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한 노인의 최후변론

1940년 6월 13일 나치 독일군에 의해 파리가 함락된 후 6월 20일 프랑스의 라디오에서는 다음과 같은 목소리가 전국으로 송출되었다.

 

"J’ai été avec vous dans les jours glorieux. Je reste avec vous dans les jours sombres."

"영광스러운 날들에도 저는 여러분과 함께 했습니다. 어두운 날들에도 저는 여전히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페탱 선전.PNG

 

 

1945년 7월 23일, 재판장은 피고인석에 선 89살의 노인에게 변론을 하라고 지시했다.

노인이 입을 열자 5년 전 프랑스인들을 안심시켰던 목소리, 그 라디오의 목소리와 똑같은 음성이 고등법원의 재판정에 울려퍼졌다.

 

 

"1940년 7월 10일 의회에 모인 의원들을 통해 나에게 권한을 위임한 것은 프랑스인들이었습니다. 내가 해명을 하기 위해 온 것은 그들을 위함입니다.

현재 구성된 고등법원은 프랑스인들을 대표하지 않으며 그것은 오로지 프랑스의 원수이자 국가의 수장인 본인에게만 속한 것입니다.

나는 다른 어떤 해명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겠습니다.

내 변호사들은 오로지 나를 더럽히길 원하는 비난이나 중상을 말할 때에만 답변하도록 지시를 받았습니다.

 

나는 내 삶을 프랑스에게 헌신하며 보냈습니다. 오늘날 90에 가까운 나이에 감옥에 던져져서도 나는 계속해서 국가에게 헌신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프랑스는 기억합니다! 나는 조국의 군대를 이끌고 1918년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휴식을 취할 자격이 충분함에도 나는 국가를 위해 몸 바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 나이와 피로에 관계없이 국가의 모든 부름에 언제나 응했습니다.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날이 다시 한 번 나를 향해 다가올 때에도 말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제가 오기를 간청했고, 나는 왔습니다.

나는 이렇게 내가 만들지 않은 재앙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진짜 책임 있는 이들은 내 뒤로 몸을 피해 민중들의 분노를 피했습니다.

 

나는 군 지휘관들의 동의를 얻어 휴전을 요구함으로써 구원에 필요한 일들을 완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휴전은 프랑스를 구했고 자유로운 지중해와 온전한 상태의 제국(식민지)을 보존함으로써 연합국의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내게 위임된 권한들은 교황청부터 소련까지 전 세계의 국가들에 의해 적법하게 인정받은 것입니다.

이 권한으로 나는 프랑스인들을 보호하는 방패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프랑스인들을 위해 나는 내 명성을 희생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나는 점령 하에서 국가의 수장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통치를 하는 어려움을 당신들은 이해할 수 있습니까?

하루하루 비수가 내 목에 드리워진 채로 나는 적의 요구에 맞서 싸웠습니다.

 

역사는 내 정적들이 불가피한 일로 나를 비난하는 데만 몰두하는 것을 보며 내가 (전시의 역할을) 피했어야 한다고 항상 말할 것입니다.

점령은 내게 적들을 조심스레 대하도록 할 책임을 지웠지만 나는 그것만 준비한 것이 아니라 국토가 해방될 때까지 우리 스스로를 준비시켰습니다.

점령은 또한 내가 내 의사와 마음에 반하는 말을 하도록 강제하고 특정한 법들을 집행하게 했고 그로 인해 나는 당신들보다 더 큰 고통을 견뎌야 했지만

나는 적의 요구 앞에서 조국의 생존에 필요한 그 어떤 것들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4년 동안의 활동으로 나는 프랑스를 유지해왔습니다.

나는 프랑스인들에게 삶과 빵을 보장해줬으며 우리의 수감자들에게 국가의 지원을 보장해주었습니다.

나를 비난하고 심판하기를 주장하는 이들은 내가 없었다면 어찌되었을지 그들의 양심에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드골 장군이 국외에서 싸움을 계속하는 동안 나는 해방의 길을 준비했으며 프랑스를 고통스럽지만 살아있는 상태로 보호했습니다.

