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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칭'의 사전적 정의

:이름직업나이주소 따위를 거짓으로 속여 이름.








먼저 오늘 만날 주인공들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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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차례로 이강석, 프란체스카 여사, 이승만 대통령, 이기붕, 박마리아, 이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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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1957년. 당시 한국의 사회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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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미스코리아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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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휴전협정 폐기를 주장하며 북진통일을 주장하시는 이승만 머통령 (전쟁한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당시 이승만의 막무가내식 땡깡에 미국 외교가들도 상당히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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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를 심는 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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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주는 무언가를 받으려고 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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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3월 26일 

이승만의 83세 생일에 맞추어 양자로 입적된 이강석


이강석은 원래 이기붕의 아들이었다. 


맨 오른쪽은 이기붕의 처 박마리아 여사



이렇게 비극이 시작되는데




먼저 시대적 배경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시대적 배경


1. 정부 차원에서 대통령을 우상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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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에 그려진 이승만

제1공화국 당시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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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동상을 철거하는 4.19 당시 민중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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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해와 달 (정부 차원에서 출간한 도서는 아니다. 다만, 민간에서 이런 책들이 수도 없이 출간되었다.)

해와 달은 각각 이승만과 이기붕을 상징한다


당시 학교에서는 이승만의 생일을 기념하는 교내 글짓기 대회가 열릴 정도






2. 오직 초대 대통령(=이승만)"만" 마음만 먹으면 평생 대통령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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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은 들어봤을법한 '사사오입 개헌'

국회 헌법 개정 정족수가 1명 모자란 135명으로 나왔는데


서울대 수학교수를 동원하여 반올림을 주장하였고

개헌안이 통과된다


개헌안의 내용은

'오직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서만 중임 제한을 철폐한다는 것'




3. 대통령의 생일은 탄신일이었고,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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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를 통해 임시 공휴일로 선포되었음을 알리는 경향신문의 기사



4. 대통령을 가리는 '인의 장막'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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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 당시 이미 칠순을 넘긴 상태였다

일본의 미국 침략을 예언(?)한 그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외교적 측면에서 긍정적 요소가 되던 '일부' 능력들조차 나이가 들며 껍데기가 되고

권력욕에 찌든 팔십넘은 노인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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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운영에서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진 노쇠한 이승만의 눈과 귀를 막고


갑질과 부패의 대명사로 불린 집단


자유당(自由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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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했던 정치깡패 이정재


당시 자유당의 악행을 거론하자면 나열할수도 없을 만큼 많은데


좌우이념을 배제하고서라도 자유당의 행태는 정치집단이 아닌 정치깡패 수준이었다



자유당의 악행이 너무나도 심했던지, 당시에는 힘 센 아이가 애를 때려놓고는 "왜 때리냐?"고 물으면 "난 자유당이다!"라고 하곤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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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오른팔 "이기붕"


해방 후 이승만의 비서로 활동하며 자유당 창당에 힘을 보탰고

세력 확장을 통해 자유당의 2인자로 부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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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대통령의 집무공간이던 '경무대'

그의 집은 서대문 경무대로 불렸다.



이기붕과 그의 처 박마리아 사이에는 자식이 여럿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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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처에게서 나은 자식이 죽어 후계가 없던 이승만은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을 양자로 입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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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처 '박마리아'


이화여대 교수였던 박마리아는 자신의 제자들을 불러 모아

주한 미국 대사 앞에서 팝송을 부르게 했다.



남편 이기붕을 부추겨 반대파 숙청에 가담하고



군부 내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리를 주선해주었다고도 한다



대한부인회 위원직에도 오르는데



훗날 박마리아가 소속된 대한부인회라는 단체는 



3.15 부정선거에 가담하는 등 정치에 깊이 관여했다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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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붕 일가의 가족 사진

맨 왼쪽이 이강석



권력 서열 1순위는 그의 양아버지


권력 서열 2순위는 그의 친아버지


오스트리아 출신 영부인은 그의 양어머니


대한부인회 소속의 박마리아는 그의 친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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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은 서울대 법대를 부정편입하여 들어갔고 항의하는 동맹휴학 사태가 벌어졌다.


