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한국인 치고 역사 좋아하는 사람들도 드물거다.

더더군다나 세계사는 초중고때 배운 수박 겉핡기식 수준의 지식에 머물러있는 사람들이 많지.


그런 사람들을 보다보면 참 안타까운 맘이 든다.

역사라는 것은 그 재미를 한번 알고 나면, 참으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분야가 되는 것인데도

학창시절 역사 선생의 따분한 수업과 '년도', '제도'만 달달 외우게 만드는 현 교과과정 속에서

그 한번의 재미도 느끼지 못하고 역사에 대한 관심을 끊는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재미있고, 더 리얼하면서도 더 믿기 힘든 것이 바로 역사임에도 말이다.


역사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역사는 전쟁사이고.

치열한 전쟁터에서 벌여지는 장대한 전략 싸움, 교활한 전술 싸움, 그리고 야망을 펼치는 위대한 영웅들이 가득한 전쟁사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위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서론은 충분히 한 것 같으니, 오늘의 주인공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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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3세. 


세계사에 딱히 관심이 없는 한국에선 그저 "알렉산더 대왕? 페르시아 정복한 사람 아니냐?" 정도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이란 인물을 저 짧은 문장 하나로 설명하려 하는 것은, 그에 대한 모독이라 생각될 정도로

그가 이룩한 업적이란 어마마한 것이고, 알렉산더라는 인물이 가진 매력은 청말 무궁무진하다.


그의 영웅적 일화들이나 성장 과정, 전술적 천재성에 대해 말하자면 끝이 없다.

그것들을 일일히 말할 수는 없지만, 오늘 소개할 일화를 통해 너희가 알렉산더라는 인물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었으면 한다.



보통 알렉산더 대왕의 전쟁사를 논한다고 하면, 다들 동방원정에 대해 얘기한다.

가우가멜라 전투, 이수스 전투, 히다스페스 전투 등 적보다 열세의 전력을 가지고 싸웠음에도 승리를 거둔, 위대한 전투들.

동방의 광활한 황야에서 두 군대가 정면으로 부딪혀 싸운 거대한 회전들.

이런 것들을 먼저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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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의 가장 영광스러운 전투들이 있던 시기가 동방원정 기간이니, 어찌보면 이런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하다.


하지만, 오늘 다룰 전투는 동방원정 때 있었던 그런 영광스러운 대전투와는 거리가 멀다.

어처구니없다는 말이 어울리고, 미쳤다, 자살행위다라는 말이 더 어울릴만한 전투가 오늘 다룰 전투다.



때는 기원전 335년...동방원정에 나서기 1년 전.

알렉산더와 그의 군대는 그리스 북동쪽에 위치한 산간 지방인 일리리아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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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알렉산더는 동방원정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전, 배후의 세력들을 정리한다는 개념으로 주변 야만족들과 국가들을 정복하고 있었는데,

일리리아도 그중 하나였다.


사실, 일리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의 부왕인 "필리포스 2세"가 예전에 이미 정복하여, 복종을 맹세받은 곳이었는데

필리포스 2세가 갑작스레 암살을 당해 죽고, 어린 알렉산더 대왕이 즉위하자 그를 만만하게 보고는 말을 바꾼 것이었지.


일리리아 : "뭐? 필리포스 2세가 죽었다고?"

알렉산더 : "아버지한테 복종하겠다는 맹세 했으니까 나한테도 복종해야지?"

일리리아 : "안 들리는데 ㅎㅎ 애미 젖을 덜 빨다와서 힘이 딸리시나? 목소리가 안 들리네 ㅎㅎ"

알렉산더 : "뒤질래?"
일리리아 : "어차피, 느그 아버지가 좆같이 국경 정해놔서 존나 맘에 안들었거든? 좆같으면 직접 와서 현피 뜨시던가 ㅎㅎ"


당시 다뉴브 강 이북의 트라키아-다키아 지역의 정복을 막 끝낸 알렉산더는

이런 일리리아의 도발에 꼭지가 돌아서 군대를 이끌고 일리리아로 쳐들어갔다.


알렉산더의 군대는 엄청난 훈련 강도를 받는 걸로 유명했는데,

엄격한 규율에 높은 훈련도와 강인한 체력, 정신력이 합쳐져서

당시 알렉산더 군대의 행군 속도는 초원의 이민족 기병대를 제외하고는 따라올 자가 없는 수준이었다.


알렉산더가 미친듯이 빠른 속도로 행군해 쳐들어오자, 이렇게 빨리 도착할거라 예상 못한 일리리아인들은

산악 지방에 위치한 작은 요새 안에 헐레벌떡 들어가 항전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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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알렉산더가 요새 앞에 도착했다.

