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여고생이랑 썸타는 소설.txt

 밤이 좋다.
 별 특색없는 봄밤도 좋고 풀내음 그윽한 여름밤도 좋으며.
 낙엽과 은행 썩은내가 나는 가을밤, 아스팔트와 흙냄새가 절정인 겨울밤도 좋다.

 

 특히 새벽이 좋다.
 발소리 하나하나에도 귀가 기울여지는 고요함.
 지금 당장은 오직 나만이 깨어있다는 소박한 우월감이 좋다.

 그래서 한걸음 떼는것조차 힘겨울 겨울만 아니라면.
 언제나 딸기우유 한 팩과 태블릿, 블루투스 키보드를 챙기고 근처 제법 으슥한 놀이터로 나가곤 했다.

 

 “…”

 

 침묵은 재민에게 있어 훌륭한 휴식이었다.
 항상 머릿속이 설정과 대화로 가득한 그였기에 그는 그 흔한 취객 노동자조차 없는 이곳 놀이터의 정자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아.”

 

 하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재민이 고개를 들어보니 없어야 할 불청객이 눈앞에 있었던 것.
 입고있는 교복을 보니 인근 산암고 학생인것 같았다
 …동그랗게 뜬 눈이 뭔가 토끼랑 닮은 것 같기도.

 

 꾸벅.


 그렇게 서로 고개를 살짝 숙인 뒤 벤치에 앉는 여학생.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지만 어두워서 보이지가 않는다.
 
 ‘뭐, 내 알바인가.’

 

 이불 밖은 위험한 시대.
 현대 사회에서 불필요한 관심은 분명 독에 가깝다.
 그런 생각에 재민은 다시 키보드를 두드려 나갔다.
 
 치익, 딱.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에 재민은 힐끗 시선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어디서 많이 본 녹색 캔이 보인다.
 맥주였다.

 

 “…”

 

 재민은 이내 시선을 거뒀다.
 꿀꺽꿀꺽,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콜록.”

 

 급하게 들이켰는지, 아니면 술이 처음인지 여학생은 연신 콜록거렸다.
 덕분에 재민이 좋아하는 새벽은 이미 없었다.

 

 ‘오늘은 그만할까.’

 

 키보드에서 손을 뗀 재민은 이내 편의점에서 사온 딸기우유를 집어들었다.
 그러자 문득 풍겨오는 샴푸 냄새.
 
 “저기.”
 
 쿨럭였던 탓일까, 입가에 묻어있는 맥주 거품은 꽤 귀여웠다.
 문득 딴지를 걸어볼까 싶었지만 재민은 그렇게 넉살 좋은 타입이 아니었다.

 

 “네?”
 “그거, 혹시 다 마실거에요?”

 

 새까만 눈은 물끄러미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그에 맞춰 돌아가는 시선.
 
 “어라.”
 
 재민은 저도 모르게 그런 멍청한 소릴 냈다.
 손 안의 우유팩은 두 개였다.

 

 ‘…그러고보니 행사상품이었던것 같기도 하고.’

 

 거기에 포장이 절묘하게 되어 있던 탓도 컸다.
 이윽고 재민은 덜떨어진 비닐을 벗겨내고는 내밀었다.

 

 “드세요. 보아하니 안주도 없는것 같은데.”
 “…안주요? 그게 뭐에요?”
 
 …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안주라는 개념을 모를 수도 있고 그러면서 술을 마실 수도 있고 그러면서 미성년자일수도 있지.
 그래, 그럴수 있ㅡ.

 

 “잠깐 여기서 기다려요.”

 

 그 말을 남기고 뛰다시피 향한 곳은 편의점이었다.
 
 “구천 칠백원요.”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진미 한 봉지에 고소한 맛 위주의 스낵.
 개인취향이 잔뜩 들어간 안주를 계산하면서도 그 답은 나오지 않았다.

 

 “…갔겠지?”
 
 제정신박힌 여학생이라면 처음보는 남자가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릴 리 없으니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기대감을 가진 덕분일까.
 다시 돌아온 정자 아래로 익숙한 뒤통수가 보였다.

 

 “…”

 

 재민은 손으로 잠시 얼굴을 덮고는 그녀에게 다가가 봉지를 내밀었다.

 

 “같이 먹어요. 속 버리니까.”
 “아.”
 
 아깐 어두워서 몰랐는데 눈이 참 크고 순했다.
 그래, 토끼보다는 사슴이 어울릴지도.

 

 “고맙습니다.”
 
 이윽고 봉지를 냅다 받아드는 그 순진한 모습에 재민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잠깐 줘봐요.”
 
 그러면서 봉지를 도로 뺏는 재민.
 이어서 그는 내용물을 하나씩 꺼내더니 각자 골고루 입에 넣고 와그작 씹어대었다.
 비산로 704거리 앞 놀이터에서 벌어진 때아닌 먹방쇼.
 여학생은 그 광경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아무것도 안 넣었어요.”
 “아.”
 “그러니까 먹어도 되요.”

