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괴담

Reddit - 살아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지?

How Do You Prove You Are Alive?


죽은 지 거의 5주가 지났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물론, 진짜 죽은 건 아니다. 그랬다면 여기서 이 계정으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적지도 못할 테니까. 하지만 적어도 법적으로는 사망선고를 받았다. 한번 죽고 나면,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기는 정말 놀랍도록 어려워진다.


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 사건은 3개월 전에 일어났다. 윌리엄슨 공항에서 세인트 루이스로 가는 늦은 비행편을 잡기 위해 가고 있었다. 군을 떠난 뒤로는 보험금 청구 조사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전역을 돌아다녀야 했다. 연간 250번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다녀야 했고 그때문에 작은 지역 공항에 오게 된 것이었다. 이 공항은 작았지만 여태 본 것 중 가장 작은 건 아니었다. 


공항엔 6시에 도착했기에 비행기가 뜨는 9시 45분까지는 시간이 제법 남아있었다.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전화를 몇통했다. 공항은 조용했지만, 사람들이 적진 않았다. 모두 낯설기는 해도 말이다. 


방송이 나와 비행편이 늦어졌다면서 '기술적 문제'로 책임을 돌렸다. 아무 이상할 게 없었다. 그냥 킨들을 켜서 읽다 만 책이나 읽었다. 그리고 깜빡 잠이 들었다.


"실례합니다 선생님."


"예?" 날 부르는 소리에 움찔거리며 일어났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전부 비행기에 탄 모양이었다. 공항은 적막했고 불도 꺼져있었으며 셔터들도 다 닫혀있었다. 마치 유령마을처럼. 시계를 보니 11시 53분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늦은 시각이었다. 


비행기에 탔을 때, 안엔 아무도 없었다. 쥐새끼 한 마리조차 없었다. 여지껏 둘, 혹은 셋밖에 없는 비행기를 탄 적은 있었지만 혼자서 비행기를 전세내다시피 한 적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거들먹거리는 승무원이 와서는 날 자리로 안내했다. 어디 앉아도 아무 상관 없을 게 뻔한 데도 말이다. 서둘러 외투와 노트북 가방을 자리 위의 화물칸에 집어넣었다. 내가 고개를 숙여 책을 보는 동안 그 승무원은 촌극 같은 안전시범을 보였다.


이륙은 부드러웠지만 일정 고도 이상이 올라가자 귀에 익숙한 압력이 느껴져 침을 삼켰다. 모두가 그 귀가 뚫리는 느낌을 알 것이다. 매번 똑같지만 새롭지. 


"선생님, 안전벨트를 매셔야 합니다." 또박또박하지만 마치 꿈결처럼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승무원이겠거니 생각했지만 그녀는 거기 없었다. 통로쪽으로 고개를 숙이자 앞쪽에 있는 승무원이 보였다. 난 고작 6줄 뒤에 있었기에 거기서도 목소리가 들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분명히 뒤에서 났던 건데.


그저 소리의 신비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내 심장소리가 텅 빈 비행기내에서 요동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위를 올려다 봤을 때, 안전벨트 경고등은 켜져있지 않았다.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책을 읽었다. 


비행은 별 탈 없었다. 에어컨이 웅웅대는 소리와 기내 조명이 피로함과 섞여 졸리긴 했지만.


고도가 낮아지기 시작하자 다시 귀가 뚫렸다. 


"죄송합니다만 아가씨,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이번엔 남자의 목소리, 아까처럼 선명하지만 이세상것이 아닌 것 같은 속삭임이었다. 상황이 매우 기묘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내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 진정하시고 계속 안전벨트를 착용해주세요. 그저 난기류일 뿐입니다." 비행기는 구름을 뚫고 내려가며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점점 사실처럼 들렸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도 섞여들기 시작해 점점 시끄럽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제발 조용히 하고 앉아주시면 좋겠네요." 승무원이 공포에 빠져 꽥꽥대며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고합치듯 답했다.


속삭임은 이제 비명이, 그리고 흐느낌이 되어갔다. 


내 뒤에선 무자비하고 대답없는 신에게 제발 이 신심깊은 어린 양을 버리지 말아달라는 광기에 찬 기도가 들려왔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여인의 훌쩍임도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의 달램도 목소리에 깃든 공포를 가릴 수는 없었다.


