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14억의 1인자, 시진핑] (1) 1인자의 아버지

     시진핑(習近平)은 1953년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이름이 진핑(近平)이다. 진(近 가까울 근)은 근처라는 뜻이다. 핑(平 평평할 평)은 베이징의 옛이름 북평(北平)의 핑으로 베이징을 뜻한다. 그러니까 진핑은 베이징 근처에서 태어났다는 뜻이다. 시진핑의 남동생은 베이징 멀리서 태어났다. 그래서 시위안핑(習遠平)이다(遠 멀 원, 平 평평할 평). 자식 새끼들 이름을 이런 식으로 지어 놓다니, 아버지의 센스가 예사롭지 않다.

시중쉰.jpg

<시중쉰(習仲勛) 1913-2002>


1. 부전자전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勛)은 1913년에 태어났다. 중쉰이 자라나던 시기의 중국은 엉망진창이었다. 쑨원의 중화민국은 무능했다. 지방 각지에서 군벌이 일어났다. 군인들은 부녀자를 강간했다. 관리들은 뒷돈을 챙겼다. 어린 중쉰은 분노했다. 부패한 관료들과 잔인한 군벌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위기에 처한 민중과 조국을 구하겠다는 치기 어린 마음으로, 중쉰은 15세가 되던 해에 공산당에 입당한다.
     망국의 원흉인 군벌을 타도하기 위해 결성됐던 제1차 국공합작은 국민당의 배신으로 끝났다. 야밤에 포탄이 떨어지고 사방에서 총성이 울렸다. 장제스의 군대가 마오의 목을 향해 다가왔다. 혼비백산한 마오는 무리를 이끌고 달아났다. 12,000km의 거리를 걸어서 탈출한, 이른바 대장정이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마오가 마침내 안전한 서북구에 도착했을 때, 10만 명이 넘었던 그의 병력은 8,000명으로 줄어있었다. 370일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 지칠대로 지친 마오를 맞이한 것은, 시중쉰과 그의 리더십으로 견고하게 자리잡은 서북구 소비에트 정부, 그리고 잘 무장된 군대였다. 마오는 이를 바탕으로 재기에 성공한다. 당시 시중쉰의 나이는 23세였다.

대정정경로(조선일보).jpg
<마오의 대장정 경로; 국민당의 포위망을 피해 내륙 산간을 크게 돌아 서북구로 향한다. 이 기간 마오의 홍군은 산간 농촌을 지나며 가는 곳 마다 강연과 선전을 펼쳤다. 마오의 군대는 대장정 기간 동안 민중에게 매우 젠틀했다. 곡식을 약탈하지 않았고 돈을 뜯어내지도 않았다. 밤에 야영할 때 바닥에 깔고 잘 용으로 농가로부터 문짝을 빌렸다가 아침에 다시 원래대로 붙여주곤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때 얻은 민심이 공산당의 승리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2. 실용주의 DNA
     시중쉰은 온건한 실용주의자로, 맑스-레닌주의를 종교처럼 떠받드는 당대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는 사뭇 달랐다. 이것이 중쉰이 남다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다.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협상으로 지역 유력자들을 한 명 한 명 포섭한 시중쉰 개인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서북구 소비에트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때 시중쉰은 20대 초반이었다. 마오는 이런 시중쉰을 각별히 아꼈다. 남 띄워주는 일은 잘 못하는 마오가 시중쉰은 제갈량에 비유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불안했을 게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유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 자명하므로.

3. 베이징 근처에서
     장제스는 대패해 손바닥만한 섬으로 쫓겨났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시작됐다. 마오는 36세의 시중쉰에게 중앙선전부장이라는 파격적인 자리를 내어준다. 국내에서 보도되는 모든 기사, 출판되는 모든 서적, 거행되는 모든 문화행사에 대해 검열하고, 시정하고, 금지할 권한을 가진 막강한 자리다. 사실 여기에는 마오 나름의 계산이 깔려있는데, 마오는 유력한 경쟁자들을 베이징 중앙에 앉혀 딴 마음을 가지지 못하도록 통제하려 했다. 어쨌든 중쉰은 베이징에 자리를 잡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을 얻게 된다. 베이징 근방에서 태어나 이름은 진핑이라고 지었다.

삼부자.jpg
<베이징 시절의 시진핑 삼부자; 왼쪽부터 시진핑, 시위안핑(남동생), 시중쉰>

4. 토사구팽
     집권한 마오는 독재자가 으레 겪는 전형적인 권력 편집증에 시달렸다. 마오는 부패한 관료주의를 타파한다는 명분으로 (1)뇌물, (2)탈세, (3)국가재산절도, (4)부실공사, (5)국가정보갈취 이 5가지를 반대한다는 5반운동을 일으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국 각지에서 반당분자들이 색출되고 숙청됐다. 실제로 부패한 관료들이 처벌받기도 했지만, 마오와 노선을 달리하는 유력 지도자들이 체포되는 경우도 많았다. 마오의 경쟁자들은 하나 둘씩 제거됐다. 시중쉰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온건한 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웠던 그는 1962년에 친우파로 몰려 구속된 후 지방으로 좌천됐다. 좌천된 곳은 공교롭게도 그가 소비에트 정부를 이끌었던, 대장정 이후 마오를 맞이했던 바로 그 서북구 샨시성이다.

