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범신론 시리즈 - The Light of Day - 회상

범신론에 관해 한국어로 된 자료는 심지어 백과사전이나 사전 항목을 포함해서 기독교 이단론의 관점에서 편협하고 왜곡된 방식으로만 나와 있는 것들이 전부인 것 같다. 이에 영어로 된 범신론 관련 자료를 조금씩이나마 한국어로 번역해서 공유하고자 한다. 

 

The Light of Day는 미국의 자연학자이자 수필가인 John Burroughs(1837-1921)가 저술하여 1900년에 출간한 책으로, 그가 1885년~1888년에 쓴 수필 중 종교와 관련된 것을 모은 것이다. 시대적 상황을 참작해서 읽는 것을 권장한다. 

 

너무 어색하지 않게 하다 보니 원래의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고, 특히 비유적 표현은 한국어로 그대로 옮길 수가 없어서 고친 부분이 많다. 영어 독해가 가능한 사람은 archive.org에서 원문을 직접 찾아 읽는 것을 권한다. 

 


 

 나의 가장 이른 기억 중의 하나는 아버지와 어느 이웃분이 종교 교리를 두고 논쟁하는 것을 보고 들은 일이다. 두 사람 모두 '종교에 눈뜬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각자 다른 교파에 - 이웃인 제리 아저씨는 감리교에, 우리 아버지는 구학파 침례교에 - 들어갔으나, 두 분 다 상대 교파의 오류를 증명하려는 열의에 불타고 있었다. 두 분은 번번이 서로 논쟁을 벌이셨으며, 기나긴 겨울밤, 낡은 주방은 둘의 열띤, 때로는 적대적이기까지 한 논쟁의 소음으로 가득 차곤 했다. 제리 아저씨가 주로 먼저 시비를 걸었던 것 같은데, 내 기억으로는 아저씨가 공세를 펴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난 아직도 저녁 시간이 지난 뒤 아저씨가 평소 깎던 막대에 열중하며 문을 열고 들어오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저씨는 일 마일 정도 되는 오는 길 내내 막대를 깎으면서 주장을 구상하고 논거를 다듬었다. 일상적인 잡담을 나누며 시작한 뒤, 제리 아저씨는 서로의 의견 차이를 말하며 주제를 점차 꺼냈고, 본인이 가진 서적을 인용하기 시작했다. 장군 멍군이 반복되었고, 아버지는 제리 아저씨의 책 하나하나를 본인이 가진 책으로 반박할 수 있었다. 제리 아저씨가 언변은 더 좋았지만, 종교적 감성에서는 우리 아버지가 더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난 아직도 아버지가 성경을 무릎 위에 펴놓고 얼굴이 붉어진 채로 큰 목소리로 사도 바울의 예정설을 상대방의 모두가 구원받는다는 감리주의를 향해 휘두르던 광경이 기억난다. 두 논쟁자는 고지를 놓고 마치 한 쌍의 펜싱 선수처럼 다투었다. 어떤 때는 한 쪽이 확실한 우위를 점했고, 다른 때는 책이 강력하게 다른 한 쪽을 지지하기도 했다. 두 사람 다 성경을 무오류한 신의 말씀으로 받들었으나, 토머스 브라운 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드럽고 유연하게' 접근하지는 않았다. 두 분 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는, 신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지만, 상대방의 신앙을 대단히 깔보았다. 우리 아버지가 속한 침례교는 다른 교파, 특히 자신들과 거의 모든 문제에 있어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감리교에 대해 편협하고 가혹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감리교라는 이름은, 그리고 그것이 약속하는 쉽고 값싼 구원은 언제나 아버지의 입술을 씰룩거리게 하고 콧김을 뿜게 했다. 아버지는 감리교회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으셨다. 

 

 구학파 침례교도들은 자신들을 선택된 소수, 남아있는 구원받을 사람들로 여겼으며,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나머지 사람들을 위선자로 취급했다. 모든 피조물이 기나긴 세월 동안 신음하고 고생한 것은 바로 그들 자신과 같은 사람을 이뤄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신학교, 주일학교, 선교사, 신도들의 질질 끄는 모임, 교육받고 봉직하는 성직자, 준비된 설교 같은 것들을 얼마나 경멸했던가? 오직 신에게 선택받은 자만이 설교할 수 있었으며(물론 그렇겠지!), 그는 강대 앞에 서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할 지 어떠한 구상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내가 어려서 들은 설교는 천지를 창조하신 분으로부터 직접 영감을 받은 것이었으며, 블레어(Blair)의 머리를 한 시간이면 새게 만들 수 있을 법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세속의 마음이 그와 같은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리오!)

 

 나는 우리 이웃의 신이 우리 아버지의 신보다 온화하고 자비로운 신이었다고밖에는 할 수 없다. 그는 모든 이에게, 그들 자신이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구원을 내리셨고, 다른 신은 일부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거나 받아야 한다고 세심하게 규정해 놓았다.


 물론 논쟁자는 상대방의 입장을 바꿔 놓는 데는 결코 성공하지 못했으며, 반대로 더욱 강력하게 매달리도록 만들었다. 두 분 다 자신들이 일찍이 고백했던 신앙을 가진 채로 늙어 돌아가셨다. 살아생전에는 그것으로 충분했으며, 마지막에도 신앙은 그들을 저버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다가오는 삶의 끝에 관해 언제나 완전한 안심과 평정을 갖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죽음을 곧 떠날 여정의 일부로 받아들였고, 그 과정에서 주변 풍경이 변하는 것이었으며, 오직 행복한 기대만을 품게 해줄 따름이었다. 돌아가시기 수 년 전 아버지를 방문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아버지는 성경을 다시 읽고 있다고 하셨다. 마침 엘리야와 거짓 예언자의 이야기를 읽고 계셨다. 내게 그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엘리야의 제물만을 태우는 대목에서 아버지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 주체하지 못하셨다. 성경의 일화가 글자 그대로 사실이라는 점은 아버지께 자기 자신의 존재만큼이나 확실했다. 

 

 나로서는 성경을 아버지나 제리 아저씨처럼 읽기란, 또는 그분들께서 그렇게나 중요하게 여겼던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기란 참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내가 이런 주제를 향해 마음을 닫아버려서가 아니라, 그분들보다 40년 뒤에 태어나 다른 흥미와 습관을 마음에 익혔기 때문이다. 그 시간 동안 인간의 관점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나는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다른 매체를 통해 보았다.

2개의 댓글

13 일 전

이런거 좋음 자주올려주센 ㅎ

13 일 전

재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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