비행기가 하강함에 따라 소리는 점점 새되고 거세져갔다. 겨루듯이 내지르는 소음들은 대혼란 그 자체였다. 


"안 돼애애애애애애애!" 


"으아아아아아아아"


"제바아아아아아아알"


바퀴가 땅에 닿자 소리는 멎었다. 난 팔걸이에 손가락을 쑤셔박다시피하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눈썹은 땀에 젖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허겁지겁 비행기에서 내려 적막한 공항을 뛰쳐나와 이름도 면식도 없는 호텔의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난 아까의 일들을 합리화해서 잊어버렸다. 공황상태에 빠져서 그냥 착륙이 잘 될지 안 될지 불안해진 것뿐이다. 한 달에도 십수번이나 겪는 일이었다. 그럴 것이라 스스로를 다잡고는 피로에 빠져 잠에 들었다. 


꿈에서 고통과 분노에 찬 신음이 들렸다. 그리고, 정적이 찾아왔다. 


아침이 되자 주위가 정상으로 돌아온 듯해 아침을 먹으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너무 추워."


희미한 속삭임에 안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주변을 둘러봤다. 


다음 약속장소로 렌트카를 모는 도중 라디오에서 추락 뉴스를 들었다. 윌리엄슨에서 세인트 루이스로 가는, 케이프 항공의 아침 비행기였고 27명의 탑승객 중 생존자는 없었다. 


"어디 있어?" 라디오가 아니라 뒷자리에서 속삭이는 듯한, 유령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없을 게 뻔했지만 백미러를 봤다. 그저 아무도 없다는 걸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뒤쪽을 보려고 어깨를 너무 돌린 탓에 길에서 한바퀴 돌 뻔했다.


그날 밤 세인트루이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권을 잃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국내선을 타는 데는 운전면허증으로 충분했지만 잃어버린 건 여전히 뼈아픈 일이었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와 세인트루이스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사과하면서 청소중 여권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윌리암슨에서 비행기를 탈 땐 분명히 여권을 보여줬으니 남은 건 비행기밖에 없었다. 필시 거기에 두고 온 것이겠지.


전화가 연결됐다. "안녕하세요. 이틀 전 비행기를 탈 때 여권을 두고 내린 것 같습니다."


"넌 나랑 같이 있어야 해. 여긴 너무 추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뭐요?"


"분실물 센터로 연결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여직원이 재차 말했다.


"안녕하세요. 케이프 항공 분실물 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세요. 전 리오넬 싱클레어 대위입니다. 이틀 전 비행기를 탔는데 거기 여권을 두고 내린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어느 항공편이었죠?"

"9시 45분에 윌리엄슨에서 세인트루이스로 가는 거요. 번호는 9K1114고요."


"와서 함께 어울리자."


"뭐라고요?"

"데이터베이스를 검색중이에요." 긴 시간 동안 정적 가운데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죄송한데 날짜 확인 좀 해주시겠어요?"


"3월 21일 수요일, 오후 9시 45분, 윌리엄슨에서 세인트루이스, 항공번호는 9K1114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잠시 기다려주세요."


"너무 추워, 근데 넌 정말 따뜻해."


"안녕하세요. 싱글레어 씹니까?" 새로운 사람이 질문했다.


"싱클레어 대위입니다." 


"죄송합니다 대위님. 죄송하지만 여권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시는 항공편의 세부사항을 다시 한번 확인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죄송합니다만 대위님, 그 항공편은 21일에 기술적 문제 때문에 취소되었습니다. 그 비행기에 타는 건 불가능해요. 혹시 다른 날짜 아니었습니까?"


"넌 우리랑 같이 있어야 해."


"아뇨. 아닙니다. 전 그 비행기를 탔습니다. 지금 티켓을 보고 있는데 맞습니다. 윌리엄슨 공항에서 샌드위치를 사고 받은 영수증도 있고 그날밤 세인트루이스 호텔에서 묵은 영수증도 들고 있습니다. 그 비행기를 안 탔으면 이걸 갖고 있는 게 불가능했겠죠." 며칠 간 불안에 시달렸기 때문일까, 이 멍청한 여직원에 점점 화가 나고 있었다. 


