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펌]1593년 1월 11일 기준, 조선군 총 가용 병력 합계

111.jpg

선조 실록 34권, 선조 26년 1월 11일 병인 15번째 기사를 기반으로 확인한 자료입니다. 다만 확정적인 것은 아니고 지속적으로 손실을 입고 보충을 하는 상황인데다가 유기적으로 병력들이 나뉘어서 기동을 하는 것을 감안해야합니다.


경기도 서부

전라도 절도사 최원의 휘하 병력 4,000명 

경기도 순찰사 권징의 휘하 병력 400명 

창의사 김천일 휘하 병력 3,000명 

의병장 우성전의 병력 2,000명

수원에 주차한 전라도 순찰사 권율의 병력 4,000명


경기도 동부 

양주에 주둔한 방어사 고언백의 병력 2,000명 

양근군에 주둔한 의병장 이일(李軼)의 병력 600명

여주에 주둔한 경기 순찰사 성영의 병력 3,000명 

안성군에 주둔한 조방장 홍계남의 병력 300명 


경기도 주둔군 도합 19,300명


충청도

직산현 주둔 본도 절도사 이옥의 병력 2,800명 

평택현 소속 각 급 지휘관 및 수령들이 약 3,000여 명의 병력 소집

충청도 각지의 의병군 5,000명


충청도 주둔군 도합 10,800명


경상좌도 

안동부에 주차한 본도 순찰사 한효순의 병력 10,000명

울산군에 주차한 본도 절도사 박진의 병력 25,000명

창녕현에 주차한 의병장 성안의의 병력 1,000명

영산현에 주차한 의병장 신갑의 병력 1,000명


경상우도 

진주에 주둔한 본도 순찰사 김성일의 병력 15,000여 명 

창원부에 주둔한 본도 절도사 김시민의 병력 15,000여 명 

합천군에 주둔한 의병장 정인홍의 병력 3,000여 명

의령현에 주둔한 의병장 곽재우의 군사 2,000여 명 

거창현에 주둔한 의병장 김면의 군사 5,000여 명


경상도 주둔군 도합 77,000명


전라도 

본도 좌수사 이순신의 수군 5,000명

우수사 이억기의 수군 10,000명 

전라도 방어군 10,000명


전라도 주둔군 도합 25,000명


함경도 

함흥부 주둔 본도 절도사 성윤문의 병력 5,000명 

경성부에 주둔한 평사 정문부의 병력 5,000명 

안변부에 주둔한 별장 김우고의 병력 100명

조방장 김신원의 병력 100명


함경도 주둔군 도합 10,200명


강원도 

인제현에 주둔한 본도 순찰사 강신의 병력 2,000명


강원도 주둔군 2,000명


평안도 

순안현 주둔 본도 절도사 이일의 병력 4,400명 

법흥사에 주둔한 본도 좌방어사 정희운의 병력 2,000명

의병장 이주의 병력 300명

소모관 조호익의 군사 300명

용강현에 주차한 우방어사 김응서의 병력 7,000명

조방장 이사명 휘하 병력 1,000명

대동강 하류 주둔 수군장 김억추의 수군 300명


평안도 주둔군 도합 15,300명


황해도 

황주 주둔한 본도 좌방어사 이시언의 병력 1,800명 

재령군 주둔 우방어사 김경로 휘하 병력 3,000명

연안부 주둔 본도 순찰사 이정암의 병력 4,000명


황해도 주둔군 도합 8,800명


전국의 조선군의 총 병력 수는 단순 수치상으로 172,400명이 됩니다. 여기에는 경상 우수사 원균의 부대가 빠졌고 기타 부대들도 빠진 것이 있으니 편제상 더 많은 병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예상외로 경상도의 병력이 최다치입니다. 77,000명의 병력을 소집했고 특히 박진이 지휘하는 25,000명의 대규모 병력이 울산에 주둔하면서 일본군에게 끊임없이 압박을 주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593년 1월이면 당시 전세가 평양이 그래도 일본군의 수중에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병력 주둔 현황을 보면 주요 대도시나 거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에 조선군이 쫙 깔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조선이 이 대규모 병력을 한꺼번에 집중시킬 여력은 없었지만 지속적으로 일본군의 후방을 공격하고 보급로를 압박하며, 특히 거점 중에 거점인 경상도 일대에 77,000명의 대군을 투입한 것은 일본군에게 있어서 최악의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바다에서는 조선 수군이 제해권을 장악했고 육지에서도 정신차리고 싸우러나온 조선 육군의 대규모 부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아 여담이지만 1592년 10월에 벌어진 진주성 전투에서 김시민이 전사한 것이 1593년 1월 11일 장계에는 누락이 된 것 같습니다. 전투들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이로 인한 정보 문제가 여기서 보여지는 듯 한데 이러한 점은 참고해야할 것 같네요.


