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괴담

우울증

눈을 뜨면 좁은 방의 풍경 그대로이다변하는 것은 없다오로지 혼자만이 있다차라리 이게 낫다.

 

고시원의 1.5평은 나에게 안정을 준다그래이것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이곳에서는 그 누구의 눈치도 방해도 없다할 수 없는 것가질 수 없는 것은 많으나 상상만은 자유이다상상 속에서 난 재벌이며 슈퍼맨이며 한류스타이며 카사노바다내 맘이다이것에 죄악을 느낄 필요는 없다.이것이 누군가를 해하거나 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는다오로지 내 머릿속에서나 멸망당할 뿐언제나 현실은 그대로다.

 

우두커니 앉아 멍하니 환상을 누빈다현실에 들어선다는 것 자체가 불만이다저 문 바깥의 세상그저 남들처럼 해라중간이라도 누려라일해야 먹고 산다, ‘오빠 오늘 뭐해?’ ‘짜식 오랫만이다잘 지냈냐?’ ‘김대리요즘 힘든 일 있어?’ ‘거점 뚫려요뭐해요발로 컨트롤하냐?’ 따위의 세상은 필요 없다그저 혼자 있고 싶다아무리 아침이 되고 해가 뜨고 활기찬 하루가 시작되어도 이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공간은 불을 켜지 않는 이상 어두컴컴하다.

 

벗어날 수 없다인간은 신이 아니다한계가 있다오랜 시간이 흐르면 투쟁은 포기로 변형된다이제 지쳤다. 15너무 오랜 세월을 내던졌다앞에 보이는 것은 끝도 없이 뻗어난 어두운 터널출구조차 보이지 않는 동굴 속을 해맬 뿐이다한때 꿈꿔왔던 작은 것들조차 망상이라 여기며 피식실소만이 나올 뿐이다.

 

어떤 위로도 필요 없다위로라는 것은 위의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쯧쯧혀를 찰 때나 하는 것이다이타심과 이기심은 같다어차피 발현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닌 내 자신 속에서 나타난다그 속에는 동정연민과 같은 계급이 등장한다이 세상 모든 것은 위 아래로 나누려고 애쓴다그딴 것이 끝도 없이 이어지다보면 허무하다는 것을 알아챈다그러나 그때는 너무 늦다자신을 이미 갉아먹을대로 갉아먹힌 상태다남은 쭉정이가 외쳐댄다. ‘왜 그랬을까.’

 

두 시간을 허리만 일으킨 채로 삐그덕대는 낡은 침대위에 멍하니 앉아 있는다이제 곧 뱃속에서 꼬르륵하는 구걸소리가 들릴 것이다꼴에내 딴에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이 생존시스템은 여전히 굴러간다내 의지가 아니다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내 의지가 아냐내 의지대로라면 난 이미

 

예정대로 알람이 울리고 그제 서야 몸을 일으킨다운동부족으로 인해 두 어깨와 무릎 한 쪽이 시큰하다배만 요상하게 거부마냥 뽈록 튀어나와있다.아니다이것은 아귀라는 귀신의 뱃가죽이다배는 굶주리는데 배만 뽈록 튀어나온다이런 배를 화장실의 거울을 통해 바라본다그러고는 또 다른 내 자신의 비웃음이 들려온다생긴거 봐라그딴 얼굴로 바깥을 나가겠다는 거야등신새끼왜 사니넌 대체 하는 일이 뭐야왜 살아여태 살아오면서 뭘 해낸 거야남들은 저리 열심히 뛰고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벌레같은 네 새끼는 대체 이제껏 뭘 이뤄내고 사셨습니까?

 

거울을 바라볼 수 없다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조용히 샤워기를 돌려 물을 뿜어낸다고개를 천장으로 향한다덕지덕지 검은 곰팡이가 눈에 들어온다그래저 미생물도 살아보겠다고 저렇게 열심히 알을 까는데 넌 대체 뭐니뭘 한거니?

 

왜 사니?

 

샤워호스 줄로 목을 칭칭맨 상상이 펼쳐진다멈춰야한다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보지만 멈춰지지 않는다그곳에는 고통뿐이다영원한 어둠이다내 죄가 씻겨질때까지 영원한 구걸은 계속된다알고 있었다난 절대로 천국을 갈 수 없다그래서 아무리 고통스러워도절대 상상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괴롭지 않아넌 쉴 때가 됐어잠깐이면 돼.