진실로 묻거니와 폐허와 묘지들을 해방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의 땅을 침범해 들어온 적의 존재로 인해 우리의 자유는 손상 받았고 부흥을 위한 우리의 의지는 가로막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로운 제도들을 실행해 나갔습니다. 내가 받은 권한을 통해 헌법을 소개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공표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막대한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정권도 나보다 더 가족들을 축성하고 계급간의 갈등을 막고 공장과 농장의 노동환경을 보장하도록 노력하지 못했습니다.

해방된 프랑스는 단어들과 말들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건될 프랑스는 내가 쌓은 기반 위에서만 유효하게 건설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당파적인 증오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연속성을 알아보는 것은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입니다. 그것을 막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내 역할에 있어 나는 오직 프랑스인들의 통합과 재건만을 생각했습니다.

나는 독일인들이 내가 자신들에게 맞서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자신들의 노력을 망쳤다는 이유로 비난하며 나를 잡아간 날에 대해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내가 권력을 잃은 이래 일부는 잊어버린 듯 하지만 나는 수많은 프랑스인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며 말하고 쓰거나 행했던 것들,

곧 내가 그들의 신뢰를 받았고 그들의 충성을 간직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쪽 저쪽으로 흔들리는 것은 내 국민들에게 해당되지 않으며 전세계의 다른 모든 이들을 위해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위해서

나는 극단적인 폭정들에 직면했던 프랑스적, 기독교적 문명의 전통을 대표합니다.

 

나를 심판함에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희망과 믿음에 따라 당신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또한 당신들은 프랑스가 예전처럼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자리를 되찾기 위해

길을 찾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필요한 순간에 프랑스 내의 불화를 악화시키고 연장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내 삶은 그리 대단치 않은 것입니다. 나는 프랑스를 내 국민들에게 주었습니다. 이 최고의 순간에 내 희생은 더 이상 의심 받아서는 안됩니다.

 

만약 당신들이 나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야 하겠다면 그 선고가 마지막이 되게 하고

다른 어떤 프랑스인들도 적법한 지도자의 명령에 따랐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나는 세상을 마주하고 당신들에게 말하거니와 당신들은 정의의 이름을 말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무고한 이를, 모든 책임을 지고 있던 이를 비난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프랑스의 원수는 그 누구에게도 자비를 구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의 심판은 신과 후손들에 의하여 답해질 것입니다. 나의 양심과 기억에 그것이면 족합니다.

나는 프랑스에게 나를 맡깁니다."

 

페탱.PNG


앙리 필리프 페탱은 1차 세계대전에서 베르됭 전투를 승리로 이끈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이었으며

프랑스군 원수에까지 오른, 군인으로서는 비할 바 없는 영예를 안은 인물이었다.

1940년 이미 여든 중반의 고령으로 군직에서 은퇴한 그는 스페인대사로써 마드리드에 주재 중이었는데

2차 세계대전 발발 후 프랑스가 속절없이 무너지자

프랑스 정부와 의회의 요청으로 귀국하여 전권을 위임받고 독일과 휴전에 나섰다.

 

이후 나치독일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은 프랑스 남부지역에서 비시를 임시수도로 하는 정부를 수립해

프랑스 제3공화국의 문을 닫고 새로이 탄생한 '프랑스국가(l'État Français)'의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의 4년간의 통치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결과적으로 그의 행정부가 독일에 대해 협력적이었던 것임은 결코 부정될 수 없다.

그의 치하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체포되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독일의 수용소를 끌려갔고 목숨을 잃었다.

더욱이 이러한 일들은 나치 독일의 강제 때문이 아니라 비시 프랑스의 자발적 협력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또한 패전의 책임이 프랑스를 내부로부터 곪게 한 나약한 지식인들과 무너진 도덕성, 좌파들의 득세(?)에 있다고 보았고

이를 '민족혁명'이라는 캐치프라이즈 하에서 극복해나가고자 했다.

