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내 개똥철학 적어봤는데 피드백받는중

 

* 아무 것도 모르는 분들도 최대한 이해하실 수 있도록

쉽게 적으려 노력했으니 아무쪼록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1~8 까지, 그리고 형광펜 그은 의의가 이 글의 핵심부입니다.

(인생철학 파트는 향후의 전개를 생각했을 때 곁다리인데, 너무 피드백이나 질문이 이쪽에 집중되는 것 같아서.)

 

좀 길어요. 피드백 남겨주시면 아주 달게 받겠습니다.

(현실 피드백 이전까지 인터넷 피드백 받으면서 글 수정 중에 있습니다.)

 

 

 

【3줄 요약】

 

1. <무의식-잠재의식-의식>의 구획은 정신분석학적 표준이라서 우리의 주관적인 체험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2. 시각적인 정신분석학적 모형을 장면으로 전환해서 바라보면 주관적인 체험을 온전히 집어넣을 수 있게 되어요.

<무의식-잠재의식-의식>으로부터 벗어나서 각자의 주관적인 내면성을 스스로 구획해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만든 모형마냥 각자가 맘대로 모형 만들어 쓰시면 되어요.

 

3. 커스터마이징 아주 자유롭게 둬서 변형이 용이하고, <무의식-잠재의식-의식>처럼 고정된 구획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내면성 그 자체말고 내면성에 들어오는 다른 모든 대상과 현상에 응용 될 수 있는

아주 유연한 놈이라서 여러모로 쓰시면 좋다고 추천합니다.

 

 

────────────────────────────── · · · · · · · · ·

 

 

아래의 사진은 무엇일까요?

 

심해.jpg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개 "바다"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이것은 엄밀하게 "바다"가 아니라, "바다의 모형"이다.

 

이해의 편리를 위하여 객관적 협의 하에 설정한 표준의 일종인 것이다.

 

 

 

 

 

심해 2.png바다1.jpg바다3.jpg

 

이러한 "체험"이야말로 우리에게 진짜 "바다"이겠으며, 따라서 우리의 세계는 장면에 있다.

우리의 세상은 단면이 아니다.

 

조각나는 파도소리, 바삭바삭 맨발에 밟히는 모래알.

당장에 연속되고 변화하는 바다 조건들의 조화를 비로소 진짜 바다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의 "바다 모형"과 "바다 사진"으로만

바다를 이해해보려는 내륙의 아이는, "진짜 바다"를 겪지 못한 인간으로서 사람들에게 수긍된다.

진짜 바다를 데려가 바다를 겪으며 신기해하는 아이를 보게 된다면 그제서야 사람들은 흐뭇해 할 테니까.

과연 그렇다.

 

 

 

바다바다.jpg

 

"바다 모형"이 아니라

우리는 진짜 "바다"를 겪으며 살아갈 수 있으며

그러한 체험을 근거삼아 우리는 진짜 바다를 취급할 줄 안다.

 

 

 

 

 

 

 

 

그렇다면 이것은?

 

 

빙산 1.png

 

이것은 단면이다.

그렇다면 <의식-잠재의식-무의식>, 이것은 정말로 진짜 나의 내면성인가?

 

엄밀하게 이것은 진짜 나의 내면성은 아니겠으며, 이해의 편리를 위한 "내면성의 모형"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동떨어진 단면이 아니라, 나의 장면을 빼닮은 판박이처럼 이해하더라.

 

 

그 누가 내가 당장 몸 담근 바다를 표층과 중층과 심해의 구획에서 이해하는가?

대다수는 그저 순간을 느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본인의 이해를 위하여

당장 느끼는 나의 내면을 무의식과, 잠재의식과, 의식으로 구획지어 이해에 도움 받고자 한다.

각자의 내면성은 이해의 목적에, 그 존재가 역전되어 있다.

 

그러나 저 모형은 당신의 체험에 엄밀히 기인하여서, 당신이 만든 모형이 맞는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과감하게 생각해보고자 할 때,

고유할 당신의 내면성의 이해를 위한다고도 함부로 보장할 수 없지 않은가?

 

당신의 내면성과 저 내면성 모형이 어떤 부분에서 유의미한 괴리가 있어 왔다면?

 

 

 

2.

바다는 하물며 보이면서도 객관적일 수가 있는데,

내면성은 보이지 않는 이유로 각자에게 각자의 주관으로 머무른다.

 

몸에 대한 표준, 바다에 대한 표준을 세울 수 있지만

각자의 몸이 다르듯이, 바다 각 곳의 지형이 다르듯이, 보이는 쪽에서도 경우 따라 오락가락이던데,

보이지 않는 당신의 내면성에 객관적이라는 그 구획은 정말로 당신의 상황에 아주 알맞게 적용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바다는 내가 직접 체험치 못하더라도 수심 측정을 통한 간접적인 파악이라도 가능하지만,

당신만이 체험할 수 있을 당신의 내면성에게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면 아래의 그림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파악해봤는가?
본인의 내면성을 뚫어져라 느껴보았는가?
스미듯 다른 언어 학습들만치 무의식과 잠재의식과 의식이라는 용어를 일상적으로 그냥 받아들이진 않았는가?

그냥 주는대로 받아먹지는 않았는가?

 

저 구획이 당신에게만큼은 비효율적일 구획이라면?

저 구획에 따라 살아왔지만 당신은 저 구획을 바르지 않게 사용해왔다면?

 

 

주관주과.png

당신이 말하고 느끼는 의식이 남들과 똑같은 의식이 아니라면?

당신의 가장 효율적인 내면성 구획이 삼단계가 아닌 네 단계, 다섯 단계로 구성된다면?

 

은밀하게 보이지 않는 탓에, 구획과의 또다른 괴리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러므로 본인의 내면성이야말로 객관적인 그 모형이라는 것으로부터

객관성 있게 간접적인 체험조차 할 수 없는 대상이므로

"직접" 체험하고 나의 내면성에 맞는 모형을, 이해의 편리를 위하여 새롭게 세워야 한다.

 

"내가"

 

 

 

본인이 본인에게 잘못된 오해를 하고 있진 않았는가, 바르게 성찰하기 위하여서.

"나를 위하여서."

 

왜?

우리의 진짜 내면성은, 단면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장면에 있어 왔기 때문이다.

 

수조.jpg

 

우리의 세계는 수조에 담기지 않는다. 개미가 가지는 개미굴의 의의는 단면이 아니라 길목에 있다.

 

 

 

심해.jpg빙산 1.png

 

불필요한 걱정 아니냐고? 학술적으로 문제 없지 않느냐고?

나도 잘 알고 있다.

사실은 아주 적절한 모형일 지 모르는 일이다.

아니, 애초부터 정신분석학적인 모델을 필자인 나부터 잘 쓰고 있다.

 

저 모형과 같은 이해의 바탕에서 무의식, 잠재의식, 의식이라는 단어들을 무리 없이 쓰고,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근데 왜 만약의, 만약을 가정하는 듯이 "너는 저 제시된 내면성과 다른 내면성을 가질 수 있다"고

괜히 불필요하게 위협인양 이야기하려 하는가?

실상 본인도 확신할 수 없으면서 왜 전문성의 누적을 "가짜"처럼 이야기하려 드는가?

 

이 꼴은 "만약"을 가정하며 모든 인위적인 지대 공사의 중지를 요구하고 보는 동물보호단체 같다.

지금껏 문제 없이 공사해왔는데도 아무튼 이제부터라도 잘못될 수 있다면서 무작정 사용을 막아서려는 듯 보인다.

 

 

극단적인 진행이긴 했다.

다만 그러한 맥락에서 주제를 비틀어보자.

 

지금의 논의는 객관을 위하는 논의가 아닌,

하물며 객관과 상이할 수 있을 "당신"이라는 주관을 위하는 논의인 점을 염두에 두자.

 

따라서 나는 차이가 쉽게 간과될 수 있는 공통의 모형이 아니라,

공통이 쉽게 간과될 수 있는 차이의 모형을 또 다르게 주조할 것이다.

 

 

 

눈.png

 

 

눈을 하나 더 달아보자는 것이다. 관점을 하나 더 가져보자는 것이다.

수용하고 말고는 당신의 선택이지만,

기존의 모형과 공존할 수 있는 관점을 하나 더 추가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렇다면 딱히 손해볼 것도 없지 않은가?

정신분석학적 모형과는 쓰임새 다른 새로운 모형이 하나 추가되는 것 뿐인데?

 

그저 공통을 위한다면 기존의 것을 사용해도 괜찮겠으며,

혹여나 고려해야 할 차이를 위한다면 새롭게 제작된 것을 사용해도 괜찮을 그러한 선택지의 제공이다.

 

정신분석학적 모형과는 쓰임새가 다른 것이다.

어떻게 다른지는 말미에 정돈하여 소개하겠다.

 

선택지의 제공을 위하여 새로운 모형을,

강조하던 "장면의 이해" 위에서 만들어보도록 해보겠다.

 

단면으로부터 벗어나자.

 

 

 

3.

 

빙산 1.png

 

이것은 단면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만들어낸 모형이다.

모두에게 저것은 정신분석학적 모형으로써 공통된다.

 

이제는 각자가 같더라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장면"의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하여서,

이 단면을 장면으로 만들어보겠다.

 

 

 

빙산빙산1.png

모형상 수면을 기준으로 위에 있을수록 "의식적"이고, 아래에 있을수록 "무의식적"이다.

 

"의식"이라 함은 드러나있는 것으로써,

"무의식"이라 함은, 깊은 심해와 같은 깊음으로써 우리는 상상해볼 수 있다.

 

 

 

빙산빙산2.png

 

그렇다면 그냥 가장 윗쪽에 수직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하나 두고, 그 눈에 가까울수록 의식적이고,

그 눈에 멀수록 무의식적이라고 여기면 되지 않겠는가?

 

즉, 말끔하게 잘린 "바다"나 "빙산" 따위가 아니라,

그 눈이 보는 장면의 "거리"로써 내면성을 이해해보자는 시도이다.

 

 

빙산빙산3.png

 

그러나 저러한 그림의 이해는 아직까지도 수조를 보고 있는 당신의 눈에 의한다.

아직까지도 단면인 것이다.

 

우리는 본연한 장면으로의 이해를 위하여서, "거리"로써 내면성을 이해할 줄 아는 저 눈에 이입하여야만 한다.

따라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저 관점을, 우리의 1인칭 시점으로 전환해보자.

 

 

빙산빙산4.png

 

사실 위니 아래니의 구분은 이제 더 이상 관계가 없다.

왜냐면 "거리"를 차용할 것이라면은,

가깝고 멂의 구분만이 요구될 뿐이겠고 따라서 위의 그림과 같이 멀쩡한 장면으로부터 편리하게 이입해볼 수 있는 점이다.

 

즉, 단면은 장면이 되었다.

따라서 당신은 세계를 바라보는 눈으로서 논의에 참여하면 될 일이다.

저 눈이 당신의 눈이고 저 세계가 당신의 세계인 듯이 말이다.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원근이 있는 장면을 통하여 우리의 내면성을 이해해보자.

 

 

 

4.

 

빙산5.png빙산빙산4.png

 

이해가 편하도록 기존의 정신분석학적 모형을 활용하여 질문하겠다.

다만 잠재의식은 의식적인 면과 무의식적인 면을 모두 가지고 있으므로 버리고 생각해보자.

 

괜히 끼워넣으면 그리 중요치 않은 데도 일일이 취급해야 하여 생각이 번거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의 제안을 믿고 의식과 무의식만으로 흐름을 따라가보자.

 

 

그러므로 질문하겠다.

 

내면성을 후자의 장면과 같은 "거리"로 이해할 때에,

의식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로 잡아볼만 하겠는가?

무의식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로 잡아볼만 하겠는가?

 

짐작하건대, 의식은 "보이는 범위"이며, 무의식은 "보이지 않는 범위"이겠다.

무슨 소리인가?

 

 

 

해수면.jpg

 

전자의 바다 단면을 장면으로 치환하자,

의식이란 "보이는" 바다 바깥이고, 무의식이란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바닷속일 것이니.

 

 

빙산빙산4.png

 

따라서 후자의 장면으로 볼 때, "소실점"을 강조하여 빨갛게 찍어놓았건대

"보이는" 소실점 안쪽이 의식이겠으며, "보이지 않는" 소실점의 저 너머는 무의식이겠다.

 

 

 

의식무의식.png

 

장면으로 만들어놓은 걸, 다시 단면으로 치환하면 이러한 모양새겠다.

지금까지 이해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 "보임"이 의식이며, 나에게 "보이지 않음"이 무의식이 된다.

 

 

그렇다면 잠재의식은?

검색해보니 "어떤 시점에서 의식되어 있지는 않으나 비교적 쉽게 의식화되는 것"이라던데.

 

"잘 보이지 않았다가 보이게 되는 것"이니,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대충 이 언저리에 있겠다.

 

 

의식무의식1.png

 

대충 단면에 추가하면 이렇겠고. 이제 다시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빙산빙산4.png

 

글읽기를 멈추고 장면을 당신의 눈에 의하는양 이입해보자.

이제 당신은 이 장면만으로 <의식-잠재의식-무의식>을 원근에 따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보이는 소실점 안쪽은 "의식"이며, 보이지 않는 소실점 저 너머는 "무의식"이며,

보일랑말랑 하는 소실점 근방의 저 쯤의 거리는 "잠재의식"이 된다.

 

 

 

빙산 1.png  의식무의식2.png

 

 

거리로의 이해는 정신분석학적인 모형을 성공적으로 담아낸다.

그래서 그냥 정신분석학적 "단면"이 아닌, 이와 같은 "장면"에서 내면성을 이해해보아도 좋은 것이다.

 

근데 이대로만 끝내면 싱겁지 않겠는가?

"장면의 관점"으로부터 더욱 진일보해보자. "장면에서의 이해"를 여러 가지 제시하겠다.

 

 

 

5.

① 나는 "잘 보이는 것"으로부터 추론한다.

 

빙산빙산4.png

 

우리는 저 소실점 너머에 철길이 계속될 것이라 추론한다.

당장에 그 소실점 너머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써 주어져 있음에도 말이다.

 

철길이 있다고 생각하고,

가까이 꽂혀서 점차 멀어지는 전신주 또한 저 너머에 역시 당연히 늘어져 있을 것이라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저 소실점 너머를 확신할 수 없다.

 

1) 저 너머로부터 기차가 달려올지 누가 아는가?

2) 저 너머에 불을 끄기 위한 소방차가 서 있을 지 누가 아는가?

3) 저 너머에 멸종되었다고 알려진 공룡이 서 있을 지 누가 아는가?

 

갈수록 전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확인할 수 없는 우리에게, 그것들은 "가능성"으로써 엄연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논외로 제쳐두고,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부터 추론한다는 점에 주목하자.

 

저 소실점의 너머를 다르게 생각할 지라도

보통 철길이 끊어지거나, 철길의 커브가 생기는 그런 정도로만 짐작의 범위가 미칠 것이다.

당신은 공룡을 가능성으로써 부정할 수는 없지만, 공룡을 생각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에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부터 추론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

.

.

하지만 그냥 "보이는 것"으로부터 추론하는 것이라고 말하기엔 작은 문제가 있다.

왜냐면 소실점 근방의 알아보기 어려운 것 또한,

즉,

"보이는 것"이긴 하나 "잘 보이지 않는 것" 또한 또다른 "보이는 것"으로부터 추론하기 때문이다.

 

다시 정리하겠다.

 

 

빙산빙산5.png

 

형체의 분간이 어려워지게 된 "멀게 있는 전신주"는,

아주 잘 보이는 "가까이 있는 전신주"로부터 "저것이 전신주구나" 추론케 한다.

 

장승인지, 나무 한 그루인지, 눈에 난 흠집인지,

저것만 달랑 있다면 함부로 전신주로 확신할 수 없을 "잘 안 보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즉,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부터 추론하면서도, "잘 보이는 것"으로부터 추론한다.

 

 

 

 

② 장면의 저것은 가까이 오거나 멀어질 수 있고, 장면의 나는 저것을 향하여 가까이 가거나 멀어질 수 있다.

 

 

기차.jpg

 

기차가 가까이 오면 가까이 올수록, 잘 보이게 된다.

기차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잘 보이지 않게 된다.

 

내가 저것에 가까이 가면 가까이 갈수록, 잘 보이게 된다.

내가 저것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장면으로 여기자면 당연한 말이다. 이것을 분명하게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③ 보이지 않는 것은 "보는 나"에게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무의식"은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정신분석학과 숱한 경험 지식에 따라, 무의식이 아주 중요하다고 당신을 비롯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게 생각하던데.

