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성종은 훈구 대신 견제를 위해서 사림을 등용했고 무신에게 요직 주어서 문반 못지 않게 키우려고 시도했으며 역관, 의관도 동반, 서반으로 만들어서 기술직 지위상승과 신분 보장, 지배층 확대 등등 여러 정치 개혁을 시도했지만 연산군은 그런 게 아무 것도 없었음.
연사군은 아버지가 너무 키워놓은 사림을 조지고 이번 대신이 견제하려드니 훈구 대신을 또 조지면서 견제 불가한 왕권을 세웠는데 그 왕권으로 정치 개혁이나 재정 개혁, 행정 개혁 뭐 하나 해놓은 게 없음. 당시에 조선에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고 개혁이 필요한 부분이 분명히 있었는데 그걸 하나도 안 건드리고 오히려 오랜 시간 빈약한 세입 속에서도 근검절약과 안정적 운영으로 그럭저럭 굴러가던 조선의 재정을 사치와 놀이로 파탄을 내버림. 덕분에 흑자와 적자 사이에서 움직이던 조선의 재정은 적자의 나락으로 빠지게 됨.
그럼 근본적으로 세제를 개혁하던가 세금제도는 그대로 두고 세입만 늘리려고 하니 조선 징세 제도의 모순은 심해지고 이게 조선 중기의 그리고 후반부 막장의 근본적 원인이 됨. 조선의 행정이 완성되고 이제 재정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상황에서 강력한 왕권을 지녔으면서 국가 운영은 도외시 하고 자기가 신나게 놀면서 문제점만 더 키워놈.
이후에 조선 상황을 보면 신하들이 옹립한 중종은 그 신하들 눈치를 보는라고 근본적인 개혁은 못했고 조광조의 개혁이라는 건 사실 유교 정치 도입이지 해정, 재정 개혁은 아니었고. 후사인 인종은 1년도 안되는 재위를 끝으로 죽고 이후 명종은 엄마가 죽기 전까지 외삼촌 윤원형의 전횡을 냅두었고 윤원형 숙청 이후 2년만에 죽었음. 명종 때 이미 재정 상황은 한계에 몰린 상태로 국가 재정은 한계 상태였음.
그리고 마침내 선조가 즉위했는데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는 상황이라서 대대적인 개혁의 필요성이 요구되었는데... 시발 임진왜란이 터졌네? 그리고 임진왜란이 끝나니까 또 광해군이 쫒겨나고 또 전쟁이 터지고 이번에는 왕이 오랑캐에게 머리 숙이면서 항복하면서 왕권이 추락하고, 또 세자가 죽고 왕을 둘째 아들이 승계해서 왕권이 내핵까지 뚫고 들어갈 기세가 됨.
결국은 조선 중기 연산군 시절의 문제의 해결은, 광해군 때부터 해서 조선 후기가 다 된 숙종 때, 강력한 정통성을 바탕으로 막강한 왕권을 가진 숙종의 지원 아래에서 개혁을 시작할 수 있게되고 이게 영조와 정조까지 이어짐. 사실상 조선 중기 문제를 중기에 해결 못하고 후기까지 질질 끌어서 도저히 못 버틸 상태까지 되어서야 건드릴 수 있었던 건 연산군부터 시작된 왕권 약화와 권신 대두, 뭘 해보려고 하면 왕이 죽는 안 좋은 환경에 외세 침입까지 겹쳐서 엄두를 못냄. 모든 게 시발 연산군부터 원인임. 게임에서 이렇게 스노우볼링 구르면 욕 하고 게임 끄고 세이브 파일 지웠다.
수변녹지조성사업
애착형성의 중요성
소름
차라리 아예 정치에 손을 놨으면 몰라. 재정도 빵구내고 아예 정치를 파토냈으니. 조선을 통틀어서 치적이라고 할만 게 없는 군주 중 제일 정치에 열심이고 가장 권력을 많이 가졌던 게 연산군. 시발.
북한간첩
ㅇㅇ.. 연산은 그저 어둠 흑흑
I죄인l죄악I재앙l
부들67
놀고 먹었다는데에서 503 떠올랐음. 하여간 중요한 시기 되서는 안될 인물이었음. 뭐 생각해보면 언젠간 될사람이었지만서도.
조준발사
난 신하들이랑 같이 애미를 그렇게 조져좋고
뒤를 잇는 놈이 정상일거라고 기대한 성종이 더 이상한거같음. 그때 성종도 세종마냥 후사 존나 많지 않았나 왜 안바꿨을까
부들67
태어나면서부터 적통의 적장자였으니깐, 수양제 아들로 정통성에 조금 하자가 있던 성종으로선 자기 아들만큼은 완벽한 정통성을 갖길 원했을거란 썰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