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닌겐상의 괴력난신 이야기~ 살쾡이, 여우, 너구리

과거 지운글 재업 + 새로운 이야기 몇개

 

 

 

 

동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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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중서가 주렴을 내리고 책을 읽고 있었다. 어느 날 손님이 그를 방문했다. 동중서는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손님이 말했다.

"비가 오겠군요."

동중서가 농담 삼아 이렇게 말했다.

"둥지에 사는 것은 바람이 언제 부는지 알고, 동굴에 사는 것은 비가 언제 내리는지 알지요. 당신은 여우나 살쾡이가 아니면 생쥐일 거요."

그러나 손님이 늙은 살쾡이로 변했다.             

- 수신기

 

동중서는 한나라대의 유학자로, 재이설(災異說)로 유명합니다. 국가가 실정을 범하면 처음에는 자연재해와 같은 재(災)를 하늘이 내려 견책하고, 그럼에도 고치지 않으면 인간이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을(異) 보여주어서 천하를 놀라게 한다는 것이 그 설의 골자입니다. 하늘과 인간은 본래 서로 부합하는 것인지라 인간의 행동 하나 하나에 하늘이 반응 할 수 있으니 - 이를 천인감응이라 합니다. 인간 삶이 잘못되면 요상한 기운이 생기고, 그것이 쌓여 위로 원망과 증오가 모이고, 상하가 불화하니 음양이 꼬여서 결국 재앙까지 나가게 됩니다. 그의 이런 사상 때문인지 저작인 '춘추번로'에서는 기우제를 지내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주술적 의미가 담긴 행위와 함께 실려 있기도 합니다. 물론 당시 한나라 초기에는 도교가 유행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괴이를 많이 믿고있었으니 어디 동중서만의 이야기겠냐만 그가 '비를 내렸다.'고 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유명인사로서 이런 야담의 주인공으로 나오기에 어울리는 인물인 것은 맞습니다. 훗날 요동의 고조묘에서 불이 났는데, 동중서를 시기하던 주보언이 모함을 목적으로 동중서가 재이설에 대해서 다룬 책을 몰래 왕에게 상주합니다. 재이설에 따르면 요동에서 난 불은 왕의 부덕한 정치에 의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덕분에 다른 유학자들은 이렇게 읽힐 수 있는 동중서의 글에 대해서 비판을 가합니다. 동중서의 제자마저도 이 글을 쓴 사람이 동중서인지도 모르고 욕할 정도였으니 결국 동중서가 이 글의 저자임이 밝혀져서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어떻게 용서를 받기는 하지만 이 일이 있고 난 뒤로는 다시는 재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살쾡이 요괴들의 악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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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때, 오흥군에 사는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두 아들이 밭에서 일을 할 때면 아버지가 욕을 하거나 쫓아와서 때리곤 했다. 두 아들이 이를 어머니에게 고하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크게 놀라며, 모든 것이 귀신의 짓임을 알아채고는 아들에게 귀신을 죽이도록 했다. 그러자 귀신은 자취를 감추고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는 두 아들이 귀신에게 또 괴롭힘을 당할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직접 밭으로 나갔다. 그런데 아버지를 귀신으로 오인한 아들들의 손에 죽어 땅속에 묻히게 되었다. 그러자 귀신이 아버지 모습으로 변신해 집으로 돌아와서는 가족에게 말했다. "두 아들이 요괴를 죽였나보군"

해질 무렵 두 아들이 밭에서 돌아오자 온 가족이 떠들썩하게 축하를 했다. 수년이 지나도록 가족은 진상을 몰랐으나 훗날 한 법사가 그 집에 방문해 두 아들에게 경고했다. "자네들 아버지의 기색에 사기(邪氣)가 가득하네"

아들이 이 말을 아버지에게 전하자, 아버지는 몹시 화를 냈다. 아들이 이를 법사에게 알리고는 얼른 떠나도록 일렀다. 그러나 법사는 주문을 외우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늙은 살쾡이로 변하더니 침상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법사는 살쾡이를 잡아서 죽였다. 비로소 가족들은 당초 잡아 죽인 것이 진짜 아버지였음을 깨닫고 상복을 입고 장례를 치렀다. 그러나 결국 한 아들은 자살하고, 또 다른 아들도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 수신기

 

