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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 뉴스 보고 떠오른 잡념

 

 

 

 

 

(후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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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 리얼돌. 간략하게 묘사됐으나 있을 건 다 있는 등 세심한 작업의 흔적이 엿보인다. 한 사내의 집념도...>

 

남성으로서의 본능은 심원하고 처절한 것이어서, 오늘날 인류를 번영케 해 준 역사의 그늘진 곳에 작지만 분명히 자리하고 있다. 성욕은 결코 부끄럽거나 감춰야 할 악덕은 아니나, 우리나라에선 보편적으로 사람들 간에 화제로 삼기 민망한 주제로 남아있다. 때문에 우리나라 남성들의 욕망과 그 해소를 제공하는 수단은 자꾸만 음지화 되어 갔다. 이는 여성들도 그럴 것이라 확신하는데, 막역하게 지내는 주변 여성들의 증언과 더불어 종족 번식이라는 위대한 사명 앞에 성별에 따른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PC한 생각에서 나오는 자신감이다. 반박시 성차별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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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원짜리 리얼돌. 말해주기 전엔 인형인 줄도 몰랐다>

 

리얼돌의 수입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은 "합 - 법" 이다. 6월에 이미 판결난 사항이다. 이로 인해 리얼돌의 유통은 긍정적인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인다. 나는 돈도 없고, 사적인 공간도 없는 가장이라 리얼돌을 접할 기회는 영영 없겠지만, 분명 뭇 남성들에게 희소식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시간도 없고, 정서적 여유는 더욱 없는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수단 중 가장 효율적인 것이 바로 리얼돌이기 때문이다. 까탈스럽게 굴지도 않고, 24시간 스탠바이 중인데다, 취향에 맞는 외모를 직접 골라 들이므로 어떤 의미로는 완전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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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키마쿠라(抱き枕)라고 하는 베개 커버 아트. 한 차원 낮은 단계의 여인들과 숙면할 때 쓰인다>

 

우리는 연일 터져나오는 기술적 혁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놀라운 물건도 기술 혁신의 결과다. 누군가는 미디어 매체와 현실 세계의 장벽을 허물기를 원했고, 기업이 이를 인지하면서 기술이 그것을 해결한 형태가 이것이다. 시장이 발생하면 기술이 뒤따르고, 사람들에게 대중화된다는 자연스러운 흐름의 일환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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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8.11.24일자 중앙선데이 칼럼(https://news.joins.com/article/23152274). 이미 미국, 영국, 스페인 등지에선 섹스 로봇이 성행하고 있단다>

 

리얼돌 시장도 아직은 재질을 개선한다거나 조형을 가다듬는 등의 답보 상태에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원하는 "사실감"의 구현을 위해 AI와의 접목을 시도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자동인형도 인형이라 부를 수 있다면, 리얼돌 시장의 최전선에서 성인용 로봇들이 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상기한 기사에 따르면 이미 몇몇 국가에선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로봇들을 매장에 배치한 업소가 생기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기술 혁신이 가속화되고, 고도로 발달된 AI의 보급이 저렴한 비용으로 이뤄진다면, 리얼돌의 수준이나 양상도 바뀌어 나갈 것이다. 인간을 모사한 실리콘 덩어리에서 인간처럼 행동하는 존재로 말이다.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 그 일환이라 하겠다.

