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SF 단편 - 그대 하늘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대 하늘을 맛보았기 때문에
      For I Have Touched the Sky




저자 - 마이크 레스닉



옛날 옛적에 사람에게도 날개가 달렸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케냐(Kenya) 산이라고 부르는 키리니야가(Kirinyaga) 산 꼭대기의 권좌에 홀로 앉아 계시는 느가이(Ngai)님께서 인간에게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선물을 주셨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일나무 맨 꼭대기에 열린 과즙이 풍부한 열매도 따먹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최초의 인간이었던 기쿠유(Gikuyu)의 외아들이 바람을 타고 높이 나는 독수리의 모습을 보았다. 기쿠유의 아들은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솟아 올라 독수리들과 함께 날았다. 그는 높이, 더 높이 둥근 원을 그리며 솟아 올라, 그 어떤 날개 달린 짐승들 보다 더 높은 곳까지 솟구쳐 올랐다.
그 때 갑자기 느가이님께서 손을 뻗어 기쿠유의 아들을 거머 잡으셨다.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이렇게 저를 붙잡으셨는지요?』
기쿠유의 아들이 물었다.
『내가 이 곳에 머무는 것은 키리니야가 산이 온 세상의 지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내 머리보다 높은 곳에 있을 수 없노라.』
느가이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러고는 기쿠유의 아들에게서 날개를 떼어내시고, 나머지 인간들에게서도 날개를 빼앗으셨다. 그래서 인간은 그 누구도 느가이님 보다 높은 곳에 오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새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기쿠유의 후손들이 박탈감과 부러움을 느끼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더 이상 나무가지 맨 꼭대기에 달린 과즙이 풍부한 열매를 먹지 않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느가이님이 사시는 거룩한 산의 이름, 키리니야가에는 여러 종류의 새들이 있다. 유토피아 평의회로부터 임차 면허를 받은 다음, 진정한 키쿠유(Kikuyu)족에게는 더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어진 케냐(Kenya)를 떠나 올 때,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함께 새들도 데려왔다. 이곳 신천지는 마리부새와 독수리, 타조와 수리매, 피리새와 왜가리, 그리고 그 밖의 여러 동물들의 고향이 되었다. 심지어 문두무구(mundumugu)--주술사(witch doctor)--인 나, 코리바(Koriba)조차 화려한 색깔의 온갖 새들과 그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노래소리에 기쁨과 위안을 얻곤 한다. 오후가 되면 나는 보마(boma)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늙은 아카시아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마을을 통해 흐르는 강가에 몰려와 목을 축이는 새들의 듣기 좋은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한다.
아직 할례식(割禮式)을 치룰 나이도 채 안된 어린 계집애인 카마리(Kamari)가, 손 안에 자그마한 회색 물체를 든 채, 내 보마와 마을 사이에 난 멀고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온 것은 바로 그렇게 평화롭게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있던 어느날 오후였다.
『잠보(jambo), 코리바.』
그 애가 나에게 인사했다.
『잠보, 카마리. 손 안에 든게 뭐지, 아가야?』
『이건요, 저희 가족의 샴바(Shamba)에서 발견한 거예요. 그런데 날지를 못해요.』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힘겹게 꿈틀거리는 난장이 송골매 새끼를 든 채 카마리가 대답했다.
『깃털은 다 돋은 것 같은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하지만 곧 송골매의 한 쪽 날개가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 이런! 날개가 부러졌구나.』
내가 말했다.
『새끼 송골매를 낫게 해 주실 수 있나요, 문두무구?』
카마리가 물었다.
그 애가 새끼 송골매의 머리쪽을 붙잡고 있는 동안, 나는 재빨리 날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할 수 있지.』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다시 날도록 해줄 수는 없단다. 부러진 날개야 곧 낫겠지만,
송골매의 몸무게를 버텨줄 만큼 예전처럼 강해지지는 않을게다. 그러니 그냥 이 녀석을 죽게 놔두는 편이 좋겠구나.』
『안돼요!』
송골매를 등 뒤로 숨기면서 카마리가 소리쳤다.
『이 새를 낫게만 해주시면, 제가 돌볼께요!』
나는 잠시 새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 녀석은 살고 싶지 않을게야.』
내가 대답했다.
『왜죠?』
『왜냐하면 이 새는 따뜻한 바람을 타고 높은 곳을 날아다녔기 때문이지.』
『이해가 안가요.』
얼굴을 찌푸리며 카마리가 말했다.
『일단 새가 창공을 나는데 맛을 들이게 되면, 다시는 땅에서 기어다녀야 하는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없게 되는 법이란다.』
내가 설명했다.
『제가 만족하게 만들께요.』
카마리가 굳게 다짐했다.
『고쳐만 주시면 제가 이 새끼를 돌볼께요. 그러면 아마 살 수 있을거예요.』
『내가 이 녀석의 날개를 고쳐주고, 네가 계속 보살펴 준다고 해도, 살지 못할게다.』
내가 말했다.
『얼마나 내야 하나요, 코리바?』
카마리가 갑자기 뻣뻣한 말투로 물었다.
『나는 애들한테서 대가를 받지 않아. 내일 네 아버지를 찾아가지. 그러면 그가 대가를 치룰테니까 말이다.』
카마리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 새끼 송골매는 바로 제꺼예요. 그러니까 제가 대가를 치루겠어요.』
『흠, 그래?』
나는 카마리의 용기에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어린애들은(그리고 어른들 모두가) 문두무구를 두려워 하는데다가, 드러내 놓고 반대를 하거나 대놓고 자기 뜻을 펴는 적이 절대로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한 달 동안 매일 아침과 오후 한 차례씩 내 보마를 청소하려무나. 그리고 침구를 정돈하고, 물통을 채우고, 불이 꺼지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그 정도면 공정하네요.』
카마리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다. 그리고 곧바로 덧붙여 얘기했다.
『한 달이 다 지나기도 전에 새가 죽으면 어쩌죠?』
『그러면 넌 문두무구가 키쿠유족 꼬마 계집애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안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
내가 대답했다.
카마리가 턱을 앙다물며 대답했다.
『죽지 않을거예요.』
그리고 잠시 가만히 있다가 다시 얘기했다.
『이제는 날개를 고쳐주실거죠?』
『그럼.』
『저도 도울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을 가둬둘 수 있도록 새장을 하나 만들어 오렴. 이 놈이 너무 빨리 날개를 쓰다가 다시 부러뜨리는 날에는 이 녀석을 정말로 죽여야할 테니까 말이다.』
카마리가 새를 나에게 건네 주었다.
『금방 돌아올께요.』
카마리는 말을 마치자마자 쏜살같이 자기네 샴바로 달려갔다.
나는 송골매 새끼를 움막으로 가져갔다. 기운이 너무 약해져서인지 새끼는 그다지 꿈틀대지도 못한 채, 부리를 손가락으로 꼭 잡고 있어도 가만히 있었다. 나는 새끼 송골매의 부러진 날개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편 다음 움직이지 못하도록 몸통에 고정시켰다. 부러진 뼈를 만지자 새끼 송골매는 고통스러운지 몸을 움츠렸지만, 어쩌지는 못하고 눈을 깜빡거리지도 않은 채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부러진 날개를 고치는 일은 끝이 났다.
한 시간 뒤 두 손에 나무로 만든 작은 새장을 들고 카마리가 돌아왔다.
『이 정도면 되나요, 코리바?』
카마리가 물었다.
나는 새장을 받아들고 살펴보았다.
『오히려 큰 편이구나. 뼈가 다 나을 때까지 새끼가 날개를 움직이게 해서는 안되거든.』
내가 대답했다.
『안 그럴거예요. 제가 매일같이 하루종일 지키고 있을게요.』
카마리가 얘기했다.
『매일같이 하루종일 이 녀석을 지키겠다구?』
웃으면서 내가 물었다.
『그래요.』
『그러면 내 움막과 보마를 청소하고, 물통에 물을 채우는 일은 누가 하지?』
『일을 할 때는 새장을 들고 다닐거예요.』
카마리가 대답했다.
『새를 집어넣은 다음에는 새장이 훨씬 더 무거워질텐데.』
내가 계속 카마리에게 물었다.
『제가 어른이 되면, 훨씬 더 무거운 짐을 등에 질텐데요. 왜냐하면 제 남편의 보마를 위해서 밭을 갈고, 땔감을 모아야 하잖아요.』
카마리가 말했다.
『연습에도 좋을거예요.』
갑자기 카마리가 말을 그치더니 가만히 있었다.
