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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외국인 레즈비언들의 사포섬, 사포 코리아

사포 코리아

처음 이 그룹을 알게 된 것은 미국 네트워킹 사이트 'facebook' 을 통해서였다. 레즈비언을 검색어로 온갖 모임을 찾다가 우연히 이 한국 내 외국인 레즈비언 그룹을 발견했을 때의 그 신기함이란. 그때 마침 언니네 자방에 한 언니가 올해 한국 퀴어 퍼레이드에 참 많은 외국인들이 왔다는 글을 썼었는데, 아마 그 외국인들 중에 이 사포 코리아 언니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후에 이 그룹이 한국 내 유일한 외국인 레즈비언 그룹이자 장장 15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포 코리아의 대표 레이첼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 레즈비언들의 삶과 이야기는 어떨까. 사포 코리아 커뮤니티의 생성과정과 역사, 시행착오, ‘타자’의 눈에서 본 한국 동성애 운동에 대한 단상들을 레이첼을 통해 들어본다.

“레즈비언 모여라!” 신문 광고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사포 코리아의 대표 레이첼이에요. 캐나다에서 한국에 온지 10년 되었고요. 현재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쳐요.

혹시 이전에 한국매체랑 인터뷰 한 적 있었나요?
-네. ‘티지넷’에서 비디오 인터뷰를 한 적 있어요.

사포 코리아에는 주로 어떤 사람들이 있고, 어떤 일을 하나요?
-주로 캐나다랑 미국에서 온 영어 교사들, 외교관, 학생들, 교포들이 오고 가끔 주한 미군들도 와요. 거의 대다수는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들이에요. 한 달에 한번 정기모임과 북클럽 모임을 해요. 북클럽에서는 주로 퀴어 관련 책 혹은 그때그때 괜찮은 책을 골라서 토론하고 그래요.

그룹 회원 수는 모두 몇 명이고, 모임에는 어느 정도의 인원이 오나요?
-멤버 수는 현재 200명 정도인데 활발히 하는 사람들은 한 50명 정도에요.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들 수는 때에 따라 다른데요. 정모하면 많을 때는 30명도 오고, 적을 때는 10명도 오고 그래요.

레이첼은 페미니스트인가요? 그리고 모임에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이 많은가요?
-네, 저는 페미니스트에요. 사실 레즈비언이 된다는 것은 많은 부분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과 맞닿아 있잖아요. 근데 뭐 모임에는 페미니스트들도 있고 그냥 그런 거 규정 안하는 레즈비언들도 있고 그래요.

그럼 사포 코리아, 이 모임을 어떻게 규정하세요?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그룹?
-저희는 그룹을 간단히 ‘영어를 하는 퀴어 여성들의 모임’이라고 규정지어요. 그렇지만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모든 분들에게 열려 있어요.

한국 내에 있는 외국인 레즈비언들은 어디서 퀴어 관련 정보를 얻을 지 궁금해요.
-저 같은 경우는 한국인 애인이 있었으니까 그 친구들 통해 얻기도 했고 T(그룹의 창단멤버)를 통해 얻기도 하고 그랬죠. T는 ‘레스보스’ 명환선배, 다른 레즈비언 바 사장님들과 친해요. 아, 그리고 저는 인천 여성 야구팀에 있는데 거기에 레즈비언들이 많이 와요. (웃음) 그리고 ‘티지넷’, ‘미유넷’같은 사이트, 외국인 레즈비언들을 위한 웹사이트들도 이용하고요. (www.utopia.com, www.fridae.com, girlports.com)

저는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관해서 관심이 많은데요. 사포 코리아가 어떻게 생성되고 다져졌는지 그 과정을 듣고 싶어요.
-처음 모임이 생긴 건 정말 필요에 의해서였어요. 그 당시 정말 아무 것도 없었고, 그래서 몇몇의 레즈비언들이 일종의 풀뿌리 조직처럼 만든 셈이죠. 창단 멤버들이 ‘코리아 타임즈’에 작은 공고를 내면서 처음 시작을 했어요.

