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아브라함에 대한 집중 분석

아브라함에 대하여

 

고대의 인물 아브라함은 현재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여호와 일신교의 시조가 되는 사람입니다. 이 종교는 모세의 유대교, 예수의 기독교, 그리고 7세기에 나타난 무함마드의 이슬람교의 조상교가 되죠.

 

물론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에 앞서 세상의 창세 때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과 아벨, 노아와 그 세 아들이 먼저 여호와를 숭배하지만 이는 너무나도 신화적인 이야기이기에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유일신 종교의 창시자는 아브라함으로 가정하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먼저 그가 살던 수메르지역과 그 시대에 대해 알아 보아야합니다.

 

인류의 4대 문명은 기원전 3500~ 2000년경 내외의 기간 중, 강을 중심으로 번영해 문자가 만들어져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최초의 네 문명입니다. 이 문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

 

4개의 문명 중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살고 있었는데 아브람이 살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성경이 아닌 유대 민족의 고대 문헌에 따르면 아브람의 아버지는 신상을 만들던 사람이었는데 도시가 신상을 필요로 하지 않자 다른 도시로 옮겨 다시 신상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우르 제3왕조 이후 바빌로니아가 등장하면서 바빌로니아가 더 중하게 여기는 새로운 종교가 도시를 장악하게 되고 기존 종교의 사제들이 축출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다만 완전히 다른 종교가 아니라 수메르 종교의 다른 신을 더 중요시 여기는 수메르 종교 내부의 타종교입니다.)

 

이때의 바빌로니아는 서쪽에서 온 정복자들 아모리 인들이 바빌론을 수도로

채택하면서 성장합니다. 기원전 1792년에 함무라비가 6대 왕으로 등극하는데 인류 최초로 기병을 전술적으로 활용한 군사 최강국 아시리아에 신하의 예를 갖추며 우호관계를 맺고 기원전 1787년 이신을 멸망시키고 우르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그의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1700년 경에 만들어 진 것입니다.

 

메소포타미아의 도시인 우르에 살던 아브람과 그의 아버지는 아마도 기존 정치권 즉 우르 제 3왕조에 속해있던 인물로써 정치 싸움에 패배하고 추방된 것은 아닌가 하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성경 창세기에서도 아브람의 아버지인 데라가 우르를 떠나 가나안 지방의 하란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존재하니 아브람의 연대는 우르 제3왕조의 멸망과 바빌로니아의 탄생 시기인 약 기원전 19세기에서 18세기(B.C. 1899~1799년 경)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아버지인 데라를 사제로 추측하는 이유는 그들이 상당히 부유했다는 것과 데라가 신상을 만들었다는 유대 전승 (랍비 히야, 조하르의 탈무드), 그리고 수메르 서판에서 데라가 사제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두 강인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은 문명의 요람이 되어 주기에 충분한 양분과 물을 제공해주었지만 이 두 개의 강은 때에 따라 범람하기 일쑤였으며 이 때문에 나일 강을 기초로 했던 이집트 문명과 같이 늘 홍수에 대한 공포가 자리 잡았습니다. 이 공포를 다스리기 위해서 인류는 종교에 의존했고 사제직이 강력한 권력을 가지며 사람들을 통치했었죠.

 

아브람의 일화를 살펴보면 아브람은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거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므로 아마도 바빌로니아에 의해 쫓겨난 사제집안으로써 추측 되는 것입니다.

 

아브람 집안이 믿던 수메르 종교는 기원전 29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장악하던 전통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다로 막혀있는 반구의 형태로 생각하며

하늘의 신인 과 대지의 여신인 를 중심으로

안과 키의 후손인 아눈나키50신 중 사후세계를 다스리는 주요 일곱 신과 안의 사생아인 아눈나’(혹은 이기기[igigi])를 숭배하는 종교였죠.

첫 아들인 엔릴이 공기의 여신 닌릴을 강간하여 엔릴은 신들의 고향인 딜문에서 추방당하고 닌릴은 달의 남신 난나를 낳게 됩니다.