『왜 절 보고 웃으시는 거지요, 코리바?』
『할례도 받지 않은 어린애한테서 설교를 듣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단다.』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으며 내가 대답했다.
『설교를 늘어놓는 게 아니예요. 그냥 설명했을 뿐이지요.』
카마리가 꿋꿋한 태도로 대답했다.
나는 오후의 햇살을 손으로 가렸다.
『내가 무섭지 않니, 꼬마야?』
내가 물었다.
『왜 무서워해야 하지요?』
『왜냐하면 내가 문두무구이기 때문이지.』
『그건 단지 당신이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똑똑하다는 뜻이잖아요.』
카마리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그리고 돌멩이를 집어 새장 쪽으로 다가오던 닭에게 던졌다. 닭은 놀라서 깩깩거리며 재빨리 달아났다.
『언젠가는 저도 당신처럼 똑똑해질거예요.』
『흠, 그래?』
카마리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전 아버지 보다 더 큰 숫자를 셀 수 있어요. 그리고 많은 것들을 외울 수도 있구요.』
『어떤 것들인데?』
먼지를 몰고오는 뜨거운 바람을 피해서 고개를 약간 돌리며 내가 물었다.
『우기(雨期)가 오기 전에 마을 아이들에게 해주신 꿀새에 관한 이야기 기억나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 그걸 그대로 되풀이할 수 있어요.』
카마리가 말했다.
『그 이야기를 아직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니?』
카마리가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그냥 아는게 아니라 얘기해 주신대로 고스란히 되풀이할 수 있다니까요.』
나는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어디 들어보자꾸나.』
먼 곳으로 시선을 옮겨 젊은 사내가 소떼를 몰고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말했다.
카마리는 어깨를 구부렸다. 내 나이처럼 등이 굽은 모습을 흉내냈던 것이다. 그러더니 젊은 시절의 나와 판에 박은듯이 똑같은 목소리로, 몸짓까지 고스란히 흉내를 내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갈색의 작은 꿀새가 있단다. 참새처럼 아주 귀엽게 생겼지. 그 새는 보마에 와서 너를 부를게다. 가까이 다가가면 꿀새는 날아올라 너를 이끌고 벌통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지. 그러고는 네가 풀을 모아 불을 붙인 다음 연기로 벌들을 쫓아내는 동안 기다린단다. 하지만 너는 언제나….』
카마리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라는 말을 강조했다.
『…언제나 꿀새를 위해서 꿀을 조금 남겨놓아야만 한단다. 그렇지 않고 꿀을 모두 먹어버리면, 다음 번에 꿀새는 휘시(fisi), 그러니까 하이에나의 입 속으로 널 데려가거나, 아니면 물 한 방울 찾을 수 없어 헤매다가 죽고마는 사막으로 끌고가게 되지.』
카마리는 이야기를 마치더니, 허리를 펴고 나를 보며 웃음 지었다.
『제 말이 맞죠?』
카마리가 자랑스러운듯이 말했다.
『그렇구나.』
뺨에 앉은 왕파리를 손으로 쫓아 내면서 나는 대답했다.
『제가 제대로 한건가요?』
카마리가 물었다.
『그럼, 아주 잘 했다.』
카마리는 생각에 잠긴 채 나를 가만히 바라다 보았다.
『당신이 돌아가시게 되면, 제가 문두무구가 될거예요.』
『내가 벌써 죽을 때가 가까운 사람처럼 보이니?』
내가 물었다.
『음…. 당신은 굉장히 나이가 많고, 등은 굽은데다가, 주름살 투성이잖아요. 게다가 잠도 너무 많이 자고 말이예요.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금새 돌아가시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널 위해서라도 조금 더 오랫동안 살아 있으마.』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제 송골매를 집으로 데려가렴.』
그러고서 송골매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려고 말문을 열기도 전에, 카마리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오늘은 아무 것도 먹이지 않을게요. 내일부터는 커다란 벌레를 잡아다가 먹일래요. 그리고 적어도 하루에 한 마리씩 도마뱀도 먹이구요. 하지만 물은 오늘부터 먹게 해야겠지요.』
『관찰력이 아주 예리하구나, 카마리.』
나를 보고 웃더니 카마리는 보마를 향해서 뛰어갔다.

카마리는 다음날 새벽 새장을 들고 다시 찾아 왔다. 그리고 새장을 그늘에 놓은 다음, 작은 물통 하나를 채워서 새장 안에 들여놓았다.
『오늘 아침엔 새가 어떠니?』
불가에 다가 앉으며 나는 물었다. 유토피아 평의회에 속한 행성공학자(行星工學者)가 키리니야가를 케냐와 똑같은 기후로 만들어 주었지만, 해가 아침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주려면 약간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카마리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새가 아직 아무 것도 먹지 않았어요.』
『이제 곧 먹을게다. 배가 고파지면 말이야. 그 녀석은 아직 하늘에서 먹이를 덮치는 일에 익숙한 상태거든.』
어깨에 두른 담요를 여미며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물은 마셔요.』
카마리가 얘기했다.
『좋은 징조구나.』
『단 한 번에 새가 낫도록 주문을 거실 수 있지요?』
『대가가 너무 크단다.』
나로서는 카마리의 질문을 이미 예견하고 있던 터였다.
『이런 방법이 더 낫지.』
『대가가 얼마나 큰데요?』
『너무 크단다.』
말문을 막으며 내가 말했다.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해야지?』
『예, 코리바.』
카마리는 부지런히 땔감을 줍고, 강가에서 물을 길어왔다. 그 다음 움막을 청소하고, 잠자리를 정돈했다. 잠시후 카마리가 손에 책을 한 권 들고 나타났다.
『이게 뭐지요, 코리바?』
카마리가 물었다.
『누가 너더러 문두무구의 물건에 손을 대라고 하더냐?』
내가 엄한 말투로 물었다.
『물건을 만지지 않고 어떻게 청소를 하나요?』
카마리는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대답했다.
『이게 뭔가요?』
『그건 책이란다.』
『책이 뭔데요, 코리바?』
『너는 알 필요 없단다. 다시 갖다 놓으렴.』
내가 말했다.
『이게 뭔지 제가 한 번 알아맞춰 볼까요?』
카마리가 말했다.
『얘기해 보렴.』
카마리가 뭐라고 대답할지 호기심이 인 나는 대답했다.
『비를 내려달라고 뼈를 던질 때 땅바닥에 어떤 식으로 기호를 그리는지 아시지요? 이 책은 바로 그런 기호를 모아놓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참 똑똑하구나, 카마리.』
『제가 전에 이미 똑똑하다고 그랬잖아요.』
자신의 말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데 대해서 화가 난듯이 카마리가 말했다. 카마리는 책을 잠시 바라보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이 기호들은 뭘 뜻하지요?』
『여러가지 다른 것들이지.』
『뭔데요?』
『키쿠유족은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이란다.』
『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잖아요.』
『나는 문두무구니까.』
『키리니야가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이 기호들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또 있나요?』
『너희 마을의 추장인 코인나쥐(Koinnage)와 다른 마을 추장 두 명이 더 읽을 줄 알지.』
나는 카마리와 나누는 대화가 점점 재미있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약간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대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이미 대충이나마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모두들 나이가 많은 분들 뿐이네요. 저에게 가르쳐 주세요. 그래야 나이 든 분들이 다 돌아가시면 누군가가 이 기호들을 읽을 수 있잖아요.』
『이따위 기호들은 중요한 게 아니란다. 이 기호들은 모두 유럽인들이 만든거야. 유럽인들이 케냐에 오기 전까지는 키쿠유족에게 책이 필요 없었지. 그러니까 우리들만의 세계인 이곳 키리니야가에서는 책이 필요 없단다. 코인나쥐와 다른 추장들이 죽고나도 모든 일들이 옛날과 똑같이 흘러갈테니까 말이다.』
『그러면 이 기호들이 사악한 것이라는 말씀인가요?』
카마리가 물었다.
『아니지. 기호들이 사악한 것은 아니란다. 그냥 우리 키쿠유족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얘기지. 그 기호들은 모두가 백인들의 것이니까 말이야.』
책을 나에게 건네주며 카마리가 말했다.
『이 기호들 중에서 하나만 읽어주실래요?』
『왜?』
『백인들이 만든 기호들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곰곰이 저울질하면서 나는 카마리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마침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한 번만이다. 다시는 안돼.』
내가 말했다.