오나라 때, 여릉군 도정루(都亭樓)에 요괴가 들끓어 그곳에 묵던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 탕응이 요괴일 것이라 생각하고 부군과 군수를 내리쳤는데, 날이 밝고 죽은 괴물을 찾아내보니 군수란 자는 늙은 돼지였고, 부군이란 자는 늙은 살쾡이었다. 그 후로 이곳에는 더 이상 요괴가 나타나지 않았다. - 수신기

 

인간으로 변하는 요괴나 귀신은 여우, 살쾡이, 너구리 등이 많이 언급됩니다 살쾡이는 한국의 설화에서도 종종 등장하며, 갈홍이 쓴 '신선전'에서도 나타나는데, 주로 교활하여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을 탐내는 성격으로 묘사됩니다. 술을 훔친다거나, 고기를 훔치는 것은 그나마 작은 소행이지 둔갑하여 남편이 된다거나 벼슬을 하는 악질적인 행위가 바로 위와 같습니다. '신선전'에서는 살쾡이가 속임수로 태수의 딸과 결혼해서 퇴치당했는데, 마침 태수의 딸이 살쾡이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으나 아이 또한 살쾡이었으니 그 아이마저 퇴치 당해 죽게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유백조 집의 살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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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릉군 사람 유백조가 하동태수를 지낼 때였다. 거처하던 곳 천장에 말을 할 줄 아는 귀신이 있어 자주 유백조와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다. 귀신이 매번 경성에서 조서와 공문이 올 때마다 그 소식을 유백조에게 전해주었다. 유백조가 무엇을 좋아하냐 물으니 양의 간이 먹고 싶다하여, 대접을 하니 늙은 살쾡이가 책상 앞쪽에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고기를 썰던 사람이 칼로 살쾡이를 내려치려 하자 유백조가 그를 말렸다. 살쾡이는 이내 천장으로 뛰어올랐고, 잠시 후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방금 양간을 먹고 너무 기분이 좋아 그만 내 모습을 보이고 말았군요 부끄럽소."

후에 유백조가 사예교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때도 살쾡이 귀신이 유백조에게 미리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모월 모일 조서가 내려올 것입니다."

때가 되자 과연 조서가 내려왔다. 유백조가 사예부에 들어가자, 살쾡이도 그를 따라 사예부 천장에 자리를 잡고는 왕실 내 은밀한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것저것 알려주곤 했다. 유백조는 문득 너무 두려운 마음이 들어 살쾡이 귀신에게 말했다. 

"지금 내 직책은 백관을 감시하는 것이오. 귀신이 나에게 이것저것을 알려준다는 사실이 황제 측근에게 알려지면 해를 입게 될까 걱정이오."

살쾡이 귀신은 "당신이 걱정하는 바와 같을 수 있겠군요. 내 여기를 떠나리다." 하고 말하고는 바로 종적을 감추었다. - 수신기

 

은혜갚은 살쾡이 이야기 입니다.

본래 천장에 살았고, 사예부에 들어갔을 때에도 천장에 자리잡았다는 의미는 마치 거처에 묶인 귀신가 비슷한 면이 있어보입니다. 이렇게 드물게 선한 살쾡이들도 있는데, '해동고승전'에 나오는 승려 지명의 이야기를 보면 여기서도 선한 살쾡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절을 지으려고 고민을 하던 중 신이 나타나 말하길 자신은 그를 보호하고 있었고, 운문산의 터가  절을 짓기 좋다고 알려주어 결국 그 곳에 절을 지을 수 있게 됩니다. 훗날 신이 다시 나타나 "곧 죽을터니이 보살계를 받게 해주시고, 모일 모처에서 죽을 것이니 그날 와서 이별을 합시다."라 해서 가보니 검은 살쾡이가 죽어가고 있었다고 전합니다.  

 

 

오래 살고, 위협적이고, 날쌔고, 영특한 동물에 대해서 그것을 귀신이나 신으로 보는 것은 과거 사람들에게는 이상할게 없었다고 봅니다. 한국 풍속 중에 '꼬리따기'라는 놀이가 있는데, 술래는 귀신이나 살쾡이가 되어서 꼬리 끝부분의 아이를 떼어 잡아가려고하고, 꼬리 선두의 어미는 그것을 막는 풍속입니다. 본래 살쾡이라는게 없던 시절에 담장을 넘어 들어와 닭을 채가는 놈이었으니 그것이 주는 피해와 사람들의 인식이 귀신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겁니다.

