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대화두기

1.
[..그래서, 네 집에 잠시 맡기도록 하마.
탐탁치 않을건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애를 볼 수 있는게 너밖에 없는걸 어쩌겠니
오래 부탁하진 않을테니, 잠시만 맡아다오.
너한테도 좋은 기회가 될거다. 가르칠게 많은 아이다]

 

보기 힘든 필체다
한참 슬럼프 시기에 애까지 보라니 정말 탐탁치 않은 일이지만
삶은 언제나 어쩔 수 없는 일 투성이지
슬럼프도 애보기도
대국을 두는것도, 지는것도
그런 선택권은 내 손을 떠난지 오래다
내 손에 닿는거라곤, 그런 과정이 아니라.. 이 편지처럼
다 끝나고 보낸 통보 뿐이겠지

 

 

나는 바둑판에 올려놓은 편지를 접어 구석에 치웠다
빈 바둑판의 줄들이 나를 바라봤다
그 줄들은 나를 조각조각 나누는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텅 빈 나를 비추는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빈 바둑판이 싫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아이를 봤다

어머니가 남은 옷을 입혀 보냈는지, 아이가 입은 옷은 조금 큰 감이 있었다
처음엔 아이가 오랫동안 머리를 자르지 않았는지 머리가 뒤죽박죽 자라있어,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헤갈렸었다
그러나 소심하게 인사하는 소리를 듣고 여자아이임을 알 수 있었다
아이는 굉장히 순하고 조용해 보였다
조금 멍해보이기도하고, 신중하고 깊어보이기도 했다
어른을 어려워하는지 절대 내 눈을 마주치고 얘기하는법이 없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며 가슴 한켠이 찡하면서도, 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해 가야할지 찡해진 가슴이 갑갑하고 막막해지곤 했다

조금 더 어른스럽고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그런류의 재능과는 영 거리가 멀었다


차라리 여동생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 애는 아이와 잘 놀아줬다
10살짜리 어린애처럼 목소리를 높여서, 말도 안되고 동화적인 과장을 하며 아이에 시선에 맞춰주곤 했다
싹싹하고 씩씩한 동생은, 그 덕에 언제나 주변사람과 부모님께 사랑받았었다
그러나 나는 사랑받는데에는 영 재주가 없었다
내 인간관계는, 바둑에 비유하자면, 필요이상으로 고민하다가 결국엔 훈수하는대로 따라가다가,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깨지는, 그런 타입이었다
소통은 참 어려웠다. 누가 알려주는것도 아니니까

 

초등학교땐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다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 그 시끄러움 속에서 선생님은 항상 조용히 하라고 하지만
어느날, 교실 구석에서 조용히 소통하지 못하는 애들을 위해
선생님은 조용히 하는 법 대신에, 사람과 떠들고 맞추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나는 그를 따라해서 여동생처럼 사랑받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따라서 나는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야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혼란한 아이의 마음만큼이나, 그대로 내버려두지도, 말을 걸지도 못하는 어쩔 수 없음에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차라리, 바둑으로 대화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결국 다시 바둑판으로 시선을 되가져왔다
결국 이런것은, 스스로와의 싸움이다
나는 머리를 식힐겸 바둑판에 돌을 올렸다


2.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바둑판이 가득 차가고 있을때 쯤이었다
나는 문득, 너무 바둑판에만 몰입했음을 깨달았다
시선을 돌리니, 아이는 내 옆에 앉아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게임이나 메신저를 읽고 있었겠지
나는 식혀진 머리로 차분히 물었다

"뭐하고 있니?"

"그냥.."

아이는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휴대폰화면을 껐다
딱히 지적하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아이는 굉장히 섬세하고 불편해보였다.

"그렇구나"

"..."


정적.
머리를 식혀도 배우지 못한건 못해먹는 법이다
이럴땐 차라리 나에대해 말하는게 나을수도 있겠지

"나는 바둑을 두고 있었어. 혹시 바둑이 뭔지 아니?"

"자세히는 몰라요. 대신 오목은 둬 봤어요"

"아 .. 오목.."

다시 한참 정적.

"오목 재밌지.."

"...."

다시 정적

몇번이나 이런방식으로 대화가 끊겼다
10살도 채 안되보이는 애한테 어른으로 이게 무슨 꼴이람
나는 최대한 바둑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고, 아이는 알아들은건지 못알아들은건지, 별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아이가 좋아할만한걸 이야기 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평생 해온게 이거고, 이거 말고는 대화할 방법을 찾을수도 없었다
나는 그만큼 바둑판 밖에는 면역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집을 많이 가져가는 사람이 이기는거야"

"..."

"미안, 재미 없지? 내가 아는건 이런거 밖에 없어서.."

"재밌어요?"

"어?"

"재밌어서 그것만 하는거 아니에요?"

나는 한참동안 녀석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거야 근래까지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이었으니까

"계속 하고 있고.. 계속 하겠지만, 지금은 썩 재밌지만도 않아"

"왜요?"
 

 

 

 

 

 

-----

오늘은 여기까지

1개의 댓글

2019.07.24

물 흐르듯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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