 

질책과 비난은 이제 타협으로 돌아선다안 돼그만 둬한시간동안 계속되던 샤워는 끝내 멈춘다몸을 대충 닦아내고는 거친 빗질이 시작된다벌거벗은채로 머릿결을 신경질적으로 박박 밀어낸다머리카락 몇 가닥이 우수수 떨어지지만 신경쓰지 않는다어서 이곳을 나가야 한다계속되는 질책과 유혹이 머릿속을 맴돈다멈출 수가 없다이건 내 의지가 아니다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

 

옷을 대충 두르고 밖으로 나선다두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있다내 삶에 유일한 소중한 재산이다흘러나오는 음악이 괴로운 망상을 막아낸다음악에 맞춰 다시 행복한 상상이 펼쳐진다그 속에서는 난 재벌이며 슈퍼맨이며 한류스타이며 카사노바다이 세상 거칠게 없이 앞으로 나가는 당당한 자다.누구나 부러워하며 누구나 고개를 숙이며 누구나 좋아해주는 그런 인간이다.

 

산책길은 정해져있다. 1년간 항상 같은 길이었다제법 녹음진 수풀이 쭉 펼쳐진다그 옆에는 좁은 강이 넘실넘실 흐른다음악을 들으며 그 길을 걷는다내 삶에 유일한 안락이다이 순간만큼은 자책도 고문도 실망도 후회도 사라진다이때만큼은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다이때만큼은 미소를 지을 수 있다잠시나마 희망을 느낀다내 딴에 살아보겠다고머리는 이렇게 상상을 펼쳐준다.

 

이 앞길에 노란색 테이프가 보인다사람들이 몇몇 모여 웅성거리고 있다잠수부로 보이는 몇몇이 강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눈빛이 날카로운 몇몇이 수첩에 뭔가를 적어가며 주위를 살피고 흰 가운을 입은 자들이 연신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댄다그 가운데 하얀 천으로 뭔가를 덮어놓은 것이 보인다하필이면왜 빌어먹을 하필이면내 산책길 한 가운데를 막아서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또 다시 인생에 이런 일을 맞딱뜨렸다어째서어째서!

 

나는 피하지 않았다허나도저히 흰 가운으로 덮인 존재를 쳐다보지 못했다남들은 구경하느라 두리번거리며 희희덕거리는데 내 자신만이 땅바닥을 쳐다볼 뿐이었다다시 그 시간이 다가왔다심장이 뛰기 시작했다과거가 떠올랐다저 깊이 박아두고 꽁꽁 싸매뒀던 그림자가 슬금슬금 기어올라왔다.공포가 엄습했다어쩔 수 없어넌 이렇게 살아가야할 존재야.

 

체념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그리고 내 눈에 저 흰가운에 덮인 존재가 슬금슬금 허리를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심장박동은 빨라지지만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그 존재는 이제 몸을 일으키고 주위를 살펴보았다오래됐는지 누덕누덕 흘러내리는 살점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매스꺼운 냄새가 퍼져나갔다천천히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리던 그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한쪽 눈알이 대롱대롱 매달린 시체는 슬금슬금 내 앞으로 다가온다나는 알고 있었다또 다시 신을 저주하며 내 자신 스스로를 뜯어먹을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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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심하다.”

 

박형사는 역한 냄새를 막기 위해 코를 틀어막았다덕분에 그의 목소리는 맹맹하게 들려왔다한 손으로 들고있던 흰 가운을 다시 내려놓았다.

 

일주일은 지난 거 같아정확한 건 아냐.”

 

부검의로 보이는 남자가 박형사에게 말했다박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을 펼쳤다볼펜을 찾기 위해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지다가 주위에 구경꾼이 많다는 것을 인지했다.

 

사파리 열었어통제 안해?”

 

제복경찰들이 손살같이 달려가 인파들을 뒤로 물렸다가뜩이나 SNS인지카톡인지 뭔지하는 것들 때문에 보안보안보안습관처럼 외쳐대는 반장의 고함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사람죽은게 뭔 구경거리라고.’ 투덜거리며 찾아낸 볼펜으로 몇 자 끼적였다.

 

뿅뿅타살?”

 

박형사가 부검의를 바라보며 물었다부검의는 어깨를 으쓱할 뿐대답은 없었다시체를 다시한번 살펴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데 문득 낯선 인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허리를 숙인 채로 고개만 돌린채 그 인물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구경꾼 사이에 있던 한 남자가 이상하게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꾀죄죄한 옷차림에 덥수룩한 머릿결의 남성이었다두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이곳을 응시하고 있었다아니다른 구경꾼들과는 시선이 달랐다웅성대며 두리번거리는 일반인들과 다르게 꼼짝않고 서있었다그의 두 눈엔 생기가 없었다마치… 뭔가에 홀린 듯 했다.