『이번 한 번만이요.』
카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다가, 스와힐리어로 번역한 빅토리아 시대의 시(詩)를 아무거나 한 편 골라 읽기 시작했다.

    내게 와주오, 나의 사랑이 되어주오,
    그러면 저 언덕과 계곡, 작은 골짜기와 들판,
    그리고 모든 험준한 산들마저도
    우리에겐 기쁨으로 남으리.
    저기 저 바위에 둘이 앉아
    양떼를 돌보는 양치기의 모습을 바라보리라.
    가늘게 굽이치는 강물과 폭포
    새들이 마드리갈을 아름답게 지저귀는,
    그곳에 장미로 꾸민 잠자리를 마련하리라.
    수천가지 향기를 풍기는 꽃봉우리와
    도금양(桃金孃) 잎새로 수놓은 치마를 깔고,
    짚단과 덩쿨손으로 꾸민 침상엔
    산호 조각과 호박 장식으로 꾸미리.
    이 모든 기쁨에 그대여 마음 끌리거든
    내게 와주오, 나의 사랑이 되어주오.

카마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모를거라고 내 그러지 않았니. 이제 책을 다시 갖다 놓고, 움막 청소를 끝마치려무나. 이곳 일만 하는게 아니라 돌아가면 아버지의 샴바에서도 일을 해야하지 않니.』
카마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왈칵 뛰쳐나왔다.
『그건 이야기예요!』
카마리가 소리질렀다.
『뭐라구?』
『제게 읽어주신 그 기호 말이예요! 모르는 말들이 많이 섞여 있기는 했지만, 처녀에게 결혼해 달라고 말하는 전사(戰士)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카마리가 잠시 숨을 돌리더니 계속 말했다.
『더 재미있게 얘기해 줄 수도 있으셨을텐데, 코리바. 읽어주신 기호에는 휘시(fisi, 하이에나)나, 강가에 살면서 전사와 전사의 아내를 잡아먹는 맘바(mamba, 악어)에 관해서는

아무 얘기도 없지만, 그래도 이야기인 것은 분명해요! 저는 그게 문두무구가 쓰는 주문인줄로만 알았었거든요.』
『그게 한 편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똑똑하구나.』
내가 대답했다.
『하나만 더 읽어주세요!』
카마리가 열심히 졸라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한 약속을 벌써 잊었니? 딱 한 번만이라고 했잖아. 더 이상은 안된다고 말이다.』
카마리는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기더니,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그 기호들을 읽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그건 키쿠유족의 법에 어긋나는 일이야. 여자들은 읽는 법을 알아서는 안된다.』
『왜죠?』
『밭을 갈고, 곡식을 빻고, 불을 피우고, 옷감을 짜고, 남편의 아이를 낳는 것이 바로 여자들의 의무니까.』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저는 여자가 아니잖아요. 저는 그냥 어린 계집애일 뿐인데요.』
카마리가 말했다.
『하지만 이제 곧 다 큰 여자가 될게다. 그리고 여자들은 읽을 줄 알아서는 안돼.』
『지금 가르쳐 주세요. 그러면 다 큰 여자가 되었을 때는 잊을께요.』
『독수리가 나는 법을 잊는 경우도 있니? 하이에나가 사냥하는 법을?』
『공정하지 못해요.』
『그래 맞다, 공정하지 못하지. 하지만 그게 옳은 일이야.』
『이해가 안가요.』
『그럼 내가 설명해 주마. 거기 앉거라, 카마리.』
내가 말했다.
카마리는 내 앞의 지저분한 흙바닥에 앉아 몸을 수그린 채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나는 얘기를 시작했다.
『아주 오래 전에, 키쿠유족은 꼭대기에 느가이님께서 머무시는 키리니야가의 산자락에 살고 있었단다.』
『저도 알아요. 그러다가 유럽인들이 와서는 도시를 지었지요.』
카마리가 말했다.
『말참견을 하는구나.』
내가 말했다.
『죄송해요, 코리바. 하지만 그 얘기는 이미 알고 있는걸요.』
카마리가 대답했다.
『전부는 아니지. 유럽인들이 오기 전에, 우리는 땅과 함께 평화롭게 살고 있었지. 소떼를 돌보고, 밭을 갈고, 늙거나 병들어 죽는 사람들이나 마시이족(Masai), 와캄바족(Wakamba), 그리고 난디족(Nandi)과의 싸움에서 죽은 사람들의 수만큼씩 아기들을 낳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때 유럽인들이 온거군요! 새로운 생활방식도 함께 가져왔구요. 사악한 생활방식 말이예요.』
카마리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유럽인들에게는 사악한 생활방식이 아니란다. 내가 직접 유럽의 여러 학교에서 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지. 하지만 우리 키쿠유족, 마사이족, 와캄바족, 엠부족(Embu), 키시족(Kisi),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부족들에게는 결코 좋은 생활방식이라고 할 수 없어. 우리는 유럽인들이 입는 옷과, 그들이 세운 건물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기계들을 보았지. 그리고 우리도 유럽인들처럼 되려고 애를 썼단다. 하지만 우리는 유럽인들이 아니고, 그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우리 것과 달랐지. 그래서 우리에겐 맞지 않았던 거야. 도시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오염은 심해졌고, 농토는 점점 황폐해졌지. 동물들은 죽어 갔고, 물은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되었던거야. 그러다가 마침내, 유토피아 평의회가 이곳 키리니야가로 이주하는 것을 허락했을 때, 우리는 케냐를 뒤로 하고, 우리에게 어울리는 옛날 생활방식대로 살기 위해서 이곳으로 온 것이란다.』
『하지만 읽는 법을 모르는 것이 뭐가 좋은가요? 단순히 유럽인들이 오기전에 우리가 읽는 법을 몰랐다고 해서 읽을 줄 안다는 게 나쁜 일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읽을 수 있게 되면 사람들은 다른 식으로 생각하고, 다른 식으로 사는 법에 대해서 알게 된단다. 그러다보면 이곳 키리니야가에서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지.』
『하지만 당신은 읽을 줄 알면서도 이곳에 사는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나는 문두무구란다. 내가 읽은 말들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만큼은 현명하지.』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거짓말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은 아니예요. 항상 그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잖아요.』
카마리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문두무구는 자기 부족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
나는 엄한 말투로 대꾸했다.
『사자와 당나귀에 관한 이야기나, 무지개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두 옛날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거짓말이잖아요.』
『그건 우화(寓話)라고 하는 거란다.』
내가 대답했다.
『우화가 뭔데요?』
『일종의 이야기지.』
『진짜 이야기인가요?』
『어떤 의미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진짜라면, 다른 의미에서는 거짓말이라는 뜻이군요, 그렇죠?』
카마리가 대꾸했다. 그러고는 내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계속 말했다.
『거짓말인 옛날 이야기를 들어도 된다면, 왜 거짓말을 읽을 수는 없는건가요?』
『이미 내가 설명해 주었잖니.』
『그건 공정하지 못해요.』
카마리가 또 한 번 대꾸했다.
『그래, 공정하지 못하지. 하지만 그게 진리라는 게다. 그리고 먼 장래를 내다보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키쿠유족에게 좋은 일이기도 하지.』
『왜 그게 좋은 일인지 전 아직도 모르겠어요.』
카마리가 불평하는 말투로 대답했다.
『왜냐하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전부이기 때문이란다. 예전에도 언젠가 한 번 키쿠유족이 자신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다른 무엇인가가 되려고 애쓴 적이 있었단다. 결국 그 사람들은 도시에 사는 키쿠유족, 나쁜 키쿠유족, 그도 아니면 그냥 불행한 키쿠유족으로도 남지 못하고, 완전히 새로운 부족인 케냐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지. 키리니야가로 이주해 온 우리들은 옛날 방식대로 살기 위해서 이곳에 온 거란다. 그러니 만약 여자들이 읽는 법을 알게 되고, 그 중 몇 사람이 불만에 휩싸이게 되어
이곳을 떠나게 되면, 어느날 갑자기 이곳에 키쿠유족은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 아니니.』
『하지만 저는 키리니야가를 떠나고 싶지 않아요! 저는 할례를 받고 싶어요. 그리고 남편을 위해서 아기를 많이 낳고 싶어요. 남편의 샴바에 나가서 밭도 갈고 말이예요. 그러다가 늙으면 손자가 절 돌봐줄테죠.』
카마리가 말했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야지.』
『하지만 저는 여전히 다른 세상과 다른 시간에 대해서 일고 싶은걸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돼.』
『하지만…….』
『오늘은 더이상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구나. 벌써 해가 중천에 떴어. 그런데 넌 아직 이곳에서 해야할 일도 다 마치지 않았잖니. 게다가 네 아버지의 샴바에 가서 일도 해야 하고. 그러니 이따가 오후에 다시 오려무나.』
카마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일을 끝내자 카마리는 새장을 집어들고 자신의 보마를 향해서 걸어갔다.