동맹휴학에 참여한 서울대생은 1200여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기세등등하였는가


이런 사회적, 정치적 배경을 뒤에 두고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지는데



"가짜 이강석 사건"이라 불린다.








#가짜 이강석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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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의 평범한 시골 백수였다


그는 주위 지인들로부터 이강석을 닮았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고.



어쩌다 엉뚱한 생각을 품게 된 강성병

이강석을 사칭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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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태풍으로 물난리가 난 경주 시내의 경찰서를 찾아가



"아버지의 밀명으로 풍수해 피해 상황과 공무원들의 기강을 알아보려 왔다."



경찰서장이 버선발로 뛰어나가 극진히 대접해줬다 한다.



권력의 맛을 안 강성병

같은 수법을 여러 차례 써 본다


"수재민에게 쌀을 나눠 줘야 하니 돈 좀 달라." 



무려 47만 환(당시 화폐 단위)을 벌었는데



놀라운 것은



당시 공무원 월급이 수천 환에 불과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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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


경북 영천에서 이강석을 사칭



뇌물을 주기 위해 공무원들이 줄을 서고

식사까지 대접하며 극진히 환대했다 한다




9월 1일

경북 안동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지역 유지들에게 돈도 받고







9월 2일

대구, 봉화 일대로 이동하며 경북도지사 이근직까지 만나고

사칭임을 알아챈 이근직이 강성병을 체포하여 사태는 일단락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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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언론은 이를 두고

"너무나도 뼈저린 사회 풍자의 단적 표현"이라고 평하였다.




체포되기 직전 강성병은 크게 소리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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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놈이 비밀로 온 것을 알렸느냐! 목을 베어 낼 놈들!"


결국 정체가 밝혀지게 되었고


[귀하신 몸]에 쇠고랑을 차게 되었다.


[귀하신 몸]이라는 표현은 이때 처음 유행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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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신 몸'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이 날은 제1차 공판일이었다


이때 모여든 방청객은 1천명을 넘어섰다.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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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법 최상택 판사는 '귀하신 몸'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하였다





하지만 이때 법정에서 내 놓은 발언들 하나하나가 압권이었는데



"돈만 있으면 언제라도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것이 오늘의 세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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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시국적 악질범이라면 나에게 아첨한 서장, 군수 등은 시국적 간신도배"



"언젠가 서울에서 이강석이 헌병의 뺨을 치고 행패를 부리는 데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을 보고 한번 흉내내 본 것이며, 권력이 그렇게 좋은 것인줄 비로소 알았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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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였으면 60만 달러의 연기상을 받았을텐데. 나는 연기상 대신 벌을 받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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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겨우 버티며 힘겹게 살아가던 당시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는 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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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방청객들 사이에서는 박수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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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시사를 풍자하던 만화 - 동아일보의 '고바우영감'






#트리비아

한편, '진짜 이강석' 일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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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부정선거와 4.19 이후

시위대에 신변의 위협을 받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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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붕 집 앞에 모인 시민들





이강석이 나서 가족들에게 총을 쏜 뒤

 자살로 끝을 맺어



온가족이 피로 얼룩진 채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가짜 이강석' 또한 3년 뒤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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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repeats itself.



이기붕 일가가 어느 정도의 권세를 누렸는지 짐작 할만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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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서


10년이면 정치 권력도 뒤집어지고 여당, 야당 이름도 바뀐다 하는데


권력자와 그 부역자들의 행태는 아직 바뀌지 않았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http://www.hankookilbo.com/v/6db31ce3ee4e4fb79c759d86b810fe91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7021700329201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7-02-17&officeId=00032&pageNo=1&printNo=3523&publishType=00020 

https://www.youtube.com/watch?v=1UFoLOGJq_0   

http://blog.naver.com/alsn76/220283280842

http://biz.heraldcorp.com/photo/ptview.php?ud=279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