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불사 [프롤로그1-그쪽]

오늘 별채를 나설때 유독 구름이 많고 눅눅한 것이 비가 올 듯했다.

아침부터 그랬다.

그랬기에 지금 처럼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건 놀랄 일이 아니었다.

놀랄 일은 그 빗방울이 떨어지는 곳이 아닐까.

저 빗방울은 자기가 피가 고인 웅덩이에 떨어질 줄 알았을까.

아니면 산처럼 쌓인 시체에 떨어지길 바랬을까.

아마 드넓은 초원에 이름 모를 잡초 위를 바랐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이렇게 피빠진 고기같은 모습의 내 가족과 친구, 부하들을 보고싶지 않았다.

그리고 저기서 시체들을 쑤시며 걸어오는 더러운 것들도 보고싶지 않았다.

 

"..와..그 화살 속에서도 안가셨소?"

 

"씨벌거..화살로는 안된다니까? 저 인간이 어떤 인간인데"

 

시체들을 확인하던 놈들이 주변에 수북히 꽂힌 화살과 화살이 꽂혀 있는 시체들 사이에 멍하니 앉아 있던 나를 발견하고 지껄였다.

텅 빈 눈을 느릿느릿하게 돌려서 그들을 쓱 훑어보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어깨를 흠칫 떨며 눈을 피한다.

 

"에..에잇 씨발! 쫄거 없어! 우리가 지금 몇인데!"

 

"그래! 저 괴물도 이정도 쪽수면 쪽이나 쓸 수 있겠어?"

 

"다같이 찔러!!"

 

백이 넘는 놈들의 허리춤에서 동시에 칼이 뽑힌다.

날카로운 철 소리를 들으니 머리가 좀 도는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선두에 있던 몇명이 섬광처럼 내지른 칼이 몸에 몇개 박혀서 그럴수도 있고.

 

"하하! 역시 괴물은 무슨! 활로 조지고 칼로 찌르면 된다니까!"

 

찌른 놈들중에 입 가벼워 보이는 놈이 신나서 나불댔다.

 

"...왜.."

 

"왜는 무슨 왜야.그러니까 아버지가 좋은 뜻을 권할때 잘 받았으면 다 좋았잖아. 너 때문에 다 죽은거야 알아?"

 

좋은 뜻? 아버지?... 아..몇달 전에 왕을 바꿔야 나라가 산다느니, 암군을 몰아내야 조정이 바로 선다느니 하며 은근히 찔러보던 영의정부사가 생각이 났다.

고작 그딴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뭐, 고작 소문만 무성한 이런 놈 한테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크크크..우리야 일 쉽게 처리하고 좋지. 이제 그만 죽어라!!"

 

입 가벼운 놈이 내 배에 박았던 칼을 빼며 크게 휘둘렀다.

그러나 놈의 칼이 내 목에 닿는 일은 없었다.

축 쳐져있던 내 손이 섬광 같이 그 놈의 뺨을 후려 갈겼기 때문이다.

그냥 뺨을 맞았을 뿐인데 입 가벼운 놈의 몸은 선 자세 그대로 머리만 3~4 바퀴정도 돌아서 등쪽에서 멈췄다.

뒤에서 칼을 뽑은 채로 여유롭게 대기하던 놈들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굳었다.

 

"그러니까.."

 

"으..으아아악!! 죽어!!"

 

내 몸에 박혔던 칼을 빠져 나가는걸 느끼며 칼을 빼고 휘두르던 놈의 얼굴을 쳤다.

그놈의 머리가 잘익은 수박처럼 팍! 하고 터지며 머리조각들이 뒤에 서있던 놈들을 덮쳤다.

 

"그러니까..저 화살들이 너희 개새끼들이 쏜 화살이란거지?"

 

 대답하는 놈이 없었다.

잘못됐다 싶었는지 내 몸에 박힌 칼을 놓고 뒤돌아 뛰는 놈부터, 서로 눈치를 주다가 뽑았던 칼을 들고 한꺼번에 덤비는 놈들만이 가득했다.

죽어있던 내 눈에선 시퍼런 귀광이 넘실거렸고

 

그 날 조선이 망했다.

 

 

*******

 

 

나는 두부로 이루어진 세상에 살고있었다.

 

세상 모든건 보잘 것 없었으며 손만 대면 뭉개지고 부숴졌다.

그 중에서 일하러 나갔다 양반의 매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랬고, 원래 허약하셔서 병을 앓다가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충격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특히 그랬다.

그 양반집에 살던 노비들의 뼈도 약했고, 그 노비들에게 악에 바쳐 소리치던 양반의 머리도 약했다.

이 세상 모든게 약했으며 오직 내 몸과 미칠 것 같이 약한 세상을 향한 나의 악의만이 강했다.

그렇게 양반집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향해 악의를 발산하는 와중에 이 모자란 나보다 단단하며 강한 그녀를 발견했다.

비록 그녀의 몸도 이 두부 세상과 같이 연약하고 말랑하기 그지 없었으나, 그녀의 눈동자 속에 있는 그 강인한 정신과 깨끗한 마음은 눈을 마주치면 나의 악의 또한 씻겨나가듯한 기분이 들며 그 눈앞에선 감히 어찌 할 생각조차 들지 않게 만들었다.