"어떻게 이 요새를 털어볼까용?" 하고 주변을 둘러보던 알렉산더는 곧 요새의 위치가 공격하기 참으로 까다로운 위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새는 4면이 모두 지형적 방어물로 둘러쌓여있었는데,

3면은 가파른 언덕으로 둘러싸여있어서, 군대를 여유있게 요새 근처에 배치할 수도 없었고,

나머지 한면은 옆에 강이 흐르고 있어서 부대를 배치할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요새를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요새에 나있는 좁은 길을 따라서 군대를 끌고 들어온 뒤,

요새와 언덕 사이에 나있는 좁아터진 공간에 부대를 배치시키고, 요새를 공격하는 것 뿐이었다.


생각보다 전투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알렉산더 대왕은, 일단 길을 따라 군대를 골짜기 안으로 들여온 뒤

어떻게 요새를 공략할지 차차 생각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골짜기 안으로 부대를 겨우 다 들여오고, 부대 배치를 본격적으로 하려는 찰나,

언덕 위로 일리리아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좆된 거였다.

알렉산더는 적이 파놓은 함정에 제발로 들어간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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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후병을 보내서 근처 언덕이랑 골짜기들을 샅샅이 뒤진 뒤에 군대를 안으로 들였어야하는건데, 

야만족에, 숫자도 많지 않으니까 쉽게 이길 수 있겠지, 하고 방심했다가 뒤통수 크게 얻어맞은 꼴이었다.


하지만, 아차! 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지.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필요했어.


알렉산더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이디어 no. 1. 들어올때 썼던 길을 따라서 골짜기를 빠져나간다!

-> 이미 언덕과 골짜기 사이사이를 일리리아 애들이 점령한 상황에서, 길을 뜷고 나간다는 건 자살행위야!

일리리아 인들이 좁은 골짜기 길을 보병들로 막으면, 내 군대는 꼼짝없이 거기에 막힐거고,

군대가 좁은 골짜기 사이에 끼어 병목현상을 보이면, 언덕 위에서 투창병과 궁병들이 사정없이 공격을 할테고,

요새 안에 있던 적군이나 반대편 언덕에 있던 적군이 우르르 달려와 퇴각하려는 내 군대의 후방을 공격하면

얄짤없이 몰살당할 거야.


아이디어 no. 2. 가파른 언덕 위의 적군을 일단 정리한다!

->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적군을 공격한다는 것 자체가 전술적으로 엄청난 단점을 안고 가는건데,

엄청난 사상자를 각오하고 공격한다 하더라도, 언덕을 점령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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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일리리아 애들은 돈없고 가난해서, 무장 수준은 빈약할지 몰라도

주변 야만족들 사이에서도 용맹하기로 소문난 애들인데. 자칫 정면으로 무리하게 덤볐다가는 몰살각이라고.


아이디어 no. 3. 언덕 위의 일리리아 애들을 언덕 아래로 유도한 뒤, 회전을 치른다.

-> 일단, 적군이 언덕이라는 이점을 버릴리가 없기도 하고, 얘네가 언덕 아래로 내려온다 하더라도, 이 골짜기 안은 지나치게 좁아서

군대를 기동할 공간이 없어. 거기에, 요새 안에 주둔하고 있는 적군은 우리를 언제 공격해올지 모르는 아킬레스 힐이 될거고.


아이디어 no. 4. 투석기와 같은 원거리 투척 무기로 언덕 위와 요새 안의 적군을 공격한다!

-> 적을 만만하게 봐서 투석기 따위는 가져오지도 않았다고!


아이디어 no. 5. 강을 건너서 퇴각한다.

-> 강을 느릿느릿 건널때 적군이 우리의 후방을 공격해오면, 병력의 1/5 정도는 얄짤없이 날라가버리겠지. 이것도 아냐!


일반적인 전술로는 상황을 타개할 수가 없었다. 알렉산더는 적이 상상조차 못할 기발한 작전을 펴야했다.



일단, 알렉산더는 병사들로 하여금 주둔지를 만들게 했다.

언덕과 요새라는 이점을 가진 적이 선뜻 그 이점을 버리고 담벼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적군은 먼저 공격해오지 않았다.

장기전으로 가게 된다면, 보급품을 충분히 가져오지 않은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군이 먼저 기력이 쇠해 약해질터였으니,

이 전투는 단기전으로 가야했다.

알렉산더는 그날밤, 병사들에게 푹 잠을 자두고, 전투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일러놓은 뒤, 장군들과 회의에 들어갔다.


늦은 시간까지 회의가 이어졌지만, 마땅한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았고, 침묵만 흘렀다.

그때, 알렉산더가 "미친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것도 아주 미친 아이디어를.

다른 장군들은 그의 아이디어를 듣고는 기겁했지만, 다른 방도가 딱히 없는 것을 알았기에 그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다음날....동이 트고..


