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브금주의)우리는 스스로를 죽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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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미국의 프론티어가 넓어지며 미국인들은 점차 서부로, 서부로 나아갔다.

서부개척은 미국을 발전시키는 기폭제가 되었지만 동시에 사람들을 문명의 삶에서 야생으로 밀어넣었다.

가진 것 없는 자들, 마을을 이루어 살지도 못했고 살림살이도 없었다. 학교도 없고 교회도 없었다. 미국의 뜻 있는 종교인들은 이런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동부의 기성 교회조직들이 엄격한 교리와 형식에 얽매여 있는동안 서부에서 수많은 미국인들이 복음을 전파 받지 못하고 지옥불로 떨어져 가고 있었다.

청교도 국가라는 이미지와 달리 18세기 초 많은 미국인들은 교회에 다니지 않거나 어느 교파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리적으로나 영적으로 목사들의 손에서 멀리 떠나 있었던 것이다.

 

1720년대...드디어 대각성운동이 시작되었다.

 

부흥주의자들이 서부로 남부로 오지로 산으로 강으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고립된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들은 교회조직을 재건하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구원을 하기 위해 애썼다. 또한 교회조직을 평신도들의 손에 쥐어주고자 했다.  

부흥주의자들이 구원의 대상으로 했던 이들은 배우지 못한 이들이었고 이들은 글을 배우지 않았으니 성경은 읽을 수도 없는 무지렁이, 즉 보통사람들이었다.

당연히 부흥주의자들은 설교를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 어려운 수사로 꾸며진 정교한 설교문은 사람들을 '개심'시킬 수 없었다.

구원에 필요한 것이 학식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스스로 느끼는 것이었다.  


대각성운동을 이끈 이들은 보통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독교를 다듬었다.

또한 보통 사람들에게 스스로 설교도 하고 서로를 가르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운동가들은 동부의 기성교회들에 비판을 가했다.

발달된 도시에서 상류계급에 의해 상류계급을 위해 운영되는 교회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기독교는 민중의 종교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그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을, 이 어린 양들을 구원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지 않는가?

동부의 목사들이 대학에 들어가 고전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낭비하고 서부의 거친 환경을 꺼리는 동안 미국의 보통사람들은 구원에서 멀어지고 타락하고 있었다.

대학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고전을 읽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식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1850년대가 되자 서부의 새로운 땅과 도시들에서 기독교를 유지 발전 시킨 집단이 대각성운동 이 후 이어진 대중적인 복음주의 운동이었음이 분명해졌다.

국제적 명성을 지닌 설교자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설교로 사람들을 개심시켰고 학식을 쌓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애초에 대개 그들 스스로부터가 제대로 신학 공부를 받은 이들이 아니었다.

 

법률가 출신의 찰스 그랜디스 피니(Charles Grandison Finney)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권위에 바탕을 두는 학설은 받아들일 수 없다. 직접 성경을 접하거나 또 나 자신의 철학이나 정신의 작용을 따르는 것 외에는 나에게 다른 길은 없었다."
그는 자발성을 잃는다는 이유로 글로된 설교문을 경멸했고 세속 문화는 구원에 잠재적인 위협이 된다고 보았다.
"학교 때문에 목사들이 망가지고 있다.", "동부의 대학생들은 고전어를 배우느라 4년을 보내지만 그들의 머리에 하느님은 들어있지 않다."

사업가 출신의 드와이트 L 무디(Dwight L. Moody)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신학대학의 교육은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진 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다” 고 그는 생각했다.

 

이러한 태도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기독교 복음주의자인 야구선수출신의 빌리 선데이(Billy Sunday)에 의해 절정에 달했다.  

그의 대에 이르러 설교회는 하나의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화려한 옷, 언변, 눈요깃거리, 곡예, 재즈풍의 음악 등등...