레즈비언들 모이라고요? 신문에요? (약간의 놀라움)
-네. 그래서 (15년 전) 그때 이태원 ‘gay hill’에서 4명의 외국인이 모였어요. 두 명은 주한미군이었고 나머지 두 명 중 한 명은 지금도 이 그룹에 있는 영어강사 T에요. 그때는 이름이 지금이랑은 달랐어요. 거의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름도 많이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Belles of Queeria’에서 ‘서울시스터즈’, 그리고 지금의 ‘사포 코리아’가 되었죠. 사포 코리아는 그야말로 당시 외국인 레즈비언의 통로였어요. 함께 모여서 ‘레스보스’에도 자주 가고 그랬죠.

사포 코리아는 2000년대에 가장 활성화되었어요. 그 당시 정모하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왔고 심지어 사포 코리아 부산, 창원, 마산 이메일 리스트까지 있었어요. 모임은 새로운 사람 만나고 함께 교류하는 장이었어요. 저희 모임은 15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번성했다가 작아졌다가, 사람이 들고 나는 굴곡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어요.

중요한 건, 모임을 재밌게 만드는 것

그룹 운영에 관한 이야기 좀 해주세요. 어떤 분들이 어떤 식으로 모임을 꾸려나가는지 궁금해요.
-다 자원 활동처럼 해요. 누구는 이메일 리스트 관리하고 누구는 정모 관리하고 그런 식으로요. 그리고 운영자도 그때그때 많이 바뀌어요. 일 년 영어선생님이면 일 년 후면 가잖아요. 그렇게 짧게 해도 누가 운영자인지가 그룹에 많은 영향을 끼쳐요.

2000년대부터 한 5년간 정말 바빴다가 그 다음에 A라는 분이 그룹 운영자를 했는데 A는 이전과 다르게 그룹을 운영하고 싶어 했어요. 인사동 가서 산책하고 차를 마신다거나, 강원도 여행을 가는 그런 분위기로요. 그 당시 사람들도 밖에 나가서 노는 정모 분위기에 약간 지쳐있는 상태였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런 학구적인 분위기로 1년 가니까 그룹이 죽었어요. 사람들이 재미없으니까 안 오는 거죠. 그래서 나중에 내가 정모 담당한다고 했죠.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정모를 재미있게 만들고,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거죠.

세월이 흐르면서 사포 코리아의 지형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 이전에는 사포 코리아 아니면 외국인 레즈비언들이 발붙일 데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이반관련 정보를 교환하니까 절대적 ‘필요’에 의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죠.

하지만 여전히 사포 코리아는 커뮤니티를 만든다는 점에서 중요해요.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 진짜 소통을 하기를 원하거든요. 퀴어 페스티벌에 나가고, 배너를 함께 만들고 누구네 집에 모여서 파티도 하고 그러죠. 이 안에서 서로들 가진 것을 자유롭게 나눠요. 옥상 바비큐 파티하자고 그러면 “우리 집 옥상 써”, “나 바비큐 잘 구워”, “이건 내가 할게” 그러면서 서로 기여를 하죠.

저 같은 경우는 구성원들로부터 상담전화가 많이 와요. 아주 사소한 얘기부터 여러 주제들로 상담을 해오죠. 택시 아저씨 바꿔줘서 통역 좀 해달라고 그럴 때도 있고, 한국 여자 친구 사귀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조언해달라고 그럴 때도 있고요. 저는 최대한 그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많이 노력해요. 왜냐면 제가 처음 낯선 한국에 왔을 때의 그 느낌을 아니까요.

주로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어디에 살아요? 언니네 페미니스트들은 주로 홍대, 망원동 쪽에 많이 몰려 사는 경향이 있거든요.
-저는 한국에 산 지 오래되서 한국말도 편하고 해서 홍대에 사는데 그렇지 않은 그룹원들은 주로 이태원에 살아요. 이태원에서는 영어를 많이 쓰고 외국인 네트워킹이 있으니까 편하죠.