1940년 이후 프랑스의 공화주의적 전통과는 다른 보수적, 우파적 개념들, 곧 가족, 농촌공동체, 교회 등이 강조되었으며 민주주의적 제도들은 억압되었다.

프랑스 각지에서 페탱은 그 민족혁명을 이끄는 프랑스의 구원자(이자 독재자)로 숭상받았다.

페탱의 흉상들이 각지에 전시되었고 그를 찬양하는 선전노래들이 비시 프랑스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후변론에서 그가 이야기한 '방패로써의 페탱'이라는 개념은

당대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폭넓게 수용되는 것이었으며 심지어 레지스탕스들조차 이 점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것이 허울뿐인, 모순에 가득찬 것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실제로 페탱은 나치 독일의 단순한 협력자는 아니었으며 히틀러와 수시로 마찰을 빚었다.

1942년 11월 연합군의 횃불작전 당시 비시 프랑스의 소극적 대응으로 북아프리카 일대가 연합군에게 장악당하자

분노한 히틀러는 비시 프랑스의 자치지역을 무력점령하고 1944년에는 페탱을 독일로 끌고가 버린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독일에 잡혀있던 페탱은 스위스로 망명하여 프랑스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자발적으로 귀국해 재판을 받았으며 재판 첫날 최후변론을 마친 뒤 판결이 나오기까지 일절 자신에 대한 변호에 나서지 않았다.

페탱의 최후변론은 오만과 궤변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당대의 분명한 현실 역시 보여주고 있는데

오늘날까지 그는 역사적 평가에 있어 끝없는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프랑스 고등법원은 페탱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페탱 재판.jpg

프랑스군의 원수복을 입고 재판을 받는 페탱

 

 

 

이후 페탱은 과거의 부관이었던 샤를 드 골의 배려에 의해 종신형으로 감면되어 일드외섬 유형에 처해졌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놀랍게도 샤를 드 골은 물론 사회당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도 페탱의 묘에 헌화한 사실이 있다.

특히 1992년 11월 미테랑의 페탱 헌화는 프랑스 내의 엄청난 갈등을 불러일으켰지만 그것은 또다른 이야기...

 

 

 

 

http://www.dogdrip.net/105335602 - 한국사 전문가로 도금된 인강강사

http://www.dogdrip.net/105755067 - 간도영유권, 대한민국판 제국주의

http://www.dogdrip.net/119427956 - 다이쇼 데모크라시, 대일본제국의 봄 - 1 

http://www.dogdrip.net/120026247 - 다이쇼 데모크라시, 대일본제국의 봄 - 2

http://www.dogdrip.net/120486460 - 뮤지컬을 통해 본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두 시선

 

 

11개의 댓글

2017.09.03
페텡이 ㄹㅇ 평가가 갈릴수밬에없구나
0
2017.09.04
아슬아슬 줄타기로구만
0
2017.09.04
꿀잼글 추천머겅
0
2017.09.04
앨리비탈 예애미
0
테에에... ㅂㅁ으로 견제하는테츙
0
2017.09.04
@세레브민주공원
츤데레 챰피인데수웅
0
2017.09.04
덩케르크 철수 부터
노르망디 상륙 전 까지

유럽은 나찌판이 었다고 하던데...
0
2017.09.04
@뒷짐진강아지
나치판 맞음. 근데 비시 프랑스는 여러모로 특이한게
대외적으로 중립을 천명하고 있었고 미국이랑도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음.
자체적인 군사력도 가지고 있었고 식민지들도 여전히 관할하고 있었고.
무우우우울론 그 중립이라는게 허울뿐이었다는거는
1942년 11월 이후에 나치 독일이 비시 프랑스를 무력점령하면서 만천하에 드러나지만.
+ 본문에서도 말한 유대인 수용소 문제
0
2017.09.04
@Jean Moulin
흠...
0
2017.09.05
프랑스 내부의 평가는 어떨지 또 궁금하넹...
0
2017.09.11
프랑스 자체적으로는 어느정도 취급일지 진짜 궁금하다
박정희정도 느낌이려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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