 

 

 

 

무당 몸에 강림한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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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귀신에 홀린 사람의 집에서 기도를 하여 그 귀신을 무당에게 옮겨 붙게 했을때 귀신이 무당의 입을 빌어 말했다.

"나를 화를 가져온느 귀신이 아니다. 여기저기 헤매다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던 여우니라. 묘지 오두맏집에 내 아이들이 굶고 있는데 이 곳은 먹을 것이 널려 있는 것처럼 보이니 공양떡이나 좀 얻으면 물러날 것이다."

그래서 공양떡을 만들어 쟁반에 내오자, 조금 먹더니 말했다.

"이거 정말 맛있구나!"

사람들은 이 무당이 홀린 척을 하여 떡을 얻기 위해 이러는거라 생각하고 밉살맞게 여겼다.

"종이에 조금 싸주면 나이 드신 내 어머니와 아이들에게도 먹여야겠다."

그래서 여우를 위해 종이를 두장 교차시켜 싸니 큰 꾸러미가 되었다. 여우에 홀린 무당은 곧 꾸러미를 허리춤에 끼어넣었고 너무도 커서 가슴까지 볼록해졌다.

"자, 그럼 나를 내쫒으거라. 얻어으니 이제 물러가겠다."

퇴마사인 수험자에게 그렇게 말하였기에, 퇴마사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하며 쫒자, 무당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잠시 후 무당이 일어섰는데 가슴까지 차 있던 종이꾸러미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것이 없어지다니 신기한 일이다. - 우지습유 이야기

 

 

 

 

여우의 복수

 

 

어느 수행자가 오미네 산에서 내려와 각지를 돌아가니고 있었다. 길가에 여우가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장난칠 생각으로 귓전에 대고 소라고등을 불자 여우가 놀라 도망쳤다. 수행자는 재밌게 여기더니 다시 길을 떠났따.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방금까지 해가 중천이었는데 감자기 해가 져버린 것이다. 들판 한 가운데서 머물 곳도 없이 난처해하던 그는 주위에 무덤이 하나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는 했지만 그 무덤 위에 올라가서 날을 지새기로 했따. 밤이 더 깊어지자 저쪽 건너에서 횃불들이 보이더니 수행자쪽으로 다가왔다. 알고보니 무덤으로 오는 장례 행렬이었따. 200~300명 되는 사람들이 호화스럽게 입고는 나이든 노인이 법어를 외무면서 인도하는 그 뒤를 따랐따. 뒤따르는 이들은 징과 요발을 울리고 있었는데 제법 엄숙한 모스비었다. 그리고는 죽은 이에게 불을 지펴 화장하고 제각기 돌아갔다.

이윽고 죽은 이도 다 타버려 재가 되었을 생각이 들 무렵, 갑자기 죽은 이가 몸을 떨면서 일어났다. 수행자는 혼비백산하여 소각장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죽은 이는 꼭대기를 올려다 보더니만 스물스물 기어올라와 수행자에게 말했다.

"왜 이곳에 있는가?"

그러더니만 수행자를 꼭대기에서 밀었다. 수행자는 곧 떨어져 정신을 일었고, 눈을뜨자 오후 네시쯤 되는 시간이었다. 그는 목숨은 보존했으나 허리뼈가 부러져 엄금엄금 기어 이 장소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는 소라고동으로 여울를 놀래켰다가 여우가 원수를 갚은 것이다. - 쇼코쿠 햐쿠모노가타리

 

 

 

 

너구리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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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가 지방 나바리라는 곳의 남동쪽에 산골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는 매일 밤마다 한 명씩 사라졌다. 누구의 소행인지도 모른 채 어떤 이는 자식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부모를 잃어 버리기도 하니 울며 슬퍼하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 었다. 

