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드립

즐겨찾기
최근 방문 게시판

명장 이순신의 군공과 불필요한 사족의 메스꺼움.

https://www.dogdrip.net/189279718 - 세계전쟁 역사상 가장 말도 안되는 전쟁

 

이순신이 대단한 명장이고 훌륭한 전선지휘관인건 사실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실질을 벗어나서 과장을 하면 그건 그냥 국뽕이고 역사왜곡임.

일일히 사망자니 사상자니 분석하는건 의미가 없으니 알기 쉽게 노량해전 항목만 보자.

 

 

 

 

캡처.PNG

 

부상자를 빼고 사망자만 2~3만 명이라고 한다.

사서에 기록된 노량해전의 기록을 보자.

요즘은 역사학자들의 노력으로 DB화가 잘되어 있어 당시의 정보를 손쉽게 일반인들도 접할 수 있다.

 

----------

 

군문 도감이 아뢰기를,

"방금 진 도독의 차관(差官)이 들어와서 말하기를

‘왜적의 배 1백 척을 포획했고 2백 척을 불태웠으며, 5백 급(級)을 참수하였고 1백 80여 명을 생포하였다.

물에 빠져 죽은 자는 아직까지 떠오르지 않아 그 숫자를 알 수 없다. 또 이 총병(李總兵)은 죽은 것이 분명하다.’

고 하였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06권, 선조 31년 11월 24일 을사 4번째기사 (1598년)

 

 

 

좌의정 이덕형이 치계하였다.

"금월 19일 사천(泗川)·남해(南海)·고성(固城)에 있던 왜적의 배 3백여 척이 합세하여 노량도(露梁島)에 도착하자,

통제사 이순신이 수군을 거느리고 곧바로 나아가 맞이해 싸우고 중국 군사도 합세하여 진격하니,

왜적이 대패하여 물에 빠져 죽은 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고, 왜선(倭船) 2백여 척이 부서져 죽고 부상당한 자가 수천여 명입니다.

왜적의 시체와 부서진 배의 나무 판자·무기 또는 의복 등이 바다를 뒤덮고 떠 있어 물이 흐르지 못하였고 바닷물이 온통 붉었습니다.

통제사 이순신과 가리포 첨사(加里浦僉使) 이영남(李英男), 낙안 군수(樂安郡守) 방덕룡(方德龍),

흥양 현감(興陽縣監) 고득장(高得蔣) 등 10여 명이 탄환을 맞아 죽었습니다.

남은 적선(賊船) 1백여 척은 남해(南海)로 도망쳤고 소굴에 머물러 있던 왜적은 왜선(倭船)이 대패하는 것을 보고는

소굴을 버리고 왜교(倭橋)로 도망쳤으며, 남해의 강언덕에 옮겨 쌓아놓았던 식량도 모두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소서행장(小西行長)도 왜선이 대패하는 것을 바라보고 먼 바다로 도망쳐 갔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06권, 선조 31년 11월 27일 무신 5번째기사 (1598년)

 

----------

 

익사자를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이덕형은 사상자가 수천 여라고 보고했다.

 

익사자를 포함하더라도 사망자만 2~3만 이라고 할 수 없는게

애초에 사망자 숫자 자체가 노량해전에 참가한 일본군 규모를 일반적인 추정치보다 훨씬 상회하는 숫자다.

 

노량해전은 순천 왜교성에 포위된 고니시 유키나가가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구원을 요청하자

시마즈 요시히로가 고니시의 사위인 소 요시토시 등 기타 다이묘 여럿과 함께 고니시를 구하러 가서 발생했다.

즉, 고니시를 구하러 가는 일본군 vs 고니시를 포위하고 있던 조명연합군 사이에 발생한 전투인데

(정작 고니시는 노량해전이 벌어진 틈을 타 무사히 빤스런했다.)

 

이 때 이덕형은 노량에서 실제로 싸운 적선의 규모를 300여 척이라고 보고했다.

그런데 이 배들이 전부 주력 전투함이고 정원을 빡빡 채운 것이 아닌 이상 병력 3만 명 이상은 나올 수가 없다.

왜란 당시 조선, 일본, 명 삼국의 주력 함선들 중 가장 규모가 컸던 판옥선의 정원이 120명 수준이다.

 

한마디로 사망자 2~3만 명은 일본군 함선이 전부 세키부네 이상의 안택선 규모에 그 배에 정원이 꽉꽉 들어차 있을 때나 계산 가능한 소리다.

조선조차도 가지고 있는 판옥선들을 전부 정원 채워서 굴리지 못했는데 남해에 몰려 개털리고 있던 일본이?

 

더군다나 지휘관들 병력구성을 봐도 말이 안된다.

 

임진왜란(제4군) 때나 정유재란(제5군) 때나 시마즈가 이끈 병력은 1만 명 규모였고

노량해전이 있기 전 사천성 전투에서도 그가 이끈 병력은 수천 명 수준이었다.

