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여고생이랑 썸타는 소설2.txt

 어릴때 어른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싸우지 말라고.

 

 그럼 친구가 아닌 사람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
 친구인지는 또 어떻게 판단하는가?

 

 내 머리를 힘껏 잡아당기는 아이도 친구인가?
 물을 끼얹고 흙을 뿌려대는 아이도 친구인가?
 교과서를 찢고 저주가득한 글귀를 휘갈겨댄 아이도?
 신발을 숨기고 책가방을 숨기고 교복을 숨기는 아이도?

 

 “…왜 그래.”
 
 바보같은 질문이다.
 이유 따윈 상관없다.
 이유는 만들면 그만이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데, 이유는 필요없다.
 우습게도 그걸 깨달은건 고3의 마지막 날이었다.

 

 “졸업 축하해!”
 
 사방에서 들려오는 축하.
 피해자는 말이 없는데.
 가해자는 말이 많았다.
 참 걸작이다.

 

 “저기, 아까부터 쭉 봤었는데 정말 예쁘셔서요. 실례지만 번호좀 주실 수 있으세요?”

 

 문득 처음보는 남자가 대뜸 휴대폰을 내민다.
 그러자 느껴지는 익숙한 시선들.
 그리고 들려오는 소곤거림.

 

 “역시 한번 걸레는…”

 

 쯧쯧.
 저년들은 하수다.
 고수는 저렇게 함부로 밑천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 이를테면 지금 내 손을 잡아끄는 년이 그렇다.

 

 “하나야, 졸업식 끝나고 뭐해? 일없으면 나랑 같이 보드카페 가자!”

 

 나는 개다.
 먹이를 주면 꼬리를 살살 흔들고 냉큼 받아먹는 개.
 하지만 개새끼도 수틀리면 짖을 줄은 안다.

 

 “이제 그만해.”
 “응?”
 “너도 힘들잖아, 가식 그만 떨라고.”
 “하나야, 그게 무슨 말이야?”
 “김민지.”

 

 그러니까 지금은 짖을거다.
 나답게, 개답게, 당당하게.

 

 “초중고 12년 동안 고생했다, 씨발년아.”

 

 짝.

 

 싸대기라는거, 생각보다 어려운거구나.
 나름 힘껏 친다고 쳤는데 드라마에서 보던거만큼 찰진 소리는 나지 않았다.

 

 “저기, 일단 진정하는게…”

 

 내 번호를 따려던 남자가 놀라 뜯어말린다.
 그 옆에서 한때 친구였던 년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래야지.
 클라스는 영원한 법이니까 그 껍데기가 어디 가겠냐고.
 참 대단한 년이야.
 그래서 나도 2년 동안 깜빡 속은거겠지.

 

 “야.”
 “…하나야. 대체 왜 이러는거야? 난 그냥 너랑 마지막으로ㅡ.”

 

 누가 귀마개라도 씌웠나.
 좀 빼봐.
 저 쌍년이 뭐라는지 하나도 안들리니까.

 

 “어이 거기! 너네 뭐해 지금!”
 
 보면 몰라요?
 개새끼가 인간을 정의구현하는 중입니다.
 아 이거좀 놔요.
 놓으라니깐?

 

 “졸업식날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야!”

 

 졸업식?
 느그 졸업식이겠지요.
 지금 나를 손가락질하고.
 입을 가린채 오또케스트라를 연주하며.
 혀를 끌끌차고 고개를 절레절레젓는.
 느그 가해자들만의 졸업식.

 

 “민지야!”

 

 와, 뭐야 뭐?
 순식간에 쌍년 곁으로 모여드는 무리들.
 그 수는 어림잡아도 스물은 넘었다.
 그 가운데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김민지는 피해자 그 자체였고.
 
 “하나야…대체 왜.”

 

 소름이 돋았다.
 훌쩍이면서도 살짝 일그러지는 저 입꼬리가.
 혹할 정도로 애처롭게 들리는 저 목소리가.
 너무나도 대단하고, 또 증오스러웠다.

 

 “쌤, 저 갈게요.”
 “유하나!”
 
 쌤은 죄가 없다.
 선생이란 직업도 그저 시스템의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니까.
 게임으로치면 모니터링만 할줄아는 운영자일 뿐이니까.

 

 “인생 공부 잘 배워갑니다.”

 

 약자여서 피해자가 되는가, 아니면 피해자라 약자 취급을 받는가.
 철학은 특기가 아닌데 그냥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그렇게 미친년처럼, 아니 미친년이 되어 집에 들어온 나.

 

 “다녀왔습니다.”

 

 대답은 없었다.
 불꺼진 거실을 지나쳐 그대로 방 침대속으로 골인!

 

 ...


 그렇게 몇 시간이나 잤을까.
 습관적으로 꺼내든 맛폰은 새벽 3시를 가리켰다.
 곧 엄마가 올 시간이다.

