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미지와의 조우 - 19세기 프랑스인의 눈으로 본 조선

"......필자는 오늘날에 흔치 않은 귀한 행운을 누려 이제껏 그 누구도 탐사한 적이 없는 조선의 해안으로 들어가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그 때의 원정기간 동안 내가 보고 체험한 바를 여기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앙리 쥐베르, 한국으로의 원정(Une expédition en Corée, 1866) 中에서, (1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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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프랑스 해군 소위 후보생 (훗날 퇴역 후 수채화가로 전직) 장 앙리 쥐베르는 우연한 기회에 극동 세계로의 원정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 시기 이미 일본이나 중국은 서양과 많은 면에서 교류를 지속하고 있었지만, 쇄국을 고수하던 조선은 그들에게 있어서 미지의 나라일 수 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 이 미지의 국가와의 교류는 매우 신선한 체험이었고, 거기서 겪었던 경험담을 추려 프랑스의 여행기 전문 잡지 "세계 여행(Le Tour du monde: Nouveau journal des voyages)" 에 여행기를 기고한다. 



1873년에는 연재분을 책으로 엮어 발표했다. 그 책이 바로 "한국으로의 원정 (1873)" 이다.







그가 참가한 원정은 황명에 의한 것이었고(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3세가 다스리는 제정), 당연한 얘기겠지만, 많은 예산이 드는 일인만큼 큰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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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박해로 인해 살해 당한 프랑스인, 도리(Dore)신부>
표면적으로, 원정대는 같은 카톨릭계 국가로서 조선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항의를 위해 조직된 것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를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해 조선으로부터 외교적 협상 (개방)을 얻어내려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다. 쥐베르는 해군의 일원으로서 원정에 참여했고, 원정 기간 동안 단순한 잡역을 하기보다는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자료 수집과 풍광을 그려 보관하는데 힘 썼다. 때문에 그가 남긴 이 기록은 당시 조선인의 생활상을 잘 묘사하고 있으며, 19세기 조선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 중 하나이다.



그런 그가 남긴 기록들 중 흥미로운 부분들을 한번 살펴보자. 




서문: "조선은 전략적인 측면에서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놓여 있고 또 기후가 쾌적한데도 유럽 국가들의 탐욕을 피해 안전하게 남아 있으며, 그들의 정치 수단에서 벗어나 있다. 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중국과 일본에 눈길을 보냈을 때도 한반도는 그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1866년 양력 9월, 기함 프리모게, 통보함 1척, 포함 1척으로 구성된 원정대가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베트남에서 출발했다. 9월 18일 산둥반도를 거쳐 약 1주 간 서해 바다를 탐색한 뒤,  그들은 강화도 지나 한강을 통해 북상한다.  

사실 서해바다는 항해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바다이다. 서해바다는 조류간만이 심한 편으로, 이미 몇 편의 서양배가 길을 잃거나 난파된 적이 있는 바다였다. 그러나 이들 원정대가 비교적 쉽게 서해바다에서 한강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원정대에 길잡이 역 조선인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로부터 프랑스인 신부를 따라 도망친 천주교 신자들이었다.

"조선의 수도는 한강 입구에서 내륙으로 100리 안쪽의 강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중략) 물이 아주 짭짤해서 현지인들이 염하(소금강)라고 이름을 제대로 잘 붙였는데,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른다."


한양에 도착해 그들은 조선의 민간인 및 관리들과 접촉한다. 그들은 무력 충돌을 원치 않았고, 따라서 "학문 목적으로 월식 관측을 위해 여기까지 왔다, 조선을 구경하러 왔다" 라고 둘러댄다. 조선인들은 그들이 가진 신문물에 호기심을 느껴 접촉해 왔다. 그는 조선인의 첫인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 와중에 그는 기계에 관심을 두어 기계를 돌리려면 남자가 몇 명이나 필요한지 물어왔다. 우리는 그를 이해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 쏟았지만, 압축된 수증기는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그것이 사람의 팔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이해시킬 수는 없었다."