"대위님, 그날 저녁 항공편은 취소됐고 다음날 아침 항공편 역시 추락사고에 휘말렸습니다. 뉴스에서 들어보시지 못했나요? 거기 타고 있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통화는 혼란과 분노만을 남긴 채 끊겨버렸다.


같은날 경찰이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아내에게 불행하게도 내가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으며, 추락현장에서 타버린 여권의 잔해가 발견되었다는 것과, 27명의 탑승객들 중 유일하게 판별이 되지 않은 시체가 있어 혹시 그게 내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했다고 했다. 내가 집에서 사지 멀쩡하게 있는 걸 봤을 때 그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상상이나 가는가.


"저들도 네가 우리랑 같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아." 경찰이 나와 아내에게 얘기하는 도중에 속삭임이 들렸다. 


그때부터, 내가 살았는가 죽었는가에 대한 혼란이 시작되었다.


신원미상의 피해자의 치아 기록은 내 것과 일치했다. 운전면허증은 여전히 갖고 있었지만 사진이 옛날것이어서 경찰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니었다. 


공항의 감시 카메라도 아무런 도움이 못 됐다. 공항에 들어가는 모습은 선명히 찍혀있었지만 결항 방송이 나왔을 땐 내가 공항을 떠나는 모습이 찍혀있지 않았다.


지역 경찰서에 몇 번이고 들락거려야 했고 케이프 항공에도 확인을 위해 내 티켓 토막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티켓은 정말 진짜였기에 그들은 당황했지만 그 비행기는 절대 이륙한 적이 없다고 못박았다. 


이 난장판이 7주째로 접어들자 DNA 테스트 허가가 내려졌다. 군대에 복무할 적에 DNA 기록을 남겨두었기에 곧 일이 빠르게 해결되리라 믿었다. 불행하게도 결과는 재앙과도 같았다. 내 DNA와 그 신원미상의 DNA 모두가 내 DNA로 판명이 난 것이다. 심지어 내것은 95% 일치를 보였는데 시체의 것은 99% 일치했다. 


이 DNA '증거' 때문에 2018년 5월 15일 화요일 난 법적으로 사망하게 됐으며 경찰은 즉시 내 진짜 신원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사망신고가 내려진 뒤 목소리는 더 선명하고 자주 들리게 됐다. 그들의 어조 역시 바뀌었다. 


"산 자들은 더이상 너를 원하지 않아."


"지금 당장 같이 어울려도 된다고." 


"곧 너를 찾아갈 거야."


"네 온기가 필요해. 여긴 너무 추워."


난 자주 웃는다. 울지 않도록. 제정신을 유지하도록. 세상은 나를 죽었다고 생각하고 머릿속에선 이 목소리들이 울린다. 아내는 날 수상쩍게 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 깃든 의심이 보인다.


이젠 목소리를 넘어서 뭔가가 보인다. 어렴풋한 그림자와 거울에 반사되어보이는 뭔가, 끔찍한 것들. 타고 부러지고 추위에 떠는 것들이 보인다.


제정신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주는 것들도 있다. 대체 나보다 더 DNA 일치성이 높은 이 불에 탄 시체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이며 아직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려면 뭐가 필요하지? 


날 가장 괴롭게 하는 건 내가 아직 사망상태라는 것이다. 만일 법적으로 사망한 사람이 죽임을 당한다면 어떤 범죄도 성립하지 않고 수사조차 실행되지 않는다. 목소리는 계속해서 곧 데리러 오겠다며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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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www.reddit.com/r/nosleep/comments/8rbl0p/how_do_you_prove_you_are_alive/













11개의 댓글

2018.06.17
잘보고가유
0
2018.06.18
이런거 영화로 풀면 재밌을듯
1
2018.06.18
재밌다
0
2018.06.19
와 진짜 재밌다
0
잘보았읍니다
0
인원미상 >> 신원미상
0
2018.06.19
땅에 파묻힌 그 영화냐 ㅡㅡ
0
2018.06.19
옆사람 때려보면 살아있는지 알수있음
0
2018.06.20
ㅗㅜㅑ
0
2018.06.22
이거 식스센스 비슷하네
0
와 대박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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