 한편, 그 마을에는 사냥꾼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해가 저물 무렵 산으로 올라갔는데 산속 깊은 곳에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구인지 보니 나이는 백 살 정도 되는 늙은 할머니가 흰 머리를 사방으로 풀어헤치고 눈을 번뜩이며 다가오는 것이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냥꾼은 곧바로 화살을 겨누고 있는 힘껏 쏘았다. 날이 밝아 사냥꾼이 다시 그곳으로 가보니 피가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이를 쫓아 길도 없는 산속을 이곳저곳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사냥꾼이 사는 마을까지 오게되었는데, 피가 촌장집 뒤편 별채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 사냥꾼은 이상히 생각하고 촌장을 만나 물었다.

 "이집 뒤편 별채에 누가 사십니까?"

 "이 별채에는 저의 어머니가 은거하고 계십니다. 어제 저녁부터 편찮으시다면서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사람들도 오지 못하게 하십니다."

 사냥꾼은 이 말을 듣고 이야기하였다.

 "그렇다면 말씀드리지요. 어제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촌장은 이상히 생각하고 어머니가 있는 별채로 가 보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는 이유를 알아채고 곧바로 별채의 벽을 뚫고 어디로 갔는지 도망가고 없었다. 침소를 보자 피가 방석 크기만큼 고여있고, 마루 밑을 보자 사람 뼈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아이의 손발 등을 뜯어 먹은 흔적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그 후 산으로 올라가 시체를 찾아보자 늙고 커다란 너구리가 가슴에 활을 맞을 채 죽어 있었다. 촌장의 어머니는 이 너구리가 예전에 죽여 먹은 후 어머니로 둔갑해 있었던 것이었다. - 쇼코쿠 햐쿠 모노가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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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너구리 요괴는 '바케다누키'라고 불리며, 여우 요괴의 라이벌즘 되는 컨셉으로 유명합니다. '우지습유 이야기'(1221년경 성립) 등의 옛 야담에서부터 그 후대의 이야기까지 시대를 안가리고 자주 나옵니다. 주로 둔갑을 해서 민폐를 끼치거나, 사람을 골리는 모습으로 많이 나오는데 오히려 신으로 모셔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가현 고카시 시가라키쵸 마을은 다음과 같이 너구리 장식으로 유명합니다. 

 

 

 

 

 

너구리들간의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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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 덴포 10년(1837) 아와국 고마쓰시마 히가이노무라에 큰 염색집이 있었는데, 그곳 주인의 이름이 모에몬이었다.

어느날 모에몬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게 점원들이 너구리를 잡아 삶아서 끓여 먹으려고 왁자지껄하니, 그 모습을 본 모에몬이 큰 소리로 점원들을 질책했다.

 "너구리는 예로부터 우리 시코쿠 지방의 애완동물이니 죽여서는 안된다. 너구리에게 먹을 것이나 좀 주어라!"

 며칠 뒤 예전부터 가게에서 일하던 가쓰우라 출신의 저능아 몬키치가 갑자기 논리 정연한 어조로 주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예전에 나가타 게이린지 근처에 살 때 주인님의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 이름이 긴초우타누키(타누키는 너구리란 뜻)이었습니다. 그 뒤 전 주인님을 따라 이 가게로 와서 근처에 머물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이번에도 주인님께서 저의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앞으로 여기 살며 목숨을 다해 주인님 일가를 보호해드리겠습니다."

 가게 점원들은 몬키치가 미쳤다고 여겼으나, 주인은 마음에 짚이는 일이 하나 있었다.

 그 해 모에몬이 아직 점원 신분이었을 때였다. 한번은 바깥에서 업무를 보고 오는데 아이들이 떼를 지어 몽둥이로 너구리 구멍을 휘젓고 있길래 아이들에게 돈 몇 닢을 쥐어 주며 나쁜 장난을 하지 못하게 했다. 돌아오는 길에 모에몬은 갑자기 어깨가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 집에 오니 가족들이 그의 등 부분에 진흙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넘어졌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모에몬은 진흙 근처에도 갔던 기억이 없어 '이상한 일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오늘에서야 그 실마리가 풀렸으니, 그 때의 킨초우타누키가 따라왔다가 지금 이렇게 몬키치의 몸에 붙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 후부터 가게는 날로 번창해 큰 점포를 차리게 되었고, 모에몬은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조그마한 신사를 지어 킨초우타누키에게 제사를 지냈다.