 

박형사님?”

 

파트너인 최형사가 박형사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그러자 한참 낯선 남자에게 시선이 꽂혔던 박형사가 부리나케 허리를 폈다.

 

아이깜짝이야!”

왜 그러세요?”

 

최형사는 작게 웃으며 아메리카노 한 잔을 건넸다박형사는 투덜거리며 한 입 홀짝 마셔댔다.

 

피해자 신분은?”

조사중입니다실종신고를 바탕으로 둘러보고 있습니다.”

 

박형사는 못마땅한듯 다시 한번 혀를 차며 수첩을 펼쳤다그러다 이상했던 남성이 떠올라 주위를 살폈다허나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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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신은 전지전능하다그러기에 이런 나를 구제할 수 있다허나 그렇지 않는다난 영원한 저주에 빠져 헤어나올 수가 없다마치 그의 비웃음이 들려오는 듯 했다그는 이런 나를 즐기는지도 모른다모른척 하는 지도 모른다이유야 어떻든간에 이런 삶을 살게 하는 신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많은 자들이 항상 바래온다이걸 해주세요저걸 해주세요허나 신은 들어주지 않는다지친 자들이 신에게 분노한다그들은 무신론자가 아니다비신론자이다악마는 이렇게 태어난다.

 

어두운 밤사건현장에서 대략 3킬로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1205동이라는 커다란 입구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경비실을 바라보았다. <순찰중>이라는 푯말만이 보였다저것은 뻥이다관리비를 아끼기 위해 경비수를 반으로 줄였다오늘 이 라인의 경비는 쉬는 날이다.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경비실 입구로 다가섰다바로 위 천장에 CCTV가 보였다자신이 찍히던 말던 상관없었다어차피 녹화기록이 저장되는 하드디스크를 뜯어낼 생각이었다이는 오래전부터 익혀온 지식이었다.

 

경비실 문앞에 채워진 자물쇠를 재빠르게 열었다열쇠도 아닌 머리핀 하나로 충분했다안에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컴퓨터 본체를 꺼내 전원선을 뽑은 뒤 뒷면의 볼트를 풀었다내부가 드러나자마자 바로 하드디스크를 분리했다점퍼의 속주머니에 넣고는 남은 부분은 대충 제자리에 돌려놓았다당연히장갑을 끼고 있었으며 소비한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단 한 명도 이 순간에 지나치지 않았다.

 

이제 당당히 복도 안으로 들어섰다엘리베이터를 호출하고 13층으로 올라섰다. 1307호라는 문패의 앞에 멈춰섰다앞에는 잠금키패드가 보였다번호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허나 초인종은 누르지 않았다옆에서 그 시체가 속삭여줬다. 6, 4, 7… 삐빅문이 열렸다.

 

누구세요?”

 

집안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답이 없자 여성은 재차 물으며 고개를 현관으로 내밀었다현관 앞에는생전 처음 보는 남성이 후드티로 얼굴을 가린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그리고 그는 양손으로긴 끈을 팽팽하도록 붙잡고 있었다.

 

누구야!”

 

여성은 놀라 비명을 질렀다나는 재빠르게 여성에게 달려들었다도망치는 여성의 뒷머리채를 붙잡고바로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여성이 힘이 약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실제로 이런 공포에 직면한 생물체는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한다이때만큼은 왠만한 힘이 아니면 제압하기가 힘들다이 여성 또한 그랬다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키더니 안방으로 다시 달음질쳤다뒤로 내팽겨지듯 넘어진 나는 다시 일어서서 여성을 쫓았다안방문을 걷어차고화장대 앞에서 핸드폰을 쥐고있는 여성을 냅다 걷어찼다여성의 머리는 화장대 문갑에 부딪히고정신이 없는지 양손으로 사방을 훑었다화장품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이대로는 위험해얼른 처리해야 했다.

 

잡고 있던 끈으로 여성의 목을 감았다그리고 있는 힘껏 당겨댔다여성은 컥컥거리며 목덜미를 부여잡았다나는 이를 악물었다눈을 질끈 감았다여성의 저항이 점점 사그라갔다죄송해요죄송해요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것뿐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어쩔 수 없다고요그러니까왜 당신 남편을 죽였어요? 20년간 사랑한다며 같이 지낸 피붙이와 같은 그를 왜그 커피숍이 무너진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잖아요그 커피숍이 당신의 사랑보다 중요했나요빚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나요다른 사람이 생긴 건가요그 알바생?