 

아브람과 아브람의 아버지인 데라가 살던 곳은 도시 우르였고 이 우르를 지배하는 수호신은 달의 남신 난나였는데 이 때 알아 두실 점은 수메르 지역의 각 도시들은 자기 도시를 지키는 수호신으로써 수메르 신화의 신들이 하나씩 붙어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연의 의인화 신들이 도시 신으로써 성격이 변모 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 당시 각각의 도시들은 심지어 그 신의 이름을 딴 도시이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보다 훨씬 이후 그리스의 아테네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 도시 우르는 당시 수메르 최강의 도시 국가로써 그 존재가 1856년 고고학자들의 부탁을 받은 영국 영사 테일러가 기원전 6세기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의 기록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고고학자들이 나보니두스 왕이 우르의 지구라트를 보수하고 증축했다고 언급한 대목을 찾아냄으로써 이곳이 아브람의 고향 갈대아 우르임을 밝혀냅니다. 이후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장악하게 되면서 사이에 울리라는 영국 고고학자에 의해 1927년에서 1932년 사이에 발굴 되었는데 그리스의 트로이가 전설상으로 치부 되었다가 1870년에 발굴 되었던 것처럼 아브람의 고향이던 갈대아 우르 역시 전설과 같은 도시였지만 실제로 발굴되기에 이릅니다.

 

이 발굴을 통해 2100년경 우르남무 왕이 홍수에 대비해 도시의 수호신인 달의 신 난나의 신전을 높은 곳에 축조해두었던 것이 밝혀지며 우르가 난나 숭배의 중심지였음이 밝혀지게 됩니다. 난나는 안의 적통 자식 엔릴이 강간으로 신의 고향 딜문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니 사실상 신의 계보에서 가장 정통성을 지니는 신이었기에 숭배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우르를 점령한 바빌로니아는 물과 지혜, 장난의 신인 엔키의 아들 마르둑을 수호신으로 가지던 민족이었고 우르를 지배하면서 기존 난나 신앙 사제인 아브람과 아브람의 아버지인 데라가 쫓겨 난 것으로 추측할 수 있고 이들이 이후 정착한 하란에서도 난나의 신상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추측의 신뢰성이 더욱 올라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하란에서 데라가 죽게 되고 아브람은 신의 음성을 듣게 되며 가나안으로 이주하라는 신의 명령을 따르게 됩니다. 새로운 종교, 즉 최초의 일신교로 추측되어질 여호와 일신교입니다.

 

그런데 이 아브람이 믿게 된 이 일신교가 정말로 최초의 일신교일까요?

 

사실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최초의 일신교는 이집트에서 기인하는 아케나톤의 아톤신앙입니다. 아브라함보다 500년 뒤의 시대인 기원전 1353년에서 1336년경의 신앙으로 신왕국 18왕조의 파라오에 즉위했던 아멘호테프 4세가 만든 종교입니다. 그는 이집트의 모든 신들을 부인하고 새로운 태양신 아톤을 믿는 새로운 종교를 선포하고서 자신의 이름을 아톤의 살아있는 영혼이라는 의미의 아케나톤으로 고칩니다.

이 아톤 신앙은 당시 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리던 사제계급을 견제하고 모든 권력을 파라오에게 집중시키려던 의도로 생각되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소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성경을 기반으로 한 여호와 종교는 세상 최초 일신교를 홍수시대 이후로 보자면 아브라함에서 기인한 것을 최초로 보는데 역사적으로는 아톤신앙을 최초로 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에 대해 알아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먼 후손인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이집트에 들어가 그들의 일부가 되었는데 그 이스라엘 가계 중 레위가계의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낳아진 모세는 파라오의 히브리인 영아 학살을 피해 갈대 바구니에 넣어져 나일강가에 버려지게 되고 이를 파라오의 딸이 줍게 되어 왕궁에서 양육 됩니다.

 

모세가 40세가 되었을 무렵, 유대인이 학대 당하는 것을 보고 학대하던 이집트 인을 살해하게 되고 또 다음날 이스라엘인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게 되고 이를 말리려는데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는 반박을 듣게 되고 자신이 살인을 한 사실이 들통난 것을 두려워해 미디안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80살까지 양을 치며 지내던 모세는 여호와를 만나게 되고 이집트로 돌아가 신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고 결국 탈출하게 됩니다. 이 도중에 홍해를 반으로 가르는 기적 또한 선보이면서 말입니다.

 

이후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여호와에게 십계를 받고 유대교를 창시하게 됩니다.

