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충칭 대폭격과 살육을 수행한 일본군의 심리와 현실

시체사진 있음







1. 충칭 대폭격 - 가해자의 인식과 현실
다음은 충칭 대폭격을 수행한 일본군의 체험담이다. 

  「매우 좋은 폭격 날씨.
아침 바람에 비행장의 모든 것이 생생하게 반짝 빛나고 있다.
"이제부터 적군의 수도 충칭을 향해, 제????십????차의 폭격을 결행한다!"
출발 전의 훈시가 늘 그렇지만 내 마음을 다잡게 한다.
"출발!"
전우들은 제각기 애기(愛機)를 향해 뛰어갔다. 지상 정비사들의 힘으로 비행기는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고, 폭탄을 배부르게 실어 넣었다. 컨디션 좋은 엔진의 진동이 모두의 마음을 뒤흔든다.
대장기가 선두로 용감하게 폭음을 내며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부탁해"라고 하며 나도 힘차게 조종간을 잡았다. 그 순간 마음은 이미 하늘로 뛰어올라 있었다.
살포시 비행기는 지상에서 멀어져갔다.

또 흐리다. 구름 사이로 지상이 띄엄띄엄 보인다.
"슬슬 가까워지고 있어. 충칭의 하늘에 구름만 없으면 좋을 텐데." 
사수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응, 분명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자, 통신사의 얼굴이 얼며 긴장했다.무전이다.
'충칭의 하늘 한 점 구름도 없다.'
선발의 ㅇㅇ기로부터의 보고이다.
"자, 봐라!"라고 말하자, 다들
"만세!"
아이들같이 함성을 질렀다.
"충칭의 일당들은 날씨가 좋으면 낮에도 밤에도 폭격을 받으니까, 풀이 많이 죽은 모양이야. 그 대신 비 오는 날에는 일본기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기뻐한다고 하는군."
"자, 오늘은 그 비를 뿌려주겠어. 비는 비인데 폭탄 비를......"
"하하하"
이어 대장기로부터 무전이 들어왔다.
"지금 ㅇㅇ상공 통과."
보인다, 보여. 눈 아래 은색 띠와 같은 양쯔 강. 이것이 충칭의 이정표다.
"부탁한다!"
나는 들끓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비행기에 말을 걸었다.

양쯔 강의 지류는 두 개로 나뉘어져 있고, 가운데에 충칭 시내가 나무 잎사귀와 같은 모양으로 보인다. 자, 또 왔다, 충칭! 
여름이 시작할 무렵, 상록수의 색을 띠고 있는 시내가 폭탄으로 마른 잎사귀와 같이 하얗게, 지금은 참혹한 모습으로 변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괘씸하게 팡팡거리며 고각 폭탄을 쏘아 올린다.
"폭격!"
명령일하에 우리는 폭풍과 같이 그 머리 위를 습격해 덮쳐갔다.
하나, 셋, 넷, 폭탄은 끊어지지 않는 실처럼 떨어져간다. '팡'- 하얀 연기가 하늘 위로 퍼져 '공'- 이라는 소리가 울려왔다.」
저: 요시다 도시히로,  옮김: 안해룡, 김해경, 『공습 - 인류가 하늘을 날면서 공습은 시작되었다』, 휴머니스트, 2008, 176~177 쪽에서 재인용
(해당 군인의 이름과 그 군인이 쓴 수기 이름은 재인용한 책 참고)

이 군인은 충칭 대폭격을 수행했다. 대폭격을 준비하면서 " 컨디션 좋은 엔진"에 마음이 뒤흔들렸고 "조종간을 잡"으면서 "마음은" "하늘로 뛰어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같이 함성"을 지르면서 "만세!"를 외쳤다. 그러면서 "비를 뿌려주겠어. 비는 비인데 폭탄 비를......"이라며 농담을 하며 "하하하"웃음을 나누었다. 그리고 "들끓는 감정을 가라앉히"고는 "비행기에 말을 걸"어서   "부탁한다!"고 외쳤다고 한다. 그러고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도시에 폭탄을 쏟아부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괘씸하게 팡팡거리며 고각 폭탄을 쏘아 올린다"고 표현했다.