 

여성은 붉어지는 자신의 머리통을 화장대의 거울을 통해 바라보았다마지막 시선이었다그리고 그녀의 눈동자에 자신의 목을 조르는 남성이 들어왔다.어두운 후드티 안에는자신의 남편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여성의 두 눈은 공포로 잠겼다죽음에 대한 공포였을까죄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이윽고 여성의 두 손은 축 쳐졌다.

 

한동안 두 손의 힘은 계속되었다혹시나 다시 일어서지 않을까하는 공포 때문이었다잠시간을 끙끙거리다 결국 두 손을 놓았다두 무릎을 꿇고 자신이 저지른 또 하나의 죄에 몸서리쳤다어쩔 수 없어요어쩔 수 없어요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잡은 채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바라보았다이제 됐지이제 된 거지그러니까 내 앞에서 꺼져꺼지라고!

 

화장대 앞에 무릎을 꿇고 거울에 비춰진 죄인을 바라보았다후드티 안의 얼굴은 살인자의 비참한 몰골이었다이번이 대체 몇번째인가난 미치지 않았어난 미친 게 아냐맞아난 미친 게 아냐놈들이 날 괴롭혀날 가만두지 않아죽은 자들은더 이상 이성이라는 게 없어그들은절대로 자신의 목적이 이뤄질때까지 가만있지 않아난 버텨왔어처음 그때는- 3년이라는 시간을 버텼어그 목매단 여성이 3년간 날 따라다녔다고매일 밤 그 축 쳐진 혀로 내 몸을 햛아댔어내 골수를 빨아댔어잠을 잘 수가 없었어나만 보였어나만 느낄 수 있었어절대로 떨어지지 않았어기도를 해도 제사를 지내도 약을 먹어도 떨어지지 않아영원히 내 옆에 붙어서 자신이 하고자하는 것만 읊을 뿐이야자신이 얼마나 원통한지 목놓아 울어댈뿐이야그것뿐이야내가 빼빼마른 해골이 되어가도정신이 파괴되어도 놈들은 신경쓰지 않아오로지 자신의 목적뿐이야결국 첫 살인은 벌어졌어그녀가 원하는대로 그녀를 죽인 그 놈팽이를 돌로 내려쳐서 죽였어그리고 괴롭힘은 끝났어영혼은 자유로워졌지만 내 삶은 망가졌어내 부모는 나를 버렸어나는 저 바깥 세상에 적응 할 수 없어그렇게 끝나나 했지만 또 다른 존재가 또 다시 다가와그들은 또 다시 날 부여잡고 울어대날 괴롭히고 내 영혼을 갉아먹어그 목놓아 우는 소리가 영원히 멈추지를 않아방법은 하나뿐이야그래하나뿐… 이런 내가 살아갈 수밖에 없는 방법은 이것뿐이야난 지쳤어더 이상 그들의 괴롭힘을 이겨내지 못해난 할만큼 했어난 최선을 다했어

 

다시 한 번 자신의 죄를 둘러보았다무릎꿇은 채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후드티를 걷어내고 두 손으로 머리칼을 부여잡았다제발신이 계시다면 저를 살려주세요이런 불쌍한 저를 살려주세요제발 부탁드려요멈추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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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동의 입구는 시끌벅적했다앰블란스와 경찰차 여러 대가 입구를 막아서고 있었다동네 주민들이 모여 웅성거리며 각자의 추측을 쏟아내고 있었다.

 

자자비키세요.”

 

박형사는 인파를 걷어내고는 사건현장으로 올라섰다. 13층으로 올라서는 엘리베이터 내부는 무거운 공기가 가득했다.

 

공범이 있는 걸까요?”

 

옆자리를 지키던 최형사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러자 박형사가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피해자 강영실. 47자영업자이자 주부남편 고승국. 53역시 자영업자이자 가장자녀 둘은 현재 유학중. 3개월전 아내인 강영실은 남편 고승국에게 3건의 생명보험을 가입납부금액만 1500만원대남편이 강변에서 시체로 발견되어 수령한 보험금만 12강영실이 운영하는 커피숍은 무리한 확장으로 인해 현재 빚만 7억원대남편 고승국의 몸 안에서 쥐약성분인 스트리크닌이 검출… 딱 봐도 아내가 범인이 맞는데 말이야.”