그 다음은 뭐.. 그녀의 마음에 들기위해 나름 열심히 하던 산적질도 접고 모아놓은 부하들 중에서 소소하게 몇명 뽑은 다음 나름 착한일도 하고.

그렇게 여차저차해서 무훈을 인정받아 가문도 꾸리고 끝없는 구애끝에 정식으로 혼례도 치르고 이제 막 뱃속에 아이도 들어 섰는데..

어느날 왕이 나의 공을 높이 사 한양으로 불렀을 때 최초의 난 거절했다.

시골이던 변방이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묻혀 계신 곳이었고 내가 나고 자란 곳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 고집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가 조금씩 부풀어 오는 배를 쓰다듬으며 혹여 내가 못들으랴 조심스럽게 중얼거리던 소리를 듣자, 내 마음은 봄 햇살 받은 늦서리처럼 무방비하게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아이들 교육엔 한양이 좋다던데.."

 

기분 좋은 무방비함 이었다.

그렇게 몇 날이 가고 집안 사람들과 날 따르는 부하들 모두 이삿짐을 바리바리 싸서 먹구름 낀 날이지만 그마저도 우리대장, 우리남편 한양가는 날이라며 노래 부르던게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그런 천국은 한줄기 바람 소리와 함께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쏵! 하며 바람을 찢는 소리를 내며 어디선가 날아온 일반 화살의 반도 안될 애깃살이 빛처럼 날아와서 내 가슴에 박혔다.

그 기세가 어찌나 쎘던지 찰나지만 내 중심이 흐트러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 찰나가 되돌릴 수 없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었다.

내 가슴을 맞추는 것이 신호였는지 바로 이어서 수를 셀 수 없을 만큼의 애깃살이 한 순간에 내 주변을 초토화 시켰다.

수십명의 내 소중한 사람들이 비명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비명횡사 하는데에는 숨 한번 내 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하늘에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긴 화살대들.

아마 확인 사살용 인가 보다.

긴 화살대들이 내 가족들의 시신에 처박히고 있지만 막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첫 애기살이 지나간 후로는 모두 시체 일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갑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살이 와서 박히던 말던 멍하니 서서 주변을 바라보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그 후에 화살을 쏜 범인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많은 일들이 있고나서 결국 난 무너진 궐의 중심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많이도 죽였다.

양반도 대부분 맞아죽고, 날 막으려던 군도 썰려죽고, 흑막이던 영의정부사는 팔, 다리를 잘라서 기어다니다 굶어죽고, 병신같이 주변도 볼 줄 모르고 생각도 할 줄 모르던 왕의 머리도 따서 죽였다.

그렇게 무너진 궁궐 가운데서 멍하니 몇십일, 몇백일을 누워있어도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다.

가끔 주인 잃은 창고라도 털러오는 도둑이 있었지만 바닥은 피로 철벅이고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인형이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걸 보고는 혼비백산해서 도망간 후로는 다시는 오지 않는다.

이렇게 있길 도대체 몇일째 일까.

비가 올때 입으로 흘러 들어오는 물을 빼면 아무것도 먹고 마시는게 없다.

산적질할때 몇몇 굶겨 죽여 본 바로는 한달이면 대부분 죽어 나자빠 지던데 이 쓸모없는 몸뚱이는 몇달째 안먹어도 아직 움직일 기력이 남아있다.

이렇게 남는 힘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너무나 무력하다.

이 세상이 전부 덤벼도 이길 힘이 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무력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부모를 잃었을 때도 이와같이 느껴 그렇게 난리를 쳤었는데, 지금은 난리 칠 대상마저 모두 죽어 없어져 난리도 칠 수 없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나는 소리내지 못하는 손바닥이 됐다.

온 몸이 무력감이라는 검은 늪에 빠진 것 같다.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할만한 것이 남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돼버렸다.

그저 멍하니 있는다.

 

"..하....죽고싶다.."

 

몇달에 걸쳐 목소리 한번 내보지 않다보니 쇳소리 가득해진 목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슬며시 기어나왔다.

무력감에 지쳐서 나온 작은 투덜거림 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게 투덜거린 나는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그 자리에 누워있던 내가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다는 듯 깨끗하게.

 

어둑한 밤 놀란 부엉이만이 울 뿐이었다.

 

 

 

 

-프롤로그1. 그쪽 끝-

7개의 댓글

2019.01.13

한 삼천자 더 썼나, 쓰는데 몇시간걸려?

0
2019.01.13
@려현

쓰는데 한 삼십분~한시간?

자기전에 대충 구상 한 다음  쓰고 잠

0
2019.01.13
@고래

오 빠르넹

0
2019.01.13
@려현

정식 연재도 아니고 그냥 천천히 쓰는거지 뭐ㅋㅋ

근데 쓰고 나면 늘 아쉬움.

쓰고 나면 [숨한번 내쉴] 보다 [어?하는 시간]이 더 맘에들고 저건 문법이 좀 이상한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듬

0
2019.01.13
@고래

ㅇㅇ그런거 많지.

그리고 그런 경우를 줄여나가는게 수준이 올라가는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듬.

0

이렇게 쓸려면 어떻게 해야됨? 필사해야됨??

0
2019.01.14
@내가간다하와이

ㄴㄴㄴ그냥 최대한 자연스럽게 문장을 잇는다고 생각하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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