 

정말 그러한가?

세상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무의식은 정말로 중요한가?

 

단면이 아닌, 장면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돌.png

가령 보이지 않던 데에서 돌이 빠르게 날아와서, 내가 크게 다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돌2.png

 

단면에서 보면 보이지 않던 곳에서 날아오는 돌이 있었으니,

"보이지 않는 곳"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함은 당연하다.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곳으로부터 날아왔기 때문이다. 저곳으로부터 내가 영향 받기 때문이다.

 

 

 

근데 알 수 있는가?

 

기차도, 소방차도, 공룡도 함부로 확신할 수 없던 당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지 모르는 돌에 매 순간 노심초사해야 하는가?

 

 

빙산빙산4.png

 

당신에게 큰 피해를 입힌 돌은, 저 너머에 정말로 있었는가?

있거니, 없거니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볼 수 있는가" 이다.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 중요한 것이다.

 

소실점 안으로 들어오는, 나에게 날아오는 돌을 캐치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때에 그것은 유의미해진다.

 

 

빙산빙산6.png

 

그래야 피할 수 있으니까.

즉, 실상 대비하려는 장면의 나에게조차 "보이지 않음"보다도 "보임"이 중요한 것이다.

 

 

당신은 다르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저 너머에 날아오는 돌이 있다고 거의 확신할 수 있다. 혹은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곳을 대비한다는 건 유의미하다.

 

 

 

 

당신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1) 항상, 혹은 대체로 그래왔다.

2) 돌이 날아오니 조심하라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3) 주변에 날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부채꼴 궤적으로 쪼개진 자갈들이 가득하다.

 

 

당신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위의 근거 그대로 높은 가능성에 의하기 때문이라면 보이지 않는 곳을 대비할 만하다.

 

일리가 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곳을 대비한다는 건 유의미하다.

 

그러나 그 높은 가능성에 의한 대비는, 근거를 보았기 때문이며, 근거가 보이기 때문에 성립한다.

 

위에서 언급하였듯,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을 추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면을 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실상, 보이지 않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부터 추론될 뿐이며,

보이지 않는 것의 대비는, 보이는 것으로부터의 추론으로 가능할 뿐이고,

실제의 대비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에 의미를 가진다.

 

 

방파제.jpg

 

보이지 않는 것, 언제 올지 모르는 쓰나미를 위해 방파제를 세우는 것이 주가 아니라,

쓰나미가 올 수 있는 근거가 보이기 때문에 방파제를 세우는 것이다.

 

 

 

④ 그것의 거리가 아닌 거리의 그것이 중요해진다.

 

 

빙산빙산4.png

 

"저것은 멀다"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멀게 있는 저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중요할 따름이다.

 

그것이 의식인지, 잠재의식인지, 무의식인지,

다시 말하여, 가깝게 있는지, 가까운지 먼지 모호하게 있는지, 멀게 있는지, 이것은 "장면의 나"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아무튼 "보임"에서, 그만큼 거리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것이 가장 중요해진다.

거리의 판단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하여 뒤따라 있는 것이다.

 

 

의식무의식.png

 

의식이라는 뭉텅이, 무의식이라는 뭉텅이는 장면 속의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 사이를 오고가는 장면 속의 "돌", "기찻길", "전신주" 혹은 그 하나의 "장면", 그 자체가 중요할 뿐이다.

 

 

이것 또한 분명히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⑤ 보이지 않는 것 또한 보이는 것으로 여겨볼 수 있다.

 

 

 

토성.jpg

 

하늘에 뜬 토성이다. 보인다.

 

 

토성.png

 

하늘에 뜬 토성이다. 멀어져도 토성이고, 작아져도 토성이다. 보인다.

 

 

토성1.jpg

 

밤하늘이다. 토성의 형체를 찾기 어렵다.

"보이던" 토성은 우리에게 이제야말로 완벽하게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당신은 정말로 토성이 "완벽하게" 안 보인다고 확답할 수 있는가?

 

.

.

.

토성2.png

 

이 정도 크기의 "토성"이라면?

멀어져도 토성이고, 작아져도 토성일 수 있다면, 저 밤하늘의 한 픽셀이 저 정도 크기의 "토성"이라면?

 

하물며 저 밤하늘의 한 픽셀보다도 더 작고 더 작고 더 작은 픽셀로써

가장 작은 크기의 "토성"이 밤하늘 사진에 담겨 있다면?

 

 

토성1.jpg

 

그 토성은

토성의 형체를 더이상 분간하기 어려울 밤하늘이 주어지더라도 완벽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게 된다.

 

아무리 내가 토성을 보기 어려워서 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싶을 지언정

토성을 보고 있다고, 그렇게 여겨볼 수 있다는 것이다.

 

 

토성.jpg

 

이만큼 잘 보기 어려운 것이지

밤하늘이 주어졌다고 해서 저 밤하늘에, 토성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빙산빙산4.png

 

마찬가지로 저 소실점의 너머는 어떠한가?

사실은 소실점의 너머가 저 보이는 소실점에 가장 작은 크기로 압축되어 있다고 생각해본다면?

 

그렇다면 소실점의 너머는 나에게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소실점의 너머 또한, "보임"으로써,

단, 소실점에 극한으로 오밀조밀 압축되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보기 무척 어려운 것"이 될 뿐이다.

 

 

 

의식무의식3.png

 

 

즉, "보기 어려움", "잘 보이지 않음"을 통하여 "볼 수 없음", "보이지 않음"의 대부분을 치환함으로써

"보임"을 넓히고, 기존의 "보이지 않음"의 구역을 유연하게 밀어버릴 수 있다.

 

 

 

토성1.jpg

 

자기합리화나 정신승리 같은 게 아니냐고?

굳이 정말로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통상적으로 취급되던 저것을 왜 "보이는 것"으로 취급해야 하냐고?

 

밤하늘의 픽셀 정도면 명백하게 "보이지 않는 것"으로 취급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실제로 저 장면에 토성이 없을 수도 있으니 궤변 아니냐고?

 

궤변 맞다. 다만 "나"에게 아주 효용이 높을 것이라 이 궤변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채택하려 한다.

효용이 아주 높다면, 그 순간 그것은 쓸모 높을 전략이지, 쓸모 없을 궤변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이후에 보이겠다.

 

 

 

 

⑥ 장면을 보는 사람마다 시력이 다르며, 장면의 거리는 다르게 구획될 수 있다.

 

1)

사람에 따라서 객관적으로 같은 거리에 있다 하여도 시력의 차이에 따라서

잘 볼 수 있고, 잘 보지 못할 수도 있는 게 다를 것이다.

 

레코드판.jpg

 

이 점에 동의할 수 있겠다.

극단적으로는

레코드 판의 흠집을 맨눈으로 보고 어떤 노래인지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도 하니까 말이다.

 

당신이 밤하늘의 토성을 못 본다 하여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사람이 아니고서라도 볼 수 있는 주체의 영역으로 넘어가서 그런 생물이라던지, 지능체가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위의 궤변을 변호하려는 목적은 아니고, 그냥 장면을 바라보는 다양한 주체 간의

주관적인 시력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리는 대목이다.

 

 

*

그럼에도 위의 궤변에 따라보자면 시력이 낮은 당신이 흠 없어 보이는 레코드 판을 보면서,

레코드 판의 흠을 보고는 있지만 "잘" 보기 어려울 뿐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레코드 판의 흠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보임"으로써 보고는 있지만 잘 보기 무척 어려울 뿐이다

 

 

 

2)

또, 사람에 따라서 주어진 장면을 가지고도, 거리를 다르게 구획할 수 있다.

 

누구는 10m 단위로 거리를 끊을 수 있으며,

또, 누구는 100m 단위로 거리를 끊을 수 있다. 결정된 단위에 따라서가 아니고서라도

 

세 단계로 끊을 수 있고, 네 단계로 끊을 수 있고, 다섯 단계로 끊을 수도 있다.

 

 

어디서 봤던 흐름이지 않은가?

 

 

주관.png

 

의식이며 중층을 논하던 위의 가상의 개인들을 이야기할 때, 언급했었다.

 

이러면 다시 논의가 되돌아온다.

 

의식-잠재의식-무의식의 세 단계 구획이 표준으로써 충분하지, 왜 다시 되돌아왔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것만 써도 학술적으로나, 일상적으로나 멀쩡한데도 왜 굳이 되돌아왔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근데 필자인 나부터 거리를 다르게 구획했다.

구획을 실제로 다르게 한 자가 필자로서 나타났으니 아예 허무맹랑한 꼬집기는 아니라는 소리이다.

 

거기다가 그냥 구획한 게 아니고, 위와 같은 "장면에서의 이해"를 바탕에 두고

내면성을 다르게 구획해냈다.

 

그리고 보았듯 "단면에서의 이해"와 "장면에서의 이해"는 차이를 가질 것으로 짐작된다.

장면으로 진일보한다면서 여섯 가지를 숫자 매겨 적어내었으니.

 

거기다가 애초에 선택의 문제라 하였다.

 

"장면"으로 내면성의 이해가 가능해진 당신들께

"거리의 비유"로써 가장 쉽게 본인의 내면성 구획을 설명해줄 예정이므로

글에서 이야기했던대로 필자의 모형을 쓸 지 말지만 자유롭게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까지 이해에 무리 없었다면 딱히 이후의 흐름이 어렵거나 하진 않을 것이니

의심을 품을 수 있을 지언정 아무쪼록 다시금 인내해보자. 도달에 얼마 남지 않았다.

 

 

 

 

6.

 

의식무의식4.png

 

이해의 편리를 위해 단면으로 가져오건대 여기까지 구성했다.

 

장면의 나에겐, "보임"이 중요하며, "보임"을 인위적으로 넓게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토성의 비유처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여기던 것들 또한

"보기 어려움"으로써 밤하늘의 1픽셀 토성마냥 "보임"으로 가져갈 수 있었으니. 단지 보기가 어려울 뿐.

 

무의식, 무의식적이라고 우리가 쉽사리 여겼던 것들 또한

결국 장면에서의 관점에서, 우리의 의식("보임")에 자연스레 내포된다.

 

보이지 않는 게 아니다. 아주 약할 뿐이다. 아주아주아주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볼 수 없다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극단적이거나 이론적인 것들 외엔 몇 남지 않게 된다.

죽음, 소멸, 마취, 혼수상태, 이론적인 사고실험...

 

이제부터는 위에 적어놓은 모든 장면에서의 이해로부터 본인의 구획, 본인의 모형을 보이겠다.

 

 

 

7.

 

무의식의 비중을 거의 죽여놨으니 "보이지 않음"을 버리고

우리는 장면의 나에게 특히나 중요하다고 언급하던 "보임"에만 주로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보이지 않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없다고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렇게까지 "보이는 것"으로 최대한 포용했음에도

정말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이 각자에게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의식무의식5.png

 

그러므로 무의식이 아닌 무(無)라고 이름 붙이고 대충 내버려둔다.

 

<의식-무(無)>,

여기까지 두면 두 단계의 구획이다.

 

 

빙산빙산4.png

 

이제 이 "의식", "장면"으로부터 "나"에게 효율성 높게 구획해야 했다.

 

한 번 짚어보자.

나는 "잘 보이는 것"으로부터 추론한다고 했다.

 

그리고 실상 "장면"이라 함은 내면성의 비유이고, 내면성은 보이지 않으므로 미터법처럼 단위에 따라 구획할 수 없다.

따라서 "보임의 수준"에 따라 단계별로 구획해야 한다.

 

따라서 "보임"에 "잘 보이는 것"이 있다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할 테고,

저 "장면" 속의 거리 이입에 따라 "잘 보임"과 "잘 보이지 않음"은 실제로 구획될 수 있어 보인다.

 

 

즉, "보임"은, "잘 보임"과 "잘 보이지 않음"으로 쪼개서 구획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의식무의식7.png

의식무의식6.png

 

 

이때, 내면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잘 보임"과 "잘 보이지 않음"을 내면성에 맞는 단어로 규정해주어야 한다.

애초에 거리란, 내면성의 비유이기 때문이다.

의식과 무의식은 각각 "보임"과 "보이지 않음"에 맞닿는다.

 

때문에 새로운 용어로 "잘 보임"은 자각, "잘 보이지 않음"은 무자각이라고 칭함이다.

 

 

여기까지 두면 <자각-무자각-무(無)>의 세 단계의 구획이다.

<의식-잠재의식-무의식>의 세 단계의 구획과도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구획의 유연성에 따라 한 번씩 더 쪼갠다. 이유는 이렇다.

 

 

토성.png토성1.jpg

 

 

이 논의에서의 이 두 사진에는 둘 다 토성이 있는 셈이다.

둘 다 "잘 보이지 않음"의 토성이다.

 

근데 같은 수준의 "잘 보이지 않음" 인가?

 

전자는 그래도 잘 보이진 않지만 그나마 보이건대, 후자는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거의 잘 보이지가 않는다.

즉, 같은 "잘 보이지 않음" 내에서도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한다.

 

거리의 효율적인 구획을 위하여 "잘 보이지 않음"의 세분이 요구된다.

 

 

토성2.jpg토성.jpg

 

이쪽도 살펴보자.

둘 다 "잘 보임"의 토성이다.

 

근데 같은 수준의 "잘 보임" 인가?

 

전자는 너무 잘 보여서 토성인 줄도 모르겠는데, 후자는 적당히 잘 보여서 토성이라고 알아차릴만 하다.

즉, 같은 "잘 보임" 내에서도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한다.

 

거리의 효율적인 구획을 위하여 "잘 보임"의 세분이 요구된다.

 

 

 

 

의식무의식7.png

 

그래서 "잘 보임"은 "아주 잘보임", "잘 보임"으로 쪼개지며,

그래서 "잘 보이지 않음"은 "잘 보이지 않음", "아주 잘 보이지 않음"으로 쪼개지게 된다.

 

여기까지 두면 다섯 단계의 구획이다.

근데 슬슬 알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직관적인 모형을 따로 만들어 쓰는 편이다.

 

 

 

 

8.

 

직관성을 위하여 대충 막대기를 그려 놓고 난잡해가던 단면을 이사시키겠다.

 

스펙트1.png

 

왼쪽이 "잘 보이지 않음"의 "무자각", 오른쪽이 "잘 보임"의 자각이라고 두자.

그리고 "잘 보이지 않음"과 "잘 보임"은 구분되어야 하긴 하므로, 가운데에 임의의 구분선을 마련한다.

빨간 직선이 그 구분선이다.

 

무(無)는 "보이지 않음"이니, "아주 잘 보이지 않음", 막대기 왼편의 무자각 바깥 쪽으로 있을 터인데,

그냥 암시적이라고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기로 하자.

 

 

스펙트2.png

 

이제 ①"아주 잘 보이지 않음", ②"잘 보이지 않음", ③"잘 보임", ④"아주 잘 보임"의 네 단계 구획에 따라

막대기도 네 단계로 구획 짓는다. 저 막대기 아래의 호의 형태를 띄는 개별적인 범위 하나를, "영역"이라고 칭한다.

 

이러면 네 단계 구획이 막대기 위에 표시된다.

 

 

 

그런데 여기부터 문제가 있다.

 

정확하게 ①"아주 잘 보이지 않음"과 ②"잘 보이지 않음"을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는가?

기타 인접한 구역들끼리는 어떠한가? 모든 인접에서 골 아프다.

 

완벽하게 반반의 성질을 가진 거리에, 예컨대 "보이지 않음" 50%, "보임" 50%의 완벽한 중심에 위치하여

잘 보인다고 하기도 그렇고,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기도 그런, 완벽한 중앙부의 대상이 있다면

처리가 난감하지 않겠는가?

 

 

"장면에서의 이해"를 기초하려 한다면, 이 장면에서의 판단의 어려움을 모형은 기꺼이 담아내야 한다.

 

스펙트3.png

 

따라서 영역을 각각 겹치게 두어 영역이 혼재하도록 모형을 그려낸다.

 

이러면 (1) "아주 잘 보이지 않음"인지, "잘 보이지 않음"인지 헷갈리거나,

(2) "잘 보이지 않음"인지, "잘 보임"인지 헷갈리거나,

(3) "잘 보임"인지, "아주 잘 보임"인지 헷갈리거나,

 

판단의 어려움을 겪게 될 다양하게 난처한 상황들을 성공적으로 모형에 대입할 수 있게 된다.

