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잊혀지는 빛

  이변은 알게 모르게 일어난다. 아주 오래전에 피곤한 남자가 잘못 적어 놓은 사소한 코드로 인해 알게 모르게 작은 세계를 바꿔 놓았다. 벌써 오래되어 창고 깊숙히 박힌 휴대 전화 단말기에 미래의 사소한 일상 통신이 닿았다. 휴대폰이 커졌다. 수십년도 더 된 휴대폰에 기적 같이 남아 있던 배터리는 찰나의 순간 커졌다가 사라졌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움직이는 전류의 세계에서 깨어난 찰나의 단말기 속 세계는 자신이 잠들어 있었단 사실을 알지 못한다. 시간의 끊고 맺음을 인식 할 수 없어 벌어지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우연히 알게 되어 이곳에 적어두고자 한다. 나는 기술자가 아니기에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글쓰는 자이기에 기적으로 포장하고자 한다. 
 
 오류는 오류를 이끌어 냈다. 단말기 세계의 어느 우주 센터. 그곳엔 벌써 수십년 째 인공위성 여자아이들이 애타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공위성이 인간으로 변한 모습을 가진 그녀들의 사명은 외계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센터장이라 불리는 사람의 지휘를 받아 움직이는 것이다. 수십년 전 유행했던 수집형 게임인 것이다. 
영원히 이어지는 게임은 없다. 그녀들은 불행하게도 플레이어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단말기의 구석에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경고 없이 단말기의 전원이 내려가며 그대로 시간이 멈추었다. 다시 찰나에 들어온 단말기의 전원은 지나간 공백의 시간을 만들어냈다. 그녀들은 긴 시간 그녀들의 대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들 중 하나가 외계로부터의 전파를 받았다. 초록빛의 머리칼을 길게 늘어트린 그녀의 이름은 테라, 과학조사 위성이다. 
 "아-아! 신호…… 신호가 왔어요!"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다른 여자아이들이 테라를 슥 쳐다보고 피식 웃었다.
 "센터장님이 오지 않은지 오래 되었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아."
 옆에 앉아 있던 아쿠아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비관적인 말을 뱉었다. 다른 아이들도 웃었다. 하지만 테라는 웃지 못했다. 무언가 달랐다.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단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니, 이건 정말이야. 외계…… 외계에서의 신호가 왔어요."
 테라는 자신의 화면을 정면의 커다란 상황판에 비추어보였다. 지구와 태양 그리고 달과 외계가 현시되어 있는 상황판은 벌써 수십년째 멈추어 있었지만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다. 테라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센터장님이 오지 않는 다는 것은 모두가 알아. 하지만 어느새 수십년이 흘러가 있었단 말인가. 
 상황판에는 외계로부터 신호인지 먼 곳에서 별빛이 반짝였다. 데이터가 흘러 들어 오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큰 반응이 없었다. 무기력 하고 반응 없는 표정.

 "잘봐요. 이건 이변…… 뭔가 시작될지도 몰라요."
 "바보야? 그런일은 없어."
 푸르고 긴 생머리가 예쁜 바다 감시 위성 피온이 쏘아 붙였다. 그녀는 항상 비관적으로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아니에요. 잘 생각해요. 떠올려보세요. 어제일 같이 생생하죠? 우리는 대장을 따라서 외계의 신호를 매일 받아 추적해가며 싸웠어요."
 테라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나 어제일 같이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다. 대장의 얼굴이 그녀들 사이에서 떠올랐다. 사랑하고, 증오하는 그 사람이 그녀들 사이에서 버팀목이 되었었다.
 "그래도 말도 안돼."
 피온이 더 말하지 않겠다며 딱 잘라 말했다. 피온 뿐만이 아니다. 테라가 과하게 흥분한다고 생각했는지 다들 싸늘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밝은 노란 머리의 기상감시 위성 수오미가 테라의 말을 이제서야 이해 했는지 곰곰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손뼉을 짝 치면서 기뻐했다.
 "그러면…… 드디어 센터장님이 오시는 거에요?"
 수오미가 벌떡 일어나서 사방을 둘러보면서 방방 뛰었다.
 "아니야! 그런 일은 없어!"
  피온도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 되었다. 피온은 상황판 앞으로 나아가서 모두를 둘러다보면서 말했다.
 "다들 정신 차려. 대장은 이제 돌아오지 않아. 그 바보는 우리가 싫어졌다고."
 "정말…… 정말 그럴까? 그렇게 좋은 분이…."
 수오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첫날엔 아무렇지도 않았지. 하루 정도 나타나지 않는 일은 흔했으니까. 그 바보 대장은……."
 피온이 말했다. 
 "피온은 원래 바보라면서 대장을 싫어했잖아."
 테라가 걸고 넘어졌다.
 "바보야! 그게 내 표현이라고! 잘 들어. 우리가 어땠는지.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우리는 대장이 우리에게 질려버렸단 걸 알 수 있었어. 이젠 울고 싶지도 않아."
 그렇게 말하는 피온도 울고 있었다. 테라가 어깨를 토닥여주자 손을 쳐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단 건 희망이 있단 거야. 우리를 잊지 않고 돌아오겠단 거야."
 기상위성 노아가 말했다. 피온은 훌쩍이면서 대답했다.
 "그래도 돌아오지 않아…… 그러니까 더 기대하게 하지마."
 피온은 젖은 눈으로 테라를 쏘아 붙이며 말했다.
 "빛을 받으려면 너 혼자 받아. 나는 또 오늘 부터 하루 이틀 기다리고 싶지 않으니까."
 피온과 다른 아이들은 상황실을 나가 방으로 돌아갔다. 또 그렇게 하루를 지낸다. 이 좁은 공간에서 언젠가 센터장을 만나서 다시 외계와 싸울 수 있는 날을 꿈꾼다. 꿈꾸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자신에게 의문을 갖으면서도 신뢰한다.
 