"다음 날부터 매일 조선인들이 찾아왔다. (중략) 그들의 행동거지는 일본인들의 품위나 세련된 예의와 거리가 멀고 중국인들의 아첨과도 달랐다. 그들은 조심성 없으며 아주 불결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들은 가르강튀아(소설 주인공, 거인왕 가르강튀아)에게나 어울릴만한 거대한 부채라든가 황소 등을 우리에게 선물하는 선량한 마음을 지녔다. 우리는 그것의 대가로 돈을 지불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조선의 아녀자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조선의 여성들은 현명하여 스스로 발을 손상시키는 일(전족)은 하지 않으며 머리 모양에서는 독창적인 아름다움이 엿보인다. (중략) 조선의 여성은 중국 여성보다 훨씬 행복한 생활을 영위한다. 어느 정도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데, 혹자는 조선의 여성들이 너무 쉽게 그 자유를 남용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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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한 백성들이 지방관리에 대해 가지는 불만, 혹은 조선의 지방관 시스템에 대해 들었던 모양이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관직은 세습되지 않기 때문에 귀족(양반)이라도 일종의 약탈로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구조."
"백성은 그들의 약탈에 대해서 지극히 관대한 모양이다"

또한 당시 조선의 정치 상황에 대해 시파와 벽파 간 당쟁을 프랑스의 자유주의파와 보수주의파에 비유하며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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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선 조정은 끝끝내 원정대와의 공식적인 접촉을 거부했고, 원정대는 회항할 수 밖에 없었다. 즈푸 항으로 돌아온 프랑스 해군은 곧바로 새로이 4척의 군함을 더 소집해서, 군사 훈련을 진행한 뒤 10월 11일 다시 한번 조선으로 향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프랑스 해군의 강화도 점령, 즉 병인양요이다.


병인양요

병인양요(丙寅洋擾[1] )는 1866년(고종 3년)에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병인박해)을 구실로 삼아 외교적 보호(diplomatic protection)를 명분으로 하여 프랑스가 일으킨 제국주의적인 전쟁이다.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 7척이 강화도를 점령하고 프랑스 신부를 살해한 자에 대한 처벌과 통상조약 체결을 요구했다. 조선군이 완강히 저항하자 프랑스 해군은 40여 일 만에 물러났다. 

( 위키피디아-링크-의 설명)


사실 1차 방문 시점에서 조선은 이 원정대가 군대임을 알아챘으며, 고종은 급히 내탕금을 풀어 해군을 재정비하도록 명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군대는 프랑스 해군의 상대가 되지 못 하였다. 단 7척의 군함과 1500명 규모의 군대에 의해 강화도성은 점령되었고 강화 유수는 달아나고 말았다.
주민들은 이 소식에 피난길에 올랐고, 텅 비어버린 민가에 도착한 쥐베르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고, 때문에 다음과 같은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우리가 차지하고 들어간 집들은 처음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더러웠다. (중략) 기생충들을 단번에 몰아낼 방도는 없었다. 이 난공불락의 해충들은 놈들의 합법적인 집주인들을 대신해서 우리에게 복수해 왔다."

"아궁이에서 나오는 연기와 뜨거운 증기는 수직으로 세워진 굴뚝을 통해 곧장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방바닥 밑에 수평으로 놓인 고래를 통해 방 전체를 돌아 지나서 가옥의 반대편 쪽에 야트막이 세운 굴뚝으로 나가게 돼 있다. (중략) 우리는 이 난방 시설을 무척이나 고맙게 사용했다."

아예 민가에 들어가 잠도 자고 온돌도 사용해 보았던 모양이다.

"대부분의 동양인들이 그렇듯이 조선인들도 물을 넣어 익힌 쌀을 주식으로 삼기에 이 싱거운 밥맛을 돋우기 위해 발효된 반찬과 자극적인 양념이 필요하다. 그래서 조선인들은 고추를 많이 소비한다."

"조선인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문자를 가지고 있다. 완벽하게 자모를 갖추고 있는 이 기호체계의 언어는 극동의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언어이다."