그럼 실제 폭격현장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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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ecns.cn/visual/hd/2015/07-18/71442.shtml#nextpage

타임의 기자 시어도어 화이트(Theodore White)는 당시 충칭 공습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그 목격내용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전력선이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시내 중심가를 관통하는 충칭의 급수시설도 마찬가지였다. 불길 외에는 어떤 빛도 없었고, 불길을 잠재울 물도 없었다. 불은 충칭 구시가를 오르내리며 확산되고 있었다. 불이 대나무를 태우면서 대나무 마디가 팡팡 튀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은 소음으로 꽉 차 있었다. 여자는 통곡하고, 남자는 고함치고, 아기는 울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땅바닥에 앉은 채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울부짖었다. 나는 뒷골목에서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언덕 작은 길에서 큰길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옷은 불길에 타올랐고, 이내 그 불을 끄기 위해 바닥을 뒹굴고 또 뒹굴었다.」
(김태우,『폭격 -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창비, 2013, 51쪽에서 재인용함)

2. 충칭대폭격 전개

1938년. 당시 충칭은 중국국민정부의 수도였다. 충칭 폭격은 그 수도인 충칭을 상대로 벌인 무차별 폭격을 말한다. 일본군은 충칭에 사는 사람들을 굴복시키려 했고 그러기 위해 민간인 지역까지 폭격하였다. 일본군의 목적은 단순히 지역 파괴가 아니라 공포에 따른 굴복이었다. 민간인들이 밀집한 지역에 폭탄뿐만 아니라 소이탄을 쏟아부었다. 소이탄은 거리를 모두 태워버렸고, 사람들을 태워죽여버렸다.(공습, 171쪽)

1938년 12월 25일. 충칭에 대한 첫 폭격을 앞 둔 날. 육군 제1 비행단장 데라구라 쇼죠 소장은 부하에게 명령했다.
"비행단은 주력으로 충칭 시가를 공격하고, 장제스 정권의 상하를 와해시킨다." (공습, 171쪽) 일본군은 충칭에 폭격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폭격은 주로 해군 항공대가 하였다. 출격을 반복한 건 96식 육상 공격기였다. 96식 육상 공격기는 항공 지속거리가 길고 폭탄 탑재량이 많았다. (공습, 171쪽)

1939년 5월 3일과 4일. 일본 항공기들은 250kg의 폭탄, 
0kg의 폭탄과 소이탄을 싣고 충칭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인구 약 70만명이 밀집한 시가지에 쏟아부어서 시가지를 완전히 태워버렸다. 이 이틀간 일본군의 폭격으로 3,991명이 죽었고, 2,287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런 무차별 폭격은 1943년 여름까지 계속됐다. (공습, 171-173쪽) 1940년에는 101호 작전을 벌였다. 101호 작전은 5월 18일에 시작해서 9월 4일까지 112일간 벌어졌고 횟수로는 72번이나 일어났다. 쓰촨성 두메 지역에대한 오랜기간동안 연속으로 벌인 폭격이다. 충칭의 시가지와 공장 지역에 대한 폭격은 5월 26일에서 8월 23일 사이에 이루어졌고 공격 일수는 32일이다. 일본군은 충칭 시가지를 A에서 H까지 8지구로 나누고 각 지역구를 순서대로 융단폭격을 했다. 미리 짜여진 계획에 따라 철저하게 벌인  무차별 폭격이다.(저:아라이 신이치, 옮김: 윤현명, 이승혁, 『폭격의 역사』, 어문학사, 2015, 84쪽) 

중국 측 기록에 따르면 1938년 10월부터 1943년 8월까지 약 5년동안 벌어진 무차별 폭격 기록과 결과는 이렇다. 공습 횟수는 218회, 습격한 비행기는 9,513대, 투하한 폭탄수는 2만 1,593발, 태워진 가옥은 1만 7,608채다. 사망자는 1만 1,889명. 부상자 1만 4,100명이다. (공습 171-173쪽) 또한 일본군은 충칭과 그 주변뿐만 아니라 쓰촨성 각지 같은 두메지역에서도 폭격을 하였다. 쓰촨성 각지같은 지역까지 합쳐서 일본에서는 "충칭 대폭격"이라고 한다. 이런 지역까지 합칠경우 사상자는 6만 1,390명으로 추정된다.(폭격의 역사, 84쪽)

일본군이 이러한 무차별 폭격을 벌인 이유는 중국국민정부와 사람들을 굴복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런 목적은 이루지 못 했다. 1941년 8월 30일 제3비행단장 엔도 사부로 소장은 정찰기에 타서 충칭 폭격이 어떻게 되나 두루 돌아보며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다음같은 결론을 냈다.
"종합적인 결론은 충칭은 아직 죽음의 마을이 아니며 중국처럼 문화가 낮은 민족을 폭격만으로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항공 격멸전을 위해 오지로의 진공은 필요하지만, 지상군의 공격을 동반하지 않는 요지 폭격은 전쟁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없다."
(폭격의 역사, 84-85쪽) 이 뒤에도 충칭 폭격은 멈추지 않았으나 두메 지역에 대한 공격은 3일 뒤 중지됐다. (폭격의 역사, 85쪽) 

일본군의 무차별 폭격에 중국사람들은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맞서싸울 의지는 무너지지 않았다. 굴복할 마음도 생겨나지 않았다.오히려 맞서 싸울 의지(항전력)는 오히려 더욱 강해졌다. 중국사람들이 공포 뒤 느꼈던 건 증오였다. (폭격의 역사, 89-90) 

충칭 폭격을 수행한 일본군 조종사들은 이런 현장과 사람들의 증오를 느끼지 못했다.