나는 카마리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다음 움막으로 돌아와 유지위원회(the Maintenance)와 행성궤도의 사소한 수정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작동시켰다. 거의 한 달째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덥고 가물었기 때문이다. 위원회도 궤도수정에 동의했다. 잠시후 나는 마을 중앙으로 구불거리며 길게 나있는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땅바닥에 천천히 몸을 굽힌 다음, 뼈조각과 부적을 펼쳐서 느가이님께서 시원한 빗줄기로 키리니야가를 식혀주시기를 빌었다. 이제 곧 위원회에서 약속한 비가 오후에 내리게 될 터였다.
언덕 위에 자리잡은 나의 보마에서 걸어나와 마을로 들어올 때면 항상 그렇듯이 아이들이 둘레에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잠보, 코리바!』
아이들이 소리높여 인사했다.
『잠보, 내 귀엽고 용감한 꼬마 전사들아.』
나는 땅바닥에 앉은 채 아이들의 인사를 받았다.
『오늘 아침에는 왜 마을에 내려오셨나요, 코리바?』
어린 아이들 중에서 가장 겁이 없는 느데미(Ndemi)가 물었다.
『느가이님께 동정의 눈물로 우리 밭을 적셔주십사 기도 드리느라 왔단다. 벌써 한 달째 비가 오지 않았으니, 곡식들이 목이 마를게 아니니.』
『느가이님께 드리는 기도가 다 끝나셨으면, 옛날 얘기 하나 해 주실래요?』
느데미가 졸랐다.
나는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가늠하느라 눈을 들어 해를 바라보았다.
『딱 하나 밖에 해줄 시간이 없겠구나. 그 다음에는 밭에 나가서 귀중한 곡식들이 잘 자라도록 주문을 걸어야 하거든.』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 건가요, 코리바?』
다른 사내애가 물었다.
아이들 얼굴을 훑어보던 나는 계집애들 중에 카마리도 끼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표범과 때까치에 관한 얘기를 해주마.』
『그 이야기는 아직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어요.』
느데미가 말했다.
『내가 새로운 옛날 얘기를 더이상 해주지 못할 만큼 그렇게 늙었단 말이니?』
내가 묻자, 느데미는 고개를 수그렸다. 나는 모두들 집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옛날에 아주 똑똑한 때까치 새끼가 있었단다. 너무 똑똑한 나머지 그 때까치 새끼는 아빠에게 항상 질문을 퍼부어 대곤 했지.』
『'우리는 왜 벌레를 먹나요?' 어느날 때까치 새끼가 아빠에게 물었단다.』
『'우리가 때까치이기 때문이지. 때까치는 벌레를 먹거든.'아빠 때까치가 대답했어.』
『'하지만 우린 모두 새잖아요. 그런데 독수리같은 새들은 왜 물고기를 먹지요?'』
『'느가이님께서는 때까치가 물고기를 먹도록 만드시지 않았단다. 네가 아무리 물고기를 잡아 죽일 만큼 힘이 세더라도, 물고기를 먹게 되면 아프게 된다.' 아빠 때까치가 말했어.』
『'아빠는 물고기를 먹어본 적 있어요?' 때까치 새끼가 물었지.』
『'아니.' 아빠 때까치가 대답했어.』
『'그런데 어떻게 그걸 아세요?' 그렇게 말한 새끼 때까치는 그날 오후에 강가로 날아갔지. 거기서 아주 작은 물고기를 잡아서는 정말로 먹어버렸지. 그러고나서 한 주일 내내 앓아 눕고 말았단다.』
『'이제야 잘못을 깨달았니?' 새끼 때까치가 다 낫자, 아빠가 물었어.』
『'이제는 물고기를 먹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지만 궁금한게 한 가지 있어요.' 새끼가 얘기했지.』
『'왜 때까치는 모든 새들 중에서 가장 겁이 많지요? 사자나 표범이 나타나기만 하면, 우리는 나무가지 맨 꼭대기로 도망가서 맹수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잖아요.' 새끼 때까치가 물었단다.』
『'기회만 있으면 사자나 표범이 우릴 잡아먹을 테니까, 도망가야만 하는거란다.' 아빠 때까치가 대답했지.』
『'하지만 맹수들은 타조를 잡아먹지 않잖아요. 분명히 타조도 새인데 말이예요. 오히려 맹수들이 타조를 잡아먹으려고 하면, 타조들은 발로 맹수들을 차서 죽이잖아요.' 똑똑한 새끼 때까치가 말했단다.』
『'너는 타조가 아니야.' 자식의 말을 듣기도 귀찮아진 아빠 때까치가 대답했어.』
『'하지만 저는 새인걸요. 타조도 새구요. 그러니까 저도 타조처럼 발차는 법을 배울래요.' 그러고는 한 주일 내내 열심히 길에서 마주치는 벌레들과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잔 나무가지들을 걷어차는 연습을 했단다.』
『그러던 어느날, 새끼 때까치는 츄이(chui,표범)와 길에서 맞딱드리게 되었지. 표범이 다가오자 영리한 새끼 때까치는 가장 높은 나무가지로 날아올라 도망가지 않고, 용감하게 땅에 남아 있었지.』
『'내 앞에 그렇게 버티고 서있다니 너 참 용감하구나.' 표범이 말했어.』
『'그래, 난 영리한 새야. 난 네가 무섭지 않아. 타조처럼 나도 발차는 법을 연습했거든.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널 발로 걷어차서 죽일거야.' 때까치가 말했지.』
『'나는 너무 늙어서 더 이상 사냥도 못한단다. 그러니 어차피 곧 죽게 될거야. 이리와서 날 차 보렴. 매일같이 굶주림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 표범이 대답했어.』
『새끼 때까치는 표범 코 앞까지 다가와서는 있는 힘껏 얼굴을 걷어찼지. 하지만 표범은 픽 웃고는 입을 벌려 새끼 때까치를 꿀꺽 삼켜버리고 말았단다.』
『'정말 바보같은 새군. 될 수도 없는 다른 새인척 하다니 말이야! 그냥 때까치처럼 훌쩍 날아가 버렸으면, 난 오늘도 굶고 말았을텐데……. 절대로 될 수도 없는 새가 되려고 헛되이 애를 썼건만 결국 내 배만 채워준 꼴이라니……. 영리하긴 뭐가 영리한 새란 말이야, 흐흥!'』
나는 말을 마치고 가만히 카마리를 바라보았다.
『그게 끝인가요?』
여자애 한 명이 물었다.
『그래, 끝이란다.』
내가 대답했다.
『왜 때까치는 자신이 타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나요?』
덩치가 작은 꼬마애 하나가 물었다.
『카마리가 대답해 줄 수 있을게다.』
내가 말했다.
아이들이 모두 카마리를 쳐다보았고, 카마리는 잠시 가만히 있더니 대답했다.
『타조가 되고 싶어하는 것과 타조가 아는 것을 자신도 알고 싶어한다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요.』
내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보면서 카마리가 대답했다.
『때까치가 여러가지 일들을 알고 싶어한 것은 잘못이 아니예요. 타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게 잘못이지요.』
다른 아이들이 카마리의 말에 대해서 생각하는 동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카마리 말이 맞나요, 코리바?』
마침내 느데미가 물었다.
『아니란다. 타조가 아는 바를 새끼 때까치가 알게된 그 순간부터, 때까치는 자신이 때까치라는 사실을 잊고 말았지. 너희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항상 알고 있어야만 하는거야. 너무 많은 것들을 알게되면 오히려 다른 일들을 잊고 마는 수가 있단다.』
『옛날 얘기 하나 더 해주세요.』
꼬마 여자애 하나가 졸랐다.