빌리 선데이는 속어를 써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 지식인들을 즐겁게 하려다가 대중을 놓친다.”, “우리는 지성이나 돈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 말씀의 힘을 원한다.”
“모든 신도가 백만장자나 대학졸업자라면 미국의 교회는 썩어문드러져 깊은 지옥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다”
“지옥은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리 말하는데 믿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사악하고 비열하고 타락한 겁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아!”
“교육에 보탤 돈은 1달러로 충분합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다른 말을 하면 학자는 지옥으로 갑니다.”

 

점차 미국인들의 종교적 심상에 이러한 기독교 근본주의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1925년 미국의 테네시 주에서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문제를 두고 재판이 벌어졌다. 그 유명한 스코프스 재판(Scopes Trial)이다.

진화론 교육을 반대하는 측의 변호사로 선 인물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으로 전 국무장관이자 대통령후보로 세차례나 출마한 인물이었다.

그는 “미국을 괴롭히는 모든 악폐의 근원은 진화론 교육"이며 "창세기의 첫 세 절만 제외하고 이제까지 쓰인 책은 전부 없애버리는게 좋을 겁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부모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가 부모와 다른 생각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있다는 점에 분개했다. 

브라이언은 이야기한다.

“그리스도교는 이른바 사상가들만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종교이다”

"인간을 졸업장이나 학위로 평가하는 자들"에게 어찌 판결을 내릴 자격이 있는가?  
진화론 교육을 학부모를 비롯한 유권자들, 즉 대중들의 의사와 다르게 학교에서 강행하는 것은 곧 소수자들의 폭거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 되었다.

“종교와 교육의 어느 한쪽을 포기해야 한다면 교육을 포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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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2

 

미국이 건국될 무렵에는 국가지도자는 곧 지식인이었고 국정은 어디까지나 귀족적인 엘리트 그룹이 좌우하고 있었다.

이 엘리트 집단 안에서 지식인들은 자유롭게 행동했고 그들의 발언도 누구나 경청할 정도의 권위를 가졌다.

당파분열이 극심해지면서 엘리트 집단은 몰락하기 시작했고 정치 윤리도 존중하지 않게 되었다.

이 세대의 뛰어난 지도자들은 결속력을 잃었고 윤리 의식도 느슨해졌다.정치 논쟁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결국 민중 선동으로 전락해버렸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온갖 언사를 동원해 싸우게 되었다.

1796년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대통령으로 취임할 무렵의 일이었다.

그의 반대자들은 그가 지식인이자 문필가이기에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공격했다.  

"필요한 것은 지성이 아니라 인격인데 제퍼슨은 이 점이 부족하다", "지식인은 사소한 일에 매달리다 중대한 문제는 놓친다.",

"대학교수로는 어울려도 대통령 직무에는 서부의 군대를 지휘하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내각회의실이 아니라 서재이다.”...

 

지식인 엘리트 계급에 대해 미국의 보통 사람들이 가진 의심과 적대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야기했다.

"지식인들은 모두 공통의 이해관계라는 가장 강한 끈으로 묶여 있어

은밀히 정보를 주고 받거나 공동으로 다수의 이익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며 상대의 주머니를 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오로지 보통사람들에게는 지식이라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신분격차를 시정하거나 가능하면 철폐하고 자산계급이나 지식 계급의 리더십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민중민주주의가 힘과 자신감을 키워감에 따라 직관력을 타고난 민중의 지혜가 우월한 것이라는 믿음이 더욱 강해졌다.

 

이러한 사상은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이 대통령에 당선되며 더욱 강해졌다.

앤드루 잭슨의 상대였던 존 퀸시 애덤스(John Quincy Adams)는 미국 정치에서 마지막으로 동부 엘리트 정치를 수행했던 인물이었다.

애덤스는 예술이나 과학 진흥에 힘을 쏟을 것을 주장하며 도로나 운하의 정비, 국립대학 설립, 국립천문대, 특허청, 행정부처 신설 등을 주창했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서부의 가난한 보통 사람 출신인 앤드루 잭슨이야말로 민주정치의 대표자였다.