 

여기서 추측 해 볼 수 있는 것은 모세가 아톤신앙에 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새로이 여호와 일신교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이에 대한 의문은 현대 역사학자들의 의견으로써 모세는 사실 이스라엘 민족과는 아무런 혈통적 관계가 없으며 이집트의 권력다툼에서 밀려나 자신을 따르는 이스라엘 민족과 몇몇 다른 민족들을 데리고 떠난 것이 아니냐는 의견입니다.

 

이는 프로이트의 마지막 저작 모세와 유일신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1937년 잡지 이마고1, 2부로 나누어 이 추측을 발표했는데, 글의 첫 머리에

민족의 가장 위대한 후예로 찬양받는 사람이 그 민족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은 심각한 것이다. 특히 그 민족에 속하는 사람이 주장하는 경우에. 그러나 어떤 고려도, 소위 국가적인 이익들을 앞세워, 나를 진리로부터 떼어놓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밝히며 글을 써내려 갑니다.

 

그는 모세라는 이름이 이집트에서는 흔한 이름이었다는 점과 할례에 대한 전통이 실은 타 종교의 스스로를 인신공양 하는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꼬집었으며 위의 아케나톤 신앙을 위주로 모세의 출신을 의심합니다.

 

이와 같은 주장은 기존 이스라엘 인들은 여호와 일신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기존 이집트 신앙을 하고 있었고 따라 나온 모세에 의해 여호와를 믿게 되었다는 것인데,

 

아브라함 이후 맥이 끊겨 버린 여호와 일신교를 모세가 부활 시킨 것인지,

 

아니면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들의 시조인 아브라함을 같은 일신교를 믿던 신자로 만든 것인지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즉 믿음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브라함이 사실 여호와를 믿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로써 다가옵니다.

모세가 아톤신앙의 사제였는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으나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만한 상류층의 인간이었음은 분명하고 약 4~50년 전의 종교였던 아톤신앙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습득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모세의 순수한 창작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오기 이전 이스라엘인들 역시 그들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가 존재했을 것이고 이를 완전히 부정하면서 그들의 조상마저 갈아치우는 일은 아무래도 불가능할 테니까요. 모세는 이스라엘인들의 조상에 대한 전승을 바탕으로 창세기에 등장하는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재탄생시킨 것이라 보는 편이 더 합리적으로 판단되어 집니다.

 

물론 이것은 그저 프로이트의 의문을 바탕으로 가능한 한 합리적으로 이야기를 짜 맞춰 보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파격적인 의문은 이후 수많은 학자들로 하여금 이 시대 근방의 역사를 연구하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다시 아브람으로 돌아가 봅시다. 아브람은 신의 부름을 받고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문제는 모세가 아브람의 종교를 유대교로 바꿔치기 한 것이이라면 아브람은 사실 수메르 종교에서 어떤 종교로 개종해 가나안으로 옮긴 것일까요?

 

아마도 셈족 종교라 불리우는 우가리트 신화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셈족은 성경에서는 방주의 생존자 노아의 맏아들인 셈의 일족으로써 아브라함의 선조이기도 합니다. 역사학적으로는 셈어를 사용하던 이들을 의미하죠. 이들은 민족이 다르지만 지리적으로 언어적으로 가까이 분포되어있습니다. 꽤나 넓은 범위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우가리트 신화는 수메르 종교와 꽤 많은 부분을 공유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다른 종교였습니다. 애시당초 수메르 종교는 당시 이 지방 모든 종교의 선조격으로써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심지어 새로운 종교를 수메르 종교 내부로 흡수하기까지 하는 등의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의 정립된 종교보다는 각각의 사제들에 의해 타 종교를 믿는 집단을 흡수하기 위하여 그때그때 신화가 달라졌던 일이 잦았으니 아래의 경우도 이중 하나의 사례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최고신이 수메르 종교에서는 하늘의 신인 이지만 우가리트 신화에서는 ’(히브리어로는 우가리트 어에서는 이라고 함)인데

 

의 아내, 아세라타는 수메르 종교의 의 자식 마르토의 배우자로써 이미 수메르 종교 내부에 존재하는 여신입니다.