커뮤니티 특성상 사람들이 몇 년 있다가 가고 오고하잖아요. 그런 건 어때요? 좀 슬프지 않나요?
-음… 마음 편하게 가져야죠. 그래서 저는 어느 정도만 주고 너무 다 주려고 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저는 한국 친구들 많아서 괜찮아요. 한국 친구들은 안가잖아요. 제일 친한 친구는 한국 친구인데 그 친구가 가면 정말 슬프겠죠. 이런 커뮤니티의 특성 상 서로 외롭고 하니까 더 잘 뭉치고 끈끈한 것도 있어요. 구성원들끼리 많이 사귀고 깨지고 그래요. 저희 모임을 통해 만나 캐나다 가서 결혼하고 애기 낳은 커플들도 있어요.

“한국 레즈비언과의 연애, 줄다리기 필요해”

한국에서 레즈비언으로 살고, 연애하면서 느꼈던 단상들 좀 이야기해주세요. 한국 레즈비언들과 만나면서 특별히 느낀 차이점이나 특징 같은 것이 있다면요?
-부치/펨 규정이 너무 확실하다는 거예요. 캐나다에서는 부치/펨을 나누는 기준이 스타일 적인 면이 큰 거 같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게 성적인 역할을 규정하는 것 같아요. ‘Bottom’, ‘Top’ 같은 거요.

저희 커뮤니티 친구 중에 원나잇 같은 절대 안하는 아주 조신한 친구 S가 있어요. 그런데 S 가 바에서 진짜 마음에 드는 한국인 부치를 만난 거예요. 결국 S랑 그 부치분과 집에 같이 가서 막 키스하고 결정적으로 하려는 순간, 그 분이 “나 부치잖아.” 그러면서 셔츠를 안 벗더래요. 그래서 S가 그분에게 “그럼 너 나가”라고 그랬대요.

제 친구들 중에도 그런 부치들이 가끔 있었는데, 나중에는 정말 좋아하는 여자 만나 설득당해서 벗고는 너무 좋았다고 그러기는 했었죠. 트랜스젠더라면 옷을 안 벗는 게 이해가지만, 레즈비언인데 옷을 벗지 않는 거 잘 이해되지 않아요.

또 다른 특징은 한국 레즈비언들의 ‘튕기는 거'? 저는 여자들에게 굉장히 다정하게 대하는 편인데 한국 친구들이 한국 여자에게 너무 나이스하게 굴지 말라는 거에요. 나이스하게는 하되 조금만 나이스 하래요. 데이트 하는 분에게 문자 보낼 때, 제가 친구들에게 ‘문자 보내 말아?’ 물어보면 친구들이 내일까지 기다리고 절대 오늘 보내지 마라고 그래요. (웃음)

제가 어떤 한국 여자분과 한 세 번째 데이트 할 때 선물을 줬어요. 그 때 당시 다니엘 헤니 주연의 ‘미스터 로빈 꼬시기’라는 영화가 뜨고 있을 때라 제가 그 여자분 성함으로 해서 ‘우리 ××씨 꼬시기’라는 게임 같은 것을 직접 만들어서 줬어요. 그걸 듣고 친구들이 또 막 재앙이라고 그러고 난리났죠. 외국에 있을 때는 그런 거 가끔 했는데, 한국레즈비언 분들은 그런 것을 “어, 느끼하다.” 이렇게 받아들이나 봐요. (웃음)

캐나다, 지인 중 한 명은 동성애자

한국과 캐나다의 동성애 커뮤니티/운동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 것 같아요?
―가장 큰 차이점은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느냐 (being able to out)인 것 같아요. 캐나다에서는 커밍아웃이 굉장히 자유롭고 분위기도 열려 있어요. 예를 들어 차 범퍼에 게이관련 문구 달고 다니는 사람도 많아요. 결혼도 합법이고, 동성애 혐오범죄는 강력히 처벌되고요. 만약에 한국 동성애자들도 커밍아웃 했을 때 직장, 친구, 가족을 잃을 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면 하겠죠.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한국의 동성애 문화는 완전히 거대한 숨은 문화(immense hidden culture)에요. 애써 찾으려고 하지 않는 이상은, 찾을 수가/볼 수가 없어요. 놀라운 것은 숨겨져 있지만 그 규모가 엄청나다는 거예요. 요즘 홍대에 레즈비언 바가 얼마나 많아요. 캐나다에의 퀴어 문화가 훨씬 활발하긴 해도 한국의 P 나 L 같이 성황하는 대형 레즈비언 바가 없어요. (캐나다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그런 대형 레즈비언 바는 보기 드물다.)