대체 이런 대규모 군대를 어떻게...


출처

선조 실록 34권, 선조 26년 1월 11일 병인 15번째 기사




펌 : https://blog.naver.com/kkumi17cs1013/221149776668




23개의 댓글

2018.01.28
경상도가 출혈이 젤 컸을텐데 병력이 제일 많네 조선시대때 인구 개많았나보다
0
@반팔맨
피해가 가장커서 진짜 다 포기하고 사람들이 화가나서 너도나도 싸우려 했을듯
0
2018.01.30
@반팔맨
그럴걸

조선시대에도 경상도 인구가

총 인구의 60%였을거임

서울경기도가 커진게 일제시대부터일걸
0
2018.01.28
일본은 그 배였거든요...
총 동원병력 47만...
0
2018.01.28
@dasbootz
그래도 조선군이 놀고만 있진 않았던 터라, 1593년에는 조선으로 건너온 왜군 병력중 절반 이상을 잃음
0
2018.01.28
@무다구치렌야
돌아갈때도 꽤 잘라먹지 않아?
0
2018.01.28
@셜록 호모즈
전쟁 막판에 왜군을 몰살시키기 위해 사로병진 작전이 발동됐는데, 왜군에게 어느 정도 피해는 입히긴 했지만 조명연합군 손발이 안 맞거나, 명군 지휘관이 뇌물에 매수되는 바람에 줄줄이 실패해 버렸어. 작전의 규모나 성격을 봤을 때, 성공했다면 조선판 바그라티온 작전이 됐겠지만...

노량해전 때는 왜군 병력을 15,000명 정도로 추산할 수 있는데, 최소 절반 이상을 격파한 걸로 암.
0
2018.01.28
병력은 저렇게 있는데 지휘관이 서울에 있었거든
0
@순수여섯글자
ㅇㄱㄹㅇ
0
@보글보글햄스터
은 서울이 아닌 선조옆이징...
서울먹혔자너
0
2018.01.30
@순수여섯글자
재밌는 이야길 하자면 선조가 얼마나 쪼잔했냐면
조선은 왕이 항양을 떠날때 신하들이 왕한테 건강하라는 의미로 인사를 해야하는데
그 당시 도망갈때도 인사를 받았다고함 ㅋㅋㅋㅋㅋㅋ
게다가 인사 안한 놈은 따로 적어뒀다가 나중에
"너 나 피난갈때 인사안했더라?"
이러면서 갈굼 ㅋㅋㅋㅋㅋㅋ

또 허준 드라마 보면 허준은 남아서 동의보감 지필했다 되있는데
개소리임 선조 옆에서 선조보살핌 그거떄문에선조가 나중에 허준 좋게 봐줌
0
2018.01.28
ATCIS가 없어서 졌네ㅉ
0
2018.01.29
병농 일치니까 저당시 병력의 대부분은 농민이었을듯
0
2018.01.29
상륙조차 못했으면 피해도 없었을것을...
0
병력숫자 저러면 머해 농부들이 죽창들고있었을듯
0
@크리스티아누메시
ㄴㄴ 농기구 빠와가 무기못한다

낫으로 한번 조지면 꼼짝을 못해
0
2018.01.30
낫이 최강의 무기..
0
2018.01.30
참고로 말하자면
이당시 우리나라 군인들은 대부분 예비군 형태인 징집병이였음
양반은 징집 제외대상이였고 예외는 있겠지만. 대부분 농민이 였음