 

위쪽에서 언급했던 바빌로니아의 경우와 같이 수메르 종교 내부의 같은 종교의 다른 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형태의 종교로 보일 수 도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은 우가리트 신화에서는 엘과 아세라타가 모든 신들을 낳은 창조신으로써 역할을 합니다. 수메르 신화의 의 역할을 대신 꿰찬 것이죠. 수메르 신화에 등장하는 아세라타와는 동명이으로 완전히 다른 여신이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사실 바빌로니아도 수메르 신화에서 신들의 이름만 바꿔 새로운 종교를 만든 것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유사한 종교형태를 띄었고 아시리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람이 처음 사는 곳을 옮겼던 하란은 고대 근동 지역의 상업중심지로 오래전 수메르가 대상 무역소를 설치했던 장소인데 지중해와 티그리스 강 중부를 이어주는 교역 핵심지 였습니다. 수메르- 소아시아- 이집트 무역로를 연결하는 중요한 지점이었죠. 따라서 각지의 다양한 문화가 교차되는 지점이었을 것이고 이곳에서 아브라함이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게 될 기회가 여러 번 찾아오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데 가나안은 우가리트 신화를 믿던 지역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여러 번 등장하게 되는 바알과 아낫이 등장하는 신화입니다.

 

창조신인 아세라트의 자녀인 바알과 아낫은 남매지간이지만 고대의 신화가 그렇듯 부부관계입니다.

 

바알은 구름과 풍요의 신이며 농업을 하던 가나안의 지역의 특성과 신의 적통자식을 더 선호하는 고대 종교의 특성상 가장 많은 숭배를 받던 신이었습니다. 바알은 자신의 형제이며 강과 바다의 신인 얌과 서로 적이었는데 이는 홍수가 당시의 최고 재난이었던만큼 얌은 악한 신으로써 인식되어져 왔고 이를 바알이 싸우며 막아준다고 가나안 인들은 생각했습니다.

 

이 당시 아낫이 성적으로 흥분하여 땀을 흘리게 되면 이것이 비가 되어 내린다고 생각했기에 제사의식에서는 이 여신을 흥분시키기 위해 성창들과 성교를 맺었습니다. 이러한 형태를 한 여신들의 최초 기원은 수메르 신화의 이난나 여신인데 이난나 여신은 풍요와 생명을 관장하는 여신이었습니다. 이난나는 우가리트 신화의 아낫과 아시리아 신화의 밀랏타 여신,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이슈타르의 기원이 되었고 이후 아스타로트 여신의 원형이 됩니다. 또 다시 이 여신이 그리스로 넘어가 아프로디테와 아테네의 원형이 됩니다.

 

다만 아테네는 전쟁의 여신인데 아낫과 이슈타르 여신은 상당히 호전적인 여신이었기에 이러한 성격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은 바알과 아낫을 악마로 표현하는데 이후 모세가 이스라엘인들을 이끌고 간 당시에도 여전히 가나안은 우가리트 신화를 믿고 있었기에 새로운 종교인 유대교보다는 기존의 이집트 신화, 우가리트 신화를 믿던 이스라엘인 들은 자꾸만 다시 원래 종교로 되돌아가려 했을 것입니다. 엄격하게 사회생활과 성욕을 제한하던 유대교보다는 풍요와 성욕의 종교가 아무래도 사람들의 욕망에 충실 했을테니까 말입니다.

 

아브람이 종교의 부름에 의해 아내인 사래와 조카 롯과 가솔들을 데리고 이동하는데 가나안에서 그들은 히브리인 (강 건너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이들은 우르가 망하게 되면서 일종의 유랑민 상태가 된 것으로 보이는데 신이 명령했던 가나안에서 기근이 들자 정착하지 못하고 이집트로 옮겨 갔다가 파라오에게 아내인 사래를 빼앗기게 되는데 이로 인해 파라오가 신에게 벌을 받게 되고 아브람을 도로 사래를 되찾아 네게브로 올라가게 됩니다.

 

여전히 이들은 네게브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살렘의 북쪽 벧엘로 옮기게 됩니다. 여기서 롯과 아브람은 땅이 좁아 동거가 힘들어 서로를 떠나게 되는데 롯은 요단으로 옮기고 아브람은 다시 가나안에 거주하게 됩니다. 롯은 요단에서 조금 더 이동해 소돔에 가게 되죠.

 

아브람은 또 다시 신의 부름을 받아 헤브론으로 옮기게 됩니다. 그야말로 계속 되는 유랑 생활입니다.

 

그런데 이때 수메르 제국 4연합국과 사해 근처의 소돔과 고모라를 포함한 5연합국이 서로 격돌하게 됩니다.