『지금은 안되겠구나.』
천천히 일어나면서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오늘밤에 폼베(pombe)를 마시고 춤을 구경하러 마을에 오게 되면, 수컷 코끼리와 영리한 키쿠유 꼬마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마. 자, 다들 할 일이 있을텐데?』
아이들은 샴바와 초원으로 다들 흩어져 갔다. 나는 쥬마(Juma)의 움막에 들러 비 오기 전이면 늘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그에게 부적을 주었다. 그 다음 코인나쥐에게 들러 함께 폼베를 마셨고, 마을 원로회(the Council of Elders)와 마을 일에 관해서 의논도 했다. 그리고 한낮의 더위를 피해 낮잠을 즐기기 위해서 보마로 돌아왔다. 비가 오려면 아직 몇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보마에 도착했을 때 카마리는 이미 와 있었다. 카마리는 벌써 땔깜과 마실 물을 모아놓은 다음, 내가 보마에 들어갔을 때는 염소가 먹을 먹이를 그릇에 담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 오후에는 새가 어떠니?』
움막 그늘에 갖다놓은 우리 속의 새끼 송골매를 쳐다보면서 내가 물었다.
『물은 마시는데 모이는 아직 먹으려들지 않아요. 하루 종일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요.』
카마리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송골매에게는 먹는 일 보다 훨씬 중요한 일도 있는 법이지.』
내가 말했다.
『이제 일을 다 마쳤어요. 집에 가도 되지요, 코리바?』
카마리가 말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마리는 떠났고, 나는 움막으로 들어가 잠자리를 폈다.
카마리는 그 다음주에도 매일 아침과 오후에 들렀다. 그리고 여드레째 되던 날, 카마리는 얼굴 가득 눈물에 젖은 채 와서 새끼 송골매가 죽었노라고 말했다.
『그럴거라고 내가 이미 얘기했지. 한 번이라도 새가 바람을 타고 나는 법을 알게 되면, 다시는 땅에서 살 수 없는 법이란다.』
나는 다정하게 말했다.
『더이상 날 수 없게 되면 모든 새들이 죽나요?』
카마리가 물었다.
『대부분 그렇지. 물론 몇 마리는 안전한 새장을 더 좋아하겠지만, 대부분의 새들은 실망에 찬 나머지 결국엔 죽고 말지. 하늘을 맛보았기 때문에 비행의 기쁨을 잃고서는 도저히 살 수 없게 되는 거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새장을 만들지요? 새들이 좋아하지도 않는데 말이예요.』
『새장을 만든 우리들의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겠지.』
내가 대답했다.
『그래도 저는 약속을 지키겠어요. 움막과 보마를 청소하고, 물을 긷고, 땔깜을 모아 드리겠어요. 새는 죽었지만 말이예요.』
카마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자기 말대로 카마리는 그 다음에도 삼 주 동안 하루에 두 차례씩 왔다. 스무 아흐레째 되던 날 정오에 카마리가 아침 일을 끝마치고 자기 가족의 샴바로 돌아간 다음, 그 애의 아버지인 느조로(Njoro)가 내 보마로 걸어왔다.
『잠보, 코리바.』
그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 인사했다.
『잠보, 느조로. 어쩐 일로 내 보마까지 왔나?』
나는 앉은 채로 그에게 물었다.
『저는 가난한 사람입니다요, 코리바.』
느조로가 내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말했다.
『저에게는 마누라가 하나 뿐인데다가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처럼 커다란 샴바도 갖고있질 못해요. 게다가 작년에는 하이에나가 소를 세 마리나 죽였지 뭡니까.』
느조로가 대관절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를 쳐다보면서 기다렸다.
『저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한 가지 낙이 있다면 그건 늙으막에 두 딸년의 신부값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것 뿐이지요.』
그가 잠시 말문을 멈추더니 계속 얘기했다.
『저는 지금까지 착하게 살아왔습니다요, 코리바. 정말 그 정도 꿈은 가지고 살만합지요.』
『그렇지 않다고는 말 안했네.』
내가 말했다.
『그런데 어쩌자고 카마리를 문두무구로 만들 작정이십니까? 문두무구는 절대로 결혼을 하지 않는데 말입지요.』
느조로가 물었다.
『문두무구가 될 거라고 카마리가 자네에게 그러던가?』
내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요. 당신의 보마를 청소하러 다니면서부터는 저한테나 제 에미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요.』
『그러면 자네가 잘못 안걸세. 여자는 문두무구가 될 수 없어.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건가?』
내가 말했다.
그는 키코이(kikoi) 자락을 풀어헤치더니 영양(羚羊)의 말린 가죽 조각을 꺼냈다. 거기에는 숯으로 꾸불꾸불하게 글이 씌어져 있었다.

    나는 카마리입니다.
    나는 열두 살입니다.
    나는 여자애입니다.
『이건 글자예요. 여자들은 글을 써서는 안됩니다. 문두무구와 코인나쥐 같은 위대한 추장들만 쓸 줄 알잖습니까?』
느조로가 힐난하듯이 말했다.
『이걸 놓고 가게, 느조로. 그리고 카마리를 이곳으로 곧 보내게나.』
가죽을 받아들면서 나는 말했다.
『오후 늦게까지 카마리는 제 샴바에서 일을 해야하는뎁쇼.』
『지금 당장 보내.』
내가 말했다.
느조로는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보내지요, 코리바. 하지만 카마리가 문두무구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죠?』
『이미 얘기 했잖나.』
맹세의 뜻으로 손바닥에 침을 뱉고나서 내가 말했다.
느조로는 저으기 마음이 놓이는지 자신의 보마쪽으로 걸어갔다. 몇 분 뒤에 카마리가 왔다.
『잠보, 코리바.』
카마리가 인사했다.
『잠보, 카마리.』
나는 대답했다.
『너에게 정말 실망했다.』
『제가 오늘 아침에 땔깜을 모자라게 주워 왔나요?』
카마리가 물었다.
『땔깜은 충분하단다.』
『물통에 물이 다 떨어졌나요?』
『물도 충분해.』
『그러면 제가 뭘 잘못했나요?』
곁으로 슬금슬금 곁으로 다가오던 염소를 옆으로 밀쳐내면서 카마리가 물었다.
『나하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그렇지 않아요. 아침과 오후에 한 차례씩 매일 왔는데요. 새가 죽었는데도 말이예요.』
카마리가 말했다.
『더 이상 책을 들여다 보지 않겠다고 약속했잖니.』
『요전날 더 이상 책을 보지 말라고 하신 다음부터는 절대로 보지 않았어요.』
『그러면 이건 도대체 뭐니?』
글자가 적힌 가죽을 내밀며 내가 물었다.
『별거 아니예요. 그냥 제가 쓴 거지요.』
카마리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책을 보지 않았다면서, 이 글씨는 어떻게 쓴 거지?』
내가 물었다.
『움막 안에 있는 마술상자로……. 그것도 봐서는 안된다고 하지는 않으셨잖아요.』
카마리가 대답했다.
『마술상자라고?』
얼굴을 찌푸리며 내가 말했다.
『웅웅거리며 깨어나서 여러 색깔로 반짝이는 상자 말이예요.』
『컴퓨터를 말하는거니?』
나는 놀라서 물었다.
『마술상자라니까요.』
카마리는 되풀이 했다.
『그 상자로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이말이니?』
『혼자 배웠어요. 아주 조금 밖에 못배웠지만…….』
카마리가 쓸쓸한 말투로 말했다.
『저는 옛날얘기 속에 나오는 때까치랑 비슷해요. 예전에 혼자 생각했던 것 만큼 그리 영리하지 못하거든요. 읽고 쓰는 법은 훨씬 더 어려워요.』
『읽는 법을 배워선 안된다고 내가 이미 말했잖니.』
카마리가 해낸 놀라운 일에 대해서 칭찬을 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면서 나는 꾸짖었다. 카마리가 규칙을 어긴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카마리는 고개를 저었다.
『책을 봐서는 안된다고만 말씀하셨잖아요.』
카마리는 고집스럽게 대답했다.
『여자는 읽는 법을 배워선 안된다고 말했던거야. 넌 내 말을 어겼다. 그러니 벌을 받아야 해.』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앞으로 석 달 동안 지금껏 하던 일을 계속 하려무나. 그리고 내게 산토끼 두 마리와 들쥐 두 마리를 잡아와. 그것도 네손으로 직접 잡아서 말이다. 알겠니?』
『알았어요.』
『자, 이제 나랑 움막에 함께 들어가자. 한 가지 더 일러둘게 있다.』
카마리는 뒤를 따라 움막으로 들어왔다.
『컴퓨터, 작동하라.』
내가 말했다.
『작동되었습니다.』
컴퓨터가 기계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컴퓨터, 움막 안을 훑어보고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얘기하라.』
컴퓨터 감지기에 달린 렌즈가 빠르게 반짝거렸다.
『여자애인 카마리 와 느조로(Kamari wa Njoro)가 당신과 함께 있군요.』
컴퓨터가 대답했다.