동부 엘리트 출신의 귀족적 지식인이었던 존 퀸시 애덤스는 민주주의와는 맞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앤드루 잭슨의 지지자들은 잭슨이 자연인의 자연적 지혜를 대표한다고 치켜세웠다. 
그는 자연이라는 학교에서 배웠고 인위적인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인간으로 여겨졌다.
이 서부의 배우지 못한 사람, 가난한 사람은 타고난 직관력으로 숲에서 지혜를 가져올 인물로 보였다

잭슨 지지자들 애덤스를 보고 비웃었다. “그에게 학식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자. 그러나 그에게 지혜가 있는지 어떤지는 답을 기다려보자."

잭슨의 선거운동에서 지성은 애덤스의 귀족정치와 묶여버렸고 민주정치는 타고난 직관이나 행동력과 연결되었다.

 

학식이 왜 민주정치와 반하는 것으로 여겨졌을까?

연방의원 데이비드 크로켓(David crockett)은 테네시주의 토지를 대학으로 사용하는 것을 두고 의회에서 다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에게는 보통의 흔한 시골 학교, 즉 대학졸업자들이 조롱하듯 입에 올리는 편리한 B급 학교만 있으면 된다.”
"주민들은 하나같이 대학 다닐 형편도 아니라 대학이 발전한들 보상받을 수도 없다."
“제가 이 계획에 반대한 건 교육의 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교육의 혜택이 '공평'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자녀들은 이제껏 대학 구내에 들어가본 적도 없을 테고 앞으로도 들어갈 일이 없을 것.”

데이비드 크로켓이 보기에 보통 사람들이 들어갈 수도 없는 대학을 위해 그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것은 죄악이었다.

 

잭슨민주주의는 보통선거와 평등주의 정서의 확대 아래 관료제에 윤번제를 도입하여 서로 돌아가면서 관료가 되게 했다. 

이들에게 누구나 관료를 한다는 것은 행정 인력의 질적 저하가 아니라 사회개혁이었다. 

관료를 해임하기 쉽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강점으로 보였으며 초심자를 임명하는 것은 기회 균등이라는 민주주의 이념의 구현이었다.

후일 윤번제가 자리나눠먹기로 전락해 사회개혁가들이 시험에 의한 공무원제도의 도입을 주창했을 때도

민주주의, 평등주의 사고는 정치가들에게 이를 반대하는 논리를 제공했다.

그런 구상은 귀족주의적이고 유럽과 중국의 관료제의 모방이며 공화제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국가의 운명이 위태로워지면서 용감한 젊은이들이 전쟁에 참여할 때

애국심 없는 시민의 아들들은 대학 교육을 받는 혜택을 누린다...

(그들이) 공무원 자리를 차지하게 둬서는 안된다.

불구가 된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오지만 연방 공무원 자리에 거절당한다.”

“이제부터는 공무원 조직에 들어가려면 경쟁시험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사실상 대학 졸업자들만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 링컨 같은 사람은 탈락할 것이다.”

그들의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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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3

 

1844년 누군가 말했다. “철학의 시대는 갔고 ... 지금 시작되는 것은 실용성의 시대입니다.”

 

미국의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며 자수성가한 이들이 증가하자 곧 이들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사회에 퍼졌다.

동부의 오래된 엘리트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지역에서는 이런 벼락부자들을 제어할 사회체제가 마련되어 있었으나

중서부에서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땅에서 미국의 부호와 대기업들이 탄생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제조업의 위력 앞에 동부의 상업에 기반을  둔 구엘리트 집단들은 휩쓸려갈 뿐이었다.

 

이 자수성가한 부자들은 맨주먹에서 일어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교양도 없었으며 가진 것이라고는 엄청난 돈 뿐인 이들이었다.

당연히 교육에 대한 냉소가 만연해졌다. 교육 잘 받는다고 성공하는게 아닌데 교육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왜 책에서 배워야 하는가? 난 나의 경험으로 성공을 거두었는데. 나보다 잘 아는 자들이 어디에 있는가?