"극동의 모든 국가들에서 우리가 경탄하지 않을 수 없고 동시에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집 안에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냥 솜씨가 능란한 조선의 사냥꾼들은 조악한 무기를 가지고서도 저러한 맹수들과 어렵지 않게 싸워내니, 이 맹수들의 피륙은 조선의 주요 수출 품목이 되고 있다." 




병인양요의 결과는 아마도 여러분이 익히 알고 있는대로, 10월 3일 정족산성에서 당한 게릴라 기습으로  프랑스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퇴각했다. 
조선군의 상실이 더 컸지만, 어쨌든 조선이 프랑스 해군에 승리(?) 한 셈.

어째서 충분한 전력을 온존하고 있음에도 강화도에서 퇴각했는가, 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있는데...
함대를 이끌던 로즈제독은 강화도를 완전 점거하기 위해서는 산성에서 농성하는 조선군을 격파할 필요가 있지만, 포병대의 도움 없이
해병대의 전력만으로 성벽을 넘어 진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설령 더욱 깊숙히 전진하여도 조선에게 협상의 의지가 없으며 
개항을 얻어낼 수 없으리라 보고 자진 퇴각했다고 보는 해석이 유력하다.




이에 대해 쥐베르는 "원정은 완전한 실패"라고 자평했다.

"우리는 조선 원정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조금도 얻지 못했다. 한편, 우리 함대의 퇴각과 동시에 조선에서는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배가 되었고, 조선 정부는 유럽 국가의 침입을 비롯한 타협 일체를 격퇴하고 규탄한다는 선언문을 내렸다. 보시다시피 우리는 조선에 체류하는 동안 그곳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유럽의 국가들이 처음 접촉하는 이국의 국민들에게 폭력을 드러내고 횡포한 요구를 주장하는 일이 너무 빈번하다. 일단 그 나라가 아직 전신기를 갖지 못했고 또 그들 문명의 본원이 우리의 그것과 다르면, 우리는 그들이 입는 폐해를 감안하지도 않고 주민들의 모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마치 우리에게 허락된 줄로 생각한다."

"더군다나 교의란 본질적으로 속칭 '무력'이라고 명명되는 이 슬프고도 의심스러운 설복 수단의 힘을 빌려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쥐베르는 이렇듯 자신들이 자행한 제국주의적 무력 시위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며 조선에 좀 더 온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으로 그는 책을 끝맺는 말로서, 강화에서 있었던 시간을 "전쟁" 이 아닌, excursion, 즉 일종의 여행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오래도록 즐겁게 기억하리, 강화 섬에서의 이 소풍을. 
Je me souviendrai longtemps, avec plaisir, de ces excursions dans l'île de Kang-hoa. 


같은 사건을 두고도, 19세기 조선과 프랑스의 인식 차이는 그 정도나 큰 것이었으리라.













출처
[블로그 포스팅] 미지와의 조우, 조선원정기 - http://blindbard.egloos.com/808074
[E-text] Une Expédition en Corée (1866), http://anthony.sogang.ac.kr/ZuberText.html

12개의 댓글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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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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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3
캬 양놈 필력봐... 즐겁게 기억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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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3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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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3
재밌다 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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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4
쥐베르 견습사관 이름 오랜만에 듣는다. 10년 전쯤 갑자기 등장해서 수많은 아류작들을 탄생시킨 한제국건국사라는 타임슬립물 소설이 있었는데 병신 국뽕 민족주의에 물든 아류작들이랑 달리 이건 괜찮았음.

여기서 프랑스쪽 등장인물로 쥐베르 견습사관이 등장하는데 당연히 창작인물이겠거니 하고 대충 보다가 나중에 고등학교 역사부도에서 쥐베르가 그렸다는 삽화 보고 잠깐 놀랬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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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4
그냥 퍼온게 아니라 네가 글을 새로이 정리 한 거였네?

잘 봤어. 쥐베르의 따뜻하고 유쾌하면서도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이 인상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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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개항했으면 어떻게 됐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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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눈내리던그날
[삭제 되었습니다]
2016.05.26
@데빌즈어드보캣
ㅋㅋㅋㅋㅋㅋ ㅇ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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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4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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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하다 정찰 하나도 안하고 산업시대가서 딴나라 발견한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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