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선시대 사관들의 집념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시대 사관들의 집념이라고 하면 역시 가장 유명한 일화는

말에서 떨어진 왕이 창피했는지 사관이 모르게 하라고 지시했으나 그 명령 자체를 기록한 일일 것이다.




1.PNG




그러나 이 일은 어디까지나 조선초인 태종 대의 일이었고 이후 수백년이 지나며 왕권의 강화를 통해 사관들이 이전처럼 마음대로 행동할 수는 없게 된다.

당장 그 사관이라는 놈이 기록에 왕실을 엿먹이는 헛소리와 카더라통신을 당당하게 싸질렀다가 걸려서 피바다가 일기도 했다. (연산군; 무오사화)

그 결과 조선후기가 되면 왕이 적지 말라고 하면 사관이 적지 않는 일도 벌어진다.




3.PNG



영조가 즉위한 해에 이천해라는 인간이 무슨 일인가로 끌려와 조사를 받았는데

영조가 이천해가 한 말이 흉악하니 적지 말라고 하자 승정원일기를 관리하던 사관 역시 차마 쓸 수 없다고 맞장구를 치고 있다. 

도대체 이천해 이 인간은 뭔 소리를 씨부린 것이었을까?




2.PNG



사건의 시작은 영조 1년 1월 16일인데 역시나 이 기록에도 '해괴한 소리'라고 되어 있지 무슨 내용의 말을 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이후 관련된 모든 기사에도 이천해의 발언은 '흉언', 즉 흉악한 말이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후일 영조실록을 공식적으로 편찬하면서 사관은 영조 1년 1월 17일 기사에 몇 구절을 더 추가해 넣었다.




4.PNG



이천해의 흉언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그 뿌리를 언급한 사관의 글이다.


"그 흉언은 대개 무신년 역적의 격문과 신치운의 흉언이 같다고 한다."


무신년 역적은 영조 4년 이인좌의 반란을 일컬음이고 신치운은 영조 31년 처형당한 인물이다.

사관이 던져준 실마리를 따라 영조 4년과 영조 31년으로 가보자.



7.PNG


영조 4년 이인좌의 난 당시 흉한 격문들이 길 위에 나돌았는데 그들이 '납일초주 사왕숙대' 등의 말을 함부로 썼다고 한다.

'납일초주'는 왕망이 한나라(전한) 평제를 암살하고 신나라를 세운 것을 의미하는 고사성어이고

'사왕숙대'는 주나라 애왕의 동생인 숙이 형 애왕을 죽이고 사왕으로 즉위한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황제를 살해하고 황제가 된 왕망, 형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사왕. 그리고 반란군은 이 내용을 곳곳에 뿌리고 다녔다.

슬슬 흉언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9.PNG


심유현은 이인좌의 난 때 반란군 측의 인물이다. 과거 이천해의 '흉언'이라는 것이  김일경과 심유현으로부터 나왔음을 기록하고 있다.





5.PNG



영조 31년 5월 2일에는 과거시험장이 발칵 뒤집힌다.

심정연 같은 이는 실명으로 누구는 익명으로 여러명이 '난언패설'과 '흉언'을 적어낸 것이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이 기사에서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영조가 눈물을 흘리고 신하들이 분노할 정도였다.

연루자들이 줄줄히 붙잡혀 오는 와중에 그 중 한 명인 신치운도  끌려온다.



6.PNG



영조 31년 5월 20일 여기서 드디어 흉언의 실체가 드러난다.


"신은 갑진년부터 게장을 먹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신의 역심이며, 심정연의 흉서 역시 신이 한 것입니다."


신치운은 영조의 형인 경종이 죽을 무렵, 영조가 바친 게장을 먹고 경종이 죽었다는 소문을 정면으로 깐 것이다.

즉, 영조가 형 경종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했다는 말이며

이것이 바로 무신년 이인좌의 반란군이 뿌린 격문의 내용이고 또한 영조가 즉위하던 해 터진 이천해의 '흉언'이었다.


"영조 너 이 새끼 형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역적이 아니냐!"

이게 바로 수많은 이들이 30년 내내 한 '흉언'이었다.


흥미롭게도 유일하게 이 게장과 관련된 발언은 흉언처리 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8.PNG



결국 영조는 이천해가 씨부린 말을 적지 못하도록 사관에게 강요했고 당시에는 사관도 적지 못했다.

이천해 뿐만 아니라 이인좌의 난 때도 반란군이 퍼뜨린 흉언들은 실록에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사관은 반란군의 격서 내용 중 일부인 '납일초주 사왕숙대'를 언급했고

30년 뒤 신치운의 사건을 기록하며 신치운이 씨부린 말이 무신년 반란군이 씨부린 말과 일맥상통하며

그것이 이천해의 흉언에서 이어져오고 있음을 기록했다.