 

 

 

5연합국이 수메르 제국의 왕 그돌라오멜을 12년간 섬기다가 배반을 한 것이죠. 이들은 사해에서 격돌하게 되는데 동방 4연합국이 승리해 사해 남쪽까지 내려가게 되어 소돔과 고모라의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갑니다.

롯 역시 소돔에서 살고 있었기에 재산을 모두 빼앗기게 되죠.

 

이 전쟁은 시딤 전쟁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이 시딤 전쟁은 실제로 존재했던 전쟁이었는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수메르 제국 4연합국은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국가들입니다.

시날은 바빌론을 명칭하는 것이고

엘라살은 고대 도시국가 라르사를 가르키는 것이며

엘람 역시 도시 수사를 수도로 했던 제국이었습니다.

고임국 만이 현재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고임이라는 표현이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로써 번역된 것을 보아 부족 집합체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가하는 견해가 제시 되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와 대립했던 5연합국은 소돔과 고모라가 신의 벌을 받아 불 탈 때 함께 없어졌다고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실제로 이 국가들의 역사나 유물이 발굴된 국가는 없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 지역에 대해서는 요르단의 탈엘하맘이 소돔이었다는 것과 고모라는 요르단의 탈카프레인이었음이 고고학적 연구로 확실한 사실인 것이 확정됩니다.

 

학자들은 고대에 이 전쟁이 실존했는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현재 결론 지어 진 것은 있었다고 증명할 증거도 없으며, 없었다고 반박할 증거도 없는 암흑 시대와 같은 상태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연구된 내용 중 왕들의 이름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견해들이 제시 되었는데 이중 시날, 곧 바빌론의 왕 아므라벨이 등장하는데 이 아므라벨이라는 명칭이 함무라비왕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제시되어 왔지만 현재는 이 견해는 포기되어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함무라비 왕이 이런 전쟁을 펼쳤다는 근거가 역시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의 부친인 시바릿트를 상형문자로 적으면 아말발이 되기 때문에 그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설이 존재합니다만 증거가 없으니 이 역시 추측에 그치고 맙니다.

 

이와 같은 추측이 시도된 후 얼마 뒤 진 빈센트 쉐일이라는 신부가 이스탄불 제국의 오스만 박물관에서 함무라비 서판에 적힌 엘람의 그돌 라오멜이라는 이름의 왕을 찾았고 핀체스 서판에서 같은 이름을 발견해 냅니다.

 

엘람 왕 그돌라오멜 역시 엘람의 역사에 그러한 왕이 없었으나 이 이름은 정확한 엘람어의 요소를 이용한 복합어입니다. 이후 이 왕의 이름은 엘람의 신인 라가마루와 종을 뜻하는 그돌을 합쳐 라가마루의 종이라는 뜻을 하고 있다고 분석되는 기원전 1770~ 1754년의 통치자 그돌라가마르가 아니냐는 분석이 존재합니다. 다만 이 역시 추측에 불과하며 확실한 사실은 아닙니다.

 

엘라살의 왕, 아리웁 역시 그 당시 엘라살의 왕은 역사적으로는 림신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형제였던 왓신과 구별하기 위하여 함무라비 서판과 라르사에서는 그를 ‘Eriaku’로 불렀다는 연구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이 번역되면서 아리웁이 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존재합니다.

 

현재 학계는 당시 왕들의 이름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기에 성경에 등장하는 이 전쟁의 실존에 대하여 역사적 분석에 대해서는 비실존의 회의감을 품고 있지만 수메르 동방연합 4국가들의 이름은 정확히 등장함과 대립했던 5국가들이 모두 멸망해 유물 유적들이 없다는 것을 보아 역사적으로 완전히 근거 없는 순수 창작이야기만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모세가 창세기를 썼다는 가정 하에도 이후 이들의 종교가 다른 민족들에게 알려졌을 때 잘못된 역사의 전쟁을 사실로 우기다가는 그들의 종교의 신빙성을 공격받을 가능성이 높은데 굳이 당시로 따지면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졌을 2~300년 전의 대 전쟁을 거짓으로 창작해낼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전쟁의 주역도 아닌 아브라함의 작은 승리를 꾸며내겠다고 있지도 않은 전쟁을 있었다고 모세가 주장할 이유가 아무래도 없어 보입니다.

