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괴담

자작 - 우울증에 걸린 또 하나의 제가 고민입니다

이번엔 아슬아슬했다. 눈을 떠보니 이미 발 한 짝은 허공 위였던 것이다. 바람이 옥상 쪽으로 몰아치고 있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균형을 잃고 떨어졌다. 이 정도 높이였다면 추락하는데 3초? 4초? 무의식중에 중력 가속도 공식을 어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질려버렸다.
일단 난간에서 멀어진 후 주변을 살핀다. 벗어놓은 신발, 신발 밑에 깔린 유서. 내용은 짧지만 꽤 본격적이다.

죄를 많이 지었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들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자살이 사죄는 되지 못하겠지만 일말의 성의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죄인들이 다들 하는 얘기지만 결코 본의는 아니었음을 ……

그 밑은 이해할 수 없는 헛소리 뿐이었다.
다들 열심히 살고 있고, 가끔씩은 서로 민폐도 끼치지만 많은 경우 서로에게 의존하면서, 서로에게 고마워하면서 산다. 이 놈은 시야가 좁은데다가 세계가 편협하고 자기 매몰적인 인간 폐물이다. 어쩌면 정말로 하루 빨리 자살하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친구로는 두고 싶지 않은 타입이다.

유서를 적당히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신발을 신은 다음 이름모를 아파트 아래로 내려갔다. 다행히 아파트 주차장에서 내 차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차에는 외부인 주차금지라는 딱지가 우울하게 붙어있었는데, 무슨 요행인지 내 차에는 껌딱지도 안 붙어 있었다. 운수가 좋다. 시동을 걸었다.
날씨도 쌀쌀하고 기분도 으스스한 것이 뱃속에 따뜻한 것이라도 좀 넣어야 몸을 움직일 수 있겠다 싶어서 자주 찾는 추어탕 집에서 뜨끈한 국물을 좀 넣었다. 아아, 살만하다. 오천원 푼돈으로도 이렇게 삶에 대한 의지가 샘솟을 수 있는데 왜 죽으려고 할까.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를 떠올리곤 포장도 하나 추가했다. 요즘 관계가 한창 냉랭한 것이 결코 먼저 밥 해놓고 기다리고 있을 상은 아니다. 어쩌면 또 다른 내가 자살 충동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아닐까. 문득 설렁탕을 사 들고 집에 들어가는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떠올랐다. 집에 들어가니 멋대로 혼자 죽어있는 아내의 이미지. 확실히 그 정도의 일이라면, 나라도 자살 충동을 느낄 만할 것이다.
그럴 수는 없지만.

“잘 먹었습니다! 또 올게요!” 

의사는 다중인격장애를 말하면서, 그것이 많은 부분 방어기제에 기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기억을 공유하지 못하는 형태의 다중인격이라면, ‘잘못을 저지른 나’를 나와 분리해버림으로서 트라우마로부터 자신의 멘탈을 지키려는 무의식의 시도일 공산이 높다고 한다. 그 ‘자살의 이유’라는 것을 지금의 나는 모르고 있기 때문에 나는 무척 쿨하게 지낼 수 있지만, 다른 인격은 그것을 뼈아프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트라우마와 충동적 행동의 상관적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의사는 집중적인 입원치료를 권했다.
물론 거절했다. 나에겐 당장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는 것이다. 당시엔 다른 인격의 자살 시도라는 것도 무척 귀여운 수준이라, 술을 진탕 먹는다던지(숙취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경찰 보고 자신을 총으로 쏴 달라고 사정하는 정도였고, 내가 걱정스러웠던 것은 이중인격의 발현 자체였지 그로 인해 정말로 죽게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랬던 것이 요즘은 눈 떠보니 한강 아치 위에서 의로운 시민과 정겹게 손 잡고 있다던가, 욕조가 내 피로 물감통이 되었다던가, 아니면 오늘 같은 일이 되었다. 의사의 조언을 슬슬 다시 재고해봐야 할 듯 하다.
어쩌면 한 번쯤은 나한테 편지라도 써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식으로 삶에 대한 의욕을 다시 불러 일으켜 줄 수 있을까? ‘세상은 아직 아름다워요’, ‘넘겨보지 못한 페이지, 먹지 못한 음식들, 만끽하지 못한 여체들’, ‘자살은 사후 세계에서의 영원한 고통!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어느 것도 나를 혹하지 못하는 걸로 보아 나라고 해서 그리 마음이 흔들릴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역으로 내가 삶에 대해 가지는 애착의 이유를 되집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 또한 녹록치 않았는데, 삶에 대한 내 애호는 모조리 양가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 안정된 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편안함 등은 다른 말로 하면 닥쳐올 미지의 불행, 반복되는 일상의 단조로움이다. 중학교 교과서에서도 나오는 긍정적 사고의 중요성 - ‘물이 반이나 남았네!’,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네!’ - 의 오류는, 긍정적인 사고 방식이 누구에게 강요해서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역시 또다른 나만 알고 있다고 하는 그 ‘자살의 이유’라는 것을 알아내지 못하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예의 유서를 꺼낸 다음에 맨 밑에 몇 자 적었다. 
답장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역시나 집에는 싸늘한 공기만 맴돌고 있었다. 추어탕을 냄비에 넣고 불을 올린다. 둘이서 있기엔 너무 넓은 집이다. 보글보글 끓기 시작할 때쯤 나는 조용히 아내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불은 꺼져 있었다. 나올 때 끄고 나왔으니 당연하겠지. 등 뒤로 문 틈의 빛이 새어나와 그 파편으로 방 안을 비춘다. 아내는 침대 위에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나는 뺨을 애교있게 두드렸다.