거기에 소 요시토시나 기타 다이묘들 병력은 훨씬 적어 적은 자는 병력이 2천 여, 많아야 5천 명에 불과했다.

심지어 이건 전쟁 시작할 때 숫자고 전쟁 과정에서의 손실은 고려하지 않은 숫자다.

당장 임진왜란 때는 5000여를 거느린 소 요시토시만 해도 노량해전 직전에는 1000명에 불과한 병사만 거느리고 있었다.

 

----------

 

적의 잔여 수효에 대해서는, 이 왜적은 왕래가 일정하지 않아 아침 저녁으로 형세가 다릅니다.

각처의 변신(邊臣)들이 보내는 치보(馳報)는 도망쳐서 돌아 온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서 얻은 것이 많아서

앞뒤가 같지 않으므로 정확히 알기가 어렵습니다. 우선 각처의 초보(哨報)에 의거하면,

경상좌도울산군에 약 1만여 명이 있으니 곧 가등청정(주: 가토 기요마사)이 거느리는 것이고,

서생포(西生浦)에 약 4천∼5천 명이 있는데 어떤 이는 1만여 명이라고 합니다.

부산포(釜山浦)에 약 4천∼5천 명이 있고, 양산군에 약 4천∼5천 명이 있으니 곧 갑비수(甲斐守)(주: 구로다 나가마사)가 거느리는 것입니다.

우도의 김해부에 약 1만여 명이 있으니 곧 풍직무(豐直茂)(주: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거느리는 것이고,

덕지도(德只島)에 약 4천∼5천 명이 있고, 고성현에 약 6천∼7천 명이 있고, 거제현에 약 4백∼5백 명이 있고, 진주에 약 4백여 명이 있고,

영신현(永新縣)에 약 2천여 명이 있고, 사천현(주: 시마즈 요시히로)에 약 7천∼8천 명이 있는데 어떤 이는 1만여 명이라고도 합니다.

곤양군에 약 3백여 명이 있고 남해현에 약 1천여 명이 있으니 곧 평의지(平義智)(주: 소 요시토시)·평조신(平調信) 등이 거느리는 것이고,

창원부와 웅천현 두 곳의 남은 적은 정확히는 모르지만 웅천현은 곧 대영풍무수(大營豐茂守)(주: 토요 시게모리)가 거느리는 것입니다.

전라도의 순천부에 약 1만 5천여 명이 있으니 평행장(平行長)(주: 고니시 유키나가)·비란도(飛蘭島)(주: 마쓰라 시게노부) 등이 거느리는 것인데,

노약자(老弱者)가 모두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곳곳에 성을 쌓고 양식을 축적하면서 형편을 연락하여 도무지 본토로 돌아갈 뜻이 없습니다.  

 

선조실록 104권, 선조 31년 9월 28일 경술 19번째기사 1598년


----------

 

타임라인도 말이 안됨.

순천 왜성의 고니시가 포위망을 뚫고 구원요청을 시마즈에게 보낸게 1598년 11월 17일

이순신이 이 소식을 듣고 노량에 나가 시마즈를 중심으로 한 일본군 함대를 맞아 싸운게 1598년 11월 19일 새벽이다.

노량해전 즈음이면 이미 당시 일본군 다이묘들이 히데요시 죽은 거 알고 전부 부산에 모여 빤스런하고 있을 때인데

사천성전투(9월)에도 수천명에 불과했던 시마즈의 군대가 (심지어 시마즈는 정유재란 7군 중 5군 지휘관이었음)  

불과 두 달만에 일본군 장수들 전부 퇴각하느라 전체병력이 줄줄히 빠져나가는데

난생 거느리지도 않은 3만이 넘는 병력을 이끌고 구원요청 받자마자 하루만에 노량에 등장한다? 그래서 그 중에 2~3만이 죽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결론: 이순신은 불세출의 명장이지만 알 수 없는 걸 알 수 있는 양, 심지어 과장해서 퍼뜨리는 역덕들의 사족은 문제임.

 

 

 

 

 

 

p.s.

 

 

3.PNG

 

 

그리고 나도 못 접해본 사료 니들만 보지 말고 나눔 좀 해라.

 

 

 

 

 

 

118개의 댓글

2018.12.18
@일간베니스

박정희가 이순신을 이용한건 사실이지만

그냥 네티즌 하나가 자기맘대로 배×인원수 해서 사망자 계산한걸 박정희와 사학계로 올라가면 너무 나간거지.