그 결과 우리는 영조가 즉위 첫해부터 형 경종을 암살했다는 소리를 면전에서 듣고 ㅂㄷㅂㄷ 했음을 알 수 있다.





10.PNG





 


극딜.gif


ㄷㅂㄷ

16개의 댓글

2018.07.03
대놓고 적을수는 없으니까 레퍼런스의 레퍼런스 신공을 썼다는거?
0
2018.07.03
@옥국자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0
2018.07.03
@Basileus
영조도 광해군 못지않게 자리가 불안정하긴 했나봄
(어머니 무수리출신 후궁)

재위 31년차에도 저새끼 형 죽이고 왕된놈이라고 할정도면

이거 우리나라식으로 말하자면 대통령 당선 3년차에도 저새끼 부정선거로 당선된놈소리듣는것보다 더한건가?
0
2018.07.03
@옥국자자
왕조국가에서는 더한거긴하죠. 당장 이인좌의 반군만 수만 명이 넘는 규모였으니...
다만 영조가 잘 대처해서 이인좌의 난 이후에는 자리가 불안정하다고 할 정도는 아님.
0
대박

윾개에도 ㄱㄱ 좀
0
@맛스타딜도한남재기
Btw 게장 안먹는게 이리 무서운 일입니다 여러분
0
2018.07.03
그놈이 저한테 욕설을 했는데 여기 직접 적기는 그렇고 되게 펄프픽션스러웠다는 정도만 알아두세요
0
2018.07.03
메모장.txt (69.74mb)
0
2018.07.03
근데 진짜 게장+감 조합 먹으면 쥭음?
0
2018.07.03
@레이놀즈수
한의학에서 둘의 조합이 극성이라고 함
0
@레이놀즈수
죽지는 않는데 설사 존나 함
근데 옛날 같은 경우 몸이 안좋은 상태에서 설사 존나 하면
약도 없을 때니 탈수로 뒤질듯
0
2018.07.04
@도덕적 쾌락주의
왕도 별수 없구먼 ㅋㅋㅋ
0
2018.07.04
@레이놀즈수
설사를 유발한다 카더라 라는 썰이 있던데
0
2018.07.05
@레이놀즈수
장어랑 복숭아도 상극이라던데
0
2018.07.04
역사 재밌당...이런 거 자주 올려줭
0
2018.07.05
왕한테 목숨걸고 입터는거 보면 대단하긴 함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1214 [역사] 이순신장군님이 노량해전에서 전사 할 수 밖에 없던 이유. 10 dkqndk 2 1 일 전
1213 [역사] 인류의 기원 (3) 식별불해 2 1 일 전
1212 [역사] 지도로 보는 정사 삼국지 ver2 19 FishAndMaps 14 7 일 전
1211 [역사] 군사첩보 실패의 교과서-욤 키푸르(完) 1 綠象 1 8 일 전
1210 [역사] 아편 전쟁 실제 후기의 후기 3 carrera 13 11 일 전
1209 [역사] 왜 사형수의 인권을 보장해야만 하는가 72 골방철학가 62 22 일 전
1208 [역사] 세계역사상 환경적으로 제일 해를 끼친 전쟁행위 17 세기노비추적꾼 13 26 일 전
1207 [역사] 송파장과 가락시장 5 Alcaraz 9 28 일 전
1206 [역사] 미국인의 시적인 중지 4 K1A1 17 2024.03.26
1205 [역사] 역사학자: 드래곤볼은 일본 제국주의사관 만화 17 세기노비추적꾼 13 2024.03.23
1204 [역사] 애니메이션 지도로 보는 고려거란전쟁 6 FishAndMaps 6 2024.03.13
1203 [역사] [English] 지도로 보는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 3 FishAndMaps 4 2024.03.08
1202 [역사] 지도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2년 동안의 기록 9 FishAndMaps 12 2024.03.06
1201 [역사] [2차 고당전쟁] 9. 연개소문 최대의 승첩 (完) 3 bebackin 5 2024.03.01
1200 [역사] [2차 고당전쟁] 8. 태산봉선(泰山封禪) 3 bebackin 4 2024.02.29
1199 [역사]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이야기 3 에벰베 6 2024.02.28
1198 [역사] [2차 고당전쟁] 7. 선택과 집중 bebackin 4 2024.02.28
1197 [역사] [2차 고당전쟁] 6. 고구려의 ‘이일대로’ 2 bebackin 4 2024.02.27
1196 [역사] [2차 고당전쟁] 5. 예고된 변곡점 1 bebackin 3 2024.02.26
1195 [역사] [2차 고당전쟁] 4. 침공군의 진격 1 bebackin 3 2024.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