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길다) 일본 아사쿠사 갔다온 이야기

작년 9월인가 즈음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머리도 식힐 겸 일본을 갔다왔었는데,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까 그 때 겪었던 느낌이 다시 생각나는 것 같아서 적어봄. 

3박 4일간 다녀왔는데, 치바에 사시는 아는 분 댁에서 자서 경비를 생각보다 아낄 수 있었다. 


여행 내내 도쿄 거리를 걷고 걷고 또 걸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 없이 혼자서 다니니까 홀가분하고 좋더라. 나만의 템포대로 내가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 마음대로 들쑤시고 다니는 그게 너무 재미있었다. 


신세지는 누님한테 맨 처음 다녀올 곳으로 어디가 좋을까 하고 물어봤더니 아사쿠사가 일본 분위기 나고 좋다더라. 선뜻 그러마고 하면서도 '남대문같이 순 관광지 분위기 아니야?' 싶어서 못 미더웠는데, 막상 거리에 들어서니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가 벌써부터 설레게 한다. 


여행하는 내내 비구름이 낀 날씨였는데, 맑게 개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장대비가 쏟아지지도 않아서 그다지 불편하진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적당히 안개 낀 하늘과 촉촉한 빗내가 더 운치있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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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주오역에서 쭉 전철을 타고 아사쿠사바시역에서 내려 길가로 들어서면 바로 눈에 띄는 이 곳, 코마가타도죠. 백화점과 온갖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틈새에 혼자 아담하게 서 있는 모습이 제법 단아하다.


간략한 역사를 소개하는 목패가 있어 들여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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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400년 전부터 있었다는 모양이다. 본래 이 사당의 주변에는 강을 낀 항구와 여관들, 그리고 상점들이 있었다는데, 센소지에 가려는 사람들은 뱃길에서 묻은 액을 씻어내고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기 위해 이 곳에서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신년이면 전국에서 센소지를 찾는 인파들이 몰려온다는데, 아마도 우리나라의 보신각 같은 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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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박사박 기분 좋게 밟히는 일본식 자갈 정원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조그마한 샘이 있다. 손도 씻고 입도 헹구는 일종의 약수터 같은 모양인데, 비도 내리고 썩 미덥진 않아서 그냥 사진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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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안에는 작은 상 위에 올려진 소금과 잔이 있었는데, 자세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하얀 물건이니 액을 씻어낸다는 의미겠지? 주변에 사람이 있었다면 물어봤겠지만 워낙에 조용한 분위기라 역시 사진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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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함에 돈을 넣고 금줄을 당겨 종을 울린 다음 합장을 하고 기도를 드리는 신토식 치성도 할 수 있는 모양인데, 외국인인 내가 어설프게 따라했다가 뻘쭘해질 것 같아서그냥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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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가타도죠에서 한 발짝 나오면 현대식 거리다. 그래도 강남이나 시부야같이 숨이 턱턱 막히는 빽빽한 빌딩 숲은 아니고, 적당히 번화가같은 느낌이다. 군데군데 ‘이 곳은 아사쿠사.’ 라는 듯이 전통식 외장을 한 곳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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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걷다 보면 센소지의 정문 가미나리몬이 보인다. 일요일이라 그 앞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가까이서는 찍지 못했지만, 가운데에 아사쿠사의 상징인 커다랗고 빨간 등이 보인다. 


거리에는 관광객들과 그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려는 가게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그렇다고 해도 서울의 남대문 마냥 번잡한 분위기와는 살짝 거리가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사람들은 인력거꾼들이다. 삿갓을 쓰고 관광객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한 번 타보지 않겠냐고 권유하던데, 비 오는 날씨라서 영 손님이 없어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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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나리몬을 지나면 나카미세도리, 여러가지 관광 기념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쭉 늘어선 거리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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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그럴 듯하게 잘 만들어진 일본도와 여러 주전부리들, 그리고 기타 여러가지 “일본”의 물건들을 파는 거리. 일렬로 쭉 늘어선 거리에는 그야말로 인파의 행렬이다. 