카네기 “과거는 어디에서 무엇을 택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피할지를 가르쳐줄 뿐이다.”
록펠러 “고리타분한 사어를 공부하고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나 과거의 온갖 야만적인 일들에 얽힌 지겨운 이야기를 배우는 것은 아무 가치도 없다.”
제임스 가필드 “(대학교육이란) 죽은 시대의 삶으로 정신을 기르는 것”
헨리 포드 “역사란 다소간 터무니없다. 언제나 그렇다."

그들에게 과거는 극복해야할 대상이었다.

 

거래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며 사업도 전문화되고 분화되었고

사람들은 여가나 교양이 아닌 돈 버는 것 자체에 몰두하면서 문화적 생활에서 점점 멀어졌다. 미국 문화에서 귀족적인 취향은 점차 사라져갔다.

영국인 여행가 토머스 콜리 그래턴(Thomas Colley Grattan)은 미국을 보며 말했다.

“발달하는 것은 오직 돈 버는 재능 뿐이다. 그들은 자유롭고 폭넓게 전반적인 지식을 획득할 능력이 없다.” 이는 알렉시스 토크빌 역시 지적한 바 있다.

사업이 최상의 가치가 되면서 사업적 기준이 미국의 기준이 되었다.

곧.

실용성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되었다.

 

티머시 셰이 아서(Timothy Shay Arthur)는 1856년,

“이 나라에서 가장 탁월하고 유능한 존재는 ... 부와 사회적 지위를 개인적 에너지로 얻어낸 사람들이다.” 라고 자수성가한 이들을 찬양했다.

평범한 인간도 천재를 뛰어넘을 수 있다, 보통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 성공의 이상이 미국을 뒤덮었다. 
기업가들을 따라 정규 교육을 적대시하고 경험을 종교적일 정도로 숭배하는 경향도 강했다.
그들이 보기에 정규교육은 교육기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을 일상생활의 '훈련'에서 괴리시키는 것이었다.

 

사업가들은 교육이 좀 더 실용적으로 변해야 하며, 고등교육은 사업에 쓸모가 없다고 주장했다.

산업 평론가이자 출판업자인 헨리 케리 베어드(Henry Carey Baird)는 1885년,

“교육제도는 ... 좋은 점보다는 해악이 더 많이 생긴다 ... 나에게 권한이 주어진다면 일부 유용한 직업교육을 제외하면

그래머스쿨에서 배우는 것 이상의 교육을 아이들에게 공공 비용으로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고등학교를 기술학교로 바꾸자고 말했다.

대학 진학은 더 나쁘다고 여겨졌다. 젊은이들이 쓸데없는 연구에 시간을 허비하게 하고 우아한 여가생활에 대한 욕구만 키운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19세기 말 사업이 안정화되자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모험적인 도전이 성공할 땅은 줄어들었다.

이제 기업가들도 정규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들이 인정한 것은 인문교양, 예술이 아닌 재무, 회계, 세무 같은 실용적인 교육이었다. 이에 따라 대학은 점차 직업교육을 위한 장소로 변모해갔다.

기업가들의 욕구에 따라 만들어지는 경영대학원들은 좋은 예였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장 윌리스 도넘(Wallace Donham)은 노동조합 운동의 문제에 관한 강좌 설립과 관련해

“우리 학생들로 하여금 경영이나 사업 방침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 답했다.

이것이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미국의 생활 문화에서는 실용성이 압도적으로 중시되어왔고 기업가는 19세기 중반 이후로 가장 강력한 반지성주의 세력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기업계가 지식인과의 논쟁에서 성공을 거둔 이유는 그들의 주장이 여러 가지 점에서 서민들과 공감대를 이뤘기 때문이었다.

