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복수자의 헌사

이건 내 삶을 위한 단 한명의 희생자를 위한 헌사다
혹은 복수극의 시작을 알리는 비극의 첫문단일수도 있고
너에겐 헌사가 비극일지 희극일지 모르겠지만
나만을 위한 사람이 지금까지 없었다는건 내게 크나큰 비극이니, 나에겐 첫문장도 두번째 문장도 비극이구나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2012년도 고등학교 2학년때 교실에서 있었던 일?
아니면 2015년도 부모님이 날 정신병자 취급하며 내쫓았던 일부터 시작할까

사실 이 일은, 그런식으로 길게 올라가서 시작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훨씬 가까운곳에서 기인했다
그래 이 일을 처음 계획하던 2017년 3월의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그때의 무거운 공기며 찌든 죽음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불만족이라고 하면 너무 가벼운 단어고, 광기라고 하기엔 너무 멀쩡한 상태였는데
살이 뒤룩뒤룩 찐 몸도 공기처럼 공허하게 느껴지고
남들한텐 일상적인 질문일 '행복하냐' '너는 어떤사람이냐' 같은 질문이 어디 하나 엇나간 톱니바퀴처럼 느껴져갔다
문제는, 그 바퀴들이 어디 한군데 걸린채로도 엉키고 부서지며 굴러갔다는거지
그렇게 조각들이 전체를 망가뜨리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너무 망가져서 회복할 마음도 들지 않을쯔음엔, 오히려 부숴지도록 밑바닥을 치게 내버려 두곤 했다
그러면 멀쩡히 굴러가는 바퀴 몇개는 그럴듯하게 만들어낼 마음이 들곤 했다.
물론 환상이다, 환상속에서 완벽하게 맞물려가는 바퀴들.
비틀리고 부서지는 기괴한 파쇄음이 없는대신, 실제로 맞물려가는 내자리도 하나 없었지
오히려 환상에 묻힌 동안 내 자리는 하나 둘 씩 사라졌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소리 없이 사라져야 하는 조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톱니날이 다 부서지기 직전에, 생각했다
그래도 이게 한 인간의 파멸이라면, 이유가 있어야 하는게 아니냐고
여러 후보가 있었다

끝내 내게 버림만 가르쳤던 부모님, 애들 앞에서 창피를 줬던 초등학교 선생, 밤마다 잠도 못자게 노래트는 윗집 사람, 다수이기도 했다가, 단수이기도 했다가, 없어보이기도 했다가

신중하게 하나하나 뜯어보며 누구를 이유로 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결정된게 너였다

 

그정도 이야기다
난 이유가 필요했고, 니가 제일 그럴 듯 해 보였다

물론 이게 정의로워 보이지 않을 순 있겠다
그러나 너에게 이해를 바라진 않는다
그리고 이 일이 끝나고 나면, 너조차도 나의 이해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이건 그냥 주어진거니까
취미나 취향과도 같다


취향하니까 말인데, 나는 어려서부터 쏘우를 좋아했다.
사실은 전통적인 성장물을 싫어한걸지도..
뭐, 이것도 뭐가 먼저인지 모를 이야기다

 

성장물은 거북했다
나는 극복할 수 있는 과제만 주어지고,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 주어지는 이들을 질투했다
성장물은 전형적인 '축복받은 성장의 길'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였음에도,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잘난 듯이 이야기 한기 때문이다
시련이야 말로, 극복할 수 있는 절망이야 말로 그들이 가진 축복이었음에도!