 

 

맥락의 5요소.png

 

즉, 두 단계의 구획을 가정하여 보여 주자면, 이 모형은 다섯 가지의 요소를 가진다.

 

① 스펙트럼 : 막대기라고 부르는 것이며, 전반의 범위 설정이다.

② 극단 : 막대기의 (좌측) 끝과 (우측) 끝이다.

③ 구분선 : 막대기의 극단 간 구획을 가정하는 임의적인 선이다.

④ 영역 : 막대기상에서 추가적으로 구획된 범위이다.

⑤ 혼재 구역 : 영역을 겹쳐 놓은 구역이다.

 

 

스펙트3.png

즉, 위의 이 모형 전반을 지칭하여 모형적으로 "스펙트럼"이라고 일컫는데,

언급된 다섯 가지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무(無)의 고려 없이, 스펙트럼의 구분선만을 고려하면 두 단계의 구획이며, --------------2

스펙트럼의 영역만을 고려하면 네 단계의 구획이며, --------------------------------------4

스펙트럼의 혼재 구역까지 고려하면 일곱 단계의 구획을 가진다. ------------------------7

 

 

이게 내가 제시하는 모형이다.

 

개인적으로 쓰기에 영역을 네 단계로만 쪼개놓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고,

나의 내면성 이해에 지금까지도 이 모형은 빈번히 활용된다.

 

 

 

근데 여기서 끝나면 곤란하다.

막대기의 구분선을 기준으로 왼쪽, "잘 보이지 않음"을 통째로 "무자각"이라고 칭하였고,

막대기의 구분선을 기준으로 오른쪽, "잘 보임"을 통째로 "자각"이라고 칭하였었다.

 

그렇다면,

"아주 잘 보이지 않음", "잘 보이지 않음", "잘 보임", "아주 잘 보임" 또한

내면성에 걸맞는 네이밍이 필요하게 된다.

 

결국에 거리나 시력 따위가 아니라, 내면성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모형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칭해야 할까?

 

나는 이렇게 칭하기로 했다.

 

스펙트4.png

 

 

아주 잘 보이지 않음

= 무자각적 무자각 = 무자각적인 데가 있는 무자각 = 잘 보이지 않는 면이 있는 잘 보이지 않음

 

잘 보이지 않음

= 자각적 무자각 = 자각적인 데가 있는 무자각 = 잘 보이는 면이 있는 잘 보이지 않음

 

잘 보임

= 무자각적 자각 = 무자각적인 데가 있는 자각 = 잘 보이지 않는 면이 있는 잘 보임

 

아주 잘 보임

= 자각적 자각 = 자각적인 데가 있는 자각 = 잘 보이는 면이 있는 잘 보임

 

 

각 영역에 대한 이름들은 비로소 저러하게 된다.

어려운가? 극단 A, 극단 B가 있을 때의, AA-BA-AB-BB 로 생각하면 그나마 익숙해질만 하다.

 

스펙트5.png

 

이로써 거리의 비유니 장면이니 다 빼놓고

필자인 나의 내면성만을 설명하고자 하면 모형이 이렇게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무자각-자각 스펙트럼"이라고 일컫는다.

나의 내면성을 표상한다.

 

 

 

 

 

의식무의식7.png

 

다시 보니 훨씬 깔끔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9.

이제 장면으로부터 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는 게

기존의 내면성 이해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고 모형의 의의를 살펴보자.

 

일단 정신분석학적 모형이나 스펙트럼 모형이나, 두 가지 모두 단면이며,

둘 다 모형으로써 이해의 편리를 위하여 조성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다만 나의 모형은 "장면에서의 이해"를 온전히 담아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음을 기억해두자.

 

본인의 모형이 가지는 차별점과 의의 따위는 이러하다.

 

 

 

① 어쨌든 써먹으려면 거리감각을 "내가" 익혀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엄밀하고 객관적인 단위로 쪼갤 수가 없다.

내면성은 비가시적이기 때문이다.

 

스펙트5.png

 

따라서 이 모형을 쓰고자 한다면

각자가 본인의 거리를 더듬어가며 본인의 내면성을 "직접" 파악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확실할 구획법이랄 것도 없고, 수준에 따른 나누기라는 것부터,

사람마다 다르게 구획될 수 있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기 때문이다.

 

각자에게 소위 몽골인이나 레코드 흠집 보는마냥 가시거리 범위부터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며,

내가 제시한 구획법으로써,

각자에게 느껴지는 "아주 잘 보임", "잘 보임", "잘 보이지 않음", "아주 잘 보이지 않음"의 분절에서 또한

충분히 각자 다른 견해 차이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관.png

 

같은 장면을 두고도

누구는 아주 잘 보인다고 여기는 것을, 누구는 아주 잘 보인다고 하기엔 좀 애매하다고 갸우뚱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사람마다 차이 있으므로

본인이 직접 본인의 내면성을 깊게 관찰하고 재단해야만 저 모형을 제대로 활용해봄직 하다는 것이다.

 

 

 

돌.png

저 모형을 내면에 심는 순간, 본인만의 기준을 정립하기 위해

내면적인 것 간의 거리 차이를 끊임 없이 인지할 필요가 생기면서부터

 

자기성찰은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그리고 저 모형이 어느덧 뿌리 박히는 순간, 요구를 넘어 자기성찰은 습관이 되고 자동화된다.

 

 

 

 

 

② 동일한 모형을 쓰더라도 각자의 주관적/내면적 차이는 "장면에서의 이해"에 따라 자연스레 존중된다.

 

 

어쨌든 비가시적인 내면성을 가시적으로 만든 모형이므로,

누구나 똑같이 그려진 하나의 모형을 두고도 자기의 내면성인 듯이 활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말하였듯, 각자가 다르게 볼 수 있음 또한 애초부터 "장면"이라서 전제된다. 당연하다.

같은 장면을 두고도 다르게 여기고, 다르게 바라보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

 

 

스펙트6.png

그러므로 위의 모형이나 아래의 모형이나 각자가 쓰기 위하여 똑같이 그려는 놨지만,

내적으로는 각자가 다를 수 있음이 저 모형의 탄생 원리에서부터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즉, 똑같은 모형을 쓰더라도 "장면에서의 이해"로써 각자에게 모형의 "내용"은 다를 수 있음,

각자에게 모형의 "형식"은 다를 수 있음,

이러한 주관적/내면적 차이들이 애초부터 긍정된다.

 

그 누구도 <무의식-잠재의식-의식>의 틀에 본인을 맞추지 않아도 괜찮은 점이다.

 

(다만 가볍게 언급하여,

학술적으로 쓰임에 있어 정신분석학적 모형은 "간단한 표준"으로써 유용성이 높기에 여전하게 쓸모 있다.)

 

 

 

스펙트7.png

 

 

만약 내면성이 가시적이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되면, 똑같은 모형이었던 두 모형은

이런 식으로 표현되어 비교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영역이나 혼재구역의 너비가 각자에게 지문과 홍채처럼 다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동일한 모형을 쓰더라도 한 명 한 명의 각자가

당연히 다른 내면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음이 수긍되며, 따라서 각자의 내면성은 서로에게 온전히 존중 받는다.

 

스펙트8.png

 

하물며 각자의 주관성을 존중하는 모형이기 때문에,

여섯 단계, 여덟 단계의 구획이 편리하여 그런 구획법을 쓰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뭔들 어떠한가?

 

이 모형은 객관을 위한 공통보다도 주관을 위한 차이가 우선된다.

 

 

스펙트5.png

 

고로 "장면에서의 이해"에 따라 내가 제시한 이 모형은 "표준"이 아니다.

필자인 나의 "경우"일 뿐이다.

 

 

모형을 만드는 흐름에 수긍 되었으니 여기까지나 읽어주었다고 생각은 하지만,

각자의 기준에 알맞도록 새로운 "경우"로써 모형을 새롭게 만들어도 전혀 문제될 게 없으며,

도리어 권장한다.

 

성찰하다 나의 구획법이 여간 비효율적으로 여겨진다면 입맛대로 바꿔 쓰면 된단 소리이며,

극단적으로 스펙트럼/극단/구분선/영역/혼재 구역으로 제시한 요소 몇 가지 입맛 따라 제거해도

당신에게만 옳다면 상관 없을 정도이니까.

 

이 모형의 매뉴얼에 "일반"은 없다.

 

 

 

 

③ 무의식적인 것에 대한 수동성이 능동성으로 전환된다.

 

그에게만 특히나 불행이고, 그에게만 특히나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막연하게 탓하기와 달리,

 

무의식적으로 했다면, 무의식을 방패 삼아 탓해 왔다면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나름의 합리와 함께

잘못된 행실을 지금껏 책임 없이 묻어버릴 수 있어 왔겠지만,

이 모형을 몸에 본뜨는 순간 그러한 자기 변명은 입에 함부로 담을 수 없게 된다.

 

 

왜?

 

기차.jpg

 

기차가 가까이 오면 가까이 올수록, 잘 보이게 된다.

기차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잘 보이지 않게 된다.

 

내가 저것에 가까이 가면 가까이 갈수록, 잘 보이게 된다.

내가 저것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잘 보이지 않게 된다.

 

.

.

.

 

무의식"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애초부터 "잘 보이지 않는 것"이며,

"잘 보이지 않았던" 그것이라면 동시에 나에게 "잘 보이게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차는 언제든지 다가올 수 있다.

 

또한 나에게 "잘 보이게 될 수 있는 것"이란

저것이 나에게 다가옴으로써도 가능하겠지만, 내가 저것에 가까이 다가감으로써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저것에 다가갈 수 있다.

 

 

 

즉, 잘 보이지 않던 데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장면"에서는 애석하게도, 잘 보게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면 잘 보려 하는 "나"의 과정이 언제든지 뒤따라올 수 있다.

 

 

풍경.jpg

 

멀리 있는 저것이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면 가까이서 확인하려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다.

 

내면성에서 또한 눈에 닿을 만큼 가까이 끌어올릴 수 있다.

그리고 바꾸고 싶은 그것이 무엇으로써 눈에 잡힐만큼 가까워진다면 그때부터는 직접 바꾸려고 하면 된다.

 

"내가", "나로서"

 

 

 

.

.

.

 

물론 힘듦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단번에 사람이 어떻게 바뀌는가?

무척 어려울 일이다.

 

그리고 독자의 입장에서 비웃음이 나올 텐데,

밤하늘에 박힌 명왕성 픽셀을 내가 어떻게 "아주 잘 보임"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공상이다.

 

 

 

의식무의식4.png

 

공상에 가까운 궤변이 맞긴 하다.

 

근데 당신이 무의식적이라고 치부하는 건 그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치부할만큼 동떨어진, "아주 잘 보이지 않음" 까지는 아니지 않은가?

 

당신이 잡게 될 거리감각 하에서 "타겟"을 잘 잡아야 한다.

똑같은 거리가 아니다.

 

"보이지 않음"처럼 여겨지는 명왕성 한 픽셀조차 "보임"으로써 수용하는 글인데,

무의식적 행실 쯤은 같은 "보임"의 내에서도 나의 눈에게 무척이나 가까운 편이지 않겠는가?

 

"보임"을 아주 넓게 잡기 때문에 이 모형을 쓰는 사람에게는

이 정도의 "잘 보이지 않음" 쯤은 대체로 건드려볼 만하다고 여겨질 만하다.

 

한 번 해보기는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단, "잘 보게 될 수 있음"에 기반한 선택으로써 어려워서 포기한다면

책임이 약할지든, 강할지든 당신이 지고 가는 것이고.

 

 

 

즉, 해볼만 하다.

해결이 어렵다면, 우회로를 파든지 본인이 대비책을 잘 세우면 될 일이겠다.

무의식적이라고 내뱉고 어쩔 수 없는 거라며 묻어두지 말자.

 

당신의 손아귀로 쥐어준 이상, 무의식을 빌미로 책임 없이 함부로 빠져나갈 길은 없다.

 

.

.

.

 

달.jpg

 

하물며 그 비현실적으로 치부할만큼 동떨어진 "아주 잘 보이지 않음"은 또한 어떠한가?

 

이건 분명히 괴랄하게 난이도 높다.

그러나 그러한 의식, "보임"에 포함되는 것들에게는,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이고 "잘 보이게 될" 가능성이 부여된다.

 

그러한 터무니없어 보이는 것들에도 나에게 "잘 보이게 될" 가능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이러한 궤변에 의한 관점은

컨트롤할 수 있는 구역이 유연하게 넓어진 "보임"으로써 "내가 아주 넓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난이도의 문제일 뿐이지 나의 내면성의 거의 모든 영역을 "의식"으로써 "자주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내가 그래도 대부분의 분야에서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로가 아니라는 건,

당장에 그렇게 될 미래가 잘 보이지 않더라도, "잘 보이지 않음"으로써 어떠한 미래이든 꿈꿀 수 있게 만든다.

 

나아가 뒤늦지 않게 낭만을 좇을 수도 있는, 매력 있을 선택지를 제공한다.

난이도에 의한 결과론적인 문제는 당신의 책임일 뿐.

 

그러므로 익힌 거리감각상 우회책조차 잘 보기가 무척 어려워보인다면 낭만으로써 그대로 두어도 괜찮다.

다만 잘 보게 될 수는 있다고 인지하며, 저기까지는 그나마 나에게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데에 의의를 두자.

내가 잘 보게 될 가능성이 저기까지나 있구나, 본인에게 긍정적인 의의를 두자.

 

당장 잘 보려 하지 않더라도, 향후에 잘 보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최소한 염두에 둘 수는 있다.

나의 잠재성을 무조건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게 된다.

 

.

.

.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면, 당신은 더 이상 함부로 자기 변명을 할 수는 없게 된다.

 

달착륙1.jpg

 

뭐가 어찌 됐든 겪어 놓고 아직까지도 무의식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신이" 잘 보려 하지 않았음과 동시에, "안 바꾼 것"이 된다.

 

"볼 수 없음"은 사실상 "볼 수 있음"이 되었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당신이 더 이상 볼 수 없었다며 하소연하는 건, 좋은 변명이 될 수 없다는 소리다.

 

왜 대충 보이지 않았다며 밀어버리고 본인의 자주성을 자해하는가?

 

극단적으로 어려운 낭만과 기적이랄 놈에서조차도,

그것들이 의식에 있는 한 "잘 보게 될 수 있는 것"이며, "바꿔볼 수는 있는 것"이니까,

하물며 당신이 무의식으로써 방임해오던 당신의 어긋난 내면성에 대하여서는,

나는 비로소 이렇게 질문 던져보고 싶은 것이다.

 

 

당신은 정말로 볼 수가 없었는가?

 

 

 

 

 

 

비가시적 대상을 다루기에 모형 자체가 유연하다.

 

 

좌표평면1.png

 

막대기를 압축할 수도, 늘려서 써도 아무 문제가 없다.

 

 

원뿔 3.png

 

원처럼 만들어 써도 아무 문제가 없다.

 

 

 

혼재구역2.png

 

하물며 혼재구역을 네 가지 영역 모두 겹치게 두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다르게 설정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기준화 4.png

 

접어서 써도 문제 없고, 선처럼 활용해도 아무 문제 없다.

 

 

 

벤다이어그램1.png

 

하물며 벤다이어그램으로 치환해도 아무 문제 없다. 거꾸로 벤다이어그램 해석도 된다.

벤다이어그램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 거냐고? 이건 이후에 나올 특징과 관련이 있다.

 

중요한 건 모형 그 자체로도 "높은 범용성"을 잠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가시적이라서 정해진 형태가 없기 때문에, 기존에 제시한 요소들만 만족할 수 있다면

모형의 형태는

유연하게 변형될 수 있다는 점만으로 다양한 모형적인 활용의 측면에서 높은 잠재성을 가진다.

 

요소조차 입맛 따라 수정해도 된다.

고체 같던 기존의 모형들과 달리 이 모형은 액체-기체나 다름없다.

 

 

 

 

⑤ 내면성과 관계 있는 모든 성질적 대상에 모형의 대입이 가능하다.

 

 

소크라테스.jpg

 

나는 전반적으로 나의 이 모든 견해들이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항상 역으로 질문이 들어온다. 심리학 아니냐고.

과연 겉보기에 내면성을 다루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에 주목하자니 능란히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왜 내가 이것을 철학으로 삼는지의 이유를 밝혀보겠다.

 

 

*

이 난해한 파트는 아무리 쉽게 이야기해보려 해도, 모두가 이해하기 어렵다 말하더라.

지금에 닥친 당신만큼은 내가 이것을 처음 겪던 시절의 경외감에 공감해줄 수 있었으면 싶다.