 

수색영장을 발부받는 과정에 일이 터져버렸다유력한 용의자였던 강영실이 살해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최형사는 사건을 접수한 때부터 공범설을 계속 주장해왔다허나 박형사는 고개를 저었다.

 

공범이 있다면 분명 돈 때문인데수령받은 보험금은 그대로잖아그럼 뭐 하러 죽인거야말이 안 돼.”

여튼 뭔가가 틀어지니까 일이 벌어진 거겠죠돈을 나누는데 충돌이 났다든지협박을 통해 우위를 점하려다가 일이 벌어졌을 겁니다뻔한 거 아니에요일개 주부가아무리 사장이라해도 보험금 살인을 혼자서 계획했다고요남편 몸무게만 78키로인데그런 남자를 큰 가방에 넣고 게다가 안에다 돌을 가득 집어넣고는 강변까지 적어도 60미터를 운반해야 하는 상황을 혼자서 마무리 지었다말이 안 되죠.”

차도에서 강변까지 이르는 길에 45도의 경사진 수풀이 존재해가방을 굴린다면 힘을 크게 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운반이 가눙하다고그 가방을 직접 봤어외부와 내부몇몇 군데군데 크게 훼손된 부분이 발견되었단 말야분명 가방을 굴리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 틀림없어.”

 

박형사와 최형사는 사건현장에 들어설때까지 의견충돌을 일으켰다박형사는 자신의 감을 믿었고 최형사는 합리적인 결론을 밀어붙였다실내로 들어서자 역시나 검시관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증거채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어이박형사.”

 

전의 부검의가 다시 한번 등장했다그는 간략하게 내용을 전달했다.

 

교살인데 도구는 끈 종류로 보여힘이 무척 가해졌을 거야남성으로 추정돼등 뒤의 타박상으로 보아 어느 정도 몸싸움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DNA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야살해시간은 어제 저녁 10시쯤범인은 상당히 용의주도해이 일대를 표백제로 모조리 닦아냈어지금 계속해서 증거를 찾아보고는 있는데… 털 하나 안 나와.”

 

박형사는 수첩에 끼적이며 화장대 앞에 덮여있는 흰 천을 바라보았다들춰보기 위해 다가서는데 부검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조심해그러니까… 내 평생 저런 표정의 시신은 처음이야기괴하다고나 할까.”

 

박형사는 부검의의 말을 흘려들으며 살며시 천을 들어올렸다그리고 흠칫굳은 채로 시신을 바라보았다부검의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시신의 자세는 화장대에 얼굴을 눕힌채로 양팔을 벌린 채였다분명 목이 졸리며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이런 장면까지는 강력계 형사라 자주 접해왔다.헌데 표정이… 두 눈동자가 튀어나올듯 부릅뜬 게 마치 뭔가에 상당히 겁을 먹은 듯 했다목이 졸리는 고통도죽음에 대한 공포도 아니었다이건

 

여기에 뭔가 있습니다.”

 

한 검시관이 바로 옆 침대 밑을 바라보더니 외쳐댔다박형사가 몸을 굽혀 바라보니소형 녹음기로 보이는 것이 침대 밑 구석에 테이프에 부착되어 봉해져 있었다.

 

녹음기?”

 

박형사는 분명 남편인 고승국이 설치한 것이리라그 또한 아내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남몰래 증거를 모으기 위해 설치한 것이리라여겨졌다테이프를 조심스레 떼어내고는 녹음기를 살폈다여전히 작동되고 있었다용량은 24시간으로정해진 시간이 다되면 내용을 지우고 다시 녹음이 시작되는 시스템이었다현재시간은 오후 8범행은 어제 22그럼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록이 남아있다!

 

재빨리 정지 버튼을 눌렀다그리고는 어제 저녁 9시쯤으로 파일을 돌렸다재생을 누르고 귀를 기울였다박형사와 최형사부검의가 녹음기에 집중했다.

 

9시 32분부터 : (작은 소리로삑삑삑- (키패드를 누르는 소리 같다.)

 

잠시 뒤 여성의 목소리 누구세요?

 

곧바로 삐빅하며 문이 열리고 곧바로 닫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여성의 목소리 누구야?

 

침묵 (옅은 TV소리가 들려온다.)

 

현관으로 나가는 여성의 발자국 소리.

 

침묵

 

여성의 목소리 여보?