“일어나. 추어탕 사왔어. 추어탕 먹을 줄 알지?”

소스라치며 일어나더니 곧 부들부들 떨면서 입을 연다.

“……살려주세요. 절대 아무한테 말 안하고 조용히 집에 가서 있을게요. 원래 가출도 많이 했으니까 저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를거에요. 제발요, 아저씨. 경찰은 진짜 절대 안 부를게요.”

 모든 말이 실망스러웠지만, 특히 경찰이라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나는 무척 슬퍼졌다. 아, 이번 결혼도 실패인가. 낙담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을 건네본다.

“무슨 소리야. 우리 사이에 경찰 같은 게 껴들 이유가 어디 있어.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하고 감사해야 하는 관계잖아? 헛소리 하지 말고, 추어탕 가져올테니까 그거나 일단 먹고 말하자, 응? 난 널 위해 모든 걸 하고 있는데 넌 자꾸 우리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려는 것 같아.”

 부들부들. 부들부들. 이젠 지겹다. 나라고 계속 아내를 쇠사슬에 묶어 놓고 용변 받아주면서 날 볼 때마다 부들부들 떠는 걸 견디고 싶은 게 아니다. 왜 이리 멍청하고 자기 중심적일까. 자신을 위한 더 크고,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젠 말도 하기 싫다. 나는 묵묵히 추어탕에 밥을 한 공기 말아 침대 위에 가져다 주었다.
실패한 결혼들, 얼마나 많은 아내들과 사별해야 했던지. 그래도 이번 아내는 지난 번 아내보다는 낫다. 그녀는 먹여주고 재워주는 은혜도 모르고 나를 향해 기운이 남아있는 한 계속 고함 질렀다. 하도 기운 차길래 일주일 쯤 집에 안 들어갔더니 죽어버렸다. 나라고 그런 결과를 바랐던 것은 아니다. 깨진 손톱과 잇조각들, 용변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상태에서 사람이 널부러져 있는 걸 보고 혐오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조금은 즐거웠지만.

 이젠 전부인들이 방을 모조리 잠식하고 있는 터라 집 안은 냄새도 심하고 비어있는 방도 없다. 좀 귀찮아도 한 방에 다 정리해 놓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러는 김에 이번 아내와도 슬슬 사별해야겠다. C’est la vie.


 다시 눈을 떴고, 눈을 떴다는 사실은 무척 절망스러웠다. 자살을 결행했을 때마다 써버린 용기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서, 조용해진 집에서 방문을 열어보는 일조차 삼심 분 이상 걸렸다. 가장 최근에 누군가가 소리 지르던 방을 들어가보니 아무도 없었기에, 아, 드디어 이 비극도 그 결말에 다다랐구나, 고 잠깐 생각했지만, 가장 큰 방에 시체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는 것을 곧 발견하곤 땅만 바라볼 뿐이었다.
인기척을 낼 때마다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고 소리지르던 여자도 있었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여자도 있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그들이 있는 방엔 들어가보지도 못했고, 이제야 그들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처음으로 집에 모르는 여자가 감금되어 있을 때, 첫 시체가 썩는 냄새를 내기 시작했을 때, 그 때 경찰에게 신고했더라면. 이제 모든 것은 너무 늦었다. 그 어떤 것도 마주할 자신이 없다.
주머니에서 종이가 바스락 거리는 느낌이 났다. 꺼내보니 그것은 내가 썼던 유서였다.

……알아줬으면 한다. 물론 그것들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라고는 해도 나는 그런 일들이 더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었다. 피해자들과 유족들께 진심으로 죄송하고 사죄드린다...   나한테는 안 미안해? 뭐가 문제야?

아. 아.

2개의 댓글

2017.12.19
오우..
0
2017.12.20
올ㅋ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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