언덕 위의 일리리아 애들은 "마케도니아 성님들? 잠은 잘 자셨소? 설사 찍찍 싸면서 바지 적신건 아닌지 모르겠어~" 하면서

마케도니아 군을 골리려고 기지개를 키며 일어났다.


그런데, 주눅이 들어 주둔지 안에 처박혀있을거라 생각됐던 마케도니아 군은 주둔지를 깔끔히 정리하고는,

평원 위에 전투 대형을 칼같이 세운채 창과 방패를 들고 꼳꼳이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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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경을 본 일리리아 군은 얼떨떨해했다. 여전히 아군이 언덕 위에서 고지를 점령하고 내려다보고 있는데,

평원 위에 전투대형을 깔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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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질 반질 잘 닦여진 마케도니아 군의 청동 투구는 햇볕을 받고 반짝거렸다.

청동 갑주도 역시 먼지 한 톨 없이 반짝이고 있었고, 5m가 넘게 일자로 쭈욱 뻗어있는 사리사의 물푸레나무대는 멀리서 봐도 단단해보였다.

창대의 끝에 달린 창날은 시퍼렇게 빛났다.

2만 명이 넘는 중무장한 군대는 오와 열을 칼같이 맞춘채, 미동조차 없이 평원위에 서서는,

언덕 위의 일리리아 군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눈 앞의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군대는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손을 올렸다 내리며 수신호를 날렸다. 그와 동시에, 대왕의 옆에 서있던 깃발수가 커다란 깃발을 흔들고,

나팔수는 우렁차게 나팔을 불며 골짜기를 나팔소리로 메웄다.


계곡에 메아리처럼 울려퍼지던 나팔 소리가 사라지자, 마케도니아 군대는 착!착!착! 발소리를 내며 제식훈련을 시작했다.


2만명의 군대가 일사분란하게 전진을 시작하더니, 군대 전체가 동시에 좌측으로 대형을 틀며 우익의 날개를 위로 끌어올렸다.

좌측으로 계속 이동하는 듯하던 군대는 뒤로 홱! 방향을 틀더니, 다시 우측으로 대형을 틀며 우측의 날개를 아래로 끌어올렸다.

등을 보인채, 원래 서있던 위치까지 걸어가던 마케도니아 군은 마치 일사분란하게 후퇴하는 듯 보였지만, 원래 서있던 위치에 다다르자

다시 뒤로 돌아 정면 방향을 쳐다고는, 동시에 1열의 보병대와 예비군인 2열의 보병대의 위치를 일사분란하게

바꿨다. 곧이어, 군대가 좌익, 중앙, 우익 3분위하여 나뉘어지더니 좌익은 왼쪽으로, 우익은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각 군 간의 간격을 넓혔다.

각 군 간의 간격 사이에 투창병과 궁병이 오와 열을 맞추며 걸어들오더니, 대형을 산개하여 빈 공간을 메꿨다.

그러더니 다시 대형을 밀집하여 원래 크기로 돌아와, 좌익과 우익의 보병대 후방으로 걸어들어와 나란히 서고는,

중앙과의 간격을 다시 좁히는 좌익, 우익 보병대와 나란히 걸으며 중앙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리고는, 발을 세네번 정도 전군이 크게 구르더니, 꼳꼳이 서있던 창을 눕히면서 팔랑크스 대형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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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군은 이 모든 제식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완전한 침묵 속에 해보였다.

30분에 가까운 이 제식 훈련 동안, 골짜기 안에 울려퍼지는 소리는, 마케도니아 군의 발에서 나는 착!착!착! 소리뿐이었다.

제식훈련을 하며 칼같이 오와 열을 맞춘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일리리아 군에게 이런 군율과 기강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리리아 군은 점점 공포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소리없이 이 모든 복잡한 제식을 해보이는 마케도니아 군은 인간이 아닌 외계인처럼 보였다.


마케도니아 군이 다시 발을 서너번 정도 착!착!착! 제자리에서 구르더니

동시에 긴 창을 앞으로 세번 크게 내찔러보였다. 바람을 가르는 창의 날카로운 소리가 골짜기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마케도니아 군은 골짜기가 떠내려갈듯, 엄청나게 큰 함성 소리를 갑자기 내지르는 것이었다.


언덕 위의 일리리아 군은 그 모습에 질리고 말았다. 그들이 이런 군대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을리가 없었다.

대형을 풀은 마케도니아 군이 창을 꼬나쥐고 언덕을 달려 올라가기도 전에, 일리리아 군은 후퇴했다.



그렇게, 알렉산더 대왕은 칼 한번 휘두리지 않고 그의 인생 가장 위험했던 순간 중 하나를 승리로 이끌었고,

마케도니아 군대의 훈련도에 감탄한 일리리아 인들은 이후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에 경보병으로 참여해, 용맹히 대왕을 위해 싸웠다.

이것이 알렉산더 대왕의 아이디어였다.

"잘 훈련된 병사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