 

곧 바로 비명소리우당탕하며 몸싸움을 벌이는 소리방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

 

여성의 목소리 말도 안 돼말도 안 돼이건 말도 안 돼… (계속 중얼거림)

 

방문을 걷어차는 소리다시 몸싸움을 벌이는 소리화장품이 깨져가는 소리켁켁대는 신음소리.

 

남성의 목소리 나를 죽였어나를 죽였어나를 죽였어나를 죽였어나를 죽였어나를 죽였어나를 죽였어나를 죽였어- (이하 계속 반복)

 

침묵.

 

흐느끼는 소리.

 

빗질하며 걸레질 하는 소리.(한참을 이어진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

 

이후 계속되는 정적.

 

 

이게… 뭡니까?”

 

최형사가 박형사를 바라보았다박형사도 마주보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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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사는 다음 날 아침이 될 때까지 자신의 책상 앞에서 생각에 잠겼다그의 옆에는 증거물이라 적힌 비닐봉투 안의 녹음기가 놓여 있었다듣고 또 듣고반복만 한지 서른번째였다.

 

문득 지난 번의 넋이 나간 남성이 떠올랐다왜인지는 몰랐다그냥 신경이 쓰였다순식간에 사라진 그 남성그를 생각하니 갑작스레 비슷한 사건이 있을까궁금증이 솟았다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찰청 데이터 베이스에 접속했다.

 

몇몇 검색어로 검색해봤지만 공통점은 없었다역시나 하는 마음에 접으려했지만 마지막 단어가 하나 떠올랐다.

 

-용의자 살해 미결

 

엔터를 누르자 주르륵, 32건의 사건첩이 떠올랐다처음 두 건은 조직폭력과 관련된 보복 범죄로 추정되는 것이었다그럼 그렇지하며 세번째 사건을 클릭하자 피해자 사진이 등장했다박형사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강영실의 그 끔찍한 표정그것이 다른 피해자에게도 보였다. 12년전한 남성이 후두부에 정체모를 둔기로 공격당해 숨진 사건이었다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 현재 미해결이었다뭔가 좋지 않은 감이 뻗쳐나가자 모든 파일을 하나하나 열어보기 시작했다.

 

비슷한 범죄가 17건이 발생했다범인은 잡히지 않았다지역은 각각 달랐다유일한 공통점이라고는 피해자들의 공포에 질린 표정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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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좁은 방의 풍경 그대로이다변하는 것은 없다오로지 혼자만이 있다차라리 이게 낫다.

 

아무도 내 곁에 없다외로움은 이제 면역이다오히려 이게 낫다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무게를 쥐어준다나 하나도 벅차다혼자가 낫다외롭지만 혼자가 낫다.

 

벌레처럼 꾸물꾸물 다시 기어나온다오늘도 이어폰을 꽂은 채 환상속에 빠져든다산책길을 걸으며 탈출을 꿈꾼다다시 현실로 돌아오겠지만어쩔 수 없다이것만이 내 유일한 탈출구이다.

 

산책길을 막아서던 테이프는 사라졌다한숨이 절로 나온다자신의 두 손을 바라본다죄에 물들어가는 끔찍한 두 손이 보인다이래서 내가 절대로 죽을 수가 없다난 지옥에 갈 것이다틀림없다지옥에 가면 내가 저지른 것들이 내 몸을 갉아먹을 것이다고통에 몸부림치며 잘못했다 빌어도 그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이미 겪었다.

 

이 산책길은 오늘로 마지막이다나름대로 철저한 룰을 만들었다이것이 내가이 빌어먹을 내가 조금이라도 삶을 연장할 수 있는 법칙 중 하나였다오늘 안으로 이사를 갈 것이다두 시간 뒤에 이삿짐을 날라줄 작은 트럭 한 대가 올 것이다이제 저 멀리떠나가야 할 때였다.

 

매일같이 스스로를 좀먹는 것이 괴롭다이런 삶을 살아가야 하는 자체가 힘들다허나 어쩔 수 없다난 지옥에 가고 싶지 않다무섭다너무 두렵다사후의 세계그 존재들을 겪는다는 것은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내 죄는 절대 씻길 수 없다어떻게든조금이라도 더 살아야 한다댓가를 받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려야 한다.

 

바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다음에 가는 곳은 오로지 나 혼자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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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루리웹괴담 - 무랭무랭님

 

3개의 댓글

2017.02.02
허뮈 ...
0
2017.02.03
와...
0
2017.02.04
ㅇ...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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