 몇 년 후 킨초우타누키는 쓰다우라 로쿠에몬타누키에게 가서 수행을 했다. 로쿠에몬타누키는 시코쿠의 수장으로 그 지역 너구리에게 관직을 하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로쿠에몬타누키에게는 가노고 히메란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어느새 문무를 겸비한 킨초우타누키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그러나 제자의 신분으로 스승을 딸을 받아들이 수 없기에 그의 수행을 끝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킨초우타누키가 점점 두각을 나타내자 로쿠몬타누키는 그의 실력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말하였다.

 "자네는 내 딸 가노고 히메와 결혼하여 나의 대를 잇도록 하게."

 "저에게는 생명을 두 번이나 구해준 은인이 있으니 돌아가서 은혜에 보답해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킨초우타누키가 거절을하고, 곧 자신의 수하인 후지노키노다카타누키를 데리고 마을로 돌아가리고 마음먹었다.

 로쿠에몬타누키의 수하에는 사대천왕이라 불리는 너구리들이 있었는데, 이들 또한 킨초우타누키가 신흥세력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수장에게 그를 암살할 것을 제안했다. 

 가노고 히메는 이 소식을 듣고 다급히 유모 오마쓰를 보내 계획을 알렸지만, 수십 마리의 암살너구리들의 공격으로 킨초우타누키는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도주했고, 수하였던 후지노키노다카타누키는 사대천왕 중 한명에게 목숨을 잃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다른 너구리들은 비열한 수단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후지노키노다카타누키의 두 다을은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했고, 결국 킨초우타누키를 지지하는 너구리들이 모여 선전포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가노코 히메는 아버지에게 간곡히 사정해 보았으나, 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고 결국 자살을 택하고 만다. 자신의 죽음으로 아버지가 깨닫기를 바랐으나 오히려 로쿠에몬타누키는 딸의 죽음마저 킨초우타누키를 탓했고, 가노고 히메의 죽음이 전해지자 곧 전쟁이 시작되었다. 

 서로 600여 마리의 인원을 모아 시작한 전쟁은, 첫 전투에서 킨초우타누키가 이끈 군대가 로쿠에몬타누키의 산논성을 파괴하고 그를 죽임으로써 끝났으나, 킨초우타누키 또한 중상으로 며칠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

 그렇게 킨초우타누키의 세력은 그를 지키다 죽었던 수하인 후지노키노다카타누키의  아들인 고타가타누키가 이어받았고, 로쿠에몬타누키의 세력은 그의 아들 센쥬타로타누키가 야시마 땅에서 수행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이어 받았다. 

 2차 전투는 가쓰우라의 강가에서 이루어졌는데, 동서로 나누어 시작한 이 대립은 사흘 밤낮을 겨루었으나 여전히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이에 야시마의 하게타누키의 중재로 일단락 되었으니 이때부터 아와국의 너구리 세계는 양분되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전설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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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에는 너구리와 관련된 전설이 많아서 그 수가 약 40~50개라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이 이야기는 현대 작가 이노우에 히사시가 장편소설로 쓰기도 하였고, 쇼와 14년(1939)에는 영화로 만들어져서 파산 위기에 몰렸던 '신흥키네마'라는 영화사를 살려냈다고도 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입니다. 

 

 

 

 

너구리, 놀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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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구로무라의 이장 아무개가 밤에 교닌자카를 지나는데 엷은 구름과 둥근 달이 뜬 가운데 가는 비가 연기처럼 내리고 있었다. 그 때 한 어린 아이가 커다란 삿갓을 쓰고 한 손에는 술 단지를 들고 한 손에는 장부를 들고 가며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장이 달려가면 아이도 달리고 이장이 멈추면 그 아이 역시 멈추며 서로의 서리가 가까워지지 않았다.

 이장이 매우 이상하게 여기며 노안이라 아이의 모습이 명확히 보이지 않아 왼 손으로 우산과 등불을 잡고 오른손으로 돋보기 안경을 쓰고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아이가 돌아보고 크게 소리를 치더니 갑자기 너구리로 변해 도망갔다. 아마도 불빛이 안경알을 비추자 눈이 커다랗게 보여 너구리가 요괴라고 생각해 깜짝 놀란 것인 듯하다. - 야창귀담

 

