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괴담

Reddit - 에밀리의 소원 2

씻고 나서 소피아의 남은 옷으로 갈아입자 얼굴에 들러붙어있던 사악함도 씻겨나간 듯했다. 그녀는 내가 어릴 때 봤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당장이라도 손을 잡고 놀이터로 달려가야 할 것만 같았다. 나무로 지은 요새에서 얼음땡을 하며 아무것도 아닌 걸로 배가 아플 때까지 웃고는 했지.


낡은 옷을 부엌 바닥에 놓인 바구니에 넣고 보니 문득 그것들이 옛날의 유물임을 깨달았다. 


논다고 교복이 적어도 30년은 더 빨리 헤지게 만들었지, 어렸을 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에밀리는 아침식사용 식탁 옆의 스툴에 앉아 다리를 달랑거리며 숟가락으로 젤리를 한 가득 퍼 입에 넣고 있었다. 


"로럴"


그녀가 숟가락을 핥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막 말을 하려 할 때 복도의 오래된 시계가 큰 종소리로 1시를 알렸다. 에밀리는 사라졌다. 숟가락이 의자에 떨어져 쩅그랑하고 울렸다. 


에밀리를 찾으려고 집안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학교로 돌아가 운동장을 살피며 이름을 불러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피곤하고 혼란스러운 데다 감정적으로도 지쳐있어 결국은 집으로 돌아갔다 


이건 내가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에밀리를 잠깐 만나고 난 뒤 의혹은 더 커져만 갔다.


다음날 학교에서 다시 그녀를 기다렸다. 12시의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그녀는 그곳에 '있었다.' 여전히 소피아의 옷을 입은 채였고 입술엔 보라색 젤리 자국이 남아있었다.


"에밀리, 어디로 갔던 거니?"
"아무데도. 난 네 집에 있었다가 다시 여기로 온 거야."


다른 아이들이 교실에서 막 나오고 있었다. 난 그녀의 끈적한 손을 잡고 뒷문으로 향했다.


"에밀리, 내 질문에 대답 좀 해줄 수 있어?"
"아마도."

"마지막으로 밤이 되는 걸 본 게 언젠지 기억하니?"


그녀는 송충이 눈썹을 찡그러뜨리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엄청 오래 됐어. 내가 너랑 놀기도 전이야."

"그럼 계속 점심시간에만 있었던 거야?"

"응, 항상 노는 시간이었지. 그게 내가 빌었던 소원이니까."

"어떻게... 어떻게 소원을 빈 거야?"


그녀는 내 차에 기대 옷 끝단을 배배 꼬았다.


"그걸 만들었어. 어... 그거 말이야. 물건들을 넣고 땅에다 파묻는 거. 선생님은 편지를 써서 넣으라고 그랬지. 사람들이 100년이 지나서 팠을 때 우리에 대해 알도록."

"타입캡슐 말이야?"

"그래, 그거야."

"하지만 넌 편지를 안 썼지. 그렇지?"
"응. 난 소원을 적어넣었으니까. 그날도 생일이었지만 아빠엄마한테서 생일선물을 받은 적이 없었거든. 그래서 소원을 빌었어."


그녀는 눈썹을 한데 모은 채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더 이상 투명한 유령도, 허구의 존재도 아니었다. 그녀도, 그녀의 고통도 모두 진짜였다.


"로럴? 난 더 이상 노는 시간을 바라지 않아."


타임 캡슐이 묻힌 정확한 장소를 찾는 건 어려웠다. 30년대의 기록은 대충 적혀있었기에. 하지만 결국 내가 다녔던 대학의 도서관 자료실에서 정보를 찾아냈다.


내 딸, 클레어는 처음엔 내가 미쳤다고 생각해 돕지 않으려 했지만 에밀리를 데려가 보여주자 울더니 우리를 돕기로 마음 먹었다.


보름달이 뜬 날 밤, 우리는 소피아와 삽 세 자루를 차에 싣고 학교로 갔다.


내겐 제법 고된 일이었다. 아무래도 삽이랑은 잘 맞지 않나보다. 2피트(60cm)도 채 파기 전에 등이 아파왔으니. 


하지만 클레어와 소피아의 노력으로 새벽 3시가 됐을 때 쯤 우린 타임캡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타임캡슐은 피치와 밀랍으로 봉인된 녹슨 철제 관이었다. (피치: 역청질이나 수지질의 성질을 띠는 인공 혼합물)


"열까요?"


소피아가 물었다. 아직 외발로 뛰어다닐 수 있을 만큼 생기 넘치는 그녀는 잠 잘 시간을 훨씬 넘어 하는 큰 모험에 한껏 흥분해있었다.


"아니"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에밀리를 기다려야 할 것 같구나."