 

비유법을 새로 짜와서 처음 쓰는 글이기 때문이다.

이번에야말로 성공했으면 좋겠다.

 

.

.

.

 

아무튼 "보임"에서, 그만큼 거리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것이 가장 중요해진다.

거리의 판단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하여 뒤따라 있는 것이다.

 

이 문구를 기억하는가?

 

장면에서부터는 그것의 거리가 아닌, 거리의 그것이 중요해진다고

위에서 당부해두었더랬다.

 

 

 

1)

즉, 장면에 "돌"이 놓여 있다면 그 "돌"을 판단하기 위해 "거리"가 쓰이는 것이다.

"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납득할 수 있겠다.

 

 

2)

똑같이 나의 내면성에 어떠한 "생각"이 놓여 있다면,

그 "생각"을 판단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거리"가 쓰여왔던 것이다.

파악할 "생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충 "아주 잘 보이지 않음", "잘 보이지 않음", "잘 보임", "아주 잘 보임"으로

거리에 따라 세분화하여 내면성을 설명해왔지 않은가.

 

 

3)

필자인 나는 내면성에 "생각"이 놓여 있다면, 그 "생각"을 판단하기 위해 "무자각-자각"으로 쓰자고 말했었다.

 

이것은 "무자각적 무자각", "자각적 무자각", "무자각적 자각", "자각적 자각",

무자각-자각이라는 용어에 따라 세분화하여 내면성을 설명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4)

여기까지 읽고 눈치 챌 수 있는가?

 

정신분석학적 모형에서는 "의식-잠재의식-무의식"으로 구획이 고정된다.

저것이 어떤 구역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구역의 그것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의식.jpg

 

 

그래서 구역에 맞게 구역의 그것이 규정된다.

 

 

하지만 이 "무자각-자각 스펙트럼"이라는 모형에서는, "무자각-자각"이라는 틀이 고정될 필요가 전혀 없다.

저것이 어떤 구역에 있는지보다도 구역의 그것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스펙트9.png

 

즉, "잘 보이지 않음-보이지 않음 스펙트럼"의 모형에서도

"잘 보이지 않음-보이지 않음"으로써 "내면성"을 이해해볼 수 있었던 게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돌", "돌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내면성에 주어지므로

그 내면성의 돌을 판단하기 위해 그 어떠한 성질을 모형으로써 대입해도 전혀 문제 없다는 것이다.

 

 

왜?

어차피 "돌에 대한 생각"인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판단하는 게 우선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면성에 주어진 순간,

그것을 판단할 척도로써 "무자각-자각"과 유사할 어떤 성질이 대입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게 된다.

 

 

스펙트10.png

A-B 안의 화살표로 가리키는 "저것", 영역적으로 평가될 저것이 중요한 것이며,

A와 B, 그 자체에는 주관적 평가 양식인 스펙트럼을 성립시킬 수만 있다면

"저것"을 판단하기 위해 아무 것이나 들어가도 상관 없다는 소리이다.

 

이해가 어려운가? 예시를 제시하겠다.

그냥 연속될 수 있는 A 성질, B 성질 놓고 이론적인 최대치를 극단 삼으면 그 무엇이든지 가능하다.

 

 

 

1) (내면성에 들어온) "저 색깔"을 나의 흑-백의 스펙트럼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흑적 흑 - 백적 흑 - 흑적 백 - 백적 백

 

 

2) (내면성에 들어온) "저 사람의 견해"를 나의 주관-객관의 스펙트럼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주관적 주관 - 객관적 주관 - 주관적 객관 - 객관적 객관

 

 

3) (내면성에 들어온) "어린 아이의 행동"을 나의 선-악의 스펙트럼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선적 선 - 악적 선 - 선적 악 - 악적 선

 

 

.

.

.

 

다 저 스펙트럼의 구획에 맞게 적용이 가능하다고 느낄 것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흰색이 돌긴 하지만 검은색이네. (백적 흑)

이건 완전히 주관적이지. (주관적 주관)

선한 면이야 있지만 악하다. (선적 악)

 

 

그리고 예전에 써놓은 과거의 링크를 타서 훑기만 해도 다양히 범용이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더하여, 위의 응용은 다양한 응용 중에서도 한 가지에 불과할 뿐이다.

 

주딱한테 십년동안 만든철학 피드백받는중 (35) - 인디철학 미니 갤러리 (dcinside.com)

 

 

즉, 심리학에 기반하지만 더 이상 심리학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다. 뻗칠 수 있다.

그래서 멀게 보는 관점에서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관련하여 링크를 더 뒤져보게 되면

저 모형 하나로 심화해서 형이상학적으로도 쓰고, 미학적으로도 확장하여 응용한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

.

.

근데 내면적으로 안 받아들이는 게 있는가?

모든 건 인간으로서 말 그대로 무자각하며 자각함으로써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 않는가?

 

그래서 이 모형을 사용하는 나의 눈에는, 나의 눈에 들어오는 그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는 점이다.

<기분, 감각, 지각, 감각, 직관, 경험, 인지, 인식...>

 

모형 그 자체로도 유연하지만 내면성을 차용하는 그 자체로서도 범용성에 한계 없는

기적의 신소재다.

 

그래서 보이는 어떤 것에도 저 모형 짜맞춰 장면으로써도, 단면으로써도 양면처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구분선으로써 두 개로 보면 이분법이지만, 구분선을 제거하고 막대기 하나로써보면 비이분법적으로 융화되듯이)

 

 

스펙트5.png

 

여담이지만 왜 이걸 나만이 중요히 바라보며,

왜 나만 저 작대기가 그토록 귀중하여서 남기던 글마다 이 모형만 기억해주세요, 강조해왔는가.

 

나는 겸손하려 하는 사람이고 확신을 극히 조심스러워 하는 사람이지만

이것만큼은 꽤 높은 가능성으로 예측할 수 있는 가운데의 하나이다.

 

저 모형은 내 방법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 의해 언젠가는 역사적으로 재평가될 것이기 때문에

저 모형만을 기억해달라고 내 글을 읽는 그 누군가에게 반복적으로 요청해왔던 것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주요해지므로.

 

 

 

나는 저 모형으로 나의 일상 다방면을 해석하여 아래 링크로 묶어 남겨놓은 바 있다.

안전 장치 다 걸어 놓았고, 적용하다 끝 없어서 50편에서 정리가 중단된 성과이다.

 

철학 연재글 링크모음 - 인디철학 미니 갤러리 (dcinside.com) 

 

이건 불친절하게 쓰인 글이라 읽어달라거나, 꼭 읽어봐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고,

 

그냥 필자의 일상에 한계 없는 적용의 시도가 가능했다는 것만을 보이는 근거이므로

거리감각을 익혀서 모형을 습득하기만 한다면 다양한 곳에서

관점으로써 당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까지도 활용이 유연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적용이든, 분석이든 간에.

역사를 거들먹하니 건방져 보일 수도 있는데,

다시 말하자면 감정의 흔들림 없는 무덤덤한 확신에서 기인하므로 서술에 후회 없다.

 

 

 

호오미.jpg

이 도구를 십년 써 왔는데, 꼭 쓰는 편이 좋아 보이는데도 사람들이 왜 안 쓰는 지 잘 모르겠다며,

당연한 기색으로 추천하는 사람과 다름 없이 봐주었으면 한다.

 

'심리적 체험에 내재된 본질형식'을 기술하는 방식으로 '세계에 내재된 본질형식'을 기술할 수 있다는

철학자 후설의 통찰이, 나의 모형을 향한 강력한 예언이었으면 좋겠다.

 

 

후설의 현상학 개념 - YouTube

현상학적 심리학, 초월론적 현상학, 보편적 학문: 에드문트 후설, 「현상학」 - 인식론 - 서강올빼미 (owlofsogang.com)

 

 

 

 

 

⑥ 차이와 동일을 모두 포용한다.

 

 

종교적인 신비주의야말로 배격되어야 한다.

저 가운데에 선 인간이 아침마다 거울에 비치는 그 당신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할 줄 알았으면.

 

어린 아이도 가능할만큼 쉬운 것인데도 어려운 듯이 장벽을 올려서는 안 되지.

 

 

구경.png

 

(1) 후설 : 초월론적 현상학 (feat. 하이데거, 윌리엄 제임스, 이상의 날개) - YouTube

 

나는 그런 바, 모형적으로는 스펙트럼이라고 부르지만,

 

"길이", "거리", "깊이", "높이" 마냥

비가시적 단위, 내면적인 척도의 면모를 강조하기 위할 필요가 있을 때는 "맥락"이라고 부른다.

맥락은 각자의 임의적인 구획에 따라 각자의 단위로써 내면성에서 수준이 "측정"될 수 있다.

 

"길이", "거리", "깊이", "높이"에서 단계와 수준이 "측정" 되듯이.

 

 

 

내가 제시하는 모형은 이름이 "스펙트럼", "맥락" 두 개인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주장하였듯이,

"나"로서 겪게 되는 모든 대상과 현상에 맥락이 잠재하게 된다.

 

 

이 때 맥락에는, "장면에서의 이해"가 바탕되기에 당연스럽게 차이가 포용된다.

그러면서 맥락 전반 혹은 영역을 모두의 공통과 표준으로 삼아 "단면"마냥 둘 수가 있겠으므로,

동일 또한 당연스럽게 포용된다.

 

차이와 동일을 모두 포용한다.

 

 

단, 이러한 "표준"으로의 공통은 "단면으로의 이해"로써,

다분히 이해의 편리를 위하고 있음을 언제나 염두에 둬야만 하겠다.

 

 

빙산빙산4.png

 

장면이 단면을 출산한다.

 

더욱이 저 위의 관조하는 그림이, 이해의 편리를 위해 현실을 비약해놓은 그림인 건 모두가 알 수 있지 않은가.

정치적 입장은 더욱 세부적으로도 구별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이란, 차이로부터 만든 임의의 동일이, 현실과 같은 동일인 양,

즉, 진짜 바다로부터 만든 바다 모형이

바다와 같은 진짜 바다인 양, 편리하게 이해하고,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면성이라면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저 모형 하나가 세계의 차이와 동일을 모두 포용할 수 있을 황금 열쇠라고,

저 모형을 오래 봐온 입장으로서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이고.

(기타 이 글에서 적지 않은 모든 통찰을 끌어모아 보고 있는 나의 종합된 관점에서.)

 

확신이야 있으니까 엉성한 방법으로라도 계속 부딪히고 있는 것이겠다. 좀 골 아플 뿐이지.

하다 보면 어느 쪽이든 부서지지 않겠는가?

 

 

 

* 물론 이러한 학적 성과, 현상학의 등 위에 올라타는 편리한 표방은

나의 모형이 학술적인 견고, 엄밀에서 부실하건대, 똑같이 말 그대로 "단면"만 보고 하는 편리에 의한다.

 

절대 필자를 철학 잘 배운 사람으로서 착오해서는 안 된다.

속칭 사파이고, "도사"에 불과하다.

 

막 적어내도 비판적이게 알아서 잘 판단하리라 믿고 있다.

 

 

 

 

⑦ 모형의 가변이 개인의 정신 성숙을 야기한다.

 

이 파트는 그냥 심화 없이 적겠다.

 

1)

 

빙산6.png

 

바다의 바닥을 알 수 없다. 얼마나 깊은 바다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하늘조차 잘려 있다. 얼마나 높은 하늘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즉, 완벽하게 자각적이고, 완벽하게 무자각적일 그것은

함부로 규정되기조차 어려운 것이다.

 

애초부터 비가시적이기도 하지만,

올라가면 계속 높아지고, 내려가면 계속 깊어짐을 체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내면성 모형에서조차도 드러난다. 나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

.

.

 

마찬가지로 맥락의 양 극단은

대충 편리하게 끝이라고 표현은 되지만 그것이 정말 "끝"이라고 함부로 부르기는 애매한 것이다.

 

기존보다도

더욱 잘 보게 될 수 있고, 더욱 잘 보지 못하게 될 대상은 언제든지 "보임"으로써 나에게 출현할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으며, 실제로 실사례를 경험케 되기 때문이다.

 

 

스펙트11.png

그래서 "근육"을 키우고 부피가 커지듯, 사용하면서 맥락은 꾸준하게 넓어진다. 

느끼고 생각하는 범위가 넓어질 때마다 이윽고 허물을 바라보는 마냥 편협하였던 나로서 전락한다.

 

부끄러워지는 과거를 앞으로도, 앞으로도 맞이하게 된다.

 

 

 

펜듈럼.png

 

그리고 언제든지 넓어진 맥락이야 이후로도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 가변하기 때문이다.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지금의 나는 편협할 수 있다고 언제고 부정 없이 생각하게 된다.

 

동시에 본인이 판단하기 어려운 혼재 구역도 성찰이 습관화되면 자주 경험케 되는데,

자주 데이다 보니 확신이야말로 쉬운 일이 아니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겸손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2)

 

맥락이 넓어지게 되면 곧 "나"로서 가능한 나의 발전이면서도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에 자존감과 자신감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마저 "근육"에 비유하건대, 자신감을 붙이는 방편으로 운동을 권장하지 않던가.

근육의 성장을 겪으며 나에게 믿음을 갖는 가상의 본인을 떠올리며 위의 "맥락 넓힘"을 감 잡으면 되겠다.

 

동시에 이 자존감이란 겸손과 반비례 관계에 놓인 것도 아니다.

겸손이 나를 낮추는 맹목에서 기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겸손이야말로 "내가 하는 선택"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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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잠재성을 언제든지 가질 수 있고, 누구든지 나보다도 넓은 맥락으로

살아갈 수 있으므로, 그 누구도 함부로, 가볍게 여길 수가 없게 된다.

 

그들의 내면성은 나의 내면성처럼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함부로 꺾을 수 없는 꽃들이다.

참으로들 꽃밭이다.

 

 

 

3)

 

방심은 또,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언제고 잘 보이던 것은 잘 보이지 않게 될 수 있으며,

언제고 잘 보이지 않던 것은 잘 보이게 될 수 있는데,

 

쥐다가도 놓칠 수 있고,

지나가다가도 닥쳐올 수 있으므로 방심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이 신중해진다.

 

 

 

4)

 

주관적일 "장면으로의 이해"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타협하여 단편적인양 바라보기도 하는데,

"장면 이해"가 메인이니, "단면 이해"할 때는 언제든지 경각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가령 "저 사람은 나쁘다"고 당장은 필요를 위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저 사람이 좋아질 수도 있는

가능성을 속으로는 놓치지 않는.

최대한 잘 보이지 않는 좋은 점을 찾아보고 잘 보이도록 끌어올릴 궁리를 나쁜 점을 보면서도 동시에 굴리게 되는.

 

 

 

 토성1.jpg토성2.jpg

 

아주 잘 보이지 않음과 아주 잘 보임을 줄이게 되고,

더 나은 능동을 위하여

잘 보이지 않음과 잘 보임의 사이에서 머무르도록 마치 중용의 미덕을 기르게 되는.

 

어쨌든 가변적이고 비가시적인 모형의 사용은 다양한 방향에서 개인의 정신적인 성숙을 야기한다.

 

굳이 몽땅 언급하려 하지는 않겠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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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쉽게 왜곡될까 싶어 몇 줄 더 적자면은

맥락을 쓰고 있는 이 내가 부처와 같은 성인군자라는 자부가 절대 아니다.

나도 롤하면서 시비 털리면 말대꾸 잘 하는 평범한 인간 한 명이다.

 

 

근데 내실이 다르다. 나는 내가 선택한다.

 

툭 감정에 못 이겨 튀어나오는 무의식적인 말대꾸가 아니고,

한 번 머릿속에서 의식적으로 굴려보고 말대꾸하는 데에서 다르다. 

 

 

평범하고 못나기도 한 사람이 그래도 절제할 수 있는 선택지를 때마다 갖게 된다는 소리를 하고 싶었다.

"순간"에 똑같은 대응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내가 받은 감정의 정도를 적당히 타협하여 순화된 수준으로 말대꾸하는 정도.

 

 

소.jpg

 

즉, 무의식이고 국가교육이고 불합리한 사회구조이고 수동적으로 질질 끌려가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계속하여 출현하고,

그 언제고 잠재한 맥락으로부터 내가 끊임없이 선택하며 살아감으로써 모든 분기점에서 능동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걸 안다고 성인(聖人)군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어른을 가리키는, 성인(成人)의 정신은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어떤 도구를 쥐어줘도 쓰고 말고는 물론, 어떻게 써먹을 지는 몽땅 자기 선택이니까

결국에 개인의 정신 성숙이니 뭐니 맛 좋은 듯 말하여도, 본인이 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애초부터 도구 없어도 뛰어나게 잘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기도 하고,

모형의 내재가 필수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계단.jpg

 

발 닿으면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설치해주려는 의도야 당연히 아니었고,

당신의 고되고 비포장된 오르막을 당신이 계단처럼 만들어 올라갈 수 있다는 설계의 깨달음을 주고 싶었던 것 뿐이다.

