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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 플레이어 원 리뷰

<레디 플레이어 원 / Ready Player One> 리뷰
-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레디 플레이어 원>은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의 폭 넓은 공감을 이끌어 냄과 동시에 블록버스터의 대명사나 마찬가지인 그의 이름을 다시 각인 시키는 훌륭한 영화가 되었다. 단순한 카메오 찾는 영화가 아니다. 유치한 플롯이지만 우리 모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뻔해보이지만 완벽한 스토리와 그의 인생철학이 담긴 메세지를 들려주는 그런 영화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세계 영화사에서 영향력이 큰 영화인 중 한 명인 것을 모두가 알지만 왜 그런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무엇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2000년 초 영화들까지만 기억하고 그 이후로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소위 '대박'이라고 불릴만한 작품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과대평가 또는 그저 '옛날에는 대단했지'하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것 같다.

세계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 <죠스>를 만들고 난 후, <E.T>, <구니스>와 같은 틴에이지 장르를 섭렵하고,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 <백 투터 퓨처> 시리즈를 성공시키며 미국 문화 산업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명으로 거론된다. <고인돌 가족>이나 <꼬마 유령 캐스퍼>,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와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에도 그의 손길이 안미치는 곳이 없었고, <A.I.>, <맨인블랙>, <라이언 일병 구하기>, <쉰들러 리스트>, <바닐라 스카이>,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 어느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추억 한 켠에 자리하고 있을 명작들의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영화를 잘 안 본다는 사람들이라 해도 내가 언급한 위의 영화들 중 하나라도 안 본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감독마다 평생 다뤄오는 주제나 철학이 있는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트라우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폭력', 박찬욱 감독은 '복수'라는 주제로 꽤 오랜시간에 걸쳐 그들만의 생각을 표현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그러하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생각한 그의 철학적 고민은 '위치'에 대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단순한 장소가 될 수도 있으며, 성 정체성, 정치적 사상, 인종, 기계와 인간의 사이 등 포괄적인 의미를 함축한다. <E.T>는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이 우주로 돌아가는 내용이었고, <백 투더 퓨처>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과거와 미래를 해결하고 자신이 돌아갈 현재로 향하는 모험을 했다. <쉰들러 리스트>는 나치인 자신과 유대인의 학살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장교의 이야기였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하나 남은 다른 집 아들을 데리러 가는 공수부대의 이야기였으며, <A.I.>는 인간이 되어 엄마한테 사랑을 다시 받기 위한 꼬마 로봇의 이야기였다. 즉,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없거나 그러한 장소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주인공들의 모험을 담은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레디 플레이어 원>도 결국 그렇다. 빈민촌의 컨테이너 박스가 싫어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부를 얻기 위해 점점 더 '오아시스'에 빠져드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주인공 웨이드는 안경끼고 체크무늬 낀 채 하루도 빠짐없이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전형적 '너드(Nerd)' 다. 빈민촌의 이모 집에 얹혀 살며 이모부의 눈총을 피해 폐차장의 아지트에서 지내는 웨이드에게 '오아시스'는 모래밖에 없는 현실 속의 담비와 같다. 거기다 가장 친한 친구도 게임 속에 있고, 짝사랑하는 그녀도 게임 속에 있고, 자신의 꿈 또한 게임 속에 있으니, 이미 오아시스의 Z는 단순한 게임 아바타가 아니라 웨이드의 정체성이 투영된 시뮬라크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시뮬라크르를 긍정하면서 또 동시에 부정하였다. IOI가 웨이드의 신변을 알아내려 하는 동안 웨이드는 게임 속 아르테미스에게 반해버렸고, 현실과 게임을 구분짓지 못하고 게임 속에서 자신의 신상을 까발리는 실수를 해버린다. 아바타 뒤에 숨어 익명성의 가상 공간에의 만남을 우리는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게임속에서 만나 결혼까지 했다는 국내의 어느 커플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이 또한 굉장히 오랜 시간동안 서로에 대한 이해와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오아시스라는 가상의 공간을 만든 할리데이 또한 오아시스에 자신 개인의 경험과 철학과 트라우마를 강하게 투영시켰다. 할리데이는 어렸을 적 현실이 너무 고달팠기 때문에 영화와 음악, 게임, 서브컬쳐에 파고들었고,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강한 염원을 담아 만든 게임이 '오아시스'였다. 그러나 할리데이가 오아시스를 만드는 과정 동안 할리데이는 혼자가 아니었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그가 건실히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던 파트너 모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룰을 따르지 않는다는 자신의 철학으로 만들었던 첫번째 레이싱 게임, 첫사랑을 못 잊고 언젠가 함께하길 바라며 만들었던 두번째 방탈출 게임, 자신의 동료를 내쳤다는 죄책감을 속죄하고자 만든 마지막 이스터 에그 찾기. 이 일련의 미션들은 모로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정사이자, 이제 그만 게임에서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후회없는 사랑을 하라는 할리데이의 메세지다.