 

 “…진짜, 커튼치지말라니까.”
 
 하긴, 내가 아무리 얘기해봤자다.
 가정부인 미진 아줌마에게 돈을 주는건 내가 아니라 엄마니까.
 그렇게 투덜거리며 커튼을 확 걷었다.


 그러자.

 

 “있다.”
 
 창 밖 너머로 보이는 정자.
 그 아래로 보이는 정겨운 뒤통수가 반가웠다.
 그리고 역시나 함께 보이는, 태블릿 안의 글귀들.
 
 “엇차.”
 
 황급히 서랍에서 꺼내든 쌍안경.
 회사가 스테이너였나 오츠카였나, 하여간 이건 얼굴도 모르는 아빠의 유품이었다.
 이윽고 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배율을 조작한 뒤 창밖을 관찰했다.

 

 “아, 역시 끝날 기미가 안보이네.”

 

 무슨 마지막 잎새도 아니고.
 그렇게 한 시간이나 됐을까.
 물도 좀 마시고 쥬스도 마시고 하다보니 태블릿이 꺼졌다.
 나도 망원경을 던지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벌떡 일어났다.

 

 “못 기다려.”

 

 나는 개다.
 그러니까 내가 죽으면 그건 개죽음이다.
 그리고 개죽음에 의미는 없는 법.
 나는 이윽고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뒤적였고.
 
 다음날 새벽, 엄마한테 따귀를 맞았다.

 이유는 없었다.

 

 “아프네…”
 
 볼을 문지르며 나온 집 밖은 고요했다.
 그야 새벽 4시니 고요하지 않을리가.
 바깥 대문 앞에 서자 문득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문은 저절로 열렸다.

 

 “…”
 
 술이 역겹다.
 투명한 소주도 역겹고 오줌같은 맥주도 역겨우며.
 겉은 예쁘장한 위스키도, 이름부터 그럴듯한 칵테일도 역겹다.
 
 “하나니?”

 

 문 밖에서 낯선 남자가 아는체를 했다.
 역겨우니 술냄새 풍기지말고 들어가서 빨리 우리 엄마랑 뒹굴지 그래?
 그 말을 속으로 꾹꾹 눌러둔 채, 나는 남자를 지나처 편의점으로 항했다.

 

 “저기, 학생 아니에요?”

 

 후.

 왜 장님은 알바로 쓰지 않는 걸까.
 그랬다면 술 하나 구하는게 이렇게 어렵진 않았을텐데.
 이윽고 나는 내뱉듯 말했다.
 
 “…어디까지면 되는데요?”
 “네?”

 

 나는 여드름 투성이인 알바의 손목을 잡고 재고실 안으로 들어갔다.

 

 ...

 

 뭐,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다.

 

 “…아니야.”

 

 나는 개다.
 나는 누구처럼 창녀가 아니다.
 나는 개다.
 그럼 저 남자는 개랑 해버린건가?

 

 “처음인거 같던데…안됐네.”

 

 익숙한 풍경, 익숙한 사람.
 이윽고 정자에 도착한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봐줄만한데?’

 

 뒤통수의 반대쪽은 생각보다 더 괜찮았다.
 처음 마셔본 맥주맛은 생각보다 더 나빴고.

 

 “콜록.”

 

 역시 역겹잖아.
 이런 걸 엄마는 다 참아가며 마셨던걸까.
 아 안되겠다, 뭔가 다른 게 필요해.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옆에서 비닐을 찢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오네.
 이게 무조건반사인가 뭔가하는 그거냐.
 죄송해요 과학쌤 사실 저 그때 졸았어요.
 하하하.

 

 “네?”
 “그거 다 마실거에요?”
 “어라.”

 

 흠칫하는 모습이 귀엽다.
 최소한 방금전 알바생보다는 그랬다.
 아마 두 개인지도 몰랐나 보다.
 그는 이윽고 비닐을 마저 찢더니 한 개를 내게 내밀었다.

 

 “마셔요, 보니까 안주도 없는것 같은데.”
 “…안주? 그게 뭐에요?”

 

 그러자 남자의 표정이 참 복잡해 보였다.
 글 쓰는 사람들은 원래 다 저런가?
 
 “잠깐만 기다려요.”

 

 그러더니 지혼자 갑자기 어디론가 뛰어간다.
 그 모습이 그냥 웃겨서, 피식 웃어버렸다.

 

 “같이 마셔요. 속 버리니까.”
 “아.”

 

 고맙습니다, 하고 봉지를 냉큼 받아들자 왠지는 몰라도 다시 뺏겨버렸다.
 그리곤 하나씩 봉지를 뜯고 와그작와그작 씹는게 왜 그리 웃기는지.

 

 “아무것도 안넣었어요.”
 “아.”
 “그러니까 먹어도 되요.”