 

나는 이런 형태의 사랑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꼭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애완동물처럼 아예 종이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넓게 해석한다면 물건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으리라고 본다. 그 왜, 가끔 게임 캐릭터랑 결혼식 올리는 사람도 있잖아. 애완동물도, 게임 캐릭터도, 러브 머신도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시장의 이같은 흐름을 지켜보면서, 사실은 중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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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作, 오버워치에 등장하는 옴닉(Omnic). 이들은 엄연히 로봇이나, 초고성능 AI 덕택에 인간과의 차이를 못 느낄만큼 고도로 발달된 사유 활동을 한다. 조명된 옴닉은 곁의 여성과 연애까지 하고 있다>

 

기술은 이미 인간의 사회적 지위를 차지했다. 오늘날 기계들은 인간이 해내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을 담당하고 있다. 기술 집약 산업 현장에서도, 그렇지 않은 곳에서도. 당장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뱅킹을 이용해 친지들에게 경조사비를 보내는 내 모습, 방 안에서 읽게를 탐독하는 여러분의 모습 등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이 없었던 시절의 인간은 번거롭고 노동 집약적인 방식으로 일처리를 했다 : 전화로 은행에 업무 예약을 걸어두거나, 더 예전엔 사람을 보내서 경조사비를 부쳤고, 읽게 같은 방문(榜文)을 읽으려면 직접 방이 붙어있는 곳으로 가던가 귀동냥을 해야 했지. 말하자면 기술은 인간의 잡무를 대신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노예"의 지위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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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의 한 장면. 로봇으로 태어난 "앤드류"는 자신에게도 지엄한 "인권"이 있음을 주장하며 제조사로부터 자유를 쟁취한다>

 

그러나 이제 기술은 인간의 생태적 지위까지 넘보려 하고 있다. 로봇 기술의 발달로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수준의 AI가 만들어진다면? 생명 공학의 발달로 복제 인간이 값싸게 양산될 수 있다면? 사이버네틱 기술의 탄생으로 인간의 뇌 내 정보를 전자화 할 수 있게 된다면? 또는 인간을 기계로 대체하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이로 인해 소위 "유사인류"는 인간 사회에 가득 차게 될 것이고, 인간은 자아(自我)와 비아(非我)의 경계에 대한 심판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것은 더 이상 기술이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수준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를 대체하는 지경이다.

 

이는 결코 기우가 아닌데, 생명 복제 기술이 윤리적 장벽을 넘으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고, 인공지능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것을 우리 모두 익히 알기 때문이다. 바둑이라는 창의적인 게임에서 인간을 농락하는 알파고 형님을 보라. 그는 인터넷 밈 세계에서 다음 시대를 정복할 패자로 추앙받고 있다. 능히 인간을 대체하고도 남음의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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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 로봇"의 한 장면. "서니"는 로봇이지만, 인간 주인공들과 그야말로 "인간적인" 교감을 나눈다>

 

나는 이 시점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철학의 위대한 탐구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비록 수 십 세기에 걸쳐 이뤄진 철학자들의 노력이 중론을 모으진 못 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인류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해답을 이끌어 내야 한다. 인간의 특징이라 여겨졌던 "도구의 사용", "언어 구사", "직립 보행" 같은 것들이 실은 동물들에게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라 판명된 현재, 똑같이 도구를 쓰고 언어 능력도 있으며 두 발로 걷는 로봇/인공생명체/인조인간의 범람을 앞둔 인간으로서.

 

복제 인간과의 혼인으로 낳은 자식은 인간일까, 아닐까? 그런 자식에게 자연인으로서의 인권을 부여해야 할까? 사고로 인해 유실된 몸을 기계로 대체할 때, 몇 %까지는 인간으로 치고 어느 순간부터 인조인간으로 치는 걸까(= 테세우스의 배 논란)? 극도로 뛰어난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살인을 저지르면 그 책임은 로봇의 소유주가 물어야 하나, 제조사가 물어야 하나, 로봇이 물어야 하나? 이런 사회적 문제들은 결국 인간을 대체하게 될 존재들과 잔류한 인간 간의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근 미래에 분명히 벌어질 일들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형태적 모방은 기술로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음을, 리얼돌과 러브 머신이 증명해 보였다. 장차 인간의 지성과 행동 양태, 창발적 능력 등을 모사하는 데 이르게 된다면, 인간은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인류 사회는 이러한 사태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51개의 댓글

TPG
2019.07.15

13+2 1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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