『카마리를 다시 보게 되면 알아볼 수 있겠지?』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최우선 명령(a Priority Order)을 내리겠다. 앞으로 다시는 카마리와 어떤 형태의 언어로든 대화를 나누면 안된다.』
내가 말했다.
『입력되었습니다.』
컴퓨터가 말했다.
『작동 해제하라.』
나는 카마리를 바라보고 말했다.
『내가 지금 보여준 일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카마리?』
『예. 하지만 이건 불공평해요. 저는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구요.』
카마리가 말했다.
『여자가 읽는 법을 알아서는 안된다는 것은 법이야. 그런데 넌 그 법을 어겼어. 이제 다시는 어기지 못하게 된 셈이지. 자, 샴바로 돌아가렴.』
카마리는 어린 체구에 고개를 빳빳이 치켜든 채 떠났고, 나도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남자애들에게 곧 거행될 할례식을 대비해서 몸에 울긋불긋 장식하는 법을 가르쳤고, 늙은 시보키(Siboki)에게 악운을 물리치는 주문을 베풀어 주었다(시보키는 자신의 샴바에서 하이에나의 똥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누군가 그에게 싸후(thahu, 저주)를 건 증거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쪽 들판에 좀 더 시원한 날씨가 닥치도록 유지위원회와 약간의 궤도조정에 관해서 협의를 했다.
오후에 낮잠을 자려고 움막에 돌아왔을 때, 카마리는 이미 와서 일을 끝내놓고 간 뒤였다. 움막 안은 깔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두 달 동안 마을은 평화로왔다. 곡식을 추수했고, 코인나쥐는 마누라를 한 명 더 데려왔다. 사람들은 결혼식을 축하하느라 이틀 동안 잔치를 벌여서 춤을 추고 폼베를 마셨다. 예정되어 있던 비가 잠시 뿌렸고, 세 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늙은이들과 갓 태어난 아이들을 하이에나가 잡아먹도록 들판에 버려두는 우리네 관습에 대해서 늘 불만을 토로하던 유토피아 평의회 조차 그동안은 간섭하지 않고 우리를 내버려 두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이에나의 둥지를 찾아내어 어미가 없는 틈을 타 새끼 세 마리를 죽인 다음, 어미가 돌아왔을 때 마저 잡아 죽였다. 보름달이 뜰 때마다 나는 느가이님의 관대함에 감사드리기 위해서 암소를--염소가 아니라 크고 살찐 암소를--잡아 바쳤다. 너그러우신 느가이님께서 마을에 풍요를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카마리를 거의 보지 못했다. 그 애는 내가 뼈조각으로 날씨를 점치기 위해서 마을에 나가있는 아침녘에 일찌감치 왔다 갔고, 병자들에게 주문을 베풀고, 원로들과 얘기를 나누느라 움막을 비우는 오후에 다녀갔다. 하지만 카마리가 빠뜨리지 않고 다녀간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움막과 보마는 항상 깨끗했고, 물이나 땔깜은 늘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보름달이 뜬 직후의 어느날 오후, 나는 코인나쥐에게 경작지 때문에 생긴 싸움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 조언을 해 준 다음 돌아왔다. 그런데 움막으로 들어와 보니 컴퓨터 화면이 켜있고, 화면에는 이상한 기호들이 잔뜩 나타나 있었다. 영국과 미국에서 학위를 땄기 때문에 영어, 프랑스어, 그리고 스페인어를 아는데다가, 키쿠유어는 물론 스와힐리어까지 할 줄 아는 나로서도 처음 보는 기호들이었다. 분명 수학공식에서처럼 숫자나 문자, 그리고 문장부호들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지구상의 언어가 아니었던 것이다.
『컴퓨터, 오늘 아침에 분명히 작동해제를 시킨 기억이 나는데, 왜 화면이 켜있는거지?』
얼굴을 찌푸린 채 내가 물었다.
『카마리가 작동시켰습니다.』
『그리곤 떠날 때 작동 해제시키는 걸 잊었다, 이건가?』
『맞습니다.』
『나도 그럴거라고는 짐작했지. 카마리가 매일 컴퓨터를 켰나?』
우울한 어조로 나는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카마리와는 어떤 식으로든 지구상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지 말라고 내가 이미 최우선 명령을 내렸잖나?』
나는 당황스러웠다.
『맞습니다, 코리바.』
『그런데 왜 내 명령을 어겼는지 설명하라.』
『당신의 지시를 어긴 것이 아닙니다, 코리바. 프로그램상 최우선명령을 어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컴퓨터가 대답했다.
『그러면 대관절 화면에 나와있는 이 기호들은 뭐지?』
『이것은 카마리의 언어입니다.』
컴퓨터가 대답했다.
『이 언어는 제 기억뱅크에 들어있는 1,732개 언어 및 방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로서는 당신이 내린 명령을 위반하지 않은 셈이지요.』
『네가 이 언어를 만들었나?』
『아닙니다, 코리바. 카마리가 만들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네가 카마리를 돕지는 않았나?』
『아닙니다, 코리바. 돕지 않았습니다.』
『이게 정말 언어인가? 이 언어를 이해할 수 있나?』
내가 물었다.
『진짜 언어입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카마리가 자신의 언어로 네게 질문을 한다면 대답을 할 수 있다, 이건가?』
『예, 질문이 간단한 것일 경우에 한해서 입니다만. 카마리의 언어는 아주 제한된 언어에 불과하니까요.』
『그렇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언어를 카마리의 언어로 번역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것은 내가 내린 명령에 위배되나?』
『아닙니다, 코리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카마리의 질문에 넌 계속 대답을 해줬다는 건가?』
『예, 코리바.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컴퓨터가 대답했다.
『알았네. 새로운 명령을 수행할 준비를 갖추도록.』
내가 말했다.
『대기중입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어찌해야 할지 생각에 잠겼다. 카마리가 특출나고 재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혼자서 읽고 쓰는 법을 깨우쳤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가 이해하고 답변할 수 있는 일관되면서도 논리적인 언어까지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내가 최우선 명령으로 이를 금지시키자, 명령을 직접적으로 어기지 않고 살짝 비껴가기까지 했던 것이다. 카마리에게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배우고 싶었을 뿐이리라. 게다가 배운다는 것은 진정 칭찬해줄 만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일방적인 것일 뿐이다.
달리 생각하면 카마리가 한 짓은 우리가 그토록 부지런히 애써 이룩하고자 했던 키리니야가의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행동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각기 자신이 맡은 바 책임을 알고,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사회 말이다. 느가이님께서는 마사이족에게 창을 주셨고, 와캄바족에게는 화살을, 유럽인들에게는 기계와 인쇄기를 주셨지만, 우리 키쿠유족에게는 괭이와 키리니야가 산기슭에 자리 잡은, 신성한 무화과 나무로 둘러싸인 비옥한 농토를 주셨던 것이다.
아주 먼 옛날에는 우리 키쿠유족도 땅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쇄된 책이 왔다. 우리는 노예가 되었고, 그 다음에는 기독교인이 되었다가, 병사, 공장 노동자, 기계공, 정치인이 되었다. 키쿠유족에게 어울리지 않는 다른 온갖 종류의 인간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예전에도 그런 일이 벌어졌었고, 앞으로도 언제든지 다시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완벽한 키쿠유족의 사회인 키쿠유 유토피아(Kikuyu Utopia)를 건설하기 위해서 키리니야가의 세계로 이주해 왔다. 그런데 어떻게 영리한 꼬마 계집애 한 명이 파괴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단 말인가? 나도 확실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 애들이 커서 예수(Jesus)가 되고, 모하메드(Mohammed)가 되며, 조모 케냐타(Jomo Kenyatta)가 되는 법이다. 그렇지만 그 애들이 커서 역사상 가장 지독한 노예 사냥꾼인 티푸 팁(Tippoo tip)이나, 민족 도살자인 이디 아민(Idi Amin)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혹은 프리드리히 니체나 칼 맑스처럼 어떤 의미에서 보면 탁월한 인물이지만, 덜 탁월하고 덜 유능한 다른 보통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 인물이 될 수도 있으리라. 역사를 돌이켜 볼 때마다 그렇게 늘 불길한 방향으로만 결론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한켠에 물러서서 카마리가 우리 키쿠유족에게 미칠 영향이 희망적이라고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결정을 내리는 일은 고통스러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컴퓨터. 지난번에 내린 지시에 우선하는 새로운 최우선 명령을 내리겠다. 어떤 상황에서건 더 이상 카마리와 접촉하지 말도록. 카마리가 널 작동시키면, 이제는 더이상 접촉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린 다음, 곧 작동 해제하라. 알아듣겠나?』
『입력되었습니다.』
『좋아, 이제 작동 해제하라.』
내가 말했다.