 

 이상한 남자다.
 교복 입고 캔맥주까는데 말리기는커녕 안주란걸 사다주는거부터가, 이미 이 남잔 정상은 아니다.
 그러면서 뭐 안탔다고, 자기 입장은 또 잘챙긴다.
 물론 그냥 나 이쁘다고 헥헥대는걸수도 있지만…그렇게 생각하긴 싫다.

 그래서였을까.
 갑자기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폰 좀 줘봐요.”

 

 뜬금없지?
 나도 그래.
 나는 대신 내 폰을 꺼내서 벤치 끝에 비스듬히 놓았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가관이었다.

 

 “자, 이러면 쌤쌤이죠?”
 “으음.”

 

 똥 마렵냐, 왜 그래.
 아무래도 설명이 필요한것 같았다.

 

 “요즘 미투인가 뭔가로 시끄럽잖아요. 물론 난 그런 미친년이 아니지만.”
 “으음.”
 “또 그런다. 똥 마려워요?”
 
 또 벙찐다.
 귀엽다 귀여워.
 모든 남자, 아니 우리 아빠만이라도 이런 남자였으면 좋을 텐데.
 물론 본 적도 없지만…
 갈 땐 가더라도 망상 하나 정돈 괜찮잖아?

 

 “아무튼 과자 잘 먹을게요. 딸기우유도.”
 “…별 말씀을.”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런 건 앞으로 지겹게 겪을 텐데.
 그런 생각에 저절로 입이 열린다.

 

 “오빠.”
 “오빠 아닌데요.”
 “그럼 뭐, 삼촌?”
 “그보다는 적은데요.”
 “아 그냥 오빠해요.”
 “...그러죠 뭐.”

 

 그냥 씹어도 될텐데 하나하나 다 받아준다.
 그래서 더 아는체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빠 건너편에 단독주택 살죠.”
 “아닌데요.”
 “내가 다 봤는데? 여기 정자 뒤가 바로 우리 집인데?”

 

 그러자 오빠가 고개를 살짝 튼다.
 역시 귀엽다.
 
 “맞네, 킥.”

 

 그, 아니 오빠는 말이 없었다.
 미친년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그렇게 불안해하던 도중, 오빠는 태블릿을 켰다.

 

 “아, 글쓴다.”

 

 불편하겠지. 어쩌면 소름끼칠지도 모른다.
 
 “그거 쓴지 한 삼개월 됐죠? 완결 언제나요?

 

 그래서인지 오빠는 발뺌하고 봤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에이 작가란 분이 첫 독자한테 그러면 안되죠.”
 “작가 아닌데요.”
 “그래요? 그럼 글쟁이.”

 

 문득 너무 까불었나 싶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떨까.
 다시 볼일 없을 텐데.
 그러자 오빠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완결 안나요 이건.”

 

 …


 안난다고.

 

 “와 욕심쟁이, 글 한개로 우려먹으려고.”
 “…그러는 그쪽은 술쟁이고?”

 

 어쭈, 제법이잖아.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맥주를 쭈욱 들이켰다.

 

 “콜록콜록.”
 “안주 먹으라니까.”
 “아 그랬지, 콜록.”

 

 그제서야 난 뜯어둔 봉지를 찾았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아.”
 
 잠깐 멍때린 나는 꺼내든 물건을 재빨리 도로 넣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터질듯 요동친다.
 그대로 있으면 진짜 터질거같아서, 나는 다시 오빠에게 말을 걸었다.
 
 “…완결 진짜 안나요? 재미있는데.”
 “안나요. 애초에 결말이 없는 형식이라.”

 

 결말이 없다.
 그래,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적어도 베드 엔딩은 아니니까.

 

 “그렇구나.”

 

 만약 내 인생도 누군가가 쓴 이야기라면.
 더도 덜도 말고 딱 하나만 부탁하고 싶다.
 
 “잘 먹었습니다. 전 이만 가볼게요.”

 

 처음부터 없던 걸로 해달라고.
 그게 안되면 우리 엄마만이라도 해피 엔딩이 되게 해달라고.

 

 “…조심히 가요. 가급적이면 술은 조금만 마시고.”
 “그건 좀 힘들것 같은데.”
 
 마실수가 없거든.
 이윽고 난 놀이터를 떠났다.
 그리고 괜히 봉지를 들추고 내용물을 바라본다.
 
 “푸른 악마는 개뿔, 생긴건 이온음료처럼 생겨서는.”
 
 2010년에 시판이 중지됐다는데 역시 어둠의 경로는 대단했다.
 덕분에 최악의 농약이라는 그라목손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나는 개다.
 먹이를 주면 꼬리를 살살 흔들고 냉큼 받아먹는 개.
 하지만 개새끼도 수틀리면 물어뜯을줄은 안다.

 

 “좀 아플거야.”
 
 어쩐지 발걸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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