 

 으 쪽팔려!
 그냥 모른척했으면 될걸 뭐 이런 짓을 다하는지.
 그렇게 재민이 스스로를 저주하고 있자 여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잠깐 폰좀 줘봐요.”

 

 ?
 ??
 ???

 재민이 이해를 못하고 있자 그녀는 대신 자기 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벤치 끝에 두고는 케이스를 활용, 흡사 cctv처럼 그녀와 재민을 촬영하게 만들었다.
 
 “이러면 그쪽도 쌤쌤이죠?”
 “으음.”

 

 역시 미친년이었어.
 그렇게 재민이 결론을 지으려던 찰나 여학생이 귀엽게 투덜거렸다.

 

 “요즘 미투인가 뭔가로 시끄럽잖아요. 당연히 난 그런 미친년이 아니지만.”
 “으음.”
 “또 그런다. 똥 마려워요?”
 
 훌륭한 입담에 벙쪄버린 재민을 보며 그녀는 쿡쿡 웃었다.

 

 “아무튼 과자 잘 먹을게요. 그리고 딸기우유도.”
 “…별 말씀을.”

 

 재민은 고개를 한번 털고는 맞은편 벤치에 털썩 앉았다.

 

 “오빠.”

 

  오빠?

 

 “오빠 아닌데요.”
 “그럼 뭐, 삼촌?”
 “그보다는 적은데요.”
 “아 그냥 오빠해요.”
 “그러죠 뭐.”

 

 찐.
 분명 그럴텐데 이상하게도 여학생은 뭐가 재밌는지 계속 킥킥댔다.

 

 “오빠, 건너편에 단독주택 살죠.”
 “아닌데요.”
 “내가 다 봤는데? 여기 정자 바로 뒤가 우리집인데?”
 
 이건 또 뭔.
 그러면서도 재민은 뒤쪽으로 살짝 고개를 틀었다.
 
 “맞네, 킥.”
 “…”

 

 뭔 망상 순도 백퍼센트짜리 전개냐 이건.
 혼란하다 혼란해.
 이윽고 재민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태블릿을 켰다.

 

 “아, 글쓴다.”
 “…”

 

 재민은 입을 다물었다.

 뭐야, 어떻게 아는 건데?

 

 “한 삼 개월 썼죠 그거? 완결 언제 나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가족도 모르는 사실을 처음 보는 사람이 알고 있다.
 그건 정말 묘한 느낌이었다.
 때문에 재민은 일단 발뺌하고 봤다.

 

 “에이 작가란 분이 첫 독자한테 그러면 안되죠.”
 “작가 아닌데요.”
 “그래요? 그럼 글쟁이.”

 

 상대가 안된다.
 그걸 고스란히 느낀 지훈은 이내 선선히 인정했다.

 

 “완결 안나요 이건.”
 “와 욕심쟁이. 작품 한 개로 우려먹네?”
 “…그러는 그쪽은 술쟁이고?”

 

 그 말에 그녀는 피식 웃더니 맥주를 쭈욱 들이켰다.

 

 “콜록콜록.”
 “안주 먹으라니까.”
 “아, 그랬지 참. 콜록콜록.”

 

 콜록대면서도 열심히 봉지를 뒤적거리는 여학생.
 그런데.

 

 “어.”
     
 노란 마개가 씌워진 500ml짜리 플라스틱 병.
 그것을 꺼내든 그녀는 순간 뇌정지라도 온것마냥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어두워서 자신이 들고온 비닐봉지랑 헷갈린 모양이었다.
 
 “…완결 진짜 안나요? 재미있는데.”

 

 그녀는 조심스럽게 병을 도로 집어넣으며 그렇게 물었다.

 

 “안 나요. 애초에 결말이 없는 형식이라.”
 “그렇구나.”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여학생이 벌떡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조심히 가요. 가급적이면 술은 조금만 마시고.”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그녀는 웃었다.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튼 웃는 것은 확실했다.
 이윽고 그녀는 놀이터를 떠났다.

 

 “...바로 뒤가 집이라더니.”

 

 정작 가는 곳은 반대 방향이었다.

 

 “휴우.”
 
 한숨이 나왔지만 그가 좋아하는 새벽이 다시 돌아왔다.
 지금은 7월 중순의 여름.
 덕분에 정자 아래에는 이름모를 잡초들이 듬성듬성 나있었다.
 그래, 잡초들이…

 

 “잠깐만.”

 

 순간 재민은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빡빡해 보이는 노란 마개, 요즘 같지 않은 투박한 디자인.

 그리고 살짝 엿보였던 농촌 마크가 번개처럼 뇌리에 번쩍였다.

 

 “씨발!”

 

 지금은 갈아탔지만 재민은 원래 스릴러 작가였다.
 그 때 종종 인터넷으로 접했던, 치명적인 독극물의 이름들.

 

 “하필 그라목손이라니… 진짜 미친년이었잖아!”

 

 재민은 그렇게 부르짖으며 여학생이 사라진 쪽으로 냅다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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