한창 비가 쏟아지는 날씨인데, 하도 사람이 많고 그 중에 우산 펴고 걷는 사람이 팔할이니 여기저기서 “스미마셍” 이 들려온다. 우산 부딪히는 것에 지쳐 우비를 챙겨온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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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에 미어터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까지 맞고 있으니 꼭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한 가지 인상깊었던 건 그렇게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쓰레기를 본 적이 없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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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를 뚫고 뒷골목으로 빠져나왔더니 눈에 띄어서 사먹은 당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곧잘 나오는 바로 그 간식이다. 쫄깃쫄깃한 떡에 달착지근하고 짭조름한 간장소스가 발려져있어 근사한 맛이다. 한 개 2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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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미세도리 옆쪽으로 빠지면 나오는 거리. 확실히 오가는 사람이 적어서 천천히 걸어볼 수 있었다. 군데군데 기모노를 차려입고 한껏 멋을 부린 여자들이 보인다. 아마도 다른 지방에서 올라와 도쿄 구경에 나선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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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를 걷다가 발견한 조그마한 사찰. 풍겨오는 향내가 예사롭지 않아 들어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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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으로 들어와보니 몹시 고요하고 차분하다. 나카미세와 센소지의 와글와글함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확실히 일본에 있긴 하구나.” 는 느낌. 석등과 작은 나무들로 꾸며진 작은 정원 가운데에는 앞서 돌아본 코마가타도에서 봤던 것과 같은 샘터가 있다. 입을 직접 대고 마시면 안 된다는 경고문이 친절히도 한글로 적혀있는게 살짝 언발란스한 느낌. 


코마가타도죠와 같은 이유로 물은 마시지 않고 사진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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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모자와 망토를 두른 돌부처들.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왼손에는 약주머니를 든 관세음보살의 발치에는 역시 모자를 쓴 갓난쟁이들이 보살님을 바라보며 옷자락을 붙들고 있다. 아마도 관음보살의 보살핌을 간절히 바라는 중생들의 모습을 나타낸 것일거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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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곳도 일본식 치성을 드릴 수 있게 되어있다.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한 분이 꼬부랑 걸음으로 다가오셔서 시주함에 동전을 넣더니, 간곡한 손짓으로 연신 땋아내린 끈 위에 매달린 종을 울린다. 뭔지는 몰라도 그럴만한 사연이 있어보이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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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옆에는 둥치가 한아름이나 되는 나무가 서있다. 사진에서 보이진 않지만 뒤쪽 울타리 너머에는 모노노케 히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정원과 연못 위로 백로 한 마리가 안개 속에서 여유롭게 걷고 있다.


도심에서 불과 백 몇 미터 떨어져 있다고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 고즈넉한 풍경을 즐기며 차분히 내리는 빗 속에 흐르는 향 내음을 맡고 있자니 무언가 신령스러운 분위기마저 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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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오른쪽에 이 절과 센소지를 간략하게나마 안내해주는 데스크가 있다. 안쪽에 계시던 승려복을 차려입은 아주머니에게서 한국어로 쓰인 안내책자를 받아볼 수 있었다.


이 아담한 절의 이름은 친고도. 한국 한자 발음으로는 진호당이다. 본래는 오타누키사마-큰 너구리님-라는 신을 모시던 신사로써, 화재와 도둑을 막아주는 신이 머무른다고 여겨졌다 한다. 


그리고 1872년, 센소지의 사미승이 터줏신 너구리가 스님들의 거처에 장난치러 오는 것을 불도의 힘으로 막고자 주지스님에게 청하여 관음보살상과 절간을 세운 것이 지금의 친고도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맨 처음에는 신토의 신과 돌부처상이 한 곳에 모셔져 있는 것이 포용성 있는 일본 종교의 모습이라 생각했는데 자세히 알고 보니 무언가 미묘한 대립이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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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짠 빨간 모자. 겨울에 춥지 말라고 털모자를 잣는 일본 아줌마의 모습을 상상하니, 모자 쓴 관음보살이 귀여워 보이면서도 나름의 깊은 믿음과 정성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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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린 관계로 오늘은 여기까지. 실제로 이 날에는 친고도, 센소지 본당까지 둘러본 뒤로 선물들을 두 손 가득 안고 (물론 대부분은 센베나 당고같이 먹는 것들이었다. ) 치바로 돌아왔다. 

7개의 댓글

2018.04.11
내일은 아사쿠사인가..
0
KN
2018.04.11
저저번주 벚꽃한창일때 아사쿠사 갔었는데 사람 미어터짐...진짜 ㅋㅋ
0
2018.04.11
아사쿠사 실크푸딩이었나 그거 맛있다고해서 사봤는데 엄청맛있진 않고
근처에서 장어덮밥 먹었는데 그건 오지게 맛있더라
0
2018.04.11
거리 사진 예쁘다
0
2018.04.12
아사쿠사다녀온지 벌써 세달째네 난 좀 늦게가서 어둑할때갔었음
신년시즌이라 마쯔리 분위기나서 좋았다 신년운세도 뽑아봤는데 길인거만보고 내용해석 못했는데 ㅋㅋ
0
2018.04.12
아사쿠사 비행기 시간때문에 가서 한시간도 못본거 너무 아쉬웠는뎅...
0
2018.04.13
와 나도 아사쿠사 갓다가 당고 먹었는데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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