전자는 평범함에서 일군 성공이라는 점에서 후자는 미래의 성공을 일굴(?) 바로 그 평범한 이들이라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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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4

 
미국인들이 대중 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은 지성을 키우려는 열정이나 학식과 문화 자체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 아니다.

그 근저에는 오히려 교육이 가져다 주는 정치적, 경제적 이득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오히려 학문 자체보다는 아이들로 하여금 지성의 효용을 과대하게 평가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미국의 교과서들에 구현된 기본적인 지적 가치는 실용성었으며

교과서 저자들은 미국에서 지식을 평등하게 보급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뛰어난 학자가 그리 많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보편성을 옹호하던 미국의 교육학자들은 하나같이

'서유럽 나라들의 중등 교과과정은 귀족적이고 계급적이며 선별적이고 전통적인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민주적이고 보편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중등교육에 아무런 본보기도 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1947년 한 교육학자는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미국의 모든 청소년들에게 오래도록 외면당해온 교육의 유산을 제공할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의 학교독본은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예술에 몰입하는 것은 여성들을 타락시키는 커다란 요인"이며 "예술 편중으로 인한 타락은 그 자체가 국가의 쇠퇴 요인이자 몰락이 다가왔다는 징후다.”
독본에 표현된 문화에 대한 글은

“물질적 성공이나 인격의 완성을 추구하는 데 전념하는 삶, 뭔가 유용한 일을 제외하고는 지적 예술적 성취를 중시하지 않는 삶”을 학생들에게 제시했다.

 

교육에서의 지성의 가치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미국인들의 사고와 바로 그 미국 대중들에 의해 미국의 공교육은 근본이 약할 수 밖에 없었다.

1893년 전미교육협회 10인위원회의 보고서와 1911년 전미교육위원회 9인위원회의 보고서를 비교해보면 재미있는 변화가 눈에 띈다.

전자는 대학총장들, 교수진들로 구성되어 중등교육에 관한 학문적 견해를 표명했다.

그런데 불과 20년도 안되어 9인위원회의 보고서는 학교의 실용적 교육, 직업교육을 중시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대학을 향한 준비하는 전통적인 개념 때문에 수많은 남녀 학생들을 그 적성이나 그들이 바라는 분야에서 떼내어

어울리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목표로 이끈 것은 공립 고등학교의 책임이다. 학문에만 치우친 배타적인 요과과정은 문화에 대한 그릇된 이상을 품게 만든다.”

9인위원회의 구성원들도 대학총장에서 기술학교 교사 등으로 변해 있었다.

 

1918년 중등교육재편위원회 보고서 ‘중등교육의 기본원리’는 한발 더 나아갔다.
학교는 지성을 키우는 장이 아니라 아이들을 시민으로 훈련시키는 장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고등학교의 임무는 학생 개개인에게 시민으로서 행동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위원회는 대학도 중등학교의 예에 따라 대중적인 교육 기관으로 변모하고 그에 맞게 교육 내용을 바꿔야함을 지적했다.

그들은 “교과과정 분화의 기본은 넓은 의미에서의 직업 지도에 둬야 한다."며 그러나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고 서술했다.

문제는 그러한 배려받아야할 학생들에 "이러한 배려는 학문적인 관심이나 요구가 강한 학생들에게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표현이 있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의 학문적 측면은 이제 주요 목표의 부수적 요소로 격하되었다. 학문은 교육의 목적이 아니게 되었다.

 

만인에 대한 교육, 실용적인 교육, 시민으로서의 교육...이러한 모토 앞에 많은 교육자들은

교육이 불가능하거나 그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되는 학생들을 중등학교의 중심에 두고 재능 있는 학생들을 주변으로 밀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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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은 이들 중에는 시작부터 이미 눈치 챈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의 생각대로 이 글은 전적으로 단 한권의 책, 즉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의

『'미국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2017년 한국어 번역본(유강은 옮김)을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다.

그는 한 때 공산주의자였고 공산당원이었으며 미국사회에 녹아든 사회진화론을 비판했고 자본주의에 종속된 민주주의를 냉소적으로 보았다.