너구리 자체가 둔갑을 하는 요괴인데 불빛과 안경알에 놀라 그것이 요괴라 생각하고 도망간 이야기입니다. 야창귀담은 메이지 때에 쓰여진 야담집입니다. 전통적인 요괴라는 것이 점점 과학의 발전과 보급으로 사람들의 믿음의 영역에서 멀어지는 시점이었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불빛과 안경알은 현대 과학을 상징하는 상징적 요소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비오는 날 이야기로는 도쿠시마현에는 비가 오는 날 밤 우산을 쓴 사람으로 너구리가 둔갑하여 우산 없는 사람들을 불러 그 사람들을 데리고 엉뚱한 곳으로 간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너구리의 둔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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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가시오미 지방에 사코도라는 마을이 있다. 산 깊은 곳에는 승려가 수행을 하는 당이 있고 이 당의 승려가 마을로 내려 가면 너구리가 와서 승려의 음식을 훔쳐먹곤 하였다.

 어느 날 승려가 쇼카와 탑에서 떡처럼 생긴 돌을 하나 주워 왔다. 그리고는 이것을 화로에 넣어 불에 달군 후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어느때처럼 너구리와 찾아와서 항상 음식이 있었던 곳을 뒤지자 이것을 보더니 승려가 말했다.

 "지금부터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면, 선물을 하나 주지."

 그리고는 불에 달군 돌을 부젖가락으로 집어 던졌다. 너구리가 이를 받아 먹으려고 하자 불에 데러 그대로 도망쳤다. 

 그 일이 있은 후 불단의 본존불상에서 때때로 광채가 나서 절을 드린 일이 있었는데 승려는 이를 감사히 여겨 믿음이 거욱더 굳건해졌다. 어느 날 밤 여래보살이 배갯머리맡에 서서

 "자네는 서둘러 이 세상을 벗어나 화정(불도 수행을 하는 이가 스스로 불에 들어가 죽는 것)으로 왕생해야 할 것이니라. 내가 그때 강림하여 서방정초로 인도하겠도다."

 라고 말씀하시는 듯 하더니 곧바로 잠에서 깨어났다. 승려는 이를 감하히 여기고 마을사람들에게 안내문을 돌렸다.

 "언제 어느 날에 내가 불에 들어가 극락왕생을 할 것이니 참배하러 오시오."

 마을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것이야 말로 정말로 대단한 일이로군요."

 이윽고 예정한 날이 되자 이곳저곳에서 마을 사람들이 참배라허 왔다.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니 헤아힐 수 없었고, 모두 부터임이 왕림하시면 기도드리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승려가 당 앞에 사방으로 약 1.8미터 크기의 돌담을 쌓고 그 안에 숯불과 장작을 쌓아 올렸다. 승려는 새하얀 새 옷을 입고 두건을 쓴 후 나와서 장작 위에 올라가 마음을 다하여 염불을 외우자 이야기 대로 그날 정오쯤 되었을 무렵 서쪽에서 삼존을 비롯한 스물다섯 명의 보상들이 생활피리, 필율피리, 관락기와 현악기 연주소리에 맞추어 빛을 발하며 왕림하였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감격하여 절을 드렸다.

 "그럼 불을 지피거라!"

 라는 승려의 말에 한꺼번에 장작에서 불을 지피자 승려는 이윽고 불에 타 죽었다. 그런데 그 순간 방금전의 부처들이 모두 원래의 모습을 나타내더니 동시에

 "와하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놀라 쳐다보자 늙은 너구리 이삼천 마리 정도가 산속으로 도망쳐 들어가버렸다. 알고보니 예전에 불에 달군 돌에 데였던 너구리가 복수를 한 것이었다. - 쇼고쿠 햐쿠 모노가타리

 

너구리 둔갑 이야기는 군마현에서는 승려로 변한 너구리가 끝없이 솟아나는 차를 끓이는 이야기가 있고, 이바라키현에는 승려로 변한 너구리가 정체를 들켜 그 댓가로 절에서 일하는 것을 허락받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졸답파의 영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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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바 지방 가메야마라는 곳에 우쓰노미야 고뵤에라는 백성이 살고 있었다. 그에데는 딸 넷이 있었는데, 큰 딸들은 전부 시집 보내고 넷째 딸만 남았다. 이웃 마을의 사는 부잣집 댁에서 중매인이 이것저곳 수소문하더니 신랑감을 주선해 왔다. 그래서 일이 잘 처리되고, 이미 날짜도 정해졌는데 결혼 이삼 일 전에 중매인이 오더니 말하였다.