캐나다에서는 꼭 굳이 레즈비언 바에만 가야 될 필요는 없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는 듯해요. 여자 친구랑 어디 가도 눈치 안보고 키스 하고 그러죠. 한국에서는 그럴 수가 없죠. 20년 전의 캐나다와 미국도 지금의 한국같은 분위기였지만 서서히 변했죠.

너무 가려져 있어서 그 반대급부로 엄청나게 큰 레즈비언 문화와 클럽이 형성돼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도 어쨌든 에너지들을 풀어내야 하니까 더 폭발력 있게 움직이는 것 같고요.
-한국 사람들에게는 아는 동성애자 있냐고 물어보면 절대 없다고 그래요. 그렇지만 사실은 다 한 명씩은 있죠. 다만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인이 동성애자인 지를 모르는 것뿐이죠. 만약에 한국 동성애자들이 작정하고 어느 날 하루 모두 “나 실은 동성애자야” 하면서 커밍아웃을 한다면 이 나라 전체가 충격에 휩싸일 것 같아요.

그러면 전국의 모든 한국 사람들이 각자 최소 한 명씩은 동성애자 지인들을 갖게 되겠죠. 캐나다는 지금 그런 상황이에요. 캐나다에서는 주변에 동성애자 지인이 없는 사람이 없어요. 내 동생, 친척,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동성애자인 거죠. 한국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을 싫어해요. 아무도 주변에 동성애자 친구가 없으니까요.

제 남동생도 그랬어요. 오래전에 커밍아웃을 처음 했을 때 동생 반응이 “난 누나가 레즈비언인 것은 상관없지만 게이 남자는 우리 집에 데려오지 마” 이러는 거예요. 제가 나중에 게이친구 Q를 데려갔을 때 동생이 게이가 우리 집에 왔다고 싫어하는 거예요. 그랬는데 동생이 Q랑 놀다보니까 Q가 너무 괜찮은 녀석인 것을 안 거죠. 나중에는 제 남동생이 Q 에게 자기 잘생긴 것 같으냐고 물어보고, Q는 제 남동생더러 너 내 타입 아니라고 그러고. (웃음)

한국에서의 커밍아웃, 나를 위한 선택

한국에서 커밍아웃 한 상태인가요?
-네. 캐나다에서도 했고 한국에서도 자유롭게 했어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커밍아웃을 하셨어요? 사포 코리아 사이트 보니까 한국에서 커밍아웃은 좀 신중히 하라는 글이 있던데요.
-네, 처음에 학생들 수업 가르칠 때는 안했어요. 그런데 학생들과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하게 되었죠. 동성애자 친구들이 가끔 “난 커밍아웃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 지 잘 모르겠다.” 고 그러는데 그건 정말 중요한 문제에요. 당신 친구들이 당신이 동성애자인 것을 모르면 그 친구들은 당신에 대해, 당신의 삶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제 학생들 졸업하고 만나서 너네가 알아야 할 게 있다 그랬죠. 그랬더니 애들이 "와, 뭔데요?" 궁금해하더라고요. 그래서 "나 레즈비언이다." 그랬죠. 그랬더니 애들이 막 웃고 난리를 치면서 “선생님~ 우리 학과 애들 중에 선생님이 남자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러는 거예요.(웃음)

한국 내 레즈비언 그룹/페미니즘 그룹이랑 교류도 하나요?
-네, 저희 그룹에서 ‘티지넷’이랑 네트워킹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티지넷’에서 비디오 인터뷰도 하고 파워데이팅 이런 것도 공짜로 하게 해줘서 외국인 레즈비언들 가입도 시키고 그랬죠. 그리고 꾸준히 한국 게이 퍼레이드에 참여해요. 이번 해에 저희 그룹에서는 50명 정도 왔어요. 퍼레이드 때 외국인 여성 보이면 저희 커뮤니티 광고하고 이메일 리스트 하라고 알려주고 그러죠.