 

이 책에서 그는 반지성주의를 불러일으킨 많은 지점들을 보여준다.

대중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을 보듬고자 했던 복음주의는 기성 목회자들에 대한 경멸을 나아가 그들이 지닌 지식과 지성을 조롱하게 되었다.

귀족적 엘리트 정치에 반대해 민중 민주주의를 추구한 잭슨주의자들은 엘리트들이 누리던 지식에 반감을 가지고 그들을 정계에서 몰아내게 되었다.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상황에서 성공한 기업가들은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지식의 가치를 무시하는 원인이 되었다.

미국의 교육자들은 많은 이들을 위한 보편교육을 추구했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보편교육은 학교에서 학문적 기능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 모든 지점들은 서로 얽히면서 반지성주의를 강화시키고 확대재생산시켰다.

당사자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들은 대중들 사이에 반지성주의의 씨앗을 심고 키우고 열매를 일궜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평등주의를 기반으로 자라난 반지성주의는 바로 그 민주주의와 평등의 이상을 갉아먹고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오늘날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이들의 탄생을 보면

이 책에는 1963년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세기를 가로질러 아직도 살아 숨쉬는 생명력이 존재한다.

 

 

우리가 목숨바쳐 지키고자 했던 것들의 목을 조르고 있었던 것이 우리 자신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미국의 반지성주의.jpg

 

 

P.S. 개인적으로 책 내용 정리도 하고 여러 사람들이랑 같이 볼겸 정리를 해봤습니다.

번역본만해도 7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이니 관심있는 분들은 꼭 한번 읽어보도록 합시다.

 

 

http://www.dogdrip.net/105755067 - 간도영유권, 대한민국판 제국주의

http://www.dogdrip.net/119427956 - 다이쇼 데모크라시, 대일본제국의 봄 - 1 

http://www.dogdrip.net/120026247 - 다이쇼 데모크라시, 대일본제국의 봄 - 2

http://www.dogdrip.net/120486460 - 뮤지컬을 통해 본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두 시선

http://www.dogdrip.net/138029898 - 한 노인의 최후변론

http://www.dogdrip.net/138575537 - 자유, 평등, 우애, 그리고 방데

34개의 댓글

2017.12.29
좋은 책이네요. ㅊㅊ
방학 중에 읽을 책에 추가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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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9
@파란얼굴
완독하시고 엘리트주의의 세례를 받으시길(엄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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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9
그리고 그 기독교 근본주의는 "세인트 아메리카"호를 타고 한국에 상륙하게 되는데... 집값 오르게 해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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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9
@문틈
아니 근데 ㄹㅇ 농담이 아니라 이 책에서 묘사하는
1800년대 미국 복음주의 운동이 떡 지금 한국교회들 모습이랑 똑같아서 소룸 돋더라.
소리지르고 울부짖고 설교자들 마이크 잡고 소리치고 악단 동원해서 노래부르고 춤추고 지식인들 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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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9
@연태고량주
더욱이 여기는 전향한 도교출신 도사들하고 무속인들 덕분에 한층 더 해괴해졌음. "우리 목사님 기운이 더 강해요"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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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9
@문틈
할레루야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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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9
영화 Idiocracy가 생각나네요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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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9
이쯤에서 유교적 자산의 효용을 알게되었다...
지성인들을 숭상하는거
아무리 유교 욕해도 순기능이 있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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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Quintillion
사실 굉장히 효율적인 시스템인데
벼락 양반들이 많아지면서 개같은거 많이 생긴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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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간다
ㅋㅋ 벼락 양반이아니라 전통적 양반가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는데 땅과 관직이 없어서 개같은게 생긴거지. 벼락양반가는 대부분 하급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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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도 학문의 장이 아니라 지방으로 갈 수록 직업학교가 되어버린것 같더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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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0
한국의 기업 1세들도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직감만으로 모든 걸 얻어냈는데

한국 사회는 저거랑은 많이 다르게 돌아갔네 ㄷ..

