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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에 담긴 이야기 - 해변 -

20170412_225056.png 흑백사진에 담긴 이야기 - 만들어진 악마 -



이 사진은 1946년 7월 1일에 찍힌 사진이다. 


그저 단조로운 해변을 찍은 사진 같지만 이 사진에 담긴 이야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무서운 무기에 대한 이야기다.



20170412_225809.png 흑백사진에 담긴 이야기 - 만들어진 악마 -


1945년 8월 21일 오후 9시 30분경 한 젊은 물리학도가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실험실의 경비를 맡고 있던 이병과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근무시간을 넘기고 누군가 혼자 일하는 것은 그가 지키고 있던 실험실의 목적상 그리 적절치 않았고 또한 안전하지 않은 행동이었기 때문에


이병은 문제가 된다며 물리학도를 막아섰지만, 물리학도는 자신은 앞으로 있을 실험을 위해 준비를 해야한다며 소리를 질렀다.


 

모든 책임은 자기가 지겠다며 물리학도는 억지로 실험실 문을 박차며 들어갔다. 


이병이 문밖에서 대기하고 문제가 생길시 상부에 연락하는 조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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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도의 이름은 해리 K. 더그힐란 2세,  24살의 물리학자로 1938년 17살의 나이에 MIT에 들어간 총망한 천재였다. 


1942년에 학사 학위를 받고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준비중이던 이 치기 어린 젊은 물리학도가 만들고 있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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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핵폭탄이었다. 


그는 '맨하탄 프로젝트'의 일부 파트를 도맡아 연구하던 중이었으며, 이 역사적인 프로젝트를 위해서라도 빨리 자신의 연구를 마치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그날 더 서둘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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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힐란의 일거리는 위험했지만, 매우 간단했다. 앞으로 있을 핵실험 준비에 쓰일 6.2kg의 플루토늄 덩어리에 중성자 반사재인 텅스텐 벽돌을 쌓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벽돌을 순조롭게 바닥을 중심으로 천천히 쌓아갔고 경보장치 또한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1시간도 안되 일이 끝날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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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종적으로 마무리를 지으려 마지막 벽돌을 쌓는 순간 갑자기 경보장치에서 임계상태를 알리는 경고음이 들렸고 문밖에서 격한 경고음을 들은 군인의 외침에 더그힐란은 벽돌을 치우려 천천히 떨리는 왼손으로 벽돌을 잡았다.


하지만 그순간 다시 울리는 경보장치의 경고음으로 놀란 더그힐란의 손에 힘이 빠져버렸고. 벽돌은 그대로 플루토늄 덩어리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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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이 플루토늄 덩어리에 부딪히는 순간 곧 뜨거운 열기와 희미한 푸른 빛이 실험실 전체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본래 임계질량 미만의 플루토늄 덩어리였지만 부딪힌 순간 벽돌이 중성자 반사재 역활을 하여 핵 연쇄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놀란 더그힐란은 몇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재빠르게 벽돌을 치웠고 실험실 내부를 뒤덮은 열기와 푸른 빛, 그리고 경보장치의 경고음은 잦아들기 시작했다.


더그힐란은 실험실에서 핵폭발이 일어나는 초유의 사태는 막았지만, 이내 곧 그는 절망할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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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반응을 일으키던 플루토늄 덩어리 근처에 더그힐란의 몸은 방사능에 피폭당했고 그가 받은 방사능의 양은 5.1 시버트에 달했다.


이미 벽돌이 떨어진 시점에 그의 삶은 끝이난 샘이었다. 결국 사고가 터지고 난 25일 후 젊고 유망했던 물리학도는 사망하였다.



실험실 문밖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던 군인 로버트 J. 해머리 역시 피폭되었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피폭지에서 멀리 떨어져있었던 상황이던 그는 33년뒤 방사능성 백혈병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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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힐란의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난지 10개월 후인 1946년 5월 21일


평범한 캐나다 출신의 물리학자 루이스 슬로틴은 다른 7명의 과학자들과 실험을 하고있었다. 


사실상 이 실험은 슬로틴에게 그렇게 중요한 실험은 아니었다. 슬로틴은 자신의 연구가 폭탄제조에 사용된다는것에 대한 회의감으로 인해 지쳐 있엇다.


그는 그저 시카고의 대학으로 돌아가 생물 물리학과 같은 평범하고 평온한 연구로 돌아가고 싶어했고,



20170412_231628.png 흑백사진에 담긴 이야기 - 만들어진 악마 -

이번 실험이 퇴직 의사를 밝힌 자신을 대신할 새로운 연구원 '엘빈 그레이브스'에게 인수인계를 마치는 마지막 실험이 될것이라고 슬로틴 본인은 생각하고있었다.


이들이 시작한 실험의 내용은 앞으로 있을 핵실험을 위하여 두 덩어리의 플루토늄이 붙을 경우 연쇄 반응이 일어날 정도의 양인지 확인하는것으로, 중성자 반사재인 베릴륨으로 제작된 두개의 반구로 각각 하나씩 플루토늄 덩어리를 감싼뒤 이를 하나로 합치는 것이었다.