 

결국 이 시딤 전쟁에 대해선 지금으로써는 트로이 전쟁마냥 당시 전쟁이 존재했었는지에 대해 밝혀줄 명백한 유물 유적이 존재하지는 않기에 긍정도 부정도 할 수는 없다. 정도의 수준으로 넘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다시 성경의 이야기를 쫓아서 이 전쟁에서 살아남아 도망쳐 나온 사람이 아브람에게 이를 알리게 되고 아브람은 장정 318명을 데리고 사해의 약 200km위쪽의 다마스커스의 왼쪽 80km지점 호바까지 쫓아가 조카인 롯과 재물들을 탈취해 돌아옵니다. 아브람이 사해 남부 쪽에서 살던 것을 생각하면 약 400km 가량을 이동한 것입니다.

 

천만다행으로 다시 토지를 확보한 소돔의 왕은 포로들은 보내고 재물은 아브람에게 가지라고 합니다. 허나 성경에서 등장하는 소돔과 고모라는 타락의 상징이었으므로 그들의 재물을 자신과 동맹했던 이들의 것을 제외하고 모두 돌려줍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소돔의 왕 기록 이전에 의문의 인물이 한명 등장합니다. 바로 살렘왕 멜기세덱입니다.

 

최초의 유일신교 신자라 기록되는 것은 분명 아브람인데 이 살렘왕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명칭으로 성경에 등장합니다. 심지어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축복을 아브람에게 내리고 아브람은 자기가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치죠.

 

이 당시 왕이 제사장을 겸하는 것은 그다지 신기한 일은 아니지만 이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통해 십일조의 유래를 만들고 떡과 포도주에 의한 축사를 만든데다 역사에 없고 계보가 없는 특별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성경의 표현 때문에 신학적으로 예수의 표상같이도 여겨지는 존재입니다. 그의 이름은 정의의 왕이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이 살렘왕 멜기세덱은 대체 누구일까요?

우선 살렘이라는 지역은 예루살렘의 옛 명칭입니다. 우루살림이라고도 합니다.살렘은 그 당시 말로 평화라는 말과 같은 뜻이었죠. 이 당시 살렘은 이집트에게 점령당한 상태였는데 이집트는 전차 기술을 가진 힉소스인들에게 정복당한 상태였습니다. 살고 있는 이들은 가나안인이지만 이집트의 힉소스 인들에게 군사지배 받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집트 지배하에 굴복한 살렘 도시의 지배자였을 것인데 유대 전승에 따르자면 멜기세덱에 대하여 부하들에게 쫓겨난 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유대 전승 역시 당시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닌 후대의 창작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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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는 동안 멜기세덱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14년 전 사냥을 나가 있는 동안 니탈이라는 최고 고문관이 자신의 가족과 친척을 모두 살해하고 왕위를 빼앗아 갔다고 밝힙니다. 살렘은 군대가 없는 대신 모든 성인 남성들이 군사훈련을 받고 비상시에 군인이 되는 체재였기에 그들의 반역을 저질러도 이를 막을 친위대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살렘으로 돌아갔을 때 수 백명의 지지자들이 멜기세덱에게 찾아왔고 니탈에 의해 그러지 못한 자들도 많았기에 성 내부에도 지지자가 많아 성을 공격할 충분한 여력이 존재한다고 밝힙니다.

 

그러자 아브람이 그러면 왜 살렘을 되찾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서로 반으로 갈라져 싸우다가는 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이에 살렘은 약해질 것이기에 그랬다가는 이웃나라의 먹이감이 될 것을 우려해 부하들을 해산시켰다고 대답합니다.

 

멜기세덱은 여전히 살렘의 백성들이 혹여 자신에게로 모두 돌아올까 해년마다 살렘으로 돌아가 살렘이여 너희의 왕이 돌아왔다라는 말을 외쳤는데 니탈의 독재에 억눌린 백성들이 그에게 돌을 던지는 일이 매년 반복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브람이 왜 그런 일을 하냐고 물으니 암탉이 병아리를 감싸고 싶어 하듯이 자신도 살렘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그런다고 멜기세덱이 대답합니다.

 

아브라함은 그에게 탄복해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평화의 왕, 살렘의 왕이요.’ 라고 외치며 자신의 전리품의 10분의 1을 바치며 신하의 예를 표합니다.