어떻게 초반에 털렸는데 저만한 병사가 남아있는지 설명하자면
처음 일본군이 처들어왔을때 조선 징집군의 집결 위치를 미리 다 알고있는 상태였음
징집하기전에 지역이 점령되거나 징집하는 장군 목만 날리고 바로 서울로 진격하는 형태였다.
그 당시 일본군은 '쇼군'즉 장군이나 왕 목만 날리면 나머지는 농민들이니 전투 의사가 없다 생각하고
서울로 가버린것이다.
(일본은 군인과 농민이 따로 분류해두었음)
그리고 서울로 짜잔! 갔더니 어라 왕이 없네?
그 사이 살아남은 징집담당 장군들이나 뜻이 있는 사람들이 징집병들을 정비하여 일본군과 전투를 하게되며
전술또한 직접적인 전투보다는 잘라먹기와 게릴라 수성이 이루어져서 승리를 하게 됨
그 당시 조선이 뭐 평화에 찌든건 있긴있었으나 우리나라 군사 제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며
일본 사무라이가 그당시 전투력이 엄청났다는걸 감안하면 조선군은 정말 잘싸웠다.
0
2018.02.06
@DAsTaLoTo
하긴 왜군의 패인에 진격속도를 못따라간 보급도 있으니까
0
2018.01.30
부산진전투 설명도 가능함?
0
2018.02.04
@은하철도의밤
당시 전투라는게 전쟁발발 - 소수상비군이 방어 - 병력집결- 전투 순서인데
부산진전투는 뭐 초장부터 그 소수수비군이 버티지도 못했고
이후 일본군 진격이 너무 빨라서 징집병력들이 제대로 모이기 전에 탈곡기당한거지 뭐...
용인전투보면 딱히 모였어도 잘 싸웠을 것 같지는 않지만 ㅋㅋ
0
2018.01.31
경상도 전역이 전쟁터였으니 경상도에서 걸을수잇는 남자는 전부싸웠겟지.

그리고 경상도 지역으로 병력투입 많이 했을거고. 아마 인구는 전라도가 더 많았을거야.

17만 대군! 하고 놀랄필요없는게. 정작 최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는 거의 없어 어찌됫건 보급부대전부다 구겨넣어서 머릿수 불리니까.

대부분이 의병인데 이 의병이 원래 국가통제하에 징집되어야하는데 독자교전하고 다닌다는거는 행정체제가 막장이라는 뜻이기도하고.
(행정이론은 좋은데 적용이안됬지 전쟁통에 난리도났고)

아마 실제의병은 훨신많앗을거야 의병을 정규군통합과정에서 돈이없으니 a급 제외하면 정식으로 편입안햇을거니까.
0
네다 찐따 대한민국역사의 수치 후기조선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1213 [역사] 인류의 기원 (3) 식별불해 4 2 일 전
1212 [역사] 지도로 보는 정사 삼국지 ver2 19 FishAndMaps 14 8 일 전
1211 [역사] 군사첩보 실패의 교과서-욤 키푸르(完) 1 綠象 1 9 일 전
1210 [역사] 아편 전쟁 실제 후기의 후기 3 carrera 13 12 일 전
1209 [역사] 왜 사형수의 인권을 보장해야만 하는가 72 골방철학가 62 23 일 전
1208 [역사] 세계역사상 환경적으로 제일 해를 끼친 전쟁행위 17 세기노비추적꾼 13 27 일 전
1207 [역사] 송파장과 가락시장 5 Alcaraz 9 29 일 전
1206 [역사] 미국인의 시적인 중지 4 K1A1 17 2024.03.26
1205 [역사] 역사학자: 드래곤볼은 일본 제국주의사관 만화 17 세기노비추적꾼 13 2024.03.23
1204 [역사] 애니메이션 지도로 보는 고려거란전쟁 6 FishAndMaps 6 2024.03.13
1203 [역사] [English] 지도로 보는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 3 FishAndMaps 4 2024.03.08
1202 [역사] 지도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2년 동안의 기록 9 FishAndMaps 12 2024.03.06
1201 [역사] [2차 고당전쟁] 9. 연개소문 최대의 승첩 (完) 3 bebackin 5 2024.03.01
1200 [역사] [2차 고당전쟁] 8. 태산봉선(泰山封禪) 3 bebackin 4 2024.02.29
1199 [역사]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이야기 3 에벰베 6 2024.02.28
1198 [역사] [2차 고당전쟁] 7. 선택과 집중 bebackin 4 2024.02.28
1197 [역사] [2차 고당전쟁] 6. 고구려의 ‘이일대로’ 2 bebackin 4 2024.02.27
1196 [역사] [2차 고당전쟁] 5. 예고된 변곡점 1 bebackin 3 2024.02.26
1195 [역사] [2차 고당전쟁] 4. 침공군의 진격 1 bebackin 3 2024.02.25
1194 [역사] [2차 고당전쟁] 3. 몽골리아의 각축 1 bebackin 5 2024.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