관을 고대의 아기라도 감싸는 양 담요로 둘둘 만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구멍을 메꾼 뒤 모든 걸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주 복잡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삼대가 모두 한낮에 서서 우리 모두와 함께, 똑같은 놀이터에서 놀았던 영원한 아이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에밀리는 눈물을 흘리며 소피아를 끌어안고 사과했다. 아이가 쓸 수 있는 한 가장 나은 말로 사람들을 해칠 생각은 없어다고 해명했다.


그저 다른 모두가 그녀를 두고 자라서 떠나버리는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화나 뒤틀려버렸다는 것이었다. 


"이제 열어도 될까?" 내가 물었다.


에밀리는 잠시 주저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은 먼 옛날 땅속에 파묻힌 뒤로는 다시 보지 못했던 물건에 꽂혀 있었다.


나는 담벼락 그늘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클레어가 피치와 밀랍을 벗녀갤 동안 관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있었다.


덜그럭거리는 뚜껑을 열자 녹이 주황색 눈싸라기 마냥 쏟아졌다. 내부 역시 밀랍으로 칠해져있었고 수백통의, 끈으로 매듭지은 작은 두루마리로 채워져있었다.


에밀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것을 즉시 찾아냈다. 매듭을 두고 통통한 손가락을 주먹 쥔 그녀는 선물을 건네듯 내게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로럴?"
"나도 몰라."


낡은 매듭을 풀고 조심스럽게 네모난 종이를 펼지자 80년 전에 쓴, 번진 글씨가 보였다.


'언제나 노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 에밀리 스미스 서명.'


"내 생각엔... 내 생각엔 태워버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에밀리가 말했다. 작은 눈썹은 다시 주름져있었고 코는 이미 관에서 떨어진 녹먼지로 얼룩져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아이들이 점심을 쌌던 봉투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었다.


클레어가 급하게 들고 온 자동차 라이터는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난 떨리는 손으로 노랗고 낡은 종이를 들어 불이 붙을 때까지 지졌다.


편지는 끝부분부터 타들어가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은 에밀리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건 알아챌 수 없을만큼 천천히 시작됐다.


에밀리의 얼굴은 날씬하고 고와졌고 머리칼은 옷깃 아래로 굽이지고 꼬불대며 자랐다. 옷깃은 갑자기 답답해졌고 신발 역시 너무 작아진 탓에 그녀는 고통에 소리질렀다.


그러더니 그녀는 신발을 급작스레 사춘기를 맞이한 여윈 팔로 찢어버렸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춘기의 여드름은 피었다 사라졌고 몸은 성년 여성처럼 곡선을 그리며 자라났다. 


난 넋을 잃고 그녀의 검은 머리칼이 관자놀이부터 희끗하게 변해가더니 겨울이 오듯 회색으로 변해갔다.


포동포동했던 뺨은 쭈그러들고 주름져버렸다.


"안 돼!" 


그녀가 검버섯이 핀 손을 보며 소리 질렀다. 손가락이 나이 때문에 후들거렸다.


"안 돼."


그녀가 중얼거렸다. 척추는 굽어들고 짜부라졌으며 놀이터 잔디 위로 쭈끄러들었다. 이제 피부는 얄팍한 젖은 종이처럼 변해있었고


툭 튀어나온 노쇠한 뼈마디는 육안으로도 완전히 볼 수 있었다. 


흐리멍텅한 녹색눈이 날 잠시 쳐다봤다. 백내장으로 흐릿한 눈이 잠시 반짝이다 감겼다.


에밀리 스미스의 심장은 멎었다. 그녀의 몸이 나이게 걸맞게 급작스레 변하면서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에밀리의 영원한 놀이시간은 마침내 끝을 맞이했다,


우리는 그녀의 가족을 찾지 못했지만 그녀가 받아 마땅한 장례식을 치러줬다. 꽃과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 찬.


아직도 궁금한 건 내가 그녀가 죽지 않도록 할 수도 있었냐는 것이다.


만일 내가 80년대에 딸에게 놀이터에서 놀던 친구의 이름을 물었더라면 에밀리는 함께 늙으며 내 옆에 앉아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잘못된 짓을 한 건 아닐까. 만일 내가 에밀리가 그 놀이터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더라면 그녀는 계속 되는 점심시간에서 영원토록 존재했을 것이다.


그녀는 소피아의 아이들, 아이들의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한번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에밀리는 죽었고, 난 내 후회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겠지.


그저 그녀의 영혼이 마침내 안식을 얻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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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s://www.reddit.com/r/nosleep/comments/6iva7t/emilys_wish/


얼음땡의 원문은 Ball-tag. 읽어보니 공 들고 하는 얼음땡이랑 비슷한 것 같아서 그냥 저렇게 적음. 



 

4개의 댓글

2017.06.25
잘보고 가용
0
2017.06.25
ㅠㅠ
0
2017.06.26
염원이 얼마나 강하길래 그게 묶이냐 ㅁㅊ
0
2017.06.30
퍄 영원히 어린 히토미 켠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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