그에 반해 쏘우는 성장과 계몽을 일으키지만, 철저하게 계획되고 의도된 시련으로 하여금 시작된다
처음부터 날고 기는 인물은 없기에 시험이 시작된다


나는 쏘우에서 이 복수극의 힌트를 얻었다

물론, 내가 너를 계몽시키려는 건 아니다

나는 내 삶을 포기하고 용서보단 복수나 하는 한심한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누군가를 계몽할 계획을 짤 수 있을리가 없다. 게다가, 니가 만약 극복해서 계몽해버리면, 그게 무슨 복수가 될리가 있겠나?
그런건 내 질투와 좌절만 더 키울뿐이다

내가 하려는건 
쏘우를 '반대로' 하려는것이다

삶의 의미를 깨달은 존 크레이머가 직쏘게임으로 누군가를 계몽시킬 수 있다면
나도 내 전문인 좌절과, 공포와, 비극을 너에게 알려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이 체험에서 니가 나를 이해하고 나에게 용서를 빌거나, 반성하며 계몽하는것이 아니라, 나처럼 나를 증오하고, 이유를 필요로 하며, 천천히 무너져가길 바란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로 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싶다
나는 오랫동안 내 삶의 이해자를 바랬으나
이 계획을 짜면서, 그런 수동적인 방식은 마침내 버릴 수 있었다.
이해자는 찾는게 아니라 만드는거다.

 

2017년 3월, 나는 대상을 너로 정한 뒤에 니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부터 알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당연하게도 너의 연락처를 알 수단이 하나도 없었고, 하다 못해 고등학교 동창들의 번호는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니가 고등학교때부터 sns를 했었다는걸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페이스북의 학교페이지에 들어가서 우리 고등학교 선생의 계정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 이후엔, 선생의 계정에 나와 나이가 같은 친구를 골라 들어간 뒤 손쉽게 너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너는 계정을 사용하지 않은지 2년이 넘었었다.
마지막에 올린 사진이라고는 홍대 근처에서 술을 마시거나 하는 것 뿐이었다.
나는 니가 혹시라도 군대에 갔을까봐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너의 친구들의 sns를 살펴보며, 너가 주로 같이 술을 마시는 이들이 여전히 근황을 간간히 올리는것을 보고 희망을 가졌다
너가 만약 아직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낸다면 자주 가는 술집에 언젠가 한번 들릴것이다.

 

이주일 정도 술집앞에서 기다렸을때, 나는 너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수백미터 밖에서도 알 수 있었다.
다름 아닌 너다.
내 인생의 마지막 목표, 내 삶의 유일한 희생자인 너.

 

그 뒤는 너무 쉬웠다.
택시를 타고 걸어가는 너를 따라가서, 집 위치를 기억해 두었다.
그리곤 몇일간 너와 너의 가족들의 생활패턴을 지켜봤다.
언제 나가고, 언제 들어오는지, 외박은 보통 무슨 요일에 하는지. 모두 꼼꼼히 적어놨다.
집앞에 몇주째 무슨 차가 주차되었든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아무도에 니가 포함된다는건 참 다행이었다

 

나는 동시에 계획에 쓸 공간과 장비를 구하기 시작했다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
어처피 일만 치르고 나면 들키던 말던 상관이 없었기에, 추적에 대해서는 염두해 두지 않았지만 그렇다 해도 일에 적절한, 탈출불가능한 두꺼운 벽과 투명하고 두꺼운 강화유리를 설치하는건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었다

관련 기술자들에게는 실험용 시설을 만들고 싶다고만 하고, 중개인에게 시공중지된 짓다 만 주택 하나를 소개받았다. 나는 곧바로 창문을 모두 콘크리트로 막고, 방의 중앙에 10cm두깨의 강화유리를 설치하고, 너를 넣을때를 위해 강화유리에 철문을 설치했다

마지막으로 니 눈앞에 보일 그 대망의 버튼! 그 버튼은 사실 아날로그 방식으로 할까 했지만, 역시 모든게 자동이어야 일의 미학이 제대로 너에게 와닿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두 버튼을 연결시키는것보다 니가 조작할 수 없게끔 개조하는게 더 힘들었다. 어쨋거나 나는 니가 마크 호프만이 되지 않길 바랬다. 편법으로 시험을 통과하는, 주인공이 될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
너는 이 시리즈의 주인공이 되면 안된다. 절대로.