다음날 아침 마을에서 돌아와 보니 물병은 텅 비었고, 잠자리는 흩어진 모습 그대로인데다가, 보마 안에는 염소 똥이 가득차 있었다. 문두무구야말로 키쿠유족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큰 권력을 지닌 사람이지만, 그렇다고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카마리가 화가 난 나머지 저지른 짓을 용서해 주기로 결심했으므로 카마리의 아버지에게 찾아가거나, 다른 아이들에게 카마리와 놀지 말도록 일러 두지도 않았다.
그 날 오후에도 카마리는 오지 않았다. 내가 내린 결정을 설명해 주기 위해서 움막 옆에 앉아 줄곧 기다렸기 때문에 카마리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마침내 황혼이 깔리자, 나는 사내애인 느데미를 시켜 물병을 채우고 보마를 청소하게 했다. 그런 자질구레한 일들은 여자들 몫이었지만, 느데미는 문두무구의 말을 감히 거스르지 못했다. 하지만 느데미의 몸짓으로 보건대 내가 시킨 허드렛일을 굉장히 불만스러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틀이 지나도 카마리가 찾아오지 않자, 나는 그 애의 아버지인 느조로를 불렀다.
『카마리는 나와의 약속을 저버렸네.』
그가 도착했을 때 나는 말을 꺼냈다.
『오늘 오후라도 돌아와서 내 보마를 청소하지 않으면 카마리에게 싸후를 내리겠네.』
느조로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 애 말로는 당신께서 이미 저주를 내렸다고 하던뎁쇼, 코리바. 저는 오히려 그 년을 우리 보마에서 쫓아내야 할지 여쭤보려고 했습지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 애를 자네 보마에서 쫓아내지 말게. 나는 아직 카마리에게 싸후를 내리지 않았네. 그러니 오후에라도 일을 하러 보내게나.』
『그 애에게 그럴 힘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느조로가 말했다.
『벌써 사흘째 물 한모금, 음식 한조각 먹지 않고 마누라의 움막에 꼼짝도 않은 채 누워있거든요.』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계속 얘기했다.
『누군가 카마리에게 싸후를 건게 틀림없습니다요. 당신께서 걸지 않으셨다면, 제발 그 저주를 풀어주십쇼.』
『사흘째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이건가?』
내가 물었다.
느조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직접 가서 봐야겠구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 마을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내려갔다. 느조로의 보마에 도착하자, 그는 마누라의 움막으로 나를 데려가서는 수심에 잠긴 카마리의 엄마를 밖으로 불러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카마리는 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벽에 등을 기대고 무릎을 뺨까지 끌어당긴 채로 가는 다리를 팔로 감싸 안고 앉아 있었다.
『잠보, 카마리.』
나는 말을 건넸다.
카마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걱정하시더구나. 아버지는 네가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고 하시고 말이다.』
카마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내 보마를 정돈하겠다는 약속도 어겼더구나.』
여전히 카마리는 대답이 없었다.
『말하는 법을 잊은게니?』
내가 말했다.
『키쿠유족 여자들은 말하지 않아요. 생각하지도 않지요. 그냥 애를 낳고, 음식을 만들고, 땔깜을 모으고, 밭을 갈 뿐인걸요. 말할 필요도, 생각할 필요도 없잖아요.』
카마리가 가시 돋힌 말투로 대꾸했다.
『그렇게 불행하니?』
카마리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내 말을 들어보려무나, 카마리.』
나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내가 내린 결정은 키리니야가를 위한 것이란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이지. 키쿠유족 여자로서 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하는 법이야.』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계속 얘기했다.
『하지만 키쿠유족이건, 유토피아 평의회건 간에 개인에게까지 싫은 일을 강요할 수는 없지. 우리 부족의 누구라도 원한다면 떠나도 된단다. 이 세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우리가 서명한 헌장(憲章)에 따르면, 넌 그냥 헤이븐(Haven)이라고 알려진 지역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단다. 그러면 유지위원회의 비행선이 널 태워서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줄게다.』
『제가 아는 곳이라고는 키리니야가 뿐인걸요. 다른 곳에 관해서 배우는 것도 금지된 제가 어떻게 다른 곳을 고향으로 삼을 수 있나요?』
카마리가 대답했다.
『나도 모르겠다.』
나는 카마리의 말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저는 키리니야가를 떠나고 싶지 않아요. 이곳이 제 고향인걸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제 동족이구요. 저는 키쿠유족 여자애예요. 마사이족이나 유럽 여자애가 아니라구요. 남편의 아이를 기르고, 남편의 샴바를 경작하겠어요. 남편을 위해서 땔깜을 모으고, 식사를 준비하고, 남편의 옷을 짜겠어요. 제 부모님의 샴바를 떠나서 남편의 가족들과 살겠어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을게요, 코리바. 읽고 쓰는 법만 가르쳐 주신다면요!』
『그럴 순 없어.』
슬픈 어조로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왜죠?』
『네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누가 가장 현명하지, 카마리?』
내가 물었다.
『문두무구가 온 마을 사람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지요.』
『그러면 내 지혜를 믿어야 한단다.』
『하지만 전 마치 난장이 송골매가 된 것 같아요.』
카마리의 목소리에서 절망이 베어나왔다.
『새끼 송골매는 내내 하늘 높이 바람을 타고 솟아오르는 꿈을 꾸었지요. 저는 컴퓨터 화면에 나오는 글자를 읽는 꿈을 꿔요.』
『너는 절대로 송골매가 아니란다. 그 새는 날고 싶어도 날 수가 없었던거야. 하지만 넌 해서는 안될 일을 하려고 하는 셈이지.』
내가 대답했다.
『당신은 나쁜 사람은 아니예요, 코리바.』
카마리가 조용히 얘기했다.
『하지만 당신은 틀렸어요.』
『네 말대로 내가 틀렸다고 해도 난 그렇게 살아가야만 한단다.』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당신은 저 역시 억지로 그렇게 살아가야만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잖아요. 그게 바로 당신이 저지른 죄예요.』
카마리가 말했다.
『다시 한 번 내가 죄를 저질렀다고 말하면, 진짜로 너에게 싸후를 내리겠다.』
그 누구도 문두무구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해서는 안되기에 나는 엄한 말투로 꾸짖었다.
『저에게 어떻게 더 심한 저주를 내리실 수 있겠어요?』
카마리가 씁슬하게 말했다.
『널 어둠 속에서 죽은 사람의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로 만들겠다. 뱃속을 가시로 가득차게 해서 움직일 때마다 고통을 느끼게 할 수도 있지. 게다가…….』
『당신도 그냥 사람일 뿐이잖아요. 게다가 저에게 이미 가장 큰 벌을 내린걸요.』
카마리는 피곤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이제 더이상 네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엄마가 가져다 주시는 대로 먹고 마시려무나. 그리고 오후에는 내 보마로 찾아와.』
내가 말했다.
나는 움막을 빠져나와 카마리의 엄마를 시켜 카마리에게 바나나 죽과 물을 가져다 주라고 이른 다음, 베니마(Benima) 노인의 샴바에 들렀다. 들소가 그의 밭을 헤집고 다녀서 곡식을 다 망쳤기 때문에, 나는 염소를 잡아 베니마의 땅에 내린 싸후를 풀어주었다.
일을 마치고 코인나쥐의 보마에 들렀을 때, 그는 새로 담근 폼베를 대접하면서 새 마누라인 키보(Kibo)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툭하면 두번째 마누라인 슈미(Shumi)와 다투고, 큰 마누라인 왐부(Wambu)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언제라도 이혼한 다음 가족들에게 돌려보낼 수 있지 않소.』
내가 말했다.
『키보를 얻느라 암소 스무 마리에다가 염소를 다섯 마리나 치루었는데요! 키보의 가족들이 그걸 다시 돌려줄까요?』
코인나쥐가 불평을 했다.
『돌려주지 않을거요.』
『그렇다면 키보를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맘대로 하시구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내가 대답했다.
『신부값은 그렇다치고 키보는 힘도 좋고, 너무 사랑스러워요. 왐부와 싸우지만 않으면 정말 좋겠는데.』
코인나쥐가 투덜거렸다.
『무슨 일로 싸운답니까?』
내가 물었다.