한국 사회의 전후 학구열의 기반이 뭘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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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こいか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말이 뜻하는 바가 달라요.

미국은 전통도, 문화도, 예술도 없는 상태에서 정말 드넓은 서부의 나무들 베어가며 만들어진 나라라
고작 수십년에 불과한 일시적 파괴만을 겪은 한반도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조선도 일제도 강력한 관료제 국가였고 지식과 엘리트들을 존중하는 문화가 강했죠.
즉 벼락부자한 이들이라도 고래부터 내려운 그 어떤 가치라는 것을 무시할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반도는 미국이라는 개척지보다는 전후 구유럽에 가깝죠.

또 한국의 학구열이라는 것도 한국의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에 대한 대우, 출판시장의 상황 등을 보면
결국 호프스태터가 지적하듯이 미래의 출세와 부를 위한 학구열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죠.
호프스태터가 한국의 대학입시를 보며 지성에 대한 열의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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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0
교육에 대한 천시를 당시 사회상에 맞춰서 이해를 해야하는 건지, 그냥 미개한 등신 집단들이 그 당시에 와글와글 개소리를 뱉은건지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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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0
처음에 개척시대 교회가 어쩌고 하길래 뭔 개독이야 했더니 그게 아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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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0
@adadadad
2단원까지 보다 말았는데 지식인=엘리트로 취급되서 반감을 샀다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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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adadadad
누가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는가? 의 문제죠.
당시에 대토지 소유주들, 상업가들 같은 상위계급은 교육을 잘 받을 수 있었고 사회의 엘리트계층을 형성했죠.

그런데 미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며 대중들의 힘이 커지자
이들 귀족적 엘리트세력은 민중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엘리트들이 보유한 지식, 지성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적대적이게 되었다는 것이 호프스태터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자연에서 터득하는 민중들의 지혜를 대학에서 배운 학식보다 더 뛰어난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죠.
그 대표적인 예가 '존 퀸시 애덤스 vs 앤드루 잭슨'의 사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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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연태고량주
엘리트와 지식을 동일시 했다는 소리구만 그래서 엘리트에 대한 반감이 지식에 대한 반감이 됐다는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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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adadadad
그렇죠. 혹은 일부 정치인들이 민중을 충동질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지식인들을 공격할 때
그러한 수사들을 이용하고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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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0
영화 평론가들을 과하게 배척하는 지금의 행태에도 반지성주의가 한몫하는데.. 그래서 너무 슬프다.
사람들이 많이 보고 생각없이 웃기고 슬프며 자극적인 영화가 우수한 영화라 주장하는 작자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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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마광수육노예
라스트 제다이를 진지하게 갓작이라고 지들끼리 떠들어대는게 영화평론이라면 그냥 나는 반지성주의자 할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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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CO2생성기
휴 영화평론가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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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2
@마광수육노예
지금 평론가들이야말로 반지성주의 선동으로 일구어낸 무주공산에 무혈입성한 반지성 선동가들인데 뭔 개소리를 하는거냐?ㅋㅋㅋㅋ
허구한날 하는게 기성과학이니 기득권이니하면서 반과학주의 생태주의 지랄하면서 논리와 이성을 적대시하고 감정적인 무논리로 선동해서 먹고사는 놈들이 반지성주의의 피해자란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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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2
@클럼프
"엔지니어가 뭘 알아요?!!!" 이지랄 떠는 놈을 지식인이라고 부르고 있는 사회에서 지식인을 불신하는건 반"반지성주의"주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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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샤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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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우리나라는 망했어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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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믿고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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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2
@박정달
믿고 지르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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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잘읽었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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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1
[삭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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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1
@삭제할아이디
홍위병처럼 못살고 못배운 평등이라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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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태고량주 넘모 맛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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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2
깔끔하게 잘썼네
재밌었다ㅊ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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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3
좋은 글과 책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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