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타임캡슐

얼마 전에 고등학교 동창끼리 타임캡슐을 꺼냈다.

왜 이 날이냐하면 딱히 신경도 쓰지 않았기에 30년이 넘었는지 몰랐기 때문이고

우연히 당시에 타임캡슐을 묻었던 멤버끼리 술을 한 잔 걸치고 있다가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야 진명이 살판났네 이제 장가 세번 째다. 어잉? 가마는 두갠데"

다들 웃으며 축하해주다가도 놀리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땐 공부만 한다고 아무 것도 모르더만"

"역시 배우던 놈이니 이제 여자도 배웠구만"

"하이고 그만 좀 해라 세 번가니까 이제 흥도 별로 없다."

"난 어릴 때 공부 잘하던 진명이 덕 좀 보겠나 싶었지,

축의금 나가는거 보니 원수네 원수"

"어릴 적 그 여인은 잘있소? 췃 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진명이가 당혹스런 표정으로 옆자리를 바라본다.

"아녜요. 저는 상관없어요."

웃으면서 술잔을 꼭 쥐는 모습을 보니 집에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에 거기서 진혁이가 그의 가슴 시린 첫 사랑 이야기를 꺼내버린 것이었다.

우리들은 듣고 또 듣는 이야기면서도 재밌게 웃고 마시기 바쁘다.

"진명 씨 좀 하는걸?"하며 팔꿈치로 쿡쿡 찌르고 진명이는 난처해한다.

"그나저나 그때는 사랑고백을 어떻게했을까요?"

"연애편지같은걸 쓰곤 했지"

"그럼 진명 씨도 혹시?"

진명이는 안도하는 듯 "이미 버렸지"라 했지만

날벼락은 갑자기 치니 날벼락이 아니겠는가

"아직 있다!"

갑자기 생각난 듯이 휘둥그래진 표정으로 혁수가 두리번거리더니

"그거 내가 주워서 몰래 타임캡슐에 넣어뒀다. 우리 다시 열 때 골리려했지"

우리는 다시 웃다가 약속한 30년이 훌쩍 넘을동안 서로 바쁘게 살아온 삶을 잠깐 탓했다.

살다보니 잊고 산거야 많지만 타임캡슐는 너도나도 까먹고 있었다.

 

"맞네, 그게 있었네"

"다음에 진명 씨 보내줄태니 같이가봐요. 진명 씨, 연애편지도 들고와요."

우리는 타임캡슐에 넣었던 야한 잡지 이야기나 만화책 이야기를 잠깐 더 하다가 헤어졌다.

물론 타임캡슐을 열어보자는 약속도 했었다. 나는 어떤 것들을 넣었는지 고민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침내 그날에 일찍 온 나는 그 뒤 서서히 도착하는 놈들과 슈퍼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옛 동네 이야기를 하다가 멤버가 완성되자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리 언제쯤 도착하는거야"

"아마 저 위에 구렁에 묻었다."

"확실해? 저렇게 높게 묻었다고?"

"죽겠네 죽겠어 어린 꼬맹이들은 힘도 좋다."

도착하고서 생수를 한 통 마시고 삽질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군대이야기하며 땅을 판다.

노동요로 군가 안 부르는 것이 어딘가.

 

두 차례정도 잘못파고 낭패다 싶어 잘못 찾아 온 것아니냐 분분할 때

쇠붙이 찍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톰 소여가 보물을 찾은 듯 했다.

약간은 서로가 긴장했고 선뜻 열어보기 주저했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나였다.

"잘 묻었나보다. 알아보니 잘못되면 썩기도 한다던데 꽤 괜찮네"

내가 타임캡슐을 열고 제일 처음 눈에 띈 것은

세련된 붓질로 '護憲撤廢 獨裁打倒'라 써진 글씨였다.

우리는 각자 자기 것을 받고선 유쾌함을 잃은 듯했다.

지금은 전해줄 수 없는 이의 것도 있었지만 그대로 묻어버리기로 했다.

 

노량진에서 고시 준비하는 큰아들에게 전화를 걸며

술 많이 마시지 말고 열심히하라며 잔소리를 하고

멀리서 대학에 자취하는 작은아들에게 전화를 걸며

허튼 일 하지말고 학업에 열중하라며 잔소리를 했다.

 

나는 집에돌아와 아끼던 체 게바라 평전의 뒷면에 짧은 글을 남겼다.

낭만에 대하여,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1개의 댓글

2018.11.12

꽁트는 어렵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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