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문득 어느순간 느껴졌다
체념한것도, 토라진것도,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아무리 하소연을 한다고 해도
이 감정, 이 무게는 그 누가 대신 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온전히 내가 지고 가야할 짐이었다.
순간의 위로를 듣는다고 잠시나마 갖게 되는 위안은
담배처럼 단순히 기분만 낼 뿐, 본질은 오히려 마음가짐을 병들게 할 뿐이었다.
그래서였다.
한숨을 내쉬기 보다는 묵묵히 한발을 내딛고
그냥 언젠가는 쉼터나 목적지가 나오겠지
정처 없이 터덜터덜 앞만보고 걷기 시작한게.
어차피 다들 내색을 하지 않을 뿐
죄다 어깨에 짐 한덩이씩 이고 각자 묵묵히 자기 갈 길을 가고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니
잠시나마 힘들다고 투덜거리고 싶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굳게 닫은 입은 더욱 무거워졌다.
사실 어쩌면 이러한 날이 올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동안 너무 행복했기에,
분명 내 인생의 무게추 반대편에도 이만한 시련이 올려질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 내일이 언제일지 모르기에 오늘을 더 열심히 행복하게 보내왔을 뿐.
그래서일까
폭우처럼 쏟아지는 이 짐을 견뎌내기가 좀 벅차긴 하다.
그건 아무래도 분명 이 길을 발 맞추어 같이 걸어주던 네가 없어서 일 것이다.
가끔 이렇게 비바람이 몰아치고 추운 날에는
젖은 옷을 벗어버리고
뜨거운물로 샤워를 한 뒤
널 꼭 부둥켜안고 뽀송뽀송한 이불안에서
네 고양이와 함께 새근새근 잠들던 그 날이
내품으로 파고드는 너를 어루만지며
코끝에 전해오는 네 숨냄새를 기분좋게 들이마시던
그때가 참으로 그립다.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
난 잠시 쉼터에서 이고왔던 짐을 잠시 내려놓고
걸어왔던 길을 뒤돌아보며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 쉴지도 모른다.
그 좋은 날 술 한잔 같이 기울일 네가 내 옆에 없을 거라는게
참으로 안타깝지만.
인생 그 긴 길, 옷깃만 스친 수많은 사람들 와중에
2년 2개월간 같은 곳을 바라보며 말동무 해줬던 네게 참 고맙다.
그런 널 위해 건배를 할 수 있는 그날이
조금은 빨리 오길 희망해본다.
오늘같이 비바람이 몰아치는 추운밤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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