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vn71vLqvjVc?si=bd-HidtSC8-031Os&t=17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고 그녀와 중국여행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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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저우의 한적한 식당에 들어가 창가에 자리를 잡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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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없이 밖을 바라보니 남루한 행색의 노인이 길바닥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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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같은 인간이었고 충분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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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노인은 춥고 배고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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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는 대학생이었고 공리주의니 효율적 이타주의니 따위의 이론에 심취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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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속으로 저 노인을 도울까라는 생각이 들어도 일시적인 음식제공이 저 노인의 인생에 근본적으로 무슨 도움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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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나 스스로의 도덕성을 뽐내기 위한 오만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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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내가 노인에게 음식을 주는 것이 어쩌면 노인에게 무례한 것이 아닐까 등의 생각을 하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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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런 생각에 대해 뭐 그렇게까지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내 필명이 무엇인지 다시 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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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온갖 생각을 다 한 끝에야 노인이 먼저 도움을 요청하면 움직이자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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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마치고 온 그녀는 내 곁으로 왔고 창 밖의 노인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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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인에 대해 말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이미 그녀는 노인에게 걸어가고 가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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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하는 노인을 데리고 와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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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너무 놀라면 소리조차 낼 수 없다더니 정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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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쪄있는 나를 향해 그녀는 할아버지가 안타까워서 그러니 같이 먹자고 했고 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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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노인에게 손녀마냥 살갑게 대했고 노인도 사양했지만 내심 그것이 싫지 않았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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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눌수록 얼굴에서 미소를 숨기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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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둘의 대화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때때로 나에게 이야기를 통역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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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야기 자체는 별로 기억이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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끽해봐야 고향이 쑤저우가 아니고 텐진이라는 것이며 뭔가 잘 안풀려서 여기 남게 되었다는 정도 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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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쑤저우말을 하지 못하는 그녀와 대화가 더 잘 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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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역시 현지어를 잘 못하는 이방인이라서 그런걸까

 

 

 

 

나는 대화 내내 노인의 눈과 그녀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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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길거리에 앉아있던 죽은 눈은 어느새 생기 가득한 눈으로 바뀌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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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표정은 세상 모든 것을 끌어안을 정도로 자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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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식사는 끝이 났고 노인은 감사와 미안함을 표하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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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도대체 어떻게 노인을 생기있게 만들었는지 궁금했고 "어떻게...?"라고 물어보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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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어떡해'로 이해했는지 이렇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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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한그릇 더 시킨거고 얼마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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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대답이었지만 옳은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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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끄러워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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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공리주의고 뭐가 효율적 이타주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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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밥 한번 같이 먹으면 되는 일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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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하며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자 왜?라며 날 올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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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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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여자이기도 했지만 그때의 감정은 분명히 사랑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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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온전함에 대한 존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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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평생 찾아다닐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대한 대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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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지만 현실에 깎여 사그라드는 온전한 인간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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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 앞에 이렇게나 생생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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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있었던 일을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글을 썼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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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찍은 사진을 끝으로 이야기를 끝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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