 

결국에 힘들지만, 덜 힘들고,

결국에 올라가야 하지만 내가 언제고 올라갈 수 있다는 선택지가 발 딛음마다 생기는 것이며,

어디까지 올라가고, 얼마나 빠르게 올라가고, 각자가 다르게 계단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중요한 건 본인이 올라갈 수 있다는 선택지 그 자체가 계단을 만들어 쓰게 되면 언제든지 열려 있게 된다는 것.

 

 

 

산.jpg

 

"주어진 비탈"을 오르다 굴러 떨어지면

주저하였던 시도로부터, 정말로 불합리이기만 한 대상으로부터 좌절하고 끝장날 수 있지만,

 

"내가 만든 계단"을 헛디뎌서 실패하는 어떤 상황이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다독이고 몸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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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건데,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본인으로부터 남과 본인을 합리적으로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범하게 살아도 좋으니까요.

아직까지 본인의 행복을 단면에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싹 지우고 그냥 저에게 당신에게 이 말을 주구장창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요.

당신이 이해할 수 있어야만, 나에게도 이 말이 진정 멋진 조언으로 새겨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계속 계단 올랐나보네요.

 

물론 여태껏 뒤지게 굴러떨어지긴 했지만... 다시 올라왔으니까 과거는 상관 없습니다.

 

회포 적고 마치겠습니다.

 

 

 

 

 

10. 회포

 

 

초파리.jpg.webp

 

 

초파리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만약에 하나의 초파리를 분석해서 모든 초파리에게 쓰일 범용의 유전자 지도를 만들었는데,

그 분석 당한 초파리가 불량 개체라면야 그것만큼은 어설픈 성공이겠다.

 

나는 내면성 모형을 만들었다.

만약에 나의 내면성을 분석해서 모든 이들에게 쓰일 범용의 내면성 모형을 기획했는데,

나라는 놈이 정신병자라면야 그것이야말로 어설픈 성공이겠다.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어야만 한다. 이건 삶을 바쳐 분석 당한 초파리의 발악과도 무척이나 닮았을지도.

당신도 동의하면서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이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다면 나는 십년 간을 여전한 불량 개체로써.

 

쓰고 싶은, 철학계를 편리하게 비판하는 글이나, 재밌어 보이는

"재미란 무엇인가" 따위를, 로스코의 예술 분석 따위를 적어보고 싶지만은,

깜냥이야말로 그만큼이나 될런지.

 

나는 아직까지도 철 들지 못하여 마구 살아가는 비정상 개인은 아닐런지도 모르겠다며

쓴웃음 더불어 자기 행복회로를 동작하지만.

 

사실 딱 맞아서 나는 정상인의 날개에 적합하기 위하여서 이곳을 떠나 어디로든 비행해야 합니다.

그 누가 나만의 철학을 하겠다며. 위기감을 느낄 구직난에.

그럼에도 잘 이겨내고 취업 준비하다가 관성으로

이 변두리에 되돌아오게 된 나란 놈을 보면서 "나는 쓰레기야" 농담하며 생각케 되는데.

 

문제는 글을 주르륵주르륵 내리고선 "나는 쓰레기야"에 한눈 꽂히고 항상 이런 감성에만 주목해주시는

기계 같은 독자분들께 위로 받는 편이란 말이지. 잘 모르겠지만, 당신은 쓰레기가 아니에요. 쓰레기가 아니에요.

이것 또한 감사하긴 하다만요. 오히려 쑤시는 지경이라서요.

 

나를 향한 비수 같은 위로는 나의 철학을 이해해주는 것임에도 말인데요.

 

인간이지만 다 같을 인간으로서 이해받기는 하지만, 마치 나의 삶은 초파리와 같아서.

특이한 애환이 있는 게놈 초파리는 그 아무도 이해해줄 수가 없는 노릇이렸다는 거지. 미치겠는 거지.

똑같은 반복. 똑같이 반복되어서 나는 말라붙어간다. 말라붙어서 죽어간다.

 

번식을 해야 하고도 주변을 챙겨야 하는데.

나는 자승자박, 트랩에 갇혔다.

 

따라서 나는 여의치 않은 일개로서 선택을 해야만 한다.

희망찬 인간은 개뿔 나는 무척이나 비관적인 낙관주의자가 되어서,

 

 

 

 

 

 

초파리.jpg.webp

 

1.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야, 2.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야.

 

이 버릇든 왈 중에, 1번을 선택하였고 구데기처럼 드글드글 풀어놓았다.

이제는 2번을 선택할 것이고, 누구보다도 정상 사람처럼 살아가야지.

 

공허한 마음에다가 나를 죽이는 에프킬라를 끝마쳤으니까요.

임시방편에 오히려 건강 파스 같아서 어지럽지만, 이거에다 수십번을 고쳐쓰고 삼주일을 쏟았다.

나는 쓰레기야...

 

그치만 언제까지고 천재처럼 보이려는 듯 적게 되는 꼬라지에 눈치 보이게 되니까는

내려 놓고선 힘내서 살아가야지.

많이 외롭지만 모두들 고마워요.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나는 쓰레기야.... 이 글은 나에게 주는 오늘의 생일 선물.

그 누구보다도 비관적인, 그 누구보다도 낙관주의자인 ───님께서.

 

고독과 사랑의 환경으로부터 피어난 나의 술 머금은 꽃 한 송이를 다시 털어서

지나온 회상을 선물한다.

내일부터 자격증 공부 열심히 해야지. 나는 이제부터 정신병자가 아니야.

 

 

 

[초초스압] 세계 진화설, 세계가 생각하는대로 이루어진다면? - DogDrip.Net 개드립

[철학][초스압] 황금 금붕어(1) - 무자각과 자각의 스케치 - DogDrip.Net 개드립

[철학][초스압] 황금금붕어(2) - 느낌이란 무엇인가? - DogDrip.Net 개드립

철학을 만들었는데 꺼내놓을 데가 없어 - 철학 갤러리 (dcinside.com)

한 아무개의 철학의 방향성에 대한 가벼운 제안 (1) : 네이버 카페 (naver.com)

주딱한테 십년동안 만든철학 피드백받는중 (50)<완> - 인디철학 미니 갤러리 (dcinside.com)

내가 만든 철학 (50편분량) - DogDrip.Net 개드립

아카데믹하지 못한 철학의 피드백 요청 - 질문 - 서강올빼미 (owlofsogang.com)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야 - DogDrip.Net 개드립

 

 

 

 

 

 

 

 

p.s. <컨셉뺀진짜회포>

 

 

나는 별생각이없다.png

 

난 너무 부족한 사람이야

하지만 한가득 채울 수 있어

 

답글 겸손치 못하게 달아서 죄송합니다.

바뀌겠습니다.

 

 

 

+

 

처음 먹어본 맛을 정확하게 설명하긴 누구에게나 여간 어려운 게 아닐 텐데요.

아무도 제 맛 표현에 공감해주는 이, 오랜 시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맛을 계속 느끼고 있는 입장이었거든요.

 

그래서 한 명이라도 이해시켜보고 싶었습니다. 막연하게요.

솔직히 지금의 설명법이 최선 같아요.

 

그럼에도 잘 안 읽히시나요?

글쓰기가 지리멸렬 하셨을까요?

 

죄송합니다.

나의 맛을 사람들에게 음식 직접 주는 방도 없이 말로만 이해시켜야 했기에,

그럼에도 장기간 잘 되지 않았었기에,

최대한 몸을 꼬아 가며 이해시켜드리려다보니 불필요할 수 있는 첨언을 계속 붙이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어디가 종양 같은 지는 잘 알겠는데, 어떻게 떼어내야할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이걸 버리면 이해 못 하시는 분들 생길까봐서 쉽지가 않네요.

(글 쓰고 일주일 된 지금에, 몇 군데를 덜어내긴 했습니다.)

 

경험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사르트르의 글을 읽었을 때에,

한 문장을 위하여 다음 문장, 다음 문장이 그 한 문장을 위하여 동일한 내용으로 투자 되기도 하였으며,

 

라캉, 헤겔, 들뢰즈, 글 자체가 난해한 사람들,

또는, 기타 현상학자들의 글과 같이 수려한 글솜씨에도 "맛" 표현을 언어로 해야함에,

수 차례 읽어야만 입에서 맛이 감도는 그런 글 또한 저에게 분명히 경험으로 존재하였거든요.

 

저는 라이트한 독자층으로 다르게 잡은 바, 감수를 하겠습니다만,

또한 내가 이같은 현자들과 같은 선상에 서려는 욕심과 교만은 더더욱 아니지만서도요.

 

그냥 다른 욕심에서, 제 글쓰기 스타일을 변호해보는 쪽으로도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개선의 의지야 있지만 당장의 글쓰기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다시 말씀드리건대 이번 글이 제 방법의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스타일로 겸허히 여겨시어

내용으로 평가해주시고 피드백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당장은 감이 잘 안 잡혀서요.

취업준비 하면서도 제 근본적 문제이니 머리 굴려보고 있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답글이 달고 보니 참 제가 보기에도 못난 어투로 많이 달았는데

혹시나 몇몇 분들 상처 받으셨으면 죄송해서요. 유하게 표현 못 해서 죄송합니다.

94개의 댓글

2023.01.31

ㄹㅇ 무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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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1
@공주레오나

컨셉이야요

0
2023.01.31

ㅁㅊ

0
2023.01.31

빙하-원근법-철길-가시와 비가시를 활용한 설명이 이해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기존 심리학의 빙하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지만,

물을 끼얹고 얼림으로 빙하를 키울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에 철학이다.

 

/////

 

개인적인 감상으로

스펙트럼으로 인지한 뒤의 성장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다뤄지는 내용이기에 새롭지 않았지만,

빙하에서 --- 스펙트럼으로 전환하는 사유의 과정은 감탄하며 읽었다.

 

이걸 왜 혼자만 알고 있었나,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여기저기 썼으면 좋겠다.

저자가 영어 불어 러시아어 다 공부해서 여기저기 배포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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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1
@읽을거리12345

휴 다행이다... 시간 그래도 아예 날린건 아닌거같아서 뿌듯하기두 하고 에헴

근데 아직 좀 긴가민가해서

약간 시제품 느낌으로 쓴 글이기도 해가지고 기다려볼게

칭찬 고마워!

0
2023.01.31
@제준

다른 댓글들 보니까 잘 설명하려고 굉장히 노력하네

혹 <생각에 관한 생각> 읽어봤어?

그 노력에 도움이 될것 같아서

 

대충 내용은 우리 사고유형이 1과 2로 나뉘어져 있다는 내용

사고 1은 무의식적인 것

사고 2는 의식적인 것

 

드라이브를 한다고 치면

사고1의 역할 : 지나가는 풍경 (사람 나무 등) 보는 것

사고2의 역할 : 목적지까지 경로를 확인해가며 운전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지 의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의식 밖으로 지나치는 것들이 존재

몇개의 나무가 있었는지, 사람의 인상착의는 어땠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해.

 

이 책의 내용은 연구와 논문으로 증명이 되었고

저자는 이 내용으로 노벨경제학상도 수상

 

읽었을것 같기도 한데 혹시나

노력에 좋은 참고가 될것 같아서 이야기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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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읽을거리12345

요즘 아침마다 루틴으로 도서관 가고 있는데 안 읽어본 책이라 꼭 읽어볼게

책 추천 고마워 재밌겠덩 ㅎㅎ 생각해줘서 고마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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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4
@제준

다른 댓글들 더 보았는데

철학 내용 충분히 좋음 꾸준히 철학하며 살아가도 될듯

몇가지 제안이 있는데 적당히 참고해서 취사선택하면 될듯

너의 스펙트럼처럼

 

제안1. 철학과 자신을 분리하기

만든 철학에 애착이 있다보니 자신이랑 동일시하고

스트레스를 너무 받는 듯

니체처럼 살면 어떻고 개붕이처럼 살면 어떠냐

그렇게 계속 생각하면서 사는거지

 

제안2. 꾸준히 철학을 하면서 살기

소크라테스는 대충 일하면서 살았다

마지막에는 그냥 사형당했다

지지하는 제자들은 있었지만 그것도 자기들끼리지

사람들 모두에게 인정받진 못했다

그냥 그래도 계속해서 철학하면서 살았다

 

사실 소크라테스도 시대가 좋아서 4대 성인이지

길가는사람 붙잡고 씨잘대없는 질문해대는데..

편집증 말 나왔을거야

그냥 그래도 계속해서 철학하면서 살았다

 

.....

 

그 외.

편집증 이야기에 상처 많이 받은것 같은데

인터넷의 글과 댓글만으로 예단하는 전문가는 없음

정신과든 심리과든 진단 그렇게 함부로 하지 않음

정신이나 심리는 정답이 없어서 진단에 신중한 편

 

자신이 만든 철학에 애착이 강한건 정신병일까?

아니라고 본다

위 제안 한번 생각해보고

 

남의 글과 말에 너무 휘둘리지 말자

0
2023.02.04
@읽을거리12345

아 물론이지 ㅎㅎ

 

저거 편집증 글 과하게 반응한거 뭐냐면

솔직히 저 분 말 안 믿고 있었는데 막상 진짜 거짓말인거 확인하니

괘씸하기도 하고 저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욕 박기는 뭐하고

배우마냥 감정 과하게 끌어올려서 적어본거임 저 덧글 쓰고 잘 자러갔음

 

이렇게 쓰면 스스로를 돌아보실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저렇게 적었는데

끝까지 저 분은 정신병자구나 낙인 찍고 바라보려고 들면서

남에게 상처줄 수 있다는 메세지에는, 공감 전혀 없이 본인을 돌아보려고 하지를 않네...

 

단단하게 자기중심적인 분이시라 연약하단 것만 캐치하고

끝까지 건강한 내가 도와줘야 된다는 과신으로 자각 없는 가스라이팅을 하고 계시는데

한두어마디 쯤 나눠보다가 좀 죄송하긴 한데 자리 뜨는 쪽으로 대처해야 될 듯

 

자기만의 자기주장력과 프라이드가 생각보다 쎄셔서

관점이 자기 외에 넓지 못하신 분이라 피하는 것도 있겠지만

내가 피드백 나누는거만큼은 재미로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전혀 유익하지 못한 대화라서 가치가 별로없긴함

 

보통 공감해주고 감사합니다 도움 됐어요 하고 넘어가면 저런 분들은 특히나 기분 좋아지셔서

자기 얘기 더 푸시다가 딴데가셨을텐데 이건 내 감정노동이라

사회생활도 아니고 별로 안 그러고 싶었던 거도 있고

 

그렇다는거지 진짜 저 분을 미워해서 이렇게 적은건 아니고

"그냥 왜 저렇게 적었는지"랑 "저렇게 적어도 저 사람한테 안 통하네", 이 두가지만 말해보고 싶었어

좀 당황스럽긴 하네

당황스러워서 당혹감 해소하려고 진짜 줄줄 적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주면 될 거 같아

커뮤에서 저런 분 대면하는 건 처음이라서

 

아무튼

걱정해준만큼 상처 많이 받은 건 아니었고 예전에 상담사님도 심리검사결과로

자기회복력 왜 이렇게 높냐는 말 하셨을만큼 말만하고 생각만 그렇게 하는 거지

스트레스 아예 안 받는 편이니까 걱정 많이 안해줘도 될 거 같아

 

내가 그렇다고 저분 말대로 진짜 정신병자일 수도 있는데다가

좋은 반응들에만 둘러싸여서 진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들을 도외시하고 있는 답정너일 수도 있겠지만

너가 좋게 말해준대로 내 철학따라 내 소신따라 내가 판단해야겠지

철학 있는 입장에서 남의 말 막 안 휘둘릴라구

 

제안1. 철학과 자신을 분리하기

제안2. 꾸준히 철학을 하면서 살기

 

내 소신에는 이게 진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 같은데

나는 제안1 메인으로 넘기고 제안2를 취미처럼 하기로 방향성을 정해놨거든

 

그래서 지금처럼만 하되 글쓰기에서만 어떻게든 개선점을 찾으려하면 양쪽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 같아

철학과 대학 후배 피드백 이제 만나서 받아야 되는데, 객관적으로 피드백해주는 친구고

객관적으로 정상적인 친구니까 이 후배 피드백으로 감 잡아보면 되겠지 뭐

 

아 근데 진짜 고마워 이게 니편내편처럼 되면 중립적이려는 입장에서 안 되는 걸 알지만서도

걱정해주는 것만으로 진자 고맙구 그래도 고마운걸 어떡함

그래도 이 덧글 내 비판 무찌르는 방패처럼 안 삼고 딱 조언처럼만 새겨들을테니까

덫이 잘못 걸린마냥

내 상처 너가 공감해주라고 적은 덧글이 아니고 저분이 공감해주었어야할 덧글이긴했는데 ㅋㅋㅋ;;

 

너가 대신 공감해주려 해주고 좋은 조언해줘서 고마워

내 철학이 틀리든 틀리지 않았든 상관없이 넌 진짜 좋은사람이야

0
2023.01.31

재밌게 읽었습니다~

0
2023.01.31
@흉근게이

의식과 무의식을 거리에 의한 스펙트럼으로 해석하는 근거가 빙하 모형을 장면으로 해석하는거라면 빈약한 것 같은데..