개인적으로는 부산여성단체에서 활동가들 대상으로 영어 수업을 하기도 했어요. 그 단체는 부산에 있는 모든 여성관련 단체, 행사 지원을 하는 큰 단체였어요. 제가 레즈비언 관련 이야기를 할 때 그분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 단체가 레즈비언 단체는 절대 후원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좀 실망하기도 했죠.

혹시, 언니네에 대해서는 알아요?
-네, 한국 친구들 중 몇 명이 언니네 캠프에 가기도 했어요.

언니네와 사포 코리아가 교류하면 재밌겠어요. 레즈비언 영어 자원봉사 이런 거 하실 분들 없을까요? 언니들이 일반인들이 잔뜩 섞인 영어학원에서 수업 듣는 것에 짜증 많이 내거든요. 레즈비언 영어교사와 레즈비언 학생들 재밌을 것 같아요.
-분명히 그런 거 하고 싶은 언니들 많을 거예요. 저희 커뮤니티 페이스 북이나 google 그룹에 공고 글 올려주세요. 그리고 언니네 분들에게 저희 그룹은 꼭 외국인만을 위한 그룹이 아니니까 모임에 많이 오시라고 전해주세요.

어느 날 한국 동성애자들이 모두 커밍아웃 한다면?

레이첼을 인터뷰하기 전에는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이 그룹은 주로 사교를 위한 레즈비언 그룹인 것 같은데 과연 할 이야기가 많을까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2시간 가까운 인터뷰는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특히 레이첼이 바라보는 한국의 커밍아웃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동성애자를 싫어한다. 왜냐면 아무도 아는 동성애자 친구가 주변에 없기 때문이다.’라는 지적은 무척이나 마음에 와 닿았다.

올해 나는 한국에 1년 만에 들어왔다. 뉴욕 곳곳에 있는 무지개 깃발, 여자들이 즐비하게 서있는 레즈비언 클럽들을 보다가, 한국에 다시 왔을 때의 느낌은 답답함이었다.
미국에 있을 때 사람들이 한국의 동성애 커뮤니티는 다른 나라보다 무척 뒤쳐져 있다고 말하면 왠지 불쾌했다. 지형이 다르고 운동의 속도가 다른 것이지 그게 뒤쳐져 있는 것은 아니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애써 우리나라의 퀴어 운동 정말 잘 나가고 활발하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하지만 다시 한국에 온 첫 날, 마치 아무도 모르는 외계인이 된 것 같았던 시린 그 느낌을 기억한다. 홍대에서 레즈비언 친구들을 만나고, 이반 클럽에 가면서도 지하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아무도 동성애자들을 모른다. 심지어 무지개 단추를 가방에 달고 다녀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나는 이 상황에서 개개인의 커밍아웃이 무척이나 절실하다고 느낀다.

정말로 한국의 동성애자들 모두가 어느 날 작정하고 커밍아웃을 하면 어떨까. ‘퀴어 프라이드’라는 말처럼 프라이드 있게, 조금씩 커밍아웃을 실행해 보면 어떨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이다. 커밍아웃을 통해 잃는 것도 있겠지만 온전히 내 자신이 되는 것, 내가 내 자신으로서 다녀도 안전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드는 것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마지막으로 인터뷰에 응해준 레이첼에게 고마움을, 15년 전에 절박한 필요에 의해 생긴 그리고 여전히 활동을 꾸준히 해나가는 ‘사포 코리아’에 따스한 지지를 보낸다.





출처 : 언니네

2개의 댓글

2012.09.14
고맙다 나도 내가 레즈인가 겁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네가 올린 글 보고 많이 도움됐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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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4
@힝
잉.. 이러면 내가 레즈 글 안 올리는거 그만 둘 수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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