문혁.JPG
<문화대혁명 당시의 풍경; 10대 소녀 홍위병들이 재판대에서 반동 혐의자의 머리카락을 잘라내며 모욕을 주고 있다. 혐의자가 목에 걸고 있는 나무판은 그를 '흑방'이라고 칭하고 있다. 흑방은 검은 무리를 도와준 자라는 뜻으로, 문혁시기 공산당 정책에 반하는 무리를 싸잡아 비판하는 말로 쓰였다. 마오가 만들어 보급했다>

5. 고난의 시기
     대약진, 대실패 그리고 문혁, 중국은 대혼란의 시기로 접어든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 혼란을 일으킨 마오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은 막장으로 치달았다. 공산당 지도부는 이대로 가면 다같이 망한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더 이상 교조적인 공산주의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실용주의 노선이 대세가 된다. 덩샤오핑이 집권한다. 1978년 시중쉰은 다시 중앙으로 복권된다.
     대혼란의 시기, 아버지 시중쉰이 고초를 겪는 동안, 아들 시진핑 또한 아버지를 따라 빈대가 들끓는 농촌을 돌아다니며 비참한 시기를 견뎠다. 자신에게 부여된 고난을 감내했다. 언젠가 날아오를 때를 묵묵히 기다리며.

13개의 댓글

2017.12.22
짱꼴라새낔ㅋㅋㅋㅋ
0
2017.12.22
참 인간의 운명은 알수없지.. 시진핑이 짱개 원탑이 되다니 ㅋㅋㅋ
0
2017.12.25
@피빛여우
역사란게 참 재미있다. 대약진의 실패와 문화대혁명이라는 야만의 시기가 없었다면, 중국에서 공산주의를 향한 자성의 목소리도 없었을 것이고, 덩샤오핑의 집권과 개혁개방도 없었을 것이고, 시진핑이 집권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중국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큰 흐름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긍정적인 사건이든 부정적인 사건이든 결국 필수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닌지.
0
2017.12.23
[삭제 되었습니다]
2017.12.25
@ㅇㄱㄱㅈ
현대사도 역사다
0
2017.12.24
이거 그냥 짱깨 얘기라고 비추 받는거냐?
0
2017.12.25
@타다 리이나
중국하면 저급하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국내에 유입된 조선족들, 그리고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 때문인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육체노동하는 조선족들이나 돈이 없어 단체 패키지로 관광온 요우커들을 보고 중국 전체를 평가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아쉽다. 중국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 가는데 그런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변함없이 80년대에 멈춰 있는 것 같아 너무 아쉽다.
0
2017.12.26
@starrynight
어느나라건 문화건 인종이건 항상 소수의 좋은사람은 있음 선입견은 사람을 판단하는 능력이라고생각함

그대로 중국을 매우싫어하는 사람도 소수의 좋은 중국인을 만난다면 그사람을 중국인이란 큰틀이아닌 한사람으로 좋아할수있다고봄

중국이 2000년대 초반부터 큰성장을 해왔지만 만인이 보았을때 걸어온길보다 갈길이 더 있어보임
0
2017.12.25
어린시진핑이 부모 따라다녀야 하지 따로 선택권이 있는듯한 마지막표현들은 좀 다른 느낌임
그리고 고난을 감내한다는 현자같은 표현보다 겪는다가 맏는거 같은데??

시진핑도 부모대에 쌓아올려진 기반이 없었다면 중국 통먹기 힘들었지 않나??? 나머지 쟁쟁한 경쟁자들도 모두
부모나 가족을 기반으로 높은자리 올라간다는 것을 봤을때 공산당은 세로운 양반세력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거 같고...

그냥... 독재국가의 독재자중 한명일뿐인거 같은데...??
0
2017.12.25
@쉬어가는집
아버지가 공산당 원로였기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고난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당한 것이라는 것도 맞다. 다음 글에서 그 내용이 나온다. 감내한다는 표현이 그렇게 들릴 수도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0
2017.12.25
뭔가 매우 많은게 생략되어 있는 느낌인걸
0
2017.12.25
@고급노예
이야기를 풀어보는 중이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생략되어 아쉬운 것들이 다음 글들에서 해소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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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6
왤케 비추가 많은지 모르겠다야 재밌게 잘 썼는데
추천박고감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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