빈 방향으로 탈출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다시 북진해 베를린 방어전을 지원하고자 했으나 중과부적이었고, 대부분은 더 서쪽으로 이동해 영·미 연합군에 항복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이로써 독일 남부집단군은 완전히 증발했고 헝가리 전역을 소련군이 차지하면서 이제 빈의 함락만이 남아있는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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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상황, 1945년 3월 26일>

 

 

 

 

독일군에게 남은 마지막 자산을 전부 긁어모아 헝가리를 지키려던 히틀러의 결단은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긍정 : 헝가리의 너지커니저 유전지대가 독일에게 마지막 남은 유전지대임을 감안할 때 헝가리의 전략적 가치는 아주 컸습니다. 또한 SS 기갑사단이 경칩 작전으로 소련군을 붙들면서 헝가리, 오스트리아, 남부 독일의 민간인들과 잔존 독일군 병력이 서쪽으로 도망칠 시간을 벌어 영·미 연합군에 항복하고 목숨을 건질 수 있게 했습니다.

 

부정 : 유전지대를 확보했다고 해서 석유 보급이 원활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독일군이 끝내 너지커니저 유전지대를 지켜냈더라도 연합군 공군의 맹폭으로 제대로 수송하지도 못했을 것이며, 플로이에슈티 유전지대처럼 아예 유전지대 자체가 파괴당했을 가능성도 컸습니다.

 

총평 : 사실 1945년 시점에서 독일의 패망은 기정사실이었습니다. 경칩 작전이 성공해서 히틀러의 의도가 먹혀들었더라도 기껏해야 패망을 몇 달 늦추는 정도에 불과했을 겁니다. 게다가 독일이 조금 더 버텼다면 원자폭탄이 베를린에도 투하되었을 것이므로 경칩 작전은 그야말로 마지막 발악일 뿐이었습니다. 경칩 작전으로 가장 이득을 본 것은 엉뚱하게도 소련이었는데, 베를린이 함락되고 전쟁이 종결되기 전에 헝가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됨으로써 냉전시대 동구권을 확장하는데 도움이 됐던 것입니다.

15개의 댓글

2019.09.09

님 진지하게 궁금해서 그러는건데

전공이 뭡니까 ???

0
2019.09.10

이쪽에 빠삭해보여서 질문해보고싶은데 나치는 왜 영국상륙해서 안조지고 소련을 급하게 친거인지 알어??

덩케르크보니 적국군대인 영국군에게 삐라만 뿌리고 다 방생해주듯 보내주던데

0
2019.09.10
@취업하자제발

상륙전에는 상륙에 동원되는 선박과 이들을 보호할 전투수상함, 또한 상륙 이후의 원활한 보급을 위한 제해권 유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군축을 거쳤음에도 영국 해군은 세계 최강이었고 독일 해군의 총 전력은 영국 해군 총전력의 1/5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어이 독일이 영국에 대한 상륙전을 펼쳤다고 하더라도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노르웨이 전역을 거치면서 그나마 남은 독일 해군 전력이 사라지면서 영국 본토에 대한 육상공격은 물 건너 갔습니다.

 

영국도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전세계 곳곳의 영연방과 식민지로부터 인원과 물자를 끌어모으고 있었지만 독일 육군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수준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순식간에 패배하면서 모든 중장비와 화기를 손실했기 때문에 독일 육군에 맞설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몰랐습니다. 사실 그동안 영국이 프랑스와 공동 대독전선 형성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것도 영국은 육군력에서 도저히 독일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이유때문이었죠. 결국 영국과 독일 모두 상대방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단이 전무한 상황에서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히틀러에게는 소련이야말로 꺾어야 할 상대였습니다. 이념적으로 보자면 볼셰비즘의 수괴나 다름없는 소련과 나치 독일은 결코 공존할 수 없는 철천지 원수였고, 경제적으로 보자면 소련이 가진 무궁무진한 자원(우크라이나의 식량과 광물자원, 캅카스의 유전지대, 시베리아의 삼림자원, 엄청난 인구에서 비롯된 노동력)은 독일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대공황마저 비껴가며 무서운 속도로 공업화하고 있는 소련의 국력이 곧 나치 독일의 국력을 훨씬 뛰어넘으리라는 사실은 자명했기 때문에, 히틀러에게 소련 침공은 그 시기가 문제였지 이미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러한 히틀러의 결심에 쐐기를 박은 것은 1940년 3월까지 벌어졌던 겨울전쟁이었습니다. 인구와 군사력에서 비교조차 안 되는 소국 핀란드에게 온갖 추태를 보여주며 쩔쩔맨 소련군의 모습은 히틀러에게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히틀러는 소련이 2만 4000대의 전차를 비롯, 엄청난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선전과는 달리 내부적으로 곪아있다는 것을 간파한 것입니다. 이에 폴란드 침공과 저지대국가 침공, 노르웨이 전역 및 프랑스 전역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짓고 영국을 궁지로 몰아넣은 히틀러는 어차피 소련과의 일전을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은 지금이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히틀러는 당분간 영국은 독일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고, 독일 육군은 숱한 실전 경험으로 최상의 조건을 갖춘 반면 소련군은 아직도 대숙청의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1941년, 바로 이 해를 대소 개전의 해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3
2019.09.10
@Volksgemeinschaft

양질의 설명 개추 글잘쓴다 한번에 이해됨ㅎㅎ땡큐

0
2019.09.12
@Volksgemeinschaft

전공이 역사와 관련있는 분 같은데 혹시 대공황시기에 소련의 경제사 관련하여 추천할 만한 책 있어? 원어여도 괜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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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2
@적당히 싸워

소련국가계획위원회(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комитет по планированию)에서 발간한 "Плановое хозяйство" 시리즈의 30년대 출간본들을 읽어보시는게 도움이 되실 겁니다. 못 찾으시겠으면 이메일 주소라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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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2
@적당히 싸워

전공은 아니고 취미로 공부하는지라... 제대로 된 사학도 분에게 여쭤보시는게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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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2
@Volksgemeinschaft

친절한 답글에 감사합니다. 알려주신대로 번역기도 써가며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찾기힘드네요. 번거롭게해서 죄송합니다. [email protected]

명절 잘 보내세요.

0
2019.09.12
@적당히 싸워

보내드렸습니다. 가지고 있는게 스캔파일 밖에 없어서 읽기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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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2
@Volksgemeinschaft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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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0

읽판에 인재들 총출동 중 ㄷㄷㄷ 형님 너무 재미있습니다.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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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0

퀄리티보소....

대단하네

앞으로 닥추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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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0

오오 글 잘쓴다 더 일해라 핫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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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0

히틀러시기때 공부해야할 포인트는 경제임 반공사회주의의 교과서임(2차대전 끝나고 전유럽이 히틀러 욕하면서 따라함)

짧은기간 폭발적인 성장을함 근데 케인즈주의를 보완할려면 전쟁같은걸해서 피지배국이 만들어야함

지금 독일은 전쟁없이 꼬붕을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그당시에 찾은 파해법은 전쟁

근데 히틀러나 독일을 공부하기 어려운점은 히틀러는 나쁘다고 나치사진 올려놓고 끝내버림

관련 서적도 적음 객관적으로 공부할수가 없게 만들어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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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네유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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