그러나 모로의 말대로 오아시스와 현실은 더 이상 개별체가 아니다. 영화 속 오아시스는 명실상부 가장 유저수가 많은 게임이고, 부자동네부터 빈민촌까지 모두가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오아시스에서 보낸다. 그렇기에 웨이드처럼 현실과 게임의 구분이 흐려지지만 이는 시뮬라크르가 원본을 잠식하는 불안한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IOI의 회장 놀렌 소렌토가 게임을 그저 젊은애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의 수단으로 보는, 경제력을 갖고 사회적으로도 어느정도 위치하고 있는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렌토는 자신의 캐릭터를 슈퍼맨의 클라크로 할 정도로 만화에 대해 무지하고, 비밀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해 메모지에 써놓고 무방비하게 두고, 게임에 무슨 아이템이 어떤 설정이 있는지 아는 것 조차 귀찮아 할 정도로 대중문화에 대해 어색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도 안한다. 눈에 보이는 통장 속 0의 개수가 더 중요하고, 주식이 상한가가 치기를 연신 바라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아노락의 성을 향하는 주인공 무리를 막기 위해 메카 고질라를 조종하다가 한 번도 게임에선 보지 못 한 아르테미스 아바타를 알아본 이유는 사만다의 얼굴 흉터가 아르테미스의 얼굴에도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렌토가 마지막 순간에 총을 쏘지 못한 순간도 웨이드가 이스터 에그를 받고 눈물을 흘린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야 말로 대중문화를 오해하고 잘못 이용하던 사람들이 우리가 흔히 '오타쿠' 또는 '매니아'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알아보고 열정에 공감하는 순간이다. 게임 아바타가 매니아들의 정체성이 되는 순간,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비싼 영화표와 콘솔 게임기에 현질하는 모든 이들의 열정을 단지 '변종'이 아닌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수십년간 대중문화를 만들어오며 수많은 관객들과 소통을 해왔던 스필버그 감독은 사실 누구보다 Nerd들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서양의 오타쿠를 만들어 버린 <스타워즈>에도 참여를 한 적이 있고, '아타리 쇼크'의 원인이었던 <E.T>를 만든 것도 스필버그 감독이었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팬도 많고 안티도 많은 사람이다. 그랬던 대중문화 기둥의 한 사람이 Nerd들에게 이야기하고픈 내용은 꽤 현실적이다.

파이어 플라이를 찾아가는 조엘과 엘리의 여정 속에서, 아제로스의 거친 땅에서, 젤다 공주를 되찾기 위한 링크의 모험 속에서 우린 우리 스스로를 주인공들에 대입시켰지만, 그 허상공간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수십 시간에 불과하다. 우리가 주인공이어야 할 공간은 현실이어야 한다. 비록 대규모 공성전의 치열한 전투, 보스와의 스릴있는 1대1 대결, 이 모든 미션들을 해내고 난 뒤의 성취감은 없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연인을 찾고, 눈을 마주치며 애틋한 진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은 현실 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는 할리데이가 그랬듯,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앞에 두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런 실수를, 자신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파트너를 회사에서 내치는 그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할리데이가 웨이드에게 이스터에그를 건네주며 이야기한 이 말이 와닿는다.

" 현실은 차갑고 무서운곳과 동시에 따뜻한 밥을 먹을수있는 유일한 곳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17개의 댓글

2018.04.06
글 잘썻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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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한댕댕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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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6
@별거아닌데그만들싸워
난 아쉬운게 어두운 부분을 너무 눈감지않았나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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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한댕댕이
장르가 블록버스터다 보니까 제작 초기부터 너무 무게잡고 만들려고는 안할거라고 의도했을거야.

뭣보다 영상미로 보여줄게 더 많은 영화고 폭넓은 관객 범위에 맞춘거니까 자칫 지루해질수도 있고.
0
2018.04.06
@별거아닌데그만들싸워
ㅇㅇ 나도 그생각에 납득하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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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한댕댕이
가장 아쉬운건 왜 게임에 애니 잔뜩 나오는데 모에요소가 없던걸까

미국 만화 클리셰를 전형적으로 따르다보니 H의 정체가 너무 매력이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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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6
@별거아닌데그만들싸워
나도 처음 보자마자 얘가 여준가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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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6
ㅗㅜㅑ 글잘썼네용 님글은 항상 길어서 안보고 넘어갔었는데
읽길잘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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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ulf
고마워요 아죠씨

매번 모바일로 쓰다 보니까 글만 많던데

다음번엔 사진도 추가해보도록 함
0
mn
2018.04.06
인싸엔딩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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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
아싸가 인싸되는 영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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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
2018.04.06
@별거아닌데그만들싸워
먼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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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
요즘 영화들이 다들 복잡해서 그른가 기대만큼 아쉽긴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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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6
중간중간 오타가 좀 아숩당. 하지만 좋은 리뷰니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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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yhell
앞으론 귀찮더라도 노트북으로 해야겠다 ㅂㄷㅂ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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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6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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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LDR
감사합니다 행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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