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국가사회주의 시대의 나치형법 ⓛ

* 필자의 주관적 평가를 배제하려 했으나 독자 스스로의 주의와 비판적 독해를 요함

*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의 이전 글(https://www.dogdrip.net/220059170)을 읽는 것을 추천함

 

 

 

 

1. 서문

 

1933년부터 1945년에 이르는 독일의 국가사회주의 시대(Zeit des Nationalsozialismus)는 학문적 논란의 여지가 있는 수많은 시도를 남겼습니다. 정치군사사회를 논할 수도 있겠으나 이 글에서는 형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시기의 형법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2. 나치형법학의 태동

 

1920년대의 독일은 극도로 혼란했습니다. 문화적으로는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케 하는 일탈행위가 벌어지고 있었고, 순항하는 듯 보이던 경제는 폴란드와의 무역전쟁, 대공황과 스무트-홀리법을 겪으면서 완전히 붕괴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여러 정당이 난립함으로써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사회 전반에서 공화국 체제의 무능과 우유부단을 성토하는 소리가 높아져 갔습니다.

 

형법학 역시 마찬가지로, 공화국 체제 하의 자유주의적 형법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형태의 형법이 등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불거졌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내세운 신진 형법학자들은 당시 부상하고 있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 이하 나치당)이 이 새로운 법철학을 구현할 수 있게 하리라 믿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나치당을 열렬히 환영하면서 당의 후견으로 자신들의 사상에 따라 형법을 개조했으며, 나치당은 이를 국가지배의 수단으로 삼는 밀월 관계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를 나치형법학이라고 분류하고 있으나 실상은 1920년대부터 시작된 형법학의 학문적 조류가 국가사회주의 시대에 이르러 나치당의 도움을 받아 전면적으로 부상하게 된 것일 뿐입니다. 나치형법학은 키일(Kiel) 대학을 중심으로 논의되었는데, 당시 키일 대학의 유대인 및 반체제 교직원이 쫓겨나고 나치당에 우호적인 학자들로 교수진이 재편성되었기 때문입니다.

 

 

 

 

3. 나치형법과 자유주의적 형법의 차이

 

그렇다면 나치형법은 기존의 자유주의적 형법과 어떤 점에서 차이를 보일까요? 비아드리나 유럽 대학의 형법학 교수 게르하르트 볼프(Gerhard Wolf, 1952~)

 

법률에 명시되지 않은 행위도 형벌이 가해지는 것

행위가 아니라 행위자의 처벌을 중시하는 것

입법자의 법률 창조가 중대한 의의를 갖지 못하는 것

형사법정 재판에서 판사의 고유한 평가가 적극적으로 장려되는 것

법률의 내용에 대한 문리적 해석보다 주관적 해석이 우선되는 것

 

을 그 주요한 차이라고 보았습니다. 한편 저명한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 1923~2001)

 

기본권 관념의 부정

주관적 권리와 법적 책임의 부정

평등 원칙의 배척

의회민주주의의 파괴

비합리적 요소의 중시

이민족 박해

 

를 가장 중요한 차이점으로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치형법학의 특징을 보다 자세히 나누어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4. 나치형법의 특징적 요소

 

도덕의 법적 강행화

 

자유주의적 형법에서 도덕과 법은 분리되어 있습니다. 형법은 범죄자에 위하를 가하는 규제적 기능과 이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법익을 보호하는 기능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형법은 어디까지나 법률일 뿐으로, 도덕이나 윤리 그 자체와 동일하지는 않다는 것이 자유주의적 형법의 논지입니다. 이 관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 제시한 해악금지의 원칙입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모든 행위에 대한 자유를 허가해야 한다는 것으로, 형법상으로는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덕적으로는 죄가 되는 행위라도 형법에 저촉되는 죄로는 인정하지 않는다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나치형법에서의 형법이란 도덕을 사회에 투사하기 위해 존재하며 서로 합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법에 저촉되지 않는 행위라도 도덕적으로 죄가 된다면 형사상의 처벌이 가능했습니다. 법률의 논리적 구조나 문리적 해석보다도 입법목적에 해당하는 도덕과 윤리가 더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나치형법학자들은 기존의 형법으로는 형식적인 사회정의(社會正義)를 실현하는 것에 그쳤으나 나치형법으로는 실질적인 사회정의까지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나치형법학자 카알 라렌츠(Karl Larenz, 1903~1993)민족의 윤리적 관점과 민족의 생활수요에 부응하고 내용과 형식에서도 진정한 독일적인 법이 완성됐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나치형법에서 도덕은 윤리와 양심뿐 아니라 국가사회주의 이념을 포함하는 것으로써, 다시 말하자면 사회정의에 부합한다고 여겨진 국가사회주의 이념 실현의 장치로써도 형법을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형법과 형사법원의 사법(司法)행위가 도덕과 더불어 정치적 의사를 관철하는 수단이 되면서 법과 도덕의 분리가 사라졌을 뿐 아니라 법과 정치의 분리 역시 허물어졌고, *조치-행정국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독일의회는 1985민족재판소(Volksgerichtshof)로 지칭되는 기구는 법치국가의 의미에서 법원이라고 할 수 없으며 국가사회주의의 자의적인 지배를 관철하기 위한 테러수단이었음을 확인한다.”고 결의한 바 있습니다.

 

(*Maßnahmen-Verwaltungsstaat, 사법부가 행정부에 귀속된 이권분립 국가. 대표적으로 프랑스가 있음)

14개의 댓글

2019.08.09

우와 이런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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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9
@치킨왕국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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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혹시 어떤 참고서적을 이용하셨는지 알수있을까요? 참고서적을 읽어보고 좀더 자세하게 알고싶어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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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9
@힐과행복을드려요

1. 目的的行爲論과 刑法上의 諸問題 - 白南檍

2. 1962年 西部獨逸 刑法草案 - 李樽求

3. 근대형법의 성립과 법학방법론 : 나치즘과 형법이데올로기 - 이재승

4. 처벌과 정상성 - 예외상태 속의 사법과 범죄통제 - 오오다케 코우지(번역자 : https://multitude.co.kr/tag/%ED%98%95%EB%B2%95%ED%95%99%ED%8C%8C%20%EB%85%BC%EC%9F%81)

5. 현대사회에 있어서 형법의 이원화 경향 : Jakobs의 적대형법 구상을 예로 하여 - 최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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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9

폴크스마인샤프트...닉값 제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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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9
@트와이스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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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2
@Volksgemeinschaft

ㅋㅋㅋㅋㅋㅋ 나도 닉보자마자 딱 떠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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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9

나치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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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전설의호두껍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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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도 이전에 좋은글 쓰던 사람들 처럼 소리 소문 없이 글 올리다가 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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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님닉네임이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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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ksgemeinschaft

보인다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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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님닉네임이쁘네요

아무래도 남들한테 소개하는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습득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서 많이 쓰기가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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