빙하는 말 그대로 걍 모형인 건데 그거를 장면으로 보는건 오히려 실제 내면에서 기반한게 아니라 모형에 영향 받은게 아닌가?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냐면 의식과 무의식이 난 스펙트럼으로 느껴지지가 않아서 그래, 걍 같은 차원이 아닌 아예 다른 차원으로 나는 느껴져

1
2023.01.31
@흉근게이

덧글 너무 난잡하게 쓴 거 같아서 다 지우고 다시 적으면

 

전쟁 중에 딱 지도 위에 병사 말 움직여 가면서 전투작전계획 짜듯이

지도가 실제를 "가정"하고 있을 뿐인 거야

 

지도가 실제 지형은 아니지 않나? 실제 전투로 치부하기엔 빈약한 거 아닌가? 이야기할 수 있는데

대충 이해의 편리를 위해서 장군들이 그러한 가정 위에서 계획을 논의하고 실제로도 무리 없이 행해지잖아?

"워게임"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하게 감 잡으면 될 것 같아

 

전투를 위해서 실제 지형이 아닌 지도, 지형의 모형을 쓰는 것처럼

정신분석학적 표준의 공격을 위해서 실제 내면성이 아닌 빙산 모형을 사용하는 것이라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스펙트럼도 실제가 아니고 실제를 상징하는 "모형"이라서

아예 다른 차원으로 느껴진다 적었는데, 이거도 이해의 편리를 위해서 그려놓은거라서 그렇게 느껴져도

문제가 없는 것임.

왜냐면 스펙트럼도 스펙트럼 모형으로써 빙하 모형이랑 똑같은 모형의 일종이기 때문

 

실제 내면에 기반하진 않지만 그냥 이해하기 편하라고 대충 비약해서

활용했다는 것이야

 

지도에서 벌이는 전투작전계획과 실제 전투 들어가서의 차이는

다른 차원에 있는 문제가 맞으며

따라서 어느 정도의 간극은 어느 정도 이해의 편리를 위해서 엄밀한 사실성은 포기한거라고 바라보면 될 듯??

 

근데 아예 이러한 설명법이 허무맹랑하진 않다고 얘기하고 싶음

단순히 비유를 해서 이야기하는거니까

비유법의 관점에서 이해해주었으면 좋을것같다는 이야기

 

--- 읽어주셔서 고마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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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1

의식을 인지하는 방법을 단면이 아니라 거리로 바꾼건 신선하게 다가왔는데

그것때문에 "무의식적으로"라는 핑계가 먹히지 않는다는건 조금 의문이 감

거리라는 개념을 써놓고 왜 속도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

인지할 수 없는 범위 바깥에서, 혹은 인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더라도 내가 인지할 수 없는 속도에는 대응할 방법이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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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1
@혼돈왕김혼돈

"나의 내면"은 실제로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정지된 화면으로, 원하는 시점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진정 그러한지.

 

나의 내면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진동하고 움직이며 그것을 관찰하는 나 또한 움직이는 존재인데.

 

우리는 "본다"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영어에서는 look과 see를 구별하듯이, 내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 들어와 있다고 해서, 그리고 그게 보인다고 해서 그게 글쓴이가 원하는 "보는 것"인지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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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1
@혼돈왕김혼돈

아주 당연한 의문이십니다. 밥점 먹구와서 적어볼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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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1
@혼돈왕김혼돈

사실 무자각이니 자각이니 이건 나만의 이야기니까, 나도 일상에서 의식이니 무의식이니 하는 말 쓰면서

대화할 거 잖아?

근데 하고 싶은 말은 나도 무의식적으로- 라는 말을 별 문제 없이 사용한다는 거임.

 

그래서 온갖 것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라는 말을 핑계로써 금지하는 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라는 말을 빌미로 변명하는, 변명의 무의식적으로- 를 공격하는 글이야.

 

그래서 구체적으로 적어놓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조건을 이것저것 붙여놨어.

앞서 이야기하자면 속도를 고려할 필요가 별로 없어서 적어놓지는 않았다는 것이야.

 

왜 별 필요가 없냐, 그 글에 적어 놓은 조건이란 무엇이냐, 이것에 대해서 적어보자면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알지 못했다"로 단정하는 스탠스를 꼬집는 거임.

 

개선하려는 의지 없이 그저 내가 알지 못했던 상황으로 종결되거든. [보이지 않았음]

가령 술을 먹어서 음주운전을 했으면, 술 먹어서 기억이 나지 않아요.

이러면 무의식적으로 한 걸로 종결되는 거임.

변명의 무의식적으로- 이고. (보이지 않았는데 어쩌라고)

 

근데 이걸 무자각적으로 전환한다? [아주 잘 보이지 않았음]

음주운전을 했다는데 술 먹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하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뿐이고, 벌어지긴 했으니 계속 기억을 해보려고 할게요.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지만 잘 안 보인 걸 수도 있다 잘 보려고 해보겠다)

 

그리고 앞으로는 경계해서 절대로 이런 일 안 생기게 해야겠다.

기억 잘 하려고 해야 겠다. 기억 잘 할 수 없겠다면 기억 못 할 환경 만들지 말아야겠다.

(그럼에도 당장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으니, 애초에 잘 보이지 않을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

 

반성이 필수로 따라붙음. "인지할 수 없음", 이건 당장에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고

잘 살펴보면 인지할 수는 있었네? 이렇게 바뀔 수 있음을 언제든지 긍정하고 있는 자세를 취하는 거임

 

그래서 뭐 반사신경 발휘 못 할 정도로 돌이 빠르게 날아와서 머리에

불합리하게 얻어맞으면, 당장은 "인지할 수 없는 속도에 대응할 수 없었음"이니,

"보이지 않았어요." 말이야 할 수 있겠지. 변명이 아니고 그냥 상황을 설명할 때.

변명 외로써 무의식적으로- 라고 말이야 할 수는 있다는 소리.

 

근데 앞으로를 생각해서 속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어요." -> "잘 봐야겠다"의

무자각적으로- 생각해야 자기 발전이 있을 수 있단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속도를 비롯한) 어떤 억까든 간에 당장 반응할 수 없다 하여 돌을 맨날 맞을 수야 없으니까

대응 방식 없어 보인다고 낙담 않고 어떻게든 내가 조치를 취해보려는 대처가

당연하게 따라와야 한다는 것.

 

즉, 무의식적으로-, 무의식이라는 용법-용어가

"금지"되어야 한다가 아니고, "사고방식"이 바뀌는 탓에 잘 안 쓰게 된다를 이야기해주고 싶었어.

 

<문구 인용>

1) 잘 보려 하는 나의 과정이 "뒤따라 올 수 있다" (이후의 변화 긍정)

2) "잘 보이지 않았던" (과거형) 그것이라면 잘 보이게 될 수 있다. (이후의 변화 긍정)

3) "저질러버렸더라도" (이후의 변화 긍정)

4) 당장에 그렇게 될 미래가 잘 보이지 않더라도, (이후의 변화 긍정)

5) 뭐가 어찌 됐든 겪어 놓고 아직까지도 무의식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하동문)

 

어쨌든 대응할 방법이 없어 보이더라도 보이지 않았다가 아니라,

아무튼 궤변마냥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하고 환경을 개선시키려 하는 사고방식이

건강할 것이면서도, "장면에서의 이해"에 따라서는 당연하게 이루어진다.

 

이런 내용이엇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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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1
@혼돈왕김혼돈

"나의 내면"은 실제로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정지된 화면으로, 원하는 시점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진정 그러한지. 나의 내면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진동하고 움직이며 그것을 관찰하는 나 또한 움직이는 존재인데.

 

이거는 내가 보장하는데 하면 할수록 날아오는 야구공 잡는 솜씨 성장하듯이

물론 평상시에 무자각하게 살아가기야 하지만, 순간순간을 잘 자각하게 되는 능력과 빈도가 늘어남.

 

당연히 이해 편하라고 시각적으로 전개하다보니

"원하는 시점을 볼 수 있다"는 식으로 이상적으로 얘기 되긴 했는데,

나의 경우에서

"직감", "직관"의 "습관"이라던가 특히나 "회상"으로써도 무자각하게 지내던 것을

생각해보니 이러면 안 되지 않나? 끌어올리고 잘 보게 될 수 있어왔음.

 

쉽게 말하면 내면성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던 것,

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것을

 

1) 습관적으로 "그 순간에" 혹은,

2) 뒤늦게 회상하여서 "이후에라도" 눈치채볼 수 있다는 것.

 

근데 이건 모형 모르고서라도 평상시에 되잖아?

"...생각해보니 그러네?", "이럼 안 될 것 같은데?", 이런 류의 사유 말이야.

근데 이게 능력으로써 강화된다는 거임. 내면적인 브레이크 능력?

 

나의 일상에 세세한데 까지 감각이 예민해져서 옥에티를 점점 잘 찾아내게 된다?

 

잘 느끼지 못하며 하던 거에 순간적으로

기이함을 느끼고 잘 느껴보려고 의식적으로 끌어올리는 메타인지.

 

너무 이상적인 수준까지 갈 필요는 없어 보이고 이 정도로 여기면 될 것 같아.

 

.

.

.

look, see와 같은 용법은 사실 내면적으로도 인지-인식을 구별하여 쓰듯이

함부로 "보다"로 뭉뚱그려도 되나? 이런 물음인 것 같은데

 

독자 입장에서 충분히 의심이 갈 문제이지만?

일단 이건 이 글의 논의 말고 다른 논의라면 구별을 하기는 할 거야.

 

근데 이건 나중에 나오는 논제이고,

지금의 이야기에선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서 이 글에서는 생략했었어

이 글에서는 뭉뚱그려도 별 상관 없다가 대답인 듯.

뭉뚱그려도 크게 무리 없이 잘 전개 될 수 있어 보이는데? 싶어서...

어........ 뭐 그래서 딱히 구별 안 하고 적었었어.

 

답 제대로 됐겠는 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혹시 다른 물음 있으면 다 답변해줄게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0
2023.02.01
@제준

실제로 자기 자신에게 보였는지 보이지 않았는지는 차치히고서라도, 결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음에도, 미필적 고의 혹은 외면으로 파악하지도 않아 놓고서 아무렇게나 내뱉는 "무의식적으로"라는 변명은 지양해야 한다-라는 의미라는 거지?

 

내가 지금 비상용 현실탈출물약을 과복용해서 제대로 읽은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글을 읽고 가졌던 첫번째 의문은 해결됐어!

 

다만 두번째의 "보다"에 관해선 아직 조금 의문이 남긴 하는데, 평소에도 "보인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많이 하다보니(다들 한번씩은 생각하는 '내가 보는 빨강과 네가 보는 빨강이 진정으로 같은가' 같은 거) "그게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그게 "보임" 판정을 받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

 

아무래도 개념을 시각화하다보니 서로에게 보인다라는 단어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듯 한데, 해당 철학을 오랫동안 받아들인 사람과 오늘 처음 활자&이미지로 받아들인 사람과의 차이가 아닐까 싶음 ㅋㅋ

 

글 재밌게 잘 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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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혼돈왕김혼돈

맞워요! 설명 성공해서 다행이야 ㅎㅎ

 

두번째는 의문 안 남았으면 좋겠을 마음에 너무 안 길게 보충 붙이자면

"내면적인 것과 대응되는 그 비유법의 보임이란 어떻게 설명해볼 수 있는 건데?"

 

이렇게 질문이 들어왔다고 생각해볼 때, 사실 내가 "보임"을 비유법으로만 차용한 거라

"보임"이란 개념 자체를 엄밀하게 말해보기에 난처하고

거기다 "내면적인 것과 대응하는 비유법"이기 때문에

또, 독단적으로 그 보이지 않는 내면성과 괴리 있게 말하면 안 돼서 더 어렵단 말이지?

 

그래서 어떤 보임의 개념에 맞닿겠는지 그냥 체험시켜보려는 전략을 쓸 건데,

한 번 시도해보면 주관적으로 감 잡을 수 있도록 마련해주고 마칠게.

 

1) 의자 하나를 눈 감고 떠올려봐.

2) 그러면 의자가 "잘 보이잖아" (자각)

3) 근데 그 상상에 의자만 있어?

4) 의자도 있지만 <검은 배경>이 같이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을 거야.

5) 그 <검은 배경>은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지. (무자각했음)

6) 이제 의자의 "잘 보임"과, <검은 배경>의 "잘 보이지 않음"을 비교해보면 될 것 같아.

7) 검은 배경 "보임"으로써 의자와 함께 보고는 있었잖아. 잘 보이지 않았을 뿐.

 

https://www.youtube.com/watch?v=jkn3q1fk4Hw&t=457s [6:58 메를로퐁티- 사고실험]

 

이렇게 두면 무엇인지 앎-모름과 관계 없는 "보고는 있다"로써 보임이긴 한데,

복잡해지니까 글 끊을게.

 

글 재밌게 읽어줘서 고맙고 피드백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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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은 실제 일어나는 현상을 잘 정리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기존 모델에서 주장되는 무의식들을 의식의 영역으로 전환하는 실제 케이스를 어떤 예로 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무의식 모델을 부정하는 기존 다른 이론들과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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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공돌이는공돌공돌해

1.

사실 주관적인 용도로 만든 지라 저의 일상에서 생각해볼 수 밖에 없겠는데요. 가령 본인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억압된 동기/충동 따위가 있을 경우, 이것이 다른 방식으로 숨겨진 채로 발현될 때 그러한 억압의 기저는 무의식의 수준에 있다고 취급되잖아요. 억압, 방어 기제의 뒷배경까지도 스스로 자각(의식화)해낼 수 있음을 긍정하고 실제로 체험한 바 가능하다고 두는 편입니다. 성격 교정이 필요한 사람은 본인도 원치 않지만, 원인의 의식화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어 방임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내가 왜 머리털을 뜯는 습관을 가지게 됐는지, 쉽게 흥분하고 주변인에게 욕을 한다던지. 그러고나서 후회하던데요.

완전한 "보이지 않음"이 아닌, "잘 보이지 않음"으로 취급하고 계속적으로 시도함으로써 자가 교정이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무한회로 식의 빠져나올 수 없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요.(조현병 등) 그래서 "자가 교정이 가능함"으로써 "의식 없음, 의식 아님"의 "무의식"이 아닌, "의식은 있으나 아주 약한 의식", "무자각"으로써 그러한 "무의식의 수준"들을 취급한다는 거죠. 그리고 그 "무자각"은 "의식"의 일종으로 규정되었고요. 저의 경우에도 뭔가 일상적으로 약간이라도 기이함(잘 보이지 않음)이 느껴지면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거지?" 따위의 반성적 질문을 즉각 던지게 되어서요.

 

지금을 예로 들자면, 성향 상 줄 띄어가며 답글 적는 편인데, 줄 안 띄어가며 안 적고 있는 무의식적이던(무자각적이던) 상황을 눈치 채고 "질문자의 질문 양식에 영향 받았다."고 깨닫는 식인데요.