 

0
2018.12.18
@일간베니스

박정희는 이순신만 이용한 건 아님. 외세침략맞은거 다 좋아함. 대표적인게 삼별초ㅇㅇ

 

이순신도 원래 군공을 과장하고 난중일기에서 즐겁게 성생활하신거나 원균 욕, 정신적인 아픔같은 인간적인 내용은 일부러 뺌. 그래서 무슨 불세출의 1930년대 슈퍼맨같은 캐릭으로 만듬

0
2018.12.18
@아나키즘활동

대표적으로 이순신과 함께 김구도 엄청 띄어놨지. 물론 김구도 맥이 끊길뻔한 무장투쟁의 명맥을 잇게 한 점이나 임정 이끌고 추축국에 선전포고한거라든지 위대한 업적도 있긴한데 사실 명과암이 너무 뚜렷한 인물이기도 하고... 막상 그시대 초대 대통령 인기순위 1위는 여운형이었고 김구는 이승만보다도 낮았다. 그런데 박정희 입장에서는 이승만을 부정하고 집권에 성공한 점, 김구 아들 김신 당시 공참총장이 쿠데타 주도세력이었던 이유 등 여러모로 박정희식 민족주의 배양에 최적화된 인물이었음. 그때부터 백범 기념관 이런거 만들고 초등학생들 체험학습시키고 그랬지.

0
2018.12.18
@한해원

김구도 그렇긴한데 반사효과도 있음. 박정희 때도 부각되었지만 00년대부터 뉴라이트들이 ㅈㄹ하면서 임정관련 반박연구들이 크게 늘거나 부각됨. 그러면서 김구가 반사효과로 뜬 것도 있음.

 

갠적으로 삼별초만큼 박정희만 ㅈㄴ쎄게 밀어준게 없다고 생각ㅈ삼

0
2018.12.18
0
2018.12.18

이러나저러나 대단한건 국뽕을 껴서 과장을 하던 과장없이 사실만 보던 갓순신장군님은 해전 원톱장군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군

0
2018.12.18
@유프라테스

ㅇㅇ 맞음. 단지 서술상의 문제지. 구라를 섞으면 글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원래 업적도 깎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함

0
2018.12.18

이런건 전공자가 해야하지만 대신해줘서 캄사합니다. 박사가면 부전공은 동양사말고 한국사하셈

 

그래야 계속 글쓰지 ㅇㅅㅇ

0
2018.12.18

여기에 붐업 왜 이리 많냐

0

실록이랑 징비록도 쫌 차이 나더라

0
2018.12.18
@빅토리아탄산수플레인

심지어 징비록도 판본에 따라서 내용이 추가되기도 해서 차이가 발생함

0
2018.12.18

지력다 난 왠지 얘가 더 잘 아는거 같아서 얘 댓글에 별말안달았는데 리얼 팩트로 뚜까패네 ㅋㅋㅋㅋ

0
2018.12.18

Stop using facts!

0
2018.12.18
0
2018.12.18

이런 개새끼들이 한국에 존재하는게 문제 자지를 갈라서 쪽빨이들한태 쏘세지로 팔아버려야되

0
2018.12.18
@관자로리

?

0
2018.12.19
@관자로리

?

0
2018.12.19
@관자로리

?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밤새 공부하는 (일하는) 남자가 버틸 수 있는 이유..real 10 뚱전드 17 1 분 전
김연자 블루투스 창법 직관.avi 4 흑구D 15 2 분 전
95년 군번의 특공대의 모습들 18 라이카 16 2 분 전
드와이트 "클리토리스가 뭐야?" 10 gsfdrntjklgh 21 4 분 전
한국과 일본의 저출산 대응방식 🇰🇷👶... 21 에어부산 50 19 분 전
타자에 전념중인 오타니 쇼헤이 성적 근황.jpg 34 털달린바퀴벌레 27 20 분 전
손님한테 다 퍼주고 월1400 버는 맛집 64 gsfdrntjklgh 36 37 분 전
개좆된 메이플랜드 근황 38 츄파카브랄랄라 46 42 분 전
CPR 성추행 고소 가능한가? 65 뭐하고살지 51 44 분 전
꼭 경험해야 할 유럽의 환상적인 12가지 성문화 44 오징어해씨볼 43 1 시간 전
[단독] 기내 난동 피운 한국인...인천 오다가 카자흐 비상착... 64 응급CT실근무자 52 1 시간 전
김연자 블링블링 음악중심 라이브 30 엄복동 31 1 시간 전
통계청이 12시에 발표한 인구동향 49 시바 42 1 시간 전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옆자리 커플 여자.jpg 30 생체오나홀 43 1 시간 전
QWER의 원래 이름은 기모찌 더 락 🎸 이었다? 52 nesy 40 1 시간 전
신한 더모아 카드정지 경고당한 사람 사용 내역.legeno 69 밀크쉐이크비빔밥 69 1 시간 전
무조건 양보해 주게 되는 맥모닝 14 스피네루 39 1 시간 전
닌텐도 스위치 후속작은 삼성과 함께 87 유미주의 44 1 시간 전
한국말로 길거리에서 인터뷰하는 외국인들 39 하랄랄라롤로 46 1 시간 전
민희진이 아직 SM에 있었더라면..jpg 7 Zhdgdvxh 50 1 시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