 "신랑댁에 사정이 생겼으니, 하루 앞당겨 신랑을 맞이하여 주시고, 신랑이 떠날 때 따님을 데리고 가는 것으로 하시지요."

 딸의 부모는 괜찮다고 하였다. 이윽고 날이 되자 큰 딸 부부도 찾아와서 일손을 도왔다. 날이 저물자 남편 일행이 찾아와 여러가지 예물 등을 장인 앞에 늘어 놓았다.

 한편, 첫째 딸 부부는 먼 곳에서 오기 때문에 늦게 도착하였다. 밤길에 오는 여행이라 여물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 졸탑파(죽은 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묘지 뒤에 세우는 얇고 긴 판자)의 나무로 지팡이를 만들어 들고 다녔는데, 이날 밤에도 가지고 왔다. 첫째 언니는 사위를 한번 보고자 무심코 지팡이로 창문의 발을 걷어올리니 사람들이 모두 온몸에 털이 난 늙은 너구리들과 술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이상하게 생각하여 남편을 불러 보여주자 남편이 말했다.

 "사람들이 맞지 않소?"

 언니의 눈에는 그저 늙은 너구리로 보이고, 예물은 모두 소와 말의 뼈로 보이는데 남편 눈에는 멀쩡한 것이었다. 이에 혹시나 하여 남편에게 지팡이를 주고 그 지팡이로 발을 걷어 다시 보게 하였다. 그러니 남편의 눈에도 틀림 없이 남편과 그 일행이 늙은 너구리로 보이는 것이었다. 이에 남편은 몰래 자매들의 남편들을 불러 말하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서로간에 방심해서는 안된다."

 라며 서로에게 지시를 내리고, 뒷문을 굳게 잠그고 창과 마루 밑까지 막도록 하였다. 그러고는 신랑이 있는 술자리로 향했다.

 "새신랑은 나에게도 술 한잔 따라 주시오"

 라며 새신랑의 옆자리로 쓱 다가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팔을 덥석 잡더니 그 자리에서 꽉 눌렀다.

 "너희들은 괘씸한 놈들이렸다!"

 라 말하자 손님들과 중매인이 답했다.

 "이게 무슨 행패입니까?"

 그러자 곧바로 언니의 남편들이 바싹 달라붙어 칼을 뽑아 찔러버렸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놀라며,

 "자네들은 제정신인가?"

 라는 말에도 아랑곳없이 새신랑의 라인들까지 전부 칼로 베어버렸다.

 "우리들은 사람들입니다. 살려주십시요!"

 라며 마루 밑으로 창문 밖으로 도망가려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들을 모두 칼로 베어 죽이고 나서 보니 오랜 세월동안 묵은 너구리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모두 놀랐고 다음 날 진짜 남편이 찾아와 혼례를 올렸다고 한다. 이것도 오로지 졸탑파로 만든 지팡이의 영험 덕분이다. - 쇼코쿠 햐쿠모노가타리

 

 

너구리8.jpg

여기서 말하는 졸탑파는 솔도파라고합니다 . 일본에서 범어나 경문 계명, 몰년원일 등을 기록해서 묘 옆이나 뒤에 두는 나무 판자입니다. 불교에서도 솔도파라고 하면 불사리를 안치하는 공양탑을 말하는데, 불교에서는 판자가 아니고 석재로 만든 작은 탑을 말합니다.

21개의 댓글

2019.07.06

왜 '하늘'은 직접 나서서 질서를 바로잡기 보다 인간에게 간접적인 경고를 내려서 질서를 바로잡고자 하나요?

 

사람을 홀리게 하거나(+해코지 하거나)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고자 하는 욕구가 왜 어떤 요괴나 귀신들에겐 있는 걸까요?(또 왜 어떤 요괴나 귀신들은 없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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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노답답

따거 나 술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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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6
@세레브민주공원

쳇 하는 소리와 함께 온라인 살쾡이로 변하더니 곧 소리없이 로그아웃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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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노답답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민속학 전문가가 아니라 요괴 마음까지는 모르지만

 

재이설이나 천응감응은 좀 찾아보고 답댓 적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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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노답답

동중서가 유학자면서도 재이를 말한 이유를 좀 생각해봐야합니다.