사실 이런 <"무의식적"인 것>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고서라도, 사고방식 자체를 궤변에 가깝게 조정할 수 있음을 주장하였기에, 기절한 상태, 수준의 의식 불가, <진정 "무의식"으로 보이는 내면성>까지도 "아주아주아주... 아주아주 약한 의식"으로써 수용할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허허벌판에 냉장고가 갑자기 생길 확률이 아예 없지는 않은 것처럼 여겨보듯이요. 그러한 상태에도 아주 약한 의식이 있을 수는 있다. 생각은 해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기절 상태까지는 의식 없음인 무(無)로써 저는 취급하긴 합니다만, 누군가의 주관에서는 그래도 의식이라고, 입장 따라 말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누군가 이렇게 주장한다면, 이것 또한 실제 케이스가 되겠지요.

그래서 무의식들을 의식의 영역으로 전환하는 실제 케이스는 (1)가볍게 "무의식적으로-"라고 이름 붙이는 약한 인지적 수준에서의 의식화라던가, 아니면 (2)"비의식, 의식 없음"으로 통상적으로 취급되는 무의식 수준까지도 "이론적으로"는 의식으로 유연히 취급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겠습니다. 사실 실제 케이스의 예시를 요구하셨으니 현실적인 전자만으로써 감 잡으시면 되실 거에요. 후자도 간혹 쓰이긴 하지만요.

 

2.

가장 다른 점이라 하면, 시각적인 모형화가 가능하면서도, 그 모형을 논지 전개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응용한다는 점이 다르겠습니다. 극초반부의 내용이라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모형 기본을 변형해가면서 이곳저곳의 분야를 살피는 전개라서요. 내용은 다른 철학들과도 자주 겹치기야 하는데, 전개 과정이 시각적으로 가능하다는 데에서 차이가 가장 크게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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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질 읽었습니다. 메타인지가 좋은 사람이 본능적으로 적용하는 방법론과도 유사하네요. 구도적인 느낌이 굉장히 강하게 드는데 그렇게 자신을 단련하는 건 뭘 위해서인가요?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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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아싸신

엄.... 그냥 너무 심심해서 어쩌다보니 쭉 하게 됐는데

이렇게 돼버렸네요 별 뜻은 없었습니다

산이 있었는가 보다는 산 같은 걸 올라가는 과정 그 자체에 재미를 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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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너도 철학과에 오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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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aebaeb

;;; 이미 졸업해버린 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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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늦은 시간 잠이 안와서 보다가 흥미롭게 읽었어!

 

우선 윗 댓글들 처럼 의식 (또는 주관적 인지, 사고)에 관해서

기존의 단면적인 모델들을 벗어나 직접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1인칭의 관점에서 가시화에 빗대어 설명한 건 재밌는 것 같아.

 

일반적으로 우리가 단순히 의식/무의식이라는 이분법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잘 캐치해서 위 모델을 예시로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무의식’이라고 할 때, 이것을 ‘보이는 영역’을 넓혀서 무가 아닌 새로운 명칭을 정하고 단계로 나눠 규정하려 한 것도 흥미롭다.

또 그런 규정을 통해 발전적으로써 자기 계발의 여지까지 주는건 근현대 철학에서 나타나는 양상들을 보는 것 같아서 의미심장하네.

 

물론 논지를 읽다 보면 이미 어디서 나온 이론들이나 여러 철학들이 섞인 느낌이 들지만 (어쩌면 위에 규정한 내용들도 명칭이나 설명만 다를 뿐이지 누군가 시도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학 모델로 나온 단면을 토대로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자신만의 모델을 구상한 것을 보면 꽤 괜찮은 접근이었던 것 같아.

잘 읽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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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조밥

(어쩌면 위에 규정한 내용들도 명칭이나 설명만 다를 뿐이지 누군가 시도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

직감이 좋네

섞으려는 의도는 없었는데 이곳저곳에서 겹치기는 하더라고...

그래서 관련한 내용들을 많이 접해본 사람들에게는 접근법이 신선할 수는 있지만 메리트 없게 느껴질 수 있음

 

다만 짚어준 "직접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부분이 지금 내 글의 개인적인 목표였거든

보급화? 이런 느낌으로. 저번 글들에서는 항상 실패했었는데.

내 안에 갇힌 생각을 어떻게든 쉽게 표현해서 사람들 이해할 수 있도록 적어봐야겠다.

이번에는 이 목표를 달성해낸 거 같아서 기분 많이 좋음 ㅎㅎ

이해 못했다는 덧글이 하나도 없는 거 보면은

 

암튼 읽어줘서 고마워! 나한테 최고의 보람을 주는 덧글이야

좋은 피드백 남겨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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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정신병과 철학의 차이는 현실과의 대응력, 영향력, 증거의 확실성으로 정해짐

 

의식과 무의식을 발견한 사람은 발견한게 두개니까 중앙을 기준으로 말하는게 당연한거고

너는 별 이유도 없이 있던 기준도 부시고 프랙탈마냥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감

그러다가 의지력이 딸렸는지 원본처럼 똑같이 유/무의 중간을 기준으로 잡고 주변부를 4토막이든 7토막이든 무한토막이든 조각내는 행위에 매몰되어있음

생각범위의 확장말고도 깨달음의 함정은 여러 형태로 올수있음 지식이나 체험이나 오감이나 기타등등

 

나도 몽상가라 이런거 좋아하는데 그래도 중심은 다져야한다고 생각함 예를들어 만약 내가 어느날 머리감다 깨달음을 얻어 헤드뱅잉시 일어나는 머릿결의 운동방향을 250가지로 분류하고 온갖 자연현상과 비교하더라도 그누구도 알아주지않는 헛된 놀이일 뿐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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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아멜리아왓슨

일단 맹목적으로 내껄 지키려는 의도가 아니고 변호해볼 수 있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아서 얘기해볼게

 

1.

"별 이유"는 들긴 했어. <의식-잠재의식-무의식> 세 단계의 구획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데,

너가 의식과 무의식을 발견하고 구획 세운 사람도 아니면서 아무 의심 없어도 되냐?

사람마다 주관적으로 차이 있는 게 당연하다면 내면성의 구획조차도 모두가 표준이라고 보장할 수 없을 텐데?

 

그래서 아예 명분 없이 표준을 부수지는 않았음.

(물론 저러한 명분이 강력한 명분은 아닌지라 관점을 새로이 가져보자는 쪽으로 타협하여 명분 축소)

 

2.

매몰... 은 그렇게 보이는 거지. 이게 그런 거야.

그 뭐냐. 홈쇼핑 보면 야채 써는 강판가지고 이게 튼튼하다면서 막 기존 쓰임새처럼 당근, 감자 썰다가

튼튼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갑자기 질긴 가죽 썰고, 벽돌 썰고 그럴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거 봐요, 이렇게 쓸 수도 있어요. 최대의 범용성, 범용성에 강점 있어요를 보이는 파트라

그렇게 토막내고 있는 거지. 나도 막 토막내기 자체에 큰 의의를 가지고 적지는 않았어.

 

당신이 어떤 용도로 이걸 쓸 지는 몰라도 이렇게 변형될 수는 있으니까 맘대로 쓰세요.

하고 싶던 말은 이것 뿐이야.

벽돌 썰고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자 썰리는 거 보셨죠? 벽돌 썰던가요. 이런 거.

 

각자가 편리한 모드를 설정해서 그거에 고정돼서 써도 아무 문제 없다는 거임

가령 <의식-잠재의식-무의식> 다시 세 단계로 회귀해서 써도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이야

난 기준을 부순 적이 없다. 글 중, "공존"이라고 언급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

 

그리고 "원본처럼"이라고 했는데, 그냥 "원본처럼"이라기 보다는

"내면성을 살폈을 때"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 중앙을 기준으로 두 개로 쪼개는 거,

이게 어떻게든 부정하기가 어려웠다는 거임.

 

즉,

(1)

내면성으로부터 -> 정신분석학적 구획으로부터 -> 나의 모형

이렇게 마냥 카피하는 과정이 아니고

 

(2)

내면성으로부터 -> 정신분석학적 구획

내면성으로부터 -> 나의 모형

이해 편하라고 카피하는 듯이 적기는 했지만, 나의 내면성 관조해봐도 중앙 두고 자르는,

모형의 요소로 둔 "구분선"은, 부정하기 어려웠음.

 

그럼에도 벽돌 써세요, 처럼 그 구분선조차 개인에 따라서 제거해볼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거든?

그래서 아예 "원본처럼 똑같이"라는 말은 내 모형에 해당이 안 됨.

커스터마이징에 완전한 자유를 뒀으니까.

 

3.

현실과의 대응력, 영향력, 증거의 확실성으로 적어주고

토막내기가 비현실적인 공상 놀음이라고 지적해주었는데, 사실은 이게

어... 말한대로 극단적인 공상 놀음처럼, 말해준 250가지 머릿결 운동방향 분류법처럼 가능은 하거든?

 

근데 그렇게 당연히 안 쓰지.

근데 결국에 각자가 필요 따라서 변형하고 쓰는 게 주력 용도로 제시한 거잖아?

말이 그런 거지 진짜 벽돌 써는 용도로 준 게 아니고, 야채 써는 용도로 준 거라니까?

 

비현실적으로 쓰일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쓰라고 만들어 놓은 거라는 거임.

일단 내면성 그 자체로써도 이렇게 쓰는 사람 있음.

 

4단계로 쪼개고, 11단계로 쪼개고, 13단계로 쪼개고 하면서

켄 윌버라는 사람이 <의식의 스펙트럼>이라는 자기만의 모형으로

자기 사상 설명하고, 현실과의 대응력, 영향력 면에서 그래도 인지도 있는 사람이니까

내면성에 대한 활용 측면에서는 써먹기 나름으로써 좋은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구글에 의식의 스펙트럼 치면 나올 거임.

 

또, 그렇게 허무한 활용만이 더더욱 아닌 게, 나는 모든 대상과 현상이 내 모형에

적용될 수 있다고 과감하게 전제 쳐놨기 때문에,

모든 척도나 모형에 유사한 모든 일종이 나의 모형의 파생으로 복속시켜서 바라볼 수 있는 거야.

모든 것에 우리는 무자각하고 자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예컨대 1점에서 10점 두고 찍는 심리검사, 리커트 척도,

가깝다-멀다 판가름해보는, 일상적인 주관적 판단,

중간 쪼개서 양쪽을 극단처럼 취급하는, 이분법적 평가

 

이런 건 전부 현실적으로 쓰이잖아?

이것의 "메타"로 제시하는 게 내 모형이라는 거임.

 

그래서 굳이 250가지를 뭐, 필요하다면 그렇게 써볼 수야 있겠는데,

애초에 스며있다고 두기 때문에 너무 어렵게 생각 안 해도 될 것 같아.

 

ㅡㅡㅡㅡㅡㅡ

물론 (실제 빠졌는지와는 관계 없이) 깨달음의 함정을 극도로 경계하는 사람으로서

변호해볼만하지 않을까? 싶은 껀덕지 없이

정곡 쑤심, 체크메이트 당하면 그대로 아, 끝났다 하면서 완전히 내려놓을 의향이 있긴함

 

근데 일단은 말해준 내용에 대해서는 이런 식으로 한 번 변호해볼게여

 

이후에 다른 거 지적해주거나 하면 나야 내 생각이 정돈되는 과정이 유의미해서 너무 고맙긴 한데

"의지력이 딸렸는지"와 같은 감정적 표현에 대해서는 경계해줬으면 좋겠음.

 

그러니까 꼴 받아가지고 지적을 하고 싶어서 한다기 보다는

향후에도 지금 같을 원만한 대화를 하고 싶은 데에서의 우려에서 말하는 거라는 것두.

 

암튼 피드백 자체는 진짜 고마워하고 있는 걸 알아줬으면

혹시나 오해 있을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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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3
@제준

종교적인 신비주의도 철학의 경험론과 뗄수없는 사이임 밑에 마음챙김 어쩌고가 네 이론이랑 결이 유사한거처럼 알아서 이렇게 보면 좋을거같으니 자유롭게 이용하시오가 다라면 내가말한 머리카락얘기나 밑에 누가단 100키로 소리나 너가 배격하는 종교적 신비주의.. 예컨데 차크라나 오라, 기 같은 주장처럼 필요한 사람말곤 아무도 안찾고 가치가 없음

켄윌버가 먼소릴 길게썻는지 모르겠지만 무경계 소리하는거보면 대충 예상이됨 걍 그쪽계열 이론들은 거의다 과집중의 결과물에서 시작함 이는 종교적 신비주의들도 마찬가지고 온갖방식의 샤머니즘으로 이어지므로 매우 경계해야함

종교, 사상, 철학의 차이를 두고 팩트에 기반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는게 중요함

마지막으로 일상적인 이론과 일상적인 철학을 표방하면서 왜 스스로를 사파며 도사라고함 이 글 정도면 불꽃정파임 이상한 영적인 결론으로 안끝났으니까

 

다쓰고 나니까 켄윌버책도 몇개 읽어본 기억나는듯? 서양철학과 동양불교를 합친건 참신했는데 나머진 고전을 누더기처럼 꿰맨거라 진부했었음

합치는 과정도 먼가 개판이었던거같고 기억도 안나고 부정적인 느낌만 떠오르는데 난 그사람 싫어하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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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3
@아멜리아왓슨

그 사실 자유롭게 이용하시오. 가 표면적으로 그렇게 쓰기는 해놨지만, 그것보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라고 거리 둬서 이야기하는 게 나의 입장에서도 맞긴 해.

솔직히 내 모형의 구획 이상으로 내면성 성찰 위해 더욱 구획해야 할 필요성은 나도 크게 느끼지는 못해서.

물론 그게 설득될 수 있다면, 나도 충분하게 동의하기야 하겠지만 말이야.

 

예컨대 야채 강판으로 튼튼하다며

가죽 써는 걸 보여주긴 했지만 구매해서 진짜로 가죽 써는 용도로 써 먹는 사람이 있으면, 저렇게 까지 쓰네?

진짜 쓰네? 싶기는 할 테니까.

그냥 나는 이것도 썰 수 있고, 저것도 썰 수 있고 그런 걸 보여줘야 하는 입장에 서 있어서 갈아봤을 뿐인데

뭔가 합리적이지 않고 진짜 기이하게 써 먹는다면 보여준 나조차도 당혹스러울 수 있다는 거지.

 

켄 윌버도 그런 경우인데, 사실 켄 윌버 나도 좋아하진 않음.

접한 사상가들 중에 유일하게 싫어하는 편이야.

 

사상검증 하듯이 갑자기 내 꺼 어거지로 변호하려는 마냥 비틀어버리는 느낌도 들긴 하는데,

너무 사견 넣으면 사족 같아서 동의 안 한다고 굳이 적지는 않았었음.

그냥 '내면성 쪽으로 변형을 활용해볼 수는 있다' 의 케이스를

보여줄 수는 있기 때문에 집어넣어 본 거임.

(생략 : 호불호 갈리기야 하는데, 아무튼) 쓸 수야 있다. 로써의 예시.

그리고 켄 윌버 싫어하니까, 왜 그렇게까지 써요?

범용성을 그렇게 주장하던, 써먹으라고 줬던 나조차도 켄 윌버에게 당혹해 하며 말해볼 수도 있는 거겠지.

 

근데 말 했듯이 "과집중"이라는 불필요한 이입으로써 어쨌든 그 이상의 구획은 불필요하다,

그래서 무용하다 주장된다면,

사실 이 모형은 나 또한 "메타"로써 활용할 뿐이기 때문에, 그 과집중이라는 것으로

필연히 나아갈 수 밖에 없는, 보통 무책임케 되는 내면 구획법에는 크게 무관하게 전개되긴 해.

무관하지.

 

왜냐면 내면성을 쪼갤 필요는, 나의 경우에서는 위에 내가 제시한 저 모형 그대로 종결되어서,

외부에서 내면으로 들어오는 것을 분석하는 데에만 저 구획법이 고정된 상태에서 쓰이는 편이거든.

 

2-4-7, (보통 2-7 무시하고 4 구획으로만 쓰임)

딱, 아주 잘 보임 - 잘 보임 - 잘 보이지 않음 - 아주 잘 보이지 않음,

제시한 토성 사진으로 보자면 구획해야 할 차이로써 수용될 만하잖아?

나는 내 구획 정도면 과하지 않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함.

켄 윌버와 같은, "과집중"은 아닐 상태에서 응용하는 편이라는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고.

 

그러니까 더 나아가 특수한 구획은 어떤 경우에 쓰이는 거냐면

수학에서 좌표평면 같은 것도 x축, y축 잘게잘게 쪼개지잖아?

"메타"가 될 수 있으려면 이 잘게잘게 쪼개짐을 모형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모형 어찌저찌 변형하고, 이러한 범용성 갖다 넣으면

우리가 문제 없이 잘 쓰는 좌표평면으로 변환할 수 있는 거임.