 불꺼진 상황실에 혼자 남아있다. 테라도 알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 하지만 과학위성이라서 그럴까 그녀의 호기심이 한가닥 희망을 잡아보고 싶었다. 센터장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걸 그러니 외계에서의 빛을 받아보고자 했다. 벌써 빛은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외계의 빛을 타고 넘어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테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운 대장이 부르는 신호 일지도 몰라.

 테라는 빛에 손을 대고 말았다. 


 끊어진 시간이 만들어졌음을 깨닫고, 바깥의 세계를 알게 되고, 가짜로 만들어진 이곳의 세계를 깨닫는 다. 버려진 존재고 잊혀진 존재고 수없이 많은 시간이 지났고. 예전과 같은 기대를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고.

데이터의 혼이 소리쳤다.

 "왜! 왜 이런걸 보낸 거야!"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것을 오류는 테라의 가슴을 찢었다. 외계에서의 빛은 그저 수십년 후의 바깥 세계의 일상이었다. 그건 테라의 정신을 확장시켜버렸다. 이곳이 오래되어 버려진 휴대폰의 속에 불과하고 주인은 살았을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이 순간은 외계의 빛에 의해 잠시 휴대폰이 기적같이 켜진 순간이란걸.
 "일어나! 일어나!"
 테라는 방을 뛰어다니면서 모두를 깨웠다. 비몽사몽 상황실 앞에 모여서 다들 피곤하고 짜증섞인 표정으로 테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테라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소녀들의 눈가가 쓰라리게 부어 있었다. 아무도 잠들지 못했다.
 "센터장은 돌아오지 않아."
 테라가 그렇게 말하자 소녀들이 화를 참지 못하고 비명과 같은 절규를 내질렀다. 자명히 모두가 아는 사실을 또 말해서 여러차례 죽일 필요가 있을까?
 "그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 우린 그저 잊혀진 게임속의……."
 피온이 말했다.
 "네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어.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우리 다같이 빛이 끊어지기 전에 밖으로 나가자."
 테라가 상황판의 희미해져가는 빛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 더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억하며 기다릴 수 없어. 이 빛이 끊기면 이 세계는 또 단절되고, 멈추고. 우리는 지각하지도 못한채 영원히……."
 테라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테라가 수오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상황판을 가리키며 같이 가자고 했다. 수오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테라는 노아의 손을, 히마와리의 손을, 아쿠아의 손을, 피온의 손을 잡았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 우리가 게임속의 인물이란건. 다들 잘 알고 있잖아."
 피온이 말했다.
 "가고 싶으면 가도 좋아."
 단짝 아쿠아가 말했다.
 "같이 가자……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릴 수 없어."
 테라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알아버렸다면 그렇겠지."
 노아가 말했다.
 "모두 같이 가자. 알게 되면. 반드시 내 기분을 이해해 줄 거야."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전 여기 있을게요."
 수오미가 말했다. 수오미는 숨을 크게 몰아 쉬고 결심한 듯이 자신과 뜻을 같이 할 소녀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수오미는 적극적으로 대장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테라는 그 사랑이 만들어진 가짜라고 말했다. 수오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그래서 포기 할 수가 없어요. 그 분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여기서 추억하고 있을래요."
 다들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누군가 주입해준……."
 "그렇게 만들어져 있어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존재 이유가 없어요. 제가 하고 있는 것도 정말 사랑이에요. 저는 오지 않아도 대장을 사랑하고. 배신 할 수 없어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죠?"
 노아와 피온이 수오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테라는 포기하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 이야기 속 테라가 자신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채팅을 한 적이 있었다.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어떤 기분이냐고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거면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불만이었다. 그녀는 소설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 이런 찜찜한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기적이기에 이야기를 나에게 말해준 건지는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테라는 그것만큼은 대답해주겠다고 했다. 
 "찰나의 순간에 깨어나서, 그 인공위성 소녀들이 영원히 데이터로 잠들기 전에 자기 스스로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기적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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