얼마 전 저명한 물리학자 로버트 파인만이 말하길 핵을 가지고 하는 실험은 '성난 용의 꼬리를 간지르는 것과 같다.'라고 그 위험성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정작 슬로틴은 대수롭게 생각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이 플루토늄 덩어리들을 붙혔다가 다시 분리하는 실험은 자신이 수도없이 해본 실험이였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안전규정상으로 지정된 실험장비만을 사용하였지만, 오늘은 딱히 그러한 거추장스러운 물건들은 필요도 없었다.

그에겐 그저 두 반구사이를 지탱할 물건 하나와 핵융합의 시작을 알리는 경보장치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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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가 3시 30분을 가르킬 무렵 두개의 플루토늄 덩어리를 다른 과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슬로틴은 자신의 엄지손가락으로 위쪽 반구를 붙잡은채 오른손으로는 스크류 드라이버를 밀어넣어 반구의 높이를 조절했고, 시험은 성공적으로 흘러가는듯 했다.



악마의 장난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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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을 끝내고 두개의 반구를 분리하려던 순간 그의 손에 들려있던 드라이버가 바닥으로 미끄러졌고, 그것을 본 실험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경악했다.


즉시 두개의 반구는 하나로 합쳐져 핵융합이 시작되었으며 실험실에는 뜨거운 열기와 푸른빛이 점차 넓게 퍼지고 있었다. 


정확히 10개월 전 더그힐란의 실험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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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드라이버를 다시 주워 반구사이에 끼워넣는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핵분열을 일으킨 플루토늄의 밀도는 같은 양의 강철의 약 2.5배 가량으로 수십kg가 넘는 무게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드라이버를 반구에 끼워넣는다고해도 시간이 지체되어 실험실 안의 모두가 방사능에 과다하게 피폭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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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틴은 손에서 드라이버가 미끄러질때 자신이 죽는다는 걸 이미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피폭되면 


어떠한 사람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플루토늄 덩어리와 거리가 먼 동료 과학자들은 다를것이란 생각이 들자


그 순간 슬로틴의 머리속은 그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명확해졌다.


실험실의 모두가 절망하고 있을 때 갑자기 실험실을 가득 매우던 열기와 푸른빛이 희미하게 사라지기 시작했고


패닉에 빠졌던 과학자들은 주의를 둘러보다 다시한번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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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틴이 망설임 없이 자신의 맨손으로 위쪽의 플루토늄 반구를 밀어낸 것이었다. 


위쪽의 반구가 떨어지자 맹렬히 실험실 안에서 활동하던 핵은 멈추었고, 모든것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과학자들이 맨손으로 플루토늄을 만진 슬로틴을 부축하려 움직이자


그 즉시 슬로틴은 다른 동료들에게 움직이지 말것을 당부하였고, 자신의 옆에 있던 분필로 바닥에 동그란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슬로틴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짐작도 못한 7명의 과학자들은 이내 곧 그의 의중을 깨달았다.


바닥에 그리던 것은 슬로틴이 동료들을 위해 피폭당한 거리와 피폭량의 상관관계 데이터를 계산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그는 사고가 벌어진 실험실에서 나오자마자 자신을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용의 꼬리를 만지다 물렸다며 농담을 건넸다.


이윽고 슬로틴은 피폭의 영향으로 구토하기 시작했고 동료들과 같이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다.


맨손으로 플루토늄을 제거한 슬로틴의 숭고한 희생으로 인해 다른 7명의 과학자들은 살아남았지만, 21시버트의 방사능에 직격으로 피폭당한


슬로틴은 그러지 못했다. 시카고 대학에서 여생을 보내려했던 그는 사고 발생 9일만에 숨졌다.


사고에서 살아남았던 7명의 과학자들도 결국 모두 20~30년이 지난 후 전원 방사능성 질병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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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우연의 일치였을까. 슬로틴의 목숨을 앗아간 플루토늄은 바로 10개월전 더그힐란의 목숨을 앗아갔던 바로 그 플루토늄이었다. 


10개월만에 발생한 똑같은 초임계사고로 과학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 플루토늄은 그때 사람들에게 불렸던 특별한 별명을 가지고 있다.


'Demon Core : 악마의 핵 '



이후 이 플루토늄 덩어리는 두달 뒤 1946년 7월 1일 에이블이라 명칭된 핵무기에 실려 B-29에 실려 남태평양으로 날아갔고 지금도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단어의 어원이 된 실험에 동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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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비키니섬 핵실험에 말이다.





5개의 댓글

2017.04.13
잘읽고가요
0
2017.04.14
에펨에서 읽어서 불펌인가 했더니 본인이네
재밌게 보고있음
0
2017.04.14
뭔가 무섭구맠
0
그리고 비키니 섬에 쓰인 핵폭탄도 고질라 죽이는데는 실패함
0
2017.04.15
사진이 안들어간지도 모르고 올려놨었네요 ㅠㅠ; 수정했습니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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