 

그 다음해 멜기세덱은 여전히 살렘으로 가 살렘이여 너희의 왕이 돌아왔다!’ 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요새 위에 있던 누군가가 그에게 창을 던졌고 그 창은 그의 옆구리에 박혔으며 멜기세덱은 숨을 거두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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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유대인들의 전승에서 멜기세덱은 이와 같이 이해되는구나 정도의 참고자료로 넘기시고 이 살렘의 왕 멜기세덱이 정말 여호와의 제사장이었나에 대해 고민해보겠습니다.

 

이 당시 히브리어 엘은 고대 근동 당시 우가리트 신화의 최고 신 을 뜻하는 단어였습니다. 허나 이 엘은 이 최고신만을 지칭 한다기 보다는 우리가 쓰는 이라는 단어 그 자체의 느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 1418절 히브리 원문에서는 멜기세덱을 코헨 레엘 엘리욘 이라는 단어로써 표현하는데 이는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엘 엘리욘이라는 표현은 우가리트 문서와 고대 근동 문학에서 정확히 우가리트 신화 최고 신 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등장합니다.

 

따라서 창세기와 모세가 표현하는 멜기세덱은 여호와의 제사장이 아닌 우가리트 최고신 엘의 제사장으로써의 모습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즉 신에 대한 표현을 하느님으로 뭉뚱그려버린 번역으로 멜기세덱의 신과 아브라함의 신을 똑같이 표현하게 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정확히 유대교의 신을 표현하는 단어는 YHWH로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처음 출애굽기 314절에서 신의 이름을 물었을 때의 표현으로 ‘I Am’, ‘나는 나다.’라는 뜻이며 자음만 표기하는 고대 본문 특성상 현재로써는 정확한 발음을 알 수 없습니다.

 

신은 모세가 민족에게 자신을 표현하려거든 너희 조상의 하나님(원문 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라고 표현하라고 합니다. 즉 유대교의 신의 이름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의 표현과 유대교의 신, 하나님의 번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혼동되는 것을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멜기세덱은 결국 다른 신의 제사장으로써 아브람을 축복한 것이고 아브람은 창세기 1422절에서 하늘과 땅의 주관자, 진정한 엘 엘리욘(최고신)인 엘 아도나이(여호와)에게 맹세한다는 표현을 써서 각자의 신을 정확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들이 주고자 하는 것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이어지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멜기세덱에게 소득 십분의 일을 바친 것은 신에게 재물을 바쳐야 하는데 멜기세덱을 천지를 주재하는 진짜 신 엘 아도나이의 제사장으로써의 지위를 한정적으로 인정해 바친 것으로 신의 제사장이 현재 없는 아브라함의 융통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나의 신 엘 아도나이에게 재물을 바치나 너희의 것은 타인들에게 우가리트 신들의 것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으니 받지 않는 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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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1부다


2부에서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는 것에 대한 철학적, 신학적 해석으로 간다


사실 쓰고 싶은 내용이 훨씬 더 길긴 한데 지식 소매상으로써 더 깊은 내용은 다른 저서등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가능한 한 줄였다 


글 쓰면서도 새롭게 알아 가는게 많아서 쓰는 중에 엄청 재밋었다


가능한한 객관적이고 종교계의 선동적인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럼 당분간 바이

5개의 댓글

2018.07.16
아유. 재밌네. 좋은 글 고맙다. 근데 엘이 창세기를 보면 원래 섞여 쓰이지 않니? 특히 E문서 같은면 엘로힘인데 엘이 단독으로 신을 나타내는 이름이라고 본다면 현대의 GOD와 같은 보통 명사였을 가능성이 없을까?

그리고 멜기세댁이 예수를 표상한다고 본다면 하는 대사나 옆구리에 창에 맞는 등의 유사점이 매우 흥미롭다.
0
2018.07.16
아. 그리고 또 하나. 모세가 출애굽할 당시 이미 이스라엘 민족이 단일 민족이 아니었을거 같은데. 그냥 사회에 불만있는 하층민들을 민족과 상관없이 데리고 나온거 아니냐. 그 이후에 한 민족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진거고. 배철현 교수 책보면 그렇게 짐작하던데?
0
2018.07.18
글 너무 좋은뎅~
자작은 아닌거 같은데 참고자료도 공유 좀 해줘 형~
0
2018.07.21
재미있게 읽었어
0
2018.07.23
민족의 시조가 타민족이다.. 위만이 떠오르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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