『누가 물을 길어 올 것이냐, 누가 내 옷을 바느질할 것이냐, 누가 내 움막의 초가지붕을 수선할 것이냐, 뭐 그런거지요.』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계속 얘기했다.
『심지어 내가 밤에 누구 움막에 들 것이냐를 두고도 싸우더군요. 마치 나에겐 아무 선택권도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생각이 다르다고 싸운 적은 있던가요?』
내가 물었다.
『생각이라구요?』
코인나쥐는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책에 나오는 생각들 같은 것 말입니다.』
그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여자들인걸요, 코리바. 여자들에게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답디까? 사실 우리들 모두 생각이란게 뭐 필요하기는 한건지 모르겠군요.』
『나도 모르겠소.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게요.』
내가 말했다.
『걱정거리라도 있습니까?』
『폼베 때문일 거요. 이제 나도 늙었나 봅니다. 폼베가 독하게 느껴지니 말이요.』
내가 대답했다.
『폼베를 담글 때 왐부가 하는 말을 키보가 듣지 않아설 겝니다. 정말 어디로 보내 버리던가 해야지, 원…….』
코인나쥐는 키보가 힘차고 젊은 어깨에 나뭇단을 짊어지고 걸어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렇게 힘도 좋고 귀여운데…….』
갑자기 그의 시선이 새 마누라 뒷쪽의 마을로 옮겨갔다.
『이런! 시보키 노인이 결국 죽었나 보군요.』
『어떻게 그걸 아셨지요?』
내가 물었다.
코인나쥐는 가늘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가리켰다.
『그의 움막이 불타오르고 있잖습니까?』
나는 코인나쥐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저건 시보키의 움막이 아닙니다. 그의 보마는 훨씬 서쪽에 있어요.』
내가 말했다.
『그럼 죽을 때가 된 노인이나 갓난아기가 또 있던가요?』
코인나쥐가 물었다.
그때 갑자기 나는 깨달았다. 거룩한 산 꼭대기에 느가이님께서 계심을 아는 것처럼 확실하게, 카마리가 죽었다는 사실을…….
나는 서둘러 느조로의 샴바로 걸어갔다. 도착했을 때 카마리의 엄마와 여형제와 할머니는 눈물로 뒤범벅이 된 채 이미 곡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무슨 일인가?』
느조로 쪽으로 다가가며 나는 물었다.
『왜 제게 그걸 물으십니까? 당신이 그년을 죽여놓고서 말이예요.』
그가 내뱉듯이 대답했다.
『나는 카마리를 죽이지 않았네.』
『오늘 아침에 제 딸년에게 싸후를 걸겠다고 겁을 주지 않으셨나요? 당신이 그래서 카마리가 죽은 거라구요. 이제 저에겐 신부 값을 받을 딸년이 하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요. 게다가 카마리의 움막까지 태워야 했으니…….』
그가 중얼거렸다.
『신부 값과 움막 얘기는 집어치우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서 말해 보게나. 안 그러면 문두무구가 내리는 저주가 어떤 것인지 정말로 알게 해주겠네.』
나는 따끔하게 쏘아붙였다.
『들소 가죽끈으로 움막에서 목을 매달았습니다요.』
이웃 샴바에 사는 다섯 명의 여자들이 도착해서 곡을 해대기 시작했다.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이건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나무에 목을 매달거나 할 일이지……. 그러면 움막도 더럽혀지지 않았을테고, 나 역시 움막을 태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그만 입 좀 닥치게!』
생각을 가다듬느라 애쓰며 내가 말했다.
『그 애는 그리 나쁜 딸년은 아니었습죠. 왜 그 애에게 저주를 내리셨나요, 코리바?』
『나는 카마리에게 싸후를 걸지 않았네. 단지 그 애를 구하고 싶었을 뿐이라구.』
그 말이 진실인지 스스로도 자신이 서지 않음을 느끼며 나는 대답했다.
『대관절 당신보다 더 센 저주를 내릴 수 있는 자가 누구죠?』
느조로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카마리는 느가이님의 법을 어겼네.』
내가 대답했다.
『그럼 이제 느가이님께서 복수를 하시겠군요! 다음 번에는 가족 중에서 누굴 내치실까요?』
느조로가 벌벌 떨면서 신음했다.
『아무도 아니야. 카마리만이 법을 어겼으니까.』
내가 대답했다.
『저는 가난한 사람입니다요. 이제는 훨씬 더 가난해졌습지요. 느가이님께서 카마리의 혼을 동정과 용서로 구해주십사고 청을 드리려면 얼마나 내야 합지요?』
느조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네가 대가를 치루건 치루지 않건 내가 느가이님께 청을 드리겠네.』
나는 대답했다.
『정말 대가를 받지 않으시겠다, 이건가요?』
그가 물었다.
『받지 않겠어.』
『고맙습니다요, 코리바!』
그가 흥분한 말투로 얘기했다.
나는 선 채로 불타오르는 움막을 바라보았다. 움막 안쪽에서 녹아내리고 있을 꼬마 계집애의 시체 생각을 뇌리에서 지우려고 애쓰면서…….
『코리바?』
한참동안 말없이 서있던 느조로가 말했다.
『이젠 또 뭔가?』
화가 난 나는 거칠게 물었다.
『저희로서는 이 들소 가죽끈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요. 여기엔 당신이 내린 줄로만 알았던 싸후 자국이 남아있거든요. 그래서 겁이 나서 태우지도 못했습지요. 이제 이 자국을 당신이 아니라 느가이님께서 만드신 줄 알게 되었으니, 더이상 만지는 것도 겁이 나는군요. 이걸 가져 가시겠습니까?』
『자국이라고? 도대체 무슨 자국을 말하는 건가?』
내가 말했다.
느조로는 내 팔을 잡아 끌면서 불타는 움막 입구로 데려갔다. 입구에서 열발자국쯤 떨어진 곳 바닥에는 카마리가 목을 매달았을 때 사용했던 무두질한 가죽끈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끈에는 사흘 전 컴퓨터 화면에서 본 적이 있는 이상한 기호가 새겨져 있었다.
나는 몸을 구부려 가죽끈을 집어든 다음, 느조로를 바라보고 말했다.
『정말 자네 샴바에 저주가 내렸다면, 느가이님께서 내리신 이 자국을 내가 가져가 대신 짊어지겠네.』
『고맙습니다요, 코리바!』
훨씬 안심이 된다는 표정으로 느조로가 말했다.
『마술을 준비하러 난 이제 그만 가봐야겠네.』
나는 돌아서서 보마로 향하는 긴 길을 걸어갔다. 보마에 도착한 다음, 나는 움막으로 들어가 들소 가죽끈을 꺼내 들었다.
『컴퓨터, 작동하라.』
『작동되었습니다.』
나는 감지기의 렌즈 앞쪽에 끈을 든 채로 물었다.
『여기 적힌 말을 알아볼 수 있나?』
렌즈가 번쩍거렸다.
『예, 코리바. 그것은 카마리의 언어입니다.』
『뭐라고 적혀있는 건가?』
『2행 연구(連句)로군요.』
    『새장 속의 새들이 왜 죽는지 나는 알게 되었어--
    나 역시, 새들처럼, 하늘을 맛보았기 때문이지.』

그 날 오후 온 마을 사람들이 느조로의 샴바에 모여들었다. 여인네들
은 밤새도록 그리고 그 다음날까지도 곡을 해댔지만, 오래지 않아 카마리의 죽음은 곧 잊혀져 갔다. 그렇게 우리네 삶은 흘러가는 법이고,

카마리는 키쿠유족의 꼬마 계집애에 불과했으므로…….
그날 이후, 날개가 부러진 새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새를 데려다가 고쳐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새들은 늘 죽고 말았다.

그러면 나는 죽은 새를 카마리의 움막이 서있던 곳에 묻어준다.
죽은 새들을 그렇게 땅에 묻을 때마다 나는 카마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의 지혜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가슴에 떠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문두무구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소떼를 돌보고 곡식이 제대로 영글기만을 걱정하는 소박한 사람에 불과했으면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5개의 댓글

2017.07.29
아아아 이야 와아아아
0
2017.07.29
내용이랑 상관 없지만 느가이 느조로 느데미는 사실 은가이 은조로 은데미로 발음함.
0
2017.07.30
이것도 우울한 이야기네
0
2017.07.30
햐 내 인생을 반성하게 만드는 단편이다
0
2017.07.30
오 키리냐가도 올라오네

코리바 색히 케임브리지에 예일도 나온 놈이 슈ㅣ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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