 

두 버튼이 어떤 기능인지 궁금하겠지, 슬슬 설명해줘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너희 집 앞에서 너뿐만 아니라 너의 가족들의 생활패턴을 모두 적었다.
그중에서도 니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누군지 오랜기간 관찰해서 나름대로 추리했다.
너는 아마 아버지와는 사이가 별로 안좋고 어머니와 여동생과 친한 듯 했다.

 

이쯤되면 유리 뒤에, 얼굴에 보자기를 쓰고 있는 두명이 누구인지 충분히 예상 할 수 있겠지
어쩌면, 가족이니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체격이나 손을 보고 금방 알아차렸을 수도 있겠다.
보자기는 혹시라도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게 처리해 놓은것이다. 질식하거나 할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혹시라도 자력으로 탈출할까봐, 손과 발을 포함한 인체의 대관절들은 꽁꽁 묶어놨다. 혹시나 하는 희망은 가지지 않는게 좋다

 

니가 주의깊게 봐야 하는건 목쪽에 걸려있는 밧줄과 그들이 누워 있는 높이 50cm 정도의 사물의 정체다.
그들이 누워있는건 생산라인에서 흔히 쓰는 레일이다.
가로로 돌아가는 녀석이고, 전기를 연결하면 바로 밀어낸다.
그들의 목쪽에 있는 밧줄은 레일위에 고리에 연결되어 있는데, 여분이 거의 없고 목과 딱 붙어있다.
그러면 버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눈치 챘을거라고 본다.
특정 버튼을 누루면, 레일이 돌아가고 곧 그들의 몸은 50cm 밑으로 떨어진다. 체중으로  밧줄이 목을 옥죄고, 기도를 막아 이윽고 교살된다.
그리고 어떤 버튼이든지 누루고 나서 30분이 지나면 문이 열린다.

 

왼쪽버튼은 왼쪽레일이, 오른쪽버튼은 오른쪽 레일을 움직이게 한다.
왼쪽은 너의 어머니고, 오른쪽은 너의 여동생이다

 

자! 설명은 끝났다.
이게 방탈출 게임이라면 탈출을 위한 힌트는 모두 줬다고 볼 수 있지

그러나 이건 게임이다. 내 의도를 알아야 니가 선택의 미학을 알 수 있겠지
누구를 더 사랑하냐, 같은 손쉬운 질문을 던지고 싶은거였다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데려왔을거다
난 오랜시간 니가 어머니와 여동생중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 미묘할정도로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데려왔다

 

너는 인생을 선택할 수 없는게 공포라면, 선택할 수 있는건 비극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나?

둘중에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것은 공포고
그중에 누군가를 골라야 하는건 비극이라는 말이다.

 

지금 너의 가족의 생사가 너의 손에 달려 있다.
니가 버튼을 누루면,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다

너는 누군가를 살리는 동시에 살해한다
물론 너는'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기억해라.
이 순간 너는 분명히 둘중에 한명을 고를 수 있다

그 무게감이 옥죄어 아무도 누루지 못해 굶어 죽는다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누룬다면, 너는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희생양을 필요로 할것이다

 

'저 레일! 저 레일이 죽인거야
저 버튼! 저 버튼이 죽인거야
사람은 굶고 충격적인 상황이 닥치면 주의력이 좁아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어
나는 수없이 고민하고 괴로웠었어
이 모든걸 설계하고 유도한 쟤가 나쁜거야'

 

좋다. 탓해라

나도 너한테 그러했으니
그렇게 일그러진 톱니바퀴가 된채 굴러가라.
나를 이해해라
니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너는 내가 되어 있을것이다

 

나는 니가 천천히 망가지는걸 보고 싶다
나만을 위해 준비된 인격의 죽음을 바라보고 싶다

 

그러나 명확하게 분노할만것이 있으면, 희망이 된다는걸 나는 안다
따라서 나는 니가 탈출할쯔음에 이 세상에 없을것이다

 

그러나 다행이다
너 덕분에, 내 삶에는 비록 비극이더라도
이야기가 있고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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