이런 일본군 조종사들을, 군사평론가 마에다 데쓰오는 이렇게 분석한다.
「폭음과 살짝 보이는 기체의 형태, 공기를 찢어 가르는 낙하음, 그리고 폭발, 아비규환. 육체가 마주하는 일도, 살의의 시선도 없는 일방적으로 기계화 된 살육의 세계였다. 사람들은 침략자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기회도 없이 죽어갔다.
하늘에 떠 있는 사람에게 더욱이 살인의 감각은 찾을 수 없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도, 도움을 청하는 소리도, 살이 타는 냄새도, 병사들에게 일절 전해지지 않았다. 지각이 극도로 결여된 전쟁, 행위와 그 결과에 있어 격심한 낙차를 가진 살육이 거기에 있었다.」
공(공습, 178~179쪽)


3. 참고문헌
저: 요시다 도시히로,  옮김: 안해룡, 김해경, 『공습 - 인류가 하늘을 날면서 공습은 시작되었다』, 휴머니스트, 2008
김태우,『폭격 -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창비, 2013
저:아라이 신이치, 옮김: 윤현명, 이승혁, 『폭격의 역사』, 어문학사, 2015

22개의 댓글

2017.07.26
유투브에서 아프간전 당시 아파치 헬기 조종사 영상 있는데 ㄹㅇ 살인에 무감각 해짐. 열영상으로 사람 터져나가고 다리 떨어져 나가는게 보이는데 그냥 "잡았다" 한마디로 끝나더라..
0
@dasbootz
후천적 싸이코패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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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김밥한줄두고갑니다
그냥 할일 한다는 느낌이 맞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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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dasbootz
무인기 조종사들은 겁나 심각하던데 후유증이 장난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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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6
아 그리고 시체사진 있으니 혐 붙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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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6
@dasbootz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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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6
미국이 일본 폭격한거랑 이거랑 생각해보면

전쟁 최대 피해자는 민간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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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짤 있는데 혐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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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세상은아름답잖아요
글 맨위에 "시체사진 있음"이라고 쓰고 엔터 18번 했는데요. (시체 사진 보기 싫으면 스크롤 내리지말고 뒤로 가기 눌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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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에서 내려다봐도 저정도인데 버튼전쟁까지 가면 그냥 게임하는 감각으로 사람죽이겠네. brave new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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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이 잔인한 광경에서 멀어질수록 전쟁은 더 잔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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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콜 오브 듀티 모던워페어가 생각나네

미션중에 건쉽 사수가 아군을 지원하는게 있는데 적은 그저 회색화면상의 점으로 보였지
0
2017.07.27
심지어 핵 떨군 폭격기 조종사도 '시발....'하면서 자아성찰하며 괴로워했다던데.

쨉스놈들은 지도부도 병사도 죄다 싸이코패스 병신새끼구만
0
2017.07.27
@인퀴지터
https://youtu.be/5rXPrfnU3G0

이라크전에서 미군 헬기사수 영상인데
얘네 말하는 것도 정상은 아님
걍 어딜가나 병신은 있다 라는게 맞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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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그리고 저런 짓을 중국 사방에서 반복한 업보를 미국에게서 받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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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르메이쉐프님...참교육 감사...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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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보통 폭격은 공장이나 군사시설을 폭격하는데
민가는 앵간하면 진짜 안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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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시신 사진을 보면 하의가 발가벗겨진게 많은데 이거 ㄹㅇ 충칭공습때 사진 맞아? 난징대학살때 사진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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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일심방역
충칭 폭격 사진 맞다
옷이 벗겨지는 이유는 폭발 폭풍에 옷이 찢겨나가기 때문임
폭탄테러현장 사진을 보면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옷이 벗겨져 있음

폭발중심압력(10만 psi)에 휘말리면 팔다리가 찢어져 날아가고 그보다 압력이 낮으면 옷이 찢어져 날아감


참고자료 : 트럭 타이어 터뜨리고 옷찢어지는 중국인 (트럭 타이어 압력은 100 psi 정도)
https://www.youtube.com/watch?v=a0e0oSUi4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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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저때 짱깨쉐리덜 다 뒤졌어야하는데 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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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8
@에메랄드소드
생각이 없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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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사진 아마 난징때일껄? 폭격으로 죽었는데 온전한 시체들이 많고 하의가 벗겨진게 많은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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