솔직히 유학에 재이설을 논리로 만들어서 추가시키면 이건 순전히 신하들의 왕에 대한 견제책으로 사용될 용도가 다분합니다. 나라에 무슨 일만 터지면

 

"이게 다 나랏님이 이러셔서 음양의 기가 흐트러진 덕에~ 하늘이 경고를 주시는거니까~ 이제 정책 좀 우리가 하자는대로 해보죠~" 이렇게요. 그러니 이런 글을 남긴다면 충분히 조심해야죠. 이 재이설을 말한거 때문에 이단이니 뭐니 해서 사형을 당할뻔한 동중서인데 만약 그 글의 내용이 더 과격해서 "나쁜짓하면 하늘이 직접 벼락으로 나랏님 목을 딴 다음에 새 왕을 만들어줌 ㅋ" 이렇게 썼으면 진즉에 죽었을 겁니다. 동중서라는 개인, 벼슬아치, 유학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본인도 수위 조절한 느낌이 있죠.

 

 

물론 하늘(天)은 유학에서 중요합니다. 한서에서 동중서를 언급한 부분을 찾으면 동중서가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이해하면 자신이 만물보다 귀함을 알게 된다." 라고 말합니다. 중용 첫부분에도 '천명지위성(性) - 하늘이 부여한것을 본성'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즉, 하늘은 우리에게 짐승과는 다른 어떤 본성을 부여해줍니다. 이게 도덕의 근원이 되는것이고요. 공자도 하늘타령 하기도 합니다. 유학자들의 하늘=천 개념에는 도덕천의 개념도 있고, 주재천(인격을 가진 신같은 존재)의 개념도 있는 신령스러운 것으로 보면 됩니다.

 

그런데 하늘이 직접 바로 질서를 바로잡아주기도 뭐한게, 하늘이 인간에게 본성을 부여해줬지만 어느 유학자도 '이거 하나 받았으니 인간은 완성된거야.'라고 하지 않습니다.

 

중용의 천명지위성 다음은 솔성지위도(성에 따르는 것을 도道)-수도지위교(도를 닦는 것을 교敎) 라고 합니다.

동중서는 "하늘이 선한 바탕은 주었지만 아직 선하지는 않기에 마침내 선왕을 세워 선하게 만든다는 것이 바로 하늘의 뜻이다." - 춘추번로

 

라고 말합니다. 결국 교화하고 완성시키는 몫은 인간의 몫입니다. 이게 중요한 겁니다. 유학에서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완성에서 만큼은 자유로운 존재인겁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군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죠. 만약 하늘이 지나치게 개입해서 우리의 완성을 조절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자주 묘사된다면 유학자들이 생각하는 '노력하는 인간상'은 퇴색됩니다. 유학자들은 애초에 천국이나 지옥 같은 내세의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을만큼 현실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살아생전 자신들의 손으로 무언가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했지 지나친 미신이나 운명을 믿지는 않습니다.(그렇다고 단 하나도 안믿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이 '하늘의 뜻'을 존중하고 받들어서 그것을 기반으로 공부하고 정치를 하지만 결국 중요한건 그걸 행하는 '나'에 있는거죠. 하늘도 그것을 안다면, 그리고 애초에 하늘도 인간 스스로 완성시켜보라고 본성을 그렇게 부여했기 때문에, 공부나 정치에 있어서 그릇된 점이 보이면 바로바로 목 따는것보다는 간접적으로 타일러서 변화를 유도하는게 딱 적당한거구요. 부모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잘못을 했다면 적당히 타이르지 묻어버리지는 않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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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6
@세레브민주공원

잘 읽었습니다 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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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6

늙은너구리죽인 남편들이랑 사냥꾼 너무 멋있는거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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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혁준

조금 스토리 있는 고전 괴담보면 인간도 그리 쉽게 져주지는 않다보니 멋진 이야기도 나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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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아들 듀오는 너무 슬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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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과보리가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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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6

우리 삵은 순하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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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트르

꼭 목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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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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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랑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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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잘봤다 앙 개꿀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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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덕이좋아

추천 고맙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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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천장 살쾡이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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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굶은국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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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j
2019.07.07

귀신아조씨 서양 쪽은 없어요? 전 야동도 서양만 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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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j

없는테챠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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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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