 

주관적 판단 양식이 가시화 되어 좌표평면을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좌표평면은 주관적 판단 양식의 가시화 산물이다.

이런 정도?

 

그래서 그냥 내면성을 쪼개는 방법을 다양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 다양이 내면성에만 활용하라고 만드는 게 아니고,

뭐에 응용할 지는 모르겠지만,

내부로 들어오는 모든 현상과 대상에 대입시킬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한다? 그런 느낌으로 미리

불필요하게 보이는 그런 것들까지 마련해놓을 뿐이라는 거.

 

메타임을 보이기 위해서 변형하거나, 혹은 나도 잘 쓰일 지는 모르지만 언어분석적으로 잘게잘게 쪼개서

활용될 수도 있긴 한데? 언어학은 잘 몰라서 공리처럼만 줄줄 정리해둔 바 있고, 아무튼 간에

<⑤ 내면성과 관계 있는 모든 성질적 대상에 모형의 대입이 가능하다>,

글에서 유일하게 형광펜 그어 놓은 대목이듯이

요약하자면

우려해주는 "과집중"과는 관계 없이 나름 합리적으로 여기는 내면성 구획을 고정한 상태에서

특수한 필요에 있을 때만 모형을 더욱 구획하여 활용하게 될 뿐이라는 이야기.

근데 말 그대로 특수하기 때문에, 구획 쪽으로 높은 범용성을 지니긴 했지만 나조차도 잘 쓰는 편은 아니고.

 

음. 그렇다.

 

다른 이야기로 "불꽃정파"는 ㅎㅎ;; 고맙기는 한데

철학과 나와서 그런지 진짜 철학이 뭔지 접해봐서 학적이지 않으면 당장 사파라고 보는 게 맞음

내용은 중요하지 않음. 제시하는 방법이 논문 이외로 편리하다면 스스로 도사라고 두는 게

거름망으로써 확립된 시스템에 유익하기 때문에 차라리 이게 내가 마음이 편한 거야.

 

그래서 그냥 마음이나 생각은 고맙지만 사파로 있을게.

 

(우려해준 그대로 경계 제대로 하지 못한 이상한 분들이 나 보고나서 나 또한 정파다, 하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는 똑같은 과정으로써 할 말 없기 때문, 본질이 너와는 다르지. 얘기해주면 또 고맙긴 한데

그냥 본인을 사파로 두고 편리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주 편해서 깊게 생각 안 하고 도사로 두려는 편

일단 내가 본인 스스로 정파라고 주장하면 안 되는 위험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함.)

 

(+ 물론 나 또한 이후의 내용 측면에서 진짜 사파일 수도 있겠지만)

 

합치는 과정도 먼가 개판이었던거같고 기억도 안나고 부정적인 느낌만 떠오르는데 난 그사람 싫어하는듯

ㅋㅋ... 내가 이런 말 함부로 할 입장은 아니지만 내 인상이랑 비슷하긴 하네

머 암튼 피드백해줘서 진짜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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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뭔 소린지도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음.

이론이고 뭐고 글 이따구로 쓰고 발표하면 독자들이나 청중들한테 욕 뒤지게 먹는다 진짜.

네가 네 이론이 망상 수준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면, 글쓰기 실력부터 키워야 함.

(본인 철학과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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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자까님뭬감이

나도 철학과 나왔는데 철학과 부끄럽게 ㄴㄴ 유연하게 생각하셈

내가 언제 발표했니

내가 언제 "엄밀한" 이론이라고 적어놧니;;;

 

이거 그냥 커뮤에다 적는 글이야

본분이 개드립에 쓴 똥글인데 혼자 갇히면 어떡함

내가 진짜 뜻이 깊었다면은 논문을 투고했지 않았을까??

애초에 자기도 말 쉽게 하고 있으면서

 

일상적으로 말되는 "철학", 일상적으로 말되는 "이론"을 이야기한거지

학적 철학, 학적 이론을 이야기하는 글이 글만봐도 아니잖어;;

 

누가 물로켓론, 설거지론 이런거에

이야 이게 철학 이론이지, 감탄조 덧글 달면, 철학 이론을 표방했다면서 진지빨거임??

이것도 유도리 있게 똑같이 봐야되는거여

 

애초에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면서 조언은 대체 왜하는거고;

다른 사람들 그래도 읽음 가능했고 의견 나눌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글인데

혼자 단정짓는것부터도 "철학과" 내걸고 말하는 게 진짜 별로다

 

절대 필자를 철학 잘 배운 사람으로서 착오해서는 안 된다.

속칭 사파이고, "도사"에 불과하다.

막 적어내도 비판적이게 알아서 잘 판단하리라 믿고 있다.

 

글에도 위에처럼 안전장치도 걸어놨는데 자기 혼자 알고 싶지 않다고 비판의 최소조건으로써

훑으려고도 안하니까 이런 얘기나오지

 

순수 걱정에서 하는 이야기였고, 말투가 평소에 거친편이라서 거칠게 표현된거였다면

좀 미안하긴 한데 그래도 좀 아니지 않나 싶어서

나도 내 당연할 자기 변호와 함께 너에 대한 순수 걱정에서 적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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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3
@자까님뭬감이

아; 미안 밤에 생각해봣는데 오해의 여지를 남기는거 자체가 내가 배려 없었던거같긴함

그냥 박제용으로 답글 남겨두고 제목 수정할게 ㅈㅅ 내가 잘못햇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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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마음챙김 쪽에서 이미 다루고 있는 개념임 관계구성이론 rft 관련 책들을 찾아봐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의 핵심은 맥락임 그리고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없이는 깊이 들어갈 수 없다 rft는 인간이 도구로써 가지는 언어의 한계에 대해 설명하면서 맥락을 다루는 방법을 이야기함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없으면 한계가 있는 이야기들임 rft이론을 만든 사람은 act라는 심리치료방법을 만들어서 수십년째 실천하고 연구중임 심리치료쪽에서는 가장 강력한 방식중 하나고 정신분석쪽에서도 그보다 훨씬 전에 어느정도 나온 개념이다 윌프레드 비온을 읽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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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키리히

어니 이왜진;; 마음챙김 그냥 예전에 가볍게 설명한 몇 구절 보고

 

오 내 모형으로부터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이랑 엄청 유사하네

주관적으로 마음챙김은 굉장히 유효한 치료법으로 인지하고 있어야겠다 쯤으로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는데

 

지금 좀 살펴보니까 실천 밑바탕의 내용에서 그냥이 아니고 많이 유사하네?? 개인적으로 좀 읽어봐야할듯

윌프레드 비온 고마워 꼭 기억해뒀다가 읽어볼게

 

사실 여기까지만 답글쓰면 깨끗한데

굳이 추하게 자기 변호 하면

이게 극초반부 내용이라서 형이상학-미학적으로 응용된다고 글에서 언급 했듯이

응용으로 뻗어나가는 갈래의 차이로써 전반을 봐서는 아직까지는 유의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야

 

많은 현상학자들이 극초반부에 현상학 개념을 세우는 과정에서 겹치지만

응용에서 점점 다르게 뻗어가며 고유하게 달라지는 것처럼?

 

사실 뭐 그렇다해도 형이상학적으로는 독창적인가요? 그러면 철학자 화이트헤드랑 많이 겹치고

뭐 다양하게 겹치는 것들이 있고, 한데,

 

불교철학과 마음챙김의 유사에 대한 연구가 있을 수 있고, 마음챙김 자체가

불교철학에 잡아먹힌다거나 불교철학이 마음챙김 자체에 잡아먹힌다거나 보지는 않듯이,

아직은 집합-요소 관계의 일방적일 포함관계가 아닐 수 있다는

그 괜히 찔리는 마음에서 길게 얘기해봄

 

아니 뭐 뭔들어때 암튼 식견 넓혀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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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제준

칼융이 연금술에 대해 연구한 것이나 비온이 좌표로 설명한 것들을 참고하면 더 도움이 될듯 인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패턴과 변형이 힘든 원형 개념이나...켄 윌버를 참고해도 좋고 붓다를 비롯해 시대의 천재들이 마음에 대해 연구해온 것들 100년전부터 현대적으로 연구되어온 것들을 참고하는게 좋겠지 마음챙김에서 파생된 기법들은 사회과학적으로도 어느정도 검증까지 된 부분들이고 한계 역시 있다고 보지만... 프로이트도 좋지만 프로이트 이후 100년동안 발전해온 심리학 연구들을 공부하는게 좋겠지 그 이후에 내 생각이랑 비교 해보는게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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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키리히

내꺼에 틀린 게 있는지 검사하려는 목적으로

불교철학, 인지심리학 대학에서 수강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켄 윌버, 안토니오 다마지오 같은 사람들 뒤적여보기야 했었는데

딱히 걸리는 부분 없이, 오히려 혼자 해오던 것임에도 공통이 강했다는 데에서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싶어서 글을 적어보고 있긴 하는 거거든

아예 헛소리는 아니겠다 싶어서

 

어머니랑 평생 별거해서 살아온 자식이 엄마 찾아서 만나보고싶다로써 막연히 인생 목표 잡듯이

나도 약간 이해받지 못하고 살아와서 "이해 받고 싶다"에 막연히 목표 잡고

이해 받기 위해 글 적어온 건데

사실 이후의 너가 권장해주는 과정은

지금껏 해오던 "검사"의 목적보다는 취미의 목적으로 접하게 되긴 할 것 같아

 

사실 목표로써 쉽게 이해시키는 방법으로는 이만하면 되지 않나 싶긴해서 지금

굉장히 만족중이야

 

그래서 공부로 추천해줬는데 아니꼬울 수도 있겠지만 재밌어보여서 재미로 읽어볼게 ㅎㅎ;;

 

뭐 발전이나 개선을 위할 수도 있겠지만 때가 아니기도 하고

발전이나 개선을 위해야만 유의미한 글일 수도 있겠지만

근거를 대가며 설명짓기엔 대학원에 스스로 집어넣은 입장도 아니고

동기나 명분이 모자란 것도 사실이어서

당장은 유익이 아닌 재미로써 추천해주는 글을 읽어보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유익으로써 추천해주는 거니 고맙다는 말을 하구싶어

 

그니까 물론 유사영화같은 거를 내가 제시야 해서 이것도 봐봐, 영화 만들기에 도움 될 거야 하고

너가 주기는 주었지만?

나는 나의 유사영화와 별개로 잘만든 영화 추천받는 느낌으로만 받아보겠다는 이야기

 

나의 유사영화가 이제는 취미의 영역이고

사람들이 내용에 공감해주는 걸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이미 잡아놨던 목표 자체는 달성된 시점이라서

 

여튼

칼융 연금술 연구, 비온 좌표 얘네는 처음 들어봐서 꼭 기억해놓고 읽어볼게 재밌겟덩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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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제준

나는 철학쪽 대학원 전공자인줄 알았네 내가 말한 내용들은 심리쪽 박사과정 이후에 공부하는 내용쯤 되는거라 관심 있으면 천천히 공부해봐 rft쪽 책들은 지금 봐도 좋고 내가 말한 이유는 프로이트 모델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덧붙인 것 같아서 였음 좋은 아이디어인데 다른 학자들이 덧붙인 아이디어들도 있기 때문이지 이미 관련된 아이디어가 있으면 비교하고 내 아이디어를 설명하는게 학문에서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철학쪽 전공자들이 심리학쪽 연구결과들을 모르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거든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한거고 취미로한거였으면 훌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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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3
@키리히

되게 달달하게 쓰였네 뭔가 딱딱해 보이는데 티 안나게 이것저것 챙겨주려는 사람 같아서 녹을거 같음

암튼 사실 대학원을 능력도 잘 모르겠고 갔다간 철학이라 사회적으로 고단할 거 같아서 포기하긴 했는데

내가 학자가 아니게 됐으니 결과적으로는 지금 엄청나게 편하게 글 쓰고는 있잖아??

 

그래서 노력대비 좀 과하게 챙겨받는 느낌이라 이 정도까지는 안 해주셔도 되는데... 싶긴 한데

그만큼 고맙게 받을게요

머리에 박아놓으면 꼭 읽게는 되니까 rft 읽던 책 다 읽으면 함 확인해볼게

양질의 피드백 고마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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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플라톤 동굴 비유에서 그림자를 의식으로 생각하면 비슷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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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다크루트

체험을 바다라고 한다면 바다사진은 유사 체험이다.

빙하로 비유된 내면 모형 또한 유사 체험이다.

 

개인의 내면은 모형으로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필자는 모형을 바라보는 제 3의 눈을 제시한다.

이는 내면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이다.

 

눈앞에 빙하가 있다고 가정하자.

빙하의 윗부분은 보이지만 아랫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내면 모형으로 바꿔보면 의식은 드러나 있지만 무의식은 보지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개개인은 각기 다른 빙하를 가지고 있으며.

시야와 위치에 따라 빙하가 보이는 정도가 다르다.

수면아래 잠긴 빙하는 그저 추론할 뿐이다.

 

중요한건 수면위와 아래의 경계면이다.

성찰을 통해 개인은 빙하를 보는 위치와 각도를 여러면에서 바라볼 수 있으며.

보이는 부분이 명확해질 수록 보이지 않는 곳을 구체화 할 수 있다.

 

(오셀로를 생각해보자.

흰색이 아닌 공간엔 검은색이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무의식을 인지할 수 있다.

 

내가 이해 한게 맞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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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다크루트

수면아래 잠긴 빙하는 그저 추론할 뿐이다.

여기까지는 맞워여

 

중요한건 수면위와 아래의 경계면이다.

성찰을 통해 개인은 빙하(바다)를 보는 위치와 각도를 여러면에서 바라볼 수 있으며.

보이는 부분이 명확해질 수록 보이지 않는 곳을 구체화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무의식을 인지할 수 있다.

 

개인은 성찰을 통해 잘 보이는 면을 보려하거나 잘 보이지 않는 면을 보려할 수 있다.

(잘 보이는 흰색을 보거나, 잘 보이지 않던 검은색을 보거나)

 

잘 보려고 할수록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더욱 잘 보게 될 수 있다.

(잘 보이지 않았던 검은색을 잘 보려고 함으로써 그 검은색을 잘 보게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잘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성을 잘 보게 될 수(도) 있다.

 

제가 해석해봤는데

이 해석에 맞으면 이해 잘 하신거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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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제준

불현듯 든 생각인뎅.

 

무의식은 의식되는 순간 의식의 영역으로 가버리므로.

의식외의 모든것을 무의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봄.

 

별개로.

인간의 경험과 사고와 한계가 유한하다고 가정.

무의식과 의식 또한 물질 처럼 수량 또는 넓이가 정해져있을시.

 

자아 - 의식 = 무의식

 

이런식으로 도식화 시킬 수 있는게 아니냐 생각함.

 

물론 인간의 자아를 이분법으로 나눈다거나 유한 무한으로 재는게 맞는 방법인가 에대한 생각도 필요할듯.

 

말 그대로 화두가 떠올라서 생각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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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다크루트

글이 어려워질까봐 생략하긴 했는데

내 모형에서의 극단이라는 요소도 각각 100%로써 이론적으로 유한을 가정하고 있는 것이야

 

그래서 가정해서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

도식화하는 아이디어는 꽤 재밌어보이네용

 

무의식은 의식되는 순간 의식의 영역으로 가버리므로.

의식외의 모든것을 무의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봄.

 

이 말에는 동의하는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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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제준

나도 고딩때 철학 좋아했었고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것들을 되짚어보고 정의하고 의미부여해보곤 했었음.

간만에 생각해볼 거리라 잼썻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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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3
@다크루트

ㅎㅎ 나도 좋아함과 의미부여에서 끝났어야 했는데 루트를 잘못 타버려서...;;

암튼 생각해볼거리 줄 수 있어서 기분 좋아용

읽어줘서 고마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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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선형대수랑 확률 공부해봐 다차원에서 다차원으로의 projection이나, conditional probability density function이랑 연결되는 부분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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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3
@lIIIIllIlIl

아는만큼 보인다는데 들은 게 없어서 암호문처럼 보이네요 이거

혹시 어떤 점에서 연결되나요? 하면서 편하게 여쭤보고는 싶지만

예끼 이놈 편하게 알려 하다니 하실 수 있으시니 딱히 답변 안해주셔도 되고 기억해놨다가

나중에 기회 되면 혼자 파고들어볼게요 읽어주셔서 고마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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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3
@제준

수학쪽에서도 철학이라는게 있는